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에서 일어났을 때부터 시작되었던 두통이 점점 더 강해져 갔다. 모든 것을 체념하고 오늘은 빨리 자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 나도 수면제를 먹어야겠어요."

시마다의 기분도 알 것 같았다. 가와미나미도 처음에는 그리 싫지 않은 표정으로 추리게임에 참가하던 모리스가 갑자기 드러내 보인 그 결벽적인 태도에 어리둥절해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바로 어제 방문했던 자신이 오늘도 고지로의 집을 방문한다는 데에 강한 저항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바보 같은 소리.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자네."
고지로는 거침없이 대답했지만, 가와미나미는 그 순간 고지로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고지로, 이상한 질문도 다 한다고 생각하겠지? 기분 나쁘면 나를 때려도 좋아."
그리고 시마다는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했다.
"치오리는 혹시 자네 딸이 아니었나?"

"그건 참 미안하게 되었네. 마감이 가까운 논문이 있어서 요 며칠간 전화도 손님도 모두 받지 않았다네."
"그것참 섭섭하네. 친구가 찾아왔는데 말이야."
"미안. 자네인 줄 알았더라면 나갔을 텐데."
전화로 방문을 알리지 않았느냐고 가와미나미는 물어보았다.
"고지로는 갑자기 찾아오는 것을 좋아하는 타입이지. 좀 특이한 사람이야. 물론 손님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단 모리스와 시마다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모리스가 어떤 의미에서 지극히 보수적인 현실주의자임에 반해, 시마다는 마치 꿈꾸는 소년 같은 로맨티스트라는 것이다.
자신이 흥미를 느낀 현실적인 사건으로부터 자유롭게 상상력을 작동시켜, 하나의 가능성이 도출되면, 그다음은 그 가능성을 일종의 꿈과 같은 차원으로 승화시켜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혹시 그렇게 만들어진 꿈이 진상과 일치하느냐 않느냐는 그에게는 전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건 요시카와 세이치의 사체였네. 세이지 씨가 모든 일을 저질렀어. 가즈에 부인과 기타무라 부부를 죽인 후, 요시카와를 불태워 죽임으로써 자신을 대신하게 했던거야. 따라서 세이지는 아직 살아 있어."
단호한 어조였지만 그의 눈은 시마다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지 못했다. 무릎 위에 내려진 손이 가늘게 떨렸다.

"이번 괴문서를 계기로 작년 츠노시마 사건에 대해 조금 조사를 하고 싶어서 말이야. 그래서 우리가 도달한 결론은 나카무라 세이지 씨는 아직 살아 있고, 그가 사건의 범인이라는 것이었어."
"그건 말도 안 돼. 형은 죽었어. 내가 사체를 확인했단 말일세."

기억할 거야. 그리고 내가 이 집까지 자네를 바래다주고 이 소파에서 잠을 잤는데, 그때 자네는 울면서 잠꼬대처럼 중얼거렸지. ‘가즈에, 나를 용서해줘, 용서해줘‘ 하고 몇 번이나......."

"세이지 씨가 범인이라 한다면, 왜 그는 살인까지 저질러야 할 그런 정신상태에 빠져야 했을까? 언젠가 자네가 말한 적이 있지. 형은 가즈에를 무척 사랑하긴 하지만,
그 사랑의 방식이 좀 이상하다고 말이야. 그리고 그가 젊어서 그런 외딴 섬으로 들어간 것도 가즈에를 곁에 두고 싶어서였다고, 그녀를 섬에 가두어두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이야. 그만큼 사랑했던 아내를 그가 죽였다면, 그 동기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질투밖에 없을 것 같아."

"형은 좀 특이한 사람이었어."
"그러나 아내를 사랑하는 인간이었어. 그 아내가 낳은 딸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은 역시 뭔가가 있었기 때문이야. 그래서 말인데, 가설이 타당하다고 한다면, 진짜아버지는 누구일까? 몇 가지 상황이 고지로, 자네를 암시해. 섬에 갇힌 가즈에 부인. 그리고 그녀와 접촉이 가능했던 젊은 남자. 치오리 탄생을 전후로 하여 악화된 형제 관계......."

만일 네가 그 사건을 경찰에 알렸더라면 기타무라 부부나 요시카와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몰라. 그날의 침묵은 죄악이 아닐까?"

가와미나미의 가슴에 불을 지핀 것은 그 편지였다. 죽은 사람에게서 온 편지, 확실히 그것만으로도 그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그와 병행하여 연구회 멤버들이 그 섬에 갔다는 것을 안 이상 도저히 가만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일부러 벳부까지 고지로를 찾아가기도 하고, 자신과 의논을 하는 등....... 그렇지만 보통 때라면그 정도에서 식어버리는 것이 가와미나미의 성격이다. 그러나.......

"19일 밤, 그 시점에서 넌 벌써 츠노시마 사건을 알았어. 그렇지?"
"어떻게 내가 그 사실을 알았다는 거야?"
"범인, 즉 세이지가 가르쳐줘서지."
그런데 시마다는 가즈에 부인과 고지로의 은밀한 관계를 동기로 보고, 기어이 치오리가 고지로의 딸이 아니라는 데까지 상상의 날개를 펴고 만 것이다.

고지로는 형의 아내 가즈에를 그 후지츠보와 연결시켰음이 틀림없다. 불륜의 과실, 치오리의 탄생. 그 때문에 더욱 멀어져 버린 연인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그로 하여금 등나무를 심게 했던 것이다. 후지츠보는 평생 자신과 겐지가 범한 죄를 잊지 못하고, 그것을 스스로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리고 고지로의 연인 또한 후지츠보와마찬가지로.......

결국 사건은 세이지가 계획한 동반자살극이었어."
그리고 가와미나미는 자세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청옥부로 전화를 걸었어. 기다렸다는 듯이 형이 받더군.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목소리로, 형은 이렇게 말했다네. ‘가즈에는 내 거야. 기타무라 부부도, 요시카와도, 모두 죽였어. 새로운 여행길에 나서는 나와 가즈에를 위한 선물이다‘라고. 형은 완전히 미쳐 있었어.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들으려 하지 않고, ‘지옥에서 기다릴게‘ 하고 외치면서 전화를 끊었어.

형은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이지만, 인간적인 면에서는 어떤 결함을 가지고 있었어. 그는 형수를 사랑했지만, 그것은 일종의 광기에 가까운 독점욕으로 가득 찬것이었고, 오로지 갈구하는 사랑에 지나지 않았어. 형은 스스로 자신의 그런 광기를 잘 알았음이 분명해. 그녀에게 자신이 결코 좋은 남편이 아님을 알고 있었던 거야. 그 때문에 그는 형수를 의심했었고. 치오리에 대해서는 아마도 두려움 같은 감정을 품었던 것 같아. 그러나 한편으로는 치오리만은 자기 자식이라고 믿으려 하는,
또는 믿고 싶은 감정이 반......, 그 반이 20년 동안 그와 아내를 이어주고, 아내를 믿게 하며, 마음의 균형을 이루게 하는 유일한 근거가 되어주었지.

"츠노시마 사건, 그것은 형이 꾸민 동반자살극이었어."
"동반자살극?"
"시마다 씨는 그게 마음에 걸리는 것 같은데, 사체가 발견되지 않는 이상 역시 절벽에 버려져서 파도에 쓸려갔을 거야"

"소포로 받은 가즈에의 손은 어떻게 했는가? 지금 어디에 있지?"
"저길세. 저 나무 아래에 그녀의 손이 잠들어 있어......."
그는 형수를 죽이고 나서 죽은 것이 아니야. 자신이 더 이상 살아 있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녀를 데리고 간 것뿐이지."

그렇다. 시마다가 지적한 대로, 고지로는 죽은 치오리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학생들을 저주한다 해서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것이다.

위에 푸석푸석 윤기 없는 머리카락이 덮여 있다. 그것이 진짜 자신의 모습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거칠어 보였다.

나카무라 세이지. 이 십각관을 세운 사나이. 작년 9월, 청옥부에서 죽임을 당한 것으로 알려진 사나이. 만일 살아 있다면, 그 사람이 사건의 범인임이 틀림없다.
나카무라......, 나카무라......, 나카무라......! ‘나카무라?‘

포가 준 약 덕분에 어젯밤은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방금 눈을 뜰 때까지 죽은 사람처럼 잠을 잤다. 꿈을 꾼 기억은 없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상할 정도로 만족스러운 잠이었다.

의식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음을 스스로도 잘 알았다. 혼자서 나가는 것은 위험하다. 일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은 금방 안개 낀 마음 저 안쪽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르루는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두렵다.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다. 그냥 어린애처럼 울면서 도망치고 싶다.......

두렵다.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다. 그냥 어린애처럼 울면서 도망치고 싶다....... 몸을 한 번 부르르 떨더니 밴은 담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더 밝게 화장을 해야지.......
화장품이 든 주머니를 열면서 애거사는 생각한다. 괴상한 사건, 이상한 상황, 이상한 자신의 입장, 미칠 것 같은 이상한 현실 한가운데서 그것은 그녀에게 작은 위안을 가져다주는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세면장 문 건너편에 하얀 물체가 쓰러져 있었다. 섬세한 레이스의 원피스, 축 늘어진 가느다란 손, 그리고 바닥으로 퍼져 나간 검은 머리카락......, 꼼짝도 하지 않고쓰러져 있는 그 물체는 애거사였다.

오른손으로 입을 막고 밴은 일어섰다. 목 안에서 외치고 싶은 충동과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동시에 일었다. 그러나 크게 소리 지를 수 없었다.
"애거사가 당했어?"
"그런 것 같아......."
포는 엘러리를 돌아보았다.
"엘러리, 밴이 괴로워해. 토하게 해줘."

애거사의 사체는 포의 손에 의해 반듯이 눕혀졌다. 눈을 똑바로 뜨고, 입을 조금 벌린 채, 얼어붙은 듯한 그 표정은 고통이라기보다는 경탄에 가까운 것이었다.
"봐. 문에 묶어두었던 끈이 풀어져 있어."
그는 현관홀로 통하는 여닫이문을 가리켰다. 어제 손잡이에 묶어두었던 끈이 풀어져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누군가 밖으로 나갔어."

[제3 피해자]거기에는 붉은 글자의 그 플라스틱 조각이 그들을 조롱이라도 하듯이 붙어 있었다.
아치형으로 덮인 소나무 가지 아래를 빠져나오자, 청옥부 안마당에서 파자마와 카디건 차림의 엘러리가 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십각관에서 보면 소나무 숲으로 가려진 위치다.

그러나........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밖으로 나가서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포가 의자를 들어 올려 힘껏 창을 쳤다. 그 충격으로 르루의 방 창문이 부서졌다.
"맞아 죽었어. 이 부근에 흩어져 있는 돌과 벽돌 조각에 맞은 것 같아......."

"세면대 앞에 이런 물건이 떨어져 있었어. 애거사 것이겠지?"
밴은 검은 주머니를 들고 있었다.
"화장품 넣는 주머니야."
엘러리는 립스틱 두 개를 집어 들었다. 양쪽 뚜껑을 모두 열고 색깔을 비교해보았다.
"청산가리......."

"도저히 믿을 수 없어."
포가 탄식하는 듯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이 다른 네 사람을 죽인 범인이라니?"
"남은 우리 가운데 ‘살인범’이 있다면 말이야, 이제 밝힐 때가 된 것도 같은데, 역시 나서진 않겠지?"

"맞았어, 엘러리. 독이 발라져 있어."
"정말 죽음의 화장이로군. 하얀 드레스, 거기에다 독살. 마치 동화 속 이야기 같아."

"이 모든 것의 시작은 그 플라스틱 조각이었지. 누군가가 미리 준비해서 섬까지 가지고 온 거야. 그다지 부피가 나가지 않으니 눈에 띄지 않게 가져올 수 있었을 거고.
범인은 우리 세 사람 중의 하나일 수 있어.
사흘째 아침, 범인은 살인예고를 실행에 옮겼어. 피해자는 오르치. 범인은 창문이나 문을 통해 그 방에 몰래 들어가서 목을 졸라 죽였어. 끈이 그대로 피해자 목에 남아 있었다고 했지? 포. 그러나 그것은 아무 단서도 되지 못해. 먼저 문제 삼아야 할 것은 범인은 어떻게 오르치의 방에 들어갈 수 있었냐는 거야.
발견 당시, 문도 창도 잠겨 있지 않았어. 양쪽 다 처음부터 그녀가 걸어두지 않았을 가능성도 물론 있지만, 그건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지. 특히 문에 대해서는 더욱그래. 그 전날 살인예고 때문에 그녀는 상당히 불안해하고 있었거든.
그렇다면 어떻게? 가능성은 여러 가지 생각해 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다음 두 가지를 추리해 볼 수 있어. 하나는 그녀가 창 쪽의 고리를 걸지 않았기 때문에 범인이 그곳으로 침입했다는 가설, 또 하나는 범인이 그녀를 깨워서 창의 고리를 풀게 했다는 것."

"그 문제는 일단 제쳐두고 다음으로 넘어가자. 카의 죽음. 이 사건에 관해서도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 하나밖에 없는 그런 유일한 대답은 없어. 단지 그때 논의한 바에 따르면, 우리들 가운데 적어도 밴에게는 카의 커피에 독을 넣을 기회가 없었다는 거야. 미리 컵에 독을 발라두는 방법이라면 누구에게도 기회는 있었지만, 문제의컵에 다른 컵과 구별되는 표시가 없으면 성립되지 않아.
그래서 애거사가 살해당하고 만 지금, 독의 투입이 그 장소에서 마술사 뺨치는 빠른 손놀림으로 행해졌다고 한다면, 유감스럽게도 범인은 나일 가능성이 커. 그러나또......."
"내가 미리 지용성 캡슐에 독을 넣어 먹였다는 말이겠지?"

"이 건물에 널려진 십각형이라는 모양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미스터리라고 할 수 있어. 그러나 이 컵은 십각형이 아니야. 11개의 각이 있어."

"십각형 건물에 십각형 홀, 십각형 테이블, 십각형 천창, 십각형 재떨이, 십각형 컵......, 우리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십각형 무리가 우리들의 눈을 멀게 한 거야."
"애거사가 오늘 아침에 사용한 것은 어제와는 다른 색이었던 것 같은데?"

"몇 년 전 네 어머니는 병원에서 다른 입원환자를 죽이려다가 붙잡혔지. 그때 네 어머니는 정신착란상태에 빠져 있었고......."

립스틱은 항상 그녀의 방에, 주머니 안에 들어 있었지. 오르치와 카가 죽임을 당한 이틀 전부터 애거사는 완전히 신경이 곤두서 있었기 때문에 언제나 방에 열쇠를 걸어두었을 거야. 범인이 몰래 잠입할 가능성은 전혀 없어. 그런데 애거사는 매일 립스틱을 사용했단 말이야. 그런 그녀가 오늘 아침 쓰러졌다면 독은 어젯밤에서 오늘아침에 걸쳐 발라졌다고 보아야 해."

엘러리는 담담하게 말했다. 포는 동요를 감추지 못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 왜 내가 수상쩍다는 거야?"
"동기 때문이지."
"동기? 동기라고? 왜 내가 친구 네 명을 죽여야 하지? 한번 들어보고 싶군, 엘러리."

"르루의 경우는 아주 특이해. 야외의 그런 장소에서, 더욱이 돌에 맞아서......, 그때까지 범인이 집착했던 손목 자르기도 없고 말이야. 뭔가 이질적인 요소가 들어 있어."
"확실히 그래. 그렇지만 우리 세 사람 다 범인일 수 있는 가능성은 마찬가지야." 하고 말하는 포.

"포의 아버지가 무마시켰으니까. 병원에 관해 나쁜 소문이 퍼지면 안 되니까, 죽임을 당할 뻔한 환자에게 돈을 주어 무마했을 거야. 그때의 담당 변호사가 내 아버지의 친구였어. 그래서 나도 알게 되었지. 의사 부인이란 정신적으로 상당히 부담을 안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신경이 약한 여자는 견뎌내기가 힘들지도 몰라. 또는 사랑하는 남편을 환자에게 빼앗겼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평상시는 엷은 핑크색이었어. 로즈 핑크라는 색......."
"하아."

젖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엘러리는 빗속을 달렸다. 소나무 아치를 통과하는 길을 피하여 곧장 오른쪽 청옥부 쪽을 향했다. 소나무 숲을 가로지를 생각이었다.
"기가 차군. 사람은 역시 평소 때 행동에 조심을 해야 한다니까."
그리고 세 사람은 입을 굳게 다물어버렸다.

"우리의 운명이 걸려 있다 생각하고 저 발자국을 잘 기억해 줘."
차가운 비를 맞으면서 그는 지면에 찍힌 몇 개의 발자국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빗물이 고여 흐르면서 서서히 형체를 잃어가는 발자국을 있는 힘을 다해 머릿속에새겨 넣었다.

"그래. 그런데 그 계단 아래는 바다야. 기억하고 있지? 그 아래 바위 더미 양쪽은 절벽이란 것을. 바다에서 이 섬으로 상륙하기 위해서는 이 바위 더미에서 계단으로오르든지, 아니면 선창가에서 계단으로 오르든지 둘 중 하나지만, 그럼 범인은 도대체 이 바위 더미로 어떻게 접근했을까? 여기서 또 어디로 갈까? 선창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코처럼 툭 튀어나온 절벽을 돌아갈 수밖에 없어. 수심도 깊어. 범인은 수영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이 계절에는 무리야. 수온이 몇 도나 될 것 같아?"

"범인은 이 십각관에 있는 우리 가운데 한 사람. 그렇다면 그는 일부러 바위 더미로 내려갈 필요가 없지. 걸어서 여기까지 돌아오면 그만이니까. 발자국 크기와 형태는 지면을 밟을 때 적당히 조절하면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어. 전문 감정원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야. 그러지 않았다는 것은 뭔가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어서 바다 쪽으로 돌아가야만 했기 때문이라 생각되는데......."

"첫째, ‘범인‘이 우리 가운데 있다고 믿게 하는 효과가 있어. 그런 만큼 외부에 대해 무관심하게 되니까."
"그다음은?"
"심리적인 압박을 주는 효과일 거야. 최후에 남은 몇 사람이 서로를 죽이도록 하는 것이 범인이 노리는 거지. 자기 손을 더럽히지 않고 사체의 수를 늘릴 수 있으니까. 어쨌든 이 범인의 최종 목적은 일곱 명 전원을 죽이는 것이라고 보면 돼."

"먼저 요점을 정리해보자. 범인 발자국으로 생각되는 것은 사체와 계단을 왕복하는 두 줄 발자국뿐이었어. 즉, 범인은 바다로 들어간 셈이야. 지금은 우리 가운데 한사람을 범인이라 전제하고, 그가 밟은 루트를 추적해보면...
우선 그는 십각관에서 선창가로 내려가, 거기에서 헤엄을 쳐서 바위 더미까지 온 다음, 계단을 타고 청옥부로 왔다. 범행 후에 다시 그 경로를 따라 여기까지 돌아온거야. 아까 포는 바다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될 필연성이라고 말했는데, 도대체 그런 게 어디 있겠어?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난센스야. 필연성이고 현실성이고 전혀없어."

"즉, 범인은 어디까지나 내부에 범인이 있는 것으로 상황을 조작해야 하는데 말이야. 그렇다면 청옥부 입구와 계단을 일부러 왕복하면서 발자국을 만들어두는 것이좋았을 텐데. 그 정도 공작이라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잖아......."
"발자국이 남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을 거야."
"그리고 그대로 육지로 돌아가 버렸다는 건가? 그럼 ‘제3 피해자‘라는 조각은 어제 붙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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