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니발레 카라치, 이아손과 메데이아 이야기, 1583~1584년, 팔라초 파바 그림 양옆에 세워진대리석 조각까지 모두 그림이다. 사람들이 올려다봤을 때 진짜 조각상처럼 느끼도록 시선의 각도에 맞춰 그렸다. - P156

원래 파르네세 가문은 파르마 지역을 지배하는 명문가였습니다. 이런 집안이 교황까지 배출하면서 더욱 막강해집니다.
파르네세 가문 출신인 바오로 3세가 교황에 오르자 가문 사람들은 권위에 어울리는 대저택을 로마 한복판에 짓기 시작합니다. 오른쪽의 지도와 같이 주변 땅을 사들여 저택 앞에 큰 광장을 만들고,
길도 팔라초 파르네세를 중심으로 직선으로 다시 만들어버린 거죠. 그 결과 새로운 도시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 P158

팔라초 파르네세, 1517~1589년, 로마 
현재는 주이탈리아 프랑스 대사관 건물로 사용하고 있다. - P158

파르네세 가문의 문장(왼쪽)
 팔라초 파르네세 2층 중앙 발코니에는 여섯 송이의 백합이 박힌 가문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그 위로 바오로 3세를 기념하는 교황의 관이 올라가 있다.
티치아노, 교황 바오로 3세와 그의 손자들, 1545~1546년, 카포디몬테 국립박물관(오른쪽)
 바오로 3세는 파르네세 가문이 배출한 교황이다. 바오로 3세를 중심으로 왼쪽엔 추기경 알레산드로 파르네세, 오른쪽엔 파르마 공작인 오타비오 파르네세가 있다. - P159

바로 사랑입니다. 성경에서 사랑은 신의 본질이자 큰 덕목입니다. 신들의사랑을 다룬 이 그림에서 우리는 종교적 가르침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물론 충분히 이중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밖에서는 엄격한 규율을 적용하다가 정작 안에서는 환상적이고 매혹적인 축제를 즐긴 셈이니까요. 그러나 두 개의 세계가 공존하던 시기가 바로 안니발레가 살던 17세기였고, 그 모순을 엿볼 수 있는 곳을 파르네세 갤러리라고 생각하면어떨까요? - P168

두 화가는 거의 동시에 로마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비교할 수밖에 없습니다. 안니발레는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의 프레스코화 계보를 이으면서도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렸습니다. 그를 고전적 아름다움을 계승한 정통파 화가로 부르는 이유입니다. 즉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의 이상화된 표현을 중시하면서도 시각적으로 더욱 강렬하게 풀어냈던 겁니다. - P169

반면 카라바조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모든 주제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았고, 그 과정에서 로마의 하층민을 그림의 주인공으로 삼아 기존의 상식을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카라바조를 사실주의자로 소개하는 이유입니다.
두 화가는 그리는 방식도 달랐습니다. 안니발레는 수많은 드로잉을 통해대상을 연구하고 체계적인 그림을 그렸습니다. 반면 카라바조는 관찰한모델을 드로잉 없이 캔버스 위에 바로 그렸습니다. 이 때문에 카라바조의드로잉은 거의 전해지지 않습니다.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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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나가서 택시를 탈지 그냥 다음 열차를 타고 갈지 고민하며 승강장을 걷고 있었어요. 그런데,
"콰앙!"

찌그러진 열차 안에 검은 후드 티의 남자가 있는 거예요! 멀어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저를 바라보고 있는 게 느껴졌어요.

만약에 제가 내리지 않고 그 열차에 계속 타고 있었다면...... 제가 그 사고의 유일한 사망자가 됐을까요? 그 검은 후드 티의 남자는 아직도 저를 노리고 있을까요? 1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전 언제 어디서 검은 후드 티의 남자를 또 만나게 될지 몰라 늘 불안에 떨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좀 특이한 눈을 가지고 있어요.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저는 보이거든요. 어릴 때부터 그랬는데 신내림 받을 정도는 아니었고요.

‘그래 뭐........ 대낮이고 사람도 많은데 별일 있겠어?‘
다행히 정말 별일은 없었어요.

그런데요. 아까 점심때와는 달리 가게 사장님들이 뭔가 분주하게 움직이시더라고요. 화장실로 향하면서 보니 다들 가게 앞에 가림막을 치면서 영업을 마감하는 분위기였어요.

1달 전쯤에 제 의지로는 절대로 가지 않는 곳을 갈 수밖에 없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네, 망했습니다. 스태프들 점심을 시장 안에 있는 2층 식당가에서 먹기로 했다는 거예요.

건물 바로 앞에 대형 골동품 시장인 ‘ㅇㅇ풍물시장‘이 있었거든요. 2층으로 된 엄청 큰 대형 시장인데 건물 안은 말할 것도 없고 건물 밖에도 골동품들이 막 쌓여 있었어요. 다른 촬영 스태프들은 신기하다고 밖에서 구경하고 그랬는데 저는 그쪽으로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열일하는 척을 했죠.

제가 그냥 겁이 많은 것일 수도 있죠. 근데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예요. 그것들을 아는 척했다가는 무슨 일을 겪게 될지 모르거든요.

폐건물 이런 곳은 안 보여도 무서우니까 당연히 안 가고요. 묘지나 장례식장, 박물관 그리고 골동품 파는 곳도 피하는 곳 중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영(靈)들이 많이 모여 있을 법한 장소는 웬만하면 피하는 거죠. 못 본 척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떼로 모여 있으면 그중에서 절 알아보는 놈들이 있거든요. 특히 밤에는 절대로 안 갑니다.

재빨리 일을 마치고 나왔는데 그 몇 분 사이에 이미 점포들은 영업을 마감하고 사람이 싹 빠져서 주변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런지 낮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거예요. 아까는 신기하기만 했던 골동품들이 왠지 을씨년스러워 보인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높고 날카로운 꽹과리 소리, 그걸 시작으로 풍물패 같은 국악기들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는 거예요. 저도 모르게 그 자리에 얼어 버렸어요. 왜냐고요? 사람이 다 빠진 시장 안에서 풍물패 소리가 왜 나겠어요. 어쩐지 낮에 너무 별일이 없더라니, 이제부터 시작이구나 싶었습니다.

눈앞이 갑자기 도떼기시장처럼 변했거든요. 다만 사람이 아닌 존재들이 우글거렸을 뿐이죠.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공황 장애가 몰려와요.

근처에 전시돼 있던 옛날 농기구들 앞에서 세발괭이를 휘두르는 농사꾼부터, ‘응답하라 1984‘에 나올 것 같은 전화기의 다이얼을 돌리는 뽀글 파마 아주머니, 도자기에서 튀어나오는 호랑이, 고풍스러운 샹들리에를 그네처럼 타는 원숭이들, 전등을 켰다 껐다 하며 까르르 웃는 동자들,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던 일제 강점기 때복장의 청년에게 일본도를 꺼내든 순사가 달려와 서로 싸우는 모습, 고대 화석같이 생긴 돌에서 튀어나오는 중국인, 선글라스에 라이더 재킷 차림으로 시가를 물고 구경하는 외국인까지.

"쟤 사람이야?"
"사람이지?"
"뭐 땜시 여태 있는겨?"
"신참인가?"
지나가는 길마다 저를 주시하는 수많은 시선 때문에 점점 발걸음이 빨라졌습니다. 그때"히익!"

순간 제가 가장 바란 건 뭐? 투명인간이 되는 거요.

"쟤 보인다!"
"보인다고?"
"보여? 보여?"
그 말을 듣자마자 저는 냅다 달렸습니다. 그러자 뒤에서는 웅성거리는 소리도 덩어리져 함께 뒤쫓아 왔습니다.
"왜 따라오는 건데!"
진짜 망했다 싶은 생각에 주변에 뭐가 있는지 볼 겨를 없이 그냥 무조건 달렸습니다. 코너를 도는데 누군가 제 머리끄덩이를 잡아챘어요.
"아악!"

"백구야, 나온나."
그 말에 할머니 놋그릇 옆에 있던 막사발에서 하얀 진돗개가 튀어나와 꼬리를 흔들며 할머니를 쳐다보는 거예요.

돌아보니 아까 일본 순사와 싸우던 독립투사 청년이었어요. 몰려오는 존재들을 막아서며 빨리 가라고 손짓을 하더군요. 너무 고마웠지만 인사할 여유조차 없는 저는벌떡 일어나 다시 달렸어요.

"여기 숨겨 줄게. 들어와!"
꽃이 만발한 정원이 그려진 그림 액자 속에서 귀부인 같은 여자가 상체를 내밀고 팔을 뻗어 온 거였어요. 상냥하게 웃는 모습에 잠깐 망설이는 찰나, 귀부인의 손을 찰싹 때리는 뭔가가 보였습니다. 효자손이었어요.
"요망한 것이 어딜!"
낡은 놋그릇에 몸을 반쯤 담고 있는 할머니가 불호령을 내리자, 귀부인의 얼굴이 순식간에 귀신같이 변해서 악을 쓰는 거예요.

"내 거야! 내가 잡았어!"
"어딜 산 사람을 건드리노!"

"할머니, 제발 살려 주세요! 어디로 가야 돼요?"

재미있을 것 같나요? 그럼 해 진 뒤 골동품 시장에 직접 한번 가 보세요. 들어갈 수 있다면요. 다만 뭔가 보인다면 절대 보이는 티는 내지 마시라고 권해 드립니다. 저는 경고했어요.

서울의 한강은 참 아름다운 곳입니다. 경치도 훌륭하고 달리기 코스도 좋고 휴식하기도 좋은 곳이죠. 하지만 사람들은 모를 겁니다. 동트기 전의 한강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사람들과 함께 달리면 소속감도 생기고 좋을 것 같아서 러닝 크루에 가입했습니다. 가입한 지 벌써 2년이 넘었네요.

철벅, 휘익, 첨벙, 철벅, 휘익, 첨벙.
반면 사라진 소리가 있었습니다. 바로 크루 멤버들의 소리였습니다. 저를 제외한 모든 이의 숨소리, 발소리가 사라진 겁니다.

제가 선두에 서게 됐고, 뒤에서 오는 멤버들을 간간이 독려하며 달렸습니다.
"자자, 모두 힘들 내세요!"
삼사십 분쯤 달리다 보니 선두에 있는 저와의 간격이 꽤 벌어졌던 것 같습니다. 멤버들끼리의 간격도 아마 비슷하게 벌어졌을 거예요.

우리 크루가 즐겨 찾는 장소는 다양한 코스가 있는 한강 공원입니다. 원래 저도 한강 코스를 좋아하는데, 저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코스죠. 서울 어디서든뛸 수 있어서 접근성이 좋은 곳이기도 하고요.

그때, 뒤쪽으로 20미터쯤 떨어진 곳에 어떤 여자가 보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안개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와중에 그 여자만 보였다는 게 제일 먼저 소름 돋는 포인트지만, 당시에는 거기까지 생각하진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혼자 덩그러니 서 있는 여자의 모습을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흠칫해서 뒷걸음질 치게 되더군요.

이상 여자를 주시할 수도, 그 자리에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저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저는 있는 힘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제가 뛰기 시작하자마자 여자도 휘익 제 쪽으로 달려오는데 아니, 달려오는 건지 날아오는 건지 모르게 다가오는 게, 이건 사람의 속도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반복되는 소리는 점차 빨라졌고, 급기야 저를 향해 돌진한 여자와 몸을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저는 계속 달리고 있었는데, 달리는 동안 몇 번이나 저 소리를 들었다는 건 제 주변을 맴돌면서 강으로 뛰어드는 걸 반복하고 있었다는 것 아닙니까!

어느새 물안개는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습니다. 멤버들의 걱정 어린 목소리에도 강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잔잔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저는 뒷덜미가 붙잡힌 채 강가로 질질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여자의 얼굴을 보게 되었는데, 마치 익사체처럼 얼굴이 검게 변해 있었고 양쪽 눈알은 짐승의 눈처럼 붉은색이었습니다.

만약 그때 그분이었다면, 정말 몇 날 며칠 자살을 고민했던 분이라면, 그저 누군가의 관심이나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했던 게 아닐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없지만 지금이라도 이 말을 하고 싶네요. 당신을 그렇게 만든 누군가를 대신해서 제가 사과할 테니 이제 강에는 그만 들어가시라고, 차가운 한강에서 벗어나 더 좋은 곳으로 가시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이번 이야기는 내가 미스터리를 취재하던 도중, SNS상의 DM으로 믿을 수 없는 제보를 받고 난 후부터 시작된 현재 진행형 이야기이다. 제보자는 고등학교 2학년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직접 겪은 이야기를 설명하기 시작했는데, 모바일이나 SNS상에서 자기를 괴롭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었다.

"보면 모르세요? 예뻐서죠, 당연히. 보는 눈이 없으시구나! SNS에서도 존예 댓글 겁나 많이 받거든요! 제 얼굴이 증거잖아요. 작가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제 추종자가 좀 많아요. 알지도 못하는 남자애들한테서 DM이 하루에도 수십 개씩 오거든요. 보여 드려요?"

"그야 그 애를 직접 괴롭힌 애들이죠. 있어요, 4인방."
Q. 4인방이 누구인가요? 설마 다연 학생도 그 무리 중에 한 명인가요?
"전 아니에요. 우리 학교에 좀 노는 애들이에요. 그런 애들 있잖아요. 좀 극성인 친구들요."

"사실은요, 무음으로 설정이 안 되는 게 있어요.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무음 설정이 안 되는 상대가 있어요. 저도 이렇게 저렇게 열라 많이 시도해 봤거든요. 하, 근데이상하게 걔 아이디만은 깨톡도 DM도 무음 설정이 안 돼요. 어이없어 진짜."

Q. 알림을 무음으로 하면 되잖아요.
"그러면 되는 거 누가 몰라요? 알죠, 아는데."

Q. 왜 연락을 할 수가 없나요?
"걔는 죽었으니까요."
Q. 죽은 사람이 연락을 한다고요? 어떤 아이였죠? 친한 친구였나요?
"친구 아니에요! 내가 걔랑 왜 친해요. 있는지 없는지 존재감도 없고 흐리멍덩하게 생긴 애랑."

"더 미치겠는 건 아까도 말했지만 알림이 안 꺼진다는 거예요. 알림 울릴 때마다 제가 놀란댔잖아요. 맞아요, 스트레스 오져요. 진짜 피 말려 죽이겠다는 거지, 이거는!"

Q. 복수? 왜 그렇게 생각하나요?
어 진짜."
"누군가가 죽은 애 아이디랑 이름으로 걔가 당한 걸 똑같이 저한테 하고 있으니까요. 깨톡 감옥이요. 걔가 당한 원인이 저라고 생각하나본데, 어이없

Q. 그 학생 모르게 뭔가 한 게 있나 보죠?
(다연이는 말문이 막힌 듯이 입을 다물었다. 곧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더니, 퍼뜩 뭔가 떠올랐는지 불안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질문을 퍼붓기시작했다.)

"네가 알아서 죽은 거잖아! 왜 나한테 그래? 다른 애들도 괴롭혔는데 왜 나한테 그러는 거냐고!"
"저, 벌 받는 거 맞죠? 저도 그 애처럼 죽게 되는 걸까요? 미안하다고 말하면 용서해 줄까요?"
Q. 진심인가요?
"됐고, 제발 제 핸드폰 알림 좀 꺼 주세요. 진짜 미치겠어요."

난 그때서야 깨닫게 되었다. 민주를 죽음으로 이르게 한 사람들 그건 4인방이 아닌 5인방이었다. 리더 다연이를 포함한 5인방. 그리고 이 미스터리한 저주는 5인방이 대가를 치르게 될 때까지 계속되리라는 것을.

"나처럼 거꾸로 매달리는 거 좋아하는 친구."
"어머 그래? 잘됐네. 그럼 학교에서 둘이 같이 매달려 노는 거야?"
"응! 내가 거꾸로 매달려 있을 때 걔만 똑바로 보여."

어릴 때의 저는 조금 특이한 아이였습니다.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걸 참 좋아했거든요. 30대 후반이 된 지금과는 달리, 어릴 때는 좀 소심한 성격이어서 그랬는지 또래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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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러윈 데이 축제에서 진짜 귀신을 본다면 어떨 것 같아요? 이런 질문을 제 친구들이나 지인들한테 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대체로 이렇습니다.

그러다 어느 건물 옆 구석에 있는 벤치에 혼자 앉아 있는 어떤 여자가 눈에 띄었습니다. 긴 머리를 늘어뜨린 채 붉은 원피스를 입고 있는 여자는 다른 요란한 분장도없었어요. 그저 핏기 하나 없는 창백한 얼굴에 한줄기 피눈물뿐이었는데, 분장인데도 왠지 처연해 보이더군요. 게다가 곧 사라질 것만 같은 분위기까지 느껴졌죠.
‘와, 나랑 같은 피눈물인데 분위기 쩌네........ 배우인가?"

진짜 귀신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이 그 심각성과 공포를 모르고 내뱉는 말일 뿐입니다. 저는 그때 겪었던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등줄기가 오싹하고 손이 떨려 옵니다. 아니, 공포와 두려움에 치를 떨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고요?

북적거리는 제 주변과 달리, 그 여자 주변으로는 아무도 다가가지 않았거든요. 저도 발을 돌리려던 그때, 여자가 제 쪽을 쳐다봤고 눈이 마주쳤습니다.

여기가 한국 맞아?"
갑자기 영화 속에 떨어진 것 같은 비현실적인 마을, 그곳에 좀비와 귀신으로 분장한 배우들이 사람들 사이를 마구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 꺼림칙한 느낌을 무시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저는 아는 척까지 하고 말았죠. 쉬는 걸 들켜서 그런가 싶어 저는 웃어 보이며 사진 좀 찍겠다는 의미로 제 핸드폰을 가리켰습니다. 그리고 뒤돌아서 그 여자가 제 배경에 나오도록 셀카를 찍었습니다.

진짜 이상함은 그때부터였습니다. 가는 동안 어떤 시선이 느껴졌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돌아봐도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와 더불어 뼈를 에는 듯한 한기가 한 번씩몸을 스치는데, ‘감기 기운이 있나?‘ 싶을 정도로 오한이 드는 겁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바람 소리 같기도 하고 속삭이는 음성 같기도 한 게 희미하게 들려왔어요.
"보인다......."
"찾았다..

솔직히 들어갈까 말까 살짝 고민했는데요. 안 들어간다고 했다가는 쫄보로 낙인찍혀서 졸업할 때까지 고생할 것 같아 차마 입 밖으로 그 말을 꺼낼 수 없었습니다.

갑자기 누군가 옆에서 제 팔을 홱 잡아당겼습니다. 그런데 붙잡힌 팔에서, 아까 오면서 느꼈던 뼈에 사무치는 한기가 옷을 뚫고 느껴지는 겁니다. 그때야 비로소 깨달았어요.
‘아, 이거 사람 아니다!"
화들짝 놀란 저는 팔을 뿌리치며 고함을 쳤습니다.

잡고 있던 줄도 놓치고 말았어요. 승재 커플도 제가 떨어져 나간 걸 알았는지, 다급히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런데 넘어짐과 동시에, 누군가 저의뒷덜미를 잡아끄는데 반항할 틈도 없이 질질 끌려갔습니다. 제가 80kg이 넘는데 말이죠.

도저히 못 가겠다, 더 이상은 죽어도 못 간다!‘ 하시는 분은 머리 위로 손을 X자로 들어 주시면, 저희 직원이 안내를 도와드립니다."

뒷덜미를 붙잡고 있는 건 아까 벤치에서 본 그 붉은색 원피스의 여자였습니다.
그때,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의 서릿발 낀 목소리가 제 귓가에 꽂히듯 들렸습니다.

"봤잖아. 나 봤잖아."
"나랑 가! 넌 나랑 가야 해!"
그 소리에 온몸이 얼어붙은 것처럼 말을 안 듣는 지경이 되어서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으아아아악!"
"넌 내 거야! 내 거야! 내 거야!"
제 코앞에서 기괴하게 웃으며 소리치는 그 여자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저는 그만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저는 호러 하우스 밖에 나와 있었고, 승재 커플과 호러 하우스 직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절대 핼러윈 분장을 하지도, 핼러윈 축제를 가지도 않습니다.

아까 그 여자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생각났거든요. 되찾은 제 핸드폰에서 사진을 찾아본 저는 핸드폰을 떨어뜨릴 뻔했습니다. 분명 첫 번째 사진에서 여자는 배경처럼 제 뒤쪽에 멀리 있었는데, 불과 1초도 안 되는 시간 뒤에 찍은 두 번째 사진에서는 그 여자가 제 어깨 바로 뒤에 와 있었습니다.

별명은 ‘마라탕 중독자‘입니다. 언제부터였더라. 6~7년쯤 된 것 같네요. 저놈의 음식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 게 말이에요. 요즘처럼 마라탕이 유행하기 몇 년 전,
그날 이후부터 저는 마라탕에 미쳐 있습니다.

마라탕이 마라탕 맛이지 뭐 별다를 게 있겠냐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만, 그 마라탕 맛을 본 사람이라면 제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겁니다. 아, 같이 먹어 본 제 동료는그날 이후로 마라탕의 ‘마‘자도 보기 싫다고 아예 끊어 버렸네요.

평소에도 매운 음식을 좋아하던 저는 스트레스도 풀 겸 주말마다 매운 음식으로 유명한 맛집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던 중 야근이 확정된 어느 날, 중국 유학 시절에 쓰촨성에 가서 먹어 봤던 마라탕이 생각났습니다.

중국에서 먹었던 마라탕보다 맵기는 덜했지만 훨씬 입맛에 맞았습니다.

쓰촨성에서 먹었던 그 맛이 날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죠. 한 40분쯤 지났을까, 배달 기사가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로 주문하려고 배달 앱을 켤 때마다 ‘준비 중‘ 상태인 겁니다. 하루, 이틀...... 일주일이 넘게 먹고 싶은 걸 못 먹으니 그건 그것대로 스트레스더라고요.

그날 이후부터 이상할 정도로 그 마라탕이 자꾸 생각났습니다. 무슨 강력한 마약이 들었나 싶을 정도로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어요.

"전에 먹었던 마라탕 집 찾아가 볼 건데 같이 갈래요?"
"오~. 마라탕에 고량주 한잔?"
"콜!"

그런데 줄 서서 먹는다는 후기와 달리 홀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아직 영업시간이었는데 말이죠. 들어가 보니 안내하는 종업원도 하나 보이지 않았어요. 심지어 주방쪽은 어두컴컴했습니다.

깜짝 놀란 우리는 조용히 귀를 곤두세웠어요. 칼날을 긁는 듯한 괴이한 소리가 이어졌고, 저는 그 쇳소리에 머리끝까지 소름이 돋아 몸서리를 쳤습니다.

인적마저 사라진 관악산 어귀 근처까지 가서야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하는 안내 멘트가 나오는 겁니다.

잘못왔나 싶어 짜증이 나려던 찰나, 그 구옥에 간판이 있었는지 불이 반짝 들어왔습니다. 상호도 없이 ‘마라탕‘이라고만 쓰인 간판이 깜박이다 곧 꺼지더라고요.

"영업 안 하는 거 아니에요? 그냥 갈까요?"
"문 다 열려 있었잖아요. 여기까지 왔는데....... 일단 앉아 있어 보죠."

어두컴컴한 주방을 둘러보니, 대형 가마솥이 얹힌 화덕이 있었고 그 주변에 촛불이 몇 개 켜져 있었습니다. 이상한 건 가마솥 위쪽 벽에 부적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습니다. 그 앞에는 등이 구부정하고 기력이 없어 보이는 어떤 아저씨가 혼자 서 있었는데, 양손에 네모난 중식도를 하나씩 들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홀의 조명이 불길하게 깜박거리기 시작했고, 두둑두두둑 뼈 부러지는 소리가 귀를 파고들었습니다. 그 순간 주방 안을 보던 동료가 입을 틀어막는 거예요. 주방 안을 다시 돌아봤죠.

부러지는 소리는 아저씨의 등에서 나는 소리였습니다. 구부정하던 척추를 하나하나 펴듯이 기괴하게 꺾다가 고개를 확 젖히자 등이 일자로 펴지는 겁니다. 게다가 덩치가 아까보다 훨씬 커진 것 같았어요.

아저씨가 가마솥 안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다가 중얼중얼하더라고요. 자세히 들어 보니.
"부족해...... 아직도 부족해......."

절대 소리를 내면 안 될 것 같았거든요. 그 뒤에 이어진 아저씨의 행동에 우리는 기겁하고 말았습니다. 중식도를 내팽개친 아저씨는 울컥울컥 새빨간 피가 흐르는 팔뚝을 그대로 가마솥 위로 가져가는 겁니다. 그러고는 주르륵 흐르는 피를 그대로 가마솥 안으로 떨어트렸습니다.

‘빌어먹을.......
재빨리 일어서는데, 먼저 문 앞에 도착한 동료가 울부짖으며 미친 듯이 문을 흔들어 댔습니다. 문이 밖에서 잠겨 있었던 겁니다!

그건 강령술에 쓰이는 부적이고, 제 입에서 훼손되면서 그 기운이 저에게 스며들었다는 겁니다.

그 이후로 가끔 정신을 잃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면 집에 마라탕 재료가 잔뜩 쌓여 있거나 마라탕을 끓이고 있었습니다. 저는 요리를 할 줄 모르는데말입니다. 결국 그때 살려 냈던 부적을 들고 무당을 찾아갔습니다. 무당은 저를 보자마자 호통을 치더라고요.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노란 뭉치를 꺼내더니 발악하는 제 입에 쑤셔 넣으며 흉측한 얼굴로 고함을 질렀습니다. 마치 저주하는 것처럼요. 그가 내뿜는 악의에 죽을 것같아 저는 더는 버티지 못하고 그만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직접 만들어 보고자 온갖 마라탕 레시피를 섭렵해서 따라 만들어 보고, 부적을 태운 재도 넣어봤습니다. 하지만 결코 그 맛을 낼 수는 없었습니다. 그건 정말 사람이 만든 게 아니라 강령술로 만들어진 마라탕인 걸까요?

시선 쪽을 바라보니 아니나 다를까, 맞은편 왼쪽 끝에 앉은 남자가 저를 쳐다보고 있었어요. 30대 후반쯤으로 보였는데 퀭한 눈에 거무튀튀한 안색이었고, 검은 후드티에 후드까지 뒤집어쓰고 검은 바지에 검은 신발...... 온통 시커먼 차림이었어요. 눈이 마주치면 피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더 눈을 부릅뜨고 아주 뚫어져라 쳐다보지 뭐예요.

2014년 5월 2일.
저에게 그날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에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것 같거든요. 대낮에, 그것도 다수가 이용하는 지하철에서2026.08.30 오전 8시 12분14%문에 있는 유리창으로, 아까 그 검은 후드 티의 남자가 저를 따라 이쪽 칸으로 걸어오는 게 보이는 거예요!

칸을 지나오는 동안 어느 누구의 얼굴도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여기까지는 그냥 ‘오늘 정말 재수가 없구나 할 수 있는데, 정말 이상한 건 이때부터였어요. 늦진 않겠지 하며 핸드폰 시계를 힐끗 봤어요. 그런데........
시간이 왜 아직도 3시 13분일까요? 제가 10분쯤에 탄 것 같은데?

생각할수록 등골이 오싹해지던 그때, 제 등 뒤로 누군가가 몸을 바짝 붙이고 서는 거예요. 유리창에 비친 걸 보니, 뒤에 있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지 다 사라졌고 그 검은 후드티의 남자가 제 뒤에 붙어 있었어요.

"이번 역은 이 열차의 종점인 상왕십리, 상왕십리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종점이라니요? 이 전철은 순환선인데....... 저는 성수역까지 가려고 분명히 순환선을 탔는데? 뭔가 잘못됐다 싶었던 저는 기도만 했어요.

"흐흐흐.
넌 죽을 거야."
‘이게 무슨!‘
반사적으로 돌아서서 남자를 밀치고 소리를 지르려다가 저는 그 자리에 꼼짝없이 굳어 버리고 말았어요. 열차 칸에 있는 사람들이 정말로 하나같이 저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는 거예요.

아무리 해도,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도망갈 수가 없자, 절망보다는 이판사판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수많은 손들이 저를 덮치려는 찰나, 악을 써 대며 검은 후드티의 남자에게 미친 듯이 발길질을 했어요. 그 순간, 번쩍 눈이 떠졌어요, 주변을 둘러보니 멀쩡한 눈의 승객들이 저를 이상한 사람 보듯 쳐다보고 있는 거예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됐어요. 몽유병이 있는 것도 아닌데....... 손끝이 차갑게 식어가는 그때, 안내 방송이 들려왔어요.
"이번 역은 상왕십리, 상왕십리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알고 보니 열차가 출발하기도 전에, 뒤에서 다른 열차가 들어와 미처 멈추지 못하고 그대로 들이받은 거였어요. 제가 타고 있었던 열차, 그 마지막 칸을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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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냐 대학의 로고 
라틴어로 ‘A.D.1088ALMA MATER STUDIORUM‘이라고 적혀 있다. ‘모든 학문의 젖줄인 어머니‘라는 뜻이다. - P149

작자미상, 안니발레·루도비코·아고스티노 카라치의 초상, 17세기 
아고스티노는 판화가로 활동했고, 루도비코는 일찍부터 그림을 그렸다. 세 형제의 초기 화풍은 분간이 어려울 정도로 비슷하다. 보통 카라치라고 언급할 때 안니발레 카라치를 말한다. - P150

진격의 미술학교는 도메니키노, 귀도 레니, 구에르치노같은 뛰어난 화가를배출했습니다. 제자들의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이른바 볼로냐 화파가 탄생합니다. 결과적으로 카라치 형제의 아카데미는 당대 최고의 화가 양성소이자미술 교육기관이었습니다. 나아가 이탈리아 최초의 본격적인 미술학교였습니다.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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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작품은 환상에 현실을 부여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힘을 지닌 것이다.
・막스 자코브 - P142

환상의 세계를 열어젖힌
카라치

#안니발레 카라치 #안드레아 포초 #팔라초 파르네세#프레스코화 #천장화 #몰입형 전시 - P143

이제부터 만날 화가는 우리를 몽환적인 꿈의 세계로 이끌어줍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로크 미술의 정수를 맛보게 될 겁니다. 카라바조는 으스스한악몽이었지만 이번 꿈은 아름답고 달콤해서 아마 깨어나고 싶지 않을 겁니다. 기대해도 좋을 만큼 환상적인 세계가 우리 눈앞에 펼쳐질 텐데요.
이곳으로 우리를 데려다줄 첫 번째 화가는 바로 안니발레 카라치입니다. - P143

이탈리아 교육과 학문의 중심 
볼로냐는 이탈리아 북부 주요 도시인 베네치아, 밀라노, 피렌체 사이에위치합니다. 세 도시로 이동하려면 반드시 볼로냐를 거쳐야 했기 때문에볼로냐는 중세부터 교통의 중심지로 번영을 누립니다.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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