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비행 ㅣ 세계문학그림책
이산호 지음, 구남훈 그림,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원작 / 고래의숲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야간 비행

— 안전과 실행, 그 어려운 선택 앞에서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원작 『야간 비행』 그림책을 읽고

인간은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개척해 왔다.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일에 도전하고, 위험을 감수하며, 때로는 자신의 생명까지 걸면서 오늘날의 문명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피할 수 없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어디까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 위험을 감수하도록 결정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책임이 따르는가.

생텍쥐페리의 『야간 비행』은 바로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이번에 읽은 책은 생텍쥐페리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재구성한 그림책이다. 석양이 물든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기, 어둠 속에서 몰아치는 폭풍우, 조종석의 작은 계기판, 지상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강렬한 색채로 펼쳐진다. 아름다운 그림이지만 그 속에 담긴 이야기는 결코 가볍지 않다. 하늘을 나는 사람들의 용기와 그들을 지휘하는 사람의 책임, 그리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희생과 갈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도로건설 현장에서 사업을 추진하고, 지금은 도로안전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는 나에게 이 작품은 단순한 항공 모험담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안전과 실행. 말로는 간단하지만 현실에서는 어느 하나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두 가지 가치가 떠올랐다.

1. 어둠 속으로 날아오르는 사람들

이야기의 배경은 항공우편 사업이 막 발전하던 시기의 남아메리카다. 당시 비행기는 오늘날처럼 정교한 항법장비나 기상정보를 갖추지 못했다. 특히 야간 비행은 낮보다 훨씬 위험했다. 조종사는 어둠 속에서 지형을 분간하기 어려웠고, 갑작스러운 악천후를 만나면 자신의 경험과 판단에 의존해야 했다.

그럼에도 항공우편 사업을 이끄는 리비에르는 야간 비행을 계속 추진한다. 우편물을 더 빠르게 운송하기 위해서는 밤에도 비행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밤이라는 이유로 비행을 중단한다면 항공운송이 가진 속도의 이점을 충분히 살릴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에게 야간 비행은 단순히 운송 시간을 단축하는 일이 아니라, 인간이 아직 극복하지 못한 한계를 넘어서는 도전이었다.

그러나 그 도전의 최전선에는 실제로 비행기를 조종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 파비앵이다. 파비앵은 밤하늘을 날다가 거센 폭풍우를 만난다. 사방은 어둠에 잠기고, 구름과 바람은 비행기를 위협한다. 그는 어떻게든 항로를 유지하고 돌아가려 하지만 상황은 점점 악화된다.

그림책에 등장하는 거대한 소용돌이와 그 속의 작은 비행기는 인간과 자연의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보여준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인간이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가졌더라도 자연 앞에서는 여전히 한없이 작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과연 이 비행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했을까.

2. 실행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리비에르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그의 결정이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새로운 기술과 제도는 처음부터 완벽한 안전이 확보된 상태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드물다. 누군가 먼저 시도하고, 그 과정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경험을 축적하면서 발전해 왔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이용하는 항공교통 역시 수많은 시행착오와 기술적 도전의 결과다.

도로건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산을 뚫어 터널을 만들고, 바다를 건너 교량을 놓으며, 험준한 지형에 새로운 길을 내는 일에는 언제나 어려움과 위험이 따른다. 공사를 하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지반 조건이 나타나고 기상이 악화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모든 위험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릴 수만은 없다. 공사를 마냥 중단할 수도, 무리하게 밀어붙일 수도 없으니 제한된 예산과 공사기간, 기술적 여건 속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리비에르가 추구했던 실행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실패할 위험도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문제는 실행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떤 준비와 판단을 거쳐 실행할 것인가에 있다. 도전에는 위험이 따르지만, 그렇다고 모든 위험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3.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의 무게

파비앵 못지않게 깊은 인상을 남긴 인물은 리비에르였다. 파비앵이 실제 위험과 맞서 싸우는 사람이라면, 리비에르는 그 위험을 감수할 조직의 방향을 결정하는 사람이다.

리비에르는 규율을 엄격히 하고 개인의 감정보다 조직의 사명을 앞세운다. 그러나 조종사들의 위험을 모르는 것도, 그들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것도 아니다. 그는 엄격한 규율과 책임감이 위험한 비행을 가능하게 하고, 궁극적으로 조직과 조종사를 지탱한다고 믿었다.

현장의 사람은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지만, 관리자는 그 임무를 계속할지 멈출지를 정한다. 그 판단이 틀리면 결과는 현장의 사람에게 먼저 닿는다.

나는 이 대목에서 공사감독 시절을 떠올렸다.

장마철, 국가하천을 가로지르는 공사용 가교의 복공판(가교 위에 깔아 둔 철판)을 언제 철거할지 결정해야 했던 적이 있다. 현장에서는 하루라도 더 작업하기를 원했지만, 나는 비 예보를 근거로 철거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서로 이유가 분명했기에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고, 결국 하루만 더 작업한 뒤 철거하기로 타협했다.

다행히 비는 예보보다 늦게 내렸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내 판단이 옳았다는 증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운이 따랐을 뿐이다.

결과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결정해야 하는 것, 그것이 관리자의 자리다.

공사 진척도, 공사기간도 중요하다. 국민에게 약속한 사업을 적기에 완공하는 것도 공공사업을 맡은 사람의 책임이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는 것은 사람의 생명이다. 그렇다고 안전만 앞세워 모든 일을 멈출 수도 없다. 사업이 멈춰 생기는 사회적 손실과 국민의 불편도 무겁기 때문이다. 결국 관리자는 실행의 필요성과 위험의 정도를 함께 저울질해야 한다.

실행을 결정하는 용기도 필요하지만, 위험하다고 판단될 때 멈추라고 명령하는 용기 역시 필요하다.

그것이 책임 있는 관리자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4. 한 사람의 희생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파비앵은 결국 폭풍우 속에서 돌아오지 못한다. 그의 비행은 항공우편 사업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치러야 했던 희생처럼 그려진다. 그러나 나는 그 희생을 단순히 숭고한 도전의 결과로만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았다.

파비앵에게도 삶이 있었고, 그를 기다리는 아내가 있었다. 그림책에 등장하는 실내의 따뜻한 불빛과 기다리는 사람의 모습은 어둠 속의 비행기와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하늘에서는 한 명의 조종사가 임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지상에서는 누군가의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대형 사업을 이야기할 때 사업비와 공사기간, 추진 실적과 성과를 중심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몇 킬로미터의 도로를 개통했는지, 얼마나 많은 예산을 집행했는지, 공사기간을 얼마나 단축했는지가 중요한 지표가 된다. 물론 이러한 성과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 숫자 뒤에는 수많은 사람의 노동과 땀이 있고, 때로는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삶이 있다.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고를 단순히 통계상의 숫자 하나로만 바라볼 수 없는 이유다. 사고 한 건은 누군가에게는 평생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가 될 수 있다.

리비에르가 야간 비행을 계속 추진한 것은 항공운송의 미래를 위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결정의 무게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파비앵의 희생뿐 아니라 그를 기다렸던 사람들의 슬픔까지 함께 바라보아야 한다.

조직의 성과는 숫자로 평가할 수 있지만, 한 사람의 생명은 어떤 숫자로도 환산할 수 없다.

5. 안전과 실행, 그 사이에서 길을 찾다

『야간 비행』의 결말에서 리비에르는 파비앵이 돌아오지 못했음에도 다음 비행을 계속하도록 한다. 한 사람이 희생되었는데도 같은 일을 계속하는 것이 옳은가. 그렇다고 희생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도전을 포기해야 하는가. 어느 한쪽을 택한다고 풀리는 문제가 아니다.

현실의 판단은 더욱 흐릿하다. 정보는 불완전하고, 시간은 부족하며, 이해관계는 복잡하다. 복공판을 두고 고민하던 그날처럼, 우리는 결과를 모른 채 결정해야 한다. 그래서 책임자의 자리는 어렵다.

결정하지 않는다고 책임이 사라지는 것도, 결정했다고 책임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리비에르의 결정을 모두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가 짊어진 고뇌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도로안전 업무에서도 마찬가지다. 위험한 도로를 고치려면 공사를 해야 하고, 공사에는 또 다른 위험이 따른다. 그렇다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기존의 위험이 그대로 남는다. 안전과 실행 사이에서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정답을 찾기란 쉽지 않다.

결국 중요한 것은 결과가 좋았는지가 아니라, 그 결정을 내릴 당시 위험을 얼마나 충실히 검토하고 책임 있게 판단했는가일 것이다.

6. 어둠 속에서도 비행은 계속되어야 하는가

그림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어둠과 빛이 교차하는 하늘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작은 비행기는 인간의 도전정신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그 비행기가 얼마나 위태로운 존재인지도 보여준다.

생각해 보면 길을 만드는 일도 결국 사람을 위한 일이다. 사람들이 더 빠르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지만, 그 길의 궁극적인 가치는 속도나 규모에만 있지 않다. 사람들이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하고, 다시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길을 만드는 이유이며, 도로안전이라는 업무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파비앵이 돌아오지 못한 밤에도 리비에르는 다음 비행을 준비했다. 나는 그 선택을 쉽게 비난할 수도, 무조건 찬양할 수도 없다. 다만 우리가 같은 자리에 선다면, 다음 비행을 계속할지 정하기에 앞서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떤 위험을 줄일 수 있는지부터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과거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으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야간 비행』은 내게 도전과 용기의 아름다움만을 보여준 작품이 아니다. 무언가를 실행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책임을 수반하는지, 그리고 그 책임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 이야기다. 세상에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러나 그 일을 반드시 지금, 반드시 이 방법으로 해야 하는지는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멈추지 않는 것만이 용기는 아니다. 멈춰야 할 때 멈출 줄 아는 것도 용기다.

어둠 속에서도 비행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비행의 목적은 단순히 더 빨리 도착하는 데 있어서는 안 된다.

그 비행을 시작한 사람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까지가 우리가 완수해야 할 임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ㅣ 세계문학그림책
오은 지음, 조아름 그림,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원작 / 고래의숲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살아 있는 동안 걸어야 할 이유 —

레프 톨스토이 원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림책을 읽고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것을 필요로 한다. 먹을 것이 있어야 하고, 입을 옷과 잠잘 집도 있어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건강도 중요해지고, 노후를 위한 경제적인 준비도 필요해진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갖춘다고 해서 인간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아주 가난한 구두장이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그 속에는 인간의 삶을 관통하는 깊은 질문이 담겨 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이번에 읽은 책은 톨스토이의 이야기를 그림과 함께 엮은 그림책이다. 소박한 사람들의 모습과 어둡고 따뜻한 색채의 그림은 이야기의 의미를 더욱 선명하게 전해준다. 특히 인간 세상에 내려온 천사 미하일이 세 가지 진실을 깨달아 가는 과정은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1. 가진 것이 없어도 나눌 수 있는 것

구두장이 시몬은 가난한 사람이다. 자신과 가족이 입을 옷조차 넉넉하지 못한 형편이다. 그런데 그는 길에서 옷도 입지 못한 채 추위에 떨고 있는 낯선 남자를 발견한다.

처음에는 두려움과 망설임이 앞선다. 자신도 먹고살기 어려운데 정체조차 알 수 없는 사람을 도와야 할 이유가 있을까. 하지만 시몬은 그를 외면하지 못한다. 자신의 옷을 벗어 입히고 집으로 데려온다.

집에 돌아온 아내 마트료나는 낯선 사람을 데려온 남편에게 화를 낸다. 당장 가족이 먹을 것조차 부족한데 식구 하나를 더 늘렸으니 당연한 반응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 역시 결국 낯선 사람에게 먹을 것을 내어준다.

사람은 흔히 자신에게 여유가 생기면 남을 돕겠다고 말한다. 돈을 많이 벌면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시간이 남으면 봉사하고, 내 형편이 좋아지면 주변을 돌아보겠다고 한다.

하지만 시몬과 마트료나는 여유가 있어서 남을 도운 사람들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들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만큼 어려운 처지였다. 그럼에도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외면하지 않았다.

어쩌면 사랑과 나눔은 가진 것의 크기가 아니라 마음의 크기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2. 내일을 안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어리석음

이야기에는 부유한 신사가 등장한다. 그는 값비싼 가죽을 가져와 오랫동안 신을 수 있는 튼튼한 장화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한다. 자신이 앞으로도 오래 살아갈 것처럼 장화의 품질과 수명을 따진다.

그러나 미하일은 장화가 아니라 죽은 사람에게 신기는 신발을 만든다. 그리고 그 신사는 자신이 주문한 장화를 신어보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난다.

이 장면은 인간이 얼마나 불확실한 존재인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내일도 당연히 오늘처럼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달의 계획을 세우고, 내년의 여행을 준비하며, 몇 년 뒤의 삶까지 계산한다. 물론 계획을 세우는 일은 필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치밀하게 준비하더라도 우리에게 내일이 반드시 주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이 대목에서 내가 평소 마음에 새기고 있는 말 하나가 떠올랐다.

사와생보(死臥生步). 죽어서야 누울 것이니 살아있으니 걸어라.

언젠가 우리 모두는 영원히 누울 날을 맞이한다. 그렇다고 그날을 미리 걱정하며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미뤄둘 이유는 없다.

건강하게 걸을 수 있을 때 걷고,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면 찾아가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 있을 때 그 시간을 누려야 한다.

젊었을 때는 돈과 성공, 사회적 지위가 삶의 중요한 목표였다면, 세월이 흐르면서 건강하게 걸을 수 있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 가보고 싶은 곳을 직접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알게 된다.

부유한 신사는 좋은 가죽으로 만든 장화를 신을 날을 준비했지만, 정작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렇다고 미래를 준비하지 말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미래를 준비하되,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위해 오늘의 소중한 삶을 지나치게 희생하지 말라는 이야기로 받아들였다.

3. 피가 섞이지 않아도 가족이 될 수 있다

내게 가장 따뜻하게 다가온 장면은 두 아이를 데리고 찾아온 여인의 이야기다.

여인은 아이들을 직접 낳은 어머니가 아니다. 아이들의 친어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여인은 남겨진 아이들을 자신의 자식처럼 돌보며 살아간다.

그녀가 아이들에게 베푸는 사랑에는 혈연이라는 조건이 없다. 누군가의 부탁을 받아 잠시 보살피는 것도 아니고, 어떤 보상을 기대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아이들이 자신을 필요로 하고, 자신이 그 아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가족을 흔히 피로 맺어진 관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가족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것이 반드시 혈연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어린아이들은 스스로 살아갈 능력이 없다. 누군가 먹이고 입히고 보살펴 주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 그런데 그 아이들을 살아가게 한 것은 재산도, 지위도, 특별한 능력도 아니었다.

한 여인의 사랑이었다.

이 장면에서 톨스토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하고, 또 다른 누군가를 보살피며 살아간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존재다.

그렇다면 살아 있는 동안 부지런히 걷는다는 것도 단순히 먼 거리를 이동하거나 많은 곳을 다녀오는 일만을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얼마나 멀리 걸었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걸었고, 그 길에서 누구의 손을 잡아주었느냐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

4. 세 가지 깨달음, 그리고 내가 걸어온 길

미하일은 인간 세상에서 세 가지 진실을 깨닫는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사랑이 있으며, 인간은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미리 알 수 없고, 결국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깨달음은 각각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결론으로 이어진다.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부유한 사람이라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살아갈 수는 없다.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한 순간을 맞는다. 반대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시몬이 미하일을 도왔던 것처럼 말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으며 지금까지 걸어온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젊은 시절에는 자신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루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알게 된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나 혼자 잘났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부모님의 희생이 있었고, 가족의 기다림이 있었으며, 어려울 때 손을 내밀어 준 사람들이 있었다. 때로는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누군가의 작은 친절이 삶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도 결코 혼자만의 걸음은 아니었다. 내가 두 발로 세상을 걸어왔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수많은 사람의 사랑이 그 걸음을 지탱해 주었던 것이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내가 이루어 낸 것들만 생각했지, 그 과정에서 누가 나를 도왔고 누가 나를 기다려 주었는지 충분히 돌아보지 못한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사와생보가 살아 있는 동안 멈추지 말고 걸으라는 다짐이라면, 톨스토이의 이야기는 그 걸음을 가능하게 해 준 사람들을 잊지 말라는 가르침처럼 다가온다.

어쩌면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내가 남긴 발자국의 수가 아니라, 그 발자국 곁에 함께했던 사람들의 온기인지도 모른다.

5.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미하일이 자신의 깨달음을 얻고 본래 천사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어두운 색채로 표현되던 그림은 점차 밝아지고, 인간 세상에서의 깨달음은 하나의 빛처럼 그려진다.

그 모습을 보면서 처음에 등장했던 가난한 구두장이 시몬을 다시 떠올렸다.

시몬은 자신이 데려온 낯선 사람이 천사라는 사실을 몰랐다. 그를 도와주면 어떤 좋은 일이 생길지도 알지 못했다. 그저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을 차마 외면하지 못했을 뿐이다.

어쩌면 인간의 선행이란 본래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거창한 명분이나 대단한 결심이 없어도, 눈앞에 있는 사람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는 것. 그것이 사랑의 시작일 것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오래전에 쓰인 이야기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거보다 훨씬 풍요로운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나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다고 해서 인간의 외로움과 불안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바쁘게 살아가면서 정작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잊고 지내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이제는 삶의 속도보다 방향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루었는가보다 어떤 사람으로 살아왔는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는가보다 누구와 무엇을 나누었는가.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돌이켜보면 사와생보와 톨스토이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질문에서 출발해 하나의 지점에서 만난다.

사와생보는 살아 있는 동안 무엇을 할 것인지 묻는다. 톨스토이는 무엇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지 묻는다.

하나는 삶을 미루지 말라는 가르침이고, 다른 하나는 그 삶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이다.

살아 있는 동안 부지런히 세상을 걷되, 그 길에서 사람을 잃지 말라는 것.

사람은 돈으로 생활을 유지할 수 있고, 음식으로 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인간다운 삶이 완성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사랑으로 오늘까지 살아왔고, 또 누군가를 사랑함으로써 내일을 살아갈 이유를 얻는다.

살아 있으니 걸어야 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가 있으니 그 걸음에는 의미가 있다.

톨스토이가 던진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제 분명하다.

사람은 결국 사랑으로 살아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누구나 알지만 잘 모르는 고전, 세계문학그림책으로 만나다.

만약 세상이 스스로 기록할 수 있다면, 톨스토이처럼 쓸 것이다. 
이사크 바벨(작가)

톨스토이의 업적은 문학이 품고 있는 모든 희망과 동경이 타당함을 입증한 것이다. 
안톤 체호프(작가)

우리는 톨스토이에 관한 책들만으로 도서관 하나를 꽉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얀코 라브린(작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걷는 사람, 하정우
하정우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大田都市鐵道 一號線 驛舍 따라 걷기

죽어서야 누울 것이니, 살아 있으니 걸어라. (死臥生步)

— 스물두 역을 걷다 —

2026년 10월 10일, 토요일

ㅇ 걷기 코스: 유성온천역 → 반석역 → 시청역 → 대전역 → 판암역 → 대전역 → 시청역 → 유성온천역

(儒城溫泉 → 九岩 → 顯忠院 → 世界杯競技場 → 老隱 → 智足 → 盤石 → 智足 → 老隱 → 世界杯競技場 → 顯忠院 → 九岩 → 儒城溫泉 → 甲川 → 月坪 → 葛馬 → 政府廳舍 → 市廳 → 炭坊 → 龍汶 → 五龍 → 西大田四街 → 中區廳 → 中央路 → 大田 → 大洞 → 新興 → 板岩 → 新興 → 大洞 → 大田 → 中央路 → 中區廳 → 西大田四街 → 五龍 → 龍汶 → 炭坊 → 市廳 → 政府廳舍 → 葛馬 → 月坪 → 甲川 → 儒城溫泉)

ㅇ 걷기 기록

- 출발시간: 오전 6시 37분
- 총거리: 48.0km
- 소요시간: 9시간 39분 4초
- 이동시간: 8시간 54분 29초
- 휴식시간: 44분 35초
- 평균속도: 5.1km/h
- 총 획득고도: 904m
- 최고점: 해발 134m

---

1. 다시 걷고, 다시 책을 읽기로 했다

미국 여행을 다녀온 지도 며칠이 지났다.

이번 미국 여행에서는 참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이동한 거리만 놓고 보면 어마어마했지만, 정작 내 두 발로 걸은 거리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자동차로 이동하는 시간이 길었던 탓이다.

여행을 다녀오느라 한동안 책도 제대로 읽지 못했고, 평소 즐기던 걷기 운동도 소홀해졌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으니 운동도 시작하고, 밀렸던 책도 펼쳐야겠다. 기왕이면 체중도 조금 줄였으면 좋겠고.

그런 생각으로 이번 주말에는 좀 길게 걸어보기로 했다.

어디를 걸을까. 산에 오를 수도 있고, 갑천을 따라 걸을 수도 있다. 그러다 문득 대전도시철도 1호선이 떠올랐다.

늘 익숙하게 지나치는 지하철역들을 지상에서 하나하나 찾아가며 걸어보면 어떨까.

유성온천역에서 출발해 북쪽 종점인 반석역을 찍고, 다시 동쪽 종점인 판암역까지 내려간 다음 처음 출발했던 유성온천역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이렇게 하면 대전도시철도 1호선의 스물두 역을 모두 찾아가게 된다.

지하철을 타면 어렵지 않을 길이지만 지상에서 걸으려면 제법 긴 거리가 될 것이다. 대략 50km 가까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오늘의 걷기 코스를 정했다.

2. 고요한 아침, 반석을 찍고 돌아오다

오전 6시 37분, 유성온천역 4번 출구.

오늘 걷기의 출발점이다.

유성온천역에서 반석역까지는 북쪽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구암, 현충원, 월드컵경기장, 노은, 지족을 지나 반석에 이른다.

아침 일찍 길을 나선 탓인지 거리는 조용했다. 평소 차량과 사람들로 분주한 도심이지만 이른 아침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한산한 거리를 따라 걷는 기분이 좋았다.

지족역에서는 뜻밖의 일이 생겼다. 갑자기 화장실이 급해진 것이다. 다행히 지하철역이 있으니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장거리 걷기에서 지하철역은 이럴 때도 요긴하다.

그렇게 첫 번째 종점인 반석역을 찍었다.

이제 방향을 바꿔 대전의 동쪽 끝, 판암역으로 향한다. 반석에서 되돌아오는 길도 조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거리에는 한가로운 분위기가 남아 있었다.

같은 길을 되짚어 걷지만 풍경은 달라 보인다. 진행 방향이 달라지면 거리의 표정도 달라지는 법이다.

정부청사 일대에 이르렀을 무렵, 걸음 기록은 17.3km를 가리켰다. 경과시간은 3시간 10분. 지족역에서 화장실에 들렀던 시간까지 포함해서다.

잠시 녹지공간에 자리를 잡았다.

파란 하늘 아래 잔디밭이 펼쳐져 있고, 소나무와 나무들이 어우러져 있었다. 멀리 정부청사 건물들이 보였다. 마님이 싸준 사과를 꺼내 먹으며 잠시 쉬었다.

아침부터 걸었으니 사과 한 조각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평소 집에서 먹던 사과와 다를 게 없겠지만, 오래 걸은 뒤에 먹으니 맛이 한결 좋았다.

사과를 먹고 다시 길을 나섰다. 아침의 고요함도 어느새 지나가고, 대전의 중심부로 들어설수록 거리에는 차량과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오전 11시 30분, 대전역 통과. 누적거리 27.0km.

대전역 앞 세븐일레븐 편의점에 들렀다. 게토레이를 사려고 보니 마침 2+1 행사를 하고 있었다. 한 병을 사느니 세 병을 사는 게 낫겠다 싶어 세 병을 구입했다.

그 자리에서 한 병을 마시고 나머지는 챙겼다. 아침부터 사과만 먹으며 걸어왔으니 수분과 당분을 보충할 때도 됐다.

다시 길을 나서 대동역과 신흥역을 지나니 마침내 판암역이 나타났다.

누적거리 30.6km.

두 번째 종점이다. 유성온천에서 반석을 거쳐 판암까지 왔으니 대전도시철도 1호선의 양쪽 끝을 모두 밟았다.

이제 처음 출발했던 유성온천역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3. 판암에서 돌아서다, 그리고 사와생보

판암역 역사 안에는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테이블이 있었다. 그곳에 자리를 잡고 게토레이 한 병과 마님이 싸준 사과를 테이블에 올려놓은 뒤 잠시 휴식을 취했다.

30km가 넘도록 걸었으니 몸이 피곤할 법도 한데 아직은 걸을 만했다. 그렇다고 힘이 남아도는 것은 아니다. 장거리 걷기에서 중요한 것은 순간의 속도보다 자기 걸음을 유지하는 일이다.

오늘 걸으면서 ‘와사보생(臥死步生)’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는 뜻이다. 걷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지만, 나는 이 네 글자의 순서를 바꾸고 싶었다.

사와생보(死臥生步).

죽어서야 누울 것이니, 살아 있으니 걸어라.

비슷한 말처럼 보이지만 내가 담고 싶은 뜻은 조금 다르다.

와사보생이 건강을 위해 걸으라는 말이라면, 내가 생각하는 사와생보는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걸어야 할 이유라는 뜻이다.

언젠가는 누구나 영원히 누울 날이 올 것이다. 지금은 당연하게 여기는 두 다리의 움직임도 세월이 흐르면 예전 같지 않을 수 있다. 가고 싶은 곳이 있어도 몸이 따라주지 않고, 보고 싶은 것이 있어도 쉽게 찾아갈 수 없는 날이 올지 모른다.

그렇다고 그날을 미리 걱정하며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미뤄둘 이유는 없다.

내가 해외여행을 자주 떠나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올해 터키와 미국은 네 식구가 함께했고, 일본은 아내와 두 차례 다녀왔다. 먼 나라에서 낯선 풍경을 만나는 일이나, 익숙한 도시를 천천히 걸으며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일이나 내게는 같은 즐거움이다.

책을 통해 세상을 만나는 것도 좋지만, 직접 그 땅을 밟고 사람들을 만나며 눈앞의 모습을 바라보는 경험은 또 다르다.

걸을 수 있을 때 걷고, 떠날 수 있을 때 떠나고, 읽을 수 있을 때 읽는 것.

내가 생각하는 사와생보는 그런 삶의 자세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길을 나섰다.

신흥역과 대동역을 거쳐 대전역으로 돌아왔다. 같은 대전역을 오늘 두 번 지나간 셈이다.

4. 성심당의 긴 줄, 그리고 추억의 코다리냉면

중앙로역으로 향하는 길에서는 뜻밖의 구경거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성심당 케익부띠끄 앞이었다.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끝나는 곳을 찾기도 쉽지 않았고, 햇볕을 피하려고 양산을 들고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니, 빵이 뭐라고 저렇게까지 줄을 선단 말인가.

물론 저 사람들에게는 성심당 빵을 사는 일이 대전 여행의 중요한 목적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도 마찬가지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지하철역 스물두 개를 찾아다니며 50km 가까이 걷겠다고 나섰으니, 다른 사람이 나를 보면 똑같은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서고, 누군가는 도시를 걸어서 돌아본다. 즐거움을 찾는 방법이 서로 다를 뿐이다.

그렇게 혼자 웃으며 중앙로역을 지나 중구청역에 도착했다.

이제는 제대로 식사를 해야겠다. 아침부터 사과와 게토레이로 버텼으니 점심 한 끼는 든든하게 먹어도 될 것 같았다.

중구청역을 지나 속초 코다리냉면 식당에 들어갔다.

이곳은 내게 낯선 식당이 아니다. 예전에 문화동에 살 때 자주 들르던 냉면집으로, 지역에서는 제법 유명한 곳이다. 여름이면 어느 냉면집이나 손님이 많겠지만, 이곳은 특히 붐비던 기억이 있다.

오랜만에 다시 찾으니 반가웠다.

메뉴판을 보니 코다리냉면이 13,000원, 동태전이 15,000원이었다. 코다리냉면 한 그릇에 동태전 한 접시를 주문했다.

혼자 먹기에 적지 않은 양이지만 오늘 걸은 거리를 생각하면 그 정도는 먹어줘야 하지 않겠는가.

먼저 나온 동태전은 큼지막하고 노릇노릇했다. 간장 양념에 찍어 먹으니 제법 맛있었다.

이어서 코다리냉면이 나왔다. 커다란 그릇에 면이 담기고, 그 위에는 붉게 양념한 코다리와 오이, 배, 삶은 달걀이 올라가 있었다. 보기에는 무척 매워 보였지만 생각보다 맵지 않았고, 맛도 좋았다.

다만 욕심껏 주문한 동태전은 양이 너무 많았다. 배가 불러 도저히 다 먹을 수가 없어 결국 절반 정도는 포장했다.

아침에는 살을 빼야 한다며 사과와 게토레이로 버텼는데, 점심에는 코다리냉면에 동태전까지 시켜 먹고 남은 음식을 싸 들고 나서는 신세가 됐다.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걸음을 이어갔다. 서대전네거리역과 오룡역을 지날 무렵에는 슬슬 몸이 대근해졌다.

특별히 어느 한 곳이 아픈 것은 아니었다. 그냥 전반적으로 피로가 쌓인 느낌이었다. 아침부터 38km가 넘는 거리를 걸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5. 40km를 넘어서 만난 또 하나의 성심당

용문역에 도착하니 마침내 누적거리 40km를 넘어섰다.

40.3km.

용문역 부근 롯데백화점 대전점 앞에서는 또다시 긴 행렬을 만났다. 이번에도 성심당이었다.

중앙로에서만 사람이 많은 줄 알았더니 이곳도 만만치 않았다. 백화점 건물 앞 경사로를 따라 기다리는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도로 사정도 비슷했다. 백화점으로 들어가려는 차량들 때문에 주변 교차로가 복잡해졌고, 경찰관들이 나와 교통정리를 하고 있었다.

인도에서는 빵을 사려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도로에서는 백화점에 들어가려는 차량들이 기다린다.

대전의 토요일 오후가 참 부산스럽다.

걸어서 지나가는 내게는 그 혼잡마저 구경거리였지만, 차를 몰고 들어가려는 사람들에게는 여간 답답한 일이 아닐 것이다.

성심당이라는 빵집 하나가 사람과 차량의 흐름까지 바꿔놓는 광경이 새삼 놀라웠다.

그 모습을 뒤로하고 탄방역에 도착했다.

6. 바르게 살자, 그리고 가을 축제

시청역으로 향하던 중 커다란 돌 표석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바르게 살자’

그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이렇게 새겨져 있었다.

‘바르게 살면 미래가 보인다.’

대전광역시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에서 세운 표석이었다.

거창한 내용은 아니다. 하지만 당연한 말도 돌에 새겨놓고 마주하니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바르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답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내게는 오늘처럼 걷고, 보고, 생각하며 하루를 보내는 것도 내가 바라는 삶의 한 모습이다.

그렇게 시청역에 도착했다.

인근 보라매공원에서는 축제가 한창이었다.

제10회 대전 서구 아트페스티벌.

가을볕이 참 좋은 날이었다.

나무들은 아직 푸른빛을 많이 간직하고 있었지만 군데군데 노랗고 붉은 잎들이 섞이기 시작했다. 공원 산책로에는 국화 화분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길 양옆으로는 하얀 행사 천막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전시와 체험행사를 구경하는 사람들, 가족과 함께 나온 시민들, 그늘에 앉아 쉬는 사람들까지 공원은 제법 활기가 넘쳤다.

잔디광장에는 무대가 설치돼 있었고, 객석에는 수많은 의자가 놓여 있었다. 누군가는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가을 풍경은 참 좋았지만 노랫소리는 내 귀에 영 거슬렸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내게는 차라리 조용한 가을 산책로가 더 좋겠다 싶었다.

조금 더 걸으니 행사 부스들이 길게 이어졌고,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가을볕이 길가의 국화꽃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멀리 여행을 떠나야만 좋은 풍경을 만나는 것은 아니었다.

늘 생활하는 도시에서도 계절은 바뀌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하루를 즐기고 있었다. 자동차나 지하철을 타고 지나갔다면 이런 장면들을 얼마나 자세히 보았을까.

걷는 동안에는 거리의 모습이 그냥 스쳐 지나가지 않는다. 때로는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때로는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오늘 ‘역사 따라 걷기’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도 바로 이런 데 있을 것이다.

7. 출발했던 자리로 돌아오다

정부청사역을 다시 지날 때는 누적거리가 43.7km에 이르렀다.

아침에 마님이 싸준 사과를 먹으며 쉬었던 곳이 가까워졌다. 그때는 아직 17.3km를 걸었을 때였는데, 어느새 43km를 넘겼다.

같은 장소라도 아침과 오후의 느낌은 달랐다. 조용했던 아침 거리를 걸어 반석에 다녀온 일이 벌써 오래전의 일처럼 느껴졌다.

이어서 갈마역에 도착했다.

주변 가로수들이 노랗게 물들고 있었다. 파란 하늘 아래 햇살을 받은 나뭇잎들이 반짝였다. 오늘 찍은 수많은 역사 사진 중에서도 갈마역의 가을 풍경은 유난히 보기 좋았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월평역을 지나 갑천역에 이르렀다. 남은 역은 유성온천역 하나뿐이다.

아침부터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니 참 멀리도 돌아왔다. 유성온천에서 반석까지 올라갔다가 판암까지 내려왔고, 다시 여기까지 온 것이다.

차를 타고 움직였다면 그저 몇 차례의 이동으로 끝났을 길이지만, 걸어서 지나온 거리에는 중간중간 쉬었던 자리와 길에서 만난 사람들, 눈에 들어왔던 장면들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유성온천역이 나타났다.

먼저 1번 출구를 지나면서 누적거리가 47.9km를 가리켰다. 이제 아침에 출발했던 4번 출구로 돌아갈 차례다.

유성온천역 4번 출구.

아침에 걸음을 시작했던 바로 그 자리다.

다시 돌아와 역 표지판을 사진으로 남겼다.

최종 누적거리 48.0km.

오늘 계획했던 대전도시철도 1호선 역사 따라 걷기가 끝났다. 반석역과 판암역을 모두 찍고 스물두 역을 따라 걸어 처음 출발한 자리로 되돌아왔다.

아침에 이곳을 떠날 때는 그저 오래 걸어보겠다는 생각이었다. 운동을 다시 시작하고, 밀린 책도 읽으며 일상의 리듬을 되찾겠다는 다짐이 출발의 이유였다.

하지만 하루를 걷고 돌아오니 거리의 숫자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들이 있었다.

마님이 싸준 사과, 지족역에서의 급한 화장실, 게토레이 2+1 행사, 예전에 자주 다니던 냉면집과 남아서 포장한 동태전. 성심당 앞의 긴 줄과 롯데백화점 주변의 혼잡, 보라매공원에서 만난 가을 풍경까지.

빵을 사려고 긴 줄을 선 사람들을 보며 웃었던 나도, 누가 시키지 않은 48km를 걸었다. 남 웃을 처지가 아니었다.

아침에 출발했던 자리로 다시 돌아왔지만, 그 길에서 보고 느낀 것들까지 출발할 때와 같지는 않았다.

역사 따라 걷기는 여기서 끝났지만 집까지는 조금 더 걸어야 했다. 그렇게 집에 도착하고 보니 하루 동안 걸은 거리는 어느새 51km가 되어 있었다.

미국 여행에서 돌아와 다시 운동하고 책을 읽겠다고 마음먹었던 주말. 이제 밀린 책도 다시 펼치고, 기회가 닿으면 또 길을 나설 것이다.

아직 가보지 못한 곳도 많고, 읽지 못한 책도 많다.

언젠가는 마음이 있어도 떠나지 못할 날이 올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죽어서야 누울 것이니, 살아 있으니 걸어라.

死臥生步.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카스피 2026-10-12 23: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창 많이 걸을 떄는 하루 7~8km씩 주 5~6일을 걸은 기억이 나는데 하루 40km는 정말 엄두가 나질 않네요.걷고나서 건강은 괜찮으신지요.

대장정 2026-10-13 05:11   좋아요 0 | URL
네~~아직은 젊은지라 괜찮습니다. 일요일, 월요일에도 각각 2만보이상 걸었네요. 대략 15km이상 될듯 합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되세요.
 

작가를 말하다
레프 톨스토이, Leo Tolstoy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는 19세기 러시아를 대표하는 위대한 작가 겸 사상가로 평가받는 다. 어린 나이에 부모가 죽고, 친척들 손에 자라났다. 16세가 되던 1844년 카잔대학교에 입학 했으나 형식적인 교육에 실망해 1847년에 중퇴했다. 공허한 생활에 염증을 느낀 톨스토이는 1851년 형 니콜라이를 따라 카프카즈 의용대에 들어가 포병 장교가 된다. 군대에 복무하면서쓴 『유년 시절』이 잡지 『현대인』에 실리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제대 이후, 문학의 새로운 방향을 추구하는 동시에 농민들의 열악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교육에 힘을 쏟는다. 1859년에는 농민 학교를 짓고 창작과 별개로 교육에 관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한다.
1862년 지적 관심이 충만했던 중산층 출신 소피야 안드레예브나 베르스와 결혼한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은 탓인지 아내에게 모성을 몹시 강조했다. 소피아는 열세 명의 아이들을 키우는 한편, 틈나는 대로 톨스토이의 원고를 교정하고 교열했다.
18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를 집필 했다. 1880년대 들어서 톨스토이는 원시 그리스도교로 회귀하고, 단순하고 간소한 생활을 유지하며,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사유재산을 부정하고 농민 계몽에 힘쓰는 금욕주의자로 변신했고, 말년에는 러시아 민중 사이에서 입에서 입으로 오래도록 구전되는 설화를 다시 쓰는 일에 몰두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도 그 작품 중 하나다. 또다른 대작 『부활』도 이 시기에 쓰였다. 톨스토이는 순례자가 되겠다고 집을 나선 며칠 후, 1910 년 11월 7일 아스타포보 역에서 폐렴으로 사망했다.

작품을 말하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What Men Live By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톨스토이가 한평생 붙잡았던 화두인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변을 해 주는 단편이다. 민중의 가슴을 적시기 위해 쓰인 작품이라 쉽고 따뜻하고 뭉클하다.
종교에 귀의한 후 원시 그리스도교가 지닌 미덕이 사람들과 세상에 스며들기를 원했던 그의 간절한 바람이 잘 녹아든 작품이기도 하다.
제화공 세묜이 신에게 버림받아 세상에 온 미하일을 돌보는 이야기지만, 이 ‘돌봄’은 결코 일방적인 것은 아니다. 세묜은 구두 만드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지만 사는 일은 힘겹기만 하다. 빵값은 비싼 데 품삯은 현저히 낮기 때문이다. 게다가 받아야 할 돈을 받지 못해 새 외투도 살 수없다. 고단한 생활과 빠듯한 생계 앞에서 긍정적인 삶의 방식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세묜은 인간성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 분투한다. 이 과정에서 미하일은 세묜과 그의 가족에게서 인생의 근본적인 가치에 대해 알게 한다. 세묜은 사람의 가치가 물질적 풍요에 있지 않고, 사랑과 이타심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또한, 미하일이 지닌 신비로운 힘과 그의 선한 영향력은 주변 사람들에게도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준다.
미하일이 발견된 곳은 공교롭게도 예배당 앞이었다. 이는 민중들과 멀어진 당시 기독교에 대한 비판 의식이 담겨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미하일은 신이 던진 세 질문, 사람 안에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무엇이 주어지지 않았는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야 했다. 이 질문은 작품의 후반부에 등장하는데, 덕분에 우리는 이전에 있었던 여러 사건을 복기할 기회를 얻는다. 동시에 천사 미하일이 왜 세 번 웃었는지 알게 되면서 그를 따라 자연스럽게 미소 짓게 된다.
“모든 사람이 스스로 계획해서가 아니라, 사람 안에 있는 사랑 때문에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 다.”라는 미하일의 말은 이 작품의 주제 의식을 관통한다. 사람을 어지럽히는 무수한 유혹과 삶을 뒤흔드는 갖가지 사건 사이에서 사랑이 갖는 힘과 가치를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람 안에 사랑이 있고, 사랑이 주어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으며, 마침내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깨달음은 시공을 초월해 여전히 우리에게 울림을 준다. ‘사랑하라!‘는 말을 건네는 이 책이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자신의 깊은 종교적 신념과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사랑과 연민이야말로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근본임을 강조했다.

세계를 말하다
‘입고’ ‘먹고’ ‘사는’ 사랑, 그리고 애칭
톨스토이는 후반기에 쓴 작품들에서 사랑과 선을 실천하라고 이야기한다. 이 사랑의 대상은 비단 가족이나 연인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랑은 헐벗은 자, 굶주린 자, 몸 누일 곳 없는 자들에 게까지 향한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주인공 세묜의 직업이 제화공인 것도, 그들이 빵값이 없어 걱정하는 나날을 보내는 것도, 예배당에서 발견한 미하일이 갈 데가 없는 것도, 삶의 바탕을 이루는 의식주의 중요성을 드러내 준다. 그의 작품에서 의식주는 누리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것이 된다.
톨스토이는 작품을 통해 외면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사랑의 든든한 초석임을 이야기한다. 세묜은 미하일을 보고 고민에 빠진다. ‘네 돈을 도둑질할까 봐 두려운 거야? 에이, 세마. 그건 좋지 않지!’ 외면하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을 때, 세묜은 스스로를 가리켜 ‘세마’라고 일컫는다. 세마는 세묜의 애칭이다. 한편, 세묜이 미하일의 이름을 알게 된 뒤 곧장 ‘미하일라’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것 또한 사랑의 발현이다. 사랑이 필요한 순간, 애칭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가 미하일을 부를 때 “사랑하는 사람아”라고 버릇처럼 말하는 것 또한 사랑의 실천이다. 사랑이 계속되 어야 한다고 재확인하는 것이다.
문학에서 신앙으로
톨스토이는 젊은 시절부터 자신을 괴롭혀 온 삶의 목적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했다. 과학, 철학, 역사, 문학 등 여러 분야의 책을 탐독하며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그 실패는 곧바로 정신적 위기로 이어졌고 이때 톨스토이는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다. 사는 게두렵고 삶이 불명확하고 불투명하게만 느껴졌다. 그때 쓴 책이 『고백록』(1879)이다. 이 책에서 그는 그간 신봉해 왔던 ‘이성’이 비이성적이었음을 고백했다. 또한 자기 자신뿐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해서 일할 때, 삶의 의미가 발견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1885)를 쓰기 전, ‘인간은 어떻게, 무슨 목적으로 살아야 하는가?’란 질문에 대한 답을 『고백록』에 먼저 담은 셈이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상류 계층으로서 자기의 삶이 철저히 거짓과 위선 위에 세워 졌음을 자각한다. 청빈과 금욕을 한껏 예찬하면서도 정작 안락한 삶을 버리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 엄습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때부터 그는 문학보다 종교 사상에 더욱 몰두한다.
톨스토이에게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허위의식을 벗어 버리는 ‘실천’에 있었다. 그는 기존의 복음서 네 권을 하나로 묶어 새로운 『복음서』(1883)를 펴냈다. 그러나 ‘독선과 신비로부터 해방된 기독교’를 만들겠다는 그의 원대한 꿈은 정교회로부터 파문당하면서 좌절되고 만다. 이 때문에 후대인들은 예술가 톨스토이와 사상가 톨스토이를 구분해 평가하기도 한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세계문학그림책 | 오은 저자(글) · 조아름 그림/만화 · 레프 톨스토이 원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