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튼 여러분은 어제 거기서 약에 취해 모두 함께 그 여자와 성관계를 맺었다는 거로군요."

다 그 재수 없는 년 때문이라는 심정이 흠씬 묻어나는 말투로 가자마는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았다. 어제는 어떻게든 레나의 환심을사려고 개처럼 꼬리를 흔들던 주제에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어이가 없었다.

이것은 행운으로 간주해도 되리라. 두 사람의 이야기에 따르면 레나가 어제 이 저택에 온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우리 다섯명밖에 없다는 뜻이니까.

이렇게 사건 그 자체에 관한 일련의 검토를 마친 시점에서 나의 의지는 확고해졌다. 즉, 쓰바키모토 레나의 죽음을 우리 다섯 사람만의 비밀로 삼아 어둠 속에 묻어버리려는 의지 말이다.

"그렇군요"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장서실에서 본 시체의 얼굴을 떠올리고 그때까지 한순간도 품지 않았던 연민을 느꼈다. 레나는 레나대로 나름의 고뇌와 좌절을 경험하며 스물 몇 해의 인생을 살아왔을 테니까. 하지만 그녀의 개인적 사정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더 이상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 후에 나는 장서실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의 은폐공작을 돕게 되었다. 레나의 본명을 숨긴 것은 만에 하나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이 수기를 읽을 경우(그런 일은 없겠지만)에 대비한 일종의 예방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레나의 본적과 생년월일 및 키. 본적은 니가타. 생년월일의 정확한 숫자는 잊어버렸다. 다만 레나의 나이가 만 25세로 밝혀진것은 기억난다. 키는 분명 156센티미터였다.

"아아, 그야...... 아빠는 내가 하는 말이라면 뭐든지 들어주려 하시니까. 내가 이 집이 마음에 든다고 하면..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문제는 없을 것 같군요."

"포의 「검은 고양이」를 바탕에 둔 그 엉터리 이야기를 이끌어냈다. 그 이야기가 이번에는 흑묘관의 ‘현실‘에 영향을 미치려 하고 있다....... 기묘하다면 기묘하고, 아이러니하다면 몹시도 아이러니한 순환이었다.

"아아, 그야...... 아빠는 내가 하는 말이라면 뭐든지 들어주려 하시니까. 내가 이 집이 마음에 든다고 하면.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문제는 없을 것 같군요."

"저를 못 믿으시겠습니까?"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여기까지 온 이상 저는 엄연한 공범입니다."
나는 히카와의 눈을 빤히 쳐다보면서 말했다.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여러분을 배신하지 않겠습니다. 원래 여기에 뼈를 묻을 작정이었으니 젊은 여러분을 위해 묘를 지켜드리지요."

"보십시오."
그렇게 말하고 문을 열자 안쪽에는 우중충한 회색 벽이 버티고 서 있었다. 이쪽을 가만히 쳐다보는 히카와, 그리고 그 뒤에 서 있는 세 젊은이에게 나는 설명했다.
"처음부터 이랬습니다. 6년 전, 제가 이 집에 고용되었을 때부터요. 왜 이런 문이 있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는 오른팔을 들어 집게손가락을 폈다. 손가락은 엉거주춤 일어선 가자마의 어깨 부근을 똑바로 가리키고 있었다. 그제야 나도 이변을 알아차렸다. 그 부근의 벽에 벽돌 한 개분의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다.

우리가 거기서 본 것은 더러운 하늘색 블라우스를 입고 빨간 베레모를 쓴 인간의 백골사체였다. 벽에 기대어 파란 멜빵바지를 입은두 다리를 바닥에 내팽개친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리고 발치에는 조그만 네발짐승의 백골이 하나 더 드러누워 있었다.

히카와의 추측대로 거기는 ‘방‘이 아니라 ‘복도‘였다. 폭이 1미터도 되지 않는 좁은 통로가 암흑 속으로 뻗어 있었다. 곰팡내 같기도하고 쉰내 같기도 한, 뭐라고도 형용하기 힘든 냄새가 감돌고 있었다. 지하수가 스며 나오는지 발아래가 조금 젖어 있었다. 히카와가 든 손전등 빛에 의지해 우리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죽였다...... 아모 박사가?"
"그렇겠죠. 그렇게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그 그림 속의 여자아이는 박사의 딸인지도 모른다고 했던가요. 우리로서는 그가왜 자기 딸을 죽였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만."

"장서실에 걸려 있던 그 그림이에요. 거기 그려져 있던 여자아이, 하늘색 블라우스를 입고 빨간 베레모를 쓰고 있었잖아요."
"아아, 그러고 보니 분명."

"어제 기노우치가 죽은 그 여자를 상대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옛날에 이 집에서 무시무시한 사건이 벌어졌다. 정신이 나간 아모 박사가 아내를 죽여, 아내가 귀여워하던 검은 고양이와 함께 지하실 벽에 넣어버렸다. 그래서 이 저택은 흑묘관이라고 불린다.
그런 이야기죠. 물론 그 녀석이 농담 삼아 꾸며낸 이야기입니다. 아마 어렸을 때 포의 「검은 고양이라도 읽었겠죠. 그러니 아까 이시체를 보고 제일 놀란 건 그 녀석이 아닐까 하는데요.

몽땅 달라붙어 무너뜨린 벽을 다시 쌓아올리기 시작했다. 부서진 낡은 벽돌을 치우고 새 벽돌을 쌓은 후 위에다 모르타르를 바르는작업이다. 젊은이들이 그런 미장이 일을 해본 경험이 있을 리 없으니 내가 세세하게 작업을 지시해야 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알겠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어젯밤 사건의 범인이 꼭 여러분 네 명 가운데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거죠?"
"예, 그렇습니다."
히카와의 눈에서 절실함이 묻어났다. 나는 그런 그를 은근히 동정하며 장서실의 쌍바라지 문으로 향했다.

"그럼 역시 어젯밤에 이 방은 완전한 밀실 상태가 아니었군요."
"유감스럽게도 그렇지는 않습니다."
나는 동정 어린 눈으로 청년의 진지한 얼굴을 쳐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저는 이 비밀 구멍의 존재를 알았지만 일부러 말하지 않았습니다. 말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모르시겠습니까? 뭣하면 지하실에 내려가서 조사하셔도 상관없습니다만. 이 ‘문‘은 장서실에서만 열 수 있습니다. 아래에서는 열리지 않아요."
"그런."
히카와는 안경에 손을 대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눈으로 바닥에서 입을 벌린 검은 구멍을 내려다보았다.
"그렇다면......."
"상황에는 변화가 없다는 말입니다.

"걱정 마세요. 아유타 씨께는 더 이상 누를 끼치지 않겠습니다. 저는 앞으로 죽을 때까지 어떤 일이 있어도 이성을 잃지 않을 겁니다. 믿어주세요."

"그 여자, 레이코를 닮았잖아."
"레이코를? ......아아, 뭐 그렇지."
"그러니까 어젯밤 네 눈에는 그 여자가 레이코로 보인 게 아닌가 싶어서."

"술 취하면 늘 떠들어댔잖아. 레이코, 망할것. 뒈져버리라고 했던가? 넌 그 욕구를 환각 속에서 실행에 옮겼어."
"내, 내가 죽였다는 거야?"
"그렇게 단정 짓는 건 아니야. 동기의 문제를 검토하는 것뿐이지."

하네다에서 지토세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시시야와 가와미나미는 대화를 나누었다. 가와미나미가 바쁜 탓에 두 사람은 사흘 만에야 만났다.
"난 사이타마의 가자마 씨에 대해서야. 확실히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냈어."

"말 그대로 히카와의 어머니는 전화를 못 받아. 전화라는 기계 그 자체를 못 쓰는 거야. 청각 장애와 언어 장애가 있어서."

"가자마 유키는 작년 말에 사고로 죽었어."
"뭐라고요?"
"유키뿐만이 아니야.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하나 있던 유키의 여동생까지 포함해 가족 모두가 한꺼번에 세상을 떠났지. 교통사고였다는군. 네 명이 타고 있던 차가 덤프트럭과 정면충돌했대."

"아유타 씨의 신원을 조사하던 경찰도 아마 여기서 좌절했을 거야."
시시야는 뾰족한 턱의 끄트머리를 긁적였다. 가와미나미는 의욕을 내어 물었다.
"그럼 가자마 씨의 소유물이었던 별장은 어떻게 됐나요?"
"개인자산이었던 모양이니까 평범하게 생각하면 상속권을 지닌 친척의 손에 넘어갔겠지."

그 수기 속에서 히카와는 가자마의 아버지를 ‘숙부‘라고 불렀다. 즉, 가자마의 아버지가 히카와의 부모 중 한쪽의 동생이거나, 가자마의 어머니가 히카와의 부모 중 한쪽의 동생이다* 가령 앞쪽일 경우, 히카와와 가자마의 성이 다르니 분명 히카와의 어머니가 가자마 씨의 누나에 해당한다는 이야기다.

가자마 유키는 사고사. 히카와 하야토는 주소불명. 나머지 두 사람, 기노우치 신과 아사오에 대해 조사할 방법은 거의 없다. 역시문제의 저택을 직접 찾아가 보는 것이 제일 빠른 길일 듯하다.

"나는 거울 세계에 사는 사람이다."
창문에 시선을 고정한 채 시시야는 불쑥 그렇게 말했다.

"팬이란 게 이렇게 고마운 존재일 줄이야."
가와미나미가 반쯤 놀리듯이 말하자 시시야는 아무 말도 없이 눈썹을 찌푸리더니 머리 뒤에 깍지를 끼고 시트에 몸을 깊이 묻었다.
"이상, 보고 끝."

"응. 나도 이상해서 물어봤는데 히카와는 아무래도 그쪽으로 가자마자 사는 곳을 옮긴 모양이야. 그런데 이사한 곳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이쪽에 알리지 않았대. 그래서 연말에 사고가 일어났을 때도 이쪽에서 연락할 방도가 없었다는군."

"그렇게 사악한 생물은 또 없어. 이 나라의 정치인 놈들처럼 불결하고 교만하고 탐욕스러울뿐더러, 한낮에 카페에 모이는 아줌마들처럼 창피를 모르고 제멋대로에...... 아아, 생각만 해도 속이 거북해. 게다가 말이야, 코난 군."

"장마가 없어서?"
가와미나미 역시 그 점은 부러웠다. 하지만 규슈에서 나고 자란 그는 이곳의 겨울 추위를 견디지 못할 것이 뻔하니 이곳에 살고싶은 생각은 없었다. 시시야는 "흥" 하고 콧김을 내뿜었다.

"그래. 아모 박사는 도지슨이었다. 요점은 그거야."

자그마한 백발 노부인이었다. 가냘픈 몸에 비해 매우 큰 흰옷을 입은 그녀는 갈색 가죽을 댄 팔걸이의자에 가볍게 올라앉아 있었다. 두 사람을 보고 방긋 웃는 모습에서는 대학교 선생님이라기보다 시정의 마음씨 좋은 여의사 같은 분위기가 풍겼다.

여사는 찻잔을 손에 든 채 내객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방긋방긋 미소 짓는 표정은 변함없지만, 시선만은 흠칫 놀랄 만큼 날카로웠다.

"예, 예. 분명 오스트레일리아의 타스마니아 대학에 이삼 년 계셨어요. 저보다 몇 살 어리신데...... 갓 서른이 되셨을 뿐인데 조교수로."
"우수한 분이었군요."
"우수하달까 천재 기질이 있는 분이었죠. 하지만 오히려 그게 걸림돌로 작용해서 학계에서는 고립되신 듯해요."

"예. 내일 구시로로 가서 아유타 씨와 합류할 예정입니다. 문제의 집은 모레에나 찾겠군요. 저기, 선생님. 아모 박사님의 별장에 관해 모르십니까? 흑묘관이라고 불렸다는데요."

"과음하신 탓에 일이 터졌죠. 술기운이 올라 선생님보다 지위가 높은 교수에게 덤벼들어 때렸다던가. 그것도 한낮에 대학 안에서일어난 일이었어요. 원래 학교 안에서도 별종 취급을 받던 분이라 아무도 감싸주는 사람이 없어서 결국......."

"예. 저도 구시로 출신이에요. 유학 가셨던 곳의 이야기 같은 걸 자주 들었어요. 차로 집까지 저를 바래다주기도 하셨고, 술을 좋아해서 술 마시러 갈 때 끼워주기도 하셨죠. 저 두 사람 수상하지 않냐고 수군대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이야기하면서 노부인은 그리운 듯이 눈을 감았다.

이번에 여사는 아까보다 훨씬 오래 머뭇거렸다. 아무래도 여사에게 아모 박사의 추억은 현재에 가까워질수록 꺼내기 힘든 이야기가 늘어나는 듯하다.

"선생님은 자신의 신체적인 특징을 말씀하신 거예요. 전내장 역위증이라고 아시죠? 심장뿐만 아니라 내장 전체가 좌우 반대인 거죠. 아모 선생님은 선천적으로 그렇게 태어나셨대요."
전내장 역위증.

이것은 핵심적인 문제였다. 아유타 도마의 수기에 나온 지하실의 백골시체는 도대체 누구인가. 지금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그 백골시체는 행방불명된 리사코의 것일 가능성이 커지는데.......

그랬구나 하고 가와미나미는 마음속으로 손뼉을 쳤다. 내장 전체가 보통 사람과는 좌우가 뒤바뀐 위치에 있다. 그런 신체적인 기형을 그는 ‘거울 세계에 사는 사람‘이라는 비유를 사용해 공언(고백이라고 해도 될까)한 것이다.

"너무 단락적일지도 모르지만, 난 한 가지 결론을 내렸어. 다치바나 교수가 어쩐지 미묘한 말투로 그랬잖아. 박사는 여자에 흥미가없었을 거라고. 거기에다 아모 박사는 도지슨이라는 나카무라 세이지의 말을 덧붙여 생각해봐. 어때? 뭔가 감이 오지 않아?"

"그건 그렇고 그런 자신의 신체적 특징을 ‘거울 세계에 사는 사람‘이라는 말로 표현하다니, 아모 박사에게는 역시 학자보다 문학가나 화가의 자질이 있었다고 봐야겠군. 언젠가 꼭 그의 논문을 찾아서 읽어야겠어."

이럴 때는 무심코 4년 전의 ‘십각관‘ 사건이 떠오른다. 시시야와 둘이서 탐정 흉내를 내며 여기저기 돌아다닐 때마다 헛수고를 했다는 느낌과 자기혐오에 시달리던 기억....... 그때와 지금은 사정이 완전히 다르지만, 이런 꼴이 되고 보니 역시 자신은 ‘명탐정‘감이 아님을 통감한다. 아니, 이래서야 왓슨 역할조차 실격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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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나선 ㅣ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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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투명한 나선』 등장인물의 서사적 기능과 역할

※ 『투명한 나선』 본편의 결말과 범인을 포함한 전면 스포일러
※ 본문에서 이름이 확인되는 인물 23명과 이름은 없지만 사건 전개에 필요한 인물을 모두 포함함


1. 사건과 주제를 이끄는 핵심 인물

가. 유카와 마나부

ㅇ 신분, 관계 : 데이토대학 물리학 교수. 구사나기 슌페이의 대학 동창이자 오랜 친구. 유카와 신이치로 부부의 양자이며 마쓰나가 나에의 친아들

ㅇ 사건상 역할, 서사적 기능 : 소노카의 방에서 발견된 그림책 『외톨이 모노포』의 참고문헌에 자신의 저서가 실리면서 사건과 연결됨. 유카와는 중학생 때 이미 마쓰나가 나에가 자신의 생모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이번 사건을 통해 그림책 작가 아사히 나나가 바로 나에라는 사실을 확인함. 이후 경찰과는 별도로 나에의 삶과 사건의 진상을 추적함. 살인사건의 해결자이면서 자신의 가족사가 수사대상과 맞닿아 있는 당사자로서, 료타 살해사건과 유카와의 과거를 연결하는 인물

ㅇ 주요 행동 : 경찰의 수색 직전 나에와 소노카에게 정보를 알려 피신하게 함. 이는 범인을 숨기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 나에의 사정을 직접 확인하고 네기시 히데미가 스스로 자수하도록 만들기 위한 시간을 확보하려는 선택이었음. ‘VOWM’과 ‘望夢’의 관계, 낡은 인형의 내력, 히데미의 범행 동기를 밝혀냄

ㅇ 인물 조형 평가 : 한 작품 안에서는 나에의 그림책과 유카와의 행동을 통해 두 사람의 관계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음. 그러나 갈릴레오 시리즈 전체에서는 유카와가 양자라는 설정을 준비해 온 단서가 거의 없어, 오랫동안 감춰 둔 인물의 과거라기보다 열 번째 작품에서 새로 덧붙인 설정처럼 보인다는 한계가 있음


나. 시마우치 소노카

ㅇ 신분, 관계 : 우에노의 꽃집에서 근무하는 스물세 살 여성. 지즈코의 딸이며 우에쓰지 료타의 동거인

ㅇ 사건상 역할, 서사적 기능 : 료타의 실종 신고를 한 뒤 자신도 사라짐으로써 료타 살해사건과 소노카 실종사건이라는 두 갈래의 수사를 만듦. 료타가 살해된 시각에는 오카타니 마키와 교토에 있어 확실한 알리바이를 지님. 수사 초기에는 실종과 살인에 관련된 인물로 의심받지만, 실제로는 료타의 폭력과 재산사기에 이용당한 피해자. 히데미가 혈연관계를 잘못 믿게 되는 대상이자, 나에와 히데미의 보호행동이 교차하는 중심인물

ㅇ 피해와 갈등 : 료타에게 지속적인 폭력을 당하고, 히데미를 친할머니로 속여 재산을 노리려는 료타의 계획에도 강제로 끌려 들어감. 료타와 헤어진 뒤에는 히데미에게 혈연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밝히려 했으나, 히데미가 자신을 위해 료타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고 절망함

ㅇ 인물 조형 평가 : 료타 살해 당시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고 경찰의 직접적인 의심도 강하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잠적함. 히데미가 자신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는 충격과 죄책감은 행동의 이유가 될 수 있지만, 잠적까지 이르는 내면의 과정이 충분히 제시되지 않아 수사의 혼선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처럼 보이는 면이 있음


다. 마쓰나가 나에, 필명 아사히 나나

ㅇ 신분, 관계 : 과학적 소재를 주로 다루는 그림책 작가. 지즈코와 소노카가 ‘나에 씨’라고 부르며 의지해 온 인물. 유카와 마나부의 생모

ㅇ 사건상 역할, 서사적 기능 : 료타의 죽음으로 혼란에 빠진 소노카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다”고 하자 자세한 사정을 캐묻지 않고 유자와의 리조트 맨션에 머물게 함. 살인이나 시신 유기에는 관여하지 않았으며, 소노카를 보호하고 경찰의 추적을 피하도록 도와줌. 지즈코와 소노카의 과거, 소노카의 실종, 유카와의 가족사를 하나의 수사선으로 연결하는 매개자

ㅇ 유카와와의 관계 : 젊은 시절 유카와를 낳았으나 부모의 요구에 따라 유카와 부부에게 입양시킴. 유카와가 중학생일 때 한 차례 되찾으려 했지만 자신의 행동이 아들을 상처 입힌다는 사실을 깨닫고 물러남. 이후 아사히 나나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며 유카와의 저서를 참고한 그림책을 펴냄

ㅇ 인물 조형 평가 : 지즈코와 오랫동안 교류했고 소노카를 각별히 아꼈다는 점은 보호행동의 근거가 됨. 그러나 사건의 전모를 모르는 상태에서 소노카를 은신시키고 경찰의 수색을 피하도록 돕는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판단 과정은 충분히 제시되지 않음. 소노카의 실종과 유카와의 가족사를 연결하기 위해 행동이 빠르게 배치된 인상이 있음


라. 네기시 히데미

ㅇ 신분, 관계 : 긴자의 클럽 ‘VOWM’을 운영하는 마담. 젊은 시절 야노 히로시와의 사이에서 딸을 낳았으나 아사카게 보육원 앞에 맡겼던 인물

ㅇ 사건상 역할, 서사적 기능 : 우에쓰지 료타를 총으로 살해한 진범. 소노카에게 교토여행을 가게 하여 알리바이를 만들어 주고, 료타를 지바로 불러내 살해한 뒤 소노카에게 실종 신고를 하도록 지시함. 버린 딸에 대한 죄책감, 소노카를 손녀라고 믿고 싶은 욕망, 료타의 폭력에서 소노카를 구하려는 의지가 한 인물 안에서 범행 동기로 결합됨. 프로로그의 영아 유기와 현재의 총격사건을 연결하는 중심인물

ㅇ 소노카와의 관계 : 자신이 만든 인형을 안고 있는 어린 소노카의 사진을 보고, 지즈코가 자신이 버린 딸 노조미이며 소노카는 손녀라고 믿음. 료타가 조작한 DNA 검사 결과로 그 믿음을 굳혔지만, 점차 혈연관계가 아닐 가능성을 의심하면서도 진실을 확인하지 않으려 함

ㅇ 범행 동기 : 료타의 폭력에서 소노카를 구하려는 마음과 함께, 소노카를 손녀라고 믿으며 살아온 자신의 행복한 시간이 거짓임을 폭로할 료타를 없애려는 욕망이 함께 작용함

ㅇ 인물 조형 평가 : 소노카를 지키려는 마음과 자신이 믿고 싶은 관계를 지키려는 욕망을 함께 범행 동기로 삼은 점은 인물의 양면성을 형성함. 다만 소노카가 친손녀가 아닐 가능성을 이미 의심하면서도 살인까지 나아가는 심리적 변화가 압축적으로 처리됨. 이 때문에 자기기만이 인물 내부에서 충분히 형성된 결과라기보다 마지막 반전을 유지하기 위해 설정된 동기로 보일 수 있음


마. 우에쓰지 료타

ㅇ 신분, 관계 : 소노카의 연인이자 동거인. 영상 관련 업체를 그만둔 뒤 프리랜서 영상 제작자라고 행세함

ㅇ 사건상 역할, 서사적 기능 : 남성 총상 시신으로 발견되는 살인사건의 피해자이지만, 소노카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히데미의 재산을 노리는 실질적인 가해자. 히데미가 소노카를 손녀로 믿는다는 사실을 악용하여 허위 혈연관계를 만들고, 자신의 계획에 반대하는 소노카를 폭력으로 통제함. 그의 폭력과 사기계획이 히데미의 살인을 일으키는 직접적인 원인이 됨

ㅇ 범행 유발 행동 : 히데미와 소노카의 DNA 검사 결과를 조작함. 두 사람을 입양관계로 만든 뒤 히데미의 재산을 가로채려 하고, 소노카가 이를 거부하자 폭력을 사용함

ㅇ 인물 조형 평가 : 폭력, 거짓말, 무직생활, 재산사기라는 부정적 속성이 한 인물에게 집중되어 있으며 행동을 이해할 만한 배경이나 내적 갈등은 거의 제시되지 않음. 이 때문에 료타는 독립적인 인물이라기보다 살인과 보호행동을 유발하기 위한 기능적 악역에 가까움. 독자가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할 이유가 없어지면서 살인과 은폐를 둘러싼 윤리적 긴장도 함께 약화됨


바. 시마우치 지즈코

ㅇ 신분, 관계 : 소노카의 어머니. 아사카게 보육원 출신으로 그곳에서 근무한 뒤 급식센터에서 일함. 유부남과의 사이에서 소노카를 낳아 혼자 키웠으며, 사건 발생 1년 반 전 지주막하출혈로 사망함

ㅇ 출생의 진실 : 세 살 무렵 공원에서 혼자 발견된 아이로, 히데미가 보육원 앞에 맡긴 딸 노조미와는 다른 인물

ㅇ 사건상 역할, 서사적 기능 : 노조미와 함께 보육원에 맡겨졌던 인형을 간직하고 소노카에게 물려줌. 이 인형 때문에 히데미가 지즈코를 자신의 딸로 오인하고 소노카를 손녀라고 믿게 됨. 현재 시점에서는 이미 사망했지만 인형, 아사카게 보육원, 나에, 소노카를 연결하여 잘못된 혈연 추정을 만드는 인물


사. 노조미(望夢)

ㅇ 신분, 관계 : 히데미와 야노 히로시 사이에서 태어난 딸에게 붙이려 했던 이름. 출생 직후 아사카게 보육원 앞에 맡겨졌으며 어린 나이에 사망함

ㅇ 사건상 역할, 서사적 기능 : 등에 ‘望夢’이라고 적힌 손수 만든 인형과 클럽 이름 ‘VOWM’의 기원이 되는 인물. 인형이 지즈코와 소노카에게 이어지면서 히데미의 혈연 오인을 일으킴. 직접 성장하여 사건에 참여하지 않지만 영아 유기, 인형, 클럽 이름, 허위 혈연관계가 시작되는 과거사상의 출발점


아. 야노 히로시

ㅇ 신분, 관계 : 긴자의 바에서 일하던 바텐더. 히데미의 연인이자 노조미의 아버지

ㅇ 사건상 역할, 서사적 기능 : 히데미의 가방을 되찾아 준 일을 계기로 연인이 되고, 아이가 생기자 결혼과 양육을 준비하며 신문배달까지 병행함. 그러나 출산을 앞두고 뇌출혈로 급사함. 그의 죽음으로 히데미가 경제적, 정서적으로 고립되면서 아이를 보육원에 맡기게 됨. ‘望夢’이라는 이름과 ‘VOWM’이라는 클럽 이름의 유래를 설명하는 인물


2. 수사를 이끄는 인물

가. 구사나기 슌페이

ㅇ 신분, 관계 : 경시청 수사1과 계장인 경부. 유카와의 대학 동창이자 오랜 친구

ㅇ 사건상 역할, 서사적 기능 : 소노카 실종과 료타 살해사건의 수사를 총괄하고, 그림책의 참고문헌에서 유카와의 이름을 발견하여 그를 사건에 끌어들임. 히데미, 나에, 소노카의 관계와 유카와의 수상한 행동을 함께 추적함. 경찰수사의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유카와가 별도의 목적을 가지고 움직인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기다려 주는 인물. 수사책임자와 유카와의 친구라는 두 위치를 함께 담당함


나. 우쓰미 가오루

ㅇ 신분, 관계 : 경시청 수사1과 순사부장. 구사나기의 부하

ㅇ 사건상 역할, 서사적 기능 : 꽃집과 학교, 아사카게 보육원 등에서 현장수사를 담당함. 오카타니 마키에게서 소노카의 교제폭력 피해를 듣고, 아오야마의 증언으로 소노카를 찾아온 노년 여성이 나에가 아니라 히데미임을 확인함. 유카와와 함께 아사카게 보육원을 조사하고, 그가 나에와 소노카에게 수사정보를 흘렸다는 사실도 가장 먼저 알아차림. 경찰이 확보한 사실과 유카와의 비공식적인 행동 사이의 불일치를 포착하는 관찰자


다. 마미야 신타로

ㅇ 신분, 관계 : 경시청 수사1과 관리관. 구사나기 수사팀의 상관

ㅇ 사건상 역할, 서사적 기능 : 수사 지휘와 조직적 판단을 담당함. 구사나기와 우쓰미의 개별수사를 공식 수사체계 안에 배치하고 사건의 진행상황을 관리함


라. 기시타니

ㅇ 신분, 관계 : 경시청 수사1과 주임인 경부보. 구사나기의 부하이자 우쓰미의 선배

ㅇ 사건상 역할, 서사적 기능 : 료타가 근무했던 영상업체와 주변관계를 조사하여 퇴직 이후의 생활과 경제상황 등 피해자의 배경정보를 수사팀에 전달함. 핵심인물의 관계를 추적하는 구사나기와 우쓰미를 지원하며 피해자의 행적과 실무수사를 보충함


마. 요코야마

ㅇ 신분, 관계 : 관할 경찰서 생활안전과 소속 순사장

ㅇ 사건상 역할, 서사적 기능 : 소노카에게서 료타의 실종 신고를 접수한 경찰관. 구사나기와 우쓰미를 ‘이루카 하이츠’로 안내하여 사건 현장과 소노카의 생활공간을 수사에 연결함. 료타의 실종 신고가 총격 살인사건의 수사로 전환되는 초입을 담당함


3. 유카와의 가족

가. 유카와 신이치로

ㅇ 신분, 관계 : 은퇴한 의사이자 유카와의 양부. 치매가 진행된 아내를 돌보고 있음

ㅇ 사건상 역할, 서사적 기능 : 간병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유카와가 부모의 요코스카 맨션에 머물게 만들고, 구사나기가 처음으로 유카와의 사적인 가족공간을 보게 함. 유카와를 실제로 양육한 아버지로서 생모 나에와 대비되는 위치를 담당함


나. 유카와의 양모, 이름 미상

ㅇ 신분, 관계 : 유카와를 길러 낸 어머니. 치매와 다발성 장기부전을 앓다가 세상을 떠남

ㅇ 사건상 역할, 서사적 기능 : 간병과 죽음을 통해 유카와와 양부모의 관계를 드러냄. 유카와가 나에와 재회하는 시기에 양모가 세상을 떠남으로써 출산, 입양, 양육이라는 세 관계가 한 작품 안에서 비교되도록 함


4. 소노카 주변의 증언자

가. 아오야마

ㅇ 신분, 관계 : 소노카가 근무하는 우에노 꽃집의 여성 점장

ㅇ 사건상 역할, 서사적 기능 : 소노카의 근무상황과 휴직 사실을 증언하고, 꽃집에 찾아온 화려한 노년 여성이 나에가 아니라 히데미라고 확인함. 수사의 초점을 나에 한 사람에게서 히데미로 확대하는 목격자


나. 다무라

ㅇ 신분, 관계 : 소노카가 사는 ‘이루카 하이츠’의 집주인

ㅇ 사건상 역할, 서사적 기능 : 소노카와 료타의 동거상황 및 아파트 관련 정보를 경찰에 제공함. 두 사람의 주거공간을 경찰수사의 출발점으로 연결함


다. 노구치

ㅇ 신분, 관계 : 소노카의 고등학교 시절 담임교사

ㅇ 사건상 역할, 서사적 기능 : 소노카의 교우관계를 확인하는 경찰에게 가장 가까운 친구로 오카타니 마키를 알려 줌. 학교생활 조사에서 알리바이와 교제폭력 증언으로 수사가 이어지게 함


라. 오카타니 마키

ㅇ 신분, 관계 : 소노카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미술부 친구. 현재 미용사

ㅇ 사건상 역할, 서사적 기능 : 료타가 살해된 시점에 소노카와 교토여행을 한 알리바이 증인. 소노카가 료타에게 폭력을 당하고 있었다는 의혹을 우쓰미에게 처음으로 밝힘. 소노카의 직접 범행 가능성을 배제하고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제시함


5. 아사카게 보육원과 나에 주변 인물

가. 가나이

ㅇ 신분, 관계 : 아사카게 보육원의 현 원장

ㅇ 사건상 역할, 서사적 기능 : 부임 시기가 늦어 지즈코를 직접 알지 못하지만, 지즈코와 함께 근무했던 세키네를 유카와와 우쓰미에게 소개함. 현재의 보육원에서 과거를 기억하는 직원에게 수사가 이어지게 함


나. 세키네

ㅇ 신분, 관계 : 아사카게 보육원 직원. 과거 지즈코와 약 10년간 함께 근무함

ㅇ 사건상 역할, 서사적 기능 : 지즈코가 보육원 출신이라는 사실, 나에가 종이연극 봉사를 하며 지즈코와 가까워졌다는 사실, 소노카가 낡은 인형을 안고 찍은 사진, 수상한 조사원이 소노카의 신원을 캐물었던 일을 증언함. 지즈코, 나에, 인형, 히데미를 연결하는 핵심 정보를 제공함


다. 후지사키

ㅇ 신분, 관계 : 출판사에서 아사히 나나를 담당하는 여성 편집자

ㅇ 사건상 역할, 서사적 기능 : 아사히 나나의 본명이 마쓰나가 나에라는 사실과 작품성향, 연락방식 등을 경찰에 알려 줌. 그림책의 참고문헌에서 유카와의 이름이 발견되는 과정에도 관여함. 소노카 실종사건이 유카와에게 이어지는 출판계의 연락망을 담당함


라. 마쓰나가 고로

ㅇ 신분, 관계 : 나에보다 스무 살 이상 연상인 두 번째 남편. 여러 음식점을 운영한 사업가였으며 폐암으로 사망함

ㅇ 사건상 역할, 서사적 기능 : 나에가 안정된 생활 속에서 그림책 작가와 봉사활동을 이어 갈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함. 그의 스키부 인맥이 소유한 유자와 리조트 맨션이 나에와 소노카의 은신처가 됨. 나에의 결혼생활과 은신처의 출처를 함께 설명함


마. 고지마

ㅇ 신분, 관계 : 나에와 고로가 니자시에 살 때 이웃이었던 여성

ㅇ 사건상 역할, 서사적 기능 : 나에와 시마우치 모녀의 왕래, 고로의 지인이 가진 유자와 리조트 맨션에 관한 정보를 경찰에 제공함. 나에의 과거 생활을 복원하고 경찰을 소노카의 은신처로 이끄는 증언자


6. 이름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중요한 인물

가. 유카와의 생부

ㅇ 나에가 젊은 시절 사랑했던 장래가 촉망되는 대학생. 미국 유학을 앞두고 나에에게 동행을 제안했으나, 나에는 그의 앞길을 막지 않으려고 이별함. 혈연으로는 아버지이지만 유카와의 성장에는 참여하지 않은 인물로서 양부 신이치로와 대비됨


나. 나에의 부모

ㅇ 미혼 상태로 임신한 나에에게 아이를 낳는 대신 반드시 입양 보내라고 요구함. 유카와의 출생과 입양을 결정한 인물들


다. 나에의 첫 번째 남편

ㅇ 디자이너 겸 일러스트레이터. 술과 외도 문제로 나에와 이혼함. 이혼 뒤 불안해진 나에가 중학생 유카와를 되찾으려 찾아가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함


라. 소노카의 생부

ㅇ 지즈코와 관계를 맺었던 유부남. 소노카가 태어나기 전에 지즈코와 헤어짐. 지즈코를 미혼모로 만들고 소노카가 어머니와 단둘이 성장하게 한 부재의 아버지


마. 유카와의 옛 연인

ㅇ 유카와가 고등학교 때부터 약 6년간 교제했다고 언급되는 여성. 구사나기조차 몰랐던 유카와의 사생활을 보여 주며 주변인물들이 알고 있던 유카와의 모습이 일부에 불과했음을 드러냄


바. 히데미의 부모

ㅇ 미혼모가 된 히데미가 임신과 출산 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한 가족. 당시 미혼모에게 가해지던 사회적 압박과 히데미의 고립을 보여 주는 배경인물


사. 히로시가 근무하던 바의 마담

ㅇ 히로시의 죽음과 아이의 포기 이후 히데미를 유흥업계로 이끈 인물. 히데미가 긴자의 클럽 마담으로 성장하는 출발점을 제공함


아. 히데미의 후원자였던 승려

ㅇ 히데미에게 클럽과 자금을 남긴 인물. 히데미가 경제적 성공을 이루고 소노카에게 접근할 재력을 갖추게 하는 배경인물


자. 암흑가와 연결된 히데미의 옛 남자

ㅇ 불법 제작된 총을 히데미에게 남기고 사라진 인물. 오랫동안 보관된 총이 료타 살해에 사용되므로 범행수단을 제공함


차. 히데미가 고용한 사설조사 관계자

ㅇ 아사카게 보육원 홈페이지 사진 속 소노카를 추적하고, 인터넷 범죄 점검을 가장해 보육원에서 지즈코와 소노카의 신상을 알아냄. 히데미가 소노카를 찾아가는 경로를 마련함


카. ‘이루카 하이츠’의 이웃 여성

ㅇ 소노카가 료타에게 폭력을 당한다는 사실을 히데미에게 알려 줌. 히데미가 료타 살해를 결심하는 직접적인 정보를 제공함


타. 고로의 대학 스키부 친구

ㅇ 유자와 리조트 맨션의 소유자. 나에에게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열쇠를 맡겨 훗날 소노카의 은신처가 마련되게 함


파. 료타의 옛 직장 관계자

ㅇ 료타가 이미 영상업체를 그만두었으며 겉으로 내세운 직업과 실제 경제상황이 다르다는 사실을 경찰에 알려 줌. 료타가 소노카와 히데미의 경제력에 의존하려 했음을 뒷받침함


하. 그 밖의 절차적 인물들

ㅇ 렌터카업체 직원, 시신 발견자, 감식 관계자, 부검 관계자, 아파트 주민, 수사관 등. 독립된 인물 서사는 없지만 렌터카의 행적, 사망원인, 시신 유기와 이동경로를 객관적 증거로 확정함


[부록] 수록 단편 「겹치다」의 등장인물

※ 장편 『투명한 나선』과는 별개의 사건이므로 본편 등장인물과 구분함


1. 유카와 마나부

ㅇ 차량 충돌만으로 성인 남성이 강에 떨어질 수 있는지를 물리적으로 검토하고 그 가능성을 부정함. 이후 피해자가 스스로 강에 들어갔다는 가설과 그 이유를 밝혀내는 탐정역


2. 구사나기 슌페이

ㅇ 도조노 하쓰히코 사망사건의 수사를 이끌고, 차량 충돌과 강물 속 시신 사이의 물리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유카와에게 도움을 청하는 경찰 측 중심인물


3. 도조노 하쓰히코

ㅇ 여러 회사를 운영한 쉰여덟 살 사업가이자 말기암 환자. 은인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다니던 중 뺑소니를 당하고 강에서 시신으로 발견됨

ㅇ 아내의 인공수정이 이루어지기 전에 자신을 죽여 태아의 상속권을 없애려는 계획을 알아차리고, 충돌 직후 살아남은 뒤 인공수정이 끝날 때까지 사망시각을 늦추려 함. 태어날 아이의 상속권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죽음까지 이용하는 인물


4. 도조노 요리코

ㅇ 하쓰히코의 후처. 불임치료와 인공수정을 통해 하쓰히코의 아이를 가지려 함. 태어나려는 아이의 존재가 범행 동기와 상속관계를 형성함


5. 도나미

ㅇ 하쓰히코가 마지막으로 찾아간 여든 살의 지인. 하쓰히코가 건넨 미쓰코시 선물과 마지막 행적을 증언하여 피해자가 자신의 사망시각을 계산하고 있었다는 추리의 실마리를 제공함


6. 쓰사카

ㅇ 생활고 때문에 ‘어둠의 아르바이트’에 응해 하쓰히코를 차량으로 친 실행범. 자신은 피해자를 강에 밀지 않았다고 진술하여 하쓰히코가 강에 들어간 경위를 별도의 수수께끼로 만듦


7. 스즈오카 사에

ㅇ 하쓰히코의 전처이자 유야의 어머니. 유야가 하쓰히코의 친아들이 아닐 가능성과 과거의 가족관계를 드러내어 상속을 둘러싼 범행 동기를 밝히는 인물


8. 스즈오카 유야

ㅇ 사에의 아들. 요리코의 인공수정으로 새로운 상속인이 생기기 전에 하쓰히코를 죽여 자신의 상속 몫을 늘리려고 뺑소니 살인을 의뢰한 진범

ㅇ 태어나려는 아이를 자신의 상속 몫을 줄이는 존재로 판단하고 범행을 계획함. 하쓰히코가 죽음을 늦추려 한 이유를 만들어 내는 대립인물


9. 요리코가 품게 될 아이, 이름 미상

ㅇ 아직 태어나지 않았지만 살인의 동기와 하쓰히코의 마지막 행동을 모두 결정하는 존재. 하쓰히코의 사망시각과 인공수정의 선후관계가 상속권을 좌우하면서 「겹치다」의 제목과 사건구조를 완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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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때 그 호텔에 묵고 있었습니다. 미처 탈출하지 못해 중상을 입었죠. 위기일발의 상황에서 구출되어 살았습니다만."

"아아......."
가와미나미는 책상 가장자리에 놓아둔 편지에 눈길을 주었다.
"그래서 병원에 계셨군요."
"예. 화상과 골절, 거기에 머리를 세게 부딪혀서 꽤 오랫동안 의식불명 상태였답니다."

5년 전에 죽은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가 각지에 남긴 별난 건물들과, 거기서 일어난 수많은 비참한 사건이 떠올랐다. 쓰노지마의 ‘십각관, 오카야마의 ‘수차관‘, 단고의 ‘미로관’...... 그리고 작년 여름 가와미나미가 속한 "CHAOS』의 취재반 일행이 맞닥뜨린 사건의 무대가 된 가마쿠라의 ‘시계관 역시 나카무라 세이지가 설계한 건물이었다.

그의 ‘관‘과는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다.
그것이 가와미나미의 진심이다. 반면에 이렇게 말려든 이상 결코 달아나지 못할뿐더러,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 먼저 뛰어드는천성이 자기 내면에 도사리고 있음을 가와미나미는 잘 알고 있었다.

"병원에서 읽은 「미로관의 살인에서 어떤 사람의 이름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단서가 될 만한 것이 딱 하나 수중에 남아 있었습니다."
"단서요?"
"제가 썼다고 여겨지는 수기 같은 글인데, 거기에 아유타 도마라는 이름이 나와 있습니다. 그래도 역시 뭐랄까, 이게 제 이름이라는 실감이 안 들어서요. 그 방면의 전문의에게 진찰을 받고는 있는데 전혀 차도가......."

"그 이름과 똑같은 이름이 아까 말씀드린 제 수기에도 나옵니다. 미로관의 설계자, 나카무라 세이지라는 건축가인데요."

"작년 8월 1일부터 4일 사이에 흑묘관에서 일어난 일이 적혀 있습니다."
커피를 따르면서 아유타가 말했다.
"대강 짐작이 가시겠죠. 즉."
"살인사건인가요?"
시시야가 바로 답을 꺼내자 아유타는 힘없이 눈을 내리뜨고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탁자에 어지러이 널린 잔과 빈 병을 정리하고 자루걸레로 바닥을 닦았다. 쓰레기통을 들여다보자 종잇조각과 담배꽁초 사이로 깨진 잔 두 개가 보였다. 이런, 이런. 이래서야 앞으로 어떨지 훤하다.

세이렌이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등장하는 마녀의 이름이다. 생김새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몸체는 빨간 날개가 달린 새 형상이고 얼굴은 어린 소녀처럼 생겼다는 주장도 있거니와, 하반신이 물고기의 몸체로 이루어진 여자라는 주장도 있다.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선원들의 마음을 홀렸다는 마녀. 어젯밤 히카와가 설명해준 레이코라는 여자 보컬은 그들 밴드 멤버에게 세이렌이었다는 걸까.

텔레비전을 틀자 마침 아침 일기예보를 하고 있었다. 대형 저기압이 서서히 다가오는 중이라 오늘 하루는 맑겠지만, 내일 오후부터날씨가 궂어져 강수량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찬물은 이가 시려서 싫다고요."
내 알 바 아니다 싶었지만, 일단 사과하고 보는 것이 제일이라는 생각에 "죄송합니다" 하고 머리를 숙이고 나서 비꼬듯이 덧붙였다.
"급탕관을 늘려달라고 아버님께 부탁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아까 사촌 동생분이 ‘엘‘이니 ‘풀‘이니 그런 소리를 했는데,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
히카와는 흠칫 놀란 듯이 고개를 들더니 내 시선을 피해 눈을 돌리고 대답을 망설였다. 그 반응을 보고 역시 그렇구나 싶었다.
"혹시 마약 같은 건가요?"

"흐음, 그렇다면......."
꺼내려던 말을 삼키고 히카와는 다시 그림을 올려다보았다.
"검은 고양이와 소녀라. 그럼 이 여자애는 아모 박사의 딸일까요? 그런 이야기는 모르십니까?"
"글쎄요."

담배 몇 개비를 피우고 나서 슬슬 안으로 돌아가려다가 현관 옆에서 사람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한순간 얼굴이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엉겁결에 눈을 비볐다. 아사오 겐지로의 얼굴이었다. 이제야 일어나서 밖으로 나온 것이다.

"예..
.......그 녀석들, 푹 빠졌어요. 도쿄에서도 어디선가 구해 와서 즐기더라고요. 적당히 좀 하라고 늘 나무라기는 하지만요."
"어떤 마약을?"
"LSD, 그리고 대마요."
"엘과 풀...... 과연."
"저는 안 합니다."
단호한 투로 말하며 히카와는 눈을 들었다.

"참 편리한 시대가 되었군요. 오랜 세월 이런 곳에 틀어박혀 있다 보니 세상의 변천에는 어둡습니다. 점점 뒤떨어지는 기분이네요.
뭐, 그래도 별 상관은 없습니다만......!!

"저기, 관리인 아저씨, 혹시 UFO를 본 적 있으세요?"
"예?"
나는 깜짝 놀라 상대의 거무스름한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UFO?"
아사오는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예"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UFO. U, F, O. 최근에 이 부근에서 목격한 사람이 많다고 하던데요."

가자마와 기노우치는 낮에 저택을 나섰을 때와는 180도 다르게 들뜬 얼굴로 레나의 관심을 끌기 위해 갖은 아양(내 눈에는 그렇게보였다)을 떨고 있었다. 숲을 산책하고 돌아온 후 침울한 얼굴로 살롱의 소파에 드러누워 있던 아사오는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거무스름한 얼굴을 붉히며 벌떡 일어났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젊은이들의 그런 모습은 개다래나무에 취한 고양이나 마찬가지였다. 히카와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여자의 목소리를 듣고 장서실에서 나온 그의 짐짓 차갑고 시치름한 표정을 보고 나는 몰래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시선에 대해 과도한 자의식을 드러낸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문이 열리고 가자마가 들어왔다. 이어서 선글라스를 낀 기노우치에게 매달리듯 팔짱을 낀 청바지 차림의 자그마한 여자가 들어왔다.
"아아, 아저씨."
당황한 내 얼굴을 가자마가 퉁명스레 힐끔 쳐다보고는 말했다.
"얘는 레나 짱이에요. 오늘 밤부터 여기서 지낼 거니까 잘 부탁해요."

하지만 가자마가 그녀를 저택에 재운다고 말한 이상 그 말에 따르는 것이 내 임무다. 내심 번거롭기 짝이 없었지만, "어서 오십시오" 하고 정중하게 머리를 숙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 여자는 쓰바키모토 레나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레나‘에 어떤 한자를 쓰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얼핏 보기에 20대 초반, 젊은이들과 나이가 같거나 조금 연상으로 느껴졌는데 혼자 여기로 여행을 왔다고 했다.

"그럼 일단 겐지로의 방을 쓰면 되지. 녀석은 살롱 소파에서 자면 돼. 아니면 레나, 내 방에서 잘래?"
물론 자신과 함께, 라는 유혹이리라.
"혼자 독차지하기 없기야, 유키."
기노우치가 참견하고 나서자 레나는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방긋 웃으며 말했다.
"난 아무래도 상관없어."

"응. 그게, 뭐랄까, 아주 무시무시한 실험이었거든. 저기, 프랑켄슈타인이라고 알아?"
"영화에서 본 적 있어."
"그거랑 똑같은 연구였어. 그런 인조인간을 만들려고 한 거야."

"옛날, 20년 전이었던가, 여기 아모 아무개라는 남자가 살았는데 말이야."
기노우치는 거드름을 피우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가 그렇게 수다스럽게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던 듯하다.

말하기 미안하다는 듯이 잠깐 입을 다물었다.
"저쪽 홀로 갔습니다."
"장서실로요?"
그렇게 되물었을 때 내 얼굴은 분명 웃음과 울음을 동시에 참는 듯이 굳어 있었으리라.

검은 고양이 칼로 역시 방으로 피신했다. 문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전날 밤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떠들썩했다. 나는 말로 다하지 못할 만큼 착잡한 기분으로 욕실로 들어갔다.

"레나라는 그 여자...... 닮았어요."
"닮아요? 누구랑요?"
"어제 말씀드렸죠. 같이 밴드를 하던 레이코라는 보컬이랑 생김새랑 목소리가 어쩐지 닮았어요. 그래서 녀석들......."

평소의 배 가까운 시간을 들여 목욕을 했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칼로를 안고 침대에 앉았을 때 문득 깨달았다. 살롱에서 목소리가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응. 박사는 지하실에 시체를 숨기기로 했어. 벽 속에 시체를 넣고 새로 싹 발랐지. 그런데 그때 검은 고양이도 같이 들어가 버린 거야. 그래서 지금도 한밤중에 지하실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린대."
별것 아니었다.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 「검은 고양이」의 허접스러운 표절 아닌가.

작은 구멍을 통해 펼쳐진 시야 한구석에서 입구의 문이 열렸다. 안으로 한 걸음 들여놓자마자 히카와는 거기서 벌어지고 있는 친구들의 난잡한 행위를 보고 우뚝 멈춰 섰다. 하지만 네 사람은 히카와가 종종걸음으로 방을 가로질렀을 때야 그가 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한편 가자마와 기노우치, 아사오 세 사람은 한가운데의 긴 의자에서 떨어져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뭘 하나 싶었는데, 남쪽 벽(회랑아래에 해당하는 곳이다)에서 커다란 장식장을 끌고 왔다. 그리고 장식장을 입구 앞으로 옮겨 문을 막아버렸다.

아까 전 키스에 생각이 미쳤다. 아까 안겨들어 키스를 했을 때 히카와에게 입으로 LSD를 먹인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그는.......

주인의 복잡한 심경도 모르고 칼로는 기분 좋게 색색거리며 침대 구석에서 잠들어 있었다. 나는 샤워를 해서 몸에 잔뜩 묻은 먼지를 씻어내고 이불 속 깊이 파고 들어가 그다지 편하지는 않은 잠에 빠졌다. 그러니 그 후에 장서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내알 바 아니었다.

"오늘도 헤어질 때 새삼 다짐을 두듯 말했잖아. 부디 이 노트에 관한 이야기를 퍼뜨리지 말아달라고. 사실이 분명해질 때까지는 가급적 경찰이 관여하지 않기를 바라는 거야."

그래서 이건 창작이라고 믿으려 애썼고, 의사와 경찰에게도 그렇게 말했어. 실제로 첫머리에 ‘이것은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는취지의 미묘한 문장이 있으니까, 그 주장도 나름 설득력을 갖춘 셈이지."

차로 한 시간 반 정도 거리에 항구도시가 있을 것. 근처에 인가가 없는 숲속일 것. 그 밖에도 실마리가 될 만한 부분이 몇 군데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지명을 알아내기 어려워. 적어도 내게 이 수기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그거야.

"1970년, 삿포로 H** 대학의 조교수 아모 다츠야의 의뢰로 나카무라 세이지가 설계한 집. 이 정도의 데이터만 있으면 혹시......."

"응. 그건 알아. ‘미래의 나를 위해 쓰는 소설‘이라는 표현을 쓴 것도 이해는 가는데...... 마음에 걸리는 건 어째서 그가 올해 2월에이 노트를 가지고 도쿄로 왔느냐는 거야. 그것도 화재 현장에서 이것만 들고 도망쳐 나왔다고 하잖아. 어째서 그렇게까지......."

"그렇지. 나도 큰 의문을 품고 있어. 덧붙여, 이 수기의 목적은 도대체 뭘까?"
"나를 위한, 이라고 나와 있었잖아요. 요컨대 일기와 똑같은 의미겠죠."

구시로에서 아칸코 호수 사이의 아주 깊은 숲속에 세웠더군요."
"정확한 소재지는 아십니까?"
"그것까지는 생각이 안 납니다."
"어떤 집이었는지 기억하시는지?"
"아주 세련된 서양식 저택이었을 겁니다."

"아모는 원래 구시로 부근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인근 지역에 애착이 있었겠죠."
가와미나미는 대학 시절에 구시로와 아칸에 한 번 간 적이 있었다. 구시로는 항구도시. 아칸코 호수는 분명 거기서 버스로 두 시간 남짓 걸리는 곳이었다. 근처에 인가가 없는 숲이라면 그 부근에 썩어날 만큼 많다.

옷을 갈아입고 침실을 나선 것이 분명 오전 10시가 지난 무렵이었다. 말소리는 나지 않았다. 다른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기분 탓인지 숲의 작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도 평소보다 얌전하여 전날 밤에 목격한 광란의 도가니가 그야말로 악몽이었던 것처럼, 평온한 혹은 으스스한 정적이 저택을 감싸고 있었다.

그래서 문이 열리지 않는 것이다. 즉, 지금도 이 안에 그들이 있다는 뜻이다. 그 저속한 술자리를 마친 후 그들은 결국 이 방에서 잠든 걸까.
말을 걸어보기도 망설여졌다. 내버려두면 조만간 나오리라. 이때는 그렇게 판단하고 나는 손잡이에서 손을 뗐다.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끙끙대다가 일단 내려가서 커피라도 한 잔 더 마셔야지, 생각한 순간이었다. 갑자기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무시무시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설마, 설마 그 여자......."
"보시다시피. 죽었습니다."
나는 더욱 담담하게 말했다. 히카와는 안경 안쪽의 가늘고 긴 눈을 크게 뜨고 "설마" 하고 잠꼬대처럼 되풀이해 말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아주 냉정하고 침착한 태도였던 듯싶다. 하지만 물론 이때 내 마음에 두려움과 동요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자신보다 훨씬 어린 데다 평정심을 완전히 잃은 사람이 곁에 있으면 나 자신은 자연히(상대적일지도 모르지만) 정신을 바짝 차리는 법이다.

나는 시체를 더 찬찬히 관찰했다. 실금失禁한 흔적은 없었다. 목에 감긴 스카프는 살을 꽤 깊이 파고든 것 같았다. 다시 한 번 오른손을 들어 올려 손가락 관절을 살펴보았다. 여기에도 약간이나마 사후경직이 나타났다. 즉, 죽은 지 적어도 일고여덟 시간은 지났다는 말인가.

"저기, 아유타 씨. 이런 식의 발언은 비열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경찰이 개입하면 야유타 씨도 곤란한 입장에......."
"압니다."
나는 최대한 부드러운 말투로 대응했다.

"여러분이 대마와 LSD를 즐긴 사실을 저는 어제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알면서 묵인했으니 경찰은 당연히 죄를 추궁하겠죠."
그렇다. 히카와가 말할 것도 없이 그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내 입장에서도 지금 경찰이 변사 사건을 수사하러 오는 것은 결코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과연 이 사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아까부터 골머리를 앓고 있었던 것이다.
"경찰에 신고하더라도 우리끼리 사건을 조금 더 검토한 후에 신고하는 편이 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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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후미타케에게,
5년 전 이와쿠라를 떠올리며 - P-1

주요 등장인물
아유타 도마(60) | 흑묘관의 관리인.
가자마 유키(22) | 흑묘관 현 소유주의 아들. M** 대학 학생 록밴드 ‘세이렌’의 기타리스트.
히카와 하야토(23) | 유키의 사촌 형. T** 대학 대학원생. 세이렌의 피아니스트.
기노우치 신(22) | 유키의 친구. 세이렌의 드러머.
아사오 겐지로(21) | 유키의 친구. 세이렌의 베이시스트.
쓰바키모토 레나(25) | 여행자.

* 괄호 안 숫자는 1989년 8월 시점의 만 연령

아모 다츠야 | 흑묘관의 전 주인. 전 H** 대학 조교수. 생사 불명.
아모 리사코 | 다츠야의 딸. 생사 불명.
구마시로 노스케(70) | 아모 다츠야의 친구. 전 T** 대학 교수.
다치바나 데루코(63) | 아모 다츠야의 전 동료. H** 대학 교수.
가와미나미 다카아키(25) | 기단샤 편집자.
시시야 가도미(41) | 추리작가.

* 괄호 안 숫자는 1990년 6월 시점의 만 연령 - P-1

1990년 7월 8일(일), 홋카이도·아칸 - P-1

세 사람이 대문 앞에 서자 마치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뒤쪽에 펼쳐진 가문비나무 숲에서 짙은 안개가 흘러나왔다. 가와미나미다카아키는 무심코 반소매 셔츠 아래로 드러난 팔을 문지르며 뒤를 돌아보았다. - P-1

블루종과 같은 색의 숄더백을 어깨에 멘 시시야가 앞장서서 좁은 통용구를 빠져나갔다. 야유타 도마가 오른손에 쥔 갈색 지팡이로몸을 지탱하면서 그 뒤를 따랐다. 마지막으로 가와미나미가 들어갔다. - P-1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니 느릿한 바람에 흘러가는 안개에 현혹되었는지 문득 그 검은 형체가 거대한 고양이로 보였다. 물론 ‘흑묘관黑猫館‘이라는 저택의 이름이 가와미나미의 마음 한구석을 자극한 결과이기도 했다. - P-1

그의 이름은 아유타 도마라고 한다. 체격이 빈약한 데다 등이 약간 굽어 실제보다 훨씬 늙어 보인다. 아직 예순 살 정도밖에 되지않았을 텐데 풍채는 이미 노인이나 다름없었다. - P-1

옅은 회색으로 더러워진 벽에 세로로 길고 조그만 창이 줄지어 나 있다. 지붕은 경사가 급한 맞배지붕. 외관은 그다지 기이하거나별날 것 없는 2층짜리 서양식 저택이지만, 홋카이도의 외진 숲속에 이런 집이 세워져 있다는 것 자체가 묘한 이야기이기는 하다.
더구나 여기가 나카무라 세이지中村靑司가 설계했고, 작년 여름 그 ‘수기‘에 적힌 사건이 일어난 곳이라고 생각하자 가와미나미는 등골이 오싹했다. - P-1

세 사람은 발소리를 죽이고 자욱한 안개 속을 나아갔다. 숲에서 노니는 들새 소리가 사방팔방에서 울려 퍼진다. 7월 초순, 정오에가까운 시각인데도 기온은 올라갈 기미가 없었다. 가와미나미는 쌀쌀한 느낌에 다시 팔을 문지르면서 여름 스웨터를 차 안에 두고온 것을 몹시 후회했다. - P-1

적어도 작년 9월까지는 아유타 노인이 저택의 관리인으로 일했을 것이다. 잃어버린 당시의 기억을 어떻게든 되찾으려고 지금도애를 쓰고 있기는 한데....... - P-1

다음 달 초,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현 주인의 아들이 이쪽으로 여행을 오기로 했다. 친구들과 함께 여기저기를 돌아다닐 예정인데모처럼의 기회이니 아버지가 소유한 ‘별장‘에도 며칠 머무르고 싶다고 한다. 그러니 그들이 사용할 방을 준비하고, 머무르는 동안식사 등의 시중을 잘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 P-1

여기에 적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한 달 전, 1989년 8월 1일부터 4일까지 ‘흑묘관‘이라고 불리는 이 저택에서 일어난 사건의 정확하고 상세한 기록이다. - P-1

이것은 나 자신을 위한 수기다. 나는 이 수기를 씀으로써 그 불길한사건을 하나의 ‘과거‘로서 노트 속에 봉인하고 싶은 것이다....... - P-1

이것은 나 자신을 위한 수기다.
이 노트에 쓴 글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생각은 전혀 없다. 아주 특별한 일이라도 벌어지지 않는 한 아마 언제까지나 그럴 것이다. - P-1

토지와 가옥의 실질적인 관리는 이 지방의 대리인 아다치 히데아키足立秀秋 씨가 도맡고 있다. 그 아다치 씨가 전화로 연락을 한것이다. - P-1

하지만 일개 사용인에 불과한 내게 그러한 지시를 거부할 권리는 없다. 알겠습니다, 하고 냉큼 대답하는 것이 당연한 내 소임이다.
아무튼 가능한 한 냉정과 객관성을 유지하며 그 사건의 전말을 정리해두고자 한다. - P-1

앞으로 10년 정도 지나면 아직은 생생한 그 사건의 기억도 완전히 희미해지리라. 10년 후의 내게 이 수기는 반드시 재미있는 읽을거리로서 남을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것은 미래의 나를 위해 쓰는 ‘소설‘, 그것도 이른바 탐정소설 부류에 속하는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 이왕 쓸 바에는 그런 기분으로 써내려가도록 하자. - P-1

내가 그 연락을 받은 것은 1989년 7월 초순이었다. 분명 7월에 들어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2일인가 3일쯤이었을 것이다. - P-1

잊을 만하면 아다치 씨가 상태를 보러 오는 것을 제외하면 전혀, 라는 말을 붙여도 될 만큼 사람이 오지 않는다. - P-1

하여튼 내가 그 지시를 쾌히(표면상으로는) 받아들이자 아다치 씨는 일단 나를 염려해주었다.
"여러모로 힘들겠지만 며칠만 같이 지내면 되니까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자세한 일정은 결정되는 대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 P-1

그런 까닭에 나는 저택의 대청소를 비롯해 다양한 준비를 하느라 얼마 동안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예상대로 제법 버거웠다. - P-1

자기 소유의 고급 맨션과 최신 스포츠카가 있고, 용돈까지 두둑하지만 강의도 제대로 듣지 않고 싸돌아다니는 방탕아, 라는 진부한 상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같이 온다는 세 명도 아마 비슷한 부류일 것이라 생각하자 기분이 우울해졌다.
이맘때 굳이 이런 벽촌으로 오지 않아도 될 것을. 여기 말고도 그들이 놀 만한 곳은 얼마든지 있을 텐데.......
새삼스럽게 그렇게 툴툴대며 몇 번이나 한숨을 쉬었던 기억이 난다. - P-1

사이타마의 현 주인 역시 지금까지 업무를 보는 김에 딱 한 번(벌써 4년 전이다) 찾아온 적이 있을 뿐이다. 정말로 - P-1

역시 가능하면 이 집을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한 상태로 유지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예순 살의 노구에게 이 넓은 저택의관리는 이제 힘에 겨운 일인지도 모른다. - P-1

"흔해 빠진 감상입니다만, 역시 경치가 웅대해요. 상상을 훨씬 넘어서서 감동했습니다."
"그거 잘됐군요."
나는 짤막해진 담배를 한 번 더 빨아들이고 재떨이에 버렸다. - P-1

"신경 쓰지 마세요. 적어도 저는 조용한 방과 뜨거운 커피만 있으면 대만족이니까요."
"조용한 것만은 보증하겠습니다. 숲속의 독채거든요." - P-1

뜻밖에도 예의 바른 상대의 태도에 나는 약간 당황했다.
"다른 분들은?"
"저쪽 라운지에 있어요. 금방 올 겁니다." - P-1

"처음 뵙겠습니다. 유키, 가자마 유키의 사촌 히카와라고 합니다. 히카와 하야토. 일부러 데리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 P-1

"저는 도쿄 23구 안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이렇게 도쿄를 떠나보니 그 도시는 이상하다는 실감이 나는군요. 도시의 진화라는 측면에서 따져보면 거기는 틀림없이 어딘가에서 방향이 어긋난 괴물입니다." - P-1

"어제는 어디를 구경하러 가셨습니까?"
나는 히카와에게 물었다.
"혼자 이곳의 명물이라는 감옥 터에 다녀왔습니다."
대답하고 나서 청년은 가볍게 코를 훌쩍였다.
"옛날에 아바시리의 형무소에도 가본 적이 있는데, 역시 분위기가 다르더군요. 그렇게 비교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기는 합니다만." - P-1

다시금 네 사람을 관찰했다. 과연, 듣고 보니 히피인 양 차려입은 가자마 유키와 기노우치 신의 모습은 제법 그럴듯해 보였다. - P-1

그러더니 무슨 신호인지, 집게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을 세운 오른손을 내밀고 내게 "예이" 하고 소리를 질렀다.
"요컨대 밴드 해산 기념 여행을 왔다는 거죠. 사내놈 넷뿐이라 울적하기는 하지만. 뭐, 이삼 일 잘 부탁해요." - P-1

"그런데 히카와 씨."
나는 여전히 이따금 코를 훌쩍대는 조수석의 청년에게 마음에 걸리던 일을 물었다.
"호텔 로비에서 이곳의 저택에 개인적인 흥미가 있다고 하셨는데, 무슨 뜻입니까?"
히카와는 "아아" 하고 목소리를 흘려내더니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아까 전에 피우지 않고 넣어두었던 담배를 다시 꺼내 입술 끝에 물면서 불쑥 중얼거렸다.
"아모 다츠야." - P-1

"엄청 산골이네."
가자마 유키가 불만스러운 듯한 목소리로 말하고 운전석 시트를 쿡 찔렀다.
"저기, 아저씨, 얼마나 더 가야 돼요?"
"이제 절반은 지났습니다." - P-1

"도쿄의 열대야에 비하면 저한테는 천국입니다. 땀 흘리는 걸 정말 싫어해서요."
"올해는 이상하게 덥다고 들었는데요." - P-1

"T** 대학 이학부 출신의 아는 사람만 아는 생물학자죠. 최근 유행하는 이른바 뉴사이언스보다 몇 발 앞서 독특한 학설을 수없이발표한 사람으로, 결국 학계에서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일부에서는 노벨상을 받을 만한 시도였다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저 역시 그 ‘일부‘에 포함되죠."
"삿포로에서 대학교수로 재직하셨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요." - P-1

"풍향고양이라고나 할까요."
"그게 뭡니까?"
"풍향닭의 닭 대신에 함석으로 된 고양이가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새카맣게 칠해져 있거든요."
"아아, 그래서.......!"
"뭐, 아마도 그게 흑묘관이라는 이름의 유래겠죠." - P-1

"저는 이학부에서 형태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생물학의 한 분야죠. 그러다 보니 그의, 아모 다츠야 박사의 이름을 접할 기회가있었습니다." - P-1

"제가 여기 온 후에 받은 수고양이가 한 마리 있습니다. 이름은 칼로입니다."
"칼로?"
"네팔어로 ‘검다‘는 뜻이죠. 나중에 소개해드리지요." - P-1

"새끼 양인데 입에 안 맞으십니까?"
내 말에 가자마는 더 이상 불평을 하지 않고 명령했다.
"와인 좀 더 가져와요."
히카와를 제외한 세 사람은 술을 꽤 좋아하는 듯 이미 두 병이나 비웠다. - P-1

현관홀에서 왼쪽, 그러니까 동쪽으로 뻗은 복도를 따라 2층과 거의 동일하게 네 개의 방이 위치해 있다. 북쪽 앞편이 거실 겸 식당,
뒤편은 앞방과 이어진 응접실로 나는 ‘살롱‘이라고 부른다. 남쪽에는 앞편에 주방과 팬트리(식료품 저장실)가, 뒤편에 내가 쓰는침실이 있다. 1층에는 방이 하나 더 있는데, 현관홀 서쪽의 2층까지 뚫린 장서실이다. 차 안에서 히카와에게 이야기한 아모 다츠야박사의 책은 장서실에 늘어선 책장에 남아 있다. - P-1

그 후에도 식사가 진행되는 동안 젊은이들은 똑같은 패턴의 이야기를 되풀이한 것 같다. 가자마가 뭐라고 말하면, 기노우치가 그말을 받아 시시한 농담을 늘어놓는다. 아사오가 나지막하게 웃는다. 히카와는 그저 모르는 척. - P-1

"제 사촌 동생이기는 하지만 정말 한심합니다. 이성을 잃은 인간만큼 추한 건 없죠."
실연하든 술을 마시든 자신은 늘 이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 묻어나는 말투였다. - P-1

그 후에도 젊은이들의 술자리는 계속되었다. 팬트리에서 술을 더 꺼내어준 후에 나는 그들을 남겨놓고 살롱에서 나왔다. 그때 문득귀에 이런 말이 들어왔다. - P-1

"..요전의 엘, 아직 있지?"
가자마 유키가 기노우치 아니면 아사오에게 한 말이었다.
"나중에 가져와. 뭘 걱정하고 그래. 여긴 우리 아빠 별장이라고......." - P-1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절을 이어받고 소설가는 그만둘 거야. 절의 주지가 부업으로 사람 죽이는 이야기를 쓰다니 보기에 그다지안 좋잖아."
어디까지 진심인지 긴가민가하기는 한데....... - P-1

시시야 가도미는 가와미나미가 현재 담당하고 있는 추리작가 중 하나인 동시에, 몇 년을 알고 지낸 친구이기도 하다. 원래 오이타현에 있는 어떤 절 주지의 아들로, 제대로 된 직장 없이 결혼도 않고 빈둥대며 30대 중반을 보내고 있었다. 가와미나미는 그 무렵부터 그를 알고 지냈는데, 그 후에 어쩌다 보니 기단샤에서 데뷔작이 나오게 되었다. 재작년, 1988년 9월의 일이다. - P-1

각설하고, 갑작스레 이런 말씀을 드려 몹시 죄송합니다만 실은 간절한 바람이 있어 펜을 들었습니다. 아주 특별한 사정이 있어 작가 시시야 가도미 선생님을 꼭 한 번 뵙고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몰상식한 부탁임은 잘 압니다만, 어떻게 배려해주실 수 없을까요? - P-1

"실은, 기억을 잃었습니다. 병원에서 의식을 되찾기 이전의 기억을 깡그리!"
"기억상실증이라고요?"
급히 되묻자 상대는 한숨을 쉬는 듯한 목소리로 "예" 하고 대답했다.
"역행성 건망증이라고 하던가요? 이름, 주소, 직업 어느 것 하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 P-1

"저는 그때 그 호텔에 묵고 있었습니다. 미처 탈출하지 못해 중상을 입었죠. 위기일발의 상황에서 구출되어 살았습니다만."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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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가슴이 뜨거워져라 - 열정 용기 사랑을 채우고 돌아온 손미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손미나 지음 / 삼성출판사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다시 가슴이 뜨거워져라』 ― 밥벌이의 지겨움을 넘어, 가슴을 다시 뛰게 하는 풍경들

손미나를 따라 부에노스아이레스를 걷다 보니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삶에서 눈길을 끄는 모습이 하나 있었다. 먹고사는 직업과 자신이 좋아하는 예술을 굳이 하나로 만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직업은 직업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그 곁에 또 하나의 자기 삶을 자연스럽게 놓아두고 있었다.

은행원이면서 가수이고, 변호사인데 춤을 춘다. 버스기사로 일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여행사 직원이면서 어릿광대로 무대에 선다. 루카스의 여동생은 생물학자가 본업인데 서커스까지 한다.

물론 ‘버스를 몰면서 그림을 그린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다가는 사고 난다. 버스를 모는 것이 밥벌이라면 그림을 그리는 것은 그 사람의 또 다른 삶이라는 이야기다.

몇 사람의 모습만으로 아르헨티나 사람 전체가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손미나가 만난 사람들에게서는 예술이 특별한 사람들의 전유물도 아니고, 먹고살 만큼 벌고 시간과 돈이 남아야 비로소 누릴 수 있는 사치도 아니었다. 노래하고, 춤추고, 그림을 그리고, 서커스를 하는 일이 생활 한쪽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었다.

삶을 예술처럼 산다는 것은 어쩌면 이런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예술가로 살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밥벌이가 한 사람의 삶을 전부 차지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자기 가슴을 뛰게 하는 무엇인가를 일상 속에 품고 사는 것이다. 직업이 그 사람의 전부일 필요는 없다.

김훈은 말한다. 밥벌이는 지겨움이라고.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이 언제나 즐거울 수는 없다. 아르헨티나 사람이라고 월요일 아침마다 신나게 출근하고 직장 일이 늘 즐거울 리도 없다. 밥벌이는 어디에서든 지겨울 수 있다. 그래서 오히려 밥벌이 바깥에 또 하나의 자기 삶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김훈의 ‘밥벌이의 지겨움’과 손미나가 아르헨티나에서 본 ‘생활 속 예술’은 반대말이 아니라, 어쩌면 서로를 보완하는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노래와 춤이 있고, 누군가에게는 그림과 서커스가 있다.

나에게는 산이 있다. 내게 등산은 예술이다.

산길을 걷고, 능선을 넘고,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숲과 바위를 바라보고, 정상에 올라 인간이 만들어놓은 세상을 내려다보는 시간은 내게 단순한 운동이 아니다. 그 시간만큼은 직함도 밥벌이도 잠시 내려놓고 한 사람으로 걷고 보고 느낀다.

꼭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거나 악기를 연주해야만 예술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자기 삶에 밥벌이와는 다른 리듬 하나를 만들어놓고 그 시간을 즐기며 살아가는 것. 넓게 보면 그것 역시 생활 속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프롤로그에서 말했던 ‘억겁과 찰나’도 여기에서 다시 이어진다. 찰나에도 미치지 못하는 짧은 삶을 밥벌이에만 모두 내줄 수는 없다. 자기 삶을 값지게 만드는 무엇인가를 하나쯤은 품고 살아야 한다.

그것이 예술일 수도, 산일 수도, 여행일 수도 있다.

책을 덮고 나니 내 가슴을 다시 뛰게 하는 아르헨티나의 다섯 가지 풍경이 떠올랐다.

1. 나의 영웅, 체 게바라 ― 여행이 한 사람의 눈을 바꾸다

첫 번째는 에르네스토 게바라. 우리가 알고 있는 ‘체 게바라’다.

쿠바 혁명의 상징으로 더 유명하지만, 본명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 세르나는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에서 태어나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한 아르헨티나 청년이었다.

1952년, 스물세 살의 게바라는 친구 알베르토 그라나도와 함께 ‘라 포데로사 Ⅱ’라는 오토바이를 타고 남미 여행을 시작했다. 오토바이는 여행 도중 고장 나 더 이상 함께하지 못했지만 두 사람은 걷고, 차와 배를 얻어 타면서 여행을 계속했다.

그 과정에서 젊은 게바라는 광산노동자와 가난한 농민, 원주민과 나병환자들을 만났다. 강의실이나 책 속에서가 아니라 자기 눈으로 라틴아메리카의 빈곤과 불평등을 보았다. 이 여행 하나만으로 그가 혁명가가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훗날 그의 세계관이 형성되는 데 중요한 경험 가운데 하나였던 것은 분명하다.

그때 남긴 기록은 훗날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로 세상에 알려졌다. 1952년 남미 여행 당시의 기록은 게바라가 1967년 볼리비아에서 죽은 뒤 26년이 지난 1993년, 스페인어판 『Notas de viaje』로 처음 출간되었다. 여행을 떠난 지 약 41년 만이었다. 영어판 『The Motorcycle Diaries』는 1995년에 출간되었다.

국내에서는 2000년 출판사 **‘이후’**에서 『체 게바라의 라틴 여행 일기』라는 제목으로 처음 번역되었고, 2004년 황매에서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라는 제목으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2012년에는 황매(푸른바람)에서 개정판이 나왔지만 현재 2004년판과 2012년판 모두 절판되었고, 새 책으로는 구하기 어렵다.

나는 2004년 황매판으로 이 책을 읽었고, 지금도 그 책을 소장하고 있다.

손미나에게 아르헨티나 여행이 흔들린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한 시간이었다면, 젊은 게바라에게 남미 여행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바꾸어놓은 시간이었다. 두 사람의 삶과 지향은 전혀 다르지만, 여행이 단순한 장소의 이동을 넘어 한 인간의 삶에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는 맞닿아 있다.

어떤 여행은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하고, 어떤 여행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향 자체를 바꾸어놓는다.

2. 마라도나와 메시 ― 축구, 전쟁의 기억을 넘어

두 번째 풍경은 축구다. 마라도나와 메시.

특히 디에고 마라도나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이다.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가 맞붙은 그해 8강전에는 축구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역사가 깔려 있었다.

불과 4년 전인 1982년, 아르헨티나와 영국은 포클랜드 전쟁을 치렀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말비나스 전쟁이라 부른다.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은 자국에서 훨씬 가까운 포클랜드 제도를 기습 점령했다. 영국 본토에서는 1만 킬로미터 넘게 떨어진 남대서양의 섬이었다. 아르헨티나 지도부는 영국이 그 먼 섬을 되찾기 위해 대규모 군사력을 실제로 투입할 가능성이 낮다고 오판했다.

그러나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의 대처는 달랐다.

영국은 항공모함을 중심으로 대규모 기동함대를 남대서양까지 보냈다. 그 먼 남대서양까지 해군과 공군력을 투입했고, 영국 핵잠수함은 아르헨티나 순양함 제네랄 벨그라노를 격침했다. 영국군은 포클랜드에 상륙했고, 전쟁은 약 74일 만에 아르헨티나의 패배로 끝났다.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이 영국의 대응 의지를 과소평가했다면, 대처는 그 오판에 함대를 남대서양까지 보내는 것으로 대처했다.

말 그대로 대처의 대처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리고 4년 뒤인 1986년 6월 22일, 멕시코시티 아스테카 경기장에서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가 다시 만났다.

전쟁은 끝났지만 기억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두 나라 선수들이 총을 들고 싸우는 것도 아니었고, 축구경기의 승패가 전쟁의 승패를 뒤집을 수도 없었다. 그러나 포클랜드 전쟁에서 패배한 지 겨우 4년밖에 지나지 않은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이 경기가 그저 월드컵 8강전 하나로만 느껴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후반 6분, 마라도나가 잉글랜드 페널티지역 안으로 파고들었다. 공이 높이 떠오르자 골키퍼 피터 실턴도 함께 뛰어올랐다.

키 165cm의 마라도나가 183cm의 실턴보다 먼저 공을 건드렸다.

머리가 아니었다.

손이었다.

심판은 보지 못했고 골을 인정했다.

훗날 마라도나는 그것을 이렇게 불렀다.

‘신의 손.’

그런데 불과 4분 뒤, 마라도나는 이번에는 누구도 시비를 걸 수 없는 골을 만들어냈다.

자기 진영에서 공을 잡은 그는 잉글랜드 선수들을 차례로 제치며 약 60m를 질주했고, 마지막에는 골키퍼 실턴까지 따돌린 뒤 골문 안으로 공을 밀어 넣었다. 훗날 ‘세기의 골’이라 불리게 된 장면이다.

한 골은 손으로 만들었고, 다른 한 골은 오직 자신의 두 발로 만들었다. 하나는 명백한 반칙이었지만, 다른 하나는 마라도나가 왜 불세출의 축구선수로 불리는지를 보여주는 골이었다.

아르헨티나는 그 두 골로 잉글랜드를 2대 1로 꺾었다.

전쟁에서의 패배를 축구경기 하나로 되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불과 4년 전 영국에 패했던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그날의 승리가 어떤 감정으로 다가왔을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마라도나 역시 훗날 이 경기를 포클랜드 전쟁의 기억과 연결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아르헨티나는 준결승에서 벨기에를 꺾고 결승에 올랐다. 상대는 서독이었다. 3대 2 승리.

1986년, ‘신의 손’과 ‘세기의 골’을 남긴 마라도나는 마침내 월드컵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그 장면으로부터 36년이 흐른 2022년, 이번에는 리오넬 메시가 카타르에서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다. 마라도나가 있던 시대와 메시가 있던 시대는 달랐지만, 두 사람을 통해 보이는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축구에 대한 열정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3. 탱고 ― 두 사람이 함께 걷는 삶

세 번째 풍경은 탱고다.

축구가 경기장을 뜨겁게 만드는 열정이라면, 탱고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거리와 사람들의 삶 속에 스며든 또 다른 열정이다. 탱고를 생각하면 다시 이 책에서 만난 ‘생활 속 예술’로 돌아오게 된다.

책에는 한 노인이 피아노 반주에 맞춰 탱고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카를로스 가르델은 아름다운 탱고 선율과 노랫말로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상처와 한(恨)을 달랬고,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의 노래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이어지고 있었다. 탱고는 그들에게 단순히 듣고 즐기는 음악이 아니라 사랑과 이별, 상처와 추억을 담아내는 삶의 한 부분이었다.

손미나가 만난 현지인은 탱고에 사랑과 인생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며, 머리가 아닌 가슴과 영혼으로 느끼는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탱고를 두고 ‘두 사람이 함께 걷는 것’이라고 했다. 다만 누군가와 제대로 함께 걷기 위해서는 먼저 혼자서도 잘 걸을 수 있어야 한다.

춤 이야기인데 듣고 보면 삶의 이야기다.

서로 기대어 걷되 자기 발로 설 수 있어야 하고,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상대의 움직임을 느끼며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야 한다. 어쩌면 탱고는 사랑과 인생을 두 사람이 함께 걷는 모습으로 보여주는 춤인지도 모른다.

은행원이 노래를 부르고, 변호사가 춤을 추고, 생물학자가 서커스를 하는 도시. 그렇게 예술이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들어와 있는 곳이니, 탱고가 공연장의 춤에 머물지 않고 부에노스아이레스 사람들의 삶과 함께 이어져온 것도 이해할 만하다.

4. 파타고니아 ― 인간을 작게 만드는 대자연

네 번째 풍경은 파타고니아다.

파타고니아는 한 나라의 특정 지역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아르헨티나와 칠레 두 나라에 걸쳐 펼쳐진 남아메리카 남부의 광대한 지리적 영역이다. 안데스와 빙하, 끝없이 펼쳐진 대지와 바람이 이어지는 곳이다. 인간이 만들어놓은 것보다 자연의 크기가 훨씬 크게 느껴지는 땅이다.

손미나는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의 산타크루스주 엘 칼라파테까지 내려갔다.

프롤로그에서 지구 밖의 우주로 시선을 옮겨 인간이라는 존재를 티끌에 비유했다면, 파타고니아에서는 굳이 우주까지 나가지 않아도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끝없는 대지와 거대한 빙하, 안데스의 산줄기 앞에 한 사람을 놓아보면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그대로 드러날 것 같기 때문이다.

산과 웅장한 자연을 좋아하는 나에게 파타고니아는 언젠가 반드시 직접 걸어보고 싶은 땅이다.

그리고 손미나를 따라 엘 칼라파테까지 내려간 내 시선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더 남쪽으로 향한다.

5. 우수아이아 ― 정수일 교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세상의 끝으로

다섯 번째 풍경은 티에라델푸에고주의 우수아이아다.

우수아이아 역시 넓은 의미의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에 속한다. 남아메리카 남쪽 끝자락에 자리해 흔히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도시다.

손미나는 산타크루스주의 엘 칼라파테까지 갔지만, 나는 언젠가 그보다 더 남쪽으로 내려가 우수아이아까지 가보고 싶다.

여기에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내가 존경하는 문명교류학자 정수일 교수님은 『문명의 보고 라틴아메리카를 가다』를 쓰기 위한 답사에서 노구를 이끌고 우수아이아까지 내려가셨다. 책에는 아예 「지구의 땅끝 마을, 우수아이아」라는 장이 있고, 그 뒤로 비글해협과 마젤란해협 답사가 이어진다.

언젠가는 나도 정수일 교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파타고니아를 더 남쪽으로 내려가 우수아이아와 비글해협 앞에 직접 서보고 싶다.

6. 다섯 풍경이 가리키는 곳 ― 다시 뜨거워지는 삶

체 게바라, 마라도나와 메시, 탱고, 파타고니아, 그리고 우수아이아.

책을 덮고 떠올린, 내 가슴을 다시 뛰게 하는 아르헨티나의 다섯 가지 풍경이다.

혁명가와 축구선수, 춤과 음악, 거대한 자연과 세상의 끝에 있는 도시. 서로 전혀 다른 풍경들이지만 하나씩 따라가다 보니 결국 한곳으로 모인다.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나는 이 짧은 삶을 무엇으로 채우며 살아갈 것인가.

손미나는 자신의 삶이 흔들리던 시기에 아르헨티나로 떠났다. 그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 풍경을 따라가며 나 역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다시 생각했다.

나에게는 산이 있고 여행이 있다.

그것들이 밥벌이와는 다른 삶의 리듬을 만들어주고, 내가 아직 가슴 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해준다.

프롤로그에서 생각했던 ‘억겁과 찰나’도 결국 여기로 돌아온다.

억겁의 세월에 비하면 인간의 삶은 찰나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렇다고 허무하게 살 이유는 없다. 오히려 너무 짧기 때문에 더 알차고 찰지게 살아야 한다.

보고 싶은 것을 보고, 가고 싶은 곳에 가고,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아가는 것. 밥벌이에 삶 전체를 내주지 않고 나를 움직이게 하는 무엇인가를 하나쯤 품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찰나보다 짧은 인생을 값지게 살아가는 한 방법일 것이다.

그래서 『다시 가슴이 뜨거워져라』라는 제목은 책을 덮은 뒤 처음보다 더 넓은 뜻으로 다가왔다.

다시 뜨거워져야 할 것은 사랑만이 아니다.

삶을 향한 가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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