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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ㅣ 세계문학그림책
오은 지음, 조아름 그림,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원작 / 고래의숲 / 2024년 8월
평점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살아 있는 동안 걸어야 할 이유 —
레프 톨스토이 원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림책을 읽고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것을 필요로 한다. 먹을 것이 있어야 하고, 입을 옷과 잠잘 집도 있어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건강도 중요해지고, 노후를 위한 경제적인 준비도 필요해진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갖춘다고 해서 인간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아주 가난한 구두장이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그 속에는 인간의 삶을 관통하는 깊은 질문이 담겨 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이번에 읽은 책은 톨스토이의 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엮은 그림책이다. 소박한 사람들의 모습과 어둡고 따뜻한 색채의 그림은 이야기의 의미를 더욱 선명하게 전해준다. 특히 인간 세상에 내려온 천사 미하일이 세 가지 진실을 깨달아 가는 과정은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1. 가진 것이 없어도 나눌 수 있는 것
구두장이 시몬은 가난한 사람이다. 자신과 가족이 입을 옷조차 넉넉하지 못한 형편이다. 그런데 그는 길에서 옷도 입지 못한 채 추위에 떨고 있는 낯선 남자를 발견한다.
처음에는 두려움과 망설임이 앞선다. 자신도 먹고살기 어려운데 정체조차 알 수 없는 사람을 도와야 할 이유가 있을까. 하지만 시몬은 그를 외면하지 못한다. 자신의 옷을 벗어 입히고 집으로 데려온다.
집에 돌아온 아내 마트료나는 낯선 사람을 데려온 남편에게 화를 낸다. 당장 가족이 먹을 것조차 부족한데 식구 하나를 더 늘렸으니 당연한 반응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 역시 결국 낯선 사람에게 먹을 것을 내어준다.
사람은 흔히 자신에게 여유가 생기면 남을 돕겠다고 말한다. 돈을 많이 벌면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시간이 남으면 봉사하고, 내 형편이 좋아지면 주변을 돌아보겠다고 한다.
하지만 시몬과 마트료나는 여유가 있어서 남을 도운 사람들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들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만큼 어려운 처지였다. 그럼에도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외면하지 않았다.
어쩌면 사랑과 나눔은 가진 것의 크기가 아니라 마음의 크기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2. 내일을 안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어리석음
이야기에는 부유한 신사가 등장한다. 그는 값비싼 가죽을 가져와 오랫동안 신을 수 있는 튼튼한 장화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한다. 자신이 앞으로도 오래 살아갈 것처럼 장화의 품질과 수명을 따진다.
그러나 미하일은 장화가 아니라 죽은 사람에게 신기는 신발을 만든다. 그리고 그 신사는 자신이 주문한 장화를 신어보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난다.
이 장면은 인간이 얼마나 불확실한 존재인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내일도 당연히 오늘처럼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달의 계획을 세우고, 내년의 여행을 준비하며, 몇 년 뒤의 삶까지 계산한다. 물론 계획을 세우는 일은 필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치밀하게 준비하더라도 우리에게 내일이 반드시 주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이 대목에서 내가 평소 마음에 새기고 있는 말 하나가 떠올랐다.
사와생보(死臥生步). 죽어서야 누울 것이니 살아있으니 걸어라.
언젠가 우리 모두는 영원히 누울 날을 맞이한다. 그렇다고 그날을 미리 걱정하며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미뤄둘 이유는 없다.
건강하게 걸을 수 있을 때 걷고,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면 찾아가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 있을 때 그 시간을 누려야 한다.
젊었을 때는 돈과 성공, 사회적 지위가 삶의 중요한 목표였다면, 세월이 흐르면서 건강하게 걸을 수 있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 가보고 싶은 곳을 직접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알게 된다.
부유한 신사는 좋은 가죽으로 만든 장화를 신을 날을 준비했지만, 정작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렇다고 미래를 준비하지 말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미래를 준비하되,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위해 오늘의 소중한 삶을 지나치게 희생하지 말라는 이야기로 받아들였다.
3. 피가 섞이지 않아도 가족이 될 수 있다
내게 가장 따뜻하게 다가온 장면은 두 아이를 데리고 찾아온 여인의 이야기다.
여인은 아이들을 직접 낳은 어머니가 아니다. 아이들의 친어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여인은 남겨진 아이들을 자신의 자식처럼 돌보며 살아간다.
그녀가 아이들에게 베푸는 사랑에는 혈연이라는 조건이 없다. 누군가의 부탁을 받아 잠시 보살피는 것도 아니고, 어떤 보상을 기대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아이들이 자신을 필요로 하고, 자신이 그 아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가족을 흔히 피로 맺어진 관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가족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것이 반드시 혈연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어린아이들은 스스로 살아갈 능력이 없다. 누군가 먹이고 입히고 보살펴 주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 그런데 그 아이들을 살아가게 한 것은 재산도, 지위도, 특별한 능력도 아니었다.
한 여인의 사랑이었다.
이 장면에서 톨스토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하고, 또 다른 누군가를 보살피며 살아간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존재다.
그렇다면 살아 있는 동안 부지런히 걷는다는 것도 단순히 먼 거리를 이동하거나 많은 곳을 다녀오는 일만을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얼마나 멀리 걸었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걸었고, 그 길에서 누구의 손을 잡아주었느냐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
4. 세 가지 깨달음, 그리고 내가 걸어온 길
미하일은 인간 세상에서 세 가지 진실을 깨닫는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사랑이 있으며, 인간은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미리 알 수 없고, 결국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깨달음은 각각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결론으로 이어진다.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부유한 사람이라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살아갈 수는 없다.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한 순간을 맞는다. 반대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시몬이 미하일을 도왔던 것처럼 말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으며 지금까지 걸어온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젊은 시절에는 자신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루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알게 된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나 혼자 잘났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부모님의 희생이 있었고, 가족의 기다림이 있었으며, 어려울 때 손을 내밀어 준 사람들이 있었다. 때로는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누군가의 작은 친절이 삶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도 결코 혼자만의 걸음은 아니었다. 내가 두 발로 세상을 걸어왔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수많은 사람의 사랑이 그 걸음을 지탱해 주었던 것이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내가 이루어 낸 것들만 생각했지, 그 과정에서 누가 나를 도왔고 누가 나를 기다려 주었는지 충분히 돌아보지 못한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사와생보가 살아 있는 동안 멈추지 말고 걸으라는 다짐이라면, 톨스토이의 이야기는 그 걸음을 가능하게 해 준 사람들을 잊지 말라는 가르침처럼 다가온다.
어쩌면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내가 남긴 발자국의 수가 아니라, 그 발자국 곁에 함께했던 사람들의 온기인지도 모른다.
5.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미하일이 자신의 깨달음을 얻고 본래 천사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어두운 색채로 표현되던 그림은 점차 밝아지고, 인간 세상에서의 깨달음은 하나의 빛처럼 그려진다.
그 모습을 보면서 처음에 등장했던 가난한 구두장이 시몬을 다시 떠올렸다.
시몬은 자신이 데려온 낯선 사람이 천사라는 사실을 몰랐다. 그를 도와주면 어떤 좋은 일이 생길지도 알지 못했다. 그저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을 차마 외면하지 못했을 뿐이다.
어쩌면 인간의 선행이란 본래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거창한 명분이나 대단한 결심이 없어도, 눈앞에 있는 사람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는 것. 그것이 사랑의 시작일 것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오래전에 쓰인 이야기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거보다 훨씬 풍요로운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나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다고 해서 인간의 외로움과 불안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바쁘게 살아가면서 정작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잊고 지내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이제는 삶의 속도보다 방향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루었는가보다 어떤 사람으로 살아왔는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는가보다 누구와 무엇을 나누었는가.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돌이켜보면 사와생보와 톨스토이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질문에서 출발해 하나의 지점에서 만난다.
사와생보는 살아 있는 동안 무엇을 할 것인지 묻는다. 톨스토이는 무엇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지 묻는다.
하나는 삶을 미루지 말라는 가르침이고, 다른 하나는 그 삶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이다.
살아 있는 동안 부지런히 세상을 걷되, 그 길에서 사람을 잃지 말라는 것.
사람은 돈으로 생활을 유지할 수 있고, 음식으로 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인간다운 삶이 완성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사랑으로 오늘까지 살아왔고, 또 누군가를 사랑함으로써 내일을 살아갈 이유를 얻는다.
살아 있으니 걸어야 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가 있으니 그 걸음에는 의미가 있다.
톨스토이가 던진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제 분명하다.
사람은 결국 사랑으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