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 유쾌한 미학자 진중권의 7가지 상상력 프로젝트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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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에 '놀이'가 들어간지라 정말 다양한 놀이들이 담겨져 있다. 그러나 제기차기나 팽이놀이 같은 걸 볼 수는 없다. 저자 진중권이 제목으로 내세운 '놀이'에서 우리는 암묵적으로 그 '놀이'가 어떠한 것들일지는 얼추 짐작은 하고 들어간다. 책을 직접 펼치고 그 빛깔들의 섬세한 정체를 관람하는 일만 남은 것이다.

이 책도 역시, 내용과 형식에서 어떤 시도들이 있다. 일곱 가지 색깔이 놀이의 범주를 스펙트럼처럼 나누고 있으며, 각 색깔들은 독립적으로 우리의 시선에 작용하도록 고안되었다. 즉 이 책은 직선적인 시간에서 벗어나  독자가 보기를 원하는 곳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전혀 연속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색깔들의 번짐이 멈추는 마지막 장(일종의 후기) '영원한 소년'에서는 에셔의 '메타모폴시스'가  가로지르면서 다시 일곱 색깔들을 조용한 초점으로 갈무리하듯 정리한다.

이 책에서 내게 흥미를 끌었던 부분은, Orange -빛과 그림자-에서 '마법의 등'이라고도 불렀다던 라테르나 마기카(Laterna Magica)로 그와 관련된 삽화(p.87 그림12)와 함께 시선을 오래도록 잡았다. 빛과 어둠의 조작으로 어떤 가상의 환영이 빈 공간에 투사(Priject)되는 멋진 원형이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어떤 주술성도 느껴지기도 하는데, 현대 극장에서는 그 투사방식이 기계장치로 바뀌면서 세련되고 정밀해졌지만, 어떤 아우라는 감소된 느낌이다.

Yellow -숨박꼭질-에 포함된 왜상(anamorphosis)도 약간 힘겨운? 눈요기거리가 많았는데, 에르하르트 쇤의 그림들(pp.128-129)은 아무리 각도를 조절해도 설명처럼 제대로 숨겨진 그림을 포착하지는 못했다.

Navy Blue -순간에서 영원으로-에서는 '미로' 부분이 꽤 흥미로웠다. 미노타우로스가 갇혔다던 크레타식 미로를 만드는 방식은 꽤 신선한 자료였다. 그리고 프란체스코 세갈레의 '인간 모습의 미로'도 눈을 사로잡았는데, 그림을 좀 더 크게 실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생긴다. 저자는 미로의 세 가지 형태,  단방향의 (크레타식) '고전적 미로'와 갈림길을 마주치게 해서 갈등을 조장하는 퍼즐형 '근대적 미로' , 그리고 리좀(rhizome)형 미로처럼 뚜렷한 입구와 출구 없이 무작위적 교차를 통해 무한히 확산하는 '탈근대적 미로'를  들고 있다. 이는 미로의 변화 방식에 빗대어 인간의 놀이, 예술, 사상(철학)에 걸친 세박자의 모습을 그리는 것으로도 보인다.

Purple -다이달로스의 꿈- 종이접기에서는, 이 '접기'에서 주름과 형상의 복잡함을 통해 아래와 같이 들뢰즈와 라이프니츠의 멋진 앙상블을 통해 철학적 문구를 새긴다.

질 들뢰즈가 지적한 것처럼, 라이프니츠는 '접기'를 세계의 원리로 보았다. 세계는 모래알과 같은 '입자'가 아니라 레스토랑의 접힌 냅킨처럼 '주름'으로 되어 있다. 정신의 지각은 접기다. "지각의 작동은 영혼 안에 주름들을 형성하기에 모나드(monad) 내부는 주름들로 덮여 있다." 존재의 생성은 펼치기다. "그러나 이 주름들은 물질과 닮았는데, 이 물질은 이제 외부의 겹주름들로 조직되어야 한다." 인간의 정신 속으로 세계는 주름잡혀 들어가고, 정신은 상사의 원리에 따라 물질 위에 겹주름을 실현하며 자신의 잠재성을 펼쳐나간다. 안쪽의 주름(pil)과 바깥의 겹주름(repil)은 서로 포개지며, 내재(안)와 초월(밖)이라는 전통적 이분법을 슬쩍 비껴 나간다.(p.325)


위의 글은 알록달록한 정신적인 놀이가 가득한 이 책에서 그래도 가장 움푹 들어갈 정도의 무게감과 미래의 예감이 깃들어 있는 부분이다. 여기에 저자가 강조하는 기술 위에 다이달로스의 날개처럼 비상하는 '상상력'을 덧붙인다면, 이 책에서 발광하는 일곱 가지 빛깔을 제대로 흡수하는 '읽기 놀이'가 독자를 통해 생겨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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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책의 작은 실수(오자)를 적어본다. 309쪽 아래 (298쪽 그림)은 (296쪽 그림)으로, 그리고 참고문헌에서 국내문헌 맨 마지막 폴 비릴리오, <사라짐의 미학>은 <소멸의 미학>을 잘못 적은 걸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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