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장을 채웠군."
초조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며 다시 문짝 틈새로 팔을 집어넣었다. 빗장을 풀자 드디어 문이 열렸다.
"후나오카 씨!"
어두운 실내로 들어서서 조명 스위치를 찾으려던 시마다의 손길이 딱 멈췄다. 조금 전 메데이아의 방에서 보았던 ‘함정‘을 떠올렸기 때문이리라.

"아, 역시......."
문 쪽으로 머리를 두고 상아색 카펫에 엎어져 있는 후나오카 마도카의 모습이 형광등 불빛 아래 드러났다.

예전에 미로나 미궁은 일종의 마귀를 쫓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마귀는 직선으로만 날아다닌다고 믿은 고대 중국인들은 도시의 성벽을 이중으로 만들고, 각 성문의 위치를 서로 어긋나게 마련해 구불구불한 오솔길을 만들었다. 영국에서는 어느 시대엔가 악마와 마녀의 침입을 막기 위해 현관 바닥에 미로무늬를 그렸다는 이야기도 있기는 하지만.......

아니다. 또 한 가지 가능성이 있다.
미지의 제3자가 이 집 어딘가에 숨어 있을 가능성이다. 우리 일행이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가,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살인마가 이 집에 숨어들어 있다면......?

"문은 잠겨 있었죠. 빗장도 안쪽에서 걸려 있었습니다."
시마다의 손이 붙박이 옷장 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문을 부수고 들어와보니 보시다시피 후나오카 씨 이외에는 아무도 없어요."

"무슨 일이야? 지금 몇 시지?"
"큰일 났어. 또 사건이 일어났어."
"뭐?"
졸린 눈을 비비던 게이코가 입을 크게 벌렸다. ‘사건‘이라는 말에 잠이 확 깬 모양이다.

"아직 죽지 않았어요."
우타야마는 후나오카의 손목을 잡은 채 시마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시마다가 입을 열기도 전에 거의 반사적으로 다음 행동을 취했다.
"집사람을 데리고 오겠습니다!"

"앗!"
우타야마가 소리를 지르며 후나오카 곁으로 달려갔다.
"왜 그러세요?"
"지금 후나오카 씨가 움직인 것 같아요."

그건 그 차다. 그 차는.......
아니, 지나친 생각일까? 아무런 관련도 없을지 모른다.
어쨌든 그만 자자. 약 기운이 도는 모양이다. 내일 다시 생각해보면 되겠지

"그 워드프로세서를 살펴봐주세요. 아까 제가 궁금해서 전원은 켜두었습니다."
"그러면...... 또?"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후나오카 씨는 아직 작품에 착수하지 않은 것 같더군요."

스자키씨를 죽이는 일보다도 그런 모습으로 만드는 게 범인에게는 더 중요했던 게 아닐까? 아무런 근거도 없지만 그런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혹시 나는 지금 내 작품에 착수해서는 안 되는 게 아닐까?

"예, 후나오카 씨가 자기 직전에 적은 글인 것 같은데, 거기 마지막 부분에......."
우타야마가 대답한 그 순간이었다.
불쑥 짐승이 낮게 신음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잠시 모두들 당황했다. 그 소리가 침대 쪽에서 흘러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후나오카가베개에서 머리를 번쩍 들어 올리고 있었다.

"누가 타월 좀 주세요."
구토는 머리에 충격을 받았을 때 나타나는 가장 위험한 증상이라는 정도의 지식은 우타야마도 알고 있었다.

"그나저나 후나오카 씨 상태는 어떻습니까?"
게이코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사메지마가 안고 있던 담요를 건넸다. 게이코는 담요를 펼쳐 후나오카의 몸을 덮었다.
"정신을 차릴 기미는 전혀 없네요......."

30분 뒤 후나오카 마도카는 숨을 거두었다. 게이코가 염려한 대로 후두부에 입은 타격은 후나오카의 뇌에 치명적인 손상을 미친 셈이다.
시각은 오전 5시 35분.
지상은 이미 새벽을 맞이하고 있었다.

분명히 그건 수기 범주에 들 것이다. 적어도 소설은 아니다. 실제로 취재한 모양을 갖춘 수기 형식의 소설을 쓰려고 했던 것도 아닌 듯하다.
"내가 소설을 쓰지 않으면 범인은 움직임을 취할 수 없을 것이다, 라는 식으로 적혀 있죠. 그렇게 믿고 싶은 심리는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뇨. 잘 모르겠지만 자꾸 신경이 쓰이는군요."
그러고 보니 시마다는 여기 온 첫날부터 이 아리아드네 브론즈 상이 마음에 걸리는 듯했는데.......

"날이 밝아오지만 지금 해산할 수는 없을 겁니다. 아무래도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계속 감시해야만 할 상황에 놓이고 만 것 같군요."
"계속 감시한다고요?"
사메지마가 고개를 들어 물었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부정할 수 없죠. 하지만 말입니다, 이노 씨가 범인이라고 단정적으로 이야기할 수도 없어요. 스자키 씨뿐만 아니라 모두 네 명이나 살해된 지금은."

시마다는 복도로 나와 오른쪽에 있는 그 아리아드네 동상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아리아드네를 꼼꼼하게 살피며 앞으로 내민 아리아드네의 오른손으로 슬쩍 손을 뻗었다. 우타야마가 부르는 소리는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했다.

시마다가 턱을 괸 손을 풀며 등을 쭉 폈다.
"제게는 뭔지 모르지만 보일 듯 말 듯한 게 있습니다. 그런데 도무지 모양새가 그려지지 않는군요. 아직 어렴풋해서......."

범인의 자기 주장 같은 것을 느끼게 되는군요. 연극성, 극장성......이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관객, 즉 우리 눈을 필요 이상으로 의식한 연출이라는 의미에서요?"

시마다는 아직도 그때 제시한 목 자르기의 논리에 미련이 남는 모양이었다. 범인은 뭔가 뜻하지 않은 사정으로 카펫에 묻은 자기 핏자국을 숨기기 위해 목을 잘라내는 조작을 해야 했다고.

그렇다. 특히 하야시가 쓰던 워드프로세서에 남겨진 그 다잉 메시지의 뜻이. 그리고 아까 후나오카가 잠깐 의식을 되찾았을 때 보여준 그 동작은 무슨 뜻일까. 팔을들어 손을 뻗은 후나오카는 그때 분명히 시마다 쪽을 가리키려고 했다. 그건.......
자기를 습격한 상대를 보았다는 건가?
피할 수 없이 떠오르게 되는 의혹.
그가 범인이라고?

"사실은 말입니다, 기요무라 씨와 하야시 씨가 살해된 현장도 그들이 쓰던 작품을 모방한 듯한 상황이었습니다."
"정말인가요?"

"모르십니까, 사메지마 선생?" 시마다가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 미로를 설계한 나카무라 세이지가 그런 장치를 하는 취미가 있었다는 사실을. 건축주가다른 사람도 아닌 미야가키 요타로 선생님이었다는 점을 함께 생각하면 이 집 어딘가에 그런 뭔가가 장치되어 있을 가능성은 크다고 생각합니다만."

"사메지마 선생, 혹시 선생도 이 집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비밀 방 같은 것이 있다거나 하는 생각을......?"
우타야마가 무심코 끼어들었다. 어젯밤 시마다가 한 이야기가 떠올랐던 것이다. 사메지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비말 방? 그런 게 있습니까?"

거기까지 듣고서야 우타야마는 겨우 생각이 미쳤다.
분명히 이노 씨가 몸을 숨길 곳이 있다. 자물쇠가 걸린 지상의 문밖이 아니라 이 지하 저택 안에.

"미야가키 선생님의 서재 말입니까?"
"그렇죠."
잠옷 위에 걸친 재킷 주머니에 두 손을 넣으며 사메지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후나오카 씨는 ‘마지막 피해자‘로서 자기 자신이 습격당하는 연극을 꾸몄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기요무라 씨를 죽이고, 하야시 씨를 죽인 뒤에 자기 방에서 자해를한 다음 경보기를 울렸겠죠. 피해자 가운데 한 명이 되어 혐의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는 식의 패턴입니다. 하지만 어떤 방법을 썼는지는 몰라도 자기 머리를 때렸을 때필요 이상으로 타격을 입어 결과적으로 목숨을 잃게 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럼 편지는 범인이?"
"예,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시마다가 자신 있는 표정으로 단언했다.

맞아, 그 석고 가면이다!
기요무라의 방을 혼자 찾아갔을 때, ‘메데이아’에서 시체를 발견한 뒤 시마다와 둘이서 하야시의 방으로 갔을 때, 그때 꺼림칙하게 느껴지던 위화감의 정체를 그제야깨달은 것이다.

"제가 보기에 이 집 객실은 모두 거의 같은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문은 안쪽 우측으로 열리죠. 조명 스위치는 들어가서 왼쪽 벽에 있습니다. 그래서 조명을 끈 방을찾아간 기요무라 씨는 자연히 왼손으로 스위치를 더듬다가 독침 함정에 걸려들고 만 것으로 여겨집니다. 가령 그 방이 아니라 이 넓은 홀이나 오락실, 도서실 같은 방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홀은 깊은 밤에도 사람이 올 가능성이 있어 함정을 파기에는 적합하지 못합니다. 눈치를 채셨을지 모르겠는데 오락실과 도서실과 응접실은 문이 안쪽 좌측으로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스위치가 방으로 들어가 오른쪽 벽에 붙어 있죠. 게다가 객실에 비해 문에서 좀 떨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만약 이런방에 그 함정을 설치한다고 하더라도 ‘먹잇감‘은 사전에 위치를 확인하고 스위치를 켜려고 하기 때문에 함정이 들통 날 우려가 있죠."

"어떻습니까? 아주 똑같죠?"
시마다의 말 그대로였다.
두 방으로 가는 복도는 구부러지는 모양새나 막힌 부분의 위치까지 모든 것이 거의 똑같은 구조였다. (‘미로관 부분도‘ 참조)

"그다음에 주목해주셨으면 하는 것은 우타야마 씨가 기요무라 씨의 방을 찾아갔을 때 책상 위에 이 평면도가 놓여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기요무라 씨는 오락실로 갈때 이 평면도를 가지고 가지 않았습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오락실은 찾아가기 매우 쉬운 곳에 있고, 거기서 자기 방으로 돌아오는 일도 그저께부터 몇 번이나 같은길을 걸었으니 이미 외우고 있었다는 이야깁니다. 예를 들면 길 찾기에 가장 좋은 표식으로 벽에 걸린 석고 가면을 들 수 있습니다."

열여섯 개의 갈림길 가운데 ‘테세우스‘와 ‘메데이아‘로 가는 길은? 남쪽에서 헤아려 열세 번째, 그리고 열 번째.
"......아아."
우타야마는 그제야 그걸 눈치채고 저도 모르게 소리를 냈다.

"어쨌든 범인은 어디선가 니코틴 농축액과 퍼티, 바늘을 조달해 독살을 위한 함정을 설치했던 겁니다. 함정으로 쓴 방은 작품 앞머리에서 무대가 된 메데이아. 하지만이 방이 선택된 이유는 작품 모방이라는 관점 이외에도 어느 정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범행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그 빈방일 필요가있었다는 거죠."

"여기 있는 다섯 명 가운데 지금 이야기한 범행을 저지른 사람은......."
시마다는 천천히 사메지마, 우타야마, 게이코의 얼굴을 보더니 소파에 웅크리고 있는 가도마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방 보조 열쇠만 갖고 있다면 누구든 가능했다고 할 수밖에 없겠군요."

어제 이노를 찾으러 시마다와 함께 ‘메데이아‘를 살피러 갔을 때 선택한 갈림길은 분명히 사자 가면이 걸린 쪽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게 달랐다. 기요무라의 방인
‘테세우스‘로 가는 갈림길에 그 사자 가면이 있었고, ‘메데이아‘ 쪽에는 사자가 아닌 유니콘 가면이.......
두 가면이 바뀌어 걸려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기요무라 씨는 자기 방으로 가려고 했지만 메데이아로 가게 되었죠. 그리고 그 문도 문제입니다. ‘테세우스‘와 마찬가지로 ‘메데이아‘의 문도 방 이름을새긴 청동판이 떨어져 있었죠. 방을 잘못 찾아 들어가도록 범인이 미리 떼어놓은 것입니다.

"말하자면 범인은 기요무라가 오락실에 간 사이에 ‘테세우스‘로 가는 갈림길에 있던 가면과 ‘메데이아‘로 가는 갈림길에 걸려 있던 가면을 바꿔치기한 것입니다.

"좀 전에 사메지마 선생이 말씀하신 의견에 가까운 생각입니다만, 범인은 우리가 기요무라 씨의 시체를 발견하는 데 드는 수고를 최대한 줄여주려고 한 게 아닌가 싶군요."

그 석고 가면. 송곳니를 드러낸 사자와 이마 한가운데 뿔이 돋은 짐승.

"열여섯 갈래나 되는 갈림길 가운데 어느 쪽이 자기 방으로 가는 길인가. 첫 번째와 두 번째라면 몰라도 열세 번째라는 숫자를 매번 세기는 힘든 일이죠. 그보다는 벽에 걸린 가면 종류를 표식으로 삼아 외우는 편이 훨씬 편하고 실수도 없을 겁니다."

하야시 씨가 묵던 방은 기요무라 씨의 방 바로 옆인 만큼 범행을 저지를 때 무슨 소리가 날까 걱정이 될 테니 당연히 기요무라 씨가 먼저 죽은 상태여야 안전할 겁니다.

"범인이 어지간히 마음 놓을 수 있는 사람이었거나, 아니면 범인이 하야시 씨를 아주 잘 설득했거나, 둘 중 하나겠죠. 그렇다면 적어도 그 상대가 이노 씨는 아니었을겁니다."

"의도하지 않은 밀실이었다는 건가요?" 사메지마가 천천히 물었다. "그러니까 범인은 애당초 ‘이카로스‘라는 방을 밀실로 만들 생각은 없었던 거다. 오히려 기요무라씨 방이나 하야시 씨 방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문을 열어둘 생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울려댄 경보음에 놀라서 서두느라......."

게다가 그 방을 밀실로 만들 필요가 전혀 없었을 겁니다. 그런 문제와 세 번째 사건에서 하야시 씨가 왜 스스로 범인을 방으로 들였는가 하는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면어떻게 될까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답이 보이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요." 사메지마가 대신 대답했다. "시마다 씨는 범인이 문으로 도망간 게 아니었다고 결론을 내리고 싶은 거예요. 그렇죠, 시마다 씨?"
"예, 그렇습니다."

어쩔 수 없이 방을 밀실 상태로 만들어놓은 채 도망쳐야만 하는 상황이 된 거죠. 그리고 그건 범인에게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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