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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비행 ㅣ 세계문학그림책
이산호 지음, 구남훈 그림,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원작 / 고래의숲 / 2024년 11월
평점 :
야간 비행
— 안전과 실행, 그 어려운 선택 앞에서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원작 『야간 비행』 그림책을 읽고
인간은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개척해 왔다.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일에 도전하고, 위험을 감수하며, 때로는 자신의 생명까지 걸면서 오늘날의 문명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피할 수 없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어디까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 위험을 감수하도록 결정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책임이 따르는가.
생텍쥐페리의 『야간 비행』은 바로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이번에 읽은 책은 생텍쥐페리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재구성한 그림책이다. 석양이 물든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기, 어둠 속에서 몰아치는 폭풍우, 조종석의 작은 계기판, 지상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강렬한 색채로 펼쳐진다. 아름다운 그림이지만 그 속에 담긴 이야기는 결코 가볍지 않다. 하늘을 나는 사람들의 용기와 그들을 지휘하는 사람의 책임, 그리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희생과 갈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도로건설 현장에서 사업을 추진하고, 지금은 도로안전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는 나에게 이 작품은 단순한 항공 모험담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안전과 실행. 말로는 간단하지만 현실에서는 어느 하나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두 가지 가치가 떠올랐다.
1. 어둠 속으로 날아오르는 사람들
이야기의 배경은 항공우편 사업이 막 발전하던 시기의 남아메리카다. 당시 비행기는 오늘날처럼 정교한 항법장비나 기상정보를 갖추지 못했다. 특히 야간 비행은 낮보다 훨씬 위험했다. 조종사는 어둠 속에서 지형을 분간하기 어려웠고, 갑작스러운 악천후를 만나면 자신의 경험과 판단에 의존해야 했다.
그럼에도 항공우편 사업을 이끄는 리비에르는 야간 비행을 계속 추진한다. 우편물을 더 빠르게 운송하기 위해서는 밤에도 비행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밤이라는 이유로 비행을 중단한다면 항공운송이 가진 속도의 이점을 충분히 살릴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에게 야간 비행은 단순히 운송 시간을 단축하는 일이 아니라, 인간이 아직 극복하지 못한 한계를 넘어서는 도전이었다.
그러나 그 도전의 최전선에는 실제로 비행기를 조종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 파비앵이다. 파비앵은 밤하늘을 날다가 거센 폭풍우를 만난다. 사방은 어둠에 잠기고, 구름과 바람은 비행기를 위협한다. 그는 어떻게든 항로를 유지하고 돌아가려 하지만 상황은 점점 악화된다.
그림책에 등장하는 거대한 소용돌이와 그 속의 작은 비행기는 인간과 자연의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보여준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인간이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가졌더라도 자연 앞에서는 여전히 한없이 작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과연 이 비행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했을까.
2. 실행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리비에르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그의 결정이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새로운 기술과 제도는 처음부터 완벽한 안전이 확보된 상태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드물다. 누군가 먼저 시도하고, 그 과정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경험을 축적하면서 발전해 왔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이용하는 항공교통 역시 수많은 시행착오와 기술적 도전의 결과다.
도로건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산을 뚫어 터널을 만들고, 바다를 건너 교량을 놓으며, 험준한 지형에 새로운 길을 내는 일에는 언제나 어려움과 위험이 따른다. 공사를 하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지반 조건이 나타나고 기상이 악화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모든 위험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릴 수만은 없다. 공사를 마냥 중단할 수도, 무리하게 밀어붙일 수도 없으니 제한된 예산과 공사기간, 기술적 여건 속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리비에르가 추구했던 실행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실패할 위험도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문제는 실행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떤 준비와 판단을 거쳐 실행할 것인가에 있다. 도전에는 위험이 따르지만, 그렇다고 모든 위험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3.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의 무게
파비앵 못지않게 깊은 인상을 남긴 인물은 리비에르였다. 파비앵이 실제 위험과 맞서 싸우는 사람이라면, 리비에르는 그 위험을 감수할 조직의 방향을 결정하는 사람이다.
리비에르는 규율을 엄격히 하고 개인의 감정보다 조직의 사명을 앞세운다. 그러나 조종사들의 위험을 모르는 것도, 그들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것도 아니다. 그는 엄격한 규율과 책임감이 위험한 비행을 가능하게 하고, 궁극적으로 조직과 조종사를 지탱한다고 믿었다.
현장의 사람은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지만, 관리자는 그 임무를 계속할지 멈출지를 정한다. 그 판단이 틀리면 결과는 현장의 사람에게 먼저 닿는다.
나는 이 대목에서 공사감독 시절을 떠올렸다.
장마철, 국가하천을 가로지르는 공사용 가교의 복공판(가교 위에 깔아 둔 철판)을 언제 철거할지 결정해야 했던 적이 있다. 현장에서는 하루라도 더 작업하기를 원했지만, 나는 비 예보를 근거로 철거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서로 이유가 분명했기에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고, 결국 하루만 더 작업한 뒤 철거하기로 타협했다.
다행히 비는 예보보다 늦게 내렸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내 판단이 옳았다는 증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운이 따랐을 뿐이다.
결과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결정해야 하는 것, 그것이 관리자의 자리다.
공사 진척도, 공사기간도 중요하다. 국민에게 약속한 사업을 적기에 완공하는 것도 공공사업을 맡은 사람의 책임이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는 것은 사람의 생명이다. 그렇다고 안전만 앞세워 모든 일을 멈출 수도 없다. 사업이 멈춰 생기는 사회적 손실과 국민의 불편도 무겁기 때문이다. 결국 관리자는 실행의 필요성과 위험의 정도를 함께 저울질해야 한다.
실행을 결정하는 용기도 필요하지만, 위험하다고 판단될 때 멈추라고 명령하는 용기 역시 필요하다.
그것이 책임 있는 관리자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4. 한 사람의 희생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파비앵은 결국 폭풍우 속에서 돌아오지 못한다. 그의 비행은 항공우편 사업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치러야 했던 희생처럼 그려진다. 그러나 나는 그 희생을 단순히 숭고한 도전의 결과로만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았다.
파비앵에게도 삶이 있었고, 그를 기다리는 아내가 있었다. 그림책에 등장하는 실내의 따뜻한 불빛과 기다리는 사람의 모습은 어둠 속의 비행기와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하늘에서는 한 명의 조종사가 임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지상에서는 누군가의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대형 사업을 이야기할 때 사업비와 공사기간, 추진 실적과 성과를 중심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몇 킬로미터의 도로를 개통했는지, 얼마나 많은 예산을 집행했는지, 공사기간을 얼마나 단축했는지가 중요한 지표가 된다. 물론 이러한 성과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 숫자 뒤에는 수많은 사람의 노동과 땀이 있고, 때로는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삶이 있다.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고를 단순히 통계상의 숫자 하나로만 바라볼 수 없는 이유다. 사고 한 건은 누군가에게는 평생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가 될 수 있다.
리비에르가 야간 비행을 계속 추진한 것은 항공운송의 미래를 위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결정의 무게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파비앵의 희생뿐 아니라 그를 기다렸던 사람들의 슬픔까지 함께 바라보아야 한다.
조직의 성과는 숫자로 평가할 수 있지만, 한 사람의 생명은 어떤 숫자로도 환산할 수 없다.
5. 안전과 실행, 그 사이에서 길을 찾다
『야간 비행』의 결말에서 리비에르는 파비앵이 돌아오지 못했음에도 다음 비행을 계속하도록 한다. 한 사람이 희생되었는데도 같은 일을 계속하는 것이 옳은가. 그렇다고 희생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도전을 포기해야 하는가. 어느 한쪽을 택한다고 풀리는 문제가 아니다.
현실의 판단은 더욱 흐릿하다. 정보는 불완전하고, 시간은 부족하며, 이해관계는 복잡하다. 복공판을 두고 고민하던 그날처럼, 우리는 결과를 모른 채 결정해야 한다. 그래서 책임자의 자리는 어렵다.
결정하지 않는다고 책임이 사라지는 것도, 결정했다고 책임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리비에르의 결정을 모두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가 짊어진 고뇌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도로안전 업무에서도 마찬가지다. 위험한 도로를 고치려면 공사를 해야 하고, 공사에는 또 다른 위험이 따른다. 그렇다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기존의 위험이 그대로 남는다. 안전과 실행 사이에서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정답을 찾기란 쉽지 않다.
결국 중요한 것은 결과가 좋았는지가 아니라, 그 결정을 내릴 당시 위험을 얼마나 충실히 검토하고 책임 있게 판단했는가일 것이다.
6. 어둠 속에서도 비행은 계속되어야 하는가
그림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어둠과 빛이 교차하는 하늘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작은 비행기는 인간의 도전정신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그 비행기가 얼마나 위태로운 존재인지도 보여준다.
생각해 보면 길을 만드는 일도 결국 사람을 위한 일이다. 사람들이 더 빠르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지만, 그 길의 궁극적인 가치는 속도나 규모에만 있지 않다. 사람들이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하고, 다시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길을 만드는 이유이며, 도로안전이라는 업무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파비앵이 돌아오지 못한 밤에도 리비에르는 다음 비행을 준비했다. 나는 그 선택을 쉽게 비난할 수도, 무조건 찬양할 수도 없다. 다만 우리가 같은 자리에 선다면, 다음 비행을 계속할지 정하기에 앞서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떤 위험을 줄일 수 있는지부터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과거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으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야간 비행』은 내게 도전과 용기의 아름다움만을 보여준 작품이 아니다. 무언가를 실행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책임을 수반하는지, 그리고 그 책임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 이야기다. 세상에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러나 그 일을 반드시 지금, 반드시 이 방법으로 해야 하는지는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멈추지 않는 것만이 용기는 아니다. 멈춰야 할 때 멈출 줄 아는 것도 용기다.
어둠 속에서도 비행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비행의 목적은 단순히 더 빨리 도착하는 데 있어서는 안 된다.
그 비행을 시작한 사람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까지가 우리가 완수해야 할 임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