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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가슴이 뜨거워져라 - 열정 용기 사랑을 채우고 돌아온 손미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손미나 지음 / 삼성출판사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프롤로그] 『다시 가슴이 뜨거워져라』 ― 억겁과 찰나
― 헤아릴 수 없이 긴 우주의 시간 속, 찰나에도 미치지 못하는 인간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 억겁(億劫): 불교에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긴 세월을 뜻한다. ‘겁(劫)’은 거대한 바위를 백 년에 한 번씩 흰 천으로 닦아 그 바위가 모두 닳아 없어져도 아직 끝나지 않을 만큼 긴 시간에 비유된다. ‘억겁’은 그런 겁이 헤아릴 수 없이 이어지는 세월을 이른다.
※ 찰나(刹那): 불교에서 극히 짧은 순간을 뜻한다. 『아비달마구사론』의 시간 단위를 현대 시간으로 환산하면 약 1/75초(약 0.013초)에 해당한다.
손미나의 『다시 가슴이 뜨거워져라』를 다시 꺼내 들었다. 오래전에 『스페인, 너는 자유다』, 『파리에선 그대가 꽃이다』, 『페루, 내 영혼에 바람이 분다』를 재미있게 읽었고, 아직 읽지 않은 일본 여행기 『태양의 여행자』도 이번에는 이어서 읽어볼 생각이다.
그런데 책을 펼치자마자 프롤로그에서 한동안 머물렀다. 손미나는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사랑하는 사람에 빗대면서 사랑 때문에 상처받고, 세상의 진실에 대한 믿음까지 흔들렸던 시기를 이야기한다.
『다시 가슴이 뜨거워져라』가 출간된 것은 2009년 11월이다. 손미나는 그보다 앞선 2008년 결혼생활을 끝냈고, 이 책을 쓰기 전 아르헨티나로 떠났다. 이 시간을 알고 프롤로그를 다시 읽으니 ‘무너진 사랑’이라는 표현이 단순한 문학적 수사로만 읽히지는 않는다. 물론 그 결혼생활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당사자들만이 아는 일이다. 다만 한 사람의 삶이 크게 흔들린 직후 떠난 여행이었다는 사실은 이 책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배경이 된다.
나는 결혼한 지 26년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이혼 이야기에 흔히 따라붙는 ‘성격 차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이 많아진다. 한 뱃속에서 태어난 형제도 성격이 다른데, 서로 다른 집안과 환경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두 사람이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는가.
나는 부부가 문자 그대로 ‘일심동체’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결혼은 서로 같은 두 사람이 만나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에 가깝다. 맞출 것은 맞추고,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때로는 다투고 다시 말을 섞으며 살아간다. 아이를 낳아 함께 키우고, 같은 밥상에 앉고, 한집에서 수많은 계절을 보내다 보면 처음의 뜨거운 감정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정’이라는 것도 쌓여간다.
물론 어떤 관계에는 더 이상 함께 살아갈 수 없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이혼을 밖에서 재단할 수는 없다. 다만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데서 생기는 모든 차이를 없앨 수는 없으며, 결국 중요한 것은 그 차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조정하며 살아가느냐가 아닐까 싶다.
사람은 참 많은 것을 원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나와 같기를 바라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나를 이해하고 사랑해주기를 바란다. 돈을 더 갖고 싶고, 남보다 인정받고 싶으며, 조금 더 높은 곳에 오르고 싶어 한다. 욕망이 인간을 움직이는 힘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욕망 때문에 스스로 속을 끓이고 가장 가까운 사람까지 힘들게 만드는 것도 인간이다.
시선을 지구 밖의 우주로 옮겨보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티끌처럼 보인다.
우주의 나이는 약 138억 년이고 지구의 나이도 약 45억 년이다. 그 억겁의 시간에 인간이 살아가는 80년, 90년을 놓아본다면 한평생은 찰나라고 부르기조차 어려울 만큼 짧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무엇을 그토록 움켜쥐려고 하는 것일까.
그렇다고 삶이 허무하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찰나에도 미치지 못하는 시간이기에 더 알차고 찰지게 살아야 한다. 보고 싶은 것을 보고, 가고 싶은 곳에 가고,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밥을 먹고 웃을 수 있어야 한다. 무언가를 하나 더 갖기 위해 평생 마음을 소모하기보다 어느 순간에는 “이만하면 됐다”고 말할 줄도 알아야 한다.
어쩌면 여행도 그런 삶의 방식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여행이 모든 상처를 치료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익숙한 자리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풍경과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면 내가 붙잡고 있던 것들을 조금 떨어져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손미나에게 부에노스아이레스가 그런 곳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랑이 무너진 자리에서 떠났고, 낯선 도시를 걷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다시 자기 삶의 온도를 확인해갔을 것이다.
나 역시 여행을 좋아한다. 낯선 곳으로 가는 이유는 새로운 풍경을 보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오래된 역사유적 앞에 서고, 인간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웅장한 자연을 바라보다 보면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 짧은 삶 동안 무엇을 보고, 무엇을 기억하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여행은 결국 이동을 통해 이루어진다. 사람은 길을 따라 새로운 장소로 향하고, 그 길 위에서 서로 다른 풍경과 사람과 삶을 만난다.
사람이 움직이고 물건이 이동해야 세상은 서로 연결된다. 좋은 물건을 만들어도 필요한 곳으로 옮길 수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고, 사람이 이동할 수 없다면 도시와 시장과 생활권도 만들어지기 어렵다. 길이 열리면 사람이 만나고, 물자가 흐르고, 서로 떨어져 있던 지역이 하나의 생활권으로 이어진다.
도로와 교통이라는 내 오랜 밥벌이도 결국 그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었다. 도로 몇 킬로미터를 건설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 길을 통해 사람이 움직이고 물류가 흐르며 서로 다른 삶이 이어지게 만드는 일이다.
책 한 권의 프롤로그에서 시작한 생각이 여기까지 왔다.
처음에는 프롤로그의 ‘무너진 사랑’이라는 문장을 보며 그 무렵의 손미나의 이혼과 삶을 떠올렸을 뿐이다. 그 생각은 결혼과 부부의 삶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고, 다시 인간의 욕망을 지나 억겁의 우주와 찰나 같은 인생을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그 끝에서 다시 여행과 길의 의미를 만났다.
억겁의 세월에 비하면 우리의 삶은 찰나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 짧은 시간만큼은 제대로 살아볼 일이다. 많이 가지는 삶보다는 많이 보고, 느끼고, 사랑하고, 기억하는 삶. 남이 정해놓은 길만 따라가기보다 내가 가보고 싶은 길도 걸어보는 삶.
아직 『다시 가슴이 뜨거워져라』를 다시 읽기 시작한 참이다. 본격적인 감상은 책장을 더 넘긴 뒤에 써야 할 것이다. 하지만 프롤로그 몇 쪽만으로 이미 생각은 제법 먼 곳까지 다녀왔다.
어쩌면 제목 그대로인지도 모르겠다.
가슴이 다시 뜨거워진다는 것은 거창한 무엇을 이루는 일이 아니라, 찰나와도 같은 자기 삶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깨닫고 다시 길 위에 서는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