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위대한 서부 이주와 개척의 역사에는 백인 남성이 인디언 여성에게 저지른 강간과 인디언 남성이 백인 여성에게 저지른 강간이 늘 부산물처럼 따라다녔다. 백인 남성은 백인 여성이 강간당했다는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하면서 선동에 이용했지만, 정작 당사자인 여성은 강간에 대해 말하기를 꺼렸다. (216쪽)
납치당했다가 백인 사회로 돌아온 여성들은 ‘강간당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모계 기반 구조의 부족국가인
이로쿼이족의 문화를 분석한 글에서도 현존하는 어떤 백인 문명과도 다른 인디언 문화와의 차이가 강조된다. 물론
납치당했던 백인 여성들이 성 학대 사실을 부인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환경 속에 있었음도 고려해야한다. ‘강간
당한 사실’을 인정할 경우 남편이나 미래의 배우자로부터 거부당할 것이라는 그녀들의 두려움은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 한편으로는 ‘인디언 아내로 살았던 경험’을 강간으로 판단할지 아닐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인디언 여성의 경우 상황이 더욱 복잡하다. 인디언 여성은
누구에게도 증언을 남기지 않았고, 증언을 요청받은 적도 없었다. 인디언
여성의 고통은 기록으로 남겨지지 않았고, 현재에는 백인 여성들을 ‘모욕’하고 ‘무지막지한 일’을
행한 인디언 남성의 악행만이 기록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가부장제의 창조』에서 거다 러너는 남성들이 자기 집단의 여성들을 ‘종속’시켰던 경험을 통해 노예제를 확립했다고 말했다.(139쪽) 여성의 사유화를 통해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지배할 수 있음이 확인되었고, 이런
경험이 다른 종족의 여성, 그리고 다른 종족의 인간으로 확장되었다는 것이다.
노예제는
처음 잉태된 시기부터 남성과 여성에게 뭔가 다른 것을 의미하였다. 일단 노예가 되면 남성과 여성 모두
다른 사람의 권력에 전적으로 종속되어 자율성과 명예를 상실하였다. 남녀노예들은 보상 없는 노동을 하고, 종종 주인에게 개인적인 서비스를 해야했지만, 특히 여성들에게 노예상태는
주인 혹은 주인의 대리인을 위해 성적 성비스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 여성에게
성적 착취는 노예상태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가부장제의 창조』, 156쪽)
여성 노예에 대한 성적 착취는 ‘개인의 일탈’이나 ‘성적 즐거움’ 뿐만
아니라, ‘노예 번식’을 통한 ‘경제적 이익’이 주요한 목표 중의 하나였다. 1807년에 아프리카인 노예 거래가 금지됨에 따라 대농장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내 번식을 통해 노예를
얻는 일이 중요해졌다.(238쪽) 노예 소유자에게 정자 제공자가
누구인지는 상관이 없었는데 아버지가 누구든 ‘증식분’은 법에
의해 그의 소유가 되었기 때문이다. 백인 농장주, 낮은 계급의
백인 남자들(감독관과 농장에 출입하는 기술자), 채찍을 쥐고
집행자 노릇을 하던 일부 흑인 남자들(운전사들)이 흑인 여성
노예의 포식자였으며, 흑인 여성 노예와 노예 아기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었다.
농장주의 집요한 요구와 괴롭힘, 채찍질과 함께 이루어지는
회유와 협박에 일부 흑인 여성들이 첩이 될 수 밖에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여성 노예가 수동적인 태도로
굴복하면 노예 쪽에서 첩이 되려고 자처했다거나, 매춘을 했다거나, 성적으로
난잡한 여자여서 그랬다며 그녀의 행실을 탓했다.(251쪽) 첩과
번식용 여자라는 역할은 노예제의 마지막 10년 동안 노골적인 성매매 형태로 발전했다. 가장 예쁘고 ‘백인에 가까운’ 노예를
뉴올리언스 시장에서 대놓고 성적인 용도로 팔았다. 이때 쓰인 무신경한 용어가 ‘팬시걸’이었다.(258쪽) 포르노 문학에서 가장 있기 있는 주인-노예 관계의 도착 환상이 현실에서
이루어졌다.(260쪽) 여성 노예의 성적 권리와 신체 온전성의
침해는 전체 여성에 대한 섹슈얼리티 통제의 일부였다.
<남성,
여성 그리고 강간의 역사>를 읽는다. ‘우리의
의지에 반하여’ 일어난 일에 대해 읽는다. 끔찍하게 잔인하며, 철저히 비인간적인 역사의 현장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