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지 세트 - 전10권 - 개정증보판
시내암 지음, 이문열 평역 / 민음사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칼끝의 저편에도 백성이 있었다

— 이문열 평역 『수호지』를 읽고

『수호지』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양산박의 108호걸이다. 저마다 기구한 사연을 안고 양산박으로 모여든 호걸들. 그들의 별호만 들어도 오래된 벗을 만나는 듯 반갑다.

쌍편 호연작, 표자두 임충, 옥기린 노준의, 화화상 노지심, 행자 무송, 흑선풍 이규, 구문룡 사진….

그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인물은 호연작과 임충, 그리고 노준의다. 세 사람 모두 뛰어난 무예를 지녔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내 마음을 끄는 이유가 단순히 그들의 무용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호연작과 임충은 본래 송나라의 관군 출신이다.

임충은 팔십만 금군의 교두였고, 호연작은 명장 호연찬의 후손으로 조정의 군대를 지휘하던 장수였다. 그들에게 관직은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평생 쌓아온 명예이자 자부심이었을 것이다.

그런 두 사람이 결국 양산박에 합류한다.

물론 그 과정은 다르다. 임충은 부패한 권력의 모함으로 모든 것을 잃고 쫓기듯 양산박으로 향했고, 호연작은 양산박을 토벌하러 왔다가 패전한 뒤 송강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두 사람의 선택을 모두 순수한 의협심 때문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이 기존의 신분과 소속에만 매달리지 않고, 한때 적이었던 사람들과 뜻을 함께하게 되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명예보다 의(義).

내가 그들에게서 발견하고 싶은 가치다.

노준의가 양산박에 이른 사정은 또 다르다. 그는 관군 출신은 아니었지만, 하북의 부호이자 이름난 무인이었다. 그 역시 계략과 배신에 휘말려 모든 것을 잃고 양산박에 합류한 인물이다.

그러나 『수호지』를 끝까지 읽고 나면 그토록 좋아했던 호걸들의 이야기가 마냥 통쾌하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양산박에 모인 108호걸은 부패한 관리와 부조리한 세상에 맞서 싸운다. 그들은 충의당(忠義堂)에 모여 형제의 의리를 맹세하고, 체천행도(替天行道), 곧 하늘을 대신하여 도를 행한다는 기치를 내건다.

그들의 반항에는 분명 통쾌함이 있다. 하지만 양산박의 호걸들이 언제나 정의롭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그들 역시 살인과 약탈을 저질렀고, 동료를 얻기 위해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키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들이 내세운 의는 과연 누구를 위한 의였을까.

이 질문은 송강이 조정의 초안(招安)을 받아들이면서 더욱 무거워진다.

한때 조정의 부패에 맞서 싸웠던 호걸들이 다시 송나라의 관군이 된다.

송강은 부패한 관리들에게 맞섰지만, 황제의 권위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그는 조정의 인정을 받아 기존 질서 안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체천행도를 외치던 양산박이 다시 황제의 명령을 받들게 된 것이다.

이후 그들은 요나라를 비롯한 여러 적과 싸운 끝에 방랍의 반란군을 토벌하러 간다.

그 마지막 전쟁에서 수많은 호걸이 죽는다.

벽력화 진명, 구문룡 사진, 반명삼랑 석수…. 그토록 무예가 뛰어나고 숱한 전장을 헤쳐 나온 호걸들이 방랍군의 칼과 창, 화살 앞에 하나둘 쓰러진다. 임충은 정벌을 마친 뒤 병으로 죽고, 노준의와 송강마저 끝내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다.

이 대목에 이르면 허망함마저 느껴진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양산박에 모였고, 무엇을 위해 싸웠으며, 결국 무엇을 위해 죽었는가.

송나라 조정의 입장에서 보면 송강과 그의 부하들은 반역자에서 충신으로 거듭난 사람들이다. 그러나 방랍의 입장에서 보면 어떠했을까.

방랍 역시 실제 역사에서 송나라 말기의 가혹한 수탈에 저항하여 반란을 일으킨 인물이다. 그에게도 자신을 따르는 장수들이 있었고,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과 삶의 터전이 있었을 것이다.

송강에게 충성을 다한 호연작이 의로운 장수라면, 방랍에게 충성을 다한 석보와 방걸은 단지 역적의 장수에 불과한 것일까.

송강의 군대가 승리하면 충의의 승리이고, 방랍의 군대가 승리하면 반역의 승리인가.

나는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수 없다.

충(忠)과 의(義)는 누구를 향하느냐, 누구의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송강에게 충성하는 것이 의로운 일이라면, 방랍에게 충성하는 것 역시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의로운 일일 수 있다. 송나라에 대한 충성이 절대적인 선이라면, 송나라의 압제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의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렇다고 반란을 일으켰다는 이유만으로 방랍을 의로운 지도자라고 평가할 수도 없다. 그의 군대 또한 많은 사람을 죽이고 해쳤다. 저항의 명분이 있다고 해서 그 과정의 모든 폭력까지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느 편에 섰느냐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충과 의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이어야 할까.

나는 그 대상이 **백성(百姓)**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이라는 말도 있고, 민중이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나는 백성이라는 표현이 더 좋다.

국민이라는 말에서는 국가의 구성원이라는 의미가 먼저 떠오른다. 어느 나라의 국민인가에 따라 소속이 구분된다. 민중이라는 말에서도 때로는 특정한 계층이나 집단을 떠올리게 된다.

반면 내가 생각하는 백성은 그런 경계를 두지 않는다.

나라와 민족, 신분과 소속을 떠나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다.

물론 백성은 오래도록 임금의 통치를 받는 사람들을 가리켜 온 말이다. 그러나 내게는 그 말이 칼과 깃발을 든 사람들보다, 그 칼에 집과 가족을 잃고도 삶을 이어가야 했던 사람들을 먼저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나는 이긴 편과 진 편을 가리지 않고, 전쟁의 한복판에서 살아내야 했던 사람들을 부를 때 이 말이 가장 알맞다고 느낀다.

송나라 사람도 백성이고, 요나라 사람도 백성이다. 방랍을 따르던 사람들도 백성이고, 송나라 관군에게 징집된 병사들 역시 백성이다.

그들에게도 부모와 처자식이 있고, 지켜야 할 집과 논밭이 있으며, 내일을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다.

전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에게는 개선의 북소리가 울리겠지만, 패배한 사람들의 집에서는 곡소리가 날 것이다. 그리고 그 곡소리에는 국경이 없다.

이렇게 생각하면 충과 의를 바라보는 기준도 달라진다.

황제에게 충성했다는 사실만으로 충신이 되는 것은 아니다. 형제들과 끝까지 의리를 지켰다는 이유만으로 의인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 충성이 백성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그 의리를 지키는 과정에서 누구의 삶이 희생되었는지까지 살펴야 한다.

나는 호연작과 임충을 여전히 좋아한다. 관군의 명예를 뒤로하고 양산박의 일원이 된 그들의 삶에는 분명 마음을 움직이는 무엇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다.

양산박의 형제들을 위해 휘두른 칼이 과연 누구를 향하고 있었는가. 그 칼끝의 저편에는 또 어떤 사람들이 서 있었는가.

그곳에 있는 사람들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형제이고 가족이 아니었을까.

돌이켜보면 『수호지』는 처음에는 영웅들의 용맹에 열광하게 만들지만, 마지막에는 그 영웅들이 무엇을 위해 싸웠는지 묻게 하는 작품이다.

108호걸의 이름과 별호, 그들이 펼치는 무예와 기발한 계략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흥미롭다. 그러나 이제 내 마음에 더 오래 남는 것은 승패도, 서열도, 무예의 우열도 아니다.

충은 누구를 위한 충이어야 하며, 의는 누구를 지키기 위한 의여야 하는가.

그 물음에 대한 나의 대답은 백성이다.

양산박의 호걸들이 방랍을 향해 진군하던 순간, 그들은 칼끝의 저편에도 백성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했을까.

백성은 어느 한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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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사이에 인터넷을 중심으로 화제가 된 ‘불가사의한 스티커‘의 존재를 아시는지. 예전부터 본지 독자들에게 조사 의뢰를숱하게 받아온 본 건에 대하여 이번에 편집부가 본격적으로 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편집부의 현장 조사에 따르면 적어도 도내에서 여러 차례 그 존재가 확인되었다. 붙여진 장소는 전봇대와 건물 벽면이 가장 많았다. 그밖에 거리의 우편함 바닥 면, 폐가의 창 등, 눈에 띄게 할 목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장소에도 많이 붙어 있었다.

"딴 이야기긴 한데, 내가 보낸 다른 기사, 제대로 읽었어?"
그녀가 말한 다른 기사란 늙은 모친이 이사한 아파트에서 자살을 목격하는 단편 「기다리고 있다」와 「불가사의한 스티커, 그 정체에다가서다!」, 그리고 인터넷 게시판에서 찾아냈다는 바이커의 블로그에 대한 괴담을 가리키는 것일 테다. 내가 가가와를 인터뷰한음성을 그녀에게 보낸 다음 날, 그녀는 그 글들을 내게 보내왔다.

"확실히 흥미로운 이야기였어. 당신이 보내준 여자 유령에 얽힌 몇 가지 기사와도 통하는 게 있고. 하지만 이번 특집에 이걸 집어넣는 건 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

"왜라니, 게재 전 원고 쪽이 디테일을 알기 쉬우니까 그런 거 아냐?"
"그래, 디테일. 그 기사는 체험자를 취재해서 내가 적은 거야. 윤문 지시를 내린 건 당신이고."
"뭐?"

"한마디로 산만해질 것 같아. 특집의 의도가 흔들린다고 해야 하나."
그녀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변함없이 생각이 읽히지 않는 얼굴로. 나는 계속했다.

"원래 특집 기획안은 ▶의 ‘산‘이 발단이 된 괴담이지. 그런데 이 여자 유령은 아냐. 산과는 관계없고, 굳이 말하자면 도시전설적인 색채가 강해."
"하긴 그러네."

"신사와 아파트 단지를 직선으로 연결했을 때, 가장 거리가 가까운 곳이 5동이야. 그리고 5동의 거실 창은 산을 면하고 있지. 뛰어내리는 사람이 우연히 거길 골랐던 게 아니라면 신사에 가까운 동 중에서도 가장 신사에 가까운 면, 그러니까 옥상에 올라서서 신사 방향으로 뛰어내렸다는 말이야."

"동쪽에서는 아파트에서 투신자살이 자주 발생하고, 서쪽에서는 댐으로 뛰어내리는 사람이 많지. 이게 다 우연일까."

우리는 그것들을 대략이나마 구분하기 위해 괴이를 ‘산으로 꾀는 것‘, ‘빨간 여자‘, ‘저주 스티커‘라고 명명했다.

"근방의 향토사 사료를 조사하거나 역사에 밝은 사람에게 이야기를 듣지 않고서야 신사에 관해서는 더 이상 조사하기 어려울 것같군. 게다가 이야기에 나오는 건 본전이 아니라 사당이야. 상세한 유래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고 기대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인터넷으로 조사한 바로는 그 폐신사의 이름조차 나와 있지 않아."

그녀는 역시 빨간 여자와 산은 관계가 있다고 말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행방불명이 된 소녀가 괴담이 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듯, 그녀 역시 산으로 유인당해서 귀신이 돼버린 사람의 하나일까. 그렇지 않으면....

"모친은 창을 통해 그 산을 보고 있었다...."
"그래. 그리고 거기에 있는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하지만 뭘?"

산을 중심으로 괴이 현상이 퍼지고 있다는 추측에 오류는 없어 보였지만 아무래도 그 종류가 한 가지는 아닌 것 같았다.

다만 이 빨간 여자에 대해서는 산으로 꾀는 것 이상으로 많은 수수께끼가 있다. 정체도 동기도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 점프를하는 걸까.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 걸까. 행동 원리를 전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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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사이에 인터넷을 중심으로 화제가 된 ‘불가사의한 스티커‘의 존재를 아시는지. 예전부터 본지 독자들에게 조사 의뢰를 숱하게 받아온 본 건에 대하여 이번에 편집부가 본격적으로 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그런데 감시 카메라를 설치한 그날, 주간 근무나 야간 근무나 담당자는 모니터 룸에서 새로 설치된 것까지 포함해 건물 감시 카메라를 다 확인했답니다. 이상은 없었던 모양이에요. 그런데 다음 날, 동료가 야간 근무와 교대로 출근했더니 큰 소동이 벌어져 있었다더군요.
건물 2층 창에 스티커가 덩그러니 붙어 있었다는 겁니다.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사건이었습니다. 일가족 네 명이 모두 행방불명이라니, 편집부에서도 화제였죠. 경찰도 사건성을 고려해서였는지 정보를 좀처럼 공개하지 않아서 취재에 애를 먹었습니다. 크게 화제가 된 터라 어느 신문사에서건 필사적으로 기삿거리를 찾아다녔습니다.

편집부의 현장 조사에 따르면 적어도 도내에서 여러 차례 그 존재가 확인되었다. 붙여진 장소는 전봇대와 건물 벽면이 가장 많았다. 그밖에 거리의 우편함 바닥 면, 폐가의 창 등, 눈에 띄게 할 목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장소에도 많이 붙어 있었다.

그래도 이상한 것은 아무도 스티커를 붙이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는 겁니다. 깨닫고 보면 이미 붙어 있어요.
일단 저희도 일이니까 지시가 내려진 이상 평소보다 더 꼼꼼하게 순찰했는데도요. 순찰 경로에 일부러 건물 주위를 한 바퀴 도는 것까지 추가했죠. 그런데도 매일 누군가가 스티커를 계속 붙였습니다.

"제가 아는 것 중에 유사한 부적은 없습니다. 도리이가 그려진 이상, 절이 아니라 신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일반적으로 부적은 그림으로만 구성되는 것은 거의 없고, 신앙 대상이 되는 신의 이름이나 신사의 이름, 또는 경전이 문자로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스티커는 그게 네 모서리에 쓰인 ‘‘라는 문자뿐입니다.
또 이 사람 같은 그림도 비슷한 건 본 적이 없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뿔 대사 그림에 가까워 보입니다만, 그린 사람이 달라짐으로써 뿔 대사의 디테일이 변화한 것이라기보다 애초에 다른 것을 그린 것처럼 보이네요. 초보자가 어떤 목적으로 부적 같은 걸 만들었다고 보는 게 자연스럽지 않나 생각합니다."

스티커와 흡사한 그림을 보내왔는데, 함께 적혀 있는 문장이 약간 이상했거든요. 옛날 일이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이런 내용이었어요.
"찾아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에게 널리 퍼뜨려 주시면 멋진 친구가 생깁니다. 귀여운 아입니다."

최근에 그 스티커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어쩌면...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뭐, 그 일가족이 그린 그림을 실제로는 본 적이 없어서 뭐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요.

정사각형 종이 다발이 네 개 놓여 있었다고 합니다. 한 다발이 10센티미터 정도 높이였다고 하네요. 장수로 치면 몇백 장 되지 않으려나. 그 곁에는 펜도 네 자루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많은 종이에는 모두 똑같은 그림 같은 게 그려져 있었다고 합니다. 도리이 안에 사람이 있는 듯한 그림이요.

"그 사건은 아무래도 좀 거북해. 되도록 엮이고 싶지 않아."
그때는 이거 특종 냄새가 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뭐 결국 헛수고에 그쳤지만 말입니다.

기분 나쁘죠. 모두 장난으로 서로 보내곤 했지만, 반에 영감이 있다는 애 하나가 이건 진짜 위험하다고, 바로 삭제하는 게 낫다고 해서 수신함에서 지워버렸어요.

그러다가 어떤 스티커가 거리 곳곳에 붙어 있다는 걸 깨달았답니다.
처음에는 또 있구나, 하는 정도였다는데, 그러다 보니 점점 찾아내는 게 재밌어졌다고 해요. 제법 찾기 어려운 데 붙어 있는 것도 있어서 보물찾기하는 기분이었다나요. 찾아내면 오늘은 행운, 그런 느낌으로 스티커를 찾으면서 외근을 돌았다고 해요.

그는 마음속으로 R씨에게 말을 걸면서 거울을 열어보았다고 해요그런데 거울에는 그 스티커가 붙어 있었대요. 삼면경의 모든 면에 빼곡하게.

그냥,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취미 생활도 열심히 하는구나 싶어서 적당히 흘려 넘겼네요. 지금 생각하면 그때부터 사람이 이상해졌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러고 나서 얼마 후 R씨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죠.
자살이었다고 들었어요.

게다가 스티커 틈새로 살짝 엿보이는 거울에 자기 얼굴이 비쳤을 때 처음으로 자기가 웃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어요.
그 이야기를 들려주고 얼마 후, 남편분은 이사를 가버렸어요. 야반도주하듯 가재도구도 고스란히 남기고 어딘가로 가버린 모양이에요.

휴일에 느닷없이●에 다녀올게요"라며 혼자 나갔다나 봐요. 그러고는 댐에서 뛰어내렸다는데......
장례식에도 참석했는데, 남편분이 부쩍 초췌해져서 보고 있기가 힘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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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 취재비는 거의 안 나온다는 거지? 괜찮아. 현지 취재 따위 할 생각이 없으니까. 다행히 집에는 방대한 과월호도 있고. 거기서 특집에 쓸 만한 기사를 찾아내서•우려먹으면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거야."

입이 찢어질 만큼 활짝 웃는 표정의 여자가 엄청난 높이까지 점프해서 2층 창이나 아파트 베란다 창으로 안을 들여다봅니다.
아이가 있는 집만 들여다본다는데, 우리 반 애들의 집도 들여다봤다고 합니다.
편집부 조사대 여러분, 꼭 조사해 주세요!
●●, 14세, 마짱)

"그날 무슨 키워드로 검색했는지는 뚜렷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뭐 늘 하던 대로 ㅇㅇㅇㅇ와 ‘임대‘ 같은 단어였을 거예요."

스크롤을 움직이며 10분쯤 몰두했을까, 그 매물이 또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같은 이미지가 표시된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약간 위화감이 드는 거예요."

"흑백 인쇄물이어서 농담(濃淡)으로밖에 알 수 없었지만, 그 여자의 이미지였어요. 여자가 양손을 들고 방 안에 있는 이미지가 인쇄된 거예요. 복사용지 한 장이 꽉차게 인쇄된 것이 아니라 위는 여백이었고, 거기에 투박한 손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어요."

"이미지 자체가 너무 어두워서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황폐한 다다미방 안에 빨간 코트 같은 걸 입고 긴 머리를 부스스하게 내려뜨린 여자가 꼿꼿하게 서 있는 으스스한 이미지였어요."

"그러고 얼마가 지났을까요. 그 일을 다 잊은 무렵이니까 한 달쯤 지났는지도 모르겠네요. 회사에서 상사의 부탁으로 서류를 복사할 때였어요."

"장소는 같았을 거예요. 황폐한 다다미방. 여자도 같은 사람인 것 같았고요. 그런데 이번에는 여자가 두 손을 머리 위로 들고 있었어요."

찾아내 주셔서 감사합니다.」순간 당황해 종이를 구겨서 주머니에 쑤셔 넣은 A씨는 그날 간신히 업무를 마쳤다.

현재 A씨가 사는 고쿠라의 집은 이미지 검색이 아니라 부동산 사이트에서 찾아낸 곳이라고 한다.

"여기 너희 본가 아냐?"
"본가에서 제가 어릴 때 썼던 방이었어요. 친구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집에 자주 놀러 왔던 애라 저희 집도 잘 알았고요. 제 방이라는 말을 듣고 보니 그 사진 속 배경이 제가 쓰던 책상의 실루엣과 벽에 걸려 있던 독특한 벽시계로밖에 보이지 않았어요."

으스스한 블로그 이야기를 보고 생각나서 나도 써본다. 여기 글 쓰는 게 안 익숙해서 그런데 혹시 이상한 구석이 있더라도 봐줘.
아마 5년쯤 된 이야긴데, 그 블로그 주인장은 어떻게 됐을까,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난다.

포스트를 다 읽고 아저씨 블로그의 첫 화면으로 돌아오자, 지금 막 올렸을, 아까는 없었던 포스트가 목록에 표시되었다.
제목은 ‘허사가 되고 말았습니다‘였다.

그다음이 마지막 사진이었다.
사당을 향해 절을 올리는 남자를 등 뒤에서 촬영한 사진.
포스트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완전히 내 감이지만, 포스트 마지막 사진에 찍힌 남자는 블로그 주인장인 아저씨였을 거다. 차림새도 바이커였고.
하지만 그랬다면 촬영한 건 누굴까.
아저씨가 모쪼록 무사하길.

옛날 생각나네. 나도 딱 한 번 현지로 취재를 떠난 적이 있어. 그때만 해도 아직 취재 예산이 그럭저럭 나왔거든. 그땐, 보자, 뭐였더라... 그래, 터널이었다. 거기서 심령 현상 실증 실험을 하니 마니 그랬지. 결국 밤새 잠복하며 지켜봤지만 아무 일도 없어서 대충 둥그런 뭔가가 찍힌 사진을 실어서 얼버무렸던 것 같네.

그건 그렇고 놀랐다네.
▶가 산을 중심으로 하는 거대한 심령 지대였다니 까맣게 몰랐어. 이거 피가 들끓는군.

대충 훑기만 했는데, 있더라고. ●에 대한 싣지 못한 이야기가. 기획서에 있던 말을 빌리자면 산의 동쪽, 댐과는 반대쪽 이야기가 되나.

별책 Q를 편집했던 오자와 군이라면 물론 잘 알겠지만, 유명한 공포 영화 <링>에 등장하는 저주 비디오는 그걸 본 사람이 7일 후에 죽어버리지. 의미도 알 수 없는으스스한 분위기의 저주 비디오는 사회 현상이 되기도 했고, <링>이 히트하고 나서 그것을 흉내 내 손수 만든 ‘저주 영상이 동영상 사이트를 중심으로 넘쳐난 것도 오컬트 업계에서는 상식 아니었나.

피험자에게 짧은 공포 영상을 보여준 뒤, 피험자가 감상을 제삼자에게 말로 전달할 때, 제스처에 어떤 경향이 나타나는지 보는 내용이었지.
조금 별나긴 해. 사실 A씨도 누구 못지않은 호러 애호가여서 어차피 할 거라면 자신이 좋아하는 주제로 연구하고 싶었다나.

A씨는 도내의 한 대학에서 심리학을 배우는 학생이었어. 4월부터 다닐 직장도 무사히 정해졌고 졸업 논문도 제출해서 한시름 놓은 시기였던 모양이야.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A씨의 졸업 연구에 얽힌 이야기야.

공포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자기가 공포를 느끼면서도 그 체험에서 즐거움을 찾아내기 때문에 상대도 똑같이 무서움을 즐겨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유령 등 공포의 핵심이 되는 부분을 세부까지 표현함으로써 상대에게 공포를 엔터테인먼트로 느끼게끔 한다.

그러던 가운데 두 사람, 특징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피험자가 있었다더군.
한 사람은 남성, 다른 한 사람은 여성이었어. 제스처 자체에는 이렇다 할 특징이 없었어. 다만 두 사람 모두 한창 이야기하고 있을 때 종종 무언가를 알아차린 듯한 기색으로 시선이 이야기 상대가 아닌 다른 곳을 향했다고 해.

두 사람 다 그것이 이른바 심령 현상이란 걸 바로 알아차렸어.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는 소리가 들리는 인생을 보내온 그들이기에 그것은 지금까지 맞닥뜨려 온 일 중 하나일 뿐이었어. 그렇기에 딱히 거기에 관해 언급도 하지 않고 이야기를 계속했던 거야.

남자는 A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런 건 눈치 못 챈 척하는 게 제일이에요. 이쪽이 눈치챈 걸 상대가 알아차리면 성가신 일이 벌어지니까. 함부로 재미 삼아 찔러대지 않는 게 좋아요."

반대로 공포물을 싫어하는 사람은 공포를 자신에게 닥친 쓰라린 체험으로 파악하고, 상대가 자기에게 공감하고 다가오기를 바란다. 그래서인지 때로는 감정이 앞서말이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많이 눈에 띄었다. 그리하여 필러와 같은 제스처가 많아진 게 아닐까.

두 사람의 이야기는 대체로 일치했어. 실험 중에 소리가 났다는 거야.

사실은 처음에 이야기하지 않은 게 있어. A씨가 설문을 만들 때, 여흥 삼아 넣은 항목이 있었어. 바로 ‘영감이 있다‘, ‘영감이 없다‘가 그거야.
맞아. 자네 짐작대로 50명 중에 그 두 사람만이 ‘영감이 있다‘고 체크했어.

그 동영상, 사실은 좀 유명한 거였어. 뭐, 유명하다고 해도 인터넷 게시판 타래에서 화제가 되는 수준이지만 말이야.

하지만 A씨는 너무 깊이 파고들었던 게 아닌가 싶어.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나 졸업 연구도 막바지에 접어들었고, A씨는 늦게까지 대학에서 논문을 쓰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지.

커플끼리 사랑싸움이라도 해서 베란다로 내쫓겼나 생각한 주민은 딱히 신경 안 쓰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새벽 3시경, 화장실 가려고 일어났을 때 또 무심코 쳐다봤더니 여자가 아직도 거기에 있었다는 거야.

소동이 있고 며칠 뒤에 또, 이번에는 아파트 관리 회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대. 담당자가 말하기를 A씨가 사는 5층 방 바로 아래층에 사는 주민이 불평했다는 거야.
요 며칠 매일 심야에 쿵, 쿵 하고 천장에서 소리가 난다는 항의를 받았으니 조용히 해달라고 담당자는 A씨에게 요청했어. 경찰 소동도 있어서인지 여차하면 내쫓을기세로 주의를 준 모양이야.

그러던 어느 날, A씨의 휴대전화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어. 경찰한테서였지.
지난밤 이웃 주민의 신고를 받았다는 거야. A씨 방 베란다에 여자가 있다고.
신고한 주민은 아파트 맞은편의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이었는데, 거실에서 창으로 A씨 아파트 베란다가 보이나 봐.


점프에 맞춰 목이 크게 기울었다지. 목을 가누지 못하는 아기처럼 착지했을 때 진동에 맞추어 목이 전후좌우로 휘청휘청 흔들렸다.

여자 얼굴이 주는 충격이 큰데, 영상에 나오는 게 정말 몇 초밖에 안 돼서 잘 뜯어봐야 알겠지만, 아마 그 여자, 카메라를 향해 점프하고 있었을 거야. 그러니까 아래에서 위쪽을 올려다보며 뛰고 있는 여자를 바로 위에서 촬영한 거 같아. 얼굴보다 조금 위쪽으로 두 손이 비치는 걸 보면 카메라로 손을 뻗는 것 같기도 하고.

맞아. A씨 이야기에 나온 여자도 똑같은 짓을 했지. 동일 인물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어. A씨도 그 여자를 직접 보지는 못했으니까.

이미 두 사람이 뛰어내렸다고 했다.
A씨는 그 대답을 듣고 확신했다.
어머니는 누군가가 뛰어내리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사람이 적었어요, 휑하니 아파트 자체는 넓은 부지에 몇 동이나 지어진 상당히 큰 단지였지만, 20퍼센트 정도밖에 차지 않은 거 같더군요. 커튼이 없는 세대가 더많았습니다."
A씨는 황량한 분위기가 마뜩잖았지만, 어머니는 반대로 차분하게 느껴져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어째선지 다른 동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고, 5동에서만 뛰어내리는 일이 잦아서 아파트 주민도 5동에는 접근하려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그런 곳에 살고 있었다.

"어쩐지 좀 어둡구나 싶었습니다."
A씨의 아버지는 일흔을 눈앞에 둔 어느 날 동갑내기 아내를 남기고 병사했다.

어머니가 부동산을 통해 얻었다는 ㅇㅇ에 있는 아파트는 산을 깎아 만들어 약간 높은 지대에 있었는데, 인터넷으로 찾아본 바로는 조망이 좋아 느긋하게 여생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으로 보였다.

"본가는 단독주택이었는데, 거기서 홀로 지내시기는 아무래도.... 당신도 적적하실 테고...."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파트로 이사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눈 아래 보이는 콘크리트. 사지가 이상한 방향으로 뒤틀린 사람이 피 웅덩이 안에서 잘게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충격적인 상황에 놀라서 어머니 쪽을 본 A씨는 공포에 휩싸이고 말았다.
창 밑의 참상을 바라보면서 어머니가 생글생글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야 섭섭하지만 그게 나으실 거예요. 그런 데 계속 살다가는 마음도 좋지 않으실 거고...."
5동에서 사람이 자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처음은커녕 해마다 몇 사람씩이나 뛰어내렸다. 일부에서는 자살 명소로 유명했다.

현재는 소유주가 직접 살기보다 임대로 내놓은 집이 많고, 주민으로는 고령의 부부나 어머니 같은 1인 가구가 많았는데, 집세도 내부 구조를 생각하면 상당히 싼 편이었다.

취직을 계기로 A씨는 직장이 있는 나가노에서 혼자 살기 시작했다. 20년쯤 지났을 무렵, 본가의 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운 나쁘게 발견도 늦어 병원 치료의보람도 없이 그날 세상을 떠났다.
혼자 남겨진 어머니를 배려해 같이 살자는 제안도 해봤지만, 어머니는 외아들을 고생시키고 싶지 않다며 거절했다. 마흔이 지나서도 독신인 A씨의 혼기가 자신 탓에더 늦어질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했을 것이다.

본가인 단독주택은 혼자서 관리가 힘든데다 여기저기 남은 아버지의 추억에 마음이 얽매이기 십상이다, 차라리 장소를 바꾸어 거기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 아파트라면 무슨 일이 있을 때도 이웃과 서로 도울 수 있다. 그렇게 말하는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부동산의 안내를 받아 어머니와 함께 아파트를 실제로 보러 갔을 때, A씨가 느낀 첫인상은 ‘어둡다‘였다.

몇동이나 서 있었지만, 바깥으로 나와 돌아다니는 사람은 전혀 없었고, 단지 안 공원에도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건물을 살펴봐도 커튼을 친 창이 거의 없었고, 입주민도 30퍼센트가 채 못 되었다. 화단이나 공용 공간도 손질돼 있지 않았고, 전체적으로 황량한 분위기여서 더욱 어두워 보였다.

타래에 따르면 스티커는 홋카이도부터 오키나와에 이르기까지 전국에서 목격됐으며 특히 많이 분포된 곳이 서일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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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 사는 아이는 이상해진다고 한다.
아파트는 6년 전, 한창 뉴타운 붐이 일 때 ●●●의 산 한쪽을 깎아 조성한 토지에 건설되었다.

참관일에 학교에 간 엄마들은 교사에게 요즘 학교에서 나쁜 장난이 유행하고 있지는 않은지 물었다. 교사는 딱히 이렇다 할 건 없다고 이야기하고서 잠깐 생각하더니사실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끼리만 하는 비밀스러운 놀이가 있는 것 같다고 입을 열었다.

그 놀이는 동네 토박이 아이는 참가해서는 안 된다고 해서, 소외된 토박이 아이들이 교사에게 울면서 상담하는 바람에 교사들 사이에서도 한 번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누가 시작했는지는 모른다. 다만 아파트에 사는 아이라면 모두 하고 있다. ‘맛시로상‘ 놀이에는 어른도, 동네 토박이 아이도 참가해서는 안 된다. 아파트 아이들끼리의비밀이기 때문이다.
‘맛시로상‘ 놀이는 술래잡기와 약간 비슷하다. 인원은 보통 네 명에서 여섯 명 정도로 시작하는데, 딱히 정해진 것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친하게 지내는 엄마들과 노닥거리다가 A씨는 딸의 행동에 대해 가볍게 푸념을 털어놓았다. 그랬더니 또래 아이가 있는 엄마들이 입을 모아 같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비를 붙잡아서는 날개를 쥐어뜯고 모래에 묻는다, 위층에서 화분을 떨어뜨린다. 갓난애가 탄 유아차가 지나가면 걷어찬다.... 이사 오기 전에는 하지 않았던 악질적인 장난이 늘었다고 했다.

늦은 밤에 혼자 외출한 이유를 따져 물으니 아이는 "대역을 건네주러 갔다 왔다"라고 했다. 누구를 만난 거냐고 물어도 "맛시로상"이라는 대답뿐이었다. 무엇을 건네러 갔느냐고 계속해서 묻자 딱 한 마디, "미케" 하고 기르는 고양이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거실에는 핏물이 야트막이 고여 있었고, 그 옆으로 나뒹구는 꽃병에는 피에 젖은 털이 달라붙어 있었다.
A씨 가족은 조만간 이사하기로 했다.

무심코 마주 오는 차를 보았는데, 운전하던 남자가 저희 쪽을 보고 무슨 말인가 하는 것 같았습니다. 소리는 당연히 들리지가 않아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운전하던 남자 친구가 아니라 저를 보는 듯해 신경이 쓰였습니다.

골목에서 얼굴만 내밀고 저희 쪽을 향해 뭐라고 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남자였습니다.

남자는 도리이 밑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웃는 얼굴 그대로,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서.
무서운 것은 꿈속에서 제가 무섭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꿈에서 깨어난 뒤에도 기분이 그저 편안합니다.
저는 저주를 받아버린 걸까요.
그 남자는 도대체 누구일까요.
살려주세요.

그후 남자를 실제로 보는 일은 없었습니다.
대신 남자는 꿈에 나왔습니다.
꿈속에서 저는 밤에 산길을 오릅니다. 키 큰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달빛도 거의 닿지 않습니다.

서둘러 지나가려고 발을 내딛는 순간, 닫혀 있던 문이 천천히 열리고 남자의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습니다. 저를 쳐다보던 남자의 얼굴이 히죽 웃음을 띠었습니다.
"또 오세요."
제가 그 앞을 달려 지나갈 때, 남자가 그렇게 말했던 것 같습니다.
비명을 지르느라 제대로 듣지도 못했지만요.

옆집 사람이 외출하나 싶어서 인사하려는데 남자 얼굴이 불쑥 튀어나와 제 쪽을 돌아보더군요.
또 그 남자였습니다.

"그래서... 맡아줄 거야?"
내 말에 그녀는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좋아. 오자와 군 부탁이고 하니. 옛날에 여러모로 폐도 끼쳤으니 갚아야지."

"그만해 좀. 메일에도 썼잖아. 업무 상담이라고."
"희한하네. 전임 애가 인계받은 지도 꽤 오래됐는데. 지난번 『별책 Q를 내고 나서 한 2년은 그쪽 일은 받은 적 없습니다만?"

"그렇군. 다행이야."
"당신이나 나나 나이를 먹었네."
문득 눈을 가늘게 뜨는 그녀. 조금 쓸쓸해 보이기도 하는 그 눈꼬리에는 주름이 보였다.
"주문은, 아이스커피면 될까?"
"아무거나 좋아."

"당신도 변했네. 나도 변했고,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낭만을 느끼기에는 나이가 너무 들어버렸어. 언제까지 그러고 살 거야. 바보 같잖아."

「실화! 나라현 행방불명 소녀에 관한 새로운 사실?」, 「수련회 집단 히스테리 사건의 진상」, 「이상한 댓글」이라는 제목이 붙은 그 기사들은 연대도 제각각이었다. 나는잠자코 그 기사들을 훑었다. 그녀는 가만히 턱을 괸 채 나를 바라보았다.
"바로 얼마 전에 기사를 관리하는 하드디스크랑 과월호를 정리했거든. 슬슬 그만둘 때다 싶어서."

심령 스폿이 있는데, 잡지 같은 미디어에서 다룰 만큼 지명도가 높은 곳은 사실 한정적이다.

"널리고 널린게 심령 스폿인데, 모든 이야기가 ‘산‘으로 수렴되는 거야. 이거, 이상하지 않아?"
"이 세 가지 이야기에는 ‘산‘이라는 키워드가 나와. 공통점은 그것만이 아냐. 그거 말고도 ‘감‘이라는 키워드. 거기에 ‘신부‘까지. 「이상한 댓글」에 나오는 ‘시집와‘라는예스러운 말도 신부랑 이어지고."

그렇기에 차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긴키 지방의 산으로 둘러싸인 일대에 있는●●●●는 그 방면에서는 제법 유명한 장소였다. 터널, 댐, 폐허가 흩어져 있는 심령 스폿으로서
유명한 곳으로는 다마 공원묘지, 이코마 터널 등이 있다. 물론 홋카이도나 오키나와에도 유명한 데가 있지만, 출판사 입장에서는 여비를 포함해 취재에 돈이 많이 드는 장소는 피하고 싶은 것이 현실이므로 필연적으로 오사카나 도쿄, 후쿠오카 등 주요 도시에 살면서 편집부와 연줄이 있는 외부 작가가 멀리 나가지 않고도 쓸 수 있는 장소를 다루게 된다.

그녀는 눈앞의 노트북에 무언가를 입력한 뒤 화면을 내 쪽으로 돌려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거리 뷰가 비쳤다. 댐 옆을 달리는 국도 곁에 작게 보이는 칙칙한 붉은색.
기울어진 도리이가 호젓하게 서 있었다. 어슴푸레한 녹색을 배경으로,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몇 가지 인터넷 기사와 게시판 글을 프린트한 종이뭉치를 가방에서 꺼냈다. ●●●●●‘와 ‘산‘, ‘괴담‘, ‘무섭다‘, ‘심령‘ 등의 낱말을 조합하여검색했을 때 나왔다는 그것을 읽고 내 입에서 절로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하나도 빠짐없이 산과의 관련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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