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필 탐심 - 인문의 흔적이 새겨진 물건을 探하고 貪하다
박종진 지음 / 틈새책방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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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하는 크리스마스 도쿄 여행기 - 특별기고 1]

내 책상 위의 후지오호 ― 플래티넘 #3776 센추리 후지오호 다섯 자루


후지산을 처음 본 것은 이번 여행이지만,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후지산 주변의 다섯 호수를 알고 있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만년필을 모으면서 하나씩 손에 넣었던 플래티넘 #3776 센추리 ‘후지오호(富士五湖) 시리즈’ 때문이다.

후지오호는 후지산 북쪽 기슭을 둘러싼 모토스호(本栖湖, もとすこ), 쇼지호(精進湖, しょうじこ), 사이호(西湖, さいこ), 야마나카호(山中湖, やまなかこ), 가와구치호(河口湖, かわぐちこ)의 다섯 호수를 말한다.

플래티넘은 이 다섯 호수를 하나씩 만년필로 만들었다.

첫 번째는 2011년 ‘本栖(Motosu)’.

두 번째는 2012년 ‘精進(Shoji)’.

세 번째는 2013년 ‘西(Sai)’.

네 번째는 2015년 ‘山中(Yamanaka)’.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가 2016년 ‘河口(Kawaguchi)’였다.

2011년 시작된 시리즈가 2016년 가와구치까지 나오면서 비로소 후지오호 다섯 자루가 완성된 것이다.

플래티넘도 2016년 가와구치를 발표하면서 이를 후지오호 시리즈의 최종작으로 밝혔다.

나는 이 다섯 자루를 모두 가지고 있다.

그리고 다섯 자루 모두 아직 한 번도 잉크를 넣어 사용하지 않았다.

만년필을 사면 당연히 잉크를 넣고 글을 써보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녀석들은 처음 손에 들어왔을 때의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싶었다.

그래서 펜촉에 잉크 한 번 묻히지 않은 채 지금까지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

말 그대로 아직 한 번도 잉크를 머금어보지 못한 처녀 상태의 다섯 자루다.

사진 속에 늘어놓은 순서도 발매 순서 그대로다.


1. 本栖(Motosu) ― 모토스호(本栖湖, もとすこ)

2011년 나온 첫 번째 만년필이다.

후지오호 시리즈의 시작이면서 #3776 센추리의 시작을 알린 모델이기도 하다.

완전히 투명한 몸체가 특징이다.

플래티넘은 이후 공식 자료에서도 本栖를 2011년 후지오호 시리즈의 첫 모델로 소개하면서, 완전한 투명 몸체를 특징으로 들고 있다.

모티프가 된 곳은 모토스호(本栖湖, もとすこ).

후지오호 가운데 가장 깊은 호수이며 물이 맑기로 유명한 곳이다.

그래서 만년필 역시 색을 거의 넣지 않은 투명한 몸체로 호수의 맑은 물을 표현했다.

이번 여행에서 타누키호에 갔을 때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모토스호가 바로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타누키호에서 조금 더 가면 모토스호가 나온다.

책상 위에 있는 만년필의 이름과 실제 여행지의 지명이 그대로 겹쳐졌다.

시간만 있었으면 가보고 싶었다.

결국 이번에는 타누키호에서 돌아섰다.

내 책상 위에는 오래전부터 ‘本栖’가 있었는데 정작 그 이름의 주인공인 호수에는 아직 가보지 못했다.


2. 精進(Shoji) ― 쇼지호(精進湖, しょうじこ)

2012년 두 번째로 나온 모델이다.

모티프는 쇼지호(精進湖, しょうじこ).

사진으로 보면 첫 번째 本栖와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몸체에 아주 옅은 푸른빛이 돈다.

투명한 수면에 아침빛이 스며든 듯한 느낌이다.

本栖의 맑은 투명함과는 또 다르다.

두 자루를 나란히 놓아야 그 미묘한 차이가 제대로 보인다.

처음 구입했을 때는 本栖와 거의 비슷한 투명 만년필처럼 보였다.

‘왜 또 투명일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햇빛 아래에서 바라보니 本栖와는 다른 은은한 푸른빛이 드러났다.

쇼지호의 수면에 아침 햇살이 비치는 모습을 표현한 만년필이라는 설명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이번 여행에서 이른 아침 신칸센을 타고 달리다 구름 사이로 후지산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도 그런 맑은 겨울 아침빛을 보았다.

오랫동안 책상 위에서 보아온 푸른빛이 실제 후지산의 아침 풍경과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3. 西(Sai) ― 사이호(西湖, さいこ)

2013년 세 번째 모델.

모티프는 사이호(西湖, さいこ)다.

이름은 한자로 달랑 ‘西’.

일본어로는 ‘사이’라고 읽는다.

다섯 자루 가운데서도 사진으로 금방 구별되는 만년필이다.

몸체 전체에 물결이 흐르는 것 같은 독특한 가공이 들어가 있다.

빛을 받으면 투명한 몸체 위로 선들이 반짝이면서 호수의 수면을 보는 듯한 느낌이 난다.

처음 손에 넣었을 때도 이 물결무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만년필을 이리저리 돌려보면 빛을 받을 때마다 몸체 위의 선들이 반짝였다.

‘이건 정말 호수 수면을 담아냈구나.’

그렇게 느꼈다.

이번 도쿄 여행에서는 우에노공원의 시노바즈노이케(不忍池)도 걸었다.

물론 그곳은 사이호와 전혀 다른 도쿄 한복판의 연못이지만, 수면 위에 빛이 반짝이는 모습을 바라보니 문득 이 만년필의 물결무늬도 생각났다.

서로 다른 장소의 물이었지만 빛을 받아 흔들리는 수면이라는 점에서는 묘하게 겹쳐 보였다.


4. 山中(Yamanaka) ― 야마나카호(山中湖, やまなかこ)

2015년 네 번째 모델.

모티프는 야마나카호(山中湖, やまなかこ).

세계 3,776자루 한정으로 만들어졌는데, 숫자 3,776은 후지산의 해발고도 3,776m에서 가져왔다.

플래티넘은 후지오호 가운데 가장 높은 해발 약 1,000m에 자리한 야마나카호에 아침의 맑은 빛이 비치며 호수가 반짝이는 모습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투명한 몸체에 빛이 들어오면 수면이 반짝이는 듯 보이도록 가공한 것이 특징이다.

플래티넘의 대표 만년필인 ‘#3776’이라는 이름 자체가 후지산의 해발고도 3,776m에서 비롯되었다.

야마나카 한정판은 이 상징적인 숫자를 한정수량에도 그대로 적용해 3,776자루를 제작했다.

즉 #3776이라는 모델명과 야마나카의 한정수량 모두 후지산의 높이 3,776m를 공통으로 담고 있는 것이다.

이 펜을 구입했을 때도 ‘3776’이라는 숫자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후지산을 모티프로 한 #3776이라는 이름에 다시 후지산 높이만큼인 3,776자루라는 한정수량을 맞춰놓은 셈이다.

이번 여행에서 시라이토 폭포를 바라볼 때는 절벽 사이로 흘러내리는 수많은 물줄기와 그 위에 비치는 햇빛을 보았다.

폭포의 물과 호수의 물은 전혀 다른 모습이지만, 빛을 받아 반짝이는 물의 모습에서는 山中의 투명한 바디가 떠올랐다.


5. 河口(Kawaguchi) ― 가와구치호(河口湖, かわぐちこ)

2016년 마지막으로 등장한 다섯 번째 모델이다.

모티프는 가와구치호(河口湖, かわぐちこ).

앞의 네 자루가 대부분 투명하거나 아주 옅은 색인데, 마지막 가와구치는 완전히 분위기가 다르다.

짙은 청색이다.

플래티넘이 붙인 색의 이름은 ‘Dawn Blue’.

해가 뜨기 직전, 아직 어둠이 남아 있는 시간에 후지산과 가와구치호가 깊은 푸른빛으로 물드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플래티넘의 공식 설명도 ‘새벽을 기다리는 가와구치호’를 중심 이미지로 삼아, 정적 속에 떠 있는 후지산과 호수의 수면을 표현했다고 밝히고 있다.

세계 한정수량은 2,500자루였다.

처음 구입했을 때도 이 짙은 청색은 앞의 네 자루와 확연히 달라 보였다.

투명하거나 옅은 색의 만년필 네 자루 사이에 놓으니 가와구치의 푸른색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마지막은 새벽의 푸른빛으로 장식했구나.’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작품이라는 느낌이 확실했다.

그래서 다섯 자루를 나란히 놓으면 마지막 가와구치가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투명한 네 자루 끝에 짙은 푸른색 한 자루.

후지오호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잘 어울리는 만년필이다.

타누키호에서는 커다란 구름 사이로 후지산이 모습을 드러냈다가 다시 숨기를 반복했다.

겨울의 푸른 하늘과 짙은 구름 사이로 눈 덮인 후지산이 나타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가와구치의 Dawn Blue도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만년필 속에서는 새벽의 푸른빛으로 후지산을 상상했는데, 이날은 실제 후지산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6. 책상 위의 후지산, 창밖의 후지산

本栖, 精進, 西, 山中, 河口.

다섯 자루를 하나씩 모으면서 후지오호의 이름과 위치도 자연스럽게 익혔다.

그런데 정작 후지산은 이번 여행에서 처음 보았다.

신후지역으로 들어가는 신칸센 오른쪽 창밖으로 후지산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렇게 흥분했던 것도 어쩌면 그래서였는지 모른다.

오랫동안 만년필 이름으로 익숙했던 후지산과 그 주변의 지명들이 갑자기 실제 풍경으로 나타난 것이다.

책상 위에서는 투명한 바디와 옅은 푸른빛, 물결무늬, 반짝이는 빛, 새벽의 짙은 청색으로 후지산과 다섯 호수를 상상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눈 덮인 정상과 구름, 시라이토 폭포의 물줄기, 타누키호의 겨울 수면으로 후지산을 직접 만났다.

시라이토 폭포를 지나 타누키호까지 갔고, 그곳에서 흰 머리의 후지산을 질리도록 바라보았다.

타누키호에서 조금만 더 가면 모토스호(本栖湖, もとすこ)였다.

‘저기까지 가면 내가 가지고 있는 첫 번째 녀석, 本栖의 진짜 호수를 볼 수 있는데.’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이번에는 거기까지였다.

책상 위에 다시 다섯 자루를 발매 순서대로 늘어놓았다.

本栖, 精進, 西, 山中, 河口.

아직 어느 한 자루에도 잉크 한 번 묻히지 않았다.

처음 손에 넣었을 때의 모습 그대로 다섯 자루가 나란히 놓여 있다.

그동안은 만년필을 보면서 호수를 떠올렸다면, 이제는 이 만년필들을 볼 때마다 이번에 직접 보았던 흰 머리의 후지산과 타누키호의 겨울 풍경도 함께 생각날 것 같다.

그리고 아직 가보지 못한 다섯 호수도 남아 있다.

언젠가는 이 다섯 자루의 이름을 하나씩 직접 찾아가 보는 여행도 해보고 싶다.

그때는 책상 위에서만 보아온 本栖, 精進, 西, 山中, 河口를 실제 호숫가에 서서 하나씩 만나보게 될 것이다.


7. 그리고 하나 더, 忍野(Oshino)

후지오호 시리즈 이야기를 하다 보면 빠뜨리기 쉬운 만년필이 하나 있다.

오시노(忍野, おしの, Oshino)다.

처음 보면 ‘후지오호 시리즈의 여섯 번째 만년필인가?’ 싶을 정도로 분위기가 비슷하다.

완전히 투명한 몸체를 가지고 있고, 이름 역시 후지산과 밀접하게 연결된 지명에서 가져왔다.

하지만 忍野는 후지오호 시리즈에 포함되는 한정판이 아니다.

2018년에 등장한 #3776 센추리의 별도 정규 모델이다.

그런데 이 녀석의 출생 배경을 따라가면 다시 첫 번째 후지오호 만년필인 本栖와 만나게 된다.

플래티넘은 2011년 발매한 本栖의 완전히 투명한 몸체가 좋은 반응을 얻었고, 그로부터 7년 뒤인 2018년 더욱 높은 투명감을 추구해 忍野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즉 忍野는 후지오호 시리즈의 여섯 번째 작품은 아니지만, 디자인의 계보를 놓고 보면 本栖의 투명한 바디에서 출발한 만년필인 셈이다.

이름의 모티프가 된 곳은 오시노핫카이(忍野八海, おしのはっかい).

후지산의 눈과 비가 지하로 스며들어 오랜 시간을 거친 뒤 용천수로 솟아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맑은 물로 유명한 오시노핫카이의 이미지를 보다 높은 투명도의 만년필로 표현한 것이 忍野다.

本栖가 모토스호의 맑고 깊은 물을 담았다면, 忍野는 후지산에서 흘러내려 지하를 거쳐 다시 솟아난 맑은 물을 담은 셈이다.

같은 투명 만년필이지만 출발점은 조금 다르다.

本栖는 ‘호수’.

忍野는 ‘용천수’.

후지산의 물이라는 점에서는 서로 이어져 있다.

재미있는 것은 忍野가 나온 2018년에도 플래티넘은 후지산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해에는 후지산의 계절 풍경을 담은 후지슌케이(富士旬景)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인 쿤푸(薫風, くんぷう, Kumpoo)도 발매됐다.

한쪽에서는 本栖의 투명성을 이어받은 정규 모델 忍野를 만들고, 다른 한쪽에서는 계절의 후지산을 한정판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후지오호 다섯 자루를 완성하고 나면 끝날 줄 알았는데 플래티넘은 그 뒤에도 후지산을 놓아주지 않았다.

호수에서 시작해 용천수로 이어지고, 다시 계절과 구름으로 이야기를 넓혀갔다.

그러고 보면 #3776이라는 이름부터가 후지산 높이 3,776m에서 가져온 것이니, 플래티넘에게 후지산은 그저 한 번 써먹고 끝낼 소재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내 책상 위에는 本栖, 精進, 西, 山中, 河口 다섯 자루가 있다.

忍野는 그 다섯 자루의 정식 식구는 아니다.

하지만 本栖에서 시작된 투명한 #3776의 계보와 후지산의 물 이야기를 생각하면 그냥 남이라고 하기도 묘하다.

후지오호 다섯 자루 옆에 세워놓으면 꽤 잘 어울릴 녀석이다.

문제는 또 하나다.

이렇게 하나를 알고 나면 또 갖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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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시네마 천국 : 극장판 & 감독판 - 일반판 (2disc)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 살바토레 카치오 외 출연 / 그린나래미디어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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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보고] 영화 「시네마 천국(Cinema Paradiso)」: 떠남의 대가와 끝내 지워지지 않는 기억의 힘

1. 작품 개요
가. 기본 정보
ㅇ (제목/원제) 「시네마 천국(Cinema Paradiso)」
ㅇ (감독/주연) 주세페 토르나토레 / 필립 느와레, 자크 페랭, 살바토레 카시오
ㅇ (제작국가/개봉연도) 이탈리아·프랑스 / 1988년
ㅇ (작품의 위상) 한 소년의 성장과 영화관의 기억을 통해, 영화와 인생, 떠남과 그리움을 함께 그려 내며 오래 사랑받아 온 작품임.

나. 작품의 기본 성격
ㅇ (시대적 배경)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이탈리아 시칠리아 소도시를 배경으로 하며, 넉넉하지는 않아도 사람 사는 정과 활기가 남아 있는 풍경이 짙게 깔려 있음.
ㅇ (공간적 배경) 마을 영화관 ‘시네마 천국’은 단순한 상영관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웃음과 침묵, 기쁨과 답답함이 함께 모였다 흩어지는 삶의 자리로 그려짐.
ㅇ (작품의 성격) 겉으로는 한 소년이 영화를 사랑하며 자라나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떠나온 고향과 남겨 두고 온 사람들, 그리고 시간이 지난 뒤에야 더 크게 다가오는 기억의 무게를 다룬 작품임.
ㅇ (핵심 문제의식) 사람은 왜 어떤 곳을 떠나야 하는지, 그리고 떠난 뒤에도 무엇은 끝내 지워지지 않고 남는지 묻게 하는 영화임.

2. 줄거리 및 서사 구조
가. 기본 줄거리
ㅇ (사건의 시작) 로마에서 영화감독으로 살아가는 살바토레는 어느 날 고향 마을에서 알프레도의 부고를 전해 듣고, 어린 시절의 기억을 하나씩 떠올리기 시작함.
ㅇ (전개의 흐름) 어린 토토는 마을 영화관 영사기사 알프레도와 가까워지며 영화의 세계에 빠져들고, 영사실과 극장을 드나들면서 삶의 기쁨과 슬픔, 첫사랑과 이별을 함께 겪으며 자라남.
ㅇ (중심 흐름) 이 영화의 중심은 단순히 한 소년이 영화인이 되는 과정에 있지 않고, 사람과 시간을 통해 자란 한 인물이 결국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되는 과정에 있음.
ㅇ (결말의 의미) 마지막에 살바토레가 알프레도가 남긴 필름을 보는 장면은, 지나간 세월과 되돌릴 수 없는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순간으로 남음.

나. 서사 전개의 특징
ㅇ (회상의 구조) 현재의 살바토레가 과거를 돌아보는 형식으로 전개되어, 어린 시절의 기억이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지금의 자신을 만든 바탕이었음을 보여 줌.
ㅇ (시간의 축적) 어린 시절, 청년기, 중년으로 이어지는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며, 한 사람의 성장과 상실이 무리 없이 이어짐.
ㅇ (뒤늦은 깨달음) 이 영화는 그때는 몰랐던 마음이 세월이 흐른 뒤에야 얼마나 컸는지를 알게 되는 과정을 끝까지 붙들고 감.

3. 주요 인물 분석
가. 토토와 알프레도
ㅇ (토토의 의미) 토토는 영화를 통해 세상을 배우는 소년이지만, 단순히 영화만 좋아하는 아이가 아니라 호기심이 많고 정이 많은 인물로 그려지며 그 점이 영화 전체의 온기를 만듦.
ㅇ (알프레도의 의미) 알프레도는 영사기사이자 스승일 뿐 아니라, 전쟁으로 비어 있는 자리를 대신 채우는 아버지 같은 존재로서 토토에게 영화와 삶을 함께 가르쳐 주는 인물임.
ㅇ (두 사람의 관계) 토토와 알프레도의 관계는 단순한 친분을 넘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인생 방향을 오래 붙들어 줄 수도 있다는 점에서 깊은 울림을 남김.
ㅇ (떠남의 권유) 알프레도가 토토에게 끝내 고향을 떠나라고 하는 말은 냉정한 충고가 아니라, 더 넓은 삶을 위해서는 결국 떠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먼저 알게 된 사람의 아픈 권유로 보임.

나. 엘레나와 놓쳐 버린 시간
ㅇ (엘레나의 의미) 엘레나는 단순한 첫사랑의 상대라기보다, 토토가 끝내 다시 갖지 못한 시절 그 자체에 더 가까운 인물임.
ㅇ (사랑의 성격) 이 영화에서 첫사랑은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남지 않고, 지나간 뒤에야 더 크게 남는 아쉬움과 상실의 감정으로 함께 남음.
ㅇ (엇갈린 인연) 토토와 엘레나의 관계는 사랑의 실패라기보다, 그때 붙잡지 못한 시간과 선택이 사람 마음에 얼마나 오래 남는지를 보여 주는 대목에 가까움.

다. 마을 사람들과 시네마 천국
ㅇ (공동체의 얼굴) 극장에 모여 함께 웃고 울고 떠드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은 영화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힘든 현실 속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감정을 나누는 자리였음을 보여 줌.
ㅇ (영화관의 의미) 시네마 천국은 토토 개인의 추억을 넘어, 한 시대의 가난과 희망, 외로움과 온기가 함께 머물던 장소로 그려짐.

4. 핵심 주제 및 메시지
가. 떠남과 성장의 대가
ㅇ (떠나야 하는 이유) 이 영화는 떠남을 단순한 성공이나 배신의 문제로 그리지 않고, 더 넓은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감당해야 하는 아픈 선택으로 보여 줌.
ㅇ (성장의 대가) 그러나 떠남은 동시에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과 사람, 그리고 붙잡지 못한 감정을 남기는 일이기도 함.
ㅇ (어른이 된다는 것) 사람이 큰다는 것은 결국 무엇을 하나 얻는 대신, 예전처럼은 돌아갈 수 없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남김.

나. 기억과 그리움의 힘
ㅇ (기억의 잔존) 사람을 오래 붙드는 것은 현재의 성취보다도, 어린 시절의 냄새와 얼굴, 그리고 그때 함께 웃고 울던 기억일 수 있음을 보여 줌.
ㅇ (그리움의 정체) 그래서 「시네마 천국」의 여운은 줄거리 자체보다도, 다시는 만질 수 없는 시절이 있다는 사실에서 더 크게 남음.
ㅇ (극장 철거의 의미) 영화관이 사라지는 장면은 건물 하나가 없어지는 일이 아니라, 한 시대를 채우던 기억과 정서가 함께 밀려나는 순간처럼 느껴짐.

5. 인상 깊은 장면과 기억에 남는 요소
가. 영화관과 영사실의 풍경
ㅇ (영화관의 생명력) 마을 사람들이 극장 안에서 함께 웃고 떠들고 숨죽이는 장면들은, 영화관이 단순한 상영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이 모여 숨 쉬는 장소였음을 생생하게 보여 줌.
ㅇ (영사실의 의미) 어린 토토가 영사실에서 필름과 빛, 소리의 세계를 처음 접하는 장면들은 영화가 한 소년의 인생을 어떻게 사로잡는지를 잘 드러냄.
ㅇ (화재의 상실) 영화관 화재 장면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한때 그 자리를 가득 채우던 열기와 삶의 한 부분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상실로 남음.

나. 마지막 필름 장면
ㅇ (필름의 사연) 알프레도가 살바토레에게 남긴 마지막 필름은 예전에 검열로 잘려 나갔던 키스신들을 모아 둔 것으로, 단순한 편집물이 아니라 사라질 뻔한 감정과 기억을 끝내 남겨 둔 마지막 선물처럼 느껴짐.
ㅇ (감정의 폭발) 그 장면은 오랫동안 눌러 두었던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대목으로, 이 영화 전체의 정서를 가장 강하게 붙들고 있음.
ㅇ (말없는 작별) 직접 긴 설명을 하지 않으면서도, 끝내 남겨 두었던 마음을 필름으로 전하는 방식이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남김.
ㅇ (가장 오래 남는 여운) 결국 이 장면은 알프레도가 끝내 말로 다 하지 못한 마음과, 토토가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알아차리게 되는 시간의 무게가 한꺼번에 만나는 순간으로 보임.

다. 음악이 남기는 정서
ㅇ (음악이 남기는 정서) 이 영화의 감동은 줄거리나 장면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으며,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은 지나간 사람과 시절의 감정을 조용히 끌어올리면서 영화 전체를 잔잔하게 감싸 줌.
ㅇ (관계를 살리는 선율) 「Alfredo and Toto」 같은 곡은 두 사람 사이의 정과 신뢰를 말보다 더 자연스럽게 느끼게 하고, 알프레도가 토토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를 음악으로 먼저 전해 줌.
ㅇ (시절의 감각) 「Childhood and Manhood」에는 어린 시절의 온기와 세월이 흐른 뒤 남는 쓸쓸함이 함께 배어 있어, 이 영화가 단순한 성장담이 아니라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임을 더 또렷하게 만듦.
ㅇ (사랑과 그리움의 결) 「Love Theme」가 흐를 때의 정서는 첫사랑의 설렘만이 아니라, 이미 지나가 버린 시간에 대한 아쉬움까지 함께 품고 있어 영화의 여운을 더 깊게 남김.

6. 개인적 체험과 성찰
가. 개인적 연상과 공감
ㅇ (사라진 자리의 기억)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꼭 영화관이 아니더라도, 예전에는 내 삶 가까이에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져 버린 장소 하나쯤 떠올리게 됨.
ㅇ (떠나고 나서야 보이는 것) 사람도 그렇고 장소도 그렇고, 늘 거기 있을 때는 잘 모르다가 막상 멀어지고 나서야 무엇이 소중했는지 뒤늦게 더 크게 남는 경우가 있음을 생각하게 함.
ㅇ (청년기의 떠남) 특히 알프레도가 토토를 밖으로 밀어내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나 역시 한때 고향 보령의 익숙한 자리를 떠나 서울로 유학을 가야 했던 청년기의 시간이 떠올라 더 남 일 같지 않게 다가옴.
ㅇ (알프레도가 남기는 생각) 알프레도와 토토의 관계를 보고 있으면, 내 삶에도 직접 앞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조용히 방향을 바꾸어 놓은 사람이 있었는지 돌아보게 됨.
ㅇ (음악이 불러내는 기억) 특히 이 영화는 장면보다 음악이 먼저 마음에 남아서, 한참 뒤에 다시 생각날 때도 이야기보다 그때의 정서가 먼저 되살아나는 작품처럼 느껴짐.

나. 오늘의 삶과 연결되는 점
ㅇ (지금 곁에 있는 것의 의미)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지금 곁에 있는 사람과 공간이 늘 그대로 있을 것처럼 여기기 쉬운데, 이 영화는 그런 마음이 얼마나 무심한 일일 수 있는지 돌아보게 함.
ㅇ (남는 것의 의미) 결국 오래 남는 것은 큰 성공이나 이름보다도, 함께 웃었던 시간과 누군가가 내 삶에 남겨 준 조용한 영향일 수 있다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함.
ㅇ (떠남 이후에 남는 것) 사람은 어느 시절을 지나고 나서야 그때의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바로 그 늦은 깨달음의 아픔을 잘 보여 줌.

7. 종합 평가 및 결론
가. 작품의 성취
ㅇ (작품의 강점) 「시네마 천국」은 영화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면서도, 실제로는 성장과 이별, 기억과 그리움을 훨씬 더 깊게 그려 낸 작품임.
ㅇ (깊은 여운) 이 영화의 힘은 감정을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으면서도, 사람과 장소와 음악이 함께 남기는 슬픔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 데 있음.

나. 결론적 소회
ㅇ (종합 평가) 「시네마 천국」은 한 소년의 성장기이면서도, 결국 사람의 인생에서 무엇이 오래 남는지를 조용하지만 깊게 보여 주는 영화임.
ㅇ (한줄 정리) 이 영화는 떠나온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아도, 그때 내 삶을 만들었던 사람과 마음, 그리고 음악은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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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일본 소도시 여행
두경아 지음 / 길벗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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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하는 크리스마스 도쿄 여행기 - 특별기고]

내 책상 위의 후지오호(富士五湖) ― 플래티넘 #3776 센추리 후지오호 다섯 자루

후지산을 처음 본 것은 이번 여행이지만,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후지산 주변의 다섯 호수를 알고 있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만년필을 모으면서 하나씩 손에 넣었던 플래티넘 #3776 센추리 ‘후지오호(富士五湖) 시리즈’ 때문이다.

후지오호는 후지산 북쪽 기슭을 둘러싼
모토스호(本栖湖, もとすこ),
쇼지호(精進湖, しょうじこ),
사이호(西湖, さいこ),
야마나카호(山中湖, やまなかこ),
가와구치호(河口湖, かわぐちこ)의 다섯 호수를 말한다.

플래티넘은 이 다섯 호수를 하나씩 만년필로 만들었다.

첫 번째는 2011년 ‘本栖(Motosu)’.

두 번째는 2012년 ‘精進(Shoji)’.

세 번째는 2013년 ‘西(Sai)’.

네 번째는 2015년 ‘山中(Yamanaka)’.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가 2016년 ‘河口(Kawaguchi)’였다.

2011년 시작된 시리즈가 2016년 가와구치까지 나오면서 비로소 후지오호 다섯 자루가 완성된 것이다.

플래티넘도 2016년 가와구치를 발표하면서 이를 후지오호 시리즈의 최종작으로 밝혔다.

나는 이 다섯 자루를 모두 가지고 있다.

그리고 다섯 자루 모두 아직 한 번도 잉크를 넣어 사용하지 않았다.

만년필을 사면 당연히 잉크를 넣고 글을 써보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녀석들은 처음 손에 들어왔을 때의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싶었다.

그래서 펜촉에 잉크 한 번 묻히지 않은 채 지금까지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

말 그대로 아직 한 번도 잉크를 머금어보지 못한 처녀 상태의 다섯 자루다.

사진 속에 늘어놓은 순서도 발매 순서 그대로다.

1. 本栖(Motosu) ― 모토스호(本栖湖, もとすこ)

2011년 나온 첫 번째 만년필이다.

후지오호 시리즈의 시작이면서 #3776 센추리의 시작을 알린 모델이기도 하다.

완전히 투명한 몸체가 특징이다.

플래티넘은 이후 공식 자료에서도 本栖를 2011년 후지오호 시리즈의 첫 모델로 소개하면서, 완전한 투명 몸체를 특징으로 들고 있다.

모티프가 된 곳은 모토스호(本栖湖, もとすこ).

후지오호 가운데 가장 깊은 호수이며 물이 맑기로 유명한 곳이다.

그래서 만년필 역시 색을 거의 넣지 않은 투명한 몸체로 호수의 맑은 물을 표현했다.

처음 이 펜을 구입했을 때 투명한 바디 안으로 빛이 스며드는 모습이 너무 맑아 한동안 책상 위에 올려놓고 바라보기도 했다.

‘아, 이게 모토스호의 물빛을 표현한 것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여행에서 타누키호에 갔을 때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모토스호가 바로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이 다시 실감났다.

타누키호에서 조금 더 가면 모토스호가 나온다.

책상 위에 있는 만년필의 이름과 실제 여행지의 지명이 그대로 겹쳐졌다.

시간만 있었으면 가보고 싶었다.

결국 이번에는 타누키호에서 돌아섰다.

내 책상 위에는 오래전부터 ‘本栖’가 있었는데 정작 그 이름의 주인공인 호수에는 아직 가보지 못했다.

2. 精進(Shoji) ― 쇼지호(精進湖, しょうじこ)

2012년 두 번째로 나온 모델이다.

모티프는 쇼지호(精進湖, しょうじこ).

사진으로 보면 첫 번째 本栖와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몸체에 아주 옅은 푸른빛이 돈다.

투명한 수면에 아침빛이 스며든 듯한 느낌이다.

本栖의 맑은 투명함과는 또 다르다.

두 자루를 나란히 놓아야 그 미묘한 차이가 제대로 보인다.

처음 구입했을 때는 本栖와 거의 비슷한 투명 만년필처럼 보였다.

‘왜 또 투명일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햇빛 아래에서 바라보니 本栖와는 다른 은은한 푸른빛이 드러났다.

쇼지호의 수면에 아침 햇살이 비치는 모습을 표현한 만년필이라는 설명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이번 여행에서 이른 아침 신칸센을 타고 달리다 구름 사이로 후지산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도 그런 맑은 겨울 아침빛을 보았다.

오랫동안 책상 위에서 보아온 푸른빛이 실제 후지산의 아침 풍경과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3. 西(Sai) ― 사이호(西湖, さいこ)

2013년 세 번째 모델.

모티프는 사이호(西湖, さいこ)다.

이름은 한자로 달랑 ‘西’.

일본어로는 ‘사이’라고 읽는다.

다섯 자루 가운데서도 사진으로 금방 구별되는 만년필이다.

몸체 전체에 물결이 흐르는 것 같은 독특한 가공이 들어가 있다.

빛을 받으면 투명한 몸체 위로 선들이 반짝이면서 호수의 수면을 보는 듯한 느낌이 난다.

처음 손에 넣었을 때도 이 물결무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만년필을 이리저리 돌려보면 빛을 받을 때마다 몸체 위의 선들이 반짝였다.

‘이건 정말 호수 수면을 담아냈구나.’

그렇게 느꼈다.

이번 도쿄 여행에서는 우에노공원의 시노바즈노이케(不忍池)도 걸었다.

물론 그곳은 사이호와 전혀 다른 도쿄 한복판의 연못이지만, 수면 위에 빛이 반짝이는 모습을 바라보니 문득 이 만년필의 물결무늬도 생각났다.

서로 다른 장소의 물이었지만 빛을 받아 흔들리는 수면이라는 점에서는 묘하게 겹쳐 보였다.

4. 山中(Yamanaka) ― 야마나카호(山中湖, やまなかこ)

2015년 네 번째 모델.

모티프는 야마나카호(山中湖, やまなかこ).

세계 3,776자루 한정으로 만들어졌는데, 숫자 3,776은 후지산의 해발고도 3,776m에서 가져왔다.

플래티넘은 후지오호 가운데 가장 높은 해발 약 1,000m에 자리한 야마나카호에 아침의 맑은 빛이 비치며 호수가 반짝이는 모습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투명한 몸체에 빛이 들어오면 수면이 반짝이는 듯 보이도록 가공한 것이 특징이다.

플래티넘의 대표 만년필인 ‘#3776’이라는 이름 자체가 후지산의 해발고도 3,776m에서 비롯되었다.

야마나카 한정판은 이 상징적인 숫자를 한정수량에도 그대로 적용해 3,776자루를 제작했다.

즉 #3776이라는 모델명과 야마나카의 한정수량 모두 후지산의 높이 3,776m를 공통으로 담고 있는 것이다.

이 펜을 구입했을 때도 ‘3776’이라는 숫자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후지산을 모티프로 한 #3776이라는 이름에 다시 후지산 높이만큼인 3,776자루라는 한정수량을 맞춰놓은 셈이다.

이번 여행에서 시라이토 폭포를 바라볼 때는 절벽 사이로 흘러내리는 수많은 물줄기와 그 위에 비치는 햇빛을 보았다.

폭포의 물과 호수의 물은 전혀 다른 모습이지만, 빛을 받아 반짝이는 물의 모습에서는 山中의 투명한 바디가 떠올랐다.

5. 河口(Kawaguchi) ― 가와구치호(河口湖, かわぐちこ)

2016년 마지막으로 등장한 다섯 번째 모델이다.

모티프는 가와구치호(河口湖, かわぐちこ).

앞의 네 자루가 대부분 투명하거나 아주 옅은 색인데, 마지막 가와구치는 완전히 분위기가 다르다.

짙은 청색이다.

플래티넘이 붙인 색의 이름은 ‘Dawn Blue’.

해가 뜨기 직전, 아직 어둠이 남아 있는 시간에 후지산과 가와구치호가 깊은 푸른빛으로 물드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플래티넘의 공식 설명도 ‘새벽을 기다리는 가와구치호’를 중심 이미지로 삼아, 정적 속에 떠 있는 후지산과 호수의 수면을 표현했다고 밝히고 있다.

세계 한정수량은 2,500자루였다.

처음 구입했을 때도 이 짙은 청색은 앞의 네 자루와 확연히 달라 보였다.

투명하거나 옅은 색의 만년필 네 자루 사이에 놓으니 가와구치의 푸른색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마지막은 새벽의 푸른빛으로 장식했구나.’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작품이라는 느낌이 확실했다.

그래서 다섯 자루를 나란히 놓으면 마지막 가와구치가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투명한 네 자루 끝에 짙은 푸른색 한 자루.

후지오호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잘 어울리는 만년필이다.

타누키호에서는 커다란 구름 사이로 후지산이 모습을 드러냈다가 다시 숨기를 반복했다.

겨울의 푸른 하늘과 짙은 구름 사이로 눈 덮인 후지산이 나타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가와구치의 Dawn Blue도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만년필 속에서는 새벽의 푸른빛으로 후지산을 상상했는데, 이날은 실제 후지산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6. 책상 위의 후지산, 창밖의 후지산

本栖, 精進, 西, 山中, 河口.

다섯 자루를 하나씩 모으면서 후지오호의 이름과 위치도 자연스럽게 익혔다.

그런데 정작 후지산은 이번 여행에서 처음 보았다.

신후지역으로 들어가는 신칸센 오른쪽 창밖으로 후지산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렇게 흥분했던 것도 어쩌면 그래서였는지 모른다.

오랫동안 만년필 이름으로 익숙했던 후지산과 그 주변의 지명들이 갑자기 실제 풍경으로 나타난 것이다.

책상 위에서는 투명한 바디와 옅은 푸른빛, 물결무늬, 반짝이는 빛, 새벽의 짙은 청색으로 후지산과 다섯 호수를 상상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눈 덮인 정상과 구름, 시라이토 폭포의 물줄기, 타누키호의 겨울 수면으로 후지산을 직접 만났다.

시라이토 폭포를 지나 타누키호까지 갔고, 그곳에서 흰 머리의 후지산을 질리도록 바라보았다.

타누키호에서 조금만 더 가면 모토스호(本栖湖, もとすこ)였다.

‘저기까지 가면 내가 가지고 있는 첫 번째 녀석, 本栖의 진짜 호수를 볼 수 있는데.’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이번에는 거기까지였다.

책상 위에 다시 다섯 자루를 발매 순서대로 늘어놓았다.

本栖, 精進, 西, 山中, 河口.

아직 어느 한 자루에도 잉크 한 번 묻히지 않았다.

처음 손에 넣었을 때의 모습 그대로 다섯 자루가 나란히 놓여 있다.

그동안은 만년필을 보면서 호수를 떠올렸다면, 이제는 이 만년필들을 볼 때마다 이번에 직접 보았던 흰 머리의 후지산과 타누키호의 겨울 풍경도 함께 생각날 것 같다.

그리고 아직 가보지 못한 다섯 호수도 남아 있다.

언젠가는 이 다섯 자루의 이름을 하나씩 직접 찾아가 보는 여행도 해보고 싶다.

그때는 책상 위에서만 보아온 本栖, 精進, 西, 山中, 河口를 실제 호숫가에 서서 하나씩 만나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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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체격에 중간 키, 짧게 깎은 머리에 윤곽이 뚜렷한 지적인 얼굴. 젊었을 때 흰 정장이라도 입었다면 ‘미청년’처럼 보였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설 연휴 때 선생님을 찾아뵈었는데, 그때 느낌으로는 마음이 많이 약해지신 것 같더군요."

미야가키 상에 관해서는 전부터 우타야마도 들었다. 에도가와 란포가 스스로 자기 이름을 붙인 문학상을 만들었듯이(운영 주체는 당시의 일본탐정작가클럽이었지만 기금은 란포가 기부했다) 미야가키 선생 또한 자기 이름을 그런 형태로 남기고 싶다고 거리낌없이 공언했다.

"십 몇 억 엔이라니, 만약에 그런 엄청난 재산을 둘러싸고 상속 다툼이라도 일어나면 그야말로 살인사건이 나는 건 문제도 아니겠네."

"뜻하지 않은 사태가 일어나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검토하느라 이렇게 늦어졌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뜻하지 않은 사태?"

그리고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리더니 이를 악문 듯한 말투로 그 사태를 전했다.

"미야가키 선생님께서 오늘 아침, 자살하셨습니다."

"하하, 하하하……."

이윽고 처음 소리를 낸 사람은 기요무라였다. 그는 문 앞에 선 이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테이블에 한 손을 짚고 일어섰다.

"안 속아요, 이노 씨. 그런 수법은 먹히지 않죠."

기요무라가 익살스러운 말투로 내뱉었다.

"만우절 놀이에는 이제 슬슬 식상할 때가 되었다니까요."

그 말에 실내의 긴장이 단숨에 풀어졌다. 기요무라는 "하마터면 속을 뻔했네"라고 중얼거리며 다시 소파에 앉았다.

"뭐 그래도 모처럼 선생님이 꾸미신 계획을 무시하기도 난처하니 여기서 적당히……."

"오해하시면 곤란합니다."

"안타깝게도 미야가키 선생님은 정말로 돌아가셨습니다."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이때 초대받은 손님들 각자의 머릿속에는 과연 어떤 생각이 스쳐갔을까.

"그런 문제에 관해서는 절대로 착오가 없을 겁니다. 침실 침대에서 수면제를 많이 드신 모양입니다."

아아…… 하는 긴 탄식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우타야마는 이노에게 걸어가며 물었다.

"유서는?"

"있었습니다."

"원래는 당연히 바로 경찰에 신고해야겠죠. 하지만 지금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느냐 하는 매우 특수한 상황에 놓이고 말았습니다."

"말씀하시는 뜻을 잘 모르겠는데요."

"그건…… 여기서 설명드리기가 좀 힘든 문제라서."

"잠깐만요. 분명히 맞는 말씀입니다. 경찰에 알려야 하죠. 하지만 방금 말씀드렸다시피 매우 특수한 상황이라……. 그러니까, 돌아가신 미야가키 선생님께서 당분간 경찰에 연락해서는 안 된다는 유언을 남기신 겁니다."

불쑥 일어선 시마다는 손에 든 검은 물체를 테이블 위에 내던졌다.

"이거 접는 방법을 가르쳐드리기로 약속했는데."

두 개의 팔에 두 다리, 뾰족한 두 귀에 창처럼 생긴 꼬리, 등에는 날개 두 개가 달려 있는 그것은 검은 종이로 만든, 우타야마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종이접기였다.

아리아드네.

괴물 미노타우로스와 마찬가지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미노스 왕의 딸이면서도 젊은 테세우스에게 반해, 괴물을 쓰러뜨리기 위해 미궁으로 들어가는 그에게 길을 찾을 때 쓸 실꾸리를 건네준 공주…….

이 저택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응접실 이름이 ‘미노타우로스’이고, 방금 나온 넓은 홀은 ‘아리아드네’라고 불린다. 이처럼 이 저택에 있는 열 몇 개의 방에는 각각 미노스 궁전의 에피소드와 관련 있는 신화 속 인물들의 이름이 붙어 있다.

복도 폭은 1미터도 되지 않는다. 실내나 현관 계단 부분과는 달리 바닥에 카펫이 깔려 있지 않아 적갈색 플라스틱 바닥재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높은 천장은 복도 폭을 한 변으로 삼은 정사각형 유닛(철골과 유리로 이루어진 그 납작한 피라미드가 그것이다)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리는 푸른 색이 감도는 두툼한 무늬 유리인데, 그리로 스며드는 자연광은 이미 저녁 어둠에 젖어가고 있었다.

복도는 직선과 직각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복잡하게 얽혀, 저택 중앙부의 꽤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복도가 이 저택 명칭의 유래가 된 ‘미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미궁’ 주인의 너무도 갑작스러운 ‘자살’.

‘이제 와서 장수 기록에 도전할 생각은 전혀 없네.’

석 달 전 담담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던 미야가키…….

그때 이미 그 양반은 오늘 일을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그런데 이상하다…….

이노 미쓰오가 보여주는 기묘한 말과 행동은 무엇일까.

가속도가 붙은 어둠이 더욱 짙어지는 미로 모양의 복도를 오른쪽으로 돌고 왼쪽으로 돌고…… 이윽고 목적지인 미야가키의 서재에 도착했다.

MINOSS.

새겨진 글자를 눈으로 더듬었다.

미노스.

명장名匠 다이달로스에게 명령을 내려 미궁을 만들게 한 크레타 왕의 이름이 제작자의 실수인지 로마자로 표기한 그 철자에는 S가 하나 더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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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약속했던 4시에서 한 시간이나 지났는데도 미야가키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비서인 이노 미쓰오도 나타나지 않았다.

"설마 이노 씨가 오지 않았을 리는 없을 텐데……."

"예를 들면 미야가키 선생님이 몸이 좋지 않다거나."
우타야마는 3개월 전 자기 건강을 ‘형편없다’고 평하던 노작가의 어색한 웃음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 그럴 수도 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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