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평론가, 편집자와 그의 아내,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낯익은 장면이었다. 다만 그들이 직업으로서 대하는 ‘소설‘ 속 이야기를 통해 익숙해진 상황이었다. 지금 직면해 있는 상황은 탐정소설과 지극히 흡사하지만 틀림없이 실제로 일어난 살인사건이다.
시마다는 거침없이 구석 쪽으로 걸어가 화장실 문을 열었다. 순간 우타야마는 그 안에서 이노의 시체가 굴러 나올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다행히 그 예감은어긋났다.
"설마 이노 씨도 살해된 건 아닐 테죠?" "저도 모르겠네요. 흐음, 이노 씨도 이미 살해되었다? 그랬을 가능성도 분명히......." 이노의 방 ‘에우로페‘는 저택 동쪽, 미야가키의 서재에서 바로 남쪽 옆에 있다. 그다음 남쪽 방이 사메지마에게 배정된 ‘파시파에‘. 하지만 바로 옆방이라고 해도 한방에서 다음 방으로 가려면 구불구불한 복도를 거쳐야 하기에 결코 가까운 거리는 아니다.
"미노스 왕의 어머니 이름이군요. 페니키아 왕인 아게노르의 딸. 제우스의 사랑을 받아 수소로 변신한 그의 등에 타고 크레타 섬으로 건너온 에우로페는 거기서 제우스의 아들 미노스를 낳았죠."
"십중팔구 이노 씨는 이 집에서 나가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니 당연히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올 리 없겠죠. 그리고 만약 이노 씨가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면우리는 이 지하 밀실에 완전히 갇혀버리는 셈입니다."
"흐음, 어라, 안주머니에 지갑이 들어 있네. 이건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우타야마 씨, 제가 처음부터 의심스럽게 생각하는 게 있는데 말입니다......." 평면도를 한 손에 들고 성큼성큼 복도를 걸으며 시마다가 말했다. "이노 씨는 물건을 사러 나간 게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노 씨의 시체가‘라는 표현은 차마 쓸 수 없었다. "도서실과 살해된 스자키 씨의 방, 그리고 분명히 빈방이 하나 있었을 겁니다. 오락실은 아침에 가도마쓰 씨가 들여다보았다고 하니 생략해도 괜찮겠죠."
"시체가 미노타우로스의 방에 놓여 있는 모습에 대한 묘사입니다. 게다가 그 얼굴 부분에 물소 박제가 놓여 있다는 내용까지......."
"유언에 있는 조건 가운데 작품 속 피해자는 작가 자신이어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죠? 그래서 당연히 작품 속 시체는 스자키 씨인 셈이고, 자신이 쓰기 시작한 소설에묘사된 상황 그대로 살해되고 말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말하자면 사적인 원한이야 어찌 되었건 몇 억이나 되는 돈이 걸려 있으면 우리는 누구나 동기가 충분하다는 이야기지."
기요무라는 자기보다 키가 조금 큰 ‘애독자 대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본격적으로 탐정 게임을 시작하자는 겁니까, 명탐정?"
"미야가키 선생님이 유언으로 남긴 지시를 완수할 여지는 충분히 남아 있다는 이야기야. 그렇지 않습니까, 우타야마 씨?" 기요무라는 어떻게 해서든 콘테스트를 계속하고 싶은 모양이다. 우타야마는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 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현재 탈출은 매우 어렵죠. 경찰은 오지 않아요. 우리는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살인범이 여기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건 제생각인데요......."
"아뇨, 아닙니다. 아무래도 실혈사는 아닌 것 같네요." 깜짝 놀란 시마다가 게이코 곁으로 다가갔다. "이거 보이세요? 후두부에 꽤 깊은 상처가 있습니다. 뭔가 무거운 장식물 모서리에 얻어맞은 모양이네요."
게이코는 시체 옆을 떠날 때 다리가 휘청했다. 역시 상당한 쇼크와 스트레스를 받았으리라. 그걸 숨기고 시마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타야마는 여태몰랐던 아내의 강한 모습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게이코의 말 그대로였다. 처참하게 벌어진 목 부분의 상처 조금 위, 피가 묻은 목 주위에 시커멓고 가느다란 자국이 보였다. 이건 분명히 뭔가 가느다란 끈을 둘러 조른 흔적이다.
스자키 쇼스케의 기이한 시체. 즐겨 쓰던 안경은 벗겨져 조금 떨어진 곳에 놓여 있었다. 입가로 보라색 혀를 늘어뜨리고 흰자위만 드러난 얼굴. 그리고 원래 얼굴이있어야 할 자리에 놓인 검은 물소의 머리.......
"누구 침대를 덮치기라도 할 걸 그랬군." 기요무라는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우스갯소리를 할 수 있는 걸까? 우타야마는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노타우로스로 보이게 할 작정이었다면 머리를 잘라내고 그 자리에 물소 머리 박제를 얹어놓는 것이 더 그럴듯하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어차피 그럴 거라면 머리를 아예 완전히 잘라내고 대신 박제 머리를 얹어두는 편이 훨씬 더 그럴듯할 겁니다. 범인은 왜 이런 어중간한 모양으로 만들어둔 걸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범인이 스자키 씨의 소설을 ‘모방해서 한 짓 자체야, 뭐 예를 들자면 범인의 비정상적인 성격이랄까 비정상적인 취향이랄까, 그런 해석으로 넘어갈 수 없는 것도 아니죠. 하지만 제가 지금 주목하고 싶은 것은 범인이 왜 이런 군더더기 같은 조작까지 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스자키 씨의 원고 내용을 기억하시죠? 워드프로세서로 입력하던 그 원고에는 미노타우로스처럼 꾸민 시체가 묘사되어 있었죠. 그런데 그건 물소 머리가 ‘시체의 얼굴을 덮듯이 얹어놓여 있다‘고 묘사되어 있을 뿐이잖습니까? 머리를 잘라내고 그 대신 물소 머리를 얹어놓는다는 표현은 전혀 없었습니다."
"나 참. 코미디는 이제 그만하죠." 생각에 잠긴 시마다에게 싸늘한 눈길을 던지며 기요무라가 말했다. "현실 세계에서 일어난 사건은 추리소설의 논리로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법입니다."
"살인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한 명 사라졌어요. 사라진 사람은 현관 열쇠를 가지고 있었죠. 자연스럽게 생각하면 가장 의심스러운 사람은 사라진 사람이어야 할 겁니다. 바로 이노 미쓰오 씨죠. 어째서 아직까지 이런 의견이 나오지 않는지 저는 이상하기만 하군요."
"저는 다시 주장합니다. 적어도 정해진 기간 안에 밖에서 도움의 손길이 오지 않는 한 우리는 선생님의 유언에 따라 상속자를 뽑기 위한 콘테스트를 해야 한다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아까 시마다 씨가 제시한 목 자르기 논리, 그 주장은 역시 옳았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요." 기요무라가 태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그 주장이 옳다고 인정한다면 결국 그게 이노 씨가 범인이라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는 이야기죠. 검사 결과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결백한 것으로 나온 이상 ‘해당자‘일 가능성이 남아 있는 사람은 지금 여기 없는 이노 씨뿐이니까요."
나카무라 세이지가 손을 댄 건물에는 ‘장치 취향‘이라고나 해야 할 특징이 있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 미로관에도 그런 종류의 뭔가가 있는지 어떤지는 전혀 모르는 일이었다.
작가들 가운데 스자키가 가장 유력한 후보였다. 우타야마 자신도 사실은 그가 상속자가 될 거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았는가.
어쨌든 탈출 방법을 찾는 노력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상식을 벗어난 이런 콘테스트는 즉각 중지시켜야 한다. 일단 이렇게 생각하자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정상적이지 못한 이러한 상황에서 우타야마 자신도 일종의 비정상적인 심리 상태에 빠져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스자키 씨의 원고 내용을 기억하시죠? 워드프로세서로 입력하던 그 원고에는 미노타우로스처럼 꾸민 시체가 묘사되어 있었죠. 그런데 그건 물소 머리가 ‘시체의 얼굴을 덮듯이 얹어놓여 있다‘고 묘사되어 있을 뿐이잖습니까? 머리를 잘라내고 그 대신 물소 머리를 얹어놓는다는 표현은 전혀 없었습니다."
"즉 범인은 스자키 씨를 살해할 때 자신도 어딘가 몸에 상처를 입은 게 아닌가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상처에서 흘러나온 범인의 피가 그 바닥에 떨어졌겠죠. 상아색 카펫에 붉은 피예요. 바로 눈에 띄게 됩니다. 현장에 피를 남기는 일은 매우 위험하겠죠. 그걸 경찰이 발견하고 자세하게 분석하면 바로 누구 피인지 알아낼 우려가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그 피를 지워야만 하죠."
"그럼 ‘부러진 검‘의 논리입니까? 나뭇잎을 숨기려면 숲에 숨겨라,* 숲이 없다면 그 숲을 만들어라."
"스자키 씨의 소설 속에서 그리고 있는 미노타우로스의 모습을 본뜬 시체, 이 ‘모방‘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소설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은이가 죽은 지금은알 길이 없습니다. 한편 실제 사건의 범인은 뭔가 의도를 가지고 시체를 이용해 소설을 ‘모방했는데, 그때 작품 속에서는 묘사하지 않은 ‘목 자르기‘를 했죠. 여기서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는 실로 단순합니다.
"예를 들면 말이죠, 목을 자름으로써 시체는 ‘우두인신‘에 더 가까워진 겁니다. 하지만 이건 아마도 범인이 우리들에게 보여주려는 가짜 그림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뒤에 숨어 있는 진짜 의도가 분명히 있겠죠. 그리고 아마 그건, 좀 비약하자면, 목을 자른 상처에서 흘러나온 혈액...... 스자키 씨의 소설에서는 한 마디도 언급되지않았던 그 붉은색이라는 ‘효과‘ 속에 숨어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시마다가 낮지만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다만 그런 만큼 의혹의 눈초리를 받을 각오는 하셔야 할 겁니다." "바닥에 떨어질 정도라면 당연히 코피가 심하게 났을 겁니다. 만약 그렇다면 지금으로부터 열 시간 이상 전에 난 출혈 흔적을 코를 조사해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2026.08.02 오전 7시 35분46%시마다가 자기 방으로 돌아가 펜처럼 생긴 소형 손전등을 가지고 오자 게이코는 콧구멍 검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난색을 표하던 후나오카도 결국 이런 일로 범인취급을 받고 싶지 않다면서 검사에 응했다.
누군가가 지금 이 미로 안에 있다는 느낌을 도저히 지울 수 없었다. 우타야마가 걸으면 그 사람도 걷고, 우타야마가 멈춰 서면 그 사람도 멈춰 서는 듯했다.
‘우리는 말이죠, 희생양입니다.‘ 스자키의 쉰 목소리가 귓가에 되살아났다. ‘미궁의 괴물에게 바쳐진 희생양‘
자주색 문 앞에 이르렀다. 청동판에 적힌 글자를 확인하려고 고개를 들었는데 명판이 없다. 그러고 보니 ‘테세우스‘ 명판이 떨어졌다고 기요무라가....... 납득은 갔지만 왠지 살짝 위화감이 들었다. 문에 명판이 없다는 이유 때문은 아마 아닐 것이다. 그게 아니라....... 아아, 이 위화감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기요무라 씨......." 엎어진 남자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우타야마는 숨을 멈추고 몸을 구부려 옆을 보고 있는 그 남자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심하게 고통스러운 표정이 얼굴 전체에 새겨져 있었다. 두 손의 손톱이 목에 박혀 있었다. 고통스러운 나머지 쥐어뜯은 걸까? 메데이아. 테세우스를 독살하려고 한 마녀....... 전원이 켜진 워드프로세서. 잠기지 않은 문. 아무도 없는 방....... 조금 전 지나온 열여섯 개의 갈림길이 있는 긴 복도로 나왔다. 문제의 방 ‘메데이아의 위치는 기무라의 방인 ‘테세우스‘에서 남쪽으로 바로 이웃해 있다. 어제 이노를 찾으러 시마다와 함께 살펴보러 갔던 그 빈방이다.
"원고 자체는 겨우 시작한 부분이라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메디이아는 테세우스를 독살하려던 마녀였다거나, 뭔가 암시하는 듯한 묘사가 마음에 걸려서......." "그리고 그 암시대로 기요무라 씨가 여기서 죽어 있었다는 건가요?"
"범인은 미리 저런 장치를 해두었습니다. 그리고 방 불을 끄고 기요무라 씨를 이리 불러낸 거죠. 캄캄한 실내에 들어와 기요무라 씨가 제일 먼저 무엇을 했을까요? 당연히 조명 스위치를 찾았을 겁니다. 이 집 객실들은 모두 문으로 들어와 왼쪽 같은 위치에 스위치가 있기 때문에 직접 눈으로 확인할 일이 없죠. 기요무라 씨는 왼손으로 더듬었습니다. 손이 닿았을 때는 이미 스위치 주위에 박아놓은 독침이 그의 손가락을 찌른 상태였겠죠."
후나오카 마도카가 기요무라에게 밀담을 요청했다고? 단정하게 찍혀 있는 검은 글자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우타야마는 혼란스러운 머리로 생각했다. ‘콘테스트 문제로 의논해야 할 중요한 문제가 있으니....... 이건 두 사람 사이에 모종의 협정을 맺기라도 하겠다는 의미일까? 가령 어느 쪽이든 상금을 받게 되면 둘이서 나누기로 한다거나?
"하야시씨." 소리치며 문을 두드리던 시마다의 손길이 돌연 멈췄다. "왜요?" 그때까지 멍하니 있던 우타야마가 물었다. "이문." 시마다가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턱으로 가리켰다. "열려 있습니다."
"살살 구슬려서 문을 열게 만들었거나, 아니면 마음을 놓을 만한 상대였거나......." 가령 보조 열쇠를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안에서 잠그고 테이블과 의자로 바리케이드까지 쌓아놓았다면 방에 들어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문을 부수려고 한 흔적은전혀 없으니 하야시가 범인을 방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는 말이 된다.
왼쪽에 보이는 워드프로세서가 놓인 책상 앞에 하야시 히로야가 있었다. 수수한 조끼를 걸친 상반신을 쓰러진 회전의자 위에 얹고 엎어져 있었다. 두 손은 책상 가장자리를 움켜쥔 채 고개를 푹 수그리고....... 그 등 한복판에 불쑥 튀어나온 암갈색 물체가 하야시를 그런 형태로 만들어놓은 것임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자, 보십시오. ‘미야가키 요타로의 저택, 미로관에 있는 방 <AIGEU.‘ 문장이 중간에 툭 끊어졌습니다. 그 아래 네 줄을 공백으로 비우고 불쑥 wwh가 나옵니다. 적어도 이 wwh라는 세 글자가 하야시 씨가 쓴 작품의 일부일 가능성은 부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키보드를 잘 보세요........"
"다만 이 wwh라는 세 글자. 이에 관해서는 여러모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군요." "하야시 씨가 죽어가면서 남긴 메시지일지도 모른다는 뜻인가요?" "말하자면 그럴 수도 있다는 거죠."
바로 그때. 지하 저택을 뒤덮은 정적을 박살내듯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타야마는 말 그대로 펄쩍 뛰며 생각을 중단했다. "뭐죠?" 온몸의 털이 쭈뼛 곤두서는 듯했다.
"후나오카 씨!" 문에 붙은 청동판의 글자는 IKAROS. 다이달로스의 아들 이름이다.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도망쳤다는 사실을 알게 된 미노스 왕은 다이달로스가 길 안내를 한 것이 틀림없다고 의심해 다이달로스 부자를 미궁에 가두었다. 다이달로스는 거기서 손수 두 개의 인공 날개를 만들어 하늘을 날아 탈출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날개는 새의 깃털을 촛농으로 이어 붙여 만든 것이었기에 아버지의 충고를 무시하고 하늘 높이 날아 올라간 이카로스는 태양열 때문에 날개가 녹아 바다에 빠져 죽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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