최근에 두 책을 보았다, 책의 주제와 방향은 다르지만, '상호인과'가 중요한 개념으르 쓰이고 있었다. 한자경 교수의 <불교의 무아론>과 조애너 메이시의 <불교와 일반시스템 이론>이  그 책들이다.

 

 

 

 

                                                                                                            <무아.윤회문제의 연구>

그러나 불교에서의 상호인과(성)에 대해 한자경 교수는 좀 더 세밀한 탐색을 한다. 그냥 막연하게 서양의 '시스템 이론'과 겉에서 잘 맞는거 같고, '쌍방향'이라는 낭만적인 흐름에 아무 비판없이 내맡기다 보면, 뭔가 중요한 핵을 그냥 지나치기 쉽다. 이것이 서구 이론에 밝은 불교학자들이나, 불교에서 어떤 돌파구를 찾으려는 서양학자들에게서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조애너 메이시에게도 만약 세밀한 부분에서 오류가 있다면, 불교와 서양 과학의 만남에서 닮은꼴 찾기게 급급한, 비판적으로 다시 살피는 여유가 부족했던 연구 시기와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일단 한자경 교수는 같은 상호인과성이라도 가령, 불교의 12지 연기에서 그것이 동시적인 쌍방향의 상호 의존성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르는 즉 이시적(異時的) 혹은 계시적(繼時的)  상호인과성임을 강조한다. 그래야 어떤 단순한 반복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꼴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발전, 생성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조애너 메이시 같은 학자의 경우는, 어떤 일방적인 안과율에서 불교나 동양 사상에서 상호인과율의 아이디어를 얻은 것 까지는 좋았지만, 그 미세한 것 까지는 간과한 것이다(물론 이렇게 간단하게 어느 쪽이 옳다고 말한 단계는 아니지만, 잠시 한쪽을 우위에 두고 진행하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한자경 교수의 '자아' 문제에 대한 집착은 독일 유학에서부터 다시 불교로 이어지는 '자아를 찾는 오디세이'를 방불케 하는 책들에서 엿볼 수 있다. 이것이 최근 불교 유식학과 관련된 좋은 결과들로 이어지는 거 같다.  <일심의 철학>, <유식무경>, <불교의 무아론> 등 원래 불교학 전공자였던 국내 학자들에 비해 분명하고 새로운 것들을 만드는 모습이다.

 

 

 

 

 

                      <유식의 구조>  <불교의 심층심리>

<환상의 정신분석>은 세미나를 녹취한 것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여기에 눈에 띄는 장이 있는 데, '유식 불교와 정신분석'이라는 제목이다. 물론 저자(임진수)는 유식학과 정신분석학을 비교한다는 것이 대단히 난해한 일임을 강조하면서, 둘을 조심스레 비교하고 있다. 그러나 유식학의 개론적인 수준에서만 논의되고 있는 것이 좀 아쉬운 부분이고(그래도 이런 글을 본다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 아닌가!), <유식의 구조>라는 책에서 그러한 시도가 불완전하게 있었다면서, 그책을 인용하는 것도 좀 심심했다. 그 책을 인용하는거야 비판적인 서술을 위해 필요할 수도 있지만, 유식학에 관한 더 좋은 연구들이 있을 터인데, 아직 거기까진 접근이 못미친건지 그 이상의 것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1500년전의 연구가 이정도까지 왔다는 거에 대해 놀라움을 표시하지만, 결국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더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식으로 글을 마무리하고 있다. 여기서 메다드 보스의 <정신분석과 현존재분석>라는 책이 언급되는데, 이죽내 교수의 번역으로 책방에 나와 있다.  하이데거의 '현존재(Dasein)'를 정신분석에 응용한 '현존재 분석'에 관한 책이라는데, 이것이 유식에서 강조하는 현재성, '사건'을 다른 차원에서 접근하는데 저자 임진수씨의 말대로 어떤 좋은 참고가 될 거 같기도 하다.

최근에는 불교와 심리학의 만남이 심심찮게 목격되는데, <선수행과 심리치료>도 여기에 가세했다. 목차를 보니까, 그냥 우발적인 아이디어에서 파생한 책으로 보이지 않고, 무게와 체계적인 흐름이 느껴진다. 곧 구해서 볼 생각이다. <불교의 심층심리>와 아까 이죽내 교수의 <융심리학과 동양사상>은 융심리학과 불교의 만남이 모색되는 책이다.

 

처음에 <불교와 일반시스템>이란 책을 말했는데, 이 책은 또한 (시스템) 생태학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불교(선 포함)와 생태학에 관한 책이 생각보다 많이 보인다. <불교와 생태학>은 그냥 불교가 아닌 남방불교, 대승불교, 선불교 그리고 특이하게도 미국불교로 나누어 진행하고 있는데, 설명에 보면, 불교생태학 연구에서 가장 권위가 있는 책으로 소개되고 있다. 하워드 오덤의 <시스템 생태학>은 나온 지 좀 지난 책인 데, 생태학이 들어가서 그것을 주제로 좀 수월한 책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렇진 않다. 시스템에 대한 깊이 있는 이론과 컴퓨터와 관련해서 매우 분석적인 부분도 다루어지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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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 유쾌한 미학자 진중권의 7가지 상상력 프로젝트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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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에 '놀이'가 들어간지라 정말 다양한 놀이들이 담겨져 있다. 그러나 제기차기나 팽이놀이 같은 걸 볼 수는 없다. 저자 진중권이 제목으로 내세운 '놀이'에서 우리는 암묵적으로 그 '놀이'가 어떠한 것들일지는 얼추 짐작은 하고 들어간다. 책을 직접 펼치고 그 빛깔들의 섬세한 정체를 관람하는 일만 남은 것이다.

이 책도 역시, 내용과 형식에서 어떤 시도들이 있다. 일곱 가지 색깔이 놀이의 범주를 스펙트럼처럼 나누고 있으며, 각 색깔들은 독립적으로 우리의 시선에 작용하도록 고안되었다. 즉 이 책은 직선적인 시간에서 벗어나  독자가 보기를 원하는 곳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전혀 연속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색깔들의 번짐이 멈추는 마지막 장(일종의 후기) '영원한 소년'에서는 에셔의 '메타모폴시스'가  가로지르면서 다시 일곱 색깔들을 조용한 초점으로 갈무리하듯 정리한다.

이 책에서 내게 흥미를 끌었던 부분은, Orange -빛과 그림자-에서 '마법의 등'이라고도 불렀다던 라테르나 마기카(Laterna Magica)로 그와 관련된 삽화(p.87 그림12)와 함께 시선을 오래도록 잡았다. 빛과 어둠의 조작으로 어떤 가상의 환영이 빈 공간에 투사(Priject)되는 멋진 원형이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어떤 주술성도 느껴지기도 하는데, 현대 극장에서는 그 투사방식이 기계장치로 바뀌면서 세련되고 정밀해졌지만, 어떤 아우라는 감소된 느낌이다.

Yellow -숨박꼭질-에 포함된 왜상(anamorphosis)도 약간 힘겨운? 눈요기거리가 많았는데, 에르하르트 쇤의 그림들(pp.128-129)은 아무리 각도를 조절해도 설명처럼 제대로 숨겨진 그림을 포착하지는 못했다.

Navy Blue -순간에서 영원으로-에서는 '미로' 부분이 꽤 흥미로웠다. 미노타우로스가 갇혔다던 크레타식 미로를 만드는 방식은 꽤 신선한 자료였다. 그리고 프란체스코 세갈레의 '인간 모습의 미로'도 눈을 사로잡았는데, 그림을 좀 더 크게 실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생긴다. 저자는 미로의 세 가지 형태,  단방향의 (크레타식) '고전적 미로'와 갈림길을 마주치게 해서 갈등을 조장하는 퍼즐형 '근대적 미로' , 그리고 리좀(rhizome)형 미로처럼 뚜렷한 입구와 출구 없이 무작위적 교차를 통해 무한히 확산하는 '탈근대적 미로'를  들고 있다. 이는 미로의 변화 방식에 빗대어 인간의 놀이, 예술, 사상(철학)에 걸친 세박자의 모습을 그리는 것으로도 보인다.

Purple -다이달로스의 꿈- 종이접기에서는, 이 '접기'에서 주름과 형상의 복잡함을 통해 아래와 같이 들뢰즈와 라이프니츠의 멋진 앙상블을 통해 철학적 문구를 새긴다.

질 들뢰즈가 지적한 것처럼, 라이프니츠는 '접기'를 세계의 원리로 보았다. 세계는 모래알과 같은 '입자'가 아니라 레스토랑의 접힌 냅킨처럼 '주름'으로 되어 있다. 정신의 지각은 접기다. "지각의 작동은 영혼 안에 주름들을 형성하기에 모나드(monad) 내부는 주름들로 덮여 있다." 존재의 생성은 펼치기다. "그러나 이 주름들은 물질과 닮았는데, 이 물질은 이제 외부의 겹주름들로 조직되어야 한다." 인간의 정신 속으로 세계는 주름잡혀 들어가고, 정신은 상사의 원리에 따라 물질 위에 겹주름을 실현하며 자신의 잠재성을 펼쳐나간다. 안쪽의 주름(pil)과 바깥의 겹주름(repil)은 서로 포개지며, 내재(안)와 초월(밖)이라는 전통적 이분법을 슬쩍 비껴 나간다.(p.325)


위의 글은 알록달록한 정신적인 놀이가 가득한 이 책에서 그래도 가장 움푹 들어갈 정도의 무게감과 미래의 예감이 깃들어 있는 부분이다. 여기에 저자가 강조하는 기술 위에 다이달로스의 날개처럼 비상하는 '상상력'을 덧붙인다면, 이 책에서 발광하는 일곱 가지 빛깔을 제대로 흡수하는 '읽기 놀이'가 독자를 통해 생겨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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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책의 작은 실수(오자)를 적어본다. 309쪽 아래 (298쪽 그림)은 (296쪽 그림)으로, 그리고 참고문헌에서 국내문헌 맨 마지막 폴 비릴리오, <사라짐의 미학>은 <소멸의 미학>을 잘못 적은 걸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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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여유가 없어, 마이페이퍼에 뜸했다. 뭐 평소에도 꾸준하게 쓰진 않았지만.. 그래도 일단 시작한 거니까 소박하게 자기글 쓰고, 요새 보는 책들이나 구경한 책들 무엇이었나 (그냥 흘러보내지 않고) 가끔씩 정리해 보는 습관도 좋을 거 같다.

 

 

 

 

                                                                         <미술에의 접근>   <신의 기원>   <도교와 중국문화>

 

왕필에 대해선 익히 들어왔지만, 띄엄 띄엄 부스러기 글들만 봐왔지 제대로 그를 담은 책을 본 적은 없었다. 그래도 스물 넘어 죽었다지만 그가 대단히 천재였다는 거에 매료를 느꼈던 거 같다. 그런 인물이 뭔가 환상을 심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걸 향유하는 재미(이국적인 천재 구경하는 재미?)도 참 묘하다. 어디 전설적인 천재들이 또 없나?

언젠가 원효와 의상에 대해 공부하고 싶단 생각이 있다. 하지만 준비 작업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최소한 한문 실력도 어느정도는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얄팍한 마음에 이런 얄팍한 두께의 책이 반갑기도 하다. 근데 최근에 원효의 '판비량론'에 대한 책들이 눈에 띈다. 유식학과 인명학이 다루어지는 거 같은데, 대충 불교 논리학이 요청되는 부분이다. 멀고도 멀다.

마그리트의 이 책은 보통 책보다는 약간 작은 크기다. 책에 담긴 그림들은 거의 봤던 거라 새로울 건 없지만, 그림에 대한 설명이 곁들여져 있어 그래도 만족감이 든다. 그림 선명도가 좀 떨어지는 것이 아쉽다. 하지만 못 보던 그림 하나가 눈을 사로잡는다. 시가 위에 자전거가 그려진 '은혜의 상태'가 그것이다.

<신의 기원>과 <도교와 중국문화>는 평소에 동문선 책들 중에서 찜했던 것인데, 이제서야 손에 들어왔다. 늘 그렇듯이 이런 책은 당장 보려고 사기 보단, 언젠간 보겠지 하고 책꽂이에 끼워 놓기 마련이다.   

 

 

 

 

 

                                                                                                    <과학과 인간의 미래>

<그림으로 보는 세계문화상징사전>에 이어 출판사 까치에서 나온 <세계 신화 사전>도 구했다. <세계문화상징사전>에 비해서 덜 두툼하고, 그림도 적은 편이다. 너무 빽빽하게 구성되어 있지 않아서, 사전이라지만,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봐도 될 듯 싶다. 융과 파울리라는 서로 다른 분야의 거물이 만난 <자연의 해석과 정신>은 각자 한편의 논문형 글로 채우고 있다. 비의(秘儀)적인 내용들도 들어가 있어, 마냥 딱딱한 지적인 글로만 읽히진 않을 거 같다. 아무래도 융의 최종적인 호기심과 관심은 연금술에 해당할지도 모른다. 라이프니츠가 다시 주목받는 분위기다. 들뢰즈도 관련 책이 있고, 이정우씨도 연달아 관련 책들을 내놨다.

브로노프스키는 <인간 등정의 발자취>를 비롯해서 우리나라에 여러 권이 소개됐다. <과학과 인간의 미래>도 다른 책들처럼 어떤 긴 시간안에 그러한 과학적인 것들을 응축 배열하는 솜씨가 깃든 책 같다. <인간 등정의 발자취>는 원래 범양사에서 나왔었는데 절판이고, 바다출판사에서 새롭게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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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내용과 관련된 책들 

 김상일 교수는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와 관련하여 원효의 판비량론에 대해 새로운 접근을 하고 있다.

 

 

 

 

 

 

 

<주름, 갈래, 울림>은 라이프니츠 <모나드론>에 대한 강의록이다. 꼼꼼한 이정우 교수의 라이프니츠 읽기를 엿볼 수 있다. <접힘과 펼쳐짐>은 부제가 -라이프니츠, 현대과학, 역易-인데, 동양과 서양에 걸친 미래 예감적인 지적인 파노라마를 구경할 수 있는 책이다. 그러나 진행에 있어, 카프라의 <생명의 그물>과 유사함이 살짝 보이기도 한다. 아이디어와 방향 설정에 비해 내용에 번뜩임이 덜한 것도 아쉽다. 라이프니츠가 역경에 관심이 많았다는건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컴퓨터의 기본인 이진법의 연원이 라이프니츠가 중국(음양, 역)과 반응한 거기서부터라는 설도 있다. 이것이 미국의 사이버네틱스에까지 영향을 주었다는.. 고로 컴퓨터 안에는 음양의 껌뻑이는 근본적인 놀음이 존재하는 거이 아닌가? 믿거나 말거나지만. 이러한 배경에 대한 호기심을 어느 정도 풀어줄 책이 보인다.<라이프니츠와 동양사상>은 중국 사상의 흡수과 상당히 깊었던 라이프니츠를 '유기체'적인 모습과 성리학의 '리', 그리고 '주역'과 관련시켜 살피고 있다. <라이프니츠가 만난 중국>은 라이프니츠가 직접 쓴 글을 모았다고 하는 데, 소제목에 ' 0과 1만을 사용하는 이진법 산술에 대한 해설'에서 컴퓨터와 관련된 그 단초를 찾을 수 있을 것도 같다. <수학자, 컴퓨터를 만들다>는 그것까지 건드려줄거 같지는 않지만, 일단 라이프니츠의 시발점으로 삼고 그 과정을 실피는 것이므로, 한번 쯤 경험해 볼 현대 괴물(컴퓨터) 탄생의 흥미로운 비화가 있을 거 같다.

 

 

 

 

                                                 <서양의 지적전통>

제이콥 브로노프스키라고 하더니, 요새는 야콥 브로노프스키라고도 표기하는데, 나로서는 어떤 것이 정확한 이름(발음)인지 모르겠다.  하여튼 이렇게 방대한 자료들을 꿰어 하나의 책으로 만드는 재주를 가진 사람을 보면 놀랍다. 한권도 아니고 여러권을 만들 수 있다니. <서양의 지적전통>은 다빈치, 갈릴레오에서부터, 칸트, 헤겔까지 훑는 책인데, 촘촘한 교양을 쌓기에 딱 어울리는 책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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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지도 - 동양과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
리처드 니스벳 지음, 최인철 옮김 / 김영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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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고를 때 나름대로 꼼꼼한 편이다. 되도록 목차는 꼭 확인하는 편이고, 서평이 있다면 몇개 정도는 훑어보고 대충 감을 잡는다. 이 책은 제목도 눈길을 잡고, 목차에서도 왠지 책의 내용을 아우르는 자태가 깊이가 있고 폭이 넓어 보였다. 그런데 과연...

일단 책의 구성은 이렇다. -과연 동양인과 서양인의 사고 패턴이 다른가?- 거기에 맞는 테스트를 한다. 물론 특수한 기계 장치에 머리를 넣고, 물리적 두뇌를 살피는 실험은 아니다. 그냥 책상 위에 올려 놓은, 설문지를 열심히 풀면 된다. 책 기획의 대범함에 비해 도출 과정은 대단히 소박하다. 그러면 결과가 나오는데, 대개 이 책의 저자를 포함해서 연구진들의 예측에 거의 들어 맞는다. 즉 다양한 질문들이라도 어떤 굵직한 두 개의 패턴을 염두해 두고 각기 그 패턴의 연속성이 확인되는 것이다. 물론 두툼해진 설문지라는 경험 데이터로!  

우리가 막연하게 동양 사람과 서양 사람들은 다르겠지? 하던 것을, 그래도 뭔가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 근거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알려준다. 서양인이 주체와 관련된 어떤 점, 대상에 집중하는 사고 패턴이라면, 동양인은 배경, 맥락, 관계성에서 사고하려는 경향이 있는 걸로 나온다. 다른 식으로 말한다면, 서양인이 논리적 범주적인 사고에 능하다면, 동양인은 감성적인 친밀도로 엮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가령 팬더 곰, 원숭이, 바나나 이렇게 세 개의 항목에서 두개를 묶는다면, 서양인은 팬더 곰과 원숭이를, 동양인은 원숭이와 바나나를 택한다는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최근 우리나라에서 논술 채점 문제 때문에 공부하는 학생이나, 그것을 평가하려는 대학교에서 뭔가 분명한 기준을 잡지 못해 애를 먹는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어떤 신문 뉴스에서, 채점을 담당하는 교수가 하는 말이, 양비론적인 사고는 일단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둘 중에 그래도 좀 더 나은 걸 골라서 그쪽을 옹호하는 것이 점수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내용을 응용해서 본다면, 그러한 교수의 태도는 서양식 사고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유리해지는 꼴이다. 양비론이든, 절충주의든, 극단주의든, 그거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결국 거기에 담긴 합리적이고 타당한 내용인데, 어떤 선입견을 미리 부리는 것에 대해 한번 검토해 봐야 하지 않을까? 동양인은 상극보다는 상생, 한쪽을 제거하는 것 보다는, 둘의 장점을 살려 둘 다 살리는 생명의 감성이 있다. 저 과거 원효의 '화쟁논리'도 그러한 바탕에 있는 것이 아닌가..

무조건 서양식 이성 줌심, 논리성에 부합해야지 합리적인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기준) 시작부터 먼저 합리적 반성으로 검토해봐야 할지도 모른다. 근대에 서양의 (물리적) 큰주먹 한방에 동양이 눌려서 움푹 들어가 버렸지만, 그거 자체가 게임 오바는 아니다. 이 책의 미덕이라면, 우리가 동양인의 사고( 패턴)와 서양인의 사고 중 어느 쪽이 확연하게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데 있다. 저자가 그 동서 두개의 패턴이 합쳐지는 쪽으로 갈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그냥 그 자리를 지키면서 서로 보완적인 관계를 늘 새롭게 생성해 나가는 것도 왠지 괜찮을 거 같다.

너무 설문지가 남발해서 중간 어딘가부터는 긴장감을 빼놓기 시작하는데, 그래도 고등학생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동양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한번 긍정적으로 되물을 수 있는 좋은 자극이 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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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위영화의 이해
이용관 / 예니 / 199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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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적이고 낯선 영화를 찾는 사람에게 어두운 지하 영화 세계를 탐색하는데 지도역할을 할 만한 것이 있다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성가신 영화들을 다룬 책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예술 영화하고도 좀 다르고 거기다 대중이 (필름 자료에) 다가가기 쉽지가 않다.

<전위영화의 이해>는 여러 책에서  뽑아 온 것들을 하나로 묶은 것이다. 쉘든 레넌(Sheldon Renan)의 책이 큰 주축을 이루고 피터 클린지, 랠프 스테펜슨과 국내 학자로는 김정옥 그리고 이 책의 편역자인 이용관의 글이 체계적인 순서로 이어져 있다.

약 250쪽이라는 소박한 두께지만, 여기에 포함된 영화작가들과 영화들의 양은 꽤 많은 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가 직접 감상하거나 확인할 필름들은 상당히 적을 것이다. 그래도 요새는 국내외 DVD 사이트를 통해서 심심찮게 이런 실험 영상물들을 구할 수도 있다.

낯선 (영화) 작가들의 이름이 많이 나오는데, 가끔 '백남준'이라는 이름을 발견할때는 상당히 반가웠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보다 백남준의 활동이 이 바닥?에서는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었나보다.

전체적으로 편집이나 번역이 매끄럽거나 엄밀하지는 않지만, 이 분야의 전문서들이 드문 상태에서 이 책으로 어느 정도의 촉촉함을 느낄 수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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