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화성의 인류학자 - 뇌신경과의사가 만난 일곱 명의 기묘한 환자들
올리버 색스 지음, 이은선 옮김 / 바다출판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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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있다. 특별히 배우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되고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것들. 그래서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과 만날 때, 공통적으로 가진 그 배경을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이용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어떤 (특정)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것들이 지극히 낯설고 생소할 수 있다. 도대체 저 사람들은 어떻게 구체적인 의사 전달 없이도 무언가를 원활하게 전달하고 바로 이해할 수 있을까? 이런 풀리지 않는 큰 의문을 가진 사람들 중에는 우리가 익히 아는 자폐증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이 책의 제목 '화성의 인류학자'가 된 심정이 바로 그러한 것일 것이다. 즉 자폐증이 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일반 사람들의 속내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차츰 그 무리에 동화되어 알 수 있는 성질의 것이 못된다. 그러니 대부분은 사회와 멀리 떨어져서 외롭게 혹은 누군가의 도움에 의지해서 살게 되는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템플이라는 여자도 그러한 불리함을 갖고 있지만, 새롭게 터득한 방식으로 사회생활을 성공적으로 꾸려나간다. 그러나 사람들과의 동화가 아니라 마치 알고리즘처럼 머릿속에서 반복적으로 그들의 태도를 종합해서 대처하는 일종의 편법이자 임시방편에 속한다. 그러니까 템플은 스스로를 마치 화성의 인류학자가 된 기분으로 (지구인들을 관찰한 끝에) 그들을 이해해서가 아니라 같이 생활하기 위해 규칙을 겉으로만 따르는 어중간한 입장이기도 한 것이다.

결국 사람들에게는 서로 다른 내면의 패턴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쪽이 더 우월하고 정상이라고 단정짓기도 그렇다. 일단 간단히 말해서 템플과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보다는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숫적으로 너무도 많기 때문에 그들은 약자의 위치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이 밖에도 이 책에는 비행기까지 운전하는 투렛증후군을 가진 의사 이야기도 나온다. 강박적으로 어떤 이상 행동을 끊임없이 반복하는데, 이러한 '틱'증상은 수술 같은 긴장된 순간에는 다행히 나오지 않으니 참 신기하다. 그러나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인생을 즐기려는 그의 태도는 참 인상적이었다.     그럼 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더 꺼내보자. 가장 흥미가 있었던 곳이기도 한데, 바로 뇌 손상과 그림(미술)과 관련된 부분이다. 이런 경우에 예술쪽으로 보통 사람과 다른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기억력이나 암산에 대해서도 우리는 영화 '레인 맨'에서 몇몇 장면을 기억해 낼 수 있다).

어느 날 사고로 갑자기 색맹이 되버린 화가는 자신의 시야에서 색들을 전부 잃었지만, 이상하게도 아주 멀리 있는 작은 물체까지 볼 수 있는 독수리와도 같은 시력을 갖게 된다. 처음엔 절망이 컸던 이 사람은 그러나 점차 자신이 보는 것들, 그 흑백의 세계에 매료된다. 그래서 새로운 치료로 다시 전처럼 돌아갈 수 있다는 말에도 시큰둥이다. 아니 오히려 불쾌한 반응을 보인단다.        화가 프랑코는 늘 향수에 시달린다. 그의 그림들은 과거 동심이 깃든 풍경들을 되새김질 하듯 화폭에 담아내는 경우가 많다. 또한 놀라운 기억력까지 있어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재주가 뛰어나다. 거기다 그의 그림에는 보통 사람과 달리 여러 시점이 동시에 공존하는 기이함까지 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신기한 특정 능력들을 열거하는 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보통 뇌 손상을 가진 사람들이 보이는 천재적인 능력에 대해 그것이 단순히 기계적인 재생이나 창의력 없는 작업으로 평가하는 것이 대세였다. 그런데 저자 올리버 색스는 그런면도 없지 않지만, 그들도 나름대로 창조적으로 독특하게 재구성하는 능력도 있음을  옆에서 직접 지켜 본 경험과 다른 연구들을 통해 생생하게 보고한다.   

과연 우리 머릿속에 있는 두뇌는 정상으로 포장된 상태가 아니라면, 어떤 다른 기발한 풍경들을 품고 있을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정상의 차원엔 분명히 장점이 있다. 일반성과 안전함 그리고 질서 등등. 그러나 그 대가로 다른 능력들이 잠재성이라는 표정을 짓고 안으로 숨어 들어가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 능력들-뛰어난 기억력과 절대음감, 화가적 재능을 캐기 위해 두뇌에 대한 위험한 도박을 할수는 없지 않은가?

올리버 색스가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방식은 참 매끄럽고 재미가 있다. 그리고 다방면으로 많은 지식을 갖고 있음을 책을 읽으면서 알 수 있었다. 그 지식들을 딱딱하지 않게 사이사이에 먹기 좋게 끼워넣는 그의 친절함과 센스에 노련함이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는 이들 특이한? 사람들을 관찰하는 학자로서의 시선만을 가진 사람은 아니다. 인간적으로 그들을 이해하려고 하고, 뭔가 놓치는 것이 있지 않을까 염려하는 모습에서 애정을 발견하게 된다. 

아마도 우리들 애정이란걸 이해하지 못하는 자폐증을 가진 '화성의 인류학자', 템플에게 헤어지기 전에  "한번 안고 싶은데, 그래도 괜찮겠죠?" 하는 느닷없는 그 말...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잠시 쉬고 그냥 인간과 인간이 가슴으로 포옹하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라도 우리가 무작정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지구인과 화성인의 포옹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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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떤 영화 보셨어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 일반판 - 아웃케이스 없음
와이드미디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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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고도 아름다운".. 이런 상투적인 표현을 쓰는게 그리 달갑진 않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난 뒷맛에는 잘 어울린다. 

선명하지 않은 영상은 이 영화가 관객에게 객관적인 현실을 잠깐 접어주길 바라는 하나의 장치로 보면 될 것 같다. 그 대신 아주 살짝 입자를 뭉겐 듯한 영상에 다양한 색감들이 피어나는 건, 영화의 매끄러운 진행(이야기 건너뛰기 같은)을 위한 환상의 덧칠과 주인공 주변의 인물들에 맞는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정성스런 의도일 것이다.

이렇게 기구한 한 여자의 운명을 비극의 흐름으로만 잡지 않고, 만화같은 과장된 설정과 번갈아 가면서도 순탄하게 만든다는 건 꽤 어려운 작업일 것이다. 자칫 이어짐이 끊기고 산만할 수도 있는데, 그런 거친 흔적들을 숨기고 흘러간다는 건 아마도 감독의 역량이 컸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용에 비해 이 영화가 가진 장치들은 보통 이상의 것들과 기술이 담겨 있다.

마츠코의 일생은 엉뚱하다. 그리고 크기도 다양한 비극들이 줄은 선다. 그러나 그 비극의 간격에는 마츠코의 의지를 자극하는 기회들도 놓여 있다. 그러니 차라리 한방에 KO펀치라면 그냥 뻗어버리면 될텐데, 그래도 뭔가 다시 일어서게 만드는 걸 제공하는 운명의 변태적인 행진에 발을 맞출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여자로서 사랑의 감정을 너무도 풍부하게 곤두서게 만드는 남자도 만나게 된다. 여러 사람의 운명을 살펴야 겨우 볼 수 있는 것들을 이 여자에게 압축해서 감당하라고 하는 건 정말 가혹한 일이다.

그럴만한 죄가 과연 마츠코에게 있나? 아니면 업보라도.. 그러나 이 영화는 현실적인 감성을 다소 무마시킨 무대 위에 비극을 올려 놓았기 때문에 그 강도가 강해도 환상의 프레임 안에서는 충분히 견딜 만한 것이 되고 만다. 그리고 그것이 마츠코에 대한 몰입을 최고조로 유지할 수 있게 만들기도 한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마츠코 내면의 정신적인 풍경, 심리적으로 엉긴(가령 아버지와의 관계)것들도 중요하게 다루기에 그러하다. 즉 꿈이 아무리 무섭고 위험해도 그것이 가리키는 메시지는 전혀 다른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마츠코가 영화 안에서 겪는 화려한? 비극들을 꼭 현실적인 차원에서 끌고 와서 순전히 비극으로만 해석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마츠코라는 캐릭터가 꾼 비극의 악몽일 수도 있고, 그 마츠코는 우리 안에 숨겨진 짧지만 잔인한 동화의 주인공일 수도 있다. 마치 이 영화의 감상이 간단하게 끝날 수도 있는데, 이와 같이 어디로 샐지 모르게 지나친 긴장과 파고듬이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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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떤 영화 보셨어요?
위험한 관계 - [할인행사]
스티븐 프리어즈 감독, 글렌 클로즈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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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한 젊음과 아름다움을 가진 여인은 아니지만, 이 마담(글렌 클로즈)은 조종자로서의 매력이 있다. 기품 있는 악녀라고나 할까? 그러나 겉으로는 사교계에서 알아주는 마담이라는 페르소나를 갖는다. 이 당시 귀족사회는 형식화된 매너에 충실한 가식들이 너무도 흔하고 당연한 일이었나보다. 즉 누구나 매너를 지키지만, 그 매너와 그 사람의 진실을 결부시키지는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 적당한 미소를 짓지만, 속으로는 의심과 경계 그리고 심리적인 작전들이 빠르게 돌아간다.

그래서 한 남자의 사랑 고백도 그것이 순전히 단둘의 관계에서 바로 소통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이 남자의 과거 정보들과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묻고서야 해석되는 더딘 절차를 갖는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를 속이려면, 특히 과거가 미심쩍은 사람들은 더더욱 현란한 속임수를 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것이 승부기질이 있는 사람에겐 오히려 흥미로운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발몽(존 말코비치)의 타겟은 뚜르벨 부인(미셀 파이퍼)이다. 남편을 여의고 혼자 사는 여자인데, 종교적인 신념과 사회법도에 충실한 정숙함이 트레이드마크다. 그러니 여자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발몽에겐 다소 어렵지만 땡기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정숙한 여자를 유혹해서 버리는 게임'을 격려?하는 마담의 심리도 참으로 묘하다. 마당과 발몽은 일종의 계약관계이면서도 연인관계로 보인다. 그러나 최후의 불꽃놀이는 이 어려운 게임이 끝나는, 즉 계약이 성공적으로 성사되었을때 가능한 마지막 유희로 남겨 놓았다. 암묵적으로..

마담의 가면은 너무도 능수능란하게 (순진한) 사람들의 믿음을 달콤한 독으로 되돌려주는데, 그럼에도 발몽에 대한 감정은 이중적이다. 발몽이 정숙한 뚜르벨 부인을 유혹하는 걸 독려하면서도, 사적인 감정으로 질투를 느끼기도 한다. 또한 발몽도 뚜르벨 부인에게만큼은 기계적인 감정 처리가 쉽지 않다. 사랑을 연기하는 자신이 어느덧 정말 그녀를 사랑하는게 아닌지 헤깔리는 것이다.

자 그러면, 이제 이 세명이 관계는 단순한 결말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어떻게 보면, 마담과 발몽은 사람들을 속이면서 자신들의 가벼운 욕망을 채우면서 살아가는 듯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발몽의 이력 안에는 수많은 여자들이 등록되어 있을테니까. 그런데 그들이야말로 자신의 진정한 욕망을 숨기고, 단지 욕망처럼 보이는 룰(법칙)에 충실했던 것은 아닐까? 뚜르벨 부인한테 발몽이 위험했던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역은 아니었을까..

발몽은 버그처럼 사랑이란 감정이 자기 시스템에 생겨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전과는 전혀 다른 운명을 맞이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진정한 자기의 진정성을 감내하는 사람이 승리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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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의상과 그 당시 사교계의 풍경을 짐작케 하는 장면들은 이 영화에서 볼 수 있는 훌륭한 구경거리다. 그리고 앳된 우만 서먼의 모습과 짧은 노출씬은 고마운 장면이었다. 글렌 클로즈와 존 말코비치의 눈빛과 연기는 영화의 탄탄한 구성 속에서 제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결론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애매하게 남겨놓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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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떤 영화 보셨어요?
28일 후... - 할인행사
대니 보일 감독, 나오미 해리스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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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예산 호러영화라고 하는데, 대니보일 정도면 영화를 궁색하게 만들 처지는 아닐 것이다. 그럼 이 영화는 '돈 안들이고 찍는 것' 자체를 즐기듯 시도해보려는 감독의 재미난 발상도 들어가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렇게 저렴해 보이거나 편집이 엉성한 B급 영화는 아니다. 그리고 이 거대한 도시에서 차량 하나 지나가지 않는 장면을 누가 그리 쉽게 허가를 받아 성사시킬 수 있을까? 그러니 실제적으로 돈만 덜 썼지, 지명도 있는 감독 덕은 충분히 누린 영화다.

나는 좀비가 나오는 영화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처음에 이 영화의 감독이 누구인지도 몰랐다. 우연히 이 영화의 줄거리와 평을 보고 뭔가 삐죽한 느낌이 들기에 보게 된 영화다.

말끔한 신사숙녀들이 산다는 거대한 섬-영국에 더럽고 단순한 본능을 가진 좀비들이 떼거리로 몰려 다닌다.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은 정말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처럼 드문 일이다.        젊은 남자가 병실에서 알몸인 채로 눈을 뜬다. 아마 의식불명으로 며칠을 그러고 있었나 보다. 옷을 대충 챙겨 입고 밖을 나와 보니, 왠걸 사람 그림자조차 보이질 않는다. 그리고 곧 알게 된다. 어눌해 보이는 꼬제제한 존재들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어정쩡한 달리기로 자신을 노린다는 것.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가다 그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두 남녀의 도움으로 좀비가 될 뻔한 위기를 모면한다. 이제 이들은 이 거대한 도시에서 좀비들을 피해 다니는 어쩔 수 없는 모험가가 되버렸다. 그러다 고층 건물에 숨어 사는 부녀를 만나게 되고, 그 아버지의 라디오를 통해 무장한 군인들이 지키는 안전한 장소가 있음을 알게 된다. 

총 4명의 여행객은 기름을 넉넉히 채운 차를 몰고 좀비들을 헤치며 최후의 생존지를 향해 떠난다. 그들은 이 나라의 예기치 못한 운명처럼 고립되어 버린 존재들이고, 좀비가 되는 최후의 운명을 피해 마지막 행운에 의지하는 애처로운 생명이기도 하다.

좀비들을 피해 군인들에게로! 정말 군인들이 있다면 아마 목숨은 건질 것이다. 이런 천만다행인 한 자락의 품에 이들 여행객은 안기고 관객들에게도 안심을 주며 영화가 끝나길 바라는가? 대니보일의 과거 영화들을 보면, 그가 약간 삐딱한 기질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더 지켜봐야 할 것이고 이 영화가 '끝'을 알린다 하더라도, 우리는  최근에 제작된 '28주 후'라는 또 하나의 악몽이 더 비싼 돈으로 치장하고 앉아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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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좀비가 되는게 편하지 않을까? 근심 걱정 없고 꽤 평등해 보이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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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키 6 : 록키 발보아 - 초도한정 특별 아웃케이스
실베스타 스탤론 감독, 버트 영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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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룡은 젊어서 죽었지만, 실베스타 스탤론은 아직도 살아 있다. 그런데 곱게 늙지 못하고 어정쩡한 근육과 몸무게를 보유한 이 배우는 람보와 록키의 추억이 전설로만 끝장나는 걸 바라지 않았나 보다. 주름이 더 그를 덮기 전에, 마지막 섬광을 스크린에 비추고 싶었나보다.

어찌보면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다. 싱싱한 천하무적의 흑인 복서와 은퇴해서 음식점을 경영하는 록키가 대결은 한다는 것은.. 음식과 추억을 파는 사장으로선 괜찮은 노후생활이지만, 복서로서는 퇴물이 아닌가.

누구의 집착일까? 실베스타 스탤론이 이 영화를 찍는 다는 건 분명 욕심이다. 그러나 공모자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거구의 러시안제 몸체를 쓰러트리는 이 자유주의 이태리제 주먹은 커다란 환상을 제공했다. 누구한테? 과거 한때 우리 남자들한테.. 이젠 체구에서만 열세가 아니라 나이도 먹을만큼 먹었으니 그 최악의 조건은 더욱 더 성숙한 상황이다. 이런 극단의 상황에서 우리들은 주인공 록키 할아버지에서 주체의 자리를 잠시 빌려주게 된다. 그러니 하나의 인생, 로또 현상이 생성되는 것이다.

이 지루한 일상생활에 찾아 온 이 긴박한 모험을 누가 마다하겠는가..

실베스타 스탤론은 무식하고 단순한 남자는 아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조건에서 어떤 승리의 왕자를 우리에게 선사하려는 건 아니다. 기적적인 근육의 성과가 아니라 대신 감동의 차원에서 합의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드라마틱한 구성과 갈등을 위해 상상 가능한 상황을 제시하는 센스가 있다. 바로 영웅 아버지를 둔 아들의 콤플렉스.

이정도로 하나의 감동을 만들 만한 최소한의 것들을 갖추고, 록키 할어버지는 링 위에 선다.

왠지 슬프다. 나도 나이가 들었지만, 학창시절 록키 아저씨는 우리에겐 신화였다. 그가 추스리고 추스려서 다시 록키로 영화 한편을 힘들게 들고 나왔다. 그리고 검고 생생한 주먹을 맞으며 쓰러지지 않고 견뎌낸다.

그래서 모든 것들이 너그럽게 용서가 된다. 이건 영화가 아니다. 록키 정도의 과거, 그 추억은 지금쯤 한번 되새김질할 만한 자격이 있다.

그래서 록키에 흥분했던 과거가 있던 나는 이 영화를 보고야 말았다.

하나의 의무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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