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제일 많이 생각하는 남자는 사이먼이다.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닉을 좋아하면서 시도때도 없이 터졌던 복창은 그래도 사이먼을 만나 안정을 찾았고. (코넬은, 말 말자.) 조금, 아주 쪼금은 상처 받은 심성이 치료된 것 같다.


내 문장의 '가끔'을 제외하면 로맨스 판타지로 읽힌다고 친구는 썼다. 첫번째로 연애한 사람과 결혼했으며, 핵가족 4인 가족의 기혼 여성인 나는 여전히 산업화된 로맨스 판타지의 충직한 추종자로서, 친구의 진단이 맞다고 생각한다.(내가 이렇게나 쿨한 사람이다.) 친구의 단어 '변화'가 내가 선택한 '구원'보다 더 적합한 단어였겠구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구원이라는 단어를 선택할 때 나름의 고민이 있기는 했다. 더 정밀하게 하자면, 내가 의도한 바는 '답'이었던 것 같다. 남성이 이상화되고, 그가 그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 갈 때, 두 사람은 서로에게 답이 될 수 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해답이 아닌 답. soulution 아닌 answer. 이 사람이 운명의 그 사람이 아니라, 내게 온 이 사람이 나의 그 사람일 수 있다는 것. 혹은 -이라는 것.

나는 『아름다운 세상이여, 그대는 어디에』의 사이먼이 『오, 윌리엄!』, 『바닷가의 루시』의 윌리엄과 얼마나 닮아 있는지에 대해 썼다. 이른바 '아빠 모드'에 관하여. 두 사람은 정말 비슷한가.

그들이 샹젤리제를 따라 함께 걸으면, 여자들이 그를 보려고 고개를 돌렸다. 그는 키가 무척 크고 아름다웠으며 위엄이 있었고, 결코 그녀들을 돌아보지 않았다.(290쪽)

키가 무척 크고 아름다우며 위엄이 있는 남자. 여기까지는 윌리엄과 똑같다. 다른 점은 그 다음이다. 사이먼은 자신을 보려고 고개를 돌리는 여자들을 결코 돌아보지 않았지만, (젊었을 적) 윌리엄이라면 뒤를 돌아보고 아마도 그 여자에게 연락처를 전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윌리엄, 위엄을 갖춘 윌리엄의 실제는 허상이다. 담담히, 루시가 그의 실재를 밝히는 대목이 있다. 루시에 대한 책 3권(『내 이름은 루시 바턴』 제외. 아직 안 읽었음)을 통털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다. 좀 길지만 옮겨 보자.









나는 늘 그-혹은 그녀-가 뮤지엄의 불 켜진 타워에서 혼자 일하며 느꼈을 외로움에 마음이 움직였다. 그때 내가 느낀 위로란-! 밤마다 나는 뮤지엄 타워의 불 켜진 창문을 바라보았고 밤새 거기서 일하는 외로운 사람을 생각하면서 큰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서야 나는 금요일이든 토요일이든 일요일이든, 밤에 그 불빛을 보지 못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불은 늘 켜져 있었고, 여러 해가 지난 뒤에야 내가 지켜본 그 시간 동안 자정을 지나 새벽 세시가 될 때까지, 햇빛이 충분히 밝아져서 전등이 여전히 켜져 있는지 알아볼 수 없게 될때까지, 거기서 일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여러 해가 지나서야 내가 어떤 신화에 의해 지탱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시간에 그 타워에는 아무도 없었다.(『오, 윌리엄!』, 293쪽)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내가 기다린 사람은, 나를 사랑해 줄 그 '어떤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니깐, 실재하는 건,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그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여전히 그의 안녕을 비는 '나', 이 '나' 뿐이다. 허상일 수 밖에 없는 그가, 내 사랑이 되는 경우는. 내가 그를 사랑할 때. 내가 그를, 내 사랑으로, 내 사람으로 인정했을 때. 오직 그 때 뿐이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구원이 될 수 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답이 될 수 있다.

정답이 아니라 그냥 답.

solution이 아니라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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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9-16 18: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 루시 시리즈의 문장은 왜 단발머리님을 통해서 만나면 더 멋져보이는겁니까? 저도 분명 읽었는데 저런 감흥이 없었단 말이죠. 막 다시 읽어야 하는거야라면서 자괴감에 시달립니다. ㅠㅠ

솔루션이 아니라 앤서(영어 찍기 귀찮습니다)라는 단발머리님 말이 맘에 콕 와서 박힙니다. 그 답만 되어도 아름다운 관계죠. 우리 사람 관계에 욕심 많이 없잖아요. 각자의 영역을 인정하고 자가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근데 이것도 진짜 어려운지라 살기가 다들 쉽지만은 않은것 같습니다.

단발머리 2025-09-18 11:05   좋아요 1 | URL
아~~ 우리 바람돌이님의 칭찬은 얼마나 진지한지요ㅋㅋㅋㅋㅋ소심한 단발머리의 마음 속으로 100% 흡수됩니다.

네, 맞아요. 해결책이 될 수 없죠. 누가 누구의 삶에 대한 유일한 정답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좋은 시절 하나의 기억, 행복한 웃음으로 기억되기를 바랄뿐이구요. 그런데, 그런 좋은 관계는 또 자주 돌아보고 살펴야되잖아요. 찐우정이라 하더라도 말이지요.
2-30대 연애사라면 물론 알쏭달쏭 헷갈리기도 하겠지요. 사이먼은 직진하라! 아일린은 행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