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테스트-미로관의 살인......인가? 흐음, 사상 최대의 현상 공모라, 역시 미야가키 선생님이셔. 멋진 표현이야."
스자키 씨, 기요무라 씨, 후나오카 씨, 하야시 씨가 쓸 방에는 모두 같은 기종의 워드프로세서가 놓여 있습니다. 문서 보관용 플로피디스크가 세 장, B5 인쇄용지가 5백장, 장비 매뉴얼을 비롯한 기타 필요한 물품이 모두 갖추어져 있을 겁니다만 혹시 부족한 것이 있다면 제게 말씀해주십시오. 방 배정은 아시다시피 이렇게 복잡한집이라 그림으로 그려 복사해두었습니다."
고용주의 ‘유언‘을 충실하게 지켜야 한다는 굳센 의무감이 빚어낸 행동거지일까? 아니다. 단순한 직업 의식만으로는 이토록 냉정하게 대처할 수 없으리라. 거기에는아마 미야가키요타로라는 특이한 작가의 취미와 성격, 버릇(좀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일종의 사상)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이 자리 잡고 있을 게 틀림없다.
구로에 다쓰오가 돌아가자 이노가 현관문을 잠갔다. 그리고 현관에 있는 홀과 지하로 내려오는 계단을 가르는 격자문에도 자물쇠를 채웠다. 뒤이어 손님들이 해야 했던 일은 내일부터 6일까지 잡혀 있는 각자의 스케줄 조정 작업이었다. 한동안 넓은 홀에 딱 한 대 있는 전화기는 주로 도쿄로 거는 시외전화로 몸살을 앓았다.
A4 용지에는 이 저택 평면도가 그려져 있고, 각 방의 이름과 배정된 사람의 이름이 또박또박한 글씨로 적혀 있었다. 우타야마의 방은 ‘포세이돈‘, 게이코의 방은 ‘디오니소스‘. 둘 다 동쪽에 있으면서 이 넓은 홀에서 가장 가까운 방이었다.
"묘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게? 원래 이 손바닥에는 테세우스에게 건네는 그 실꾸리가 놓여 있어야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렇군요. 하지만 이건 실꾸리를 건네준 뒤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요?" "흐음, 건네준 뒤라.......
"아, 제가 내일 차를 가지고 쇼핑하러 나갔다 올 겁니다. 여러분, 필요한 물품을 오늘 밤 안으로 메모해 제게 건네주십시오. 한꺼번에 구입하겠습니다. 그러면......!
미로 부분을 빙 둘러싸는 형태로 나머지 공간을 열한 개의 방이 채우고 있다. 동쪽에 네 개, 서쪽에 일곱 개. 이런 방에도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각각 신화에 등장하는인물들의 이름이 붙어 있고, 평소 가도마쓰 후미에가 쓰는 ‘폴리카스테’가 주방에서 출입할 수 있다는 점을 예외로 치면 어느 방을 찾아가더라도 가운데 있는 미로를거쳐야 하다. 그래서 모든 방에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배려였다.
지상에 있는 현관에서 계단, 그리고 넓은 홀은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건물 남쪽 끄트머리에 위치한다. 중간에 아주 넓은 미로 부분을 사이에 두고 반대편에는 응접실인 ‘미노타우로스‘가 있다. 응접실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도서실과 오락실이 있는데, 각 방에는 미노스 미궁을 함께 설계한 ‘에우팔라모스‘와 ‘다이달로스‘의 이름을붙였다. 미노스 왕의 이름을 지닌 주인의 서재와 침실은 도서실인 ‘에우팔라모스’ 옆에 자리 잡고 있다.
"흐음. 이상하군, 이 오른손 모습이." 시마다는 브론즈 상의 오른손 부분을 슬쩍 손가락으로 건드렸다. "뭔가를 손바닥 위에 얹어 내미는 느낌이 드는군요."
청년, 여성, 노인, 짐승...... 모두 다른 얼굴이었지만 그 가면들의 흰 눈은 희미한 조명 때문인지 전부 이쪽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미로의 길표시 대신 써라"라는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지만 분명히 그다지 기분 좋은 장식물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말이야, 이 복도를 걷고 있으니 왠지 여기저기에 뭔가 숨어 있는 느낌이 들어서 아주 기분이 께름칙해. 저 가면만 해도...... 안 그래?" 복도 벽에는 여기저기 흰 석고 가면이 걸려 있었다.
"으음, 내 방은 ‘코카로스‘. 이 앞에서 왼쪽으로 꺾어져야 하나? 코카로스가 어떤 인물인지 아십니까?" "시칠리아 섬의 왕 이름이죠. 미노스 왕으로부터 도망친 다이달로스를 보호해줍니다."
"미궁 속에 사는 괴물을 쓰러뜨린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를 데리고 크레타 섬에서 빠져나왔어. 그 뒤에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에게 버림받는데, 그때 디오니소스가나타나서 아리아드네를 아내로 삼았다는 에피소드도 있지."
"아, 우타야마 씨 방은 그쪽입니까? 아하, ‘포세이돈‘인가? 미노타우로스를 태어나게 한 장본인이로군요."
"왠지 저 방에 미야가키 선생님 시신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나는......." 우타야마는 한숨을 내쉬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상식을 벗어난 상황 전개로 인해 깜빡 잊을 뻔했는데...... 그렇다. 그게 현실이다.
미노스 왕의 왕비 파시파에가 포세이돈으로부터 선물받은 흰 수소에 대해 품은 비정상적인 애정의 결과로 기형적인 왕자 미노타우로스가 태어나게 되었으니까.
요 몇 해 사이 널리 보급된 일본어 워드프로세서 이야기다. 제조회사들이 다투어 발매하는 기계는 대부분이 JIS 가나 배열‘이라고 불리는 키보드 문자 배치 방식을채택하고 있다. 일본어 가나를 입력하는 방법으로는 따로 로마자 입력 모드도 준비되어 있어 어느 쪽을 쓰는가는 사용자가 마음대로 설정할 수 있다. 미야가키 요타로가 요 이삼 년간 사용하던 문호라는 기종(그래서 이번에 준비된 것도 그것이었을 테지만)도 예외가 아니다.
"그 워드프로세서는 NEC에서 만든 ‘문호文豪‘라는 기종인데요, 하야시가 평소에 쓰던 것과 사용법이 달라 곤란하다는 겁니다." 하지만 후지쓰에서 내놓은 오아시스라는 기종은 예외다. ‘엄지 시프트‘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입력 방식을 사용하여, 자판의 글쇠 수가 전보다 훨씬 줄었다는 장점은있지만 그 대신 키보드의 자판 배열이 다른 기종과 완전히 다르다. 이 오아시스를 사용하는 하야시로서는 입력 방식이 전혀 다른 기종을 써야 하기 때문에 불평을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호오, 악마인가요?" "귀에 날개, 입, 발, 손가락 다섯 개까지 제대로 달려 있죠. 종이 한 장을 써서 가위로 오리지도 않고 이런 모양을 만들 수 있군요."
"예, 그렇습니다. 그리고 오카야마 현 산속에 있는 수차관도 기묘한 살인사건의 무대가 되었죠."
"그 까다로운 선생님께서 그렇게 마음에 들어 하셨다니 시마다 씨도 대단하군요." "그런가요?" 시마다는 멋쩍어하며 두툼한 입술을 동그랗게 내밀었다.
"모두 나카무라 세이지라는 건축가가 설계한 집이죠. 세이지라는 그 인물은 일 년 반쯤 전에 세상을 떠났는데, 사실은 그가 살던 규슈에 있는 청옥부에서 어떤 사건이일어났을 때 죽은 거죠."
"오이타 현에 있는 무슨 섬에서 일어난 그 살인사건이죠? 분명히 그 사건이 일어난 지 반년 뒤에 같은 섬에 있는 십각관에서도......."
"우타야마 씨는 술에 취하면 애벌레가 돼요. 어디서건 바닥을 기어다니고 데굴데굴 구르며 ‘나는 애벌레다‘ ‘원시시대로 돌아갈테야‘ 하면서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하죠."
우타야마는 게이코가 결혼한 뒤에 병원을 그만두는 걸 반대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아깝다고들 했지만 우타야마는, 퇴사 후 평온해진 게이코의 얼굴을보자 병원을 그만둔 게 진짜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을 나가는 여성의 뒷모습을 약간 굳은 표정으로 가만히 지켜보는 기요무라. 그 모습을 보며 우타야마는 쓸데없는 상상을 하고 말았다. 기요무라와 후나오카 두 사람은 작년 여름까지만 해도 부부 사이였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세이조에 있는 미야가키의 집에서 알게 되었다. 후나오카가 기상 신인상을 받고 기요무라가 이듬해에 그 뒤를 이었을 때이니 지금으로부터 사 년 전 봄이다.
기요무라의 바람기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느니, 거꾸로 후나오카에게 불륜 상대가 생겼다느니 하는 갖가지 소문이 떠돌았는데, 아무래도 적극적으로 헤어지려고한 쪽은 아내였던 모양이다. 위자료를 둘러싼 다툼은 없었지만 기요무라는 이혼을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뒤로도 심사위원들의 미스터리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결국 자정이 가까워졌을 무렵 게이코가 먼저 일어섰다. 이때 우타야마는 아내를 방까지 데려다주었는데, 다시 넓은 홀로 돌아오다가 몇 번이나 길을 잘못 들었다. 한밤중의 어두컴컴한 미로에서 홀로.......
이 ‘뭔가 과잉인 것‘(우타야마 자신도 엄밀한 정의는 내릴 수 없지만)을 기준으로 생각해보았을 때, 네 명의 작가 중 일단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스자키 쇼스케일 것이다. 다만 스자키가 닷새 안에 원고지 1백 매를 써낼 수 있다면 말이다. 평소 그가 쓰는 속도를 생각하면 써내지 못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밤은 그렇게 천천히 깊어가고....... 마지막으로 시계를 확인한 것이 오전 1시가 조금 지났을 때였나? 소파에서 아무렇게나 곯아떨어진 우타야마는 낯선 미로를 끝없이 방황하는 꿈을 반복해서 꾸었다.
아침....... 온갖 잡귀들이 날뛰는 어둠의 손아귀에서 풀려난 그 방 안에는 결국 어둠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자가 한 명 싸늘하게 남겨져 있다.
예로부터 죽음과 윤회의 상징으로 여겨온 미로를 품에 안은 이 저택, 미로관. 그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정사각형 방이다. 그 사람은 푹신한 상아색 카펫 위에 천장을 보고 쓰러져 있었다. 부자연스럽게 경직된 팔과 다리. 손톱을 세운 듯이 굳어버린열 개의 손가락....... 이미 생명을 어둠의 혼돈 속에 빠뜨린 하나의 살덩이.
"스자키 씨가 응접실에서 죽었습니다." "스자키 씨가...... 예에엣?" 우타야마는 귀를 의심했다. 이게 현실인가? 혹시 아직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젯밤 홀을 나갔을 때의 옷차림 그대로였다. 검은 바지에 수수한 갈색 스웨터. 앙상하게 마른 빈약한 신체가 천장을 보고 쓰러져 꼼짝도 하지 않았다. 목 주위를 중심으로 카펫에 밴 검붉은 색이 그의 죽음을 또렷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 강렬한 핏빛 이상으로 사람들을 전율하게 만든 것이 있었다. 시체의 기이한 모습이었다. 목이 꺾여 있었다. 아니, 거의 떨어져나갔다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리리라.
"이 문 열쇠는?" "가도마쓰 씨가 불러서 제가 여기 왔을 때는 잠겨 있지 않았는데요."
시체의 괴이한 모습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원래 있어야 할 위치에서 제거된 머리를 대신해 뿔이 두 개 난 검은 물소의 머리가 놓여 있었다.
"지금 그런 소리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요." "긴급 사태라는 건 압니다. 하지만 지금 경찰을 부르면 자연히 유산을 건 콘테스트는 중지되고 수억 엔이나 되는 상금이 날아갑니다. 우리 처지도 생각해주세요."
"물론 경찰에 연락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전에 우선 이노 씨의 의견을 들어봐야겠죠. 사메지마 선생, 이노 씨는 아직?"
"저 물소 머리는 원래 이 방에 있던 겁니까?" "정면 벽에 걸려 있던 건데요. 그보다 어서 경찰에......." 그때 기요무라가 소리쳤다. "잠깐만! 경찰에 연락한다고요? 그러면 미야가키 선생님의 유언을 거스를 셈입니까?"
수화기를 고쳐 쥐고 귀에 댔다. 그런데 발신음이 들리지 않았다. "왜 그러세요?" 우타야마를 지켜보고 있던 사메지마가 물었다.
우타야마를 지켜보고 있던 사메지마가 물었다. "전화가 끊어졌어요." "예에?"
"기요무라 씨, 이게 남의 일이 아니잖아요? 지금 이야기했듯이 어젯밤부터 오늘 아침 사이에 이 집은 지하 밀실이라고나 해야 할 상태였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살인이 일어났다면 당연히 여기 모인 사람 가운데 범인이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우리들 가운데 범인이?"
전화선이 끊어졌다니. 대체 누가 끊었다는 거지? 갑자기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 우타야마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두 손으로 입을 막으며 주방으로 달려갔다. 싱크대에 머리를 집어넣은 다음 수도꼭지를 최대한 열어놓고 한바탕 토했다.
"저 현관문이 이 저택의 유일한 출입구. 어제 구로에 선생이 돌아갈 때 이노 씨가 자물쇠를 채운 뒤 내내 닫혀 있었을 테고. 오늘 아침에 이노 씨가 물건을 사러 나갔다고 하더라도 그가 나가면서 다시 문을 잠가둔 거다. 그리고......."
가도마쓰는 어질러진 술잔들을 정리한 뒤 복도로 나갔다. 이노가 오락실과 응접실도 치워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먼저 오락실을 들여다보고 다음에 응접실로 갔다. 거기서 그 사태를 발견했다고 한다.
오전 9시, 가도마쓰 후미에는 주방으로 나와 아침식사 준비를 시작했다. 대략 준비를 마친 시각이 10시 조금 전. 홀에서는 우타야마가 소파에서 잠들어 있을 뿐 아직일어나 나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런 상태라면 10시 정각에 사람이 모두 모일 것 같지 않았다.
"사람을 죽여 경찰이 오게 되면 모든 게 끝장이잖소?" "그래서 경찰에 연락할 수 없도록 전화선을 끊었겠죠." "아무리 그래도 이노 씨가 돌아오면 결국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건 그렇군요. 하지만 과연......."
"사인은 조사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겠죠. 목이 잘려 죽었는지, 죽은 뒤에 목을 자른 건지. 어쨌든 절단에 사용된 걸로 보이는 도끼가 소파 뒤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이노 씨가 너무 늦는 거 아닙니까?" "그렇군요. 아무리 여러 사람이 요청한 물건을 산다고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텐데." 시마다가 턱을 쓰다듬으며 대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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