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마을 정신의 핵심에는 김약연(1868~1942)이 있다. 김약연은 세 가지로 기억해야 할 인물이다. 유학자, 독립운동가, 북간도 기독교 지도자, 이 세 가지는 김약연의 삶을 요약할 수 있는 핵심어다. - P-1

첫째, 김약연은 본래 8세부터 유학儒學을 하여 통달한 유학자였다. - P-1

둘째, 김약연은 ‘간도의 모세’라 할 만큼 민족을 일제의 억압에서 탈출시키기 위해 애쓴 독립운동가였다. - P-1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그를 기려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그를 영원히 잊지 않으려고 현재 명동학교 건물 앞에는 김약연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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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에는 승리자들만 있을까. 아니다. 주변인The marginal들은 지지리도 고독한 설움을 겪어야 한다. 탱크와 흑인 병사가 수시로 지나는 기지촌에서 어린 내 친구들은 양색시 누이들, 때로는 상냥한 미군의 웃음, 반대로 참을 수 없는 야만을 보기도 했다. 사실 변두리에는 빈궁한 구석이나 욕설 섞인 폭력이 질펀하다. 많은 폭력도 변두리에서 탄생하니, 변두리는 격렬한 용광로다. - P-1

가장자리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진달래나 연꽃처럼 유명한 꽃을 기억하자는 뜻이 아니다. 라일락ㆍ루핀ㆍ작약ㆍ알리움ㆍ깽깽이풀처럼 주목받는 봄꽃에 앞서, 숫제 꽃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이름도 없는 꽃이나 쓰러져 벌레에 먹히는 통나무야말로 숲을 환상의 숲답게 만든다. 국가는 변두리의 꽃들을 기억해야 한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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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피여나다’라는 함경도 제땅말을 즐겨 썼던 시인의 어감을 살려주면 좋지 않을까. ‘피여나다’는 현재 북한의 표기법이다. 북한에서는 ‘이’ 모음을 포함한 ‘ㅐ, ㅔ, ㅟ, ㅢ, ㅣ’ 모음 다음에 ‘어’가 있으면 ‘여’로 쓴다. ‘깨어나다’를 ‘깨여나다’, ‘드디어’를 ‘드디여’, ‘띄어쓰기’를 ‘띄여쓰기’로 쓴다. 2009년 6월 중국에서 있었던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의’의 회의록에 남한과 북한이 서로의 표기법을 존중하여 "‘~어’와 ‘~여’ 둘 다 인정한다"는 구절이 나오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시인이 쓴 단어에 대해 배려해야 한다. - P-1

「별 헤는 밤」에서 ‘헤다’는 ‘세다’의 함북 제땅말이다. 지금 쓰고 있는 ‘헤아리다’와 어원이 같은 말로, 다른 지역에서는 ‘헤다’에서 ‘세다’로 변했지만, 함북에만 원래 발음이 살아 있다. ‘별 세는 밤’은 돈 세는 듯 차갑게 들리지만, ‘별 헤는 밤’은 훨씬 살갑고 둥그렇게 들린다. - P-1

김영랑의 전라도 제땅말, 박목월의 경상도 제땅말, 백석의 평안도 정주성 제땅말, 이용악의 함경도 제땅말은 살리면서, 왜 윤동주 시는 표준어로 고쳐서 낼까. - P-1

윤동주 시인이 살아 있다면, 자신이 쓴 함경도 제땅말을 모두 표준어로 고쳤을까. 시인의 뜻을 헤아리지 않고 표준어로 고친 것을 보고 실망하지 않을까. 어떻게 보면 동주의 의도를 살리지 않은 시집들은 정본定本이라 할 수 없다. 안타깝게도 현재 출판된 윤동주 시집들은 제땅말이 무시된 ‘표준어로 만든 윤동주 시집’들이다. - P-1

1894년 일본군과 관군에 패배한 동학농민군의 일파는 강원도를 지나 함경도까지 도피했다. 동학농민군이 러시아에 출병의 구실을 줄까 우려한 일본군은 그해 10월 17일 일본군 원산수비대 1개 소대를 함경도 함흥 정평 등지로 순찰하러 보낸다(『駐韓日本公使館記錄』 3, 377쪽). 일본군이 강원도에서 동학도를 샅샅이 찾아 학살하고, 함경도 문턱까지 다가오자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판단하여 간도로 이주를 단행한다. 동학운동에 가담했던 이들 중 몇은 독립운동가 이범윤(1856~1940)이 동포를 보호하려고 조직한 사포대私砲隊에 참여하기도 했다(김재홍 증언, 『북간도 지역 한인 민족운동』, 독립기념관, 2008). - P-1

명동학교는 졸업식 때 파인 김동환의 서사시 『국경의 밤』을 나누어주는 학교였다. 윤동주는 한글로만 작품을 남겼다. 중국어 점수가 높았던 윤동주지만 중국을 "패 경 옥 이런 이국소녀들"로 구별했고, 일본을 ‘육첩방은 남의 나라’라고 구별했다. 그에게 중국어 일본어 만주어는 이국어였다. 변두리에서 배운 때묻지 않은 한글과 투박한 제땅말을 버무려 그는 고소한 시를 썼다. - P-1

아버지를 일찍 여읜 맹자를 어머니가 묘지와 시장, 마지막에 서당 근처에서 키웠다는 맹모삼천지교 이야기는 『열녀전』에 나온다. 묘지 근처에서 생로병사를 본 맹자는 인仁이 무엇인지 깨닫고, 시장에서 "골라, 골라!" 상인들의 호객 소리를 들으며 욕망이 무엇인지 체득했겠다. 머리로만 공부한 사람들과 달리, 당연히 차원이 다른 말을 할 수 있었겠다. - P-1

1824년 경주의 변두리, 몰락한 양반집에서 서자로 태어난 수운 최제우는 보부상으로 전국을 십여 년 떠돌며 밑바닥의 염병과 눈물을 목도한다. 돌아와 생가 맞은편 깊은 산골 용담정에서 『동경대전』을 쓴다. 그의 호소를 기억한 농민들이 일으킨 동학농민혁명이야말로 변두리인의 ‘다시 개벽’이었다. - P-1

싯다르타, 공자, 맹자, 예수, 수운. 이들은 변두리 밑바닥을 처절히 기어가며 비애를 알고, 자신도 모르게 인간의 경계를 넘는 포월匍越을 경험한 인물들이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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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어로 토포필리아Topophilia는 장소를 뜻하는 토포스topos와 사랑과 우정을 뜻하는 필리아philia의 합성어다. 영국 시인 존 베처먼John Betjeman(1906~1984)이 이 단어를 사용했다. 소중한 기억이 저장된 특정 장소에 대한 특별한 사랑을 뜻한다. 내가 특별한 장소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표현한 적절한 말이다. 토포필리아는 ‘장소애場所愛’로도 번역한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을 사람들은 어떻게 체험하며 성찰할까. 인간은 자신이 거주하는 공간에서 숨쉬고 행동하며 잠자며 지리적 공간을 ‘정서적 공간’으로 만든다.
문학 작품은 작가가 체험하고 사랑하는 공간에서의 기억을 문장으로 표현한 결과물이다. 작가가 사랑하며 기억하는 ‘정서적 공간’을 회감回感시킨 텍스트는 얼마나 귀한가.

1966년 12월에 미셸 푸코가 했던 강연을 편집한 『유토피아적인 몸/헤테로토피아』에서 ‘헤테로토피아’라는 개념이 발표되었다. 헤테로토피아란, 다른heteros이라는 단어와 장소topos의 합성어다.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유토피아를 대신하는 ‘다른 장소’를 뜻한다. 간단히 쓰면, ‘현실에 설정된 유토피아’다.

시간chronie에 상관없이(u) 전혀 새로운 시공간에 유토피아적 공간을 만드는 것이 ‘헤테로토피아’라는 공간이다.

윤동주의 글 전체를 볼 때, 행정적 고향은 명동마을이지만 ‘진정한 고향’은 없는 듯하다.
그의 영혼이 그리워하던 고향은 함경도가 아닐까. 명동마을보다는 따스한 함경도가 남쪽 하늘 저 밑 따뜻한 내 고향이 아니었을까. 함경도는 윤동주의 본적지였다. 그의 모든 학적부, 성적표, 하다못해 마지막 판결문에도 그의 본적은 "조선 함경북도 청진부 포항정 76번지"로 나온다.

김약연은 1868년 9월 12일 함경북도 회령군 동촌 옹희면 제일리 행영에서 태어났다. 김약연이 윤동주 어머니의 오빠, 곧 윤동주에게 외삼촌이었다는 사실은 소년 윤동주에게 평생 축복이었다.

두만강 건너 땅 북간도를 지배했던 함경북도 육진六鎭 문화의 말씨가 숨어 있다. 김종서가 그 지역을 개척한 뒤 육진 주민들은 다른 지역과 교류 없이 폐쇄적으로 살면서 세종 당시에 쓰던 말소리를 한말까지 유지했다고 한다. 바로 이런 특성이 명동마을의 한글 교육과 윤동주 시에도 나타난다.

함경남도와 함경북도는 발음에 차이가 있다. 명동마을 사람들은 말끝에 ‘~슴둥’이 붙는 함경남도 제땅말이 아니라, ‘~습니다’를 말할 때 ‘~니’를 생략하는 함경북도 제땅말을 썼다. 함북 제땅말은 "밥 먹었습니까"를 "밥 먹었슴까"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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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을 여행할 때는 그런 것 같다. 동네 뒷산을 걸어도, 집안 침대에 누워 있어도 나름대로의 생각은 있는 거지만 멀리 떠나와 있으면 우리의 뇌가 조금은 더 말랑말랑해져서 주변의 사소한자극에도 마음의 문이 열리고 상상은 더 깊어지는 것 같다. 평소에는 그냥 흘려들었을 옛 노래 두 곡에 쉬이 마음을 빼앗기고 잠자리까지 이어지는 걸 보면 그렇다. - P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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