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튼 여러분은 어제 거기서 약에 취해 모두 함께 그 여자와 성관계를 맺었다는 거로군요."

다 그 재수 없는 년 때문이라는 심정이 흠씬 묻어나는 말투로 가자마는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았다. 어제는 어떻게든 레나의 환심을사려고 개처럼 꼬리를 흔들던 주제에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어이가 없었다.

이것은 행운으로 간주해도 되리라. 두 사람의 이야기에 따르면 레나가 어제 이 저택에 온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우리 다섯명밖에 없다는 뜻이니까.

이렇게 사건 그 자체에 관한 일련의 검토를 마친 시점에서 나의 의지는 확고해졌다. 즉, 쓰바키모토 레나의 죽음을 우리 다섯 사람만의 비밀로 삼아 어둠 속에 묻어버리려는 의지 말이다.

"그렇군요"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장서실에서 본 시체의 얼굴을 떠올리고 그때까지 한순간도 품지 않았던 연민을 느꼈다. 레나는 레나대로 나름의 고뇌와 좌절을 경험하며 스물 몇 해의 인생을 살아왔을 테니까. 하지만 그녀의 개인적 사정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더 이상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 후에 나는 장서실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의 은폐공작을 돕게 되었다. 레나의 본명을 숨긴 것은 만에 하나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이 수기를 읽을 경우(그런 일은 없겠지만)에 대비한 일종의 예방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레나의 본적과 생년월일 및 키. 본적은 니가타. 생년월일의 정확한 숫자는 잊어버렸다. 다만 레나의 나이가 만 25세로 밝혀진것은 기억난다. 키는 분명 156센티미터였다.

"아아, 그야...... 아빠는 내가 하는 말이라면 뭐든지 들어주려 하시니까. 내가 이 집이 마음에 든다고 하면..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문제는 없을 것 같군요."

"포의 「검은 고양이」를 바탕에 둔 그 엉터리 이야기를 이끌어냈다. 그 이야기가 이번에는 흑묘관의 ‘현실‘에 영향을 미치려 하고 있다....... 기묘하다면 기묘하고, 아이러니하다면 몹시도 아이러니한 순환이었다.

"아아, 그야...... 아빠는 내가 하는 말이라면 뭐든지 들어주려 하시니까. 내가 이 집이 마음에 든다고 하면.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문제는 없을 것 같군요."

"저를 못 믿으시겠습니까?"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여기까지 온 이상 저는 엄연한 공범입니다."
나는 히카와의 눈을 빤히 쳐다보면서 말했다.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여러분을 배신하지 않겠습니다. 원래 여기에 뼈를 묻을 작정이었으니 젊은 여러분을 위해 묘를 지켜드리지요."

"보십시오."
그렇게 말하고 문을 열자 안쪽에는 우중충한 회색 벽이 버티고 서 있었다. 이쪽을 가만히 쳐다보는 히카와, 그리고 그 뒤에 서 있는 세 젊은이에게 나는 설명했다.
"처음부터 이랬습니다. 6년 전, 제가 이 집에 고용되었을 때부터요. 왜 이런 문이 있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는 오른팔을 들어 집게손가락을 폈다. 손가락은 엉거주춤 일어선 가자마의 어깨 부근을 똑바로 가리키고 있었다. 그제야 나도 이변을 알아차렸다. 그 부근의 벽에 벽돌 한 개분의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다.

우리가 거기서 본 것은 더러운 하늘색 블라우스를 입고 빨간 베레모를 쓴 인간의 백골사체였다. 벽에 기대어 파란 멜빵바지를 입은두 다리를 바닥에 내팽개친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리고 발치에는 조그만 네발짐승의 백골이 하나 더 드러누워 있었다.

히카와의 추측대로 거기는 ‘방‘이 아니라 ‘복도‘였다. 폭이 1미터도 되지 않는 좁은 통로가 암흑 속으로 뻗어 있었다. 곰팡내 같기도하고 쉰내 같기도 한, 뭐라고도 형용하기 힘든 냄새가 감돌고 있었다. 지하수가 스며 나오는지 발아래가 조금 젖어 있었다. 히카와가 든 손전등 빛에 의지해 우리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죽였다...... 아모 박사가?"
"그렇겠죠. 그렇게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그 그림 속의 여자아이는 박사의 딸인지도 모른다고 했던가요. 우리로서는 그가왜 자기 딸을 죽였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만."

"장서실에 걸려 있던 그 그림이에요. 거기 그려져 있던 여자아이, 하늘색 블라우스를 입고 빨간 베레모를 쓰고 있었잖아요."
"아아, 그러고 보니 분명."

"어제 기노우치가 죽은 그 여자를 상대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옛날에 이 집에서 무시무시한 사건이 벌어졌다. 정신이 나간 아모 박사가 아내를 죽여, 아내가 귀여워하던 검은 고양이와 함께 지하실 벽에 넣어버렸다. 그래서 이 저택은 흑묘관이라고 불린다.
그런 이야기죠. 물론 그 녀석이 농담 삼아 꾸며낸 이야기입니다. 아마 어렸을 때 포의 「검은 고양이라도 읽었겠죠. 그러니 아까 이시체를 보고 제일 놀란 건 그 녀석이 아닐까 하는데요.

몽땅 달라붙어 무너뜨린 벽을 다시 쌓아올리기 시작했다. 부서진 낡은 벽돌을 치우고 새 벽돌을 쌓은 후 위에다 모르타르를 바르는작업이다. 젊은이들이 그런 미장이 일을 해본 경험이 있을 리 없으니 내가 세세하게 작업을 지시해야 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알겠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어젯밤 사건의 범인이 꼭 여러분 네 명 가운데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거죠?"
"예, 그렇습니다."
히카와의 눈에서 절실함이 묻어났다. 나는 그런 그를 은근히 동정하며 장서실의 쌍바라지 문으로 향했다.

"그럼 역시 어젯밤에 이 방은 완전한 밀실 상태가 아니었군요."
"유감스럽게도 그렇지는 않습니다."
나는 동정 어린 눈으로 청년의 진지한 얼굴을 쳐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저는 이 비밀 구멍의 존재를 알았지만 일부러 말하지 않았습니다. 말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모르시겠습니까? 뭣하면 지하실에 내려가서 조사하셔도 상관없습니다만. 이 ‘문‘은 장서실에서만 열 수 있습니다. 아래에서는 열리지 않아요."
"그런."
히카와는 안경에 손을 대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눈으로 바닥에서 입을 벌린 검은 구멍을 내려다보았다.
"그렇다면......."
"상황에는 변화가 없다는 말입니다.

"걱정 마세요. 아유타 씨께는 더 이상 누를 끼치지 않겠습니다. 저는 앞으로 죽을 때까지 어떤 일이 있어도 이성을 잃지 않을 겁니다. 믿어주세요."

"그 여자, 레이코를 닮았잖아."
"레이코를? ......아아, 뭐 그렇지."
"그러니까 어젯밤 네 눈에는 그 여자가 레이코로 보인 게 아닌가 싶어서."

"술 취하면 늘 떠들어댔잖아. 레이코, 망할것. 뒈져버리라고 했던가? 넌 그 욕구를 환각 속에서 실행에 옮겼어."
"내, 내가 죽였다는 거야?"
"그렇게 단정 짓는 건 아니야. 동기의 문제를 검토하는 것뿐이지."

하네다에서 지토세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시시야와 가와미나미는 대화를 나누었다. 가와미나미가 바쁜 탓에 두 사람은 사흘 만에야 만났다.
"난 사이타마의 가자마 씨에 대해서야. 확실히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냈어."

"말 그대로 히카와의 어머니는 전화를 못 받아. 전화라는 기계 그 자체를 못 쓰는 거야. 청각 장애와 언어 장애가 있어서."

"가자마 유키는 작년 말에 사고로 죽었어."
"뭐라고요?"
"유키뿐만이 아니야.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하나 있던 유키의 여동생까지 포함해 가족 모두가 한꺼번에 세상을 떠났지. 교통사고였다는군. 네 명이 타고 있던 차가 덤프트럭과 정면충돌했대."

"아유타 씨의 신원을 조사하던 경찰도 아마 여기서 좌절했을 거야."
시시야는 뾰족한 턱의 끄트머리를 긁적였다. 가와미나미는 의욕을 내어 물었다.
"그럼 가자마 씨의 소유물이었던 별장은 어떻게 됐나요?"
"개인자산이었던 모양이니까 평범하게 생각하면 상속권을 지닌 친척의 손에 넘어갔겠지."

그 수기 속에서 히카와는 가자마의 아버지를 ‘숙부‘라고 불렀다. 즉, 가자마의 아버지가 히카와의 부모 중 한쪽의 동생이거나, 가자마의 어머니가 히카와의 부모 중 한쪽의 동생이다* 가령 앞쪽일 경우, 히카와와 가자마의 성이 다르니 분명 히카와의 어머니가 가자마 씨의 누나에 해당한다는 이야기다.

가자마 유키는 사고사. 히카와 하야토는 주소불명. 나머지 두 사람, 기노우치 신과 아사오에 대해 조사할 방법은 거의 없다. 역시문제의 저택을 직접 찾아가 보는 것이 제일 빠른 길일 듯하다.

"나는 거울 세계에 사는 사람이다."
창문에 시선을 고정한 채 시시야는 불쑥 그렇게 말했다.

"팬이란 게 이렇게 고마운 존재일 줄이야."
가와미나미가 반쯤 놀리듯이 말하자 시시야는 아무 말도 없이 눈썹을 찌푸리더니 머리 뒤에 깍지를 끼고 시트에 몸을 깊이 묻었다.
"이상, 보고 끝."

"응. 나도 이상해서 물어봤는데 히카와는 아무래도 그쪽으로 가자마자 사는 곳을 옮긴 모양이야. 그런데 이사한 곳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이쪽에 알리지 않았대. 그래서 연말에 사고가 일어났을 때도 이쪽에서 연락할 방도가 없었다는군."

"그렇게 사악한 생물은 또 없어. 이 나라의 정치인 놈들처럼 불결하고 교만하고 탐욕스러울뿐더러, 한낮에 카페에 모이는 아줌마들처럼 창피를 모르고 제멋대로에...... 아아, 생각만 해도 속이 거북해. 게다가 말이야, 코난 군."

"장마가 없어서?"
가와미나미 역시 그 점은 부러웠다. 하지만 규슈에서 나고 자란 그는 이곳의 겨울 추위를 견디지 못할 것이 뻔하니 이곳에 살고싶은 생각은 없었다. 시시야는 "흥" 하고 콧김을 내뿜었다.

"그래. 아모 박사는 도지슨이었다. 요점은 그거야."

자그마한 백발 노부인이었다. 가냘픈 몸에 비해 매우 큰 흰옷을 입은 그녀는 갈색 가죽을 댄 팔걸이의자에 가볍게 올라앉아 있었다. 두 사람을 보고 방긋 웃는 모습에서는 대학교 선생님이라기보다 시정의 마음씨 좋은 여의사 같은 분위기가 풍겼다.

여사는 찻잔을 손에 든 채 내객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방긋방긋 미소 짓는 표정은 변함없지만, 시선만은 흠칫 놀랄 만큼 날카로웠다.

"예, 예. 분명 오스트레일리아의 타스마니아 대학에 이삼 년 계셨어요. 저보다 몇 살 어리신데...... 갓 서른이 되셨을 뿐인데 조교수로."
"우수한 분이었군요."
"우수하달까 천재 기질이 있는 분이었죠. 하지만 오히려 그게 걸림돌로 작용해서 학계에서는 고립되신 듯해요."

"예. 내일 구시로로 가서 아유타 씨와 합류할 예정입니다. 문제의 집은 모레에나 찾겠군요. 저기, 선생님. 아모 박사님의 별장에 관해 모르십니까? 흑묘관이라고 불렸다는데요."

"과음하신 탓에 일이 터졌죠. 술기운이 올라 선생님보다 지위가 높은 교수에게 덤벼들어 때렸다던가. 그것도 한낮에 대학 안에서일어난 일이었어요. 원래 학교 안에서도 별종 취급을 받던 분이라 아무도 감싸주는 사람이 없어서 결국......."

"예. 저도 구시로 출신이에요. 유학 가셨던 곳의 이야기 같은 걸 자주 들었어요. 차로 집까지 저를 바래다주기도 하셨고, 술을 좋아해서 술 마시러 갈 때 끼워주기도 하셨죠. 저 두 사람 수상하지 않냐고 수군대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이야기하면서 노부인은 그리운 듯이 눈을 감았다.

이번에 여사는 아까보다 훨씬 오래 머뭇거렸다. 아무래도 여사에게 아모 박사의 추억은 현재에 가까워질수록 꺼내기 힘든 이야기가 늘어나는 듯하다.

"선생님은 자신의 신체적인 특징을 말씀하신 거예요. 전내장 역위증이라고 아시죠? 심장뿐만 아니라 내장 전체가 좌우 반대인 거죠. 아모 선생님은 선천적으로 그렇게 태어나셨대요."
전내장 역위증.

이것은 핵심적인 문제였다. 아유타 도마의 수기에 나온 지하실의 백골시체는 도대체 누구인가. 지금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그 백골시체는 행방불명된 리사코의 것일 가능성이 커지는데.......

그랬구나 하고 가와미나미는 마음속으로 손뼉을 쳤다. 내장 전체가 보통 사람과는 좌우가 뒤바뀐 위치에 있다. 그런 신체적인 기형을 그는 ‘거울 세계에 사는 사람‘이라는 비유를 사용해 공언(고백이라고 해도 될까)한 것이다.

"너무 단락적일지도 모르지만, 난 한 가지 결론을 내렸어. 다치바나 교수가 어쩐지 미묘한 말투로 그랬잖아. 박사는 여자에 흥미가없었을 거라고. 거기에다 아모 박사는 도지슨이라는 나카무라 세이지의 말을 덧붙여 생각해봐. 어때? 뭔가 감이 오지 않아?"

"그건 그렇고 그런 자신의 신체적 특징을 ‘거울 세계에 사는 사람‘이라는 말로 표현하다니, 아모 박사에게는 역시 학자보다 문학가나 화가의 자질이 있었다고 봐야겠군. 언젠가 꼭 그의 논문을 찾아서 읽어야겠어."

이럴 때는 무심코 4년 전의 ‘십각관‘ 사건이 떠오른다. 시시야와 둘이서 탐정 흉내를 내며 여기저기 돌아다닐 때마다 헛수고를 했다는 느낌과 자기혐오에 시달리던 기억....... 그때와 지금은 사정이 완전히 다르지만, 이런 꼴이 되고 보니 역시 자신은 ‘명탐정‘감이 아님을 통감한다. 아니, 이래서야 왓슨 역할조차 실격일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