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은 은밀히 황친 대성진, 대아명을 설득하고, 보국대장군 최감천, 태복경 대현사와 신득원을 비롯한 무장들을 포섭했다. 이제 하늘에 운명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어가행렬은 경계가 삼엄해서 백성들은 모두 숨을죽였다. 기르는 개가 어가행렬을 보고 짖었다가 참변을 당한 전례가 있기에 백성들은짐승 단속까지 해야 했다.

잠자리에 들었던 오윤문은 방문을 걷어차고 들어온 군사들에게 도륙되었다. 황제를 배행했던 태자 대한상은 도끼날에 목이달아났다.
침궁으로 밀입한 박자갑은 벌거벗은 황제에게 어의를 내밀었다.

"폐하, 천명을 받으시옵소서. 천하를 농단했으니 자진하여 죄를 씻으시옵소서!"
박자갑은 날선 칼 한자루를 황제 앞에놓았다. 대위해가 엉겹결에 칼을 받았다.
"좌우를 물려라!"
박자갑이 명하자 무기 든 군사들이 물러섰다. 황제가 스스로 자진하는 걸 볼 수 없게 하려는 배려였다.
대위해는 두 손으로 칼을 부여잡았지만끝내 목에 칼을 박지는 못했다. 대위해가칼을 던지는 순간 박자갑의 칼날이 대위해의 목덜미를 향해 내리꽂혔다.

날이 밝자 황친과 대신들은 대세를 거역할 수 없음을 알고 마침내 황자 대인선을옹립했다.   
황위에 오른 대인선은 진신들의 주품을받아들여 선제 대위해의 폭정을 들어 폐위하고 연호를 파했다. 또한 백성들의 원성을들어 시호와 묘호를 추증하지 않기로 했다.천심을 거역한 황제였기에 황위에 올랐던대위해의 치세를 파하기로 했다.

대인선은 좌우를 물리고 배정을 회유하려고 했다. 그러나 배정은 한사코 거절했다.
배정은 도성을 떠나기 전, 매를 좋아하는대인선에게 참매 한 마리를 바쳤다. 아직새끼의 때깔을 벗지 않았으나 눈매가 유난히 날카로운 매였다. 예부터 고구려는 매를해동청이라 부르며 영물로 여겼다. 대인선은 배정이 참매를 바치는 뜻을 알 것 같았다. 참매와 같은 강력함과, 번뜩이는 눈매 같은 예지로 장차 정사를 올바르게 펼치라는 충정이었다.

금사미단 계안상신.’
금실은 끊어지지 않았고, 닭의 눈은 새롭기만 하다는 뜻이었다. 대인선은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이 글을 풀어보면 금사(음막,처녀막)가 찢어지지 않았고, 계안(음핵)은아직 해말간 색을 그대로 지니고 있어, 낭자는 교접한 적이 없는 진녀임이 분명하다는 뜻이었다

예부터 음부에 털이 없는 백, 치구가 불룩한 고, 살결이 부드러운 연, 음문이 붉은 홍, 교접 때죄는 긴, 이렇게 다섯 가지를 갖춘 여인을존귀하게 여겼다. 특히 계안이 해맑고 붉어야 했다. 곡실이라고도 불리는 계안은 작을수록 정숙하다고 했는데, 흔히 수척한 여인이 풍만한 여인보다 큰 편이었다. 그래서예부터 수척한 여인이 색을 밝힌다는 말도있었다. 그런 까닭에 대인선의 배필은 풍만한 여인으로 정해졌다.

"폐하, 옛일을 상기해야 하옵니다. 고구려가 멸망할 때 당나라는 거란과 말갈을 꾀어 선봉에 서게 했사옵니다. 지금도 강성해진 거란이 말갈부를 꾀면 삽시에 준동할 수있사옵니다. 선제께서 그들을 박대하고 조세와 부역을 무겁게 했으며 변방으로 쫓았사옵니다. 그 서러움이 분노가 되었으니 지금 진무해야 하옵니다. 통촉하옵소서."

나라가 안돈하자 사라졌던 승려 담오가법화사로 돌아와 불사를 일으켰다. 무너진채 방치됐던 석탑을 다시 쌓기로 했는데,진신사리를 봉안하기 위해서였다. 오윤문이 대위해에게 바쳐올린 진신사리는 진품이 아니었다. 진신사리를 지키기 위해 모조품을 만들어 사탑 밑에 두었다고 했다.
이에 황궁에 모셨던 가짜 진신사리는 폐기했다.

당나라 멸망의 가장 큰 근원이 민심 이반이었고, 발해도 그런 조짐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음을대인선도 알고 있기에 가슴이 무거웠다.

"어쩌다가 사직이 피폐해지고 백성이 곤궁해졌는고?"
"곤궁한 백성들은 의명선사가 살해당한뒤부터 불도를 버리고 도교를 찾게 되었사옵니다. 이것은 조서를 내려 막을 수 없고군사로도 막을 수 없사옵니다."
"짐도 선제의 명을 받아 도교 경전인 도장을 익혔도다."
백성들이 먼저 난세를 알아본다고 했다.예부터 난세에는 점복이 횡행하고 주술로가산을 탕진하며, 사술 부리는 자들이 기승했다.

"도사 자양과 여도사 백화고가 정말 귀신을 부리는고?"
대인선은 세상이 어지러운 틈에 백성들을 현혹하는 무리를 척결하지 않고는 국기를 바로잡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신이 생각하기로는 사술이 분명하옵니다."
"그러면 당장 척결하라."

"지금은 때가 아니옵니다. 자양과 백화고를 따르는 무리가 너무 많아 때를 기다려야 하옵니다. 두 도사를 따르는 자들은 사물에 현혹되고, 현세에 분노한 무리들이어서 극력 저항할 것이옵니다."

달시화는 발해 여인들과 다른 눈빛 때문에 환몽 같은 신비감을 자아냈다. 무엇인지알 수 없는 게 온몸 가득 숨겨져 있는 듯했다.
대인선을 맞아 방술을 펼칠 때는 물들인비단을 비비대서 빛깔을 빨아내듯 정염을불태웠다. 대인선은 황홀경에 취하며 비로소 선제들이 여색에 빠진 까닭을 알았다.

거란의 군국사를 총괄하던 야율아보기가 8개 부족의 가한에 올랐다는 소식은 또 한번 발해 조정을 놀라게 했다. 거란의 8부는 연합하여 3년마다 한 번씩 질립제(선거제도)로 8부를 통치하는 가한을 선출했다.
야율아보기의 야심은 거대한 중원 땅을경략하는 것이었으니, 발해로선 콧등에 호랑이가 앉은 꼴이었다. 대인선은 오소도의주청을 받아들여, 담대하고 해박한 문적원소감 배구를 북서쪽 거란 땅으로 밀입케했다.

"중원 땅은 넓고 백성 또한 많사옵니다.중원을 평정하려면 반드시 발해를 먼저 짓쳐들 수밖에 없사옵니다. 중원을 공격할 때 배후의 발해가 저들의 근심이옵니다."

"군사를 길러 강병을 만드는 게 첫째요,재정을 견실히 하여 민심을 붙잡는 게 둘째이고, 말갈의 이탈을 막는 게 세 번째 현책이옵니다. 신라와 화친을 도모하고, 일본과교역을 증대하며, 주전충의 양나라와 친선하고, 아보기의 거란과도 화친해야 하옵니다. 그러나 황친국척, 백관, 사족들의 호사를 막지 못하면 결코 민심이 돌아올 수없사옵니다. 폐하, 수라상에 일곱 찬을 넘지 않게 하시고, 황후를 비롯하여 황자와공주는 물론 태후까지도 비단과 보석 치장을 금하옵소서."

해를 넘겨 무진(908)년 정월에 당나라 마지막 황제였던 이축이 기어이 주전충에게죽임을 당했다. 주전충과 쌍벽을 이루던 사타족 출신 이극용도 천수를 다해 이승을 하직했다.

애제 이축이 붕어했다는 소식을 접한 대인선은 재상 오소도와 대성악, 황친 대진해의 주품을 받아들여 검소령을 내렸다.
배구가 예견한 대로 이축이 살해됐고, 거란은 남진을 거듭하며 위세를 높였기에 용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백성들은 검소령을 거역하면 누구를 막론하고 무섭게 치죄하겠다는 황제의 조서를 잊지 않았다.
 
대인선은 며칠이 지나도 대진례를 치죄하지 않았다. 백성들은 지엄한 조서가 무용지물이 되는 걸 보면서 은근히 황제를 원망했다.

문적원 소감 배구가두 차례나 상소했으나 대인선은 대진례를문죄하지 않았다. 배구가 알현을 청했지만받아들이지도 않았다. 재상 오소도와 대성악은 황제가 한 번 내린 조서를 황제 스스로 거스르면 국기가 문란해진다고 간쟁했다.

"사람이 귀신과 교접하는 것으로, 한번그 환몽에 빠지면 쉽게 헤어나지 못한다고들었사옵니다."
"가엾게도 대공주는 도사가 준 단약을먹고 환몽을 헤매다 귀교하게 되었도다. 그냥 내버려두어도 얼마 살지 못할 텐데……."
대인선은 말을 잇지 못하고, 흐르는 눈물을 애써 감췄다. 배구는 그제야 대진례에게그런 아픈 사연이 있어 징치하지 못했음을알았다.

모든 정기를 귀신에게 빼앗기며 혼비의무아경에 빠지고, 한 방울 진액마저 모두빨려 백산의 황홀경에 빠지는 동안 처참할정도로 탈기되어 죽는다.
"대공주는 환몽에 시달리다 비단옷에 치장을 하고 춤추고 노래했도다. 짐이 어찌대공주를 징치하겠는가?"
대진례를 문죄할 수도, 그렇다고 공주가귀교한다고 말할 수도 없는 황제의 심정이느껴졌다.

"마마를 출궁하여 징치하고, 통력을 가진 도사에게 치병을 명하시면 국기도 바로잡고 마마를 구원할 수 있사옵니다. 궁 밖에서는 마음 놓고 무의를 펼치고 약도 쓸수 있사옵니다."
대인선은 차마 말할 수 없는 사연을 품고 있었다. 대진례의 침방에서 여러 개의쇄양으로 만든 방이 나왔다.

방이란, 물가에 배를 대거나 물이 얕은곳을 밀어갈 때 쓰는 상앗대를 뜻하지만,실제는 남자의 옥근처럼 만든 물건을 말했다. 물속을 찌르는 상앗대를 남자의 옥근으로 비유해서 쓰는 말이었다

거란의 야율아보기는 남진하여 진동에장성을 쌓으면서 요동의 남쪽으로 진출할태세를 갖추었다. 발해와 양나라 사이의 통로를 차단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었다.

"아보기 곁에는 유능한 책사와 병법에능한 장수들이 매우 많사옵니다. 기습하여우리의 전력을 탐지할 테니 칙지를 내리시어 적이 기습하면 반드시 추격하여 섬멸하라 명하옵소서. 발해를 침노하면 반드시 보복당하는 전례를 남겨 적을 방비하옵소서."

야율아보기는 전술에만 능한 게 아니라정세 판단에도 뛰어났다. 사람에게 절실한소금을 조달하기 위해 염전을 수중에 넣어백성에게 소금을 싼 값에 공급하고, 중원에서 온 당인들을 농경과 길쌈에 진력하게 하여 백성들의 삶을 풍족하게 했다.
그들에게 철을 다루는 법을 익혀 무기를만들고, 중원의 강역을 상세히 그리게 하여중원을 공격할 때 이용했다. 그들을 길잡이로 삼아 중원을 기습하여 전과를 올리기도했다.

"지난날에 패군이 나라를 다스려 백성이곤궁하고 나라가 어지러웠지만, 지금은 현군을 만나 군사를 증강하고 변방의 경계를엄중히 하여 민심을 수습했나이다. 우리가발해를 정복하려면 적어도 10년을 기다려야 하나이다."

진나라에도 각저라고 불리는 씨름이 있었지만, 기상이 넘치는 고구려 씨름만 못했다. 주몽이 즉위하기 전 계루부의 족장일때 고추가들과 씨름을 겨루었듯, 고구려 씨름은 그 시절부터 기개가 넘치고 독특해서각별히 요교라고 불렸다. 이런 씨름이 전승되어 지금 발해 벌을 달구고 있었다. 이를두고 상하가 한마음이 되어 큰마당을 펼치기 때문에 쾌어심이라 했다.

야율할저는 조아린 채 뛰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했다. 저런 기개와 웅혼함 때문에사방에서 고구려를 두려워했고, 발해를 범하지 못했음을 알았다. 야율아보기도 강병을 길렀지만 저 기개를 당할 수는 없으리라.
야율할저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온몸이굳어지는 걸 느꼈다. 그는 내친 김에 황제에게 주청하여 수군의 위용을 살펴보겠다고 했다. 대인선은 기꺼이 수락하고 홀한해에 다녀오라고 명했다.

"이 길로 가면 하루를 벌 수 있습니다.발해 군사들은 늘 이 길로 다닙니다."
이강국은 굳이 먼 길을 돌아가지 말고지름길로 가자고 우겼다.
"나는 황명을 받은 몸으로 상세히 표문을 올리기 위해서 천하를 살펴야 한다. 말머리를 돌려라!"
야율할저가 명했다. 황제의 명을 받아 발해 군사의 동태를 감찰하는 감군관이 아닌가. 그의 명을 거역하기 어려웠다.
"말머리를 돌려라!"

"누구든지 할저를 주살하면 천금을 내리겠다. 사력을 다하라!"
미사건이 소리 질렀다. 두 식경도 채 되지 않아 감군관 일행을 추격한 군사들이 무섭게 공격했다. 감군관 일행도 맞서 싸웠으며, 야율할저도 칼을 빼들었다. 군사 수효가 열세인데도 야율할저는 두려워하지않았다. 그러나 호위 군사들이 쓰러지고 큰아들 야율무정의 목이 달아나자 도망치기시작했다.
이강국은 기다렸다는 듯 용맹한 수하 몇명을 앞세우고 추격했다. 야율할저를 태운말은 대인선이 하사한 명마 중의 명마가 아닌가. 맹렬한 속도로 나는 듯 내달렸다. 흑사령 계곡으로 들어섰다면 어김없이 주살했으련만, 야율할저는 무슨 낌새를 챘는지길을 에돌았고, 명마를 휘몰아 멀리 도주했다.

그러나 변고는 엉뚱하게 번졌다. 고경단이 밝힌 전모는 놀라웠다. 호위 장수 이강국을 문초하여 캐낸 내용은 태복경 겸 보국대장군 양금당이 배후에 있고, 양금당과 공모한 자는 재상 오소도와 대성악이라고했다. 대인선은 억울함을 호소하는 양금당과 이강국을 즉시 참수하고, 두 재상은 차마 죽일 수 없어 유배했다.

대인선은 유배된 오소도와 대성악을 참하고, 배구를 비롯한 강직한 신하들을 모두삭탈하여 하옥했다. 조정 중신들은 숨소리도 크게 내지 못했다. 바른 정사에 후덕했던 황제가 왜 저렇게 변했는지 이해할 수없었다.

거란군은 국경을 넘어 부여성으로 진격했다. 수자리를 서며 국경을 지키던군사들은 물밀 듯 짓쳐드는 거란군을 막지못하고 도주했다.

그해 9월 초사흘, 거란의 영걸 야율아보기는 서방 정복을 마치고 환궁했다. 공신들에게 훈공을 내리고 장졸들을 호궤한 야율아보기는 황태자 야율배, 둘째아들이자 대원수인 야율요골을 비롯하여 황후 술율, 동생 야율질라와 발해를 공격할 때 선봉으로삼을 장수 척은안단, 소아고지를 불러들였다.

정월 병자(19)일에 야율아보기는 근시 강말달을 비롯한 13명을홀한성으로 보내 모든 병장기를 수습하게 했다. 분개한 발해의 패망 군사들이 일어나 이들을 모두 살해했다.

적의 공격이 사나워지자, 양지각과 이변성이 즉시 주모자를 잡아 성 밖으로 던져 항복을 알리고 성문을 열었다.

눈발이 굵어지기 시작하는데, 허공에서 해동청 두 마리가 바람과눈발을 가르며 야율아보기를 향해 내리꽂혔다.

그러나 참매 한 마리는 야율아보기의 뒷머리 쪽 오목한 풍지혈을 모지게 쪼고 창공으로 한껏 날아올

대인선은 바등거리다가 사지를 쪽 뻗은 해동청을 쓰다듬었다. 참매는 숨이 멎었다.
마치 발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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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탄일을 맞아 어화원에는 푸짐한연석이 차려졌다. 권지국사를 비롯한 만조백관이 모였고 황친국척과 구신은 물론, 변방의 도독과 자사들도 참여했다. 겉보기에는 황제의 탄신을 하례하러 온 듯했지만 사실은 내일 아침 등극하는 대건진을 경하하기 위해서였다.

바로 그때 진단대장군 장복사가 썩 앞으로나섰다.
"폐하, 지금 칙계하시면 진신들이 엎드려 받들겠사옵니다."
대현석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천하를 농단한 권지국사를 어찌하여 치죄하지 않으시옵니까?"

"진신들은 모두 국사의 명을 따르라."
"신이 설사 죽더라도 폐하의 뜻을 따를수 없사옵니다."
그리고는 표정이 일그러진 대건진을 향해 소리쳤다.
"진단대장군 장복사는 칙지를 받들어 권지국사 대건진을 대역죄로 포박한다."

그때 대건진의심복이었던 금군대총관 임천중이 칼을 높이 들고 외쳤다.
"황상을 받들지 않으면 누구든 처단하겠다."
임천중의 목소리가 살을 벨 듯 살벌했다.

"황상께 맹약의 삼배를 올리시오!"
경기군대총관 김진문이 목청을 갈았다.한두 사람씩 일어나 황제를 향해 절을 올렸다. 진신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황제에게예를 갖추었다.
그렇게 살벌한데도 황제를 등지고 당당히 걸어나가는 사람이 일곱명이나 되었다.

"참으로 순려하도다. 저것이 발해의 기상이거늘……."
무혈반정을 일으켜 황휘를 찬탈하려던대건진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를 옹립하려 했던 측근들은 죄의 경중에 따라 정배되거나 삭탈당했지만, 피비린내 나는 참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나라를 다스리는 치자라면 사무치는 자비심을 가져야 하오. 관용과 용서는 강자의덕목이오. 보살심이 없으면 군자가 아니니치자가 되어서는 아니 되오."
양아림은 공신들에게 자비심을 잊지 말라고 했다.

"구신과 공신들을 함께 중용하는 게 어떠한고?"
"폐하, 대국을 다스림에 있어 친근하다고 해서 가까이해도 아니 되고, 소원하다고멀리해도 아니 되옵니다. 이익이 된다고 추구하거나 손해가 된다고 해서 버려도 아니되옵니다. 사람도 너무 귀중히 여겨도, 너무 천하게 여겨도 아니 되옵니다. 무릇 벼슬에 있는 자들은 모두 불안하여 밤잠을 설치고 있으니, 지난날의 죄업을 모두 사면하옵소서. 오히려 창검 앞에서 굴하지 않고폐하를 논힐한 운칠현에게 관작을 높여주는 게 발해의 기상을 살리는 길이옵니다.그러면 천하가 모두 엎드려 폐하를 숭상할것이옵니다."

"경은 어찌하여 마음이 하해와 같은고?"
"폐하, 신의 마음은 비온 뒤 생긴 소발자국에 괸 물처럼 흐리고 얕사옵니다.다만……."
장복사는 무슨 말인가 하려다가 마는 눈치였다.
"듣고 싶도다."
대현석이 채근했다.
"신은 은밀히 의명선사의 가르침을 받고있사옵니다."
"의명선사는 입적하지 않았는고?"
대현석은 의명선사가 스스로 법화사 대웅전에 불을 질러 혜진옹주와 함께 산화했음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덕산대사와 의명선사만을 노린 게아니라 모든 절을 폐하고 승려들을 환속시키는 폐불을 단행하려 했기에, 덕산대사는스스로 대웅전에 불을 지르고 홀로 몸을 살라 소신공양을 했다. 그 덕분에 폐불이 단행되지 않았고, 우여곡절 끝에 성각사와 법화사가 중건되었다.

역신 대건진의 반정을 부추겼던 대소신료들의 지난 죄를 모두 사면하고 부화뇌동했던 황친과 구신들의 죄도 묻지 않기로 했다. 게다가 반정을제압한 공신들조차 훈공하거나 초천하지않아 더욱 의아해했다.
대현석의 성덕은 널리 퍼져나갔다. 황제를 흠경하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대현석의 탄신일에어화원의 살벌한 눈초리에도 굴하지 않고큰소리로 황제를 나무랐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배정을 따라 함께 걸어나갔던 일곱 명을가리켜 사람들은 운칠현이라고 불렀다. 배정을 비롯한 다섯 남자들은 벼슬이 높지 않았으나, 그 기개가 널리 알려져 청5현이라불렀다. 또한 홍2현은 문관 이정심과 무관고서운을 가리키는데, 청5현 못지않은 기개와 시문을 뽐내는 인재였다.

불안한 정정의 당나라에 변화가 왔다. 임인(882)년에는 승승장구하던 제국의 황제황소가 쇠하기 시작했다. 황소의 측근 심복이었던 주온이 반란을 일으켜 당나라에 투항했기 때문이다. 황소가 파견한 감군의 간섭과 압력을 견디지 못한 주온은 감군의 목을 베고 투항했는데, 당제 이현은 크게 환대하여 그에게 주전충이란 이름을 하사했다.

대현석은 크게 기뻐한 나머지 배정을 문적원 원감으로 삼고, 후하게 사급하여 그의공을 기렸다.
당나라는 쉽게 원기를 회복하지 못했다.3백 년 가까이 지탱해온 당조는 화북의 번진들을 회유하여 전세를 조금 역전시켰다.주온이 투항한 게 그 계기였다.

요충지 변주를 근거지로 삼은 주전충과,산서의 태원을 본거지로 삼은 이극용은 수많은 군사를 거느린 군벌로, 천하를 호령하면서 상호 견제했다. 주전충이 베푼 성대한위로연에서 술에 취한 이극용이 주전충에게 모욕적인 말을 내뱉은 게 화근이었다.분노한 주전충은 성문을 닫아걸고 이극용의 군사들을 무차별 도륙했다. 이극용은 겨우 탈출했지만 거느렸던 군사는 거개가 화를 면치 못했다.

"당나라는 해와 달이 보이지 않을 만큼어두워졌지만 군벌들이 녹록지 않도다. 거느린 군사도 수십만이니 어찌 우리가 군사를 길러 대비하지 않겠는고? 당나라가 내란에 휩싸인 틈을 타 북방에서 거란이 흥성하고 있도다. 국고는 채울 수 있지만 사직이 무너지면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도다."

"당나라는 해와 달이 보이지 않을 만큼어두워졌지만 군벌들이 녹록지 않도다. 거느린 군사도 수십만이니 어찌 우리가 군사를 길러 대비하지 않겠는고? 당나라가 내란에 휩싸인 틈을 타 북방에서 거란이 흥성하고 있도다. 국고는 채울 수 있지만 사직이 무너지면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도다."

이 무렵, 발해 황제 대현석이 군사들을이끌고 행궁으로 나가 사냥과 군사 조련을하다 쓰러졌다. 중풍으로 쓰러진 대현석은반신불수가 되어 자리에 누웠다. 군사를 길러 강성대국을 만들어 내란으로 쇠락한 당나라를 치고, 북방의 거란도 평정하겠다던대현석은 혼자서 수라를 들거나 옥음을 내릴 수조차 없었다.

은밀히천하를 평정하여 강성대국을 꿈꾸던 무장들은 통곡했다.
발해 조정은 황자 대위해를 태자로 봉하라 주청했다. 대현석은 자신의 붕어를 예견했는지 서둘러 장자 대위해를 태자로 책봉했다.

여왕은 진골의 반란으로 어지러워진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진력하던 터였는데, 남편이자 황룡사 9층 목탑을 중수한 상대등위홍이 죽자 정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왕의 숙부이기도 한 위홍은 대구화상과 함께 향가를 수집하여 삼대목을 편찬할 만큼학문이 깊었다.

신라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뭄이 들어 많은 고을에서 공물을 바치지 못했다.이렇게 나라가 어지러워진 틈에 원종과 애노가 사벌주에서 농민 봉기를 일으켰고, 견훤과 양길이 각기 무리를 모아 반란의 싹을키웠다.

당나라에서는 이극용이 또 반란을 일으켜 중원을 혼란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주변 국가들이 쇠락하고 있을 때 발해는 겉으로 평온해 보였지만 속은곪아가고 있었다.

황제 대현석이 중풍으로 쓰러져 병석에누우면서 발해 조정은 사분오열되었다. 대현석이 치세하는 동안 탕평책으로 지그시눌러놓았던 적손과 방계손의 대립이 극에달했고, 황제의 근신과 태자를 받드는 신하들 간에 갈등이 첨예해졌다. 더구나 군세를업은 무신들과 오랫동안 권세를 누려온 문신들 사이의 암투는 목불인견이었다.
태풍을 예고한 것은 황후 양아림의 급서였다.

참기 어려운 신고의 세월을양아림이 곁에 있어서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황후의 죽음으로 대현석은 한쪽 날개가 꺾여버렸다.
황후의 급서에 대현석은 눈물 흘리며 힘들여 입술을 들먹였다.
"홀로 어찌 살라고 먼저 가셨는가……."

"황상께서는 병석에 계시고, 당나라와신라는 내란에 휩싸여 있다. 이럴 때 준동하면 하늘이 노한다."
장복사는 한마디로 거절했다.
"장졸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릅니다. 분노하는 군심을 가라앉힐 묘책이 달리 없습니다."
김진문도 군심이 심상찮음을 걱정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대상은 당나라와북방의 거란이지, 적손이나 문신들이 아니다. 경거하고 망동하지 말라."
장복사가 군심의 동요를 알면서도 무장들을 다독거리는 이유는 한번 준동하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야기되기 때문이었다.
크게 나누어보면 적손과 문신들이 한패를 이루었고, 방계손과 무신들이 또 한패가되어 서로 다투었다.

계위하게 될 대위해는 황제가병석에 누워 신음하는데도 미소년을 불러들여 남색에 취했다. 대위해는 황후가 서거하자 마치 천하를 수중에 넣은 양 위세를부렸다.
‘붓다시여! 정의의 칼을 들어야 하나이까?’

태자는 성정이 용렬하고 포악하여 흉금이 좁으니, 대국을 다스릴 만한 그릇이 아님을 어찌 감출 수 있으리오."
장복사를 은밀히 부른 까닭을 짐작할 수있었다.
"신에게는 현책이 없사옵니다."
"천신만고 끝에 천재일우라고 하더이다.황상이 혼암하면 만백성이 신고를 겪게되니……."

이미 그 세가 만만치 않은데, 태자를 폐하고 작은아들 대봉예를 책봉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비록 대위해가 남색에 빠져 호화방탕하며 포악하지만, 조정을 장악하고 있으니 태자를 폐하려면 한바탕 회오리가 불어야 했다.
"황상께서는 천추를 다하신 듯하니 서두르시오."
"명심하여 거행하겠사옵니다."
"이것은 나라를 흥하게 하고 백성을 살리는 길이니 성심을 다해주시오."

"새벽녘에 기이한 꿈을 꾸었습니다. 공께서 관복을 벗고 삭발한 채 산사의 비구니가 되었습니다. 흉몽이 분명한 까닭은 대장부인 공께서 비구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심복을 먼저 궁궐에 보내 정황을 알아본 뒤입궐하십시오. 아녀자의 어리석은 생각도때로는 명약이 될 수 있습니다. 공의 어깨에 나라의 운명이 걸려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밤늦게 입궐하는 남편의 안위를 걱정하는 아내의 간청을 귓전으로 흘린 장복사는서둘러 입궐했다.

장복사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금관조복을 뚫은 창검이 수십 개나 되었다. 피투성이가 되어 나뒹군 장복사는 즉시 들것에 실렸다.
그날 밤, 장복사를 따르는 임선중과 김진문을 비롯한 맹장들도 비슷한 시각에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궁궐 안에서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이렇게 참화가 들끓는데도침궁에 누워 있는 황제는 가쁜 숨만 몰아쉬고 있었다.

대위해는 태자를 폐하고 대봉예를 책봉하려는 황후의 계책을 미리 알았다. 만약아우 대봉예가 태자위에 오르면 그는 천하에 낯을 들 수 없을 것 같았다.
황후와 장복사의 밀약을 알아낸 사람은태의 임선도였다. 황제 곁에서 치병하는 임선도를 황후는 철석같이 믿었는데, 임선도는 이미 대세의 흐름을 간파하고 대위해의심복을 자청했다.

남쪽 신라의 정세도 당나라 못지않았다.신해(891)년에는 양길의 부하 궁예가 신라의 여러 군현을 공격하여 천하를 어지럽혔고, 이듬해 임자(892)년에는 견훤이 무진주를 치고 스스로 왕이라 칭했다.

갑인(894)년, 발해 황제 침소인 침궁에곡소리가 처량하게 울려 퍼졌다. 황제 대현석은 참으로 질긴 목숨이었다. 병석에 누운지 7년 동안 초인처럼 버텼지만 하늘의 뜻을 거역하지 못하고 승하했다.

장복사와 그 추종 세력을 처단하고문관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군사 수효를 줄이고, 태복경 대현사에게 명해 군부를 손질했다.

대위해의 침궁에는 얼굴과 몸매가 고운미소년들이 항시 대기했다. 황제에게는 이미 정궁인 고승지가 낳은 장자 대인선과 대소순이 있고, 후궁이 낳은 대우모와, 오미랑이 은밀히 낳아 기른 대한상을 비롯하여여러 공주가 있었다.

누구 한 사람 대위해의 단수를 논힐하는 자가 없었다. 세간의 수군거림을 걱정해 은밀히 총애하라고 간했던 신하가 삭탈당했다. 그러면서 벼슬아치와 사족들은 운칠현 일곱 사람이 뭔가를 도모해주길 은근히 기대했다.

"백성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죽음 앞에 나약한 자요, 막강지권 앞에 용렬한 자요, 백성들 앞에 비겁한 자라고 손가락질을 합니다."
고서운의 심정은 비통했다. 그들은 새벽까지 격론을 벌여 옳은 일에 목숨을 바치는게 도리라는 결론을 내리고 상소문을 닦기로 했다. 그리고 배정의 집으로 달려가 가족에게 피신하라고 종용했다.

또 한번 격론이 벌어지고 있는데 소식을듣고 열네 살 난 배구가 말했다.
"옛날 우왕은 바른말 하는 사람을 보면그 자리에서 절을 했다고 했습니다. 비록제 나이가 어리고 천단하나 부모님 가르침대로 바른길을 가려는데 어찌 현자들께서말리겠습니까?"

배구가 붓을 내려놓자 운칠현은 일필휘지한 상소문을 읽어보았다. 담대한 필치요,거침이 없는 문장이요, 글자 사이에서 천둥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하늘이 있으면 별이 있고, 땅이 있으면초목이 있듯 나라가 있으니 이런 인재가 있구나. 설사 우리가 죽는다 해도 후세에 또의로운 자가 줄을 잇겠구나!"

운칠현이 연명으로 올린 상소를 어람한대위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지금까지 궁궐의 폐단을 바로잡으라고 간한 자는 북방흑수지경으로 유배되고, 교화를 밝게 해달라고 상소한 자는 물감옥에서 초죽음을 당했다.

"어린것은 돌려보내라!"
황제의 명을 받은 형졸들이 다가서자 배구가 소리질렀다.
"남색과 천첩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는 폐하께 말로써 굳게 간하여 잘못을 바로잡으려고 왔으니 썩 물러서시오."
대위해가 어이가 없는지 소리 내어 웃었다. 겨우 열네 살밖에 안 된 어린것이 황제 앞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대위해도 문적원감 배정에게 영민한 자식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어린것은 돌려보내라!"
황제의 명을 받은 형졸들이 다가서자 배구가 소리질렀다.
"남색과 천첩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는 폐하께 말로써 굳게 간하여 잘못을 바로잡으려고 왔으니 썩 물러서시오."
대위해가 어이가 없는지 소리 내어 웃었다. 겨우 열네 살밖에 안 된 어린것이 황제 앞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대위해도 문적원감 배정에게 영민한 자식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대저 형벌이 가혹하면 가뭄과기근이 들고, 병란이 일며, 민심이 흉흉해진다고 고금의 사필에도 실려 있사옵니다.폐하의 너그러운 성덕이 샘물 같다고 기록될 것이옵니다. 샘물은 눌러서 막을 수 없고 오로지 퍼올려야만 하옵니다

배구가 닦아 쓰고, 운칠현이 연명한 상소문을 백성들이 통쾌해하는 걸 대위해도 알고 있었다. 이럴 때 그들을 척살하면 민심이 등을 돌리고 일곱 사람을 군웅처럼 떠받들게 될 것이다.

고서운이 가볍게 던진 옥가락지는 술병의 홀쭉한 주둥이를 영락없이 깨뜨렸다.
"이 비천한 몸으로 감히 황상을 받들어모실 수 없는 연유는 제 몸속에 흐르는 이예기가 술사들 말로는 척살기라 하여, 지아비를 섬기면 지아비가 살을 맞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혼기가 넘도록 부모님께 불효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데려가신다면 기꺼이 입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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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신의 대발해 9 - 모반의 수레바퀴 ㅣ 김홍신의 대발해 9
김홍신 지음 / 아리샘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독서보고] 김홍신의 『대발해』 9권 심층 비평

1. 중흥의 신기루와 대인수의 유통기한
ㅇ (외형적 성장) 영토 확장과 문자 제정 등 선왕 대인수 치세의 성과(해동성국)는 근본적 체제 개혁이 수반되지 않은 모래성에 불과함
ㅇ (권력의 사유화) 국가 시스템의 혁신 없이 개인 역량에 의존한 중흥은 군주 사후 해씨 일가의 국정 농단으로 직결되었으며, 선대의 업적이 권신들의 수탈 대상을 비축해 준 역설적 결과를 초래함

2. 해태후 체제; 발해의 골수를 빨아먹은 기생충
ㅇ (국가탈취) 해태후의 섭정은 국가의 보전이 아닌 사적 권력의 유지 및 국가 강탈 행위로 규정됨
ㅇ (공권력 붕괴) 국가를 해지량, 해무량 등 친정 세력의 축재 수단으로 전락시켰으며, 특히 무지한 권신 해무량이 감찰어사를 살해한 사태는 공권력이 조폭 수준의 사병으로 전락하여 자정 능력을 상실했음을 증명함

3. 작가의 모순; 악녀를 성녀로 둔갑시키려는 무리수
ㅇ (서사적 모순) 무고한 자를 물감옥에 가두고 고문을 자행하는 잔혹한 독재자 해태후를 도량 넓은 인물로 묘사하려는 작가의 온정주의적 접근은 팩트를 훼손하고 서사의 내적 논리를 스스로 파괴하는 중대한 구멍임

4. 신작의 선비질이 부른 대참사
ㅇ (정치적 실기) 태사 신작은 상황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지녔으나, 이상적인 선비적 명분론에 집착하여 결단하지 못하고 실기함
ㅇ (명분론의 폐해) 민란 국면에서 동족 상잔을 피하겠다는 감상적인 논리로 해태후 체제를 전복할 결정적 기회를 상실하였고, 결과적으로 부패 권력의 수명을 연장시켜 백성의 고통을 가중시킴

5. 대건진과 폐불; 양심의 실종과 멸망의 전주곡
ㅇ (도덕성 상실) 대건진이 황제를 무력화하고 덕산대사와 의명대사를 분사(焚死)시키며 폐불을 단행한 사건은 국가의 도덕적 통제 장치(브레이크)가 완전히 소멸했음을 의미하며, 거란의 침공 이전에 이미 발해가 내부적 탐욕으로 멸망의 전조를 완성했음을 시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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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신의 대발해 9 - 모반의 수레바퀴 ㅣ 김홍신의 대발해 9
김홍신 지음 / 아리샘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독서보고] 김홍신의 『대발해』 9권, 모반의 수레바퀴 – 외척과 권신의 전횡으로 안으로부터 무너지는 발해

1. 전체 개요

가. 목적
ㅇ (체제 붕괴 분석) 선왕 대인수 사후 해태후와 해씨 일가의 권력 사유화로 인한 국정 농단과 민생 파탄 과정을 분석함.
ㅇ (권신 정치 고찰) 대현석 즉위 이후 권신 대건진의 반역과 폐불 사태를 집중 조명함.
ㅇ (내적 원인 규명) 이를 통해 발해가 중흥기 이후 외척과 권신의 전횡으로 인해 국가 시스템이 내부로부터 붕괴해 가는 근본 원인을 고찰하고자 함.

나. 시대적 및 공간적 배경
ㅇ (시대적 배경) 대체로 818년(무술년) 선왕 대인수 치세 말기부터 871년(신묘년) 대현석 즉위 후 10년 무렵까지의 시기임. 발해 내부에서는 대이진·대건황·대현석으로 이어지는 황위 계승과 해태후 섭정, 대건진의 비대화가 이어지고, 당은 874년부터 일어난 황소의 난으로 크게 흔들리며, 신라도 후기 왕실의 왕위 다툼과 살육으로 약화되어 가는 시기임. 북방에서는 거란이 위구르의 지배에서 벗어나 점차 세력을 키우고 있었음.
ㅇ (공간적 배경) 주요 무대는 발해 황궁과 도성, 지방 민란 지역, 서쪽 변경, 그리고 덕산대사·의명대사가 머무는 도성 인근의 불교 사찰임.

다. 핵심 요지
ㅇ (중흥 이후 황실 붕괴) 대인수가 중흥의 기틀을 다졌으나, 그가 죽자 곧바로 황실은 해태후와 해씨 일가의 권력 사유화에 휘둘리기 시작함.
ㅇ (해태후 체제의 실상) 해태후는 국정보다 자신의 권력 유지와 확장에 집착하였고, 해지량은 계략으로, 해무량은 폭력과 수탈로 이를 떠받치며 국가 질서를 무너뜨림.
ㅇ (후반부의 추락) 해태후 체제가 약해진 뒤에도 발해는 회복되지 못하고, 대현석 즉위 이후에는 대건진이 황제 권위를 능가하며 왕권 약화가 더 심해짐.

2. 주요 내용 전개

가. 대인수 말기의 수습과 마지막 업적
ㅇ (대창해의 반란) 대창해는 황실 질서를 뒤흔들고 태자 대신덕의 죽음까지 불러온 반란 세력의 중심 인물임. 대인수는 이를 가까스로 수습하였으나 황실 내부에는 깊은 상처가 남음.
ㅇ (발해 문자와 자존의 정비) 대인수는 발해 문자 정음 23자를 정비·보급하며 독자 문명국의 기틀을 세우려 하였고, 당을 상대로도 해동성국 발해의 자존을 굽히지 않음.
ㅇ (중흥 군주의 최후) 그러나 대인수가 눈을 감자, 그가 세운 질서는 예상보다 빠르게 흔들리기 시작함.

나. 대이진 즉위와 해태후 체제의 형성
ㅇ (어린 황제와 섭정의 시작) 대인수 사후 어린 대이진이 즉위하나, 실권은 곧 어머니 해태후에게 넘어감.
ㅇ (권력의 사유화) 해태후는 해지량·해무량 등 친정 세력을 앞세워 조정을 장악함.
ㅇ (체제의 지속) 해태후 체제는 대이진 때에 그치지 않고 뒤이은 아우 대건황 시기까지 이어지며, 황실과 조정을 장기간 거머쥠.
ㅇ (황실 내부 암투) 후궁과 측근, 외척이 얽힌 황궁 내부의 암투도 계속되어 황실 질서는 더욱 불안정해짐.

다. 해지량·해무량의 전횡과 민생 파탄
ㅇ (해지량의 책략과 해무량의 폭력) 해지량은 계략과 참소, 인사 조작으로 권력을 설계하는 모사꾼이고, 해무량은 높은 지위에 올라 무식한 힘과 폭력, 위세로 권력을 휘두르는 인물로 기능함.
ㅇ (해무량의 범죄적 전횡) 해무량은 백성의 고혈을 짜내어 재물을 모으고, 감찰어사 고덕술을 살해하고, 거짓 상소와 조작으로 자신의 죄를 덮으려 함.
ㅇ (민란과 봉기) 대이진 집권기에는 해태후와 해씨 일가의 폭정으로 지방 민란과 봉기가 잇따르고, 민심은 급속히 이반함.
ㅇ (염군 초모와 재난의 확대) 해무량은 염군을 길러 군사를 모으고 서쪽 군사들까지 끌어들이나, 이 과정은 오히려 역질을 퍼뜨리고 사회 전체의 혼란을 더 키움.
ㅇ (권력 내부 숙청) 해지량과 해무량은 사촌지간으로 함께 해태후 체제를 떠받치나, 끝내 해지량이 계산 끝에 해무량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흘러감.

라. 태사 신작과 충신들의 고투, 그리고 한계
ㅇ (상황 인식) 태사 신작은 해태후 체제와 해지량·해무량의 술수를 꿰뚫어 보고 있었으며, 조정이 어떤 방향으로 썩어 가는지도 알고 있었음.
ㅇ (민란 국면의 정치적 한계) 그러나 그는 민란 수습 과정에서 발해 백성끼리 서로 죽이는 상황을 피하려는 쪽으로 기울었고, 더 나아가 민란 편에 서서 해태후 체제를 붕괴시킬 가능성마저 끝내 택하지 못함.
ㅇ (결과적 책임) 뜻은 충정이었으나, 결과적으로는 해태후 체제와 권신 구조를 더 오래 살려 두었고, 더 많은 백성이 더 오랜 기간 고통을 겪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움.

마. 해태후 체제의 균열과 뒤늦은 변화
ㅇ (해태후 암살 시도) 해태후를 암살하려는 시도가 두 차례 이어졌다는 점은, 해태후 체제가 이미 조정 안팎에서 심각한 원망과 반발을 사고 있었음을 보여줌.
ㅇ (황실 후궁 암투의 심화) 황궁 안에서는 후궁과 측근, 외척이 얽힌 암투가 노골화되고, 총애와 질투, 의심과 참소가 뒤엉키며 황실 내부 질서를 더 깊이 무너뜨림. 이는 발해 후반의 혼란이 황궁 안쪽에서부터 썩어 들어갔음을 드러냄.
ㅇ (늦은 회한) 덕산대사와 의명대사의 질책 이후 해태후는 비로소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는 기미를 보이나, 이미 나라가 깊이 병든 뒤였기에 국정을 근본적으로 회복시키지는 못함.

바. 대건황 이후 황실 재편과 대현석·대건진 국면
ㅇ (대건황 집권과 황제 권위의 약화) 대건황이 황위에 오르나 해태후 체제의 후유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황실은 더 이상 선대 대인수 때와 같은 장악력을 보여주지 못함. 이 시기 발해는 황제가 정국을 이끄는 나라라기보다 황제 권위가 급속히 약화된 나라의 모습을 드러냄.
ㅇ (대현석 즉위 이후의 권력 재편) 대현석 즉위 이후에도 왕권은 안정되지 못하고, 권신과 대신들이 황제 위에서 실권을 다투는 국면으로 기울어 감.
ㅇ (대건진 권력의 비대화) 이후 대건진은 스스로 건지국사 위에 오르고, 황제 위에서 정국을 좌우하는 존재로 군림하며 황제 권위를 무력화시킴.
ㅇ (고재정의 반란) 대내상 고재정은 대현석 즉위 이후 비대해진 대건진을 제거하고 대현석까지 주살하여 자신이 황제 위에 서려는 반란을 꾀함.
ㅇ (대건진 반란부의 전개) 대건진은 자기 세력을 직접 규합하고 반대 세력을 제거하며 끝내 황제를 압도하는 방향으로 나아감. 이 과정에서 발해 조정은 황제 중심 질서를 완전히 잃고 권신이 국정을 농락하는 단계로 추락함.
ㅇ (폐불과 도덕 질서의 붕괴) 대건진은 끝내 덕산대사와 의명대사를 태워 죽이고 불교까지 탄압하며, 발해 후반 정치가 양심과 도덕, 충언까지 견디지 못하는 단계로 추락했음을 보여줌.
ㅇ (국제정세와 발해의 불안한 존속) 당은 황소의 난으로 크게 흔들리고, 신라도 후기 왕실의 왕위 다툼과 살육으로 약화되고 있었음. 발해는 이런 주변의 불안정 덕에 곧바로 무너지지는 않았으나, 북방에서는 거란이 위구르의 지배에서 벗어나 점차 세력을 키우고 있어 더 큰 위협이 다가오고 있었음.

3. 인물 및 통치 평가

가. 대인수
ㅇ (중흥 군주의 위상) 대인수는 반란을 수습하고 문자와 체제를 정비하며 발해의 국력과 자존을 다시 세우려 한 군주임.
ㅇ (유산의 취약성) 그러나 그의 유산은 예상보다 단단하지 못했고, 그가 떠나자 곧바로 외척 정치와 황실 혼란이 다시 고개를 듦.

나. 대이진·대건황
ㅇ (체제의 희생양) 대이진과 대건황은 모두 황위에 올랐으나, 해태후 체제 아래에서 황제 중심의 통치력을 온전히 세우지 못한 인물들임. 두 사람은 발해 후반 외척 정치가 황제를 어떻게 무력화하는가를 보여주는 체제의 희생양으로 볼 수 있음.

다. 해태후
ㅇ (권력 사유화의 책임자) 해태후는 황실과 국가를 안정시키기보다 자신의 권력을 사유화하려 하였고, 이를 위해 친정 세력인 해지량·해무량 등을 중용하여 조정 전체를 자기 사람들 중심으로 재편함.
ㅇ (말년의 처리와 한계) 후반부에 이르면 대현석 등이 해태후를 참하려는 국면에서 의명선사가 해태후를 비구니로 만들어 데리고 가며 생을 마치게 하고, 이는 해태후가 끝내 정치의 중심에서 물러나긴 하였으나 그가 남긴 폐단까지 지워 주지는 못함.

라. 해지량과 해무량
ㅇ (해지량의 성격) 해지량은 해태후 체제의 실질적 모사꾼으로, 계략과 참소, 인사 조작과 권력 설계를 통해 조정을 흔드는 인물임.
ㅇ (해무량의 성격) 해무량은 해지량과 달리 거칠고 무식하며, 수탈과 폭력, 위세로 권력을 행사하는 인물임.
ㅇ (사촌 권력의 본질) 두 사람은 사촌지간으로 함께 해태후 체제를 떠받치나, 끝내 해지량이 계산 끝에 해무량까지 제거하는 방향으로 흘러감.

마. 태사 신작
ㅇ (충신의 표상) 태사 신작은 끝까지 나라의 근본을 생각하는 충신으로 그려짐.
ㅇ (비판 가능한 충신) 그러나 민란 국면에서 해태후 체제를 무너뜨릴 가능성보다 유혈 확대를 막는 쪽을 택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더 긴 혼란을 막지 못한 한계를 드러냄.

바. 대현석·대건진
ㅇ (대현석의 한계) 대현석은 황제 자리에 올랐으나, 이미 약해진 왕권과 복잡해진 조정 구도를 온전히 장악하지 못하는 인물로 보임.
ㅇ (대건진의 의미) 대건진은 황제 권위를 능가하는 권세를 쥔 권신으로 비대해지며, 황제 위에서 정국을 좌우하는 존재로 군림하며 황제 권위를 무력화시킴.
ㅇ (권신 정치의 극점) 그는 스스로 건지국사 위에 오르고 반대 세력을 제거하며, 끝내 사찰 방화와 폐불로까지 나아가 권신 정치의 극단을 보여줌.

사. 덕산대사·의명대사
ㅇ (양심적 인물) 덕산대사와 의명대사는 해태후와 황실의 탐욕을 힐난하고 나라를 바로 세우려 노력하는 양심적인 인물임.
ㅇ (끝내 제거되는 양심) 대건진이 두 사람을 태워 죽이고 폐불로 나아가는 대목은, 발해 후반 정치가 끝내 양심과 충언을 견디지 못하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줌.

4. 거시적 고찰 및 역사적 함의

가. 해태후 체제와 외척 정치의 구조적 폐단
ㅇ (노골적 권력 사유화) 해태후 체제의 본질은 권력을 공적으로 운영한 것이 아니라, 해태후가 자신의 권력을 지키고 넓히기 위해 친정 세력을 앞세워 국가를 사유화한 데 있음.
ㅇ (구조적 폐단) 외척 세력이 공권력을 사적으로 사용하고 국정을 제 사람들 중심으로 운영하는 순간, 황제 권위는 약화되고 정치 질서는 빠르게 무너짐.

나. 작가 서사의 모순과 민생 묘사의 충돌
ㅇ (서사의 충돌) 작품은 앞에서 해무량의 수탈, 고덕술 살해, 지방 민란, 역질 창궐을 통해 민생 파탄을 선명하게 보여주나, 뒤로 가면 백성의 칭송과 태평성대 분위기를 덧붙이며 같은 권 안에서 서로 맞지 않는 서술을 내놓음.
ㅇ (작가의 모순된 처리) 특히 작가는 해태후를 도량이 넓은 여인처럼 보이게 하려 하지만, 실제 서사에서는 반대 세력에게 없는 죄까지 만들어 물감옥에 집어넣고 모진 고문을 자행하는 악독한 인물로 나타남. 이런 인물을 다시 선정의 주체처럼 덧칠하는 방식은 작품 내부 논리를 스스로 흔드는 모순된 처리로 보임.

다. 충신의 명분과 정치적 실기의 문제
ㅇ (선의의 한계) 태사 신작은 충정과 명분에서는 분명한 강점을 지닌 인물임.
ㅇ (정치적 실기) 그러나 민란 국면에서 더 강한 결단을 내리지 못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해태후 체제와 권신 구조를 더 오래 존속하게 만들었음.
ㅇ (민생 파탄과의 연결) 이 대목은 선비적 명분론이 현실 정치에서는 오히려 더 긴 혼란과 더 큰 민생 피해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줌.

라. 국제정세와 발해 존속의 조건
ㅇ (동시대의 불안정) 당은 황소의 난으로 크게 흔들리고 있었고, 신라도 후기 왕실 내부의 왕위 쟁탈과 살육으로 국력이 약해지고 있었음.
ㅇ (발해 존속의 배경) 발해는 내부가 크게 흔들리면서도 주변국들 역시 안정되지 못했기 때문에 곧바로 무너지지는 않음.
ㅇ (거란의 성장) 그러나 북방에서는 거란이 위구르 지배에서 벗어나 점차 세력을 키우고 있었고, 이는 발해가 훗날 더 거센 외부 압박에 직면할 수밖에 없음을 예고함.

5. 종합 결론

가. 9권의 중심 흐름
ㅇ (중흥의 끝과 붕괴의 시작) 9권은 대인수가 이룬 중흥의 마지막 빛과, 그 뒤를 이은 황실 혼란·외척 정치·민생 파탄이 어떻게 발해를 다시 어둠으로 끌고 가는지를 보여주는 권임.

나. 가장 중요한 인물 축
ㅇ (해태후와 대건진) 해태후는 발해를 병들게 한 외척 정치의 중심이고, 대건진은 그 병든 질서 위에서 황제보다 더 큰 힘을 쥐는 권신 정치의 완성형임. 태사 신작과 덕산대사·의명대사는 이를 막으려는 양심의 축으로 서나 끝내 구조를 뒤집지 못함.

다. 최종 판단
ㅇ (발해의 비극)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발해의 약화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외침의 결과가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황실 내부의 욕망과 외척·권신 정치, 후궁과 측근의 암투, 충신 숙청, 민심 이반과 왕권 약화 속에서 안쪽부터 무너지고 있었다는 점임.
ㅇ (핵심 소회) 결국 9권은 대인수 이후 발해가 왜 다시 강해지지 못했는지, 왜 황실 내부에서부터 국운이 기울었는지, 그리고 왜 훗날 더 거센 외부 세력 앞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길고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권이라 할 수 있음.
```존명(尊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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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 서한집 ㅣ 상응 2
다자이 오사무 지음, 정수윤 옮김 / 읻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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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보고] 『다자이 오사무 서한집』 – 한심함과 천재성 사이를 오간 인간 다자이

1. 작품 개요

가. (도서 정보) 『다자이 오사무 서한집』은 다자이 오사무가 남긴 편지를 엮은 책으로, 읻다 출판사에서 2020년 10월 19일 출간됨.

나. (저자 소개) 다자이 오사무는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사양』과 『인간 실격』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자기혐오와 부끄러움, 인간관계의 불안을 작품 안에 강하게 드러낸 작가임.

다. (편지의 의미) 편지는 소설보다 직접적인 사적 기록으로, 작품 속 인물이 아니라 실제 생활 속 다자이 오사무를 마주하게 함.

라. (핵심 문제의식) 이 책은 문학과 생활 사이의 간극을 보여 줌. 생활인 다자이는 무책임하고 의존적이었지만, 작가 다자이는 작품을 완성하고 출간하는 일에 누구보다 열성적이었음.

마. (독서 방향) 따라서 이 책은 다자이를 우울한 천재로만 보지 않고, 한심함과 우스움, 절박함과 재능이 뒤섞인 인간으로 살펴보게 함.

2. 생활 태도와 경제 관념

가. (만성적 궁핍) 다자이는 생활비, 결혼 비용, 요양비, 출판 광고비 등을 이유로 지인들에게 반복적으로 돈을 빌림.

나. (상환 지연) 빌린 돈을 제때 갚지 못하면서도 감정적 호소나 우정, 은혜 같은 말로 상황을 넘기려 함.

다. (생활 무책임) 술을 사주겠다고 하고도 지갑을 가져오지 않거나, 주변 사람에게 비용을 떠넘기는 모습이 반복됨.

라. (기행적 태도) 이런 행동은 단순한 가난보다, 생활을 정면으로 감당하지 못하고 주변 관계에 기대려는 태도에 가까움.

3. 가정생활과 인간관계

가. (가사 부담 회피) 아내가 가사와 육아의 어려움을 호소해도, 다자이는 자신의 식사와 편의를 먼저 요구하는 모습을 보임.

나. (능청스러운 응수) 아내가 재촉받는 기분을 묻자 “나는 기분이 아주 좋다”는 식으로 받아넘기며, 갈등을 진지하게 마주하지 않음.

다. (관계 의존) 지인들에게는 돈과 술, 출판 도움을 계속 요청하면서도, 자신을 미워하지 말아 달라는 식의 정서적 의존을 반복함.

라. (인간적 모순) 남에게 폐를 끼치면서도 미움받는 것은 견디지 못하는 태도가 서한 곳곳에서 확인됨.

4. 병, 불안, 자기파괴

가. (건강 악화) 다자이는 병과 술, 약물 문제를 겪으며 생활과 창작 모두에서 불안정한 상태를 보임.

나. (진단 부정) 의사의 진단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방식으로 해석하며, 자신의 상태를 축소하거나 회피하려 함.

다. (자살 시도와 죄책감) 자살 시도와 실패 경험은 이후 편지 속에서 부끄러움과 불안, 자기혐오의 형태로 계속 나타남.

라. (광대적 자기방어) 그는 고통을 그대로 드러내기보다 농담과 과장, 익살로 감추는 경우가 많았음.

5. 『만년』 출간과 문학적 집착

가. (작품 자부심) 다자이는 『만년』을 부끄럽지 않은 작품으로 만들고자 했고, 원고와 편집, 장정에 강한 관심을 보임.

나. (출판 실무 개입) 책 가격과 표지, 광고 문구와 홍보 방식까지 직접 의견을 내며 출간 과정 전반에 관여함.

다. (자기 연출) 지인들에게 자신을 “천재”처럼 소개하는 광고 문구를 요구하는 등 과장된 자기 연출도 서슴지 않음.

라. (문학과 생활의 괴리) 생활에서는 무책임하고 의존적이었지만, 문학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열성적이었음.

마. (문학적 진심) 이러한 괴리는 다자이 문학의 긴장감을 만들어 내며, 그의 소설과 실제 삶을 함께 살펴보게 하는 중요한 지점임.

6. 아쿠타가와상 집착과 낙선

가. (수상 기대) 다자이는 아쿠타가와상을 단순한 문학상이 아니라, 경제적 구원과 문단 인정의 기회로 여김.

나. (비굴한 호소) 상을 받기 위해 심사위원에게 간절하고 비굴한 편지를 보내며 자신의 절박한 상황을 드러냄.

다. (낙선 후 분노) 수상에 실패하자 심사위원과 문단에 대한 원망을 감추지 못하고 공개적 비난에 가까운 반응을 보임.

라. (인정 욕구) 이 과정은 다자이가 문학적 자부심만큼이나 타인의 인정과 성공을 강하게 원했다는 점을 보여 줌.

마. (시대적 맥락) 아쿠타가와상 집착과 경제적 곤궁은 개인적 결함만이 아니라, 당시 문단 구조와 작가의 생계 불안과도 연결됨.

7. ‘일·일·일’ 정신과 직업관

가. (현실 자각) 반복되는 구걸과 생활 파탄 속에서, 다자이는 결국 일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음.

나. (노동의 강조) “일·일·일”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돈을 빌리지 않고 살아가기 위한 절박한 결심에 가까움.

다. (불완전한 실천) 다자이는 자주 흔들렸지만, 적어도 글을 쓰는 일만큼은 끝까지 붙들려 했음.

8. 서한집을 통해 본 다자이 오사무

가. (우울의 이면) 『인간 실격』의 절망적인 이미지와 달리, 서한집 속 다자이는 웃기고 능청스럽고 때로는 뻔뻔한 사람으로 다가옴.

나. (비극과 희극) 그의 삶은 자살과 병, 궁핍 같은 비극으로 가득하지만, 편지 속 말투와 행동은 종종 희극처럼 보임.

다. (불편한 매력) 그는 돈을 빌리고 술값을 떠넘기며 주변을 지치게 했지만, 농담과 능청으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힘도 함께 지니고 있었음.

라. (모순적 존재) 그는 주변을 힘들게 하면서도 웃음을 주고, 도움을 구하면서도 애정을 요구하는 모순적인 사람이었음.

마. (인간적 입체성) 이 서한집은 다자이를 위대한 작가로만 보게 하지 않고, 결함 많고 우스꽝스럽고 절박한 한 인간으로 바라보게 함.

9. 결론, 소회

가. (문학과 생활의 간극) 『다자이 오사무 서한집』은 단순히 한 작가의 편지를 모은 책이 아니라, 문학과 생활 사이의 간극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기록임.

나. (인간 오사무) 편지 속 다자이는 무책임하고 뻔뻔한 생활인이면서도, 문학 앞에서는 누구보다 열성적이고 진지한 태도를 견지함.

다. (문학적 진심) 생활에서는 자주 무너지고 주변에 기대었지만, 작품을 완성하고 출간하는 일에는 끝까지 진지한 태도를 보였음.

라. (입체적 인간) 이 책을 읽고 나면 다자이를 더 이상 『인간 실격』의 우울한 천재로만 규정하기 어려움. 결함과 재능, 희극성과 비극성이 한 사람 안에서 어떻게 뒤섞일 수 있는지를 확인하게 됨.

마. (종합 소회) 『다자이 오사무 서한집』은 문학사적 가치뿐 아니라, 인간의 모순과 입체성을 드러내는 자료임. 다자이라는 사람의 한심함과 우스꽝스러움, 절박함과 재능을 가장 노골적으로 보여 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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