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가슴이 뜨거워져라 - 열정 용기 사랑을 채우고 돌아온 손미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손미나 지음 / 삼성출판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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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다시 가슴이 뜨거워져라』 ― 억겁과 찰나

― 헤아릴 수 없이 긴 우주의 시간 속, 찰나에도 미치지 못하는 인간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 억겁(億劫): 불교에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긴 세월을 뜻한다. ‘겁(劫)’은 거대한 바위를 백 년에 한 번씩 흰 천으로 닦아 그 바위가 모두 닳아 없어져도 아직 끝나지 않을 만큼 긴 시간에 비유된다. ‘억겁’은 그런 겁이 헤아릴 수 없이 이어지는 세월을 이른다.
※ 찰나(刹那): 불교에서 극히 짧은 순간을 뜻한다. 『아비달마구사론』의 시간 단위를 현대 시간으로 환산하면 약 1/75초(약 0.013초)에 해당한다.

손미나의 『다시 가슴이 뜨거워져라』를 다시 꺼내 들었다. 오래전에 『스페인, 너는 자유다』, 『파리에선 그대가 꽃이다』, 『페루, 내 영혼에 바람이 분다』를 재미있게 읽었고, 아직 읽지 않은 일본 여행기 『태양의 여행자』도 이번에는 이어서 읽어볼 생각이다.

그런데 책을 펼치자마자 프롤로그에서 한동안 머물렀다. 손미나는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사랑하는 사람에 빗대면서 사랑 때문에 상처받고, 세상의 진실에 대한 믿음까지 흔들렸던 시기를 이야기한다.

『다시 가슴이 뜨거워져라』가 출간된 것은 2009년 11월이다. 손미나는 그보다 앞선 2008년 결혼생활을 끝냈고, 이 책을 쓰기 전 아르헨티나로 떠났다. 이 시간을 알고 프롤로그를 다시 읽으니 ‘무너진 사랑’이라는 표현이 단순한 문학적 수사로만 읽히지는 않는다. 물론 그 결혼생활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당사자들만이 아는 일이다. 다만 한 사람의 삶이 크게 흔들린 직후 떠난 여행이었다는 사실은 이 책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배경이 된다.

나는 결혼한 지 26년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이혼 이야기에 흔히 따라붙는 ‘성격 차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이 많아진다. 한 뱃속에서 태어난 형제도 성격이 다른데, 서로 다른 집안과 환경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두 사람이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는가.

나는 부부가 문자 그대로 ‘일심동체’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결혼은 서로 같은 두 사람이 만나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에 가깝다. 맞출 것은 맞추고,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때로는 다투고 다시 말을 섞으며 살아간다. 아이를 낳아 함께 키우고, 같은 밥상에 앉고, 한집에서 수많은 계절을 보내다 보면 처음의 뜨거운 감정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정’이라는 것도 쌓여간다.

물론 어떤 관계에는 더 이상 함께 살아갈 수 없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이혼을 밖에서 재단할 수는 없다. 다만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데서 생기는 모든 차이를 없앨 수는 없으며, 결국 중요한 것은 그 차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조정하며 살아가느냐가 아닐까 싶다.

사람은 참 많은 것을 원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나와 같기를 바라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나를 이해하고 사랑해주기를 바란다. 돈을 더 갖고 싶고, 남보다 인정받고 싶으며, 조금 더 높은 곳에 오르고 싶어 한다. 욕망이 인간을 움직이는 힘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욕망 때문에 스스로 속을 끓이고 가장 가까운 사람까지 힘들게 만드는 것도 인간이다.

시선을 지구 밖의 우주로 옮겨보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티끌처럼 보인다.

우주의 나이는 약 138억 년이고 지구의 나이도 약 45억 년이다. 그 억겁의 시간에 인간이 살아가는 80년, 90년을 놓아본다면 한평생은 찰나라고 부르기조차 어려울 만큼 짧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무엇을 그토록 움켜쥐려고 하는 것일까.

그렇다고 삶이 허무하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찰나에도 미치지 못하는 시간이기에 더 알차고 찰지게 살아야 한다. 보고 싶은 것을 보고, 가고 싶은 곳에 가고,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밥을 먹고 웃을 수 있어야 한다. 무언가를 하나 더 갖기 위해 평생 마음을 소모하기보다 어느 순간에는 “이만하면 됐다”고 말할 줄도 알아야 한다.

어쩌면 여행도 그런 삶의 방식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여행이 모든 상처를 치료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익숙한 자리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풍경과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면 내가 붙잡고 있던 것들을 조금 떨어져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손미나에게 부에노스아이레스가 그런 곳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랑이 무너진 자리에서 떠났고, 낯선 도시를 걷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다시 자기 삶의 온도를 확인해갔을 것이다.

나 역시 여행을 좋아한다. 낯선 곳으로 가는 이유는 새로운 풍경을 보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오래된 역사유적 앞에 서고, 인간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웅장한 자연을 바라보다 보면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 짧은 삶 동안 무엇을 보고, 무엇을 기억하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여행은 결국 이동을 통해 이루어진다. 사람은 길을 따라 새로운 장소로 향하고, 그 길 위에서 서로 다른 풍경과 사람과 삶을 만난다.

사람이 움직이고 물건이 이동해야 세상은 서로 연결된다. 좋은 물건을 만들어도 필요한 곳으로 옮길 수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고, 사람이 이동할 수 없다면 도시와 시장과 생활권도 만들어지기 어렵다. 길이 열리면 사람이 만나고, 물자가 흐르고, 서로 떨어져 있던 지역이 하나의 생활권으로 이어진다.

도로와 교통이라는 내 오랜 밥벌이도 결국 그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었다. 도로 몇 킬로미터를 건설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 길을 통해 사람이 움직이고 물류가 흐르며 서로 다른 삶이 이어지게 만드는 일이다.

책 한 권의 프롤로그에서 시작한 생각이 여기까지 왔다.

처음에는 프롤로그의 ‘무너진 사랑’이라는 문장을 보며 그 무렵의 손미나의 이혼과 삶을 떠올렸을 뿐이다. 그 생각은 결혼과 부부의 삶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고, 다시 인간의 욕망을 지나 억겁의 우주와 찰나 같은 인생을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그 끝에서 다시 여행과 길의 의미를 만났다.

억겁의 세월에 비하면 우리의 삶은 찰나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 짧은 시간만큼은 제대로 살아볼 일이다. 많이 가지는 삶보다는 많이 보고, 느끼고, 사랑하고, 기억하는 삶. 남이 정해놓은 길만 따라가기보다 내가 가보고 싶은 길도 걸어보는 삶.

아직 『다시 가슴이 뜨거워져라』를 다시 읽기 시작한 참이다. 본격적인 감상은 책장을 더 넘긴 뒤에 써야 할 것이다. 하지만 프롤로그 몇 쪽만으로 이미 생각은 제법 먼 곳까지 다녀왔다.

어쩌면 제목 그대로인지도 모르겠다.

가슴이 다시 뜨거워진다는 것은 거창한 무엇을 이루는 일이 아니라, 찰나와도 같은 자기 삶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깨닫고 다시 길 위에 서는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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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관의 살인 ㅣ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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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4] 『인형관의 살인』 히류 소이치의 정신분석
- 가케바 히사시게의 해석을 중심으로 본 죄책감, 자기파괴, 세 인격의 형성


1. 분석의 전제

ㅇ(분석대상) 본 외전은 결말부에서 가케바 히사시게가 제시한 설명을 중심으로 히류 소이치의 정신구조와 세 인격의 형성과정을 분석함.

ㅇ(해석의한계) 가케바 자신도 자신의 설명 대부분이 겉으로 드러난 사실에 대한 주관적 해석이라고 밝히므로, 이를 의학적 확정진단이 아니라 작품 내부에서 제시된 해석으로 다룸.

ㅇ(핵심흐름) 히류의 정신은 어린 시절의 죄, 죄책감의 억압, 자기파괴 충동, ‘그’의 출현, 삶의 이유와의 충돌, ‘시마다’의 출현이라는 흐름으로 이해할 수 있음.


2. 정신적 상처의 기원, 어린 시절의 두 가지 ‘죄’

가. 열차사고와 친어머니의 죽음

ㅇ(최초의죄) 히류는 여섯 살 때 선로에 올려놓은 돌 때문에 열차가 전복되고 친어머니 미와코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죽었다고 인식함.

ㅇ(죄책감형성) 어린 히류에게 이 사건은 단순한 사고의 기억이 아니라 ‘내가 어머니와 여러 사람을 죽였다’는 강력한 죄의식으로 자리 잡음.


나. 또래 아이의 죽음

ㅇ(두번째죄) 열차사고를 알고 히류를 ‘살인자’라고 조롱하던 아이를 밀쳐 강에서 죽음에 이르게 함.

ㅇ(죄의중첩) 열차사고에 이어 자신의 직접적인 행동으로 또 한 명이 죽으면서 히류의 내면에는 자신을 ‘사람을 죽인 인간’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더욱 강해짐.

ㅇ(정신적상처) 가케바가 만난 담당의사는 어린 시절의 이러한 행위와 그에 따른 강렬한 죄의식이 히류에게 커다란 정신적 상처로 남았다고 설명함.


3. 그림을 통한 죄의 고백과 자기처벌

가. 반복되는 죽음의 그림

ㅇ(자기죽음) 가케바는 히류가 그림 속에서 반복적으로 죽이고 있던 대상이 결국 자기 자신이었다고 해석함.

ㅇ(자기파괴) 그림에 나타나는 죽음은 히류가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에게 죽음을 부여하는 행위이며, 내면의 강한 자기파괴 충동을 드러냄.


나. 그림의 정화 기능

ㅇ(고백행위) 학창시절 히류는 자신의 죄를 그림에 투영하고 이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방식으로 무의식적인 고백을 계속함.

ㅇ(정화작용) 가케바는 이러한 창작과 공개가 일종의 참회로 작용하여 죄책감을 외부로 표출하고 죽음으로 향하는 정신을 억제했다고 해석함.

ㅇ(환경변화) 대학 졸업 후 취직하지 않고 본가에서 지내면서 그림을 타인에게 보여줄 기회가 사라지고, 히류는 자기 자신만을 위한 죽음의 그림을 그리게 됨.

ㅇ(자가중독) 외부를 향한 고백의 통로가 사라지자 죄책감은 내부에서 반복되고 증폭되었으며, 결국 실제 자살시도로 이어짐.


4. 사와코, 히류를 삶에 붙잡아둔 제동장치

ㅇ(자살시도) 히류는 아틀리에에서 목을 매 자살하려 했으나 사와코에게 발견되어 실패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함.

ㅇ(삶의이유) 자신이 죽으면 사와코 역시 살아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와코의 존재는 히류에게 강력한 생존 이유로 작용함.

ㅇ(퇴원조건) 담당의사 역시 사와코의 존재가 히류의 자기파괴를 억제하는 제동장치가 될 것으로 판단하여 퇴원을 허락함.

ㅇ(내적모순) 그러나 ‘죽어야 한다’는 충동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으며, 죽고 싶은 자신과 사와코를 위해 살아야 하는 자신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가 계속됨.


5. 첫 번째 인격 ‘히류’,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본래의 자아

ㅇ(본래의자아) 첫 번째 인격은 작품의 화자이자 평소의 히류 소이치로, 자신을 하나의 독립된 인간으로 인식하며 일상생활을 이어가는 기본 인격임.

ㅇ(기억의공백) 어린 시절의 두 가지 죄와 다른 인격이 행동한 시간의 기억을 온전히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외부인이 저지른 범행으로 받아들임.

ㅇ(피해자인식) 돌, 인형 훼손, 협박편지, 쓰지이의 죽음 등 자신이 연루된 사건을 알지 못한 채 스스로를 정체불명의 범인에게 위협받는 피해자로 인식함.

ㅇ(죽음의충동) 마음 깊은 곳에는 오랫동안 자기 자신을 죽음으로 향하게 하는 충동이 존재하지만, 이를 의식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실행하는 주체는 아님.

ㅇ(생존의지) 한편 사와코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생각과 기사코를 만나면서 생겨난 삶에 대한 감정 역시 본래의 히류 안에 존재함.

ㅇ(분열의중심) 결국 본래의 히류는 죽음을 향하는 자기처벌 욕구와 삶을 향하는 생존욕구 사이에서 갈등하며, 이 상반된 힘이 각각 ‘그’와 ‘시마다’라는 별도의 인격으로 나타나는 중심이 됨.


6. 두 번째 인격 ‘그’, 죄의 고발자이자 심판자

가. 형성 배경

ㅇ(죽음의방향) 가케바는 히류에게 오래전부터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방향성이 존재했다고 보고 이를 프로이트의 ‘타나토스’에 비유함.

ㅇ(심판자인격) 억압되어 있던 죄책감과 자기파괴 충동이 독립된 인격으로 분리되면서 히류를 심판하려는 두 번째 인격 ‘그’가 형성됨.


나. ‘그’의 목적

ㅇ(죄의고발) ‘그’는 돌, 인형 훼손, 협박편지 등을 이용하여 히류가 잊어버린 과거의 죄를 스스로 기억하도록 강요함.

ㅇ(자기처벌) 목적은 단순히 히류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의 죄를 깨닫고 충분히 괴로워하게 한 뒤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임.

ㅇ(분리된자아) ‘그’는 자신을 히류와 별개의 존재로 인식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죽이려는 행위를 ‘히류라는 죄인을 심판하는 행위’로 받아들임.


7. 사와코 살해, 삶의 제동장치 제거

ㅇ(선행조건) ‘그’가 히류를 죽이기 위해서는 먼저 히류가 살아야 할 가장 강력한 이유인 사와코를 제거할 필요가 있었음.

ㅇ(방화살해) 이에 ‘그’는 안채에 불을 질러 사와코를 살해함.

ㅇ(죄책감가중) 이후 사와코의 죽음까지 히류 자신의 죄라고 고발하는 편지를 보내 자기처벌의 근거를 더욱 강화함.

ㅇ(심리적의미) 사와코 살해는 외부인을 향한 범죄이면서 동시에 히류 자신의 생존 기반을 스스로 파괴한 행위라는 이중적 의미를 지님.


8. 기사코의 등장, 다시 나타난 ‘삶’의 방향

ㅇ(새로운관계) 사와코가 사라진 뒤 히류는 기사코와 가까워지면서 다시 삶을 향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함.

ㅇ(새로운제동장치) 가케바의 해석에 따르면 기사코는 사와코를 대신하여 히류를 삶에 붙잡아두는 새로운 힘이 됨.

ㅇ(계획중단) 이를 감지한 ‘그’는 히류를 죽이려던 계획을 바로 실행하지 못하고 잠시 멈추게 됨.

ㅇ(제거대상) 이후 ‘그’에게 기사코는 단순한 연애대상이 아니라 히류를 죽음에서 멀어지게 하는 존재이므로 반드시 제거해야 할 대상이 됨.


9. 세 번째 인격 ‘시마다’, 생존욕구가 만든 구원자

가. ‘시마다’의 탄생

ㅇ(과거의안식처) 실제 시마다 기요시는 대학 시절 히류에게 정신적 안식처가 되어준 친구였음.

ㅇ(구원욕구) 기사코를 통해 다시 삶의 방향을 느낀 히류는 현재의 자신을 도와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기를 절실하게 원함.

ㅇ(인격형성) 이러한 욕구가 과거 자신을 도와주었던 친구의 모습을 빌려 세 번째 인격 ‘시마다’를 만들어냄.


나. ‘그’와 ‘시마다’의 대립

ㅇ(죽음과삶) ‘그’가 히류를 죽음으로 이끄는 인격이라면 ‘시마다’는 히류를 보호하여 삶으로 되돌리려는 인격임.

ㅇ(상호독립) 가케바의 설명에 따르면 ‘그’와 ‘시마다’는 서로의 정체를 알지 못하며 각각 자신을 독립된 존재로 인식함.

ㅇ(선의의추리) ‘시마다’는 히류를 속이려 한 것이 아니라 실제 명탐정처럼 사건을 해결하여 친구를 구하려 했기 때문에 성씨 일치설, 비밀통로설, 가케바 범인설 등을 진심으로 만들어냄.


10. 기사코 습격, 한 육체에서 충돌한 죽음과 삶

ㅇ(그의공격) ‘그’는 히류를 삶에 붙잡아두는 기사코를 제거하기 위해 마네킹의 팔로 공격함.

ㅇ(시마다의구조) 공격 도중 히류의 강한 생존욕구가 ‘시마다’를 불러내면서 인격이 전환되고, 같은 육체가 이번에는 기사코를 구함.

ㅇ(동일목소리) 기사코가 공격자와 구조자의 목소리를 모두 히류의 것으로 기억한 것은 두 인격이 하나의 육체를 공유한다는 결정적 증거가 됨.

ㅇ(핵심장면) 이 장면은 히류 내부에서 진행되던 자기파괴와 생존욕구의 충돌이 현실의 행동으로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난 순간임.


11. 쓰지이 살해, ‘또 다른 히류’에 대한 대리처벌

ㅇ(범행목격) ‘그’는 우연히 쓰지이가 어린아이를 살해한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됨.

ㅇ(자기동일시) 어린아이를 죽인 쓰지이의 모습에서 과거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한 히류 자신을 발견하고 쓰지이를 ‘또 다른 히류’로 인식함.

ㅇ(대리처벌) 쓰지이를 살해한 행위는 다른 살인자를 처벌하는 동시에, 히류가 자신의 죄를 외부의 닮은 존재에게 투영하여 대신 처벌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음.


12. 히류의 세 인격 구조

ㅇ(첫번째인격·히류)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면서도 과거의 기억과 죽음의 충동을 온전히 인식하지 못하는 본래의 자아임.

ㅇ(두번째인격·그) 죄를 기억시키고 히류를 심판하여 죽음으로 이끌려는 자기처벌의 인격임.

ㅇ(세번째인격·시마다) 히류를 보호하고 사건을 해결하여 삶으로 돌려놓으려는 생존과 구원의 인격임.

ㅇ(대립구조) 히류의 정신은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본래의 히류, 히류를 죽음으로 이끄는 ‘그’, 히류를 삶으로 되돌리려는 ‘시마다’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작용하는 구조를 형성함.


13. 종합분석

ㅇ(죄책감의변형) 히류가 감당하지 못한 어린 시절의 죄책감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기억 아래에 남아 자기파괴의 힘으로 변화함.

ㅇ(자아의분리) 죽음을 향하는 힘은 ‘그’라는 심판자로, 살아남으려는 힘은 ‘시마다’라는 구원자로 각각 인격화됨.

ㅇ(외부화) 히류는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심판과 구조를 외부의 살인자와 명탐정이 벌이는 사건으로 인식하며, 자신의 정신 내부를 하나의 미스터리 세계로 만들어냄.

ㅇ(심리적밀실) 따라서 『인형관의 살인』에서 가장 깊은 밀실은 2-C 욕실이 아니라 히류 자신도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었던 히류의 정신이라고 볼 수 있음.

ㅇ(내면의충돌) 히류 소이치 안에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본래의 ‘히류’, 자신을 심판하여 죽이려는 ‘그’, 자신을 구해 삶으로 돌려놓으려는 ‘시마다’가 함께 존재했으며, 결국 범인과 피해자, 심판자와 구원자가 모두 자기 자신이었다는 데 그의 비극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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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각관의 살인 ㅣ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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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배경 추적] 『십각관의 살인』의 무대를 찾아서
― 오이타현 동쪽 해안의 무인도에서 벳푸 간나와까지


아야츠지 유키토의 『십각관의 살인』을 읽다 보면 사건의 중심무대인 츠노시마는 가상의 섬이지만, 그 섬으로 향하는 바다와 본토의 풍경에는 실제 오이타현의 지리가 촘촘하게 깔려 있다.

작품 속 배는 “규슈 오이타현 동쪽 해안으로 머리를 내민 S반도 J곶”을 뒤로하고 해안에서 약 5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섬, 츠노시마로 향한다.

본토에서는 가와미나미가 의문의 편지를 받은 뒤 그 배후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조사를 거듭하면서 1년 전 죽은 나카무라 치오리와 츠노시마 청옥 저택의 주인 나카무라 세이지의 관계를 확인하고, 신문기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세이지의 동생 나카무라 고지로의 존재도 알게 된다.

가와미나미는 가메가와역에서 내린 뒤 치오리의 외가에 전화를 걸어 치오리의 아버지가 나카무라 세이지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어 고지로의 주소까지 알아낸다. 고지로가 사는 곳은 벳푸의 간나와다.

이 과정에서 작품 속 가공의 지명과 현실의 오이타를 연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단서들이 하나씩 등장한다.

O시에서 네 번째 역이라는 가메가와, 벳푸, 간나와, 쓰루미다케, 국도 10호, 벳푸만까지 실제 지명이 그대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작품에서 이니셜로 가려놓은 O시, S반도, J곶은 현실의 어디일까.

그리고 츠노시마는 완전히 만들어낸 섬일까, 아니면 오이타현 앞바다의 실제 섬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공간일까.

작품에 흩어진 지명과 거리, 철도와 버스, 해안선과 섬의 형태를 실제 지도와 관련 자료에 하나씩 올려놓아 보았다.


1. O시는 어디인가 ― 의문의 편지에서 가메가와역까지

가와미나미가 의문의 편지를 계기로 나카무라 치오리와 세이지의 관계를 추적하면서 본토의 지리가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작품에서는 K대학 미스터리 연구회가 있는 곳을 오이타현의 ‘O시’라고만 밝힌다.

그러나 가와미나미가 조사를 위해 움직이는 과정에서 상당히 결정적인 철도 단서가 나온다.

츠노시마행 배를 탔던 S해안 쪽에서 O시까지는 버스로 약 30분, 다시 열차를 타고 약 40분이 걸리고, 가와미나미는 그 O시에서 열차를 타고 네 번째 ‘가메가와’라는 역에서 내린다.

가메가와역(亀川駅)은 실제로 존재한다.

현재 JR 규슈 닛포본선(日豊本線)의 역 순서는 오이타에서 북쪽으로 오이타 → 니시오이타 → 히가시벳푸 → 벳푸 → 벳푸다이가쿠 → 가메가와로 이어진다.

현재만 놓고 보면 가메가와는 오이타에서 다섯 번째 역이다.

그러나 『십각관의 살인』의 사건 시점은 1986년이다.

현재 벳푸와 가메가와 사이에 있는 벳푸다이가쿠역(別府大学駅)은 작품의 사건이 벌어진 뒤인 1987년 3월에 개업했다.

따라서 1986년 당시의 역 순서는 오이타 → ① 니시오이타 → ② 히가시벳푸 → ③ 벳푸 → ④ 가메가와가 된다.

작품의 “O시에서 네 번째 ‘가메가와’라는 역”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O라는 첫 글자만 보고 오이타시라고 짐작한 것이 아니라, 작품의 사건 시점인 1986년 당시 실제 철도역의 배열까지 일치하는 것이다.

따라서 작품 속 O시는 오이타시(大分市)로 사실상 비정할 수 있다.


2. S반도와 J곶 ― 사가노세키반도와 지조자키

O시가 오이타시라면 다음으로 살펴볼 곳은 작품 첫머리에 등장하는 S반도와 J곶이다.

작품에서는 츠노시마로 가는 배가 “오이타현 동쪽 해안으로 머리를 내민 S반도 J곶”을 뒤로하고 바다로 나아간다.

오이타시 동쪽 끝을 지도에서 보면 긴 반도 하나가 분고수도 쪽으로 뻗어 있다.

사가노세키반도(佐賀関半島)다.

그 반도의 동쪽 끝에는 세키자키(関崎)가 있다.

그런데 이곳은 지조자키(地蔵崎)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작품의 이니셜과 실제 지명을 연결하면 S반도 → 사가노세키반도(Saganoseki), J곶 → 지조자키(Jizōzaki)로 자연스럽게 대응한다.

S와 J가 실제 지명의 로마자 첫 글자와 그대로 맞고, 위치 역시 오이타현 동쪽 끝의 반도와 곶이라는 작품의 설명에 부합한다.

따라서 작품 속 S반도와 J곶은 각각 사가노세키반도와 지조자키를 바탕으로 한 지명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3. J곶 앞바다에 정말 섬이 있는가

다음은 가장 중요한 츠노시마다.

작품 속 츠노시마는 J곶에서 약 5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섬이다.

사가노세키반도 끝 지조자키의 실제 앞바다를 살펴보면 정말 섬 하나가 있다.

다카시마(高島)다.

오이타시 자료에 따르면 다카시마는 세키자키, 즉 지조자키에서 약 3.5킬로미터 앞바다의 호요해협에 위치한 무인도다. 과거 오이타현 자료에서는 사가노세키반도 끝에서 약 4킬로미터 떨어진 섬으로 기록되어 있다.

작품의 약 5킬로미터와 실제의 약 3.5~4킬로미터가 완전히 같지는 않다.

그러나 기본적인 공간구조는 상당히 비슷하다.

사가노세키반도 → 반도 끝의 지조자키 → 그 앞바다 약 3.5~4킬로미터 → 외딴 무인도 다카시마

작품 역시 S반도 → J곶 → 그 앞바다 약 5킬로미터 → 츠노시마라는 구조다.

다카시마는 단순한 암초 수준의 작은 섬도 아니다.

자료에 따라 면적 수치에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 주위 약 5.5킬로미터, 면적 약 80~94헥타르에 이르고, 섬의 최고점은 약 136미터다. 해안에는 20~40미터 높이의 해식애가 발달해 있지만 섬 안쪽에는 사람이 이용해온 공간도 존재한다.

특히 눈에 들어오는 것은 호요요새(豊予要塞)의 흔적이다.

일본 육군은 1920년대부터 호요해협 방어를 위해 세키자키와 다카시마, 시코쿠의 사다미사키 일대에 포대를 건설했다. 다카시마에도 제1·제2포대를 비롯한 군사시설이 설치되었고,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증설과 개수가 이어졌다. 현재도 섬에는 포대와 탄약고 등 관련 유구가 남아 있다.

이 사실은 다카시마가 단순히 사람의 접근조차 어려운 바위섬이 아니라 실제로 토목·건축공사가 이루어졌던 섬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물론 군사시설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작품 속 청옥 저택과 십각관이 들어설 만한 평탄지가 그대로 존재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포대와 탄약고는 경사지나 지하를 활용해 건설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규모의 섬이고 실제 군사시설까지 건설되었다는 사실은 츠노시마의 공간적 모델로 다카시마를 생각할 때 또 하나의 근거가 된다.

더구나 다카시마는 현재도 사람이 상주하지 않는 무인도다.

다카시마와 『십각관의 살인』의 관계를 살펴보다 보면 작가의 개인적인 인연도 눈에 들어온다.

아야츠지 유키토의 아내이자 소설가인 오노 후유미는 오이타현 출신이다. 서일본신문의 관련 기사를 소개한 자료에서는 아야츠지가 오노 후유미에게 들은 사가노세키 이야기를 작품 구상의 힌트로 삼았다는 취지의 내용도 확인된다.

이는 교토에서 생활하던 아야츠지가 왜 오이타 동부의 사가노세키와 주변 지형을 작품에 구체적으로 끌어왔는지를 생각할 때 흥미로운 정황이다.

다만 아야츠지가 직접 “다카시마를 츠노시마의 모델로 삼았다”고 밝힌 1차 인터뷰 원문까지는 현재 확인하지 못했다.

따라서 현실의 지도에서 츠노시마에 대응하는 섬을 찾는다면 다카시마가 가장 유력하지만, 공식적인 모델이라고 단정하지는 않는다.


4. 츠노시마 지도와 다카시마 ― 큰 섬 옆의 작은 섬

작품에는 츠노시마의 전도도 실려 있다.

섬 중앙부에 십각관과 불타버린 청옥부지가 있고, 해안에는 선착장이 있으며 본섬 한쪽에는 ‘고양이섬’이라는 작은 섬 하나가 따로 붙어 있다.

실제 다카시마의 해안선은 작품 속 츠노시마와 완전히 같지는 않다.

따라서 츠노시마의 지도를 다카시마에서 그대로 베껴 만들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두 섬을 비교하다 보면 눈에 띄는 공통점이 하나 나타난다.

오이타현 자료에는 다카시마의 동북단에 접근하면 세 개의 작은 섬이 나란히 나타난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실제 다카시마 역시 큰 본섬 한쪽에 작은 섬들이 붙어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작품에서는 실제의 세 작은 섬을 하나의 ‘고양이섬’으로 단순화하거나 변형했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다만 여기까지는 지형을 대조하면서 얻은 추정이다.

아야츠지 유키토가 다카시마의 세 작은 섬을 합쳐 작품 속 고양이섬으로 만들었다고 직접 밝힌 자료는 현재 확인하지 못했다.


5. ‘고양이섬’이라는 이름에서 발견한 또 하나의 단서

다카시마를 조사하다가 지형 못지않게 눈에 들어온 것이 있다.

실제 다카시마는 우미네코(ウミネコ, 괭이갈매기)의 집단 번식지로 유명하다.

특히 다카시마 동북단의 작은 섬들 주변이 번식지로 알려져 있다. 우미네코라는 이름 역시 울음소리가 고양이 울음소리와 비슷한 데서 붙었다.

일본어 ‘우미네코’를 글자 그대로 풀면 ‘바다 고양이’다.

그런데 작품 속 츠노시마 옆 작은 섬의 이름이 바로 ‘고양이섬’이다.

실제 다카시마 동북쪽의 작은 섬들 → 우미네코 집단 번식지 / 작품 속 츠노시마의 작은 섬 → 고양이섬

실제 다카시마의 우미네코에서 작품 속 ‘고양이섬’이라는 이름의 착상을 얻었을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작가가 직접 확인해준 사실은 아니다.

따라서 다카시마의 지형과 우미네코 번식지라는 현실의 조건을 작품 속 고양이섬과 비교했을 때 발견되는 정황적 유사성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6. S해안에서 O시까지 ― 버스 30분, 열차 40분

작품에서는 K대학 미스터리 연구회 멤버들이 츠노시마로 가기 위해 배를 탔던 S해안에서 O시까지 버스로 약 30분, 다시 열차를 타고 약 40분이 걸린다고 설명한다.

사가노세키와 오이타 사이의 실제 대중교통을 확인해보면 이 묘사가 현실의 교통체계에서 상당 부분 출발했음을 알 수 있다.

사가노세키에는 철도가 직접 들어가지 않는다. 철도를 이용하려면 먼저 버스를 타고 서쪽의 고자키역(幸崎駅)으로 나간 뒤 닛포본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이 연결방식은 작품이 쓰이던 당시에도 존재했다.

1985년과 1986년의 국철버스 관련 노선자료에는 사가노세키선의 본선으로 고자키―사가노세키 구간이 확인된다.

현재의 실제 소요시간도 확인해보았다.

사가노세키항에서 고자키역까지는 현재 버스로 대략 18~20분 정도가 걸리고, 고자키역에서 오이타역까지는 JR 닛포본선 일반열차로 대략 22~30분 정도가 걸린다.

따라서 작품의 이동방식과 실제 이동방식은 사가노세키 → 버스 → 고자키역 → 닛포본선 → 오이타로 그대로 대응하고, 실제 순수 승차시간 역시 작품에 나온 버스 약 30분, 열차 약 40분과 크게 동떨어져 있지 않다.

특히 작품이 발표되기 직전인 1985~1986년에도 실제로 고자키와 사가노세키를 잇는 버스 노선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S해안을 사가노세키 일대로 비정하는 데 중요한 교통상의 근거가 된다.

다만 현재의 버스와 열차 소요시간을 그대로 1986년의 운행시간으로 볼 수는 없다.

당시 버스가 실제 몇 분 걸렸고, 고자키에서 오이타까지의 보통열차가 몇 분 걸렸는지는 1986년 당시 시각표를 직접 대조해야 확정할 수 있다.

따라서 작품의 ‘버스 약 30분, 열차 약 40분’이 당시 시간표와 정확히 일치한다고까지 단정하기보다는, 실제 사가노세키―고자키―오이타의 대중교통 구조와 소요시간의 규모를 상당히 현실적으로 반영한 것으로 보는 편이 적절하다.

또 작품은 S해안과 O시의 직선거리를 약 40킬로미터라고 설명하는데 실제 사가노세키와 오이타의 거리와는 차이가 있다.

따라서 작가는 실제 위치관계와 교통구조를 상당 부분 가져오면서도 거리에는 어느 정도 변형을 가한 것으로 보인다.


7. K대학은 실제 어느 대학인가

O시가 오이타시라면 자연스럽게 다음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K대학도 1986년 당시 오이타에 실제로 존재했던 어느 대학을 가리키는 것일까.

작품에서 굳이 ‘K대학’이라고 이니셜을 밝혀놓았으니 먼저 이름부터 찾아보았다.

1986년 당시 오이타현의 4년제 대학 가운데에는 오이타대학, 오이타의과대학, 벳푸대학, 일본문리대학 등이 있었지만 K로 시작하는 대학은 확인되지 않았다.

첫 번째 단서인 대학 이름에서는 대응되는 학교가 나오지 않은 것이다.

두 번째로 작품 속 K대학 미스터리 연구회 멤버들의 학부를 살펴보았다.

에러리와 카는 법학부, 르루와 오르치는 문학부, 포는 의학부, 아가사는 약학부, 반은 이학부 학생으로 설정되어 있다.

즉 K대학에는 법학부, 문학부, 의학부, 약학부, 이학부가 한 대학 안에 함께 존재한다.

그러나 당시 오이타대학은 교육학부, 경제학부, 공학부 체제였고, 의학교육을 담당한 오이타의과대학도 별도의 대학이었다. 일본문리대학과 벳푸대학 역시 작품 속 다섯 학부를 한 학교 안에 모두 갖추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학부 구성까지 대조해도 당시 오이타현의 실제 대학 가운데 K대학에 그대로 대응되는 곳은 찾을 수 없다.

여기에서 작가 아야츠지 유키토가 다녔던 교토대학으로 눈을 돌려보았다.

아야츠지는 교토대학 교육학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 진학했으며, 재학 중 교토대학 추리소설연구회에서 활동했다. 『십각관의 살인』 역시 대학원 재학 시절에 쓴 작품이다.

1986년 당시 교토대학의 학부 구성을 확인해보니 문학부, 법학부, 이학부, 의학부, 약학부가 모두 존재했다.

작품 속 일곱 학생의 전공을 하나의 대학 안에서 그대로 성립시킬 수 있는 것이다.

세 번째는 추리소설연구회다.

1986년 당시 오이타의 각 대학에 작품과 같은 성격의 추리소설연구회가 있었는지는 현재 확인 가능한 자료만으로는 알 수 없었다.

반면 교토대학에는 실제 추리소설연구회가 있었고, 무엇보다 아야츠지 자신이 바로 그 연구회에서 활동했다.

결국 K대학을 추적한 과정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K라는 이니셜 확인 → 당시 오이타현에 K로 시작하는 대응 대학 없음 → 작품 속 다섯 학부를 모두 갖춘 대학도 없음 → 작가가 다닌 교토대학을 확인 → K라는 첫 글자가 맞고 다섯 학부가 모두 존재 → 작가 자신이 교토대학 추리소설연구회 출신

이 세 가지를 함께 놓으면 K대학은 오이타에 실제 존재했던 특정 대학을 그대로 옮긴 학교라기보다, 지리적으로는 오이타시에 배치하면서 대학의 구성과 미스터리 연구회의 모습에는 작가 자신이 생활했던 교토대학을 가져온 가상 대학으로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다만 아야츠지가 직접 “K대학의 모델은 교토대학이다”라고 밝힌 자료는 현재까지 확인하지 못했다.

따라서 교토대학을 공식 모델이라고 단정하기보다는 K라는 이니셜, 작품 속 학부 구성, 작가의 교토대학 추리소설연구회 경험을 종합했을 때 가장 유력한 모델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8. 다시 만난 벳푸 간나와

가와미나미의 추적은 가메가와를 거쳐 벳푸 간나와로 이어진다.

나카무라 세이지의 동생 고지로가 사는 곳이 바로 간나와다.

작품은 이곳을 광물성 연기와 뜨거운 수증기가 솟아오르는 온천지대로 묘사한다. 길옆 하수도와 인가들 사이에서도 하얀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고, 가까이에는 쓰루미다케가 보인다. 번화가를 빠져나가면 온천치료를 위해 장기간 머무르는 사람들을 위한 하숙과 민박, 임대별장들이 이어진다.

쓰루미다케(鶴見岳)는 실제로 벳푸시 서쪽에 솟아 있는 해발 1,375m의 화산이다. 그 동쪽 기슭으로 벳푸의 온천지대와 시가지가 펼쳐져 있어 간나와에서 산이 가까이 보인다는 작품의 묘사와도 잘 맞는다.

간나와는 내게 소설 속 풍경만은 아니다.

2024년 10월 4일 아내와 함께 바로 그곳을 찾아갔다.

그날은 새벽 5시에 일어나 후쿠오카 하카타역으로 향했다. 하카타역에서 JR 규슈 883계 특급 소닉을 타고 벳푸역으로 이동했다. 미키마우스 머리처럼 양쪽이 불쑥 솟아 있는 독특한 좌석 헤드레스트는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

벳푸에 도착한 뒤 오전 일정은 지옥온천 순례였다.

우미지옥(海地獄, 해지옥), 오니이시보즈지옥(鬼石坊主地獄, 귀석방주지옥), 가마도지옥(竈地獄, 조지옥), 오니야마지옥(鬼山地獄, 귀산지옥), 시라이케지옥(白池地獄, 백지지옥), 지노이케지옥(血の池地獄, 혈지지옥), 다쓰마키지옥(龍巻地獄, 용권지옥)을 모두 돌아보았다.

간나와에 모여 있는 우미지옥, 오니이시보즈지옥, 가마도지옥, 오니야마지옥, 시라이케지옥은 직접 걸어서 다녔다.

2024년 10월 내가 그 골목을 걸을 때도 작품의 묘사처럼 길옆 하수도와 인가들 사이에서 하얀 김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벳푸에서는 예부터 지옥의 열탕과 온천 증기를 음식 조리에도 이용해왔다. 지옥순례 도중 나도 그 열로 익힌 달걀을 사 먹었다. 뜨거운 온천과 수증기를 구경하며 돌아다니다 그 자리에서 까먹던 갈색 달걀도 그날의 기억 가운데 하나다.

지노이케지옥과 다쓰마키지옥은 간나와의 다른 지옥들과 멀리 떨어져 있어 그 구간만 버스를 이용했다.

두 곳까지 둘러본 뒤 다시 버스를 타고 가메가와역으로 이동했고, 가메가와역에서 열차를 타고 벳푸역으로 돌아왔다.

오전의 이동은 벳푸역 → 간나와 지옥온천순례[우미지옥, 오니이시보즈지옥, 가마도지옥, 오니야마지옥, 시라이케지옥] → 버스 → 지노이케지옥, 다쓰마키지옥 → 버스 → 가메가와역 → 열차 → 벳푸역이었다.

점심은 벳푸역에서 바다 쪽으로 조금 더 내려가 기타하마에 있는 토요츠네 본점에서 먹었다.

토요츠네는 벳푸에서도 이름난 집이다. 이곳의 대표 메뉴인 특상텐동을 아내와 함께 먹었는데, 큼직한 새우튀김이 그릇을 넓게 덮고 있는 모습부터 눈길을 잡았다. 오전 내내 간나와와 지옥들을 걸어 다닌 뒤 먹어서인지 더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벳푸를 여행하며 직접 짜놓은 하루 일정이었다.


9. 언덕 아래 국도 10호와 벳푸만

고지로의 집을 나온 가와미나미와 시마다는 언덕을 내려간다.

해안가에 도착한 두 사람은 길가에서 닭 모양 풍향계를 단 붉은 지붕의 ‘MOTHER GOOSE’라는 가게를 발견한다.

가게 창가에 앉으면 넓은 유리창 너머로 국도 10호가 지나고, 그 너머에 벳푸만이 커다랗게 펼쳐진다.

국도 10호는 실제 도로다.

오이타와 벳푸를 연결하며 벳푸만의 해안을 따라 이어진다.

간나와는 벳푸 시가지의 산 쪽에 있고 그 뒤로 쓰루미다케가 솟아 있다. 여기에서 해안 방향으로 내려오면 국도 10호와 벳푸만을 만나게 된다.

따라서 작품 속 간나와 → 언덕을 내려감 → 국도 10호 → 벳푸만이라는 공간구조는 실제 벳푸의 지형과 잘 맞는다.

고지로의 집 자체는 가상의 주택이겠지만 그 집을 둘러싼 산, 온천지대, 언덕, 해안, 국도, 벳푸만의 배치는 현실의 벳푸를 상당히 구체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10. ‘MOTHER GOOSE’는 실제 찻집이었을까

이 지점에서 가장 궁금해지는 곳이 ‘MOTHER GOOSE’다.

붉은 지붕, 닭 모양 풍향계, 마더 구스라는 간판, 넓은 유리창, 국도 10호 너머로 보이는 벳푸만, 가게 안에 흐르는 비틀스 음악, 가와미나미가 주문한 커피와 피자토스트까지 묘사가 상당히 구체적이다.

그래서 실제로 존재했던 찻집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현재 공개된 인터넷 자료를 검색한 범위에서는 1986년 당시 벳푸의 국도 10호 주변에 ‘MOTHER GOOSE’라는 이름의 찻집이 실제로 있었는지 확인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존재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작품 시점 전후인 1980년대 중반의 벳푸시 제린 주택지도는 현재 도서관 자료로 남아 있다.

따라서 MOTHER GOOSE의 실재 여부는 현재 단계에서는 미확인으로 남겨두는 것이 맞다.

언젠가 다시 벳푸를 찾는다면 1985~1986년 벳푸시 제린 주택지도를 직접 펼쳐보고 싶다.

국도 10호 주변의 당시 상점명을 하나씩 확인하다 ‘MOTHER GOOSE’라는 이름이 발견된다면 작품 배경 추적에서 또 하나의 퍼즐이 맞춰지는 셈이다.


11. 현재까지 가장 유력한 작품 속 지리

① O시 → 오이타시(大分市) : 1986년 당시 가메가와가 네 번째 역이라는 철도 단서까지 일치하므로 사실상 확정 수준

② K대학 → 당시 오이타현에 K로 시작하는 대응 대학이 확인되지 않고 작품 속 다섯 학부를 모두 갖춘 대학도 없음. 반면 교토대학은 K라는 첫 글자가 맞고 다섯 학부가 모두 존재했으며 아야츠지 자신이 교토대학 추리소설연구회에서 활동했으므로 가장 유력한 대학 설정의 모델

③ S반도 → 사가노세키반도(佐賀関半島) : 실제 위치와 Saganoseki라는 지명의 첫 글자가 일치하므로 매우 유력

④ J곶 → 지조자키(地蔵崎), 현재의 세키자키(関崎) : 실제 위치와 Jizōzaki라는 지명의 첫 글자가 일치하므로 매우 유력

⑤ 츠노시마 → 다카시마(高島) : 지조자키 앞바다 약 3.5~4킬로미터에 위치한 실제 무인도로 가장 유력한 지리적 모델

⑥ 고양이섬 → 다카시마 동북단의 작은 섬들과 우미네코 번식지를 변형했을 가능성 : 추정

⑦ 가메가와 → 실제 가메가와역(亀川駅)

⑧ 벳푸 → 실제 벳푸시(別府市)

⑨ 간나와 → 실제 간나와(鉄輪) 온천지대

⑩ 쓰루미다케 → 벳푸시 서쪽 배후의 실제 쓰루미다케(鶴見岳)

⑪ 국도 10호 → 실제 국도 10호

⑫ MOTHER GOOSE → 1986년 실재 여부 미확인


12. 다시 답사한다면 ― 이번에는 사가노세키와 다카시마까지

벳푸, 간나와와 가메가와는 이미 직접 가본 곳이다.

『십각관의 살인』의 무대를 따라 다시 오이타현을 찾는다면 이번에는 아직 가보지 못한 동쪽 끝으로 향하고 싶다.

목적지는 S반도의 모델로 비정한 사가노세키반도, J곶의 모델로 보는 지조자키, 그리고 그 앞바다에 떠 있는 다카시마다.

현재 다카시마는 무인도지만 출입할 수 없는 섬은 아니다. 오이타시는 정비를 마치고 2026년 5월부터 이용을 재개했으며, 고노우라어항에서 사전에 예약한 세토시선을 이용하면 약 20분 만에 섬으로 들어갈 수 있다.

작품 배경을 따라간다면 오이타 → 고자키 → 사가노세키 → 세키자키·지조자키 → 고노우라어항 → 다카시마라는 동선을 잡아보고 싶다.

무엇보다 지조자키 끝에 서서 몇 킬로미터 앞바다에 떠 있는 다카시마를 직접 바라보고 싶다.

작품 첫머리에서 배가 뒤로 하고 떠나는 J곶이 실제 지조자키를 바탕으로 했다면, 그곳에서 바라보는 다카시마는 현실의 풍경 속에서 츠노시마를 가장 가까이 떠올려볼 수 있는 장면일 것이다.

가능하다면 직접 배를 타고 다카시마로 건너가보고 싶다.

츠노시마와 실제 다카시마의 형태는 다르지만 동북단의 작은 섬들이 본섬에서 어떻게 보이는지, 우미네코가 모이는 곳은 어디인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다.

벳푸와 간나와, 가메가와는 이미 내 발로 걸어보고 열차와 버스로 지나왔다.

이번 작품 배경 추적에서 새로 찾아가야 할 곳은 그보다 더 동쪽에 있다.

S반도와 J곶이라는 이니셜 뒤에서 찾아낸 사가노세키반도와 지조자키, 그리고 그 앞바다의 무인도 다카시마다.

언젠가 지조자키 끝에 서서 다카시마를 바라보고, 가능하다면 직접 그 섬까지 건너간다면 『십각관의 살인』에서 시작한 이 공간 추적도 그 자리에서 한 번 더 이어질 것이다.


자료 조사·정리 : Chat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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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관의 살인 ㅣ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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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2] 『시계관의 살인』 등장인물의 서사적 기능과 역할


1. 사건의 중심인물

가. 가와미나미 다카아키(24세)

ㅇ 기단샤 『CHAOS』의 신입 편집자로, 구관 내부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을 직접 경험하는 주요 시점 인물이자 독자의 대리자

ㅇ 우류와 함께 벽시계의 위치 변화와 비밀문을 발견하며 공간 트릭에 접근하고, 외부에서 사건을 추리하는 시마다와 함께 작품의 두 축을 형성

ㅇ 사요코에게는 구관 사람들이 인식한 범행시각을 증언해 줄 인물이기도 하여 끝까지 살아남게 되며, 결과적으로 왜곡된 시간을 증언하는 역할을 담당


나. 시시야 가도미 / 시마다 기요시(40세)

ㅇ 신출내기 추리작가이자 가와미나미의 친구로, 구관 밖에서 고가 가문의 과거와 「침묵의 여신」을 추적하여 최종적으로 1.2배 시간 트릭을 간파하는 탐정 역할

ㅇ 사요코가 자신의 알리바이를 굳히기 위해 「침묵의 여신」을 미끼로 곁에 붙잡아둔 인물이지만, 역으로 사요코의 알리바이를 무너뜨리는 결정적 인물이 됨

ㅇ 나카무라 세이지의 건축을 의뢰인이 품은 ‘악몽’을 현실화한 공간으로 해석하여 고가 미치노리의 집착과 시계관의 비밀을 연결


2. 기단샤 취재팀과 영매

가. 고바야카와 시게오(44세, 제8피살자)

ㅇ 『CHAOS』 부편집장으로 시계관 취재와 교령회 기획을 실제로 추진하여 학생들과 관계자들이 구관에 들어가게 만드는 취재팀 책임자

ㅇ 현관문의 테이프와 창문 등에 의문을 품고 구관의 폐쇄구조를 의심하며, 테이블 아래의 도청장치까지 발견하여 사요코의 범행 수법에 접근

ㅇ 9년 전 사건과는 무관하지만 범행의 비밀을 알아차릴 위험 때문에 제8피살자가 되어, 사요코의 살인이 복수에서 범행 은폐를 위한 살인으로 확대되었음을 보여줌


나. 우츠미 아쓰시(29세, 제4피살자)

ㅇ 기단샤 사진부 카메라맨으로 취재 현장을 기록하며, 그가 사용한 카메라의 시각기록 기능은 구관의 시간과 독립된 실제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수단

ㅇ 처음에는 사진에 범인에게 불리한 장면이 찍혔을 가능성을 의심하게 하지만, 실제로는 카메라의 시간정보가 1.2배 시간 트릭을 드러낼 위험이 있었음

ㅇ 시간 트릭이 발각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제4피살자가 되고 카메라까지 파괴되어, 사요코가 독립적인 시간정보를 철저히 제거하고 있음을 보여줌


다. 고묘지 미코토 / 데라이 미쓰에(32세, 제1피살자)

ㅇ 영매 고묘지 미코토로 교령회를 성립시켜 ‘도와의 유령’이라는 초자연적 분위기를 만들고 취재팀이 구관에 들어가도록 하는 사건의 도화선

ㅇ 실제로는 과거 고가 가문의 간호사 데라이 아키에의 여동생 데라이 미쓰에로, 과거 시계관과 현재 사건을 연결하는 인물

ㅇ 사요코의 계획에 이용된 뒤 범행에 관한 일부 사정을 알고 있다는 이유로 가장 먼저 살해되어 연쇄살인의 시작을 알림


3. W대학 초자연현상연구회

가. 우류 미사오(20세, 제7피살자)

ㅇ 초자연현상연구회 회장이자 건축 전공자로, 가와미나미와 함께 구관의 구조와 비밀문을 추적하는 내부의 준탐정 역할

ㅇ 9년 전 후쿠니시 료타와 함께 실제로 함정을 판 핵심 인물로, 교코의 죽음과 직접 연결된 사요코의 본래 복수 대상

ㅇ 현재에는 사건을 해결하려는 추리자의 위치에 있으면서 과거에는 비극의 원인을 제공한 인물이라는 이중적 성격을 지니며 제7피살자가 됨


나. 가타기 사키코(20세, 제2피살자)

ㅇ 우류·가와라자키·후쿠니시와 함께 9년 전 시계관을 찾았던 네 사람 가운데 한 명으로 사요코의 복수 대상

ㅇ 실제 함정을 판 핵심 인물은 아니지만 사요코가 당시 네 사람 전체에게 책임을 묻기 때문에 복수 대상에 포함

ㅇ 와타나베 료스케와 함께 초반에 살해되는 제2피살자로, 사건을 ‘도와의 죽음에 대한 복수’라고 믿게 만드는 역할


다. 가와라자키 준이치(21세, 제5피살자)

ㅇ 9년 전 시계관을 찾았던 네 사람 가운데 한 명으로 사요코의 복수 대상이 되어 제5피살자가 됨

ㅇ 죽기 직전 가면을 쓴 범인과 몸싸움을 벌이고 직접 가면을 벗겨 사요코의 얼굴을 확인하는 인물

ㅇ “너, 너는…… 왜……”라는 마지막 말을 남겨 독자가 또래나 가까운 인물을 범인으로 좁히게 만드는 작품의 가장 강력하면서도 문제적인 단서를 제공


라. 후쿠니시 료타(21세, 살인미수 대상)

ㅇ 우류 미사오와 함께 9년 전 실제로 함정을 판 인물로, 교코의 죽음과 직접 연결된 사요코의 핵심 복수 대상

ㅇ 원래 취재팀과 함께 구관에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친척의 사고로 늦게 도착하면서 계획에서 벗어나 시마다와 외부에서 행동하는 변수로 작용

ㅇ 옛 성이 ‘와타나베’였기 때문에 와타나베 료스케가 대신 살해되는 오인살해를 초래하며, 이후 사요코의 공격을 받고 추락하지만 살아남아 사건 해결에 중요한 증언을 제공


마. 니이미 고즈에(19세, 제6피살자)

ㅇ 후쿠니시 대신 급히 취재에 참가한 인물로, 9년 전 사건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외부인

ㅇ 진자의 방에 숨겨진 통로를 통해 밖으로 빠져나갔다가 구관에서는 한밤중이어야 할 시각에 외부가 대낮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여 시간 트릭의 핵심에 접근

ㅇ 교코의 죽음과 아무 관계가 없음에도 시간차를 알아차렸다는 이유만으로 제6피살자가 되어, 사요코의 살인이 복수의 범위를 넘어섰음을 보여줌


바. 와타나베 료스케(20세, 제3피살자)

ㅇ 시계관 취재기획을 연구회에 가져온 인물로, 9년 전 함정사건과는 아무 관계가 없음

ㅇ 후쿠니시 료타의 옛 성이 ‘와타나베’였고 이름 역시 료타와 료스케로 비슷하여 후쿠니시로 오인됨

ㅇ 사요코가 잘못된 사람을 죽인 제3피살자로, 그의 죽음은 독자에게 ‘왜 과거와 관계없는 사람이 죽었는가’라는 의문을 던져 후쿠니시의 과거를 추적하게 하는 단서가 됨


4. 시계관의 현재 관계자

가. 이나미 사요코(46세)

ㅇ 시계관 관리책임자로, 9년 전 딸 교코를 잃고 이어 남편까지 잃은 뒤 당시 아이들이 다시 시계관을 찾아오자 묻어두었던 원한이 되살아나 연쇄살인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진범

ㅇ 함정에 빠진 사람이 교코가 아니라 도와였다는 거짓 과거를 만들어 복수의 진짜 동기를 감추고, 비밀통로·1.2배 시간·도청장치·수면제 등을 결합하여 범행과 알리바이를 설계

ㅇ 「침묵의 여신」을 미끼로 시마다를 자신의 알리바이 증인으로 이용하지만 결국 바로 그 시마다에게 시간 트릭을 간파당하는 사건의 중심인물


나. 고가 유키야(16세)

ㅇ 미치노리의 양자로 시계관의 현재 당주이며, 어린 시절부터 도와를 지키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는 교육을 받아 도와가 죽은 이후에도 그녀가 곁에 존재하는 것처럼 살아가는 인물

ㅇ 도와에 대한 집착, ‘료타’라는 이름에 대한 반응, 행방이 묘연해지는 행동 등으로 독자에게 가장 강력한 진범 후보로 제시되는 핵심 레드 헤링

ㅇ 교코가 함정에 빠졌을 당시 그녀를 발견하고도 구조하지 않았던 과거 때문에 사요코의 원한 대상이 되며, 미치노리의 집착과 사요코의 복수가 교차하는 비극적 인물


다. 노노미야 야스히토(84세, 제9피살자)

ㅇ 고가 미치노리가 신뢰한 점술사로, 도키요와 도와의 죽음에 관한 예언을 통해 미치노리가 죽음과 시간에 집착하게 만드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

ㅇ 시마다가 점과 예언이 맞는 것처럼 보이는 메커니즘을 설명하도록 하여 작품의 ‘현실과 환상’이라는 주제를 확장

ㅇ 현재의 복수와는 아무 관계가 없지만 사요코가 범행 후 비밀리에 이동하는 모습을 목격한 탓에 마지막 제9피살자가 됨


라. 다도코로 요시아키(55세)

ㅇ 시계관에 정기적으로 출입하며 시계와 시설을 보수하는 사용인으로 현재 시계관의 일상적 유지·관리를 담당

ㅇ 사요코와 유키야에 비해 사건의 비밀에서 한발 떨어진 인물로, 시계관의 폐쇄적인 세계와 외부의 일상을 연결하는 보조적 역할


5. 고가 가문

가. 고가 미치노리(향년 63세)

ㅇ 시계관의 선대 당주이자 고가정계사 전 회장으로, 딸 도와에 대한 극단적인 애착과 죽음의 예언에 대한 공포 때문에 나카무라 세이지에게 시계관 건축을 의뢰

ㅇ 도와가 꿈꾸던 ‘16세의 신부’를 실현시키기 위해 구관의 시계가 실제보다 1.2배 빠르게 흐르도록 하여 현재 사건의 핵심 시간 트릭이 존재하게 만든 원인 제공자

ㅇ 「침묵의 여신」과 시계탑의 종말장치를 남겨, 시마다가 말하는 ‘개인의 악몽이 건축으로 현실화된 사례’를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줌


나. 고가 도키요(향년 28세)

ㅇ 미치노리의 아내이자 도와의 어머니로, 노노미야의 죽음 예언이 실제로 적중하면서 미치노리가 점과 예언을 맹신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

ㅇ 그녀의 죽음으로 미치노리는 도와 역시 예언대로 16세가 되기 전에 죽을 것이라는 공포에 사로잡혀 시계관의 왜곡된 시간을 만들어냄


다. 고가 도와(향년 14세)

ㅇ 미치노리와 도키요의 딸로, ‘16세가 되기 전에 죽는다’는 예언과 ‘16세의 신부’가 되고 싶다는 꿈 때문에 시계관 건축과 1.2배 시간의 존재 이유가 됨

ㅇ 사요코가 함정에 빠진 사람이 교코가 아니라 도와였다고 과거를 날조함으로써 현재 연쇄살인을 ‘도와의 복수’로 위장하는 상징적 인물

ㅇ 미치노리에게는 집착의 대상, 유키야에게는 평생 지켜야 할 누나, 취재팀에게는 유령, 사요코에게는 복수를 위장하는 수단이 되는 시계관 전체의 상징적 중심


라. 아다치 데루미(58세)

ㅇ 고가 미치노리의 여동생이자 유키야의 후견인으로, 미치노리 사후 고가 가문의 법적·가족적 관계를 유지

ㅇ 호주에 거주해 시계관의 실질적인 관리를 사요코가 담당하게 되는 배경적 조건을 형성


마. 아다치 모토하루(나이 미상)

ㅇ 아다치 데루미의 남편으로, 자신의 친구가 나카무라 세이지의 은사와 연결되어 있어 고가 가문과 나카무라 세이지 사이의 인맥을 연결

ㅇ 직접 사건에는 참여하지 않지만 고가 미치노리가 나카무라 세이지에게 시계관 건축을 의뢰하게 되는 배경을 보완


6. 마부치 가문

가. 마부치 초헤이(70세)

ㅇ 고가 미치노리의 오랜 친구로, 시마다에게 미치노리와 도와 및 시계관 건축 당시의 과거를 전달하는 핵심 증언자

ㅇ “딸의 꿈을 이루어주려고 필사적이었다”는 기억을 통해 시마다가 미치노리의 집착과 시계관을 만든 진짜 목적에 접근하도록 하는 실마리를 제공


나. 마부치 사토루(향년 22세)

ㅇ 마부치 초헤이의 아들이자 도와의 약혼자로, 도와가 꿈꾸었던 ‘16세의 신부’라는 소망을 구체화하는 인물

ㅇ 미치노리가 왜 딸의 ‘16세’라는 시점에 그토록 집착했고 시계관의 시간을 조작했는지를 설명하는 정서적 배경


7. 이나미 가족

가. 이나미 유사쿠(향년 40세)

ㅇ 시계관 사용인이자 사요코의 남편, 교코의 아버지로 교코가 죽은 뒤 약 한 달 만에 교통사고로 사망

ㅇ 사요코가 짧은 기간에 딸과 남편을 모두 잃게 됨으로써 9년 뒤 복수가 폭발하게 되는 가족 비극의 한 축을 형성


나. 이나미 교코(향년 9세)

ㅇ 9년 전 우류와 후쿠니시가 만든 함정에 실제로 빠진 뒤 부상으로 파상풍에 걸려 사망한 사건의 진짜 피해자

ㅇ 도와의 죽음에 대한 복수처럼 보였던 연쇄살인의 실제 동기이며, 사요코가 9년 동안 묻어두었던 원한의 중심

ㅇ ‘함정에 빠진 아이가 도와였다’는 사요코의 거짓 이야기가 무너지면서 사건 전체의 의미를 뒤집는 핵심 인물


8. 데라이 자매

가. 데라이 아키에(향년 27세)

ㅇ 간호사로 고가 가문에 들어와 도와를 돌보았던 인물로, 도와의 생전과 죽음에 직접 연결된 과거 관계자

ㅇ 도와가 죽은 뒤 책임감을 느껴 자살하면서 시계관 주변에 죽음이 계속 이어졌다는 불길한 분위기를 형성

ㅇ 여동생 데라이 미쓰에가 훗날 고묘지 미코토라는 이름으로 다시 시계관에 들어오면서 과거와 현재 사건을 연결하는 가족관계의 고리


나. 데라이 미쓰에(32세, 제1피살자) = 고묘지 미코토

ㅇ 데라이 아키에의 여동생으로, 현재에는 고묘지 미코토라는 이름의 영매로 활동

ㅇ 고묘지 미코토와 별개의 두 사람이 아니라 과거 고가 가문 관계자의 동생과 현재 교령회의 영매가 동일인물이라는 연결 장치

※ 고묘지 미코토와 동일인물이므로 피살자 수에는 중복하여 계산하지 않음


9. 고가 가문의 과거 관계자

가. 하세가와 도시마사(향년 52세)

ㅇ 고가 가문의 주치의로 도키요와 도와를 비롯한 고가 가족의 건강과 죽음에 연결된 의학적 관계자

ㅇ 이후 화재로 사망하여 고가 가문 주변에 여러 죽음이 이어졌다는 인상을 주고 ‘저주받은 시계관’이라는 오컬트적 분위기를 강화


나. 핫토리 이쿠오(향년 45세)

ㅇ 고가정계사의 전무이자 미치노리의 측근으로, 고가 미치노리의 회사와 사회적 관계를 보여주는 인물

ㅇ 이후 교통사고로 사망하여 하세가와 등과 함께 고가 가문 주변에서 이어지는 죽음의 연쇄와 불길한 과거를 구성


10. 시계관을 만든 건축가

가. 나카무라 세이지(나이 미상)

ㅇ 고가 미치노리의 요구를 받아 시계관을 설계하고 비밀문·밀폐공간·수많은 시계 등 현재의 연쇄살인이 가능해지는 물리적 무대를 만든 건축가

ㅇ 미치노리가 품은 도와와 시간에 대한 집착을 1.2배의 시간이 흐르는 실제 건축물로 구현하여, 훗날 사요코가 시간 트릭을 범행에 이용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

ㅇ 시마다가 말한 것처럼 의뢰인이 품은 고독한 환상과 ‘악몽’을 건축공간으로 증폭시키는 인물로 ‘관 시리즈’ 전체를 연결하는 중심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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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관의 살인 ㅣ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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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1] 『시계관의 살인』 시마다 스님의 사회학 강의
― ‘현실’이라는 공적 환상과 개인이 키우는 ‘악몽’


1. ‘현실’은 정말 객관적인가

『시계관의 살인』에서 시마다 스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단순한 추리소설 속 잡담으로 보기에는 제법 묵직하다. 그는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현실’조차 사회가 공동으로 만들어낸 하나의 거대한 환상일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질서와 규칙을 필요로 한다. 국가, 법률, 제도, 도덕, 화폐, 역사에 대한 평가와 같은 것들이 모여 사회가 인정하는 하나의 ‘현실’을 형성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 현실을 객관적인 세계 그 자체처럼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이러한 공통의 현실이 있기 때문에 사회는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규칙 안에서 생활할 수 있다.

그러나 시마다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사회가 만든 ‘현실’은 사람들에게 안정과 질서를 제공하는 동시에 개인의 사고와 행동을 일정한 틀 안에 가두는 통제장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현실은 단순히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사람들은 그 만들어진 현실을 다시 진짜 현실로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2. 사회가 만든 ‘현실’이라는 공적 환상

시마다가 말하는 현실은 개인 한 사람이 꾸는 환상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이 함께 믿고 있기 때문에 현실처럼 작동하는 공적인 환상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만들어져 있는 사회의 언어와 가치관, 제도와 역사 속으로 들어간다.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지, 무엇이 옳고 무엇이 잘못인지에 대한 기준도 대부분 그 사회 안에서 배운다.

이러한 공적 현실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문제는 그것이 지나치게 강해질 경우이다.

사회가 정해놓은 현실만을 유일한 진실이라고 요구하기 시작하면, 그 틀에서 벗어나는 개인의 생각과 상상은 비정상이나 위험한 것으로 취급될 수 있다.

시마다가 말하는 ‘현실이라는 환상’에는 따라서 두 얼굴이 있다.

ㅇ 인간을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안정과 질서의 장치
ㅇ 인간을 일정한 사고방식 안에 머물게 하는 지배와 통제의 장치

이 양면성을 이해해야 시마다가 다음으로 꺼내는 ‘악몽’이라는 개념도 이해할 수 있다.


3. 개인이 키우는 또 하나의 세계 ― ‘악몽’

사회가 만든 공적 현실에 완전히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시마다는 이러한 개인적인 환상을 ‘악몽’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악몽은 반드시 공포스럽거나 악한 생각만을 뜻하지 않는다.

사회가 당연하다고 규정한 현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고, 기존의 질서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인간의 정신활동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에 가깝다.

그래서 시마다는 예술가·사상가·과학자뿐만 아니라 정치적 권력자까지도 거대한 ‘악몽’을 키우는 인간으로 바라본다.

작품에서 피카소·마르크스·아인슈타인·히틀러 같은 서로 전혀 다른 인물들이 한꺼번에 언급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들을 도덕적으로 같은 선상에 놓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공통점은 기존의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관을 만들어 현실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피카소는 기존의 시각적 현실을 해체했고, 마르크스는 사회와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틀을 제시했으며, 아인슈타인은 인간이 당연하게 생각하던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바꾸었다.

히틀러 역시 자신이 만들어낸 정치적·인종적 세계관을 현실에 강제로 구현하려 했다는 점에서 시마다가 말하는 ‘악몽의 사육가’라는 범주 안에 들어간다.

물론 이는 그들의 행위에 대한 도덕적 평가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특히 나치 독일의 범죄와 학살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시마다의 관심은 선악의 판정이라기보다 인간이 만들어낸 사적인 환상이 얼마나 거대한 공적 현실로 변할 수 있는가에 있다.


4. 누가 현실을 만드는가 ― 역사와 권력

시마다의 이야기가 더욱 도발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은 역사에 관한 언급이다.

그는 현실과 역사에 대한 평가 역시 승리한 사회와 권력에 의해 결정될 수 있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한다.

가령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가 지금과 전혀 달랐다면 오늘날 우리가 배우는 역사적 평가와 사회의 공식적인 언어 역시 지금과는 달라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승자가 언제나 옳다’는 주장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오히려 시마다가 강조하려는 것은 사회가 무엇을 현실이라고 부르고 무엇을 정상적인 역사로 가르치는가에도 권력의 작용이 개입한다는 점이다.

역사적 사실 그 자체와 사회가 그 사실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서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결국 우리가 너무도 단단한 사실처럼 받아들이는 ‘현실’의 일부도 인간 사회가 만들어낸 해석의 체계일 수 있다는 것이다.


5. 점은 왜 맞는 것처럼 보이는가

시마다의 이러한 사고방식은 노노미야의 점에 대한 설명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그는 점쟁이가 반드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점쟁이 본인이 자신의 능력을 진심으로 믿는 것과, 실제로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시마다는 예언이 맞는 것처럼 보이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로 표현의 넓은 해석 가능성을 지적한다.

예를 들어

‘28세 이후 죽는다.’

라는 말은 사실 29세에 죽어도 맞고 50세에 죽어도 맞으며 90세에 죽어도 맞는다.

마찬가지로

‘16세가 되기 전에 죽는다.’

라는 예언도 태어나자마자 죽든 15세에 죽든 모두 적중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예언의 범위를 넓게 만들어두면 사건이 벌어진 뒤 결과를 다시 예언에 끼워 맞추기가 쉬워진다.

여기에 인간의 기억과 선택적 해석이 더해진다.

맞지 않은 예언은 잊어버리고 우연히 들어맞은 부분만 기억하면 점쟁이의 예언은 점점 더 정확했던 것처럼 느껴진다.

시마다는 이것을 단순한 사기라고만 보지 않는다.

사람이 자신이 믿고 싶은 이야기를 하나의 ‘현실’로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바라본다.

그런 점에서 점에 관한 이야기도 앞서 말한 ‘현실이라는 환상’과 연결된다.


6. 나카무라 세이지의 건축 ― 개인의 ‘악몽’을 현실로 만드는 공간

시마다의 긴 이야기가 『시계관의 살인』에서 중요한 이유는 결국 나카무라 세이지의 건축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시마다는 나카무라 세이지가 단순히 기괴하고 복잡한 집을 설계한 건축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지은 관들은 의뢰인이 마음속에 품고 있던 고독한 환상과 집착을 건축이라는 현실의 공간으로 끌어내는 장소이다.

즉 의뢰인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던 ‘악몽’을 실제 사람이 들어가 살아갈 수 있는 건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수차관이나 미로관 역시 그곳의 주인이 품은 강한 욕망과 집착을 건물의 형태로 구현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카무라 세이지는 단순한 건축가라기보다 타인의 악몽을 공간으로 증폭시키는 사람에 가깝다.

그리고 시계관에서 그 역할은 더욱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7. 고가 미치노리의 ‘악몽’ ― 도와와 멈출 수 없는 시간

시계관의 주인 고가 미치노리에게 그 ‘악몽’의 중심에는 딸 도와가 있었다.

미치노리의 도와에 대한 집착은 정상적인 부녀관계의 범위를 넘어선다. 그는 딸과 시간에 대한 자신의 욕망을 시계관이라는 거대한 건축물 속에 새겨 넣는다.

수많은 시계와 종, 시계탑, 그리고 외부보다 1.2배 빠르게 흐르는 구관의 시간은 단순한 장식이나 기발한 건축 아이디어가 아니다.

고가 미치노리가 머릿속에서 키워온 시간에 대한 집착을 나카무라 세이지가 실제 공간으로 구현한 결과이다.

여기서 시마다가 말한 ‘악몽’이라는 표현이 구체적인 모습을 얻는다.

사회의 일반적인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시간이 시계관 안에서는 현실이 된다.

외부에서 50분이 흐르는 동안 내부에서는 60분이 흐른다.

시계관 안에 들어간 사람들에게는 그 잘못된 시간이 오히려 ‘현실’이 된다.

이것은 앞서 시마다가 했던 사회에 관한 이야기와도 묘하게 겹친다.

사람들이 모두 같은 것을 현실이라고 믿으면 그것은 그 세계 안에서 현실로 기능한다.

구관 사람들은 수많은 시계가 모두 같은 시간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은 잘못된 시간이지만, 구관 안에서는 그것이 하나의 ‘공적 현실’이 된 셈이다.


8. 고가의 악몽을 이용한 사요코

여기서 작품은 한 번 더 뒤틀린다.

고가 미치노리가 만들어놓은 이 기괴한 시간은 애초에 살인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러나 사요코는 시계관의 비정상적인 시간구조를 알고 있었고, 그것을 자신의 복수에 이용한다.

고가 미치노리의 개인적인 악몽이 사요코에게는 완전범죄를 가능하게 하는 현실적인 살인도구가 된 것이다.

그녀는 구관과 외부의 시간차를 이용하여 사람들을 죽인 뒤 밖으로 빠져나오고, 구관 사람들이 범행시각이라고 믿는 시간에는 시마다와 함께 있으면서 알리바이를 만든다.

따라서 『시계관의 살인』에는 여러 층의 ‘현실’이 겹쳐 있다.

ㅇ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정상적인 외부의 시간
ㅇ 고가 미치노리가 만들어놓은 시계관 내부의 시간
ㅇ 사요코가 피해자들에게 보여주는 날조된 과거
ㅇ 구관 사람들이 사실이라고 믿는 ‘도와의 복수’
ㅇ 그리고 그 모든 거짓 현실 뒤에 숨어 있는 실제 사건

사요코의 범행은 결국 사람들에게 가짜 현실을 믿게 만드는 행위이기도 하다.


9. 「침묵의 여신」 ― 악몽을 추적하다 범행을 발견하다

고가 미치노리가 남긴 「침묵의 여신」은 사요코의 복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사요코는 오히려 그 시를 시마다를 자신의 곁에 붙잡아두기 위한 미끼로 이용한다.

시마다가 고가의 시를 해석하느라 자신과 함께 움직이면, 사건이 벌어졌다고 알려진 시간에 사요코가 시마다와 함께 있었다는 알리바이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가 된다.

시마다는 「침묵의 여신」을 해석하기 위해 고가 미치노리의 과거와 시계관을 조사하고, 그 과정에서 고가가 만들어놓은 ‘악몽’의 핵심인 1.2배 빠른 시간에 접근한다.

결국 사요코가 자신의 알리바이를 굳히기 위해 끌어들인 사람이 사요코의 시간 트릭을 무너뜨린다.

이 점에서 시마다의 긴 사회학적 이야기도 단순한 철학적 장광설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처음부터 나카무라 세이지가 만든 관을 누군가의 악몽이 현실화된 공간으로 바라보았고, 고가의 악몽을 이해하려 했기 때문에 시계관의 진짜 시간에 도달할 수 있었다.


10. 정리 ― 『시계관의 살인』에서 ‘현실’과 ‘악몽’이 의미하는 것

시마다의 강의는 언뜻 보면 연쇄살인과 직접 관계없는 철학적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작품 전체를 알고 다시 보면 이것은 시계관이라는 공간을 이해하는 하나의 해석틀이 된다.

사회는 수많은 사람이 공유하는 ‘현실’을 만들어낸다.

개인은 그 현실에서 벗어나 자신의 ‘악몽’을 키운다.

고가 미치노리는 도와와 시간에 대한 자신의 악몽을 키웠고, 나카무라 세이지는 그것을 시계관이라는 건축물로 현실화하였다.

그리고 사요코는 그 악몽 속에 만들어진 1.2배의 시간을 자신의 복수를 위한 살인도구로 이용하였다.

그러나 결국 그 악몽의 구조를 이해하려 했던 시마다가 시간의 비밀을 발견하면서 범행은 무너진다.

그런 의미에서 『시계관의 살인』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 가운데 하나는 ‘무엇이 현실인가’라는 시마다의 질문이 작품의 핵심 트릭과 그대로 겹친다는 데 있다.

구관에 갇힌 사람들에게 1.2배 빠른 시간은 거짓이었다.

그러나 그곳에 있는 모든 시계가 같은 시간을 가리키는 동안에는 누구도 그것이 거짓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모두가 믿는 잘못된 시간이 하나의 현실이 된 것.

시마다가 말한 ‘현실이라는 공적 환상’이 시계관이라는 건축물 안에서 문자 그대로 구현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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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8-24 15: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초기 관시리즈 6부작둥 시계관의 살인이 제일 본격추리다운 느낌은 주는 작품이지요.기계적이고 물리젝인 트릭이 아닌 시간과 연관된 작가의 창의적 트릭이 독창적인 작품이지요.자랑삼아 말하자면 저는 한스본이 아닌 90년대 서울문화사본으로 6권을 다갖고 있지요^^

대장정 2026-08-24 21:54   좋아요 0 | URL
저도 읽으면서 시간 자체를 이용한 트릭이 정말 독창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90년대 서울문화사본으로 6권이나 소장하고 계시다니 부럽네요^^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