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형무소 개소(開所) 백주년 기념 개정증보판에 부쳐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 등 우리 근현대사의 아픈 기억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는 서대문형무소는, 근대적 시설을 갖춘 한국 최초의 감옥으로 1908년에 문을 열어 올해로 개소백주년을 맞았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이 책을 다시 발간하여, 우리 근현대사의 그늘이 짙게 드리웠던 이 모순과 역설의 장소를 기억하고자 한다.
이 책은 1988년 ‘열화당 사진문고 23‘ 으로 발행했던 ‘서대문형무소」의 개정증보판으로, 판형을 확대하고 기록적 가치가 뛰어난 사진과 도면 자료 등을 추가했으며, 독립지사 세 분의 글을 덧붙여 서대문형무소에 관해 다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자료 사용에 협조해 주신 서대문형무소역사관과 국립중앙도서관에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2008년 1월편집자 - P5

초판 서문
죄짓지 않고는 들어가 볼 수 없었던 서대문형무소, 우리는 1988년 1월 8일 특별한 기회로 그 고통의 세월에 찌든 모습을 대할 수 있었다. 빈 감방과 사형장에 남아 있던 수감자들의 한(恨)과 흔적은 1월의 맹추위보다 더 우리의 마음을 얼어붙게 했다. 한정된시간 내에서 굴절 많은 우리 역사의 현장을 제대로 기록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이렇게라도 전할 수 있게 된 것을 우리의 행운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1988년 8월
김동현(金東鉉) 민경원(閔庚遠) - P5

서대문형무소의 기억
리영희(李禧)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나와 서대문형무소(구치소)와의 만남은 무슨 잘못된 인연인지 언제나영하 십도 이하의 혹한에서였다. 그런 탓인지 무악재 고갯마루에 빗겨서 있는 우중충하고 음산한 서대문구 현저동 101번지를 회상하면 먼저초대면의 그 추위부터 생각난다. 하필이면 내가 갈 때마다 그렇게 추웠는지.. 세 번 모두 다 그랬다. - P9

박정희 시대에 두 번, 전두환 시대에 한 번. 박정희 시대인 1964년과1977년, 전두환 정권 때인 1982년. 해방 후 현대사에서 아마도 극악의시대로 역사에 기록될 그 이십 년 사이에 세 번이나 그들에 의해서 묶여들어갔으니, 적은 횟수가 아니다. 생각만 조금 고쳐 먹으면 태평성세를구가하면서 영화와 입신도 웬만큼 누릴 수 있었을 터인데, 생각하면 나도 꽤나 우직한 삶을 살아온 셈이다. - P9

1964년 11월의 첫 대면은 조선일보 정치부 외교담당 기자로서였다. - P9

한참 깊은 잠에 취해 있던 새벽에, 대문이 부서지라고 두들기는 소리에 놀라 잠을 깼다. 그러고는 영문도 모르는 채 중앙정보부로 끌려갔고,
검찰에 넘어간 며칠 후에 서대문형무소로 옮겨졌다. 북한이 대한민국과 동격으로 유엔에 초대되거나 동시가입이 제안되는 따위의 이야기는, 비록 그것이 국제회의에서의 이야기일지라도 국내법으로 ‘적성국가·단체 고무찬양‘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 악명 높은 ‘반공법 제4조 2항‘이다. - P10

대나무를 아무렇게나 쪼개서 만든 젓가락은 굵기와 길이가 천차만별이었다. 얼마나 많은 손때가 묻었는지, 또 얼마나 많은 입이 빨고 지나갔는지, 끝에서 끝까지가 숯덩이 같았다. 아무렇게나 마구 생긴 시커먼젓가락은 병균 덩어리 같았다. 순간 소름이 끼쳤다. ‘이것을 빨아먹으라니! 이제 이 순간부터 인간이라는 존재는 말살되고 동물 취급을 받게 되는가 보구!‘ 라는 생각이 들었다. - P10

젓가락질 몇 번으로 자기 몫의 콩밥 한 덩어리를 삼켜 버리고 나를 지켜보고 있던 옆의 젊은이가 다급히 말을 건넨다. "안 먹겠어요? 안 먹겠으면 나 주세요." 죄수복을 입는 그 순간부터 연령의 차이도 밖에서 무엇을 했는가의 구별도 없다. 배를 채우는 동물적 본능만이 행위의 규범이 된다. 나는 말없이 ‘가다밥‘과 젓가락을 옆으로 밀어 버리고 눈을 감았다. 영하 십사 도의 추위 속에서 온몸이 계속 떨렸다. 이제부터 저런젓가락을 빨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니 비로소 내 몸이 교도소안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 실감났다. - P11

두번째의 대면은 1977년 겨울. 날씨도 첫번째와 마찬가지로 영하 십도이하인 11월 23일 아침. 사실 나는 첫번째의 서대문형무소와의 대면이 11월 23일 밤중이었다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려서 해마다 그날이 다가오면 공연히 긴장하고 안절부절못하는 습관이 생겼었다. - P11

며칠 몇 밤을 지새우면서 추궁하는 심문은 나의 저서 『전환시대의 논리』 『8억인과의 대화』 『우상과 이성』의 내용에 관해서였다. 황당무계하고 한심스러운 심문과 대화가 끝나자 그들은 나를 검은 지프에 태우고무악재로 향했다. 뒷자리에 수갑을 차고 앉아 있는 나의 뇌리에 서대문형무소와의 첫 대면의 밤에 보았던 그 젓가락의 소름끼치는 모양이 떠올랐다. 그리고 혼자 중얼거렸다. "아! 또 동물이 되는구나!‘ - P12

그 뒤에 그 검사실에서 벌어진 일과, 나에게 일어난 내면적 경험은 십일 년의 세월이 흘러간 지금도 회상하고 싶지가 않을 정도로 가슴 아픈일이었다. 병석에 누워 계시던 어머니는 "아들이 어디로 갔느냐?" "왜돌아오지 않느냐?"는 말만을 되뇌시다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어머니연세 여든여섯이었다. - P13

전날 저녁, 나의 비보를 면회시간에 전해  들은 시인 김지하(金河)가몰래 소제 (교도소 안에서 잡일을 맡아 하는 기결수)를 시켜서 보내온알사탕 한 봉지를 그 옆에 바쳤다. 어머니가 누워 계실 집이 있는 성동구 화양동이 정확히 어느 방향인지 분간할 수는 없었지만, 어림짐작으로 대충 방향을 잡아 젯상을 차렸다. 그리고 영원한 불효자, 죄인으로서 제사를 지냈다. - P13

형태야 어쨌든, 적어도 그 혹독한 일제 식민지 감옥에서도 스팀난방을 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유물이었다. 태평양전쟁 시기의 물자결핍 상태에서는 아마 버려진상태로 있었으리라. 그렇지만 ‘불령 조선인‘을 처박아 넣었던 서대문형무소의 복도에서 일제의 스팀시설을 보았을 때 나는 놀라움을 금할 수가없었다. ‘그래? 일제 식민지 시대에도 스팀난방을 해주었다고?
1977년 두번째로 서대문형무소(구치소)를 대면했을 때는 그것조차뜯기고 없었다. 서른 개의 감방이 한 줄로 배열돼 있는 긴 복도의 중앙부에 십구공탄 두 개를 때는 난로 하나가 있었을 뿐이었다. - P15

악랄한 일제식민 통치배들조차 스팀시설을 했었는데, 해방된 국가의 정권이 자기국민 동포를 수용한 교도소에 현대식 스팀시설을 가설하지는 못할망정일제가 남기고 간 스팀시설을 뜯어 버린 것에 대해서 분노가 치밀었다.
"이게 누구의 정부인가. 차라리 일제보다도 못한 정권이 아닌가. 나는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감정과 신념으로 박정희 정권과 그 뒤의정권을 대하게 되었다. - P15

여름이면 낮에도 컴컴한 이 관 속 방바닥에서 ‘식사‘라는 것을 차려놓고 먹을라치면, 막힘이 없이 통해 있는 변소의 구멍에서 누런 구더기떼가 줄줄이 기어 나와 더불어 생존하기를 요구합니다. 처음 며칠은 음식이 넘어가질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처음 며칠뿐이지요. 안 먹고야살 수 있습니까? 그래서 며칠이 지나면 구더기떼를 빗자루로 쓸어내면서 ‘맛있게‘ 먹어야 합니다. - P16

그만하면 아시겠어요? 시체를 넣는 관이 아니라, 지난 세월, 비인간적인 독재정권 아래서 수천, 수만의 정치수, 사상수, 양심수, 확신수들이 처넣어져서 신음해야 했던 이 나라의 교도소와 형무소의 감방, 독방의 모습입니다. 이 시간에도 수없이 많은 이 나라의 자랑스러운 꽃봉오리들이 그런 관 속에서 그렇게 시들어 가고 있습니다. - P17

해방 이후 역대 독재정권의 법복을 입은 분들이, 법정의 단상과 단하에서 ‘구형 칠년‘ 하면 ‘징역 오년‘ 따위의 소리를 아무런 감동도 없이주고받은 결과로 그들은 그 속에서 살거나 죽어야 했고, 지금도 그렇게살고 있습니다. 이 관은 21세기를 바라보는 세계 문명사회의 가려진 치부입니다. 분명 그래요. - P17

나는 어제까지 독재체제의 법복을 입었었거나, 지금도 입고 있는 분들에게 한 가지 간절히 권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육법전서(六法典書)라는 메마른 책을 잠시 덮어 놓고  그 관 속에 한번 들어가 보시라는말입니다. 많은 고생을 해서 사법고시라는 시험에 합격한 영광을 누리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일 년은 너무 길고, 단 하루만이라도 그 관 속에서 살아 보십시오." - P17

그래서 나는 한 가지 건의를 드리고 싶습니다. 검사와 판사는 연수기간이나 임용 전후에 반드시 이 관 속에, 또는 관 속이 싫다면 냉장고 속에 단 하루만이라도 들어갔다 나오는 것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육법전서의 국가보안법이나 반공법이나 집회시위법이니 하는 법조문의 활자보다도 ‘인간‘의 얼굴이 조금은 크게 보이겠지요.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이 나라 사법부의 권위도 서고, 교도소나 형무소가‘사람‘을  잡아넣는 곳이 될 것입니다. - P18

그 서대문형무소도 팔십 년 가까운 역사와 함께 문을 닫았다. 조금은사람을 사람으로 취급하는 교도소로 탈바꿈할 것인지.... - P18

현저동(峴洞) 101번지,
서대문형무소는 암울했던 우리의 현대사를증언해 주는 살아 있는 역사의 현장이요,
민족저항사와 민족수난사 그리고민주화의 열망이 농도 짙게 집약된 곳이다. - P23

이곳에 수용되었던 사람들은서울형사지법에 계류 중인 미결수와서울고법 관내의 미확정 무기수, 사형수들로, 우리나라의  큰 형사사건 연루자는거의 모두가 거쳐 가며 수용되어 왔다.개소(開所) 칠십구 년 동안 줄잡아삼십오만여 명이 이곳에 어떤 형태로든한(恨)을 묻었다. - P32

일제시대에 지은보안과 건물의지하감방은 그 시대의애국지사들이주로 애용(?)했다.
문 안쪽의 ‘+‘자표시가 이색적이다. - P41

한 사람이 겨우발을 뻗고 누울 수있을 만큼의 공간만주어진 독방.
양동이는변기로 사용했다. - P49

여사 입구.
‘제한구역, 공무 외출입금지‘라는경고문과 스마일표지가 이곳이구내의 이색지대임을나타내 준다. - P50

감방의 마룻바닥에새겨져 있는 고누판과장기판. 감방은침실 겸 거실이면서 또오락실이기도 했다. - P59

여사 감방 안 화장실. 벽에 정부미 부대로 만든, 생리대를 넣는 주머니가 걸려 있다. - P61

외국인 감방 안 화장실.
번듯한(?) 창문이 달려 있고,
좌변기가 설치돼 있다.
이는 두 개의 감방 사이에 있어 이실(室)공용이다. - P62

철조망까지 쳐 있는 담장 안에 펌프와 집수통이 마련돼 있는 것으로 보아  여사 수감자들의 빨래터였던 듯하다. - P65

서대문형무소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것이 사형장이다. 구치소 안 재소자 운동장의담벽을 끼고 신작로를 따라가다가 속칭
‘지옥의 삼정목(三丁目)‘이라는 삼거리에서교도관들이 사형수를 오른쪽으로 인도하면,
예의 그 죽음의 집에 도달한다. - P68

지금은 열려 있지만, 그 닫힌 마룻바닥 위 작은 의자에사형수가 앉혀지면 목에 밧줄이 감기고 커튼이 닫힌다. - P75

입을 벌린 교수대 앞에 사형수가 최후로 앉던 의자가 놓여 있다.
왼쪽은 사체를 점검하기 위해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 입구. - P77

‘덜커덕‘, 교수대 마룻바닥이 내려앉으면 목에 밧줄이 걸린사형수의 몸은 아래로 곤두박질친다. - P79

사형이 집행된 사형수의 몸이 이곳에 놓이면, 검시의(醫)가 내려와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한다. - P81

반 평쯤 되는 교수대 마룻바닥이 내려앉을 때의 충격과 소음을 줄이기 위해지하실 벽에 타이어를 부착해 놓았다. - P82

교수대 뒤편에 장치돼있는 사형집행 레버.
이것을 당기면사형수가 앉아 있는마룻바닥이내려앉는다. - P84

사형집행자와 사형수는 판자벽을 사이에  두고 생(生)과 사(死)를 달리한다. - P85

사형수는 주검이 된 다음에라야 이 계단을 통해 바깥 세상으로나간다. - P89

뒤편에서 내려다본사형장의 전경.
멀리 인왕산이 보인다. - P92

숱한 민족의 수난사를 이젠 안으로만 간직한 채, 서대문시대 그 칠십구 년의 역사를 마감한 서대문형무소는 오늘,
아직은 철문에 빗장을 지르고 텅 빈 채로 침묵에 싸여 얼룩진 벽돌담과 감시탑만으로 말없이 오가는 시민들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 P112

소내(內) 중앙에 위치한 남9-11사(오른쪽부터). 이들은 서울시가역사적 유물로 보존하고 있는 수감동의 대표적인 건물이다. - P116

물은 없어도 성(城)의 해자와 같은 역할을 한 이중 담벽.
왼편의 격벽장을 끼고 가면 속칭 ‘지옥의 삼정목(丁目)‘이 나온다.
사진의 가운데 미루나무 있는 곳이 사형장이다. - P118

"나는 이천이백이십삼번
죄인의 옷을 걸치고
가슴에 패를 차고
이름높은 서대문형무소
제삼동 이호실
북편 독방에 홀로 앉아
‘네가 광섭이냐‘고 혼잣말로 물어보았다."

시인 김광섭(金燮)이 일제시대 붉은 벽돌담  안 독방에 웅크리고 앉아서도 시심(心)을 가다듬었던 ‘이름높은 서대문형무소.‘ 그곳은일제(日帝)의 침략사와 궤를 같이하며 한민족의 수난을 깊숙이 응축시켜 온, 민족사의 원(怨)과 한(恨)이 서리서리 똬리를 틀었던 환부(患部). - P121

현저동(峴洞) 101번지, 이름갈이를 여러 번 했으면서도 우리의 뇌리에 끝내 서대문형무소로 박혀 버릴 수밖에 없는, 근대적 시설을 갖춘한국 최초의 감옥. 그러기에 당연히 감옥의 대명사가 될 수밖에 없었던이 서대문형무소는 암울했던 우리의 현대사를 증언해 주는 살아 있는역사의 현장이요. 바로 민족저항사와 민족수난사 그리고 민주화의 열망이 농도 짙게 집약된 곳이기도 하다. - P121

우리의 주권을 반신불수로 만든 을사조약(乙巳)을 전후하여 감방의 태부족을 느낀 일제 괴뢰정부와 형정권(刑政權)까지 강탈한 일제통감부는 무악재 고개 아래, 서대문 밖 인왕산 기슭, 병풍처럼 금계산(金鶴山)을 북으로 둘러친 영천(靈泉)이라 일컫는 삼십여만 평 명당자리 금계동(金鶴洞)에 대규모의 신식 감옥을 짓기 시작, 고종(高宗)황제를 강제 퇴위시키고 순종(純宗) 황제가 등위한 1907년에 착공했다. 이것이 바로 서대문형무소다. - P123

서대문형무소의 위치와 수용능력에 관해선 전설 같은 얘기가 전해온다. 조선초의 명승(名僧) 무학대사(無學大師)가 무악재 위에서, 뒷날 감옥이 위치할 자리를 내려다보며 ‘명당 중의 명당이나 삼천 명의홀아비가 탄식할 곳‘이라고 했다는 예언이 그것이다. 어쨌든 오늘날의시설 대부분은 휴전 후 새로 복구된 것들로, 육이오 동란으로 일제시대의 시설은 구십 퍼센트가량이 소실되고 골조만 남았다. - P126

경기도 시흥으로 이전할 당시의 (1987년 11월) 규모는 육만여 평의부지에 연건평 팔천여 평의 여든 개 동, 삼천이백 명의 재소자를 동시에 수용할 수 있었다. 재소자가 가장 많았던 1969년에는 칠천여 명이수용돼 포화상태가 되자, 영등포구치소를 신설해 분가시키기도 했다. - P126

시대의 변천에 따라 온갖 계층이 고루 거쳐 가면서 그 모습도 각각 특색을 보였다. 일제시절에는 민족지도자, 독립운동가와 사상범이 많았고, 사일구, 오일륙 같은 변혁기에는 국회의원 등 정치인, 장·차관을비롯한 고위관리, 부정축재자로 몰린 기업인, 세상을 주름잡던 세도가, 군장성 등으로 붐볐고, 삼선개헌, 유신쿠데타, 십이륙, 십이십이,
오일칠 등의 격랑 속에서는 재야인사, 대학생 등 민주화를 외치는 운동권의 목소리가 넘쳐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살인강도 등 흉악범, 대형경제사범, 간첩에서 자잘한 잡범에 이르기까지 그 성분이 다양했다. - P127

전국이 의병항쟁에 휩싸이고 십삼도창의군(十三道倡義軍)이 서울탈환작전을 벌이자 당황한 일제가 초만원이 된 구식 감옥 대신 앞에서언급한 것처럼 거대한 현대식 감옥을 신축했으나 당장엔 쓰질 못했다.
군대 해산으로 의병이 늘고 고종 강제 퇴위에 대한 항일(抗日)의 민심이 흡흡한데, 조선 사람을 가두어 넣을 감옥을 크게 짓는다는 건 그민심에 불을 지르는 격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수년 동안 이 서대문감옥은 잡초와 더불어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 P127

최근 법무부도 당시의 상황을 단편적으로 수록한 간행물과 수감경험자, 전직교도관들의 증언을 토대로 교정사(敎正史)를 정리해 왔으나, 자료의 빈곤과 고증의 어려움으로 애를 태우고 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李承晩) 박사는 1898년 3월, 만민공동회 (萬民共同會) 사건으로 피검, 종신징역형을 선고받고 옛 경성감옥인 전옥서에 수감됐었다. 청년 이승만은 쌀창고를 개조한 이 감옥에서 『매일신문(每日新聞)』의 논설을 쓰거나 영한사전의 원고를 집필하다가 1904년 8월 9일 사면 석방되었다. 이 박사는 대통령 재임시였던 1954년과 1960년 두 차례 서대문형무소를 방문, 자신이 어릴 적에 감옥을 ‘복당(福堂)‘이라 부른 기억이 있다며 당시의 명칭인 서울형무소를 ‘서울복당‘이라 하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한다. 해방 직후에도이 박사는 환국하자마자 자신의 수감시절이 떠올라서인지 서대문형무소의 감방을 둘러보았다는 일화를 남겼다. 구한말의 의병장 허위 열사도 항일전을 벌이다 1908년 4월에 체포되어 옛 경성감옥에 갇혀 있다가 그 해 9월 27일 처형당했다. 새 경성감옥에서는 1909년 한해에만도 스무 명이나 되는 항일의병 지도자들이 사형에 처해지기도했다고 전해진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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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면관의 살인 ㅣ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박수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기면관의 살인』 등장인물 정리

1.기면관의 주인과 중심 인물

가.가게야마 이쓰시

ㅇ(기본 성격) 기면관의 현재 주인으로, 사람의 표정을 보고 감정을 읽고 읽히는 일에 강한 거부감과 공포를 가진 인물임.

ㅇ(가면의 사용) 자신은 ‘기도의 가면’을 쓰고, 자신을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가면을 쓰게 함. 이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표정과 얼굴을 차단하려는 규칙에 가까움.

ㅇ(모임의 주최자) ‘또 하나의 자신’을 찾기 위해 기면관에 여러 사람을 초대함. 이 모임이 작품 전체 사건의 출발점이 됨.

ㅇ(작품 속 역할) 기면관의 주인이자 사건의 중심에 놓인 인물임. 그의 죽음으로 보이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작품은 “누가 죽였는가”보다 “정말 누가 죽었는가”라는 문제로 옮겨감.

ㅇ(핵심 의미) 가게야마 이쓰시는 가면, 신원 확인, 또 하나의 자신이라는 작품의 핵심 장치를 한몸에 모은 인물임.

나.시시야 가도미

ㅇ(기본 성격) 관 시리즈의 탐정적 인물로, 사건을 차분히 관찰하고 논리적으로 추리하는 역할을 맡음.

ㅇ(작품 속 역할) 본래 초대받은 휴가 교스케 대신 기면관 모임에 참석함. 이 때문에 그는 처음부터 ‘자기 자신’이 아닌 타인의 자리에 들어가 있는 인물임.

ㅇ(가면과 위치) 대소의 가면을 배정받아 모임에 참여함. 이후 사건이 벌어지자 가면, 시신, 지문, 기면관 구조를 바탕으로 진상에 접근함.

ㅇ(핵심 의미) 시시야는 기면관 안에서 얼굴과 이름, 신원 확인이 흔들리는 상황을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탐정적 중심축임.

다.휴가 교스케

ㅇ(기본 성격) 시시야와 닮은 인물로, 본래 기면관 모임에 초대받은 사람임.

ㅇ(작품 속 역할)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직접 참석하지 못하고, 시시야에게 대신 기면관에 가달라고 부탁함.

ㅇ(핵심 의미) 휴가는 시시야가 기면관 사건에 들어가게 되는 계기를 제공하는 인물임. 동시에 ‘닮은 사람’, ‘또 하나의 자신’이라는 작품의 주제를 처음부터 드러내는 인물임.

2.기면관에 초대된 여섯 가면 손님

가.가면별 인물 대응

ㅇ(대소의 가면) 시시야 가도미

* 본래 초대받은 휴가 교스케를 대신해 모임에 참석한 인물임.

ㅇ(환희의 가면) 소마 사장

* S기획 사장으로, 기면관 모임에 참여한 인물임.

ㅇ(놀람의 가면) 오시타 텐쿠

* 마술사로, 눈속임과 착각이라는 작품 분위기와 연결되는 인물임.

ㅇ(탄식의 가면) 산테쓰 교수

* 고전 추리소설 속 괴인적 분위기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임.

ㅇ(오뇌의 가면) 미카엘

* 건축사이며, 기면관이라는 건축물의 구조적 의미와 연결되는 인물임.

ㅇ(분노의 가면) 야마 씨

* 효고현 경찰 출신으로, 전직 수사1과 형사였던 인물임.

나.여섯 가면 손님의 공통 기능

ㅇ(가면의 부여) 여섯 손님은 각각 다른 가면을 쓰고 모임에 참여하지만, 작품 속 기능은 공통적으로 얼굴과 신원을 가리는 데 있음.

ㅇ(이름의 대체) 이들은 본명보다 대소, 환희, 놀람, 탄식, 오뇌, 분노라는 가면명으로 먼저 인식됨. 이 점에서 가면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인물의 신원을 대체하는 임시 이름표처럼 작동함.

ㅇ(신원 확인의 혼란) 사건 이후 얼굴 확인과 지문 확인이 흔들리면서, 여섯 가면 손님은 “누가 누구인가”라는 작품의 핵심 의문을 강화하는 집단이 됨.

ㅇ(핵심 의미) 여섯 가면 손님은 개별 성격보다, 가면 아래에서 얼굴·이름·역할이 분리되는 구조를 보여주는 집단적 장치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함.

3.기면관의 관계자들

가.오니마루 미쓰히데

ㅇ(기본 성격) 가게야마 이쓰시의 비서 역할을 하는 인물임.

ㅇ(작품 속 역할) 기면관의 내부 사정을 알고 있으며, 사건 이후 조사와 설명 과정에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함.

ㅇ(핵심 의미) 오니마루는 주인 가게야마와 외부 인물들 사이를 이어주는 인물이며, 기면관 내부의 운영과 과거 사정을 드러내는 역할을 함.

나.신게쓰 도코

ㅇ(기본 성격) 젊은 여성 인물로, 기면관에서 일하는 쪽에 속함.

ㅇ(작품 속 역할) 원래 일하던 사람의 사정으로 대신 기면관에 들어오게 된 인물이며, 사건 당시 기면관 내부에서 중요한 관찰자 역할을 함.

ㅇ(특징) 단순한 사용인 역할에 머물지 않고, 사건을 둘러싼 긴장 속에서 자기 몫의 존재감을 드러냄.

ㅇ(핵심 의미) 신게쓰 도코는 외부 손님도, 주인도 아닌 위치에서 기면관 사건을 바라보게 하는 인물임.

다.초소카베

ㅇ(기본 성격) 기면관의 관리와 식사를 맡는 인물임.

ㅇ(작품 속 역할) 기면관의 생활 운영을 담당하며, 눈보라로 고립된 상황에서 저택 내부의 현실감을 만들어줌.

ㅇ(핵심 의미) 초소카베는 기면관이 단순한 괴저택이 아니라 실제 사람이 머물고 생활하는 공간임을 보여주는 인물임.

라.스나가와 마사미

ㅇ(기본 성격) 기면관에서 일하던 인물로, 신게쓰 도코와 관련이 있음.

ㅇ(작품 속 역할) 신게쓰 도코가 기면관에 들어오게 되는 배경과 연결됨.

ㅇ(핵심 의미) 스나가와는 직접적인 사건 중심 인물이라기보다, 도코가 기면관 사건에 놓이게 되는 사정을 설명해주는 주변 인물임.

4.가게야마 집안과 기면관의 과거

가.가게야마 도이치

ㅇ(기본 성격) 가게야마 이쓰시의 아버지로 언급되는 인물임.

ㅇ(작품 속 역할) 기면관의 과거, ‘미래의 가면’, 가게야마 이쓰시의 성장 배경과 관련됨.

ㅇ(핵심 의미) 가게야마 도이치는 현재의 살인사건을 과거의 기면관 역사와 연결해주는 인물임.

나.나카무라 세이지

ㅇ(기본 성격) 관 시리즈에서 여러 기괴한 건축물을 설계한 건축가임.

ㅇ(작품 속 역할) 기면관 역시 나카무라 세이지와 관련된 저택으로 제시됨.

ㅇ(핵심 의미) 나카무라 세이지는 직접 등장하는 인물이라기보다, 기면관이라는 공간 자체에 음산한 의미를 부여하는 배후의 설계자임.

다.가게야마라는 이름의 문제

ㅇ(이름의 혼란) 작품 후반부로 갈수록 ‘가게야마 이쓰시’라는 이름은 한 사람만을 가리키는 단순한 이름이 아님이 드러남.

ㅇ(신원 착각) 같은 이름, 닮은 조건, 가면, 시신 훼손이 겹치면서 독자와 인물들은 누가 누구인지 쉽게 확정하지 못함.

ㅇ(핵심 의미) 이 작품에서 이름은 신원을 확인하는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신원 확인을 흔드는 장치로 기능함.

5.인물 관계 핵심 정리

ㅇ(주최자) 가게야마 이쓰시는 ‘또 하나의 자신’을 찾기 위해 기면관 모임을 열고, 여섯 손님을 초대함.

ㅇ(탐정적 인물) 시시야 가도미는 휴가 교스케를 대신해 모임에 참석하고, 사건 이후 가면·지문·공간 구조를 바탕으로 진상에 접근함.

ㅇ(여섯 가면 손님) 대소의 가면은 시시야 가도미, 환희의 가면은 소마 사장, 놀람의 가면은 오시타 텐쿠, 탄식의 가면은 산테쓰 교수, 오뇌의 가면은 미카엘, 분노의 가면은 야마 씨와 연결됨.

ㅇ(저택 관계자) 오니마루, 신게쓰 도코, 초소카베 등은 기면관 내부 사정을 보여주고, 사건 조사 과정에서 배경 정보를 제공함.

ㅇ(과거의 인물) 가게야마 도이치와 나카무라 세이지는 현재 사건의 직접 행위자라기보다, 기면관의 역사와 구조적 비밀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인물임.

ㅇ(핵심 구조) 『기면관의 살인』의 인물관계는 단순한 범인·피해자 구도가 아니라, 가면과 이름, 얼굴과 지문, 주인과 손님, 과거와 현재가 겹치며 신원 확인 자체가 무너지는 구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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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츠지 유키토 ‘관 시리즈’ 국내 정발본 읽는 순서]

1. 검토기준

가. 국내 정발본 한정

ㅇ(국내 정발본만 반영)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중 우리나라에 정식 출판된 한국어 번역본만 대상으로 함.

ㅇ(실제 독서 가능성 고려) 일본 원서 기준 작품 전체가 아니라, 국내 독자가 한국어판으로 구입하거나 대여해 읽을 수 있는 작품을 기준으로 정리함.

ㅇ(발행년도 기준) 작품별 발행년도는 일본 원서 최초 발행년도를 기준으로 하며, 국내 번역본 발행년도와는 다를 수 있음.

ㅇ(미정발본 구분) 일본어판 원서가 있거나 연재가 확인되더라도, 국내 정식 한국어 번역본이 확인되지 않은 작품은 별도 항목으로 구분함.

나. 읽는 순서 기준

ㅇ(시리즈 순서 우선) 각 작품은 독립된 사건을 다루지만, 인물과 세계관의 연결이 있으므로 가급적 시리즈 발표 순서에 따라 읽는 것이 적절함.

ㅇ(입문 난이도 고려) 처음 읽는 독자는 『십각관의 살인』으로 시작해 시리즈의 기본 구조를 잡은 뒤, 점차 복잡하고 무거운 작품으로 넘어가는 흐름이 무난함.

2. 국내 정발본 읽는 순서 및 100자평

가. 국내 정발본 읽는 순서

ㅇ(국내 정발본 순서) 십각관의 살인 → 수차관의 살인 → 미로관의 살인 → 인형관의 살인 → 시계관의 살인 → 흑묘관의 살인 → 암흑관의 살인 1~3 → 기면관의 살인

나. 작품별 100자평

ㅇ(십각관의 살인, 1987년) 외딴섬과 기묘한 십각형 건물, 연쇄살인이 맞물린 관 시리즈의 출발점이다. 신본격 미스터리의 재미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ㅇ(수차관의 살인, 1988년) 과거와 현재의 사건이 교차하며 수차관의 비밀이 드러난다. 전작보다 차분하지만, 건물 구조와 사건의 연결이 흥미롭다.

ㅇ(미로관의 살인, 1988년) 지하 미로 같은 저택에서 작가들이 모이고 살인이 벌어진다. 공간 자체가 퍼즐처럼 작동해 추리소설 읽는 재미가 강하다.

ㅇ(인형관의 살인, 1989년) 불길한 인형과 음산한 저택 분위기가 강하게 깔린 작품이다. 정통 퍼즐보다 심리적 불안과 기괴한 분위기를 보는 쪽에 가깝다.

ㅇ(시계관의 살인, 1991년) 시간, 밀실, 건축 장치가 정교하게 맞물린 시리즈 대표작이다. 관 시리즈의 구조적 트릭과 반전의 힘이 가장 잘 살아 있다.

ㅇ(흑묘관의 살인, 1992년) 수기와 과거 사건을 따라가며 숨은 진상을 추적하는 작품이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조용히 진실을 파고드는 맛이 있다.

ㅇ(암흑관의 살인, 2004년) 거대한 저택, 기묘한 가문, 죽음과 집착이 뒤얽힌 대작이다. 분량이 길고 분위기도 무거워 시리즈 중 가장 장편소설다운 작품이다.

ㅇ(기면관의 살인, 2012년) 가면을 쓴 인물들, 폭설로 고립된 저택, 신원 확인의 불확실성이 핵심이다. 퍼즐성이 강해 국내 정발본의 마지막 순서로 알맞다.

3. 국내 미정발본

가. 『깜짝관의 살인』

ㅇ(깜짝관의 살인, 2006년) 일본어 원제는 『びっくり館の殺人』이며, 일본 기준 관 시리즈 제8작에 해당함.

ㅇ(국내 미정발) 일본어판 원서는 출간되어 있으나, 국내 정식 한국어 번역본은 확인되지 않으므로 국내 정발본 읽는 순서에는 포함하지 않음.

나. 『쌍둥이관의 살인』

ㅇ(쌍둥이관의 살인, 2023년 연재 시작) 일본어 원제는 『双子館の殺人』이며, 관 시리즈 후속작으로 연재가 시작된 작품임.

ㅇ(단행본 미확인) 일본어 연재는 확인되나 일본어 단행본 출간 및 국내 정식 한국어 번역본은 아직 확인되지 않으므로 국내 정발본 읽는 순서에는 포함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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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6-30 1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괸시리즈 다 읽었는데 초기 6권은 서울문화사판본이네요.참고로 관시리즈 번외작으로 만화로 나온 월관의 살인이 있습니다..

대장정 2026-06-30 12:48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거기까진 몰랐네요.. 감사합니다
 
십각관의 살인 ㅣ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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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보고] 아야츠지 유키토 『십각관의 살인』: 설계된 밀실, 조작된 시간, 그리고 복수로 번진 비극

1.작품 개요

가.기본 정보

ㅇ(작품명) 『십각관의 살인』

ㅇ(작가) 아야츠지 유키토

ㅇ(갈래) 장편소설, 본격 미스터리, 신본격 추리소설

ㅇ(발표) 1987년에 발표된 아야츠지 유키토의 데뷔작임.

ㅇ(주요 배경) 작품의 주요 무대는 규슈(九州) 오이타현(大分県) 일대로, 외딴섬 츠노시마와 그곳의 십각관, 청옥부 터, 그리고 본토의 벳푸시 간나와 일대가 중심 배경으로 제시됨.

ㅇ(주요 인물) K대학 미스터리 연구회 회원들, 육지에서 사건을 조사하는 가와미나미와 시마다, 나카무라 세이지 일가와 치오리, 모리스 교이치 등이 중심 인물임.

ㅇ(주요 내용) K대학 미스터리 연구회 회원들이 외딴섬 츠노시마의 십각관에 들어간 뒤 한 사람씩 살해되고, 육지에서는 과거 청옥부 사건과 치오리의 죽음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는 이야기임.

ㅇ(주요 정서) 처음에는 외딴섬과 기묘한 건물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만, 살인이 시작된 뒤에는 고립감, 의심, 복수심이 작품 전체의 긴장감을 이끌어감.

나.작품의 기본 성격

ㅇ(본격 미스터리) 『십각관의 살인』은 독자에게 단서와 상황을 제시하고, 그 안에서 범인과 진상을 추리하게 만드는 본격 미스터리 소설임.

ㅇ(닫힌 공간의 소설) 섬은 바다로 막혀 있고, 십각관은 인물들을 한 건물 안에 묶어둠. 이 설정은 사건을 제한된 공간 안에서 압축적으로 전개하게 만듦.

ㅇ(이름으로 속이는 소설) 등장인물들은 본명 대신 추리소설 작가의 이름을 딴 별명으로 불림. 이 별명 사용은 마지막 반전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장치임.

ㅇ(과거와 현재의 연결) 현재의 십각관 살인사건은 과거 청옥부 사건, 나카무라 세이지 일가의 비극, 치오리의 죽음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

2.작가 아야츠지 유키토 소개

가.작가 개요

ㅇ(출생) 아야츠지 유키토는 1960년 12월 23일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소설가임.

ㅇ(본명) 본명은 우치다 나오유키이며, 아야츠지 유키토는 필명임.

ㅇ(학력) 교토대학교 교육학부와 동 대학원에서 수학한 것으로 알려져 있음.

ㅇ(등단) 1987년 『십각관의 살인』으로 데뷔함.

ㅇ(대표작) 『십각관의 살인』, 『수차관의 살인』, 『미로관의 살인』, 『인형관의 살인』, 『시계관의 살인』, 『흑묘관의 살인』, 『암흑관의 살인』, 『기면관의 살인』 등이 대표작임.

나.관 시리즈에서 『십각관의 살인』의 위치

ㅇ(첫 작품) 『십각관의 살인』은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첫 작품임.

ㅇ(기본 틀 제시) 외딴 공간, 이상한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 기괴한 건물, 과거 사건과 현재 사건의 연결이라는 관 시리즈의 기본 틀이 이 작품에서 처음 제시됨.

ㅇ(개인적 독서 순서) 나는 『기면관의 살인』을 먼저 읽은 뒤 이 작품을 읽었는데, 뒤 작품을 먼저 접한 다음 출발점으로 돌아온 셈이어서 관 시리즈의 기본 구조를 확인하는 재미가 있었음.

3.규슈 오이타현을 배경으로 한 공간 구조

가.츠노시마라는 외딴섬

ㅇ(섬의 성격) 츠노시마는 작품 속에서 규슈 오이타현 일대에 있는 외딴섬으로 제시되며, 배가 오가지 않으면 외부와 쉽게 연결될 수 없는 공간임.

ㅇ(고립의 효과) 인물들이 섬에 들어간 뒤 사건이 벌어지면 외부의 도움을 기대하기 어렵고, 남은 사람들끼리 서로를 의심할 수밖에 없음.

ㅇ(섬 전체의 밀실화) 선착장, 보트 보관소, 십각관, 청옥부, 바위 더미, 고양이섬 등이 제한된 공간 안에 놓이면서 섬 전체가 하나의 큰 밀실처럼 작동함.

ㅇ(핵심 의미) 츠노시마는 단순한 무대가 아니라, 사건을 외부와 차단하고 인물들을 한정된 공간 안에 묶어두는 장치임.

나.십각관의 구조

ㅇ(건물의 형태) 십각관은 이름 그대로 십각형 구조를 가진 건물임.

ㅇ(방의 배치) 중앙 홀을 중심으로 현관홀, 부엌, 욕실, 세면장, 화장실, 그리고 각 인물의 방이 둘러서 있음.

ㅇ(호기심의 대상) 십각관은 그 자체가 무서운 건물이라기보다, 왜 이런 모양으로 지어졌는지, 이 구조가 사건과 어떻게 연결될지 궁금하게 만드는 공간임.

ㅇ(시야의 제한) 십각형 구조에서는 방들이 중앙 홀을 둘러싸고 있어, 한눈에 건물 전체를 파악하기 어렵다. 방문이 닫히면 각 방은 독립된 공간이 되고, 중앙 홀에 나와 있지 않은 사람의 위치는 쉽게 확인되지 않음.

ㅇ(동선의 애매함) 각 방과 공용 공간이 중앙 홀을 통해 연결되기 때문에, 누가 어느 방에서 나와 어디로 갔는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 이런 구조는 범행 자체를 쉽게 만든다기보다, 사건 뒤에 사람들의 추리와 의심을 흔드는 데 유리하게 작용함.

ㅇ(핵심 의미) 십각관의 구조는 물리적으로 사람을 완전히 숨겨주는 장치라기보다, 인물들의 위치와 동선을 애매하게 만들고 독자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미스터리적 장치임.

다.청옥부와 과거 사건

ㅇ(청옥부의 위치) 십각관 근처에는 과거 나카무라 세이지 일가의 참극이 벌어진 청옥부 터가 있음.

ㅇ(과거의 그림자) 청옥부 사건은 이미 끝난 과거 사건처럼 보이지만, 현재 십각관에서 벌어지는 살인과 계속 연결됨.

ㅇ(세이지 생존설) 죽은 줄 알았던 나카무라 세이지가 살아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은 작품 중반까지 중요한 긴장 요소가 됨.

ㅇ(핵심 의미) 청옥부는 현재 사건에 과거의 비극을 덧씌우는 공간이며, 독자와 인물들이 진실을 잘못 짐작하게 만드는 역할을 함.

라.벳푸시 간나와 일대

ㅇ(육지의 배경) 작품 속 육지 배경으로 규슈 오이타현 벳푸시 간나와 일대가 언급됨.

ㅇ(인물과의 관련) 간나와는 나카무라 고지로가 살고있는 공간으로 제시되며, 섬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별개로 육지 조사 장면의 현실감을 높여줌.

ㅇ(공간의 대비) 츠노시마와 십각관이 고립된 사건의 무대라면, 벳푸시 간나와는 실제 지명을 지닌 육지 공간임. 이 대비는 작품이 섬 안에만 갇히지 않고, 육지의 조사와 인물 관계를 통해 넓어지는 효과를 줌.

ㅇ(핵심 의미) 벳푸시 간나와는 사건의 직접 무대는 아니지만, 육지 조사와 인물 관계를 현실적인 장소 속에 놓이게 하는 배경임.

4.작품 전체 내용 정리

가.전체 흐름

ㅇ(섬으로 떠나는 회원들) K대학 미스터리 연구회 회원 일곱 명은 외딴섬 츠노시마로 합숙을 떠남. 이들은 서로를 본명 대신 추리소설 작가의 이름을 딴 별명으로 부름.

ㅇ(십각관 체류) 이들이 머무는 곳은 십각형 구조의 건물인 십각관임. 처음에는 무인도에서 지내는 미스터리 연구회의 특별한 합숙처럼 보임.

ㅇ(육지의 조사) 한편 육지에서는 가와미나미와 시마다가 죽은 자의 이름으로 온 편지를 계기로 나카무라 세이지 일가의 과거와 치오리의 죽음을 조사함.

ㅇ(연쇄살인의 시작) 섬에서는 첫 번째 피해자가 나오고, 이후 다른 회원들도 차례로 죽음의 표적이 됨.

ㅇ(피해자 표식) 범인은 ‘제1 피해자’, ‘제2 피해자’, ‘제3 피해자’, ‘제4 피해자’, ‘최후의 피해자’, ‘탐정’, ‘살인범’ 같은 표식을 남김. 이것은 사건을 하나의 게임이나 연극처럼 보이게 만듦.

ㅇ(마지막 반전) 범인은 섬의 반 다인이자 본토의 모리스 교이치였음. 독자는 두 사람을 별개 인물로 받아들이지만, 사실은 같은 사람이었음.

나.현재 사건과 과거 사건의 연결

ㅇ(청옥부 사건) 과거 청옥부에서는 나카무라 세이지 일가와 주변 인물들이 죽는 참극이 벌어졌음.

ㅇ(치오리의 죽음) 나카무라 치오리는 연구회 술자리 이후 죽었고, 이 죽음은 현재 사건의 감정적 뿌리가 됨.

ㅇ(손목 절단) 현재 사건에서 피해자의 손목이 잘려나가는 장면은 과거 가즈에 부인의 시신 훼손을 떠올리게 함.

ㅇ(실제 진실) 현재 사건의 범인은 나카무라 세이지가 아니라, 치오리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계획한 모리스였음.

다.작품의 중심 갈등

ㅇ(내부 범인과 외부 범인) 인물들은 범인이 자신들 안에 있는지,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인지, 혹은 죽은 줄 알았던 나카무라 세이지인지 계속 혼란스러워함.

ㅇ(죄책감과 복수) 연구회 회원들은 치오리의 죽음에 대해 직접 살인을 저지른 것은 아니지만, 마음속으로 죄책감을 가지고 있음. 모리스는 그 죄책감을 복수의 명분으로 삼음.

ㅇ(착각과 진실) 작품은 독자가 육지와 섬의 사건을 동시에 진행되는 일로 받아들이게 만들지만, 마지막에는 그 인식 자체가 착각이었음을 드러냄.

5.작품의 주요 특징

가.별명과 서술 트릭

ㅇ(별명 사용) 등장인물들은 본명 대신 추리작가 이름에서 따온 별명으로 불림.

ㅇ(인물 흐리기) 별명은 인물의 실제 정체를 가리고, 독자가 사람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게 만듦.

ㅇ(반전의 기반) 반 다인과 모리스 교이치가 같은 사람이라는 반전은 이 별명 구조와 서술 방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음.

ㅇ(핵심 의미) 『십각관의 살인』은 이름을 숨기는 방식으로 사람을 숨기고, 사람을 숨기는 방식으로 시간을 숨긴 작품임.

나.피해자 표식과 살인 게임

ㅇ(표식의 등장) 범인은 피해자마다 ‘제1 피해자’, ‘제2 피해자’ 같은 표식을 남김.

ㅇ(역할 부여) ‘탐정’, ‘살인범’, ‘최후의 피해자’ 같은 말은 사람의 죽음을 하나의 역할극으로 바꾸어버림.

ㅇ(심리 조종) 이 표식은 남은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고, 서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도구임.

ㅇ(핵심 의미) 범인은 단순히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순서와 의미까지 설계하려 함.

다.손목 절단과 과거 사건의 반복

ㅇ(손목 훼손) 현재 사건에서 피해자의 손목이 잘려나가는 장면은 과거 가즈에 부인의 시신 훼손을 떠올리게 함.

ㅇ(모방의 효과) 이 반복은 나카무라 세이지가 살아 돌아와 복수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듦.

ㅇ(착각 유도) 독자와 인물들은 손목 절단 때문에 자꾸 청옥부 사건과 세이지 생존설을 떠올리게 됨.

ㅇ(핵심 의미) 손목 절단은 단순한 잔혹 행위가 아니라, 과거 사건을 현재 사건 위에 덧씌우는 장치임.

라.죄책감과 복수

ㅇ(치오리의 죽음) 치오리의 죽음은 사고처럼 보이지만, 연구회 사람들의 방치와 무책임이 얽혀 있음.

ㅇ(모리스의 복수) 모리스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고통을 복수의 명분으로 삼음.

ㅇ(복수의 한계) 그러나 그의 복수는 정의가 아니라 또 다른 살인임. 죽은 사람을 위한다는 말로 산 사람들을 죽이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음.

ㅇ(핵심 의미) 이 작품은 복수심이 사랑의 이름을 빌릴 때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줌.

6.작품 감상 및 종합 평가

가.공간은 공포보다 호기심에서 출발함

ㅇ(핵심 감상) 외딴섬이나 기묘한 건물이 처음부터 무섭게 느껴진 것은 아님. 오히려 이런 공간은 “여기서 어떤 사건이 벌어질까” 하는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음.

ㅇ(공간의 변화) 그러나 살인이 시작되자 그 공간의 성격이 달라짐. 흥미롭게 보이던 십각관은 인물들을 한곳에 묶어두는 장소가 되고, 여행지처럼 보이던 섬은 빠져나가기 어려운 무대가 됨.

ㅇ(구조의 역할) 특히 십각관의 십각형 구조는 방과 공용 공간의 관계를 애매하게 만들고, 인물들의 위치와 동선을 쉽게 확정하지 못하게 함. 이 점이 사건의 불안감과 추리의 혼란을 키웠음.

ㅇ(핵심 의미) 이 작품은 공간 자체가 무서운 소설이라기보다, 사람이 공간을 이용해 착각과 의심을 만들어내는 소설로 읽혔음.

나.반전은 강하지만 현실성에는 의문이 남음

ㅇ(핵심 반전) 반 다인과 모리스 교이치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은 강한 충격을 주었음.

ㅇ(다시 읽게 만드는 힘) 이 반전을 알고 나면 앞부분의 장면들이 모두 다르게 보임. 육지와 섬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던 것도 사실은 독자의 착각이었음.

ㅇ(현실성의 문제) 다만 모리스와 반 다인이 동일인물이고, 섬과 육지를 오가며 범행을 준비하고 실행했다는 점은 현실적으로 쉽게 납득되지는 않았음. 체력, 시간 조절, 담력, 정신력까지 생각하면 보통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처럼 느껴졌음.

ㅇ(소설적 허용) 이 부분은 현실 그대로의 범죄라기보다 본격 미스터리의 장치로 받아들이는 편이 맞다고 봄. “이게 정말 가능하냐”를 따지기 시작하면 무리가 있지만, 소설 속 반전과 구조의 재미로는 충분히 읽을 수 있었음.

다.복수에 동의할 수는 없음

ㅇ(모리스의 고통) 모리스가 치오리를 잃은 고통과 연구회 사람들을 원망하는 감정은 이해할 수 있음.

ㅇ(동기의 한계) 그러나 술자리에서 비롯된 치오리의 죽음이 곧바로 여섯 명 전원을 죽이는 복수로 이어지는 것은 현실적으로 다소 비약적으로 느껴짐.

ㅇ(소설적 허용) 이 부분은 실제 인간 심리라기보다, 본격 미스터리의 폐쇄공간 살인극과 마지막 반전을 밀고 가기 위한 장르적 장치로 받아들이는 편이 맞음.

ㅇ(핵심 감상) 이 작품은 범인의 사연을 이해하게 만들지만, 범인의 행위를 정당화하지는 않음.

라.직접 다녀온 간나와가 주는 반가움

ㅇ(개인적 친근감) 작품 속에 규슈 오이타현 벳푸시 간나와가 나왔을 때 아주 반가웠음.

ㅇ(지옥온천의 기억) 재작년 10월 벳푸 지옥온천 순례를 하며 간나와 일대를 걸었던 기억이 떠올랐음. 혈지지옥과 회오리지옥까지 포함해 모든 지옥온천을 돌아본 경험이 있어, 작품 속 지명이 더 생생하게 다가왔음.

ㅇ(소설과 실제 장소의 연결) 소설 속 고지로의 거주지가 내가 다녀온 장소와 겹치면서, 작품이 허구이면서도 실제 현실과 이어진 듯한 느낌을 주었음.

ㅇ(핵심 감상) 여행했던 장소가 소설 속에 나오니, 『십각관의 살인』은 단순히 읽는 소설이 아니라 내가 지나온 장소와도 이어지는 이야기처럼 느껴졌음.

마.최종 평가

ㅇ(작품의 가치) 『십각관의 살인』은 외딴섬 연쇄살인, 과거 사건, 십각관의 구조, 인물의 별명, 서술 트릭을 결합해 본격 미스터리의 재미를 잘 살린 작품임.

ㅇ(장점) 과거 청옥부 사건과 현재 십각관 사건이 치밀하게 연결되고, 피해자 표식과 손목 절단, 별명 사용이 마지막 반전과 잘 맞물림.

ㅇ(아쉬운 점) 다만 범인의 계획은 현실적으로 지나치게 고단하고 위험해 보이며, 복수의 동기 역시 여섯 명 전원을 살해할 만큼 충분히 설득력 있게 제시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움.

ㅇ(최종 소회) 『십각관의 살인』은 현실성에는 다소 의문이 남지만, 본격 미스터리라는 장르 안에서 이름과 시간, 공간의 속임수를 강하게 밀어붙인 작품임.

ㅇ(핵심의미) 『십각관의 살인』은 설계된 밀실과 조작된 시간을 통해, 인간의 죄책감과 복수심이 어떻게 또 다른 비극으로 번져가는지를 보여주는 본격 미스터리임.

<설계된 밀실과 조작된 시간이 낳은 복수의 비극>

『십각관의 살인』은 규슈 오이타현 일대의 외딴섬 츠노시마와 그곳에 세워진 십각형 건물 십각관을 배경으로 한 본격 미스터리 소설이다. K대학 미스터리 연구회 회원들은 추리소설 작가의 이름을 딴 별명으로 서로를 부르며 섬에 들어간다. 처음에는 특별한 합숙처럼 보이지만, 첫 번째 피해자가 나오면서 모든 것은 실제 살인사건으로 바뀐다. 이후 피해자 표식과 손목 절단이 반복되며, 섬 안의 사람들은 서로를 의심하게 된다.

이 작품에서 외딴섬과 십각관은 처음부터 무서운 공간이라기보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장치에 가깝다. 그러나 살인이 벌어지자 그 공간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섬은 빠져나가기 어려운 무대가 되고, 십각관은 인물들의 위치와 동선을 애매하게 만들어 서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장소가 된다. 결국 긴장감을 만드는 것은 공간 자체가 아니라, 그 공간을 이용해 사람을 죽이고 남은 사람들의 심리를 조종하는 인간의 계획성이다.

가장 강한 반전은 반 다인과 모리스 교이치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독자는 섬의 반 다인과 육지의 모리스를 별개의 인물로 받아들이지만, 마지막에 그 믿음은 무너진다. 다만 이 반전은 충격적인 만큼 현실성에는 의문도 남는다. 한 사람이 섬과 육지를 오가며 그토록 고단한 준비와 범행을 해낼 수 있는지는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이 부분은 현실 범죄라기보다 본격 미스터리의 소설적 장치로 받아들이는 편이 맞다고 보았다.

육지에서 진행되는 가와미나미와 시마다의 조사는 과거 청옥부 사건과 나카무라 치오리의 죽음을 드러낸다. 치오리의 죽음은 모리스 교이치가 복수를 결심하게 된 원인이 된다. 그러나 술자리에서 비롯된 죽음이 여섯 명 전원을 죽이는 복수로 이어지는 것은 현실적으로 다소 비약적으로 느껴진다. 결국 이 부분은 실제 인간 심리라기보다, 폐쇄공간 살인극과 마지막 반전을 밀고 가기 위한 장르적 장치로 받아들이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작품 속에 규슈 오이타현 벳푸시 간나와가 나온 점도 반가웠다. 재작년 10월 벳푸 지옥온천 순례를 하며 간나와 일대를 직접 걸어본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여행했던 장소가 소설 속 인물의 생활권으로 등장하니, 작품이 허구이면서도 실제 장소의 기억과 이어지는 느낌을 주었다. 결국 『십각관의 살인』은 설계된 밀실과 조작된 시간, 과거의 죄책감과 현재의 복수심을 치밀하게 엮어낸 본격 미스터리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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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서 일어났을 때부터 시작되었던 두통이 점점 더 강해져 갔다. 모든 것을 체념하고 오늘은 빨리 자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 나도 수면제를 먹어야겠어요."

시마다의 기분도 알 것 같았다. 가와미나미도 처음에는 그리 싫지 않은 표정으로 추리게임에 참가하던 모리스가 갑자기 드러내 보인 그 결벽적인 태도에 어리둥절해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바로 어제 방문했던 자신이 오늘도 고지로의 집을 방문한다는 데에 강한 저항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바보 같은 소리.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자네."
고지로는 거침없이 대답했지만, 가와미나미는 그 순간 고지로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고지로, 이상한 질문도 다 한다고 생각하겠지? 기분 나쁘면 나를 때려도 좋아."
그리고 시마다는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했다.
"치오리는 혹시 자네 딸이 아니었나?"

"그건 참 미안하게 되었네. 마감이 가까운 논문이 있어서 요 며칠간 전화도 손님도 모두 받지 않았다네."
"그것참 섭섭하네. 친구가 찾아왔는데 말이야."
"미안. 자네인 줄 알았더라면 나갔을 텐데."
전화로 방문을 알리지 않았느냐고 가와미나미는 물어보았다.
"고지로는 갑자기 찾아오는 것을 좋아하는 타입이지. 좀 특이한 사람이야. 물론 손님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단 모리스와 시마다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모리스가 어떤 의미에서 지극히 보수적인 현실주의자임에 반해, 시마다는 마치 꿈꾸는 소년 같은 로맨티스트라는 것이다.
자신이 흥미를 느낀 현실적인 사건으로부터 자유롭게 상상력을 작동시켜, 하나의 가능성이 도출되면, 그다음은 그 가능성을 일종의 꿈과 같은 차원으로 승화시켜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혹시 그렇게 만들어진 꿈이 진상과 일치하느냐 않느냐는 그에게는 전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건 요시카와 세이치의 사체였네. 세이지 씨가 모든 일을 저질렀어. 가즈에 부인과 기타무라 부부를 죽인 후, 요시카와를 불태워 죽임으로써 자신을 대신하게 했던거야. 따라서 세이지는 아직 살아 있어."
단호한 어조였지만 그의 눈은 시마다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지 못했다. 무릎 위에 내려진 손이 가늘게 떨렸다.

"이번 괴문서를 계기로 작년 츠노시마 사건에 대해 조금 조사를 하고 싶어서 말이야. 그래서 우리가 도달한 결론은 나카무라 세이지 씨는 아직 살아 있고, 그가 사건의 범인이라는 것이었어."
"그건 말도 안 돼. 형은 죽었어. 내가 사체를 확인했단 말일세."

기억할 거야. 그리고 내가 이 집까지 자네를 바래다주고 이 소파에서 잠을 잤는데, 그때 자네는 울면서 잠꼬대처럼 중얼거렸지. ‘가즈에, 나를 용서해줘, 용서해줘‘ 하고 몇 번이나......."

"세이지 씨가 범인이라 한다면, 왜 그는 살인까지 저질러야 할 그런 정신상태에 빠져야 했을까? 언젠가 자네가 말한 적이 있지. 형은 가즈에를 무척 사랑하긴 하지만,
그 사랑의 방식이 좀 이상하다고 말이야. 그리고 그가 젊어서 그런 외딴 섬으로 들어간 것도 가즈에를 곁에 두고 싶어서였다고, 그녀를 섬에 가두어두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이야. 그만큼 사랑했던 아내를 그가 죽였다면, 그 동기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질투밖에 없을 것 같아."

"형은 좀 특이한 사람이었어."
"그러나 아내를 사랑하는 인간이었어. 그 아내가 낳은 딸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은 역시 뭔가가 있었기 때문이야. 그래서 말인데, 가설이 타당하다고 한다면, 진짜아버지는 누구일까? 몇 가지 상황이 고지로, 자네를 암시해. 섬에 갇힌 가즈에 부인. 그리고 그녀와 접촉이 가능했던 젊은 남자. 치오리 탄생을 전후로 하여 악화된 형제 관계......."

만일 네가 그 사건을 경찰에 알렸더라면 기타무라 부부나 요시카와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몰라. 그날의 침묵은 죄악이 아닐까?"

가와미나미의 가슴에 불을 지핀 것은 그 편지였다. 죽은 사람에게서 온 편지, 확실히 그것만으로도 그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그와 병행하여 연구회 멤버들이 그 섬에 갔다는 것을 안 이상 도저히 가만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일부러 벳부까지 고지로를 찾아가기도 하고, 자신과 의논을 하는 등....... 그렇지만 보통 때라면그 정도에서 식어버리는 것이 가와미나미의 성격이다. 그러나.......

"19일 밤, 그 시점에서 넌 벌써 츠노시마 사건을 알았어. 그렇지?"
"어떻게 내가 그 사실을 알았다는 거야?"
"범인, 즉 세이지가 가르쳐줘서지."
그런데 시마다는 가즈에 부인과 고지로의 은밀한 관계를 동기로 보고, 기어이 치오리가 고지로의 딸이 아니라는 데까지 상상의 날개를 펴고 만 것이다.

고지로는 형의 아내 가즈에를 그 후지츠보와 연결시켰음이 틀림없다. 불륜의 과실, 치오리의 탄생. 그 때문에 더욱 멀어져 버린 연인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그로 하여금 등나무를 심게 했던 것이다. 후지츠보는 평생 자신과 겐지가 범한 죄를 잊지 못하고, 그것을 스스로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리고 고지로의 연인 또한 후지츠보와마찬가지로.......

결국 사건은 세이지가 계획한 동반자살극이었어."
그리고 가와미나미는 자세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청옥부로 전화를 걸었어. 기다렸다는 듯이 형이 받더군.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목소리로, 형은 이렇게 말했다네. ‘가즈에는 내 거야. 기타무라 부부도, 요시카와도, 모두 죽였어. 새로운 여행길에 나서는 나와 가즈에를 위한 선물이다‘라고. 형은 완전히 미쳐 있었어.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들으려 하지 않고, ‘지옥에서 기다릴게‘ 하고 외치면서 전화를 끊었어.

형은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이지만, 인간적인 면에서는 어떤 결함을 가지고 있었어. 그는 형수를 사랑했지만, 그것은 일종의 광기에 가까운 독점욕으로 가득 찬것이었고, 오로지 갈구하는 사랑에 지나지 않았어. 형은 스스로 자신의 그런 광기를 잘 알았음이 분명해. 그녀에게 자신이 결코 좋은 남편이 아님을 알고 있었던 거야. 그 때문에 그는 형수를 의심했었고. 치오리에 대해서는 아마도 두려움 같은 감정을 품었던 것 같아. 그러나 한편으로는 치오리만은 자기 자식이라고 믿으려 하는,
또는 믿고 싶은 감정이 반......, 그 반이 20년 동안 그와 아내를 이어주고, 아내를 믿게 하며, 마음의 균형을 이루게 하는 유일한 근거가 되어주었지.

"츠노시마 사건, 그것은 형이 꾸민 동반자살극이었어."
"동반자살극?"
"시마다 씨는 그게 마음에 걸리는 것 같은데, 사체가 발견되지 않는 이상 역시 절벽에 버려져서 파도에 쓸려갔을 거야"

"소포로 받은 가즈에의 손은 어떻게 했는가? 지금 어디에 있지?"
"저길세. 저 나무 아래에 그녀의 손이 잠들어 있어......."
그는 형수를 죽이고 나서 죽은 것이 아니야. 자신이 더 이상 살아 있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녀를 데리고 간 것뿐이지."

그렇다. 시마다가 지적한 대로, 고지로는 죽은 치오리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학생들을 저주한다 해서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것이다.

위에 푸석푸석 윤기 없는 머리카락이 덮여 있다. 그것이 진짜 자신의 모습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거칠어 보였다.

나카무라 세이지. 이 십각관을 세운 사나이. 작년 9월, 청옥부에서 죽임을 당한 것으로 알려진 사나이. 만일 살아 있다면, 그 사람이 사건의 범인임이 틀림없다.
나카무라......, 나카무라......, 나카무라......! ‘나카무라?‘

포가 준 약 덕분에 어젯밤은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방금 눈을 뜰 때까지 죽은 사람처럼 잠을 잤다. 꿈을 꾼 기억은 없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상할 정도로 만족스러운 잠이었다.

의식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음을 스스로도 잘 알았다. 혼자서 나가는 것은 위험하다. 일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은 금방 안개 낀 마음 저 안쪽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르루는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두렵다.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다. 그냥 어린애처럼 울면서 도망치고 싶다.......

두렵다.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다. 그냥 어린애처럼 울면서 도망치고 싶다....... 몸을 한 번 부르르 떨더니 밴은 담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더 밝게 화장을 해야지.......
화장품이 든 주머니를 열면서 애거사는 생각한다. 괴상한 사건, 이상한 상황, 이상한 자신의 입장, 미칠 것 같은 이상한 현실 한가운데서 그것은 그녀에게 작은 위안을 가져다주는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세면장 문 건너편에 하얀 물체가 쓰러져 있었다. 섬세한 레이스의 원피스, 축 늘어진 가느다란 손, 그리고 바닥으로 퍼져 나간 검은 머리카락......, 꼼짝도 하지 않고쓰러져 있는 그 물체는 애거사였다.

오른손으로 입을 막고 밴은 일어섰다. 목 안에서 외치고 싶은 충동과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동시에 일었다. 그러나 크게 소리 지를 수 없었다.
"애거사가 당했어?"
"그런 것 같아......."
포는 엘러리를 돌아보았다.
"엘러리, 밴이 괴로워해. 토하게 해줘."

애거사의 사체는 포의 손에 의해 반듯이 눕혀졌다. 눈을 똑바로 뜨고, 입을 조금 벌린 채, 얼어붙은 듯한 그 표정은 고통이라기보다는 경탄에 가까운 것이었다.
"봐. 문에 묶어두었던 끈이 풀어져 있어."
그는 현관홀로 통하는 여닫이문을 가리켰다. 어제 손잡이에 묶어두었던 끈이 풀어져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누군가 밖으로 나갔어."

[제3 피해자]거기에는 붉은 글자의 그 플라스틱 조각이 그들을 조롱이라도 하듯이 붙어 있었다.
아치형으로 덮인 소나무 가지 아래를 빠져나오자, 청옥부 안마당에서 파자마와 카디건 차림의 엘러리가 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십각관에서 보면 소나무 숲으로 가려진 위치다.

그러나........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밖으로 나가서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포가 의자를 들어 올려 힘껏 창을 쳤다. 그 충격으로 르루의 방 창문이 부서졌다.
"맞아 죽었어. 이 부근에 흩어져 있는 돌과 벽돌 조각에 맞은 것 같아......."

"세면대 앞에 이런 물건이 떨어져 있었어. 애거사 것이겠지?"
밴은 검은 주머니를 들고 있었다.
"화장품 넣는 주머니야."
엘러리는 립스틱 두 개를 집어 들었다. 양쪽 뚜껑을 모두 열고 색깔을 비교해보았다.
"청산가리......."

"도저히 믿을 수 없어."
포가 탄식하는 듯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이 다른 네 사람을 죽인 범인이라니?"
"남은 우리 가운데 ‘살인범’이 있다면 말이야, 이제 밝힐 때가 된 것도 같은데, 역시 나서진 않겠지?"

"맞았어, 엘러리. 독이 발라져 있어."
"정말 죽음의 화장이로군. 하얀 드레스, 거기에다 독살. 마치 동화 속 이야기 같아."

"이 모든 것의 시작은 그 플라스틱 조각이었지. 누군가가 미리 준비해서 섬까지 가지고 온 거야. 그다지 부피가 나가지 않으니 눈에 띄지 않게 가져올 수 있었을 거고.
범인은 우리 세 사람 중의 하나일 수 있어.
사흘째 아침, 범인은 살인예고를 실행에 옮겼어. 피해자는 오르치. 범인은 창문이나 문을 통해 그 방에 몰래 들어가서 목을 졸라 죽였어. 끈이 그대로 피해자 목에 남아 있었다고 했지? 포. 그러나 그것은 아무 단서도 되지 못해. 먼저 문제 삼아야 할 것은 범인은 어떻게 오르치의 방에 들어갈 수 있었냐는 거야.
발견 당시, 문도 창도 잠겨 있지 않았어. 양쪽 다 처음부터 그녀가 걸어두지 않았을 가능성도 물론 있지만, 그건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지. 특히 문에 대해서는 더욱그래. 그 전날 살인예고 때문에 그녀는 상당히 불안해하고 있었거든.
그렇다면 어떻게? 가능성은 여러 가지 생각해 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다음 두 가지를 추리해 볼 수 있어. 하나는 그녀가 창 쪽의 고리를 걸지 않았기 때문에 범인이 그곳으로 침입했다는 가설, 또 하나는 범인이 그녀를 깨워서 창의 고리를 풀게 했다는 것."

"그 문제는 일단 제쳐두고 다음으로 넘어가자. 카의 죽음. 이 사건에 관해서도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 하나밖에 없는 그런 유일한 대답은 없어. 단지 그때 논의한 바에 따르면, 우리들 가운데 적어도 밴에게는 카의 커피에 독을 넣을 기회가 없었다는 거야. 미리 컵에 독을 발라두는 방법이라면 누구에게도 기회는 있었지만, 문제의컵에 다른 컵과 구별되는 표시가 없으면 성립되지 않아.
그래서 애거사가 살해당하고 만 지금, 독의 투입이 그 장소에서 마술사 뺨치는 빠른 손놀림으로 행해졌다고 한다면, 유감스럽게도 범인은 나일 가능성이 커. 그러나또......."
"내가 미리 지용성 캡슐에 독을 넣어 먹였다는 말이겠지?"

"이 건물에 널려진 십각형이라는 모양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미스터리라고 할 수 있어. 그러나 이 컵은 십각형이 아니야. 11개의 각이 있어."

"십각형 건물에 십각형 홀, 십각형 테이블, 십각형 천창, 십각형 재떨이, 십각형 컵......, 우리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십각형 무리가 우리들의 눈을 멀게 한 거야."
"애거사가 오늘 아침에 사용한 것은 어제와는 다른 색이었던 것 같은데?"

"몇 년 전 네 어머니는 병원에서 다른 입원환자를 죽이려다가 붙잡혔지. 그때 네 어머니는 정신착란상태에 빠져 있었고......."

립스틱은 항상 그녀의 방에, 주머니 안에 들어 있었지. 오르치와 카가 죽임을 당한 이틀 전부터 애거사는 완전히 신경이 곤두서 있었기 때문에 언제나 방에 열쇠를 걸어두었을 거야. 범인이 몰래 잠입할 가능성은 전혀 없어. 그런데 애거사는 매일 립스틱을 사용했단 말이야. 그런 그녀가 오늘 아침 쓰러졌다면 독은 어젯밤에서 오늘아침에 걸쳐 발라졌다고 보아야 해."

엘러리는 담담하게 말했다. 포는 동요를 감추지 못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 왜 내가 수상쩍다는 거야?"
"동기 때문이지."
"동기? 동기라고? 왜 내가 친구 네 명을 죽여야 하지? 한번 들어보고 싶군, 엘러리."

"르루의 경우는 아주 특이해. 야외의 그런 장소에서, 더욱이 돌에 맞아서......, 그때까지 범인이 집착했던 손목 자르기도 없고 말이야. 뭔가 이질적인 요소가 들어 있어."
"확실히 그래. 그렇지만 우리 세 사람 다 범인일 수 있는 가능성은 마찬가지야." 하고 말하는 포.

"포의 아버지가 무마시켰으니까. 병원에 관해 나쁜 소문이 퍼지면 안 되니까, 죽임을 당할 뻔한 환자에게 돈을 주어 무마했을 거야. 그때의 담당 변호사가 내 아버지의 친구였어. 그래서 나도 알게 되었지. 의사 부인이란 정신적으로 상당히 부담을 안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신경이 약한 여자는 견뎌내기가 힘들지도 몰라. 또는 사랑하는 남편을 환자에게 빼앗겼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평상시는 엷은 핑크색이었어. 로즈 핑크라는 색......."
"하아."

젖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엘러리는 빗속을 달렸다. 소나무 아치를 통과하는 길을 피하여 곧장 오른쪽 청옥부 쪽을 향했다. 소나무 숲을 가로지를 생각이었다.
"기가 차군. 사람은 역시 평소 때 행동에 조심을 해야 한다니까."
그리고 세 사람은 입을 굳게 다물어버렸다.

"우리의 운명이 걸려 있다 생각하고 저 발자국을 잘 기억해 줘."
차가운 비를 맞으면서 그는 지면에 찍힌 몇 개의 발자국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빗물이 고여 흐르면서 서서히 형체를 잃어가는 발자국을 있는 힘을 다해 머릿속에새겨 넣었다.

"그래. 그런데 그 계단 아래는 바다야. 기억하고 있지? 그 아래 바위 더미 양쪽은 절벽이란 것을. 바다에서 이 섬으로 상륙하기 위해서는 이 바위 더미에서 계단으로오르든지, 아니면 선창가에서 계단으로 오르든지 둘 중 하나지만, 그럼 범인은 도대체 이 바위 더미로 어떻게 접근했을까? 여기서 또 어디로 갈까? 선창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코처럼 툭 튀어나온 절벽을 돌아갈 수밖에 없어. 수심도 깊어. 범인은 수영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이 계절에는 무리야. 수온이 몇 도나 될 것 같아?"

"범인은 이 십각관에 있는 우리 가운데 한 사람. 그렇다면 그는 일부러 바위 더미로 내려갈 필요가 없지. 걸어서 여기까지 돌아오면 그만이니까. 발자국 크기와 형태는 지면을 밟을 때 적당히 조절하면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어. 전문 감정원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야. 그러지 않았다는 것은 뭔가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어서 바다 쪽으로 돌아가야만 했기 때문이라 생각되는데......."

"첫째, ‘범인‘이 우리 가운데 있다고 믿게 하는 효과가 있어. 그런 만큼 외부에 대해 무관심하게 되니까."
"그다음은?"
"심리적인 압박을 주는 효과일 거야. 최후에 남은 몇 사람이 서로를 죽이도록 하는 것이 범인이 노리는 거지. 자기 손을 더럽히지 않고 사체의 수를 늘릴 수 있으니까. 어쨌든 이 범인의 최종 목적은 일곱 명 전원을 죽이는 것이라고 보면 돼."

"먼저 요점을 정리해보자. 범인 발자국으로 생각되는 것은 사체와 계단을 왕복하는 두 줄 발자국뿐이었어. 즉, 범인은 바다로 들어간 셈이야. 지금은 우리 가운데 한사람을 범인이라 전제하고, 그가 밟은 루트를 추적해보면...
우선 그는 십각관에서 선창가로 내려가, 거기에서 헤엄을 쳐서 바위 더미까지 온 다음, 계단을 타고 청옥부로 왔다. 범행 후에 다시 그 경로를 따라 여기까지 돌아온거야. 아까 포는 바다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될 필연성이라고 말했는데, 도대체 그런 게 어디 있겠어?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난센스야. 필연성이고 현실성이고 전혀없어."

"즉, 범인은 어디까지나 내부에 범인이 있는 것으로 상황을 조작해야 하는데 말이야. 그렇다면 청옥부 입구와 계단을 일부러 왕복하면서 발자국을 만들어두는 것이좋았을 텐데. 그 정도 공작이라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잖아......."
"발자국이 남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을 거야."
"그리고 그대로 육지로 돌아가 버렸다는 건가? 그럼 ‘제3 피해자‘라는 조각은 어제 붙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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