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2019년 7월 27일 토요일, 나는 동네 도서관보다 조금 더 먼 곳에 위치한 근처 도서관에서, 잭 리처를 만나고 있었다. 잭 리처는 우연히 손에 넣게 된 웨스트포인트 반지의 주인을 찾고 있었는데, 반지의 주인을 찾는 과정에서 아름다운 여인과 도움을 주고 받는 사이가 된다. 두 사람은 이런 대화를 나눈다. 잭 리처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전혀 짐작하지 못 했기에, 아주 나중에서야 잭 리처의 이런 질문이 자연스럽고 의도적인 작업(?)의 일환이 아니라, 사건 해결의 주요한 실마리를 찾는 과정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매켄지 씨는 어떤 사람입니까?”
“한마디로 좋은 남편이죠. 우린 잘 맞는 커플이에요.”
“아이들은?”
“아직 없어요.”
“나도 복선을 깔지 않은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순전히 호기심에서?”
그녀가 말했다. “해보세요.”
“약간 이상한 질문이기는 합니다. 오해는 하지 말아요.”
“노력해 볼게요.”
“그렇게 예쁘면 기분이 어떻습니까?”
“맞네요, 이상한 질문.”
“미안합니다.”
“그 남자들이 당신 덩치를 보고 감히 덤비지 못했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쓸모 있군.” (325쪽)
그녀가 눈에 띄는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라는 점과 출생 상의 특징은 웨스트포인트 반지의 주인을 찾는데 중요한 요인이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숨겨진 하나의 고리를 찾기 위해 잭 리처는 그녀에게 묻는다. 그렇게 예쁘면 기분이 어떻습니까?
도서관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앉을 자리가 부족했다. 그 도서관은 일반적인 도서관과는 차이가 있는데, 먼저는 물 이외에 커피, 음료를 마실 수(도) 있고(뚜껑은 있어야 함), 노트북을 이용할 수 있는 자리가 상대적으로 많다. 잘 정리된 책장, 널직한 사이 공간, 커피 그리고 노트북 콘센트. 도서관이라기 보다는 커피숍에 가까운 분위기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기 때문에 주말에는 더욱 더 앉을 자리가 부족해서, 나는 책상 없는 자리에 앉아 잭 리처를 읽었다. 잭 리처를 읽다가 다리 운동 삼아 일어나 만화 책장에 갔다가는, 부지불식간에 이 책 캔디 캔디를 손에 든다.
열 셋, 열 넷, 열 다섯. 내가 열광한 소녀들, 빨간 머리 앤, 제인 에어 그리고 캔디. 그 세 명의 소녀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으니, 셋 모두 예쁘지 않다는 것이다.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간 머리 앤은 말할 것도 없고, 아름다운 잉그램 양을 호출하지 않아도 삐쩍마른 제인 에어는 그냥 보통의 외모다. 캔디 역시 주근깨 투성이. 웃어야 그나마 조금 더 예쁜. 정확히는 조금 더 귀여운.
예쁘지 않은 여주인공. 말 많은 앤, 황소고집의 제인에어, 실수투성이 캔디는 주인공이다. 아름답지 않은데도 남자주인공의 마음을 차지하고,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노력하며, 결국에는 스스로의 힘으로 성공하기에 이른다. 나는 예쁘지 않는 그녀들에게 매료됐다. 예쁘지 않지만 주인공인 그녀들,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더욱 당당해진 그녀들을 응원했다.
시원한 도서관에서 <캔디 캔디>를 다시 읽어보니 예전에는 보이지 않는 장면들이 보인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안소니는 어떤 일로 화가 나 캔디의 뺨을 때리고, 테리우스는 안소니를 잊지 못 하는 캔디의 뺨을 때린다. 캔디조차 이 일에 합세해서 스테아(안경 쓴 똑똑한 청년)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패티에게 칼을 들고 위협한다. 협박에, 폭력에, 이 정도면 경찰 불러야 한다.
슬픔을 잊지 못해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 하는 사람에게, 빨리 잊으라고 말한다. 죽음을 인정하라고 말한다. 산 사람은 살아야 된다고. 이제 그만 털고 일어나라고. 슬픔과 절망을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로 생각하는 사람들, 그런 문화가 캔디의 뺨을 때리게 하고, 캔디 또한 그런 문화의 전달자가 되어 패티를 다그친다. 받아들여, 그는 죽었어. 그는 죽었다고. 만화 속에서는 그런 ‘충격 요법'이 효과를 낸다. 캔디는 테리우스와의 사랑으로 안소니의 부재를 극복하고, 패티도 천천히 회복된다. 어디까지나 만화적 해결책이다. 우리네 현실도 만화처럼 칼라인 것은 확실하지만, 이처럼 분홍빛은 아니다.
아침에 『해러웨이 선언문』의 추천사를 보았다. 이제는 정희진 선생님이, 내게는 빨간 머리 앤이요, 제인 에어이며, 캔디다. 그 분은 모르시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