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어로 토포필리아Topophilia는 장소를 뜻하는 토포스topos와 사랑과 우정을 뜻하는 필리아philia의 합성어다. 영국 시인 존 베처먼John Betjeman(1906~1984)이 이 단어를 사용했다. 소중한 기억이 저장된 특정 장소에 대한 특별한 사랑을 뜻한다. 내가 특별한 장소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표현한 적절한 말이다. 토포필리아는 ‘장소애場所愛’로도 번역한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을 사람들은 어떻게 체험하며 성찰할까. 인간은 자신이 거주하는 공간에서 숨쉬고 행동하며 잠자며 지리적 공간을 ‘정서적 공간’으로 만든다. 문학 작품은 작가가 체험하고 사랑하는 공간에서의 기억을 문장으로 표현한 결과물이다. 작가가 사랑하며 기억하는 ‘정서적 공간’을 회감回感시킨 텍스트는 얼마나 귀한가.
1966년 12월에 미셸 푸코가 했던 강연을 편집한 『유토피아적인 몸/헤테로토피아』에서 ‘헤테로토피아’라는 개념이 발표되었다. 헤테로토피아란, 다른heteros이라는 단어와 장소topos의 합성어다.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유토피아를 대신하는 ‘다른 장소’를 뜻한다. 간단히 쓰면, ‘현실에 설정된 유토피아’다.
시간chronie에 상관없이(u) 전혀 새로운 시공간에 유토피아적 공간을 만드는 것이 ‘헤테로토피아’라는 공간이다.
윤동주의 글 전체를 볼 때, 행정적 고향은 명동마을이지만 ‘진정한 고향’은 없는 듯하다. 그의 영혼이 그리워하던 고향은 함경도가 아닐까. 명동마을보다는 따스한 함경도가 남쪽 하늘 저 밑 따뜻한 내 고향이 아니었을까. 함경도는 윤동주의 본적지였다. 그의 모든 학적부, 성적표, 하다못해 마지막 판결문에도 그의 본적은 "조선 함경북도 청진부 포항정 76번지"로 나온다.
김약연은 1868년 9월 12일 함경북도 회령군 동촌 옹희면 제일리 행영에서 태어났다. 김약연이 윤동주 어머니의 오빠, 곧 윤동주에게 외삼촌이었다는 사실은 소년 윤동주에게 평생 축복이었다.
두만강 건너 땅 북간도를 지배했던 함경북도 육진六鎭 문화의 말씨가 숨어 있다. 김종서가 그 지역을 개척한 뒤 육진 주민들은 다른 지역과 교류 없이 폐쇄적으로 살면서 세종 당시에 쓰던 말소리를 한말까지 유지했다고 한다. 바로 이런 특성이 명동마을의 한글 교육과 윤동주 시에도 나타난다.
함경남도와 함경북도는 발음에 차이가 있다. 명동마을 사람들은 말끝에 ‘~슴둥’이 붙는 함경남도 제땅말이 아니라, ‘~습니다’를 말할 때 ‘~니’를 생략하는 함경북도 제땅말을 썼다. 함북 제땅말은 "밥 먹었습니까"를 "밥 먹었슴까"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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