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샤 튜더TASHA TUDOR타샤 튜더는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동화작가다. 칼데콧 상을수상한 작가이자 <비밀의 화원>과 <세라 이야기>의 일러스트를그린 화가로, 지난 70여 년간 100권이 넘는 그림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백악관의 크리스마스 카드나 엽서에도 사용되는 타샤의그림은 미국인의 마음이 담겨 있다는 평을 받아왔다.
하지만 그녀는 독특한 라이프스타일로 더 유명하다. 90세를 넘긴나이에도 동화보다 더욱 동화 같은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버몬트 주 시골에 집을 짓고 30만 평이나 되는 단지에 아름다운정원을 가꾸며 살고 있는 타샤는 손수 천을 짜서 옷을 만들고 염소젖으로 요구르트를 만든다. 19세기 생활을 좋아해서 골동품 옷을 입고 골동품 가구와 그릇을 쓰고 장작 스토브로 음식을 만든다. 우울하게 지내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는 이 부지런한 할머니는 마리오네트 인형들을 만들어 어린이를 위한 인형극을 공연하고 직접 키워 말린 허브를 끓여 오후의 티타임을 즐긴다.
타샤에게 가장 큰 즐거움을 주는 것은 정원 가꾸기다. 그녀의 정원은 18세기 영국식으로 꾸민 커티지 가든으로 일년 내내 꽃이지지 않는 비밀의 화원‘이다. 레몬빛 수선화 무리 속에서 흰색돌능금꽃이 피는 5월이면 정원은 지상낙원이 된다. 이곳에는 자연을 존중하고 삶을 사랑하는 타샤 튜더의 낙천성과 부지런함이고스란히 배어 있다. - P-1

이 책은 꽃을 통해 친구가 된 토바 마틴과 리처드 브라운이 수년동안 타샤의 생활을 지켜보며 그냥 지나쳐버리기에 아까운 정원의 매혹적인 풍경과 타샤의 통찰력 넘치는 말들을 한데 모아 글과 사진으로 엮은 것이다. 색의 향연을 펼치는 화려한 튤립, 눈밭에서 피어나는 성스러운 수선화, 탐스러운 꽃잎이 복슬대는 작약, 품위 있는 자태를 뽐내는 돌능금나무・・・・・・ 온갖 꽃과 나무들이 그리는 매혹적인 드라마가 눈앞에 펼쳐진다. 그리고 그 드라마의 주인공, 타샤 튜더 그녀의 자연에 깊이 뿌리내린 삶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오늘도 타샤는 정원에서 꽃들에게 물을 주며 장미 전문가가 되고싶은 꿈을 키우고 있다. - P-1

가드닝은 기쁨의 샘
처음 식물에 매료된 때를 나는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세살인가 네 살 때쯤, 부모님의 친한 친구인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집에 방문했는데 그 집에 노란 장미의 일종인 ‘휴고 신부의 장미Rosa Hugonis‘ 가피어 있었죠. 맞아요, 전화를 발명한 그 유명한 벨의 집에요. 그때 나는 별 뜻없이 생각했습니다. 꽃을 키우며 꽃과 생활하는 것이 삶의 즐거움이 될 거야‘ 라고. 그때 벨의 집에서 본 장미는 지금도 눈앞에 있는 듯 생생히 떠올릴 수 있답니다. - P5

어떤 꽃을 가장 좋아하냐고 물어오지만 나는 모든 꽃이 다 좋아요.
먹고 살지 않으면 안 되니까 그림 그리는 일도 하지만, 만약 그럴 필요가없다면 기쁜 마음으로 하루 종일 정원에서 화초를 돌보며 아름답게 핀 꽃을 즐길지도 모르죠.6 - P6

힘들지 않나요? 라고 묻는 분들도 계시지만, 난 정원의 나무나 꽃에게특별한 걸 해주지는 않아요. 그저 좋아하니까 나무나 꽃에게 좋으리라 생각되는 것, 나무와 꽃이 기뻐하리라 생각되는 것을 하고 있을 뿐이지요. 잡초 뽑기나 물 주기를 게을리하지 않고, 필요한 비료를 제대로 주기만 하면정원은 그에 화답해줍니다. - P6

나의 정원은 지금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번엔 어디에 무얼 심을까, 여기는 이렇게 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고 궁리하는 것도 즐거운 일입니다. 또한 정원이나 식물에 대해 알고 싶은 것도 아직 잔뜩 있습니다. 한 가지 새로운 걸 배우면 더욱더 알고 싶어지지요. - P6

나는 아흔 살이 넘은 지금도 장미 전문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답니다.
전문가가 되고 싶다, 정말 되고 싶다라고 생각하며 꿈을 좇는 일이 즐겁습니다. - P7

모름지기 사람이란 그 모든 것의 해답을 알 수는 없어요. 그러니 더 많이알고 싶거나 더 연구하고 싶은 꿈에는 끝이 없는 거죠. 더 배우고 싶은 꿈을 향해 나아가는 즐거움은 누구든지 언제라도 누릴 수 있는 으뜸의 기쁨이랍니다. - P7

"내 유서 깊은
장미에 대해서는 겸손해지지가 않아요.
천국처럼 아름답죠" - P11

타샤를 찾아가는 길은 가볍게 볼 여정이 아니다. 처음 집에 찾아오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타샤는 난코스임을 경고해둔다. 아주 가파르고 군데군데위험한 도로를 올라가서 그녀의 우편함에 도착한 후에도, 집까지는 꽤 먼길이 남아 있다. 용기 있는 사람만 그 힘든 길을 가는 모험에 도전하지만, 타샤는  길을 어찌 해보려 하지 않을 것이다.  - P16

최악의 구덩이들을 뒤로 하며먼지 속에 남기고 떠나면, 마침내 층층이부채꽃이 절하며 맞아주는 너른풀밭에 다다른다. 차도가 그 사이에 나 있다. 몇 번인가 푸른 꽃무리 속에서 길을 잃다 보면 집이 눈에 들어온다. - P16

타샤는 그림의 소재로 패럿 튤립 같은 꽃을 키우고, 침실 창문 밖에 당당하게 핀참제비고깔 같은 꽃들을 키우면서 아름다운 정경을 연출한다. - P18

여름 아침, 타샤는 정원을 돌면서 꽃다발을 만들꽃을 찾는다. 6월에는 작약("난 큼직한폭탄 타입을 좋아해요.")과 장미를 집으로 가져와서 이젤 앞에 놓고 그린다. - P20

예쁘게 틔웠는데, 날이 건조해서 시무룩해졌지요‘ 라고 말한다. 눈이 적당히 내리지 않아 정원이 덜덜 떠는 것을 그녀가 두고 보지 못하는 것도 그때문이다. 또 가뭄이 들면 그렇게 마음 졸인다. 정원이 늘 황홀해 보이는것도 그 때문일 듯싶다. 타샤는 친구들을 최고로 빛나는 모습으로 그리기를 좋아한다. - P27

"뒷문에는 눈이 쌓여 있고, 앞쪽에는 스노드롭이 꽃을 피우고 있어요.‘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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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도시 기행 3 -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리스본, 뽀르투 편 ㅣ 유럽 도시 기행 3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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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유시민 『유럽 도시 기행 3』

1. 개요
• 도서명 : 유럽 도시 기행 3
• 부제 :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리스본, 포르투 편
• 저자 : 유시민
• 저자소개 : 1959년 경북 경주 출생.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마인츠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음. 제16·17대 국회의원과 제44대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으며, 이후 정치 활동을 접고 작가와 방송인으로 활동해 왔음
• 출판사 : 생각의길
• 출판년도 : 2026년 7월 9일
• 작품 성격 :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리스본, 포르투 네 도시를 직접 여행하며 이베리아반도의 역사와 문화, 제국의 흥망, 해양 진출과 근현대사의 흐름을 함께 읽어 내는 인문기행서

2. 책의 기본 내용
• 공간적 범위 : 스페인의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포르투갈의 리스본과 포르투를 중심으로 전개됨

• 전개의 방식 : 도시의 거리와 광장, 궁전과 성당, 미술관과 항구를 따라 걸으며 그 공간에 축적된 역사와 문화, 정치와 예술의 흔적을 함께 풀어냄

• 마드리드 : 스페인 통일과 왕조의 역사, 프라도 미술관을 비롯한 예술과 문화, 스페인 내전과 민주화 과정을 함께 살피며 현대 스페인의 형성과정을 설명함

• 바르셀로나 : 가우디의 건축과 카탈루냐 문화, 지역 정체성과 독립 문제, 지중해 무역도시로 성장한 역사를 함께 다룸

• 리스본 : 포르투갈의 해양 진출과 바스쿠 다 가마를 비롯한 항해의 역사, 해양제국의 성장과 변화를 도시 공간과 연결하여 설명함

• 포르투 : 두루강과 포트와인, 포르투갈 상업도시의 성장, 대서양 교역과 시민문화의 형성을 함께 살핌

• 핵심 흐름 : 이베리아반도의 네 도시를 통해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어떻게 통합되고 바다로 진출했으며, 그 과정에서 세계사와 연결되고 이후 변화해 왔는지를 도시의 역사와 공간을 따라 살펴봄

3. 책의 특징
• 이베리아반도 중심의 시선 : 서유럽의 대표 국가들을 반복해서 다루기보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집중하여 이베리아반도의 독특한 역사와 문화를 보여줌

• 레콩키스타와 국가 형성 : 이슬람 세력과 기독교 왕국들이 오랫동안 공존하고 충돌했던 역사를 통해 오늘날 스페인이 형성되는 과정을 살펴봄

• 해양 진출과 세계사의 변화 :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바다를 통해 세계 각지로 진출하면서 유럽과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가 본격적으로 연결되는 과정을 도시의 역사와 함께 바라봄

• 역사와 예술의 결합 : 프라도 미술관과 가우디 건축, 리스본과 포르투의 도시경관 등 예술과 건축을 역사적 배경과 함께 풀어냄

• 도시와 인간의 이야기 : 왕과 정치가, 항해자와 예술가뿐 아니라 그 도시를 살아온 사람들의 삶을 함께 살피며 도시의 성격을 입체적으로 보여줌

• 기행과 인문해설의 결합 : 여행 동선을 따라가면서도 관광정보보다 역사와 문화, 정치와 인간에 대한 해석에 더 큰 비중을 둠

• 주유형·부유형 : 기행문(紀行文)을 주유형(主類型)으로 하고 여행기(旅行記)를 부유형(副類型)으로 볼 수 있음. 도시의 역사 현장을 직접 찾아가 해설한다는 점에서는 답사기의 성격도 일부 함께 지님

4. 읽어볼 만한 이유
• 이베리아반도의 역사 이해 :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고 세계사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음

• 레콩키스타의 두 얼굴 : 기독교 왕국의 영토 확대와 국가 형성이라는 측면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사라지거나 약화된 알안달루스의 다문화적 환경과 종교적·지적 다양성까지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음

• 도시와 역사의 연결 : 거리와 광장, 성당과 미술관, 항구를 통해 역사를 단순한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실제 공간 속에 남아 있는 흔적으로 바라보게 함

• 저자 특유의 해설 : 역사적 사실을 어렵지 않게 풀어내면서도 정치와 인간, 사회와 문화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함께 따라가게 함

• 여행 전후 모두 유익 :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배경지식이 되고, 다녀온 사람에게는 여행의 기억을 역사와 연결해 다시 정리하게 해 주는 책임

5. 종합 평가
• 평가 : 『유럽 도시 기행 3』은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리스본, 포르투를 통해 이베리아반도의 역사와 문화, 레콩키스타와 해양 진출, 근현대사의 변화를 함께 풀어낸 인문기행서임

• 인상 :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화려한 도시와 예술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레콩키스타와 국가 형성, 해양 진출이라는 굵직한 역사적 흐름을 함께 짚어 이베리아반도를 보다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함

• 판형에 대한 개인적 인상 : 앞선 시리즈와 같은 비교적 작은 판형은 휴대성은 좋지만 사진과 지도, 도시 공간을 넉넉하게 감상하기에는 다소 아쉬움이 남음. 다만 전자책으로 읽을 경우에는 판형의 제약 없이 내용 자체에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음

• 한줄 정리 : 마드리드에서 포르투까지 네 도시를 따라 걸으며 이베리아반도의 역사와 문화, 레콩키스타와 해양 진출의 흔적을 함께 읽어 내는 도시 인문기행서임


<유럽 도시 기행 3> 네 도시를 걸으며 이베리아의 시간을 읽다

유시민의 『유럽 도시 기행 3』은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리스본, 포르투 네 도시를 직접 걸으며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역사와 문화, 예술과 인간의 삶을 함께 읽어 내는 인문기행서이다. 프라도 미술관과 가우디의 건축, 리스본의 항구와 포르투의 두루강을 따라가며 저자는 도시를 하나의 살아 있는 역사책처럼 풀어낸다. 특히 레콩키스타와 스페인의 국가 형성,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해양 진출을 도시의 역사와 연결하며 오늘날 이베리아반도가 만들어진 과정을 보여준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이베리아반도를 유럽사의 변방이 아니라 세계사의 중요한 전환점을 만든 공간으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스페인의 통일과 레콩키스타,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해양 진출, 그리고 그 이후의 변화가 네 도시의 거리와 건축물, 미술관과 항구를 따라 이어진다. 다만 레콩키스타 이후 이베리아반도에서는 무슬림과 유대인이 함께 만들어 온 알안달루스의 다문화적 환경이 크게 약화되었고, 서로 다른 종교와 학문이 교류하며 형성했던 지적 다양성 역시 이전보다 줄어들었다는 점도 함께 생각하게 된다. 앞서 정리한 여행기록문의 분류에 따르면 『유럽 도시 기행 3』 역시 기행문을 주유형으로 하고 여행기를 부유형으로 두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이번 3권은 전자책으로 읽고 있다. 1·2권의 종이책은 내용 자체보다 작은 판형이 아쉬워 결국 중고로 처분했는데, 전자책에서는 그런 물리적 제약 없이 내용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 오히려 편하다.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리스본과 포르투라는 네 도시를 따라가다 보면 이베리아반도의 화려한 예술과 도시 풍경뿐 아니라, 그 뒤에 놓인 종교와 권력, 국가 형성과 세계 진출의 역사를 함께 바라보게 된다. 그런 점에서 『유럽 도시 기행 3』은 앞선 두 권의 도시 인문기행 형식을 이어가면서도, 이베리아반도 특유의 역사적 층위를 새롭게 보여주는 책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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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도시 기행 3 -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리스본, 뽀르투 편 ㅣ 유럽 도시 기행 3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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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감상문] 『유럽 도시 기행 3』 포르투갈편

뽀르투 ― 나라 이름의 뿌리에서 책과 지식, 음식과 여행의 속도까지

11. 나라 이름의 뿌리가 된 아담한 항구도시

리스본을 떠나 뽀르투로 올라왔다. 뽀르투는 도루강 하류의 북쪽 비탈과 언덕에 들어선 도시로, 포르투갈에서 리스본 다음으로 큰 도시라고 하지만 상주인구는 약 25만 명에 불과하다. 주변 도시와 도루강 남쪽의 가이아까지 묶은 광역권이 약 150만 명이라니, 도시 자체는 생각보다 훨씬 아담하다.

그런데 도시의 크기와 달리 이름이 지닌 무게는 상당하다. ‘뽀르투(Porto)’는 항구를 뜻하고, 포르투갈이라는 국호 역시 라틴어 지명 ‘포르투스 칼레(Portus Cale)’에서 유래했다. 말하자면 나라 이름의 뿌리가 된 도시인 셈이다.

여기서 잠깐 엉뚱한 궁금증이 생겼다. 항구라면 적의 침입을 막는 요새나 포대가 따라붙었을 것 같은데, 영어의 fort나 fortress와 혹시 어원이 연결되는 것은 아닐까.

찾아보니 아니었다. Porto의 뿌리는 라틴어 portus, 즉 ‘항구’이고, fort와 fortress는 ‘강하다’는 뜻의 fortis에서 나왔다. 말의 뿌리는 전혀 달랐지만 내 연상이 완전히 엉뚱했던 것은 아니었다. 역사에서 중요한 항구와 요새는 늘 가까운 사이였고, 뽀르투 역시 도루강 하구를 방어하는 요새를 두고 있었다.

책 한 문장에서 시작한 궁금증이 항구와 요새의 역사까지 데려갔다.

12. 하루면 걸어볼 수 있는 도시, 그래서 더 마음에 든다

저자가 제시한 뽀르투 하루 여행코스를 보니 도시의 크기가 더 실감났다. 아침에 시청사를 출발해 서점과 기차역, 성당을 보면서 걸어서 도루강의 히베이라까지 내려간다. 점심을 먹고 유람선을 탄 다음 강 건너 가이아까지 둘러본다. 이틀이 있다면 같은 길을 더 여유 있게 걸으면 된다고 한다.

이 정도라면 내 여행 방식과도 잘 맞는다.

리스본에서도 생각했지만 여행에서 부지런함은 많이 보기 위해 서두르는 것이 아니라 여유 있게 보기 위해 시간을 먼저 확보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행지에서 새벽 네 시나 다섯 시에 일어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남들이 나오기 전에 먼저 움직이면 한 곳을 한적하게 찬찬히 볼 수 있고, 그렇게 확보한 시간으로 다른 곳도 하나 더 볼 수 있다.

뽀르투처럼 작고 주요 명소가 걸어서 이어지는 도시라면 하루도 꽤 길게 쓸 수 있을 것 같다.

13. 리스본의 작가들, 뽀르투의 가헤뜨

리스본에서 사라마구와 페소아를 만났다면 뽀르투에서는 알메이다 가헤뜨를 만난다. 시청사에 그의 흉상이 서 있다.

가헤뜨는 단순한 낭만파 시인이 아니었다. 무신론자임을 숨기지 않았고, 1820년 뽀르투 자유주의 혁명에 참여했으며 혁명이 실패하자 영국과 프랑스에서 망명생활을 했다. 귀국한 뒤에는 시와 희곡뿐 아니라 민담을 모으고 역사소설을 썼으며 왕립극장 건립에도 관여했다.

리스본 사람들이 사라마구와 페소아를 기억한다면 뽀르투 사람들은 자기 도시에서 태어난 가헤뜨를 기억하고 있었다.

리스본과 뽀르투는 서로 다른 작가를 내세우고 있었지만 자기 도시의 작가를 기억하고 사랑하는 방식은 닮아 있었다.

사라마구 기념관에서 보았던 특별한 전집과 페소아가 도시 곳곳에 남아 있던 풍경이 여기서 다시 이어졌다.

14. 렐루서점과 룰루레몬, 그리고 책에 대한 뜻밖의 논쟁

가헤뜨의 흉상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그 유명한 렐루서점(Livraria Lello)이 있다.

그런데 나는 ‘렐루’라는 이름을 보는 순간 엉뚱하게도 룰루레몬이 떠올랐다.

책으로 가득한 백 년 넘은 서점을 보면서 운동복 브랜드부터 생각했으니 나도 참 별수 없다. 물론 둘 사이에는 아무 관계도 없다. 그래도 렐루, 룰루레몬. 한번 연결되고 나니 머릿속에서 잘 떨어지지 않는다.

웃음은 웃음이고, 저자는 렐루서점에 대해서는 꽤 냉정하다. 『해리 포터』의 마법학교 구상에 영향을 주었다는 이야기가 퍼진 뒤 관광객이 몰려 이제는 책방이라기보다 관광명소가 되었고, 긴 줄을 서서 들어갈 필요까지는 없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나도 이해한다. 여행에서 어디를 볼 것인지는 각자의 취향이고, 유명하다는 이유만으로 반드시 줄을 서야 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이야기가 갑자기 다른 데로 간다. 저자는 책은 더 이상 지성의 상징이 아니며 숭배할 대상도 아니고, 인터넷, 검색엔진, 인공지능 시대에 종이책은 전성기가 지난 전통 미디어라고 말한다.

평생 책을 써서 세상과 관계를 맺어왔고 지금도 책을 써서 먹고사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니 뜻밖이다. 냉정한 자기평가라기보다 자기부정에 가깝게 느껴졌다. 자기가 평생 몸담아온 책이라는 매체의 의미를 스스로 너무 쉽게 깎아내리는 것 아닌가 싶었다.

더구나 책을 왜 종이책으로만 보아야 하는지도 이해하기 어렵다. 전자책도 책이고, 그 안에 담긴 지식과 사상은 종이냐 화면이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생각했다. 그 소설에서 책은 단순한 종이뭉치가 아니다. 수도원의 미궁 같은 장서관에 지식이 모여 있고, 누가 어떤 책을 읽을 수 있는지를 통제하는 것이 곧 권력이다. 책은 지식의 저장소이면서 지식과 권위의 상징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런 권위를 좋아하거나 신봉한다는 뜻은 아니다. 책이 지식과 권위의 상징이었다는 사실과 그 권위를 숭배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인터넷과 인공지능으로 지식을 얻는 통로가 다양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유명 서점에 긴 줄을 설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에서 책이 더 이상 지성의 상징이 아니라는 이야기로 발전하는지 잘 모르겠다.

15. 상벤투역, 벽에 펼쳐놓은 포르투갈 역사책

상벤투역의 대합실은 수많은 아줄레주(Azulejo)로 포르투갈의 역사를 펼쳐놓은 공간이다.

아줄레주는 여러 장의 타일을 이어 역사, 종교, 생활풍경 등을 그림처럼 표현한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장식예술이다. 상벤투역에는 포르투갈 건국과 관련된 발데베즈 전투, 주앙 1세 부부의 뽀르투 입성, 엔히끄 왕자의 세우타 정복 같은 장면들이 벽에 이어진다.

기차역 대합실이면서 거대한 역사책인 셈이다.

이런 곳이라면 나도 그냥 지나치지는 못할 것 같다. 기차를 타러 들어갔다가 벽에 그려진 전투와 역사인물 하나하나 들여다보느라 자칫 기차를 놓칠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유럽을 여행하면서 이곳만큼 한국인을 많이 본 적이 없었다며 뽀르투가 한국 젊은이들에게 ‘힙한 여행지’가 된 것 같다고 했다. 한국 사람이 그렇게 많다는 이야기는 의외였지만, 상벤투역 사진을 보면 왜 사람들이 이곳에서 카메라를 들 수밖에 없는지는 알 것 같다.

16.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는 공감하지만

뽀르투 국립미술관에서 저자는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떠올린다. 마드리드의 유명 미술관에서 거장의 대작을 보는 것만 의미 있는 일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지방 작가의 작품을 만나는 것도 충분히 아름다운 경험이라는 것이다.

“중심과 변방이 저마다 아름다울 수 있다.”

이 말에는 공감한다.

이름난 거장의 작품만이 예술이고 대도시의 유명 미술관만 좋은 미술관일 수는 없다. 작은 도시의 작은 미술관에서 처음 만난 작품이 더 깊은 인상을 줄 수도 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앞으로의 여행에서도 나는 그렇게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여행지에 가면 역사유적과 자연경관을 먼저 찾는다. 시간은 한정돼 있고 보고 싶은 것은 많다. 작은 미술관의 가치를 몰라서가 아니라 내 여행에서 무엇을 먼저 볼 것인가의 문제다.

저자는 여행에서 통념보다 자신의 마음을 따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나도 내 마음을 따르겠다.

17. 아랍 홀에서 다시 만난 이슬람 건축의 아름다움

뽀르투의 ‘아랍 홀’ 사진은 보자마자 내가 좋아하는 이슬람 건축을 떠올리게 했다.

이스파한 이맘광장과 사마르칸트 레기스탄 광장을 둘러싼 마드라사, 그리고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이다.

단단한 원목을 정교하게 맞춘 바닥, 아랍문자를 이용한 벽장식, 기하학적 문양, 스테인드글라스, 금빛으로 가득한 천장과 기둥. 서로 다른 지역과 시대의 건축인데도 기하학과 반복문양, 문자와 색채를 이용해 공간 전체를 장식하는 방식에는 통하는 것이 있다.

나는 이런 이슬람 건축을 좋아한다.

구조물을 만들고 장식을 덧붙인다는 느낌보다 공간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무늬와 빛으로 만들어버리는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알함브라 궁전을 ‘이겨 먹으려고’ 만든 것 아닌가 싶다고 했는데, 사진을 보니 왜 그런 표현을 했는지 알 만했다.

18. 정어리보다 김치찌개가 좋다

저자는 뽀르투에 와서도 음식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히베이라 광장에는 정어리 굽는 냄새가 가득했고, 자신은 등 푸른 생선의 비린내와 맛을 좋아해서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나는 정반대다.

비린 생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뽀르투까지 갔다고 해서 굳이 정어리를 먹어야 한다는 생각도 없다.

여기서 저자와 나의 여행음식 철학을 한 번 맞붙여보면 이렇다.

“멀리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만으로도 여행은 가치가 있다.” — 유시민군

“그 맛있는 걸 찾는 게 문제랑께. 잘못 걸리믄 한입 먹고 쓰레기통 가는 겨.” — 나

우리 유시민군은 좋은 데서만 먹는가 보다.

나는 그렇지 않았다.

10여 년 전 밴쿠버에서는 아내가 인터넷을 열심히 뒤져 찾아간 치폴레에서 음식을 받아 한입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보낸 적이 있다. 내 여행 역사에서 손꼽히는 최악의 음식이었다.

그런데 같은 캐나다의 밴프에서는 정반대였다. 별다른 검색없이 들어간 메이플리프라는 식당에서 스테이크와 랍스터를 먹었는데 한 끼에 15만 원쯤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워매, 이건 그냥 살살 녹는겨.”

맛은 훌륭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중국여행에서는 음식 때문에 더 고생한다. 아내는 거의 먹지 못할 때도 있어서 김과 고추장을 챙겨간다. 그래도 밥이 있으니 그것으로 한 끼를 넘길 수 있다. 일본 음식은 대체로 입맛에 잘 맞는다. 역시 문제는 가격이다. 미국과 캐나다의 중저가 음식은 입맛에 잘 맞지 않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면 돈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내게 음식은 여행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일 수는 있어도 여행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아니다.

나는 토종 시골 촌놈이다. 정어리구이보다 김치찌개가 좋다.

19. 벨 에포크, 유럽인들에게는 얼마나 그리운 시대일까

저자는 ‘벨 에포크’가 끝난 뒤 유럽이 정치, 경제, 군사적 주도권을 미국에 넘겨주었으며, 다시는 되찾지 못했다고 썼다. 벨 에포크는 끝난 전성기에 대한 유럽인의 그리움을 자극하는 말이라고 한다.

읽으면서 속으로 한마디 했다.

써글넘들, 얼마나 그리울까나.

유럽에게는 과학, 경제, 도시문화와 예술이 번성했던 ‘아름다운 시대’였을 것이다. 그러나 유럽의 번영 뒤에서 식민지배와 수탈을 겪었던 사람들에게까지 아름다운 시대였던 것은 아니다.

역사를 길게 놓고 보면 세계의 중심이 언제나 한곳에 머물렀던 것도 아니다.

중국과 인도 문명이 번성하던 시대가 있었고, 이슬람 세계가 학문과 상업의 중심이었던 시대가 있었으며, 근대 이후에는 유럽이 세계를 지배했다. 20세기에는 주도권이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넘어갔다. 앞으로 한국, 일본,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가 세계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할지는 더 두고 봐야겠지만, 적어도 한 문명이 영원히 패권을 독점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역사가 보여준다.

패권은 돌고 돈다. 유럽의 벨 에포크도 긴 문명사의 한때였을 뿐이다. 다시 유럽 차례가 오려면 한 2천 년은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20. 하이고, 유시민군. 너무 낭만적인 것 아닌가

히베이라에 도착한 저자는 뽀르투에 완전히 빠져버린다.

군밤 굽는 연기, 음식 냄새, 호객 소리, 연인과 아이들, 서로 어깨를 기댄 오래된 집들. 모든 것이 너무 빨리 변하는 서울과 달리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 같은 도시라 한국의 젊은 여행자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다.

여기까지는 이해한다.

그런데 다음 이야기는 너무 멀리 간 것 같다.

포르투갈이 정복전쟁과 대항해시대의 영광, 제국의 몰락과 살라자르 독재를 겪었기 때문에 국민들이 이제는 ‘이기기보다 오래 지속되는 삶, 이웃을 적보다 친구로 만드는 삶, 속도보다 방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하이고, 유시민군. 저 사람들이 정말 그렇게까지 생각할까.

한 나라가 제국의 흥망과 독재를 경험했다고 해서 국민 모두가 같은 역사적 교훈을 얻는 것은 아니다. 역사에는 과거의 잘못을 잊고 비슷한 일을 반복한 경우도 수도 없이 많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저자가 리스본과 뽀르투에서 느낀 친절과 여유까지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것은 여행하면서 실제로 받은 인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눈앞에서 만난 사람들의 친절한 모습을 포르투갈의 제국 흥망사와 연결해 국민 전체의 삶의 태도로 설명하는 것은 너무 낭만적인 해석으로 보인다.

21. 우리 유시민군, 드디어 빠이빠이 한다

뽀르투를 떠나면서 저자는 비행기 안에서 도시를 향해 약속한다.

“잘 있어. 또 올게!”

리스본에서도 오래 살아보고 싶다고 했으니 이번 포르투갈 여행에서 두 도시에 단단히 빠져버린 모양이다.

우리 유시민군, 드디어 빠이빠이 한다.

저자는 리스본과 뽀르투에서 한국에서는 가질 수 없는 것을 얻었다고 했다. 무엇이든 효율적으로, 신속하게, 성공적으로 해내야 한다는 강박에서 잠시 벗어나 현재 머물고 있는 공간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마음에는 공감한다.

다만 나의 여행 방식은 조금 다르다.

나는 여행지에서도 일찍 일어나고 부지런히 움직인다. 하지만 빨리빨리 보기 위해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남들보다 일찍 움직이면 사람이 붐비기 전에 한 곳을 여유 있게 볼 수 있고, 그렇게 확보한 시간으로 다른 곳도 하나 더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느리게 움직이는 것만이 여유로운 여행은 아니다.

내게 여행의 여유는 부지런히 움직이면서도 찬찬히 보는 것이다.

리스본에서 전차와 벨렝의 긴 줄을 보며 했던 생각이 뽀르투에서 다시 돌아왔다.

저자의 여행방식을 그대로 따라 할 필요도 없고, 저자가 좋았던 것을 내가 똑같이 좋아할 필요도 없다. 작은 미술관이 좋다는 말에는 공감하지만 나는 여전히 역사유적과 자연경관을 먼저 찾아갈 것이다. 뽀르투 사람들이 즐기는 정어리보다 김치찌개가 더 좋고, 유명한 렐루서점보다 상벤투역의 역사화 앞에서 더 오래 서 있을지도 모른다.

여행에서는 결국 자신의 마음을 따르면 된다.

그 말만큼은 이번에는 유시민군과 의견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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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도시 기행 3 -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리스본, 뽀르투 편 ㅣ 유럽 도시 기행 3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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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감상문] 『유럽 도시 기행 3』 포르투갈편

리스본 ― 제국의 영광과 그늘, 그리고 저자와 티격태격하며 걸은 도시

스페인의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를 지나 이제 포르투갈로 넘어간다.

잠깐, 이베리아반도 지도를 펼쳐놓고 보니 재미있는 게 하나 눈에 들어왔다. 이 조그만 포르투갈이 반도 서쪽의 대서양 연안을 길게 붙들고 있는 것이다. 거대한 스페인이 반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도 리스본과 뽀르투를 비롯한 좋은 항구들은 포르투갈 땅이다.

물론 스페인에도 대서양으로 나가는 길은 있었다. 그러나 갈리시아나 남쪽의 항구 몇 곳을 가지고 있는 것과, 리스본과 뽀르투를 포함한 포르투갈의 긴 대서양 연안을 통째로 차지하는 것은 지정학적으로 천지차이다.

지도를 보고 있으니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스페인은 저 땅을 얼마나 먹고 싶었을까.”

그러다가 생각을 좀 더 깊이 해봤다. 애초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서로 경쟁하고 싸우는 두 나라가 아니라 하나의 나라였다면 어땠을까.

당시 두 나라가 차지했던 세계지도를 겹쳐놓으면 상상은 훨씬 커진다. 남아메리카 대부분은 사실상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영역이었고, 스페인은 아메리카에서 태평양과 필리핀으로 뻗어나갔다. 포르투갈은 브라질에서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양과 동남아시아, 마카오까지 이어지는 해상망을 가지고 있었다.

이 두 나라의 힘이 하나로 합쳐진 채 오랫동안 유지되었다면 유럽과 세계의 역사는 상당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대서양, 태평양, 인도양에 걸친 거대한 해양제국이 되었을 것이고, 훗날 영국, 프랑스, 독일과 어깨를 나란히하거나 오히려 앞서가는 강대국으로 남았을 가능성도 상상해볼 수 있다. 영국과 프랑스가 과연 지금과 같은 위치까지 올라설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역사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두 나라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고 때로는 싸웠다. 포르투갈은 거대한 스페인 옆에서 끝내 자기 나라를 지켜냈다.

스페인 입장에서는 참 답답했겠다. 그래도 끝내 못 먹었다. 솔직히 나는 엄청 꼬시다. 피사로를 비롯한 정복자들이 아메리카에서 벌인 일을 생각하면 스페인 제국의 화려한 영광을 마냥 좋게 바라볼 마음도 없다.

그렇게 지도를 한 번 들여다보고 리스본으로 들어갔다.

리스본에서는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도시를 다시 세운 폼발 후작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를 따라가다 보면 포르투갈의 독재와 개발, 사라마구와 페소아의 문학, 벨렝에 남은 제국의 기억, 마누엘 양식의 화려함과 그 뒤에 가려진 노예무역과 침략의 역사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 도시를 읽는 동안 내가 계속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결국 하나였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1. 폼발 후작, 이름부터 알려주면 어디 덧나나

1755년 리스본 대지진 직후 왕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묻자 외무장관은 죽은 사람을 묻고 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어야 한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는 말에 그치지 않고 폐허가 된 리스본을 다시 세웠다. 오늘날 리스본 한복판의 높은 곳에 왕이 아닌 그의 동상이 서 있는 이유다.

그런데 저자는 그의 작위가 리스본과 뽀르투 사이의 지명에서 유래했다고 설명하면서, 본명이 너무 기니 굳이 알 필요가 없다고 한다.

아니,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라면 이름부터 알려주고 무엇을 기억할지는 독자에게 맡겨야 하는 것 아닌가. ‘폼발’은 그의 이름도 아니고 지명에서 따온 작위 아닌가. 그렇게 따지면 나도 이 책의 저자를 ‘경주 출신 작가’라고 부르면 될 일이다.

그래서 저자가 굳이 알려주지 않은 이름을 찾아봤다. 세바스티앙 주제 드 카르발류 이 멜루(Sebastião José de Carvalho e Melo). 적어놓고 보니 짧은 이름은 아니다. 그래도 리스본을 폐허에서 다시 일으킨 사람이라면 이 정도 이름쯤 한 번 알고 지나가도 괜찮지 않을까.

더 재미있는 것은 왕의 이름이다. 저자는 왕의 이름이 꼭 궁금하면 가서 확인해보라고 한다. 이번에도 독자에게 심부름을 시킨다. 그 왕은 주제 1세(José I)였다. 폼발 후작의 이름도, 왕의 이름도 결국 내가 찾아봤다.

2. 폼발을 읽다가 박정희를 떠올리다

폼발 후작은 리스본을 재건한 유능한 행정가였지만, 권력을 집중시키고 반대세력을 가혹하게 탄압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런데 저자는 그에게 상당히 호의적인 평가를 내리고, ‘시대를 앞서간 인문주의자’라는 표현까지 사용한다.

여기서 의문이 생겼다.

리스본을 재건한 공이 크다고 해서 강압적 통치와 탄압이라는 과가 작아지는 것일까. 반대로 독재적 통치를 했다고 해서 리스본을 되살린 그의 업적까지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일까.

그리고 저자는 그의 동상에 인사를 하고, 폼발이 자신에게 “국가의 기능과 리더의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고 한다.

여기서 박정희가 떠올랐다.

두 사람을 같은 인물로 비교할 수는 없다. 시대와 정치체제가 다르다. 그러나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고 반대세력을 억압한 동시에 국가에 커다란 변화를 남겼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역사적 질문을 던진다.

처음에는 의문이 들었다. 폼발의 독재에는 이렇게 후하면서 박정희에게도 같은 잣대를 적용할 수 있을까.

그런데 조금 더 읽자 내가 유시민을 너무 단순하게 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모든 독재는 나쁘다고 전제하면서도 한국의 경험을 ‘성공한 개발독재’라고 명확하게 규정했다. 반대로 살라자르의 포르투갈은 산업발전이 노동조합과 공산주의의 확산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해 경제발전 자체를 억제한 ‘저개발독재’였다고 평가했다.

생각해보니 나는 『나의 한국현대사』를 두 번이나 읽었다. 그런데도 저자가 박정희 시대의 산업화 성과를 인정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책을 두 번 읽었다는 것과 제대로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처음 품었던 이중잣대에 대한 의심은 여기서 조금 거두었다.

그러나 더 어려운 문제가 남았다.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평가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가.

리스본을 재건한 폼발과 사람을 탄압한 폼발은 같은 사람이다. 산업화를 이끈 박정희와 유신독재의 책임자 박정희 역시 같은 사람이다. 공이 있다고 과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며, 과가 있다고 공까지 없었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다.

역사의 법정이 정말 있다면 사람에게 최종점수를 매기는 곳이 아니라 그 한 사람이 지녔던 여러 얼굴을 모두 기록하는 곳이어야 하지 않을까. 공과 과를 함께 본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3. 사라마구를 보며 내가 기억하고 싶은 작가들을 생각하다

리스본에서 만난 또 하나의 흥미로운 장소는 주제 사라마구 기념관이었다. 특히 포르투갈어권의 여러 창작자가 사라마구 작품의 제목을 저마다의 손글씨로 써서 만든 전집 표지가 인상적이었다. 한 작가에 대한 존경을 그런 방식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는 것이 좋았다.

저자는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기억하고 사랑할 만한 작가로 박경리, 최인훈, 박완서, 황석영, 한강을 떠올렸다.

나라면 조금 다르다.

황석영, 박경리, 조정래, 박완서, 이문열, 최인호.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과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삶을 깊이 있게 그렸고, 청춘의 방황과 시대의 분위기에서 역사와 사상, 종교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넓은 작품세계를 보여준 작가들이다. 무엇보다 내가 오랫동안 여러 작품을 직접 읽으며 좋아했던 작가들이다.

누구를 넣고 누구를 뺄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라마구 전집이 보여준 기억의 방식이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를 후대가 어떻게 기억하고 기념할 것인가는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4. 리스본의 인간 챗GPT, 페소아

노벨문학상을 받은 사라마구보다 리스본 거리에서 더 자주 만나는 작가는 페르난두 페소아였다. 저자 자신도 그의 작품을 이해하기 어렵고 좋아하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그런데도 리스본 시민들은 페소아를 각별히 사랑하는 듯했다고 말한다.

그 이유를 조금 더 알아보니 이해할 만했다.

페소아는 단순히 여러 필명을 사용한 작가가 아니었다. 70개가 넘는 이명과 가상인물을 만들고 각각에게 서로 다른 성격, 생애, 사상, 문체를 부여했다. 알베르투 카에이루, 히카르두 헤이스, 알바루 드 캄푸스 같은 인물들은 이름만 바꾼 페소아가 아니라 서로 다른 작가처럼 움직였다.

1914년 3월 어느 날에는 카에이루의 이름으로 하루에 서른 편이 넘는 시를 썼다고 한다.

이쯤 되니 웃음이 났다.

페소아는 20세기 초 리스본의 인간 챗GPT였던 것 아닐까.

한 사람 안에 여러 작가를 만들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다른 페르소나를 불러내 엄청난 양의 글을 쏟아냈으니 지금 기준으로 보면 인간 멀티에이전트에 가깝다.

저자는 페소아의 이명들이 궁금하면 관련 책을 읽어보라고 한다. 폼발과 왕의 이름에 이어 또 독자에게 숙제를 내준다.

이쯤에서 별도 부록을 하나 만들기로 했다.

「억지로 하는 유시민의 심부름 1 ― 페소아의 이명들」

5. 여행에서 부지런함이란 무엇인가

리스본의 유명한 전차는 관광객으로 가득 찼다. 저자는 나중에서야 전차를 여유롭게 즐기려면 아침 일찍이나 밤늦게 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벨렝에서도 서둘렀지만 벨렝 타워, 발견기념탑, 제로니무스 수도원마다 긴 줄을 만났고, 자신들은 ‘부지런한 여행자’에 끼지 못했다고 했다.

여기서는 바르셀로나에서 저자가 말했던 ‘성당 하나 원칙’이 다시 떠올랐다.

나는 여행에서 오히려 반대다. 먼 곳까지 갔다면 새벽 네 시나 다섯 시라도 일어나 사람이 몰리기 전에 한 곳을 여유 있게 보고, 그렇게 확보한 시간으로 다른 곳도 하나라도 더 보는 편이다.

많이 본다고 허겁지겁 다니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여행에서 부지런함은 많이 보기 위해 서두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유 있게 보기 위해 시간을 먼저 확보하는 일이다.

리스본 전차와 벨렝에서 저자가 몸소 얻은 교훈은 내가 여행할 때 늘 사용해온 방법과 다르지 않았다.

6. ‘대항해시대’의 영광은 누구의 영광인가

벨렝에서는 포르투갈의 화려했던 해양제국 시대가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마누엘 1세의 이름을 딴 마누엘 양식은 배, 닻, 밧줄, 조개 같은 바다의 모티브와 기독교 상징, 해외에서 받아들인 여러 장식기법을 건축물에 화려하게 쏟아부었다.

『우스 루지아다스』가 문학으로 제국의 영광을 노래했다면, 마누엘 양식은 그 영광을 돌에 새겨놓은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는 이를 ‘졸부의 교만과 과시욕’이라고까지 평가한다. 해외 팽창으로 얻은 부와 권력을 건축에 과시했다는 지적에는 공감한다. 다만 “누가 보든, 어떻게 보든” 그렇게 보인다고 단정하는 데까지 따라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건축의 아름다움과 그 건축을 만든 시대의 어두운 역사는 함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가 마누엘 1세의 ‘행운’을 곧바로 다른 사람들의 불운과 연결한 것은 인상적이었다. 포르투갈이 인도양과 브라질로 뻗어나가는 동안 원주민들은 땅을 빼앗기고 죽임을 당했으며, 수많은 아프리카인이 노예가 되었다.

엔히끄 왕자 역시 포르투갈에서는 ‘항해왕자’이자 역사적 영웅이지만, 그의 후원 아래 이루어진 아프리카 진출은 초기 대서양 노예무역과 이어졌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대항해시대’라는 말을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에게 그것은 발견과 영광의 시대였지만 다른 지역 사람에게는 침략, 수탈, 노예화가 시작된 시대이기도 했다.

저자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급부상을 ‘개가 두 발로 걷는 기적’이라고 표현한 것은 재미있었다. 당시 유럽의 변방에 가까웠던 두 나라가 갑자기 세계사의 중심으로 올라섰으니 그 뜻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기적은 모두에게 기적이 아니었다.

한쪽의 행운은 다른 쪽의 불운이었고, 한쪽의 기적은 다른 쪽의 재앙이었다.

7. 경주 출신 작가가 시킨 두 번째 심부름

벨렝의 카몽이스 동상을 지나면서 저자는 포르투갈의 국민서사시 『우스 루지아다스』를 소개한다. 바스쿠 다 가마의 인도 항로 개척을 중심으로 포르투갈의 역사와 신화를 엮은 작품이라고 하지만 한국어 번역본이 없어 자세한 내용은 확인하지 못했다고 한다.

또 숙제다.

궁금해서 찾아봤다.

『우스 루지아다스』는 다 가마의 인도항로 개척을 중심으로 포르투갈의 역사와 신화를 결합하고, 포르투갈인의 항해를 고대 영웅서사처럼 그린 국민서사시였다. 포르투갈이 자신들의 해외 진출을 어떻게 기억하고 싶어 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자세한 줄거리는 본문 흐름을 끊으니 부록으로 돌린다.

「억지로 하는 유시민의 심부름 2 ― 『우스 루지아다스』는 도대체 무슨 내용인가」

경주 출신 작가가 리스본에서 독자를 제법 부려먹는다.

8. 바벨탑의 저주와 인공지능 ― 신빨이 떨어지는 시대

리스본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문장 가운데 하나는 인공지능 번역기 이야기였다.

구약성서의 바벨탑 이야기에서 신은 인간의 언어를 서로 다르게 만들어 흩어놓는다. 그러나 저자는 영어도 신통치 않고 포르투갈어도 전혀 몰랐지만 인공지능 번역기 덕분에 별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고 했다.

이 비유에는 나도 공감했다.

수천 년 동안 인간을 갈라놓았던 언어의 장벽을 이제는 휴대전화 하나로 상당 부분 넘을 수 있다. 신화 속에서 인간에게 내려졌던 벌을 인간이 기술로 조금씩 무력화하고 있는 셈이다.

이쯤 되면 바벨탑에서 내려졌다는 벌도 약발이 다해가는 모양이다. 신빨이 떨어지고 있는 셈이다.

종교에 대해 비판적인 나로서는 이런 식의 비유가 꽤 재미있었다.

9. 굴벤키안과 사실 하나 바로잡기

리스본에서는 석유 사업가이자 미술품 수집가인 칼루스트 굴벤키안도 만난다. 아르메니아계 오스만제국인으로 태어나 프랑스와 영국에서 공부하고 여러 나라에서 사업을 벌이며 억만장자가 된 뒤 리스본에 자신의 유산을 남긴 인물이다. 저자는 여러 국가와 문화를 오가면서도 아르메니아 공동체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은 그를 ‘세계시민’이라고 평가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사실관계를 하나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었다.

책에는 굴벤키안이 런던 킹스 칼리지에서 공학박사가 되었다고 적혀 있지만, 확인해보니 그는 킹스 칼리지에서 공부해 Associate of King’s College(AKC) 자격을 얻은 것이지 공학박사 학위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AKC는 박사학위가 아니다.

또 굴벤키안 재단도 그가 생전에 직접 설립한 것이 아니라, 그의 유언에 따라 사후에 설립되었다.

이런 차이가 굴벤키안이라는 인물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를 바꾸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전기적 사실을 다루는 책이라면 바로잡고 넘어가는 것이 맞다.

감상문은 저자가 써놓은 말을 그대로 받아 적는 글이 아니다. 공감할 것은 공감하고, 단정적인 주장에는 의문을 제기하며, 사실과 다른 부분은 확인해 바로잡는 것 역시 제대로 책을 읽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10. 결국 리스본에 푹 빠진 저자

리스본을 떠나면서 저자는 언젠가 오래 살아보고 싶다고 한다. 자연이 아름답고 도시가 정겹고,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으며 음식과 음악이 훌륭했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도 파두의 멜로디와 해물밥 냄새가 떠오른다며 기회가 생기면 다시 가고 싶다고 한다.

고 며칠 머물렀다고 이렇게까지 좋은가 싶어 조금 웃음이 났다.

거의 사랑에 빠진 사람의 고백 같다.

그래도 여행에는 며칠만 머물러도 유난히 마음에 들어오는 도시가 있는 법이다. 폼발 후작을 두고 역사와 리더십을 생각하고, 사라마구와 페소아를 만나 문학을 이야기하고, 벨렝에서는 제국의 영광과 그 뒤의 침략과 노예무역을 돌아보고, 전차에서는 여행의 부지런함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 도시.

리스본은 저자에게 그런 도시였던 모양이다.

그리고 책을 따라 리스본을 걸은 나에게도, 아직 가보지 않은 도시 하나에 제법 많은 이야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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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홀’의 실내장식은 이슬람 문화와 기술을 극단적인 수준으로 구현한 무어 양식이었다. 꾸미는 데 20년이나 걸린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단단한 원목을 물샐 틈 없이 정교하게 짜 맞춘 바닥, 아랍 문자를 활용한 벽장식, 기둥과 벽체의 기하학적 문양, 스테인드글라스의 다양한 색채와 형태, 10킬로그램 넘는 금을 썼다는 기둥과 천장의 장식,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을 이겨 먹으려고 한 게 아닌가 싶었다. 이슬람의 장식 기술을 그렇게 높은 수준으로 구현한 집을 나는 본 적이 없다. 국회에서 일하던 때 UAE의 아부다비부터 오만의 무스카트까지 걸프 국가 다섯 곳의 왕궁 접견실을 보았는데, ‘아랍 룸’ 실내장식의 예술적 수준에 이른 경우는 없었다.

멀리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만으로도 여행은 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뽀르투에서도 사람들이 무얼 어떻게 먹는지 살폈다. 리스본과 비슷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는 않은 듯했다. 제일 두드러진 차이는 정어리였다. 가장 뽀르투다운 관광지인 히베이라 광장의 공기는 정어리 굽는 냄새가 지배했고 강변 노점의 기념품 중에 정어리를 모티브로 쓴 것이 많았다. 리스본에도 정어리는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즐기는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는 기념품으로 정어리를 그려 넣은 접시와 에코백을 샀다. 정어리 요리는 이스탄불 갈라타 광장의 고등어 케밥이 그런 것처럼 생선 비린내를 싫어하면 먹기 어렵다. 나는 등 푸른 생선의 비린내와 맛을 즐기는 사람이라 아무 문제가 없었다.

‘벨 에포크’가 지난 이후 유럽은 미국에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주도권을 넘겨주었고 다시는 되찾지 못했다.
‘벨 에포크’는 끝나버린 전성기에 대한 유럽인의 그리움을 자극하는 말이다.

점심시간이 임박한 히베이라는 관광객 천지였다. 밤 굽는 연기, 음식 냄새, 호객 소리, 연인들, 아이들, 서로 어깨를 기댄 낡은 집들, 그 모두가 다시 오라고 나를 유혹했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왜 뽀르투를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았다. 한국과 정반대여서 그런 것이다. 모든 것이 너무나 빨리 변하는 서울과 달리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도시여서다. 사람은 자신에게 없는 그 무엇을 갈망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한 가지 더, 중세와 근대 역사의 영향도 있었을 수 있다. 정복 전쟁을 일삼았던 포르투갈 왕국은 대항해 시대의 짧은 전성기를 지나 유럽의 변방 국가로 되돌아왔다. 공화주의 혁명을 이룬 뒤에는 살라자르의 장기독재를 겪었다. 그런 역사를 살아온 사람이라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힘을 다해 이웃과 싸우면서 남을 정복했지만, 승리는 오래가지 않았고 남은 것도 없다. 이기는 것보다는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이 좋다. 이웃을 적으로 삼기보다는 서로 기댈 수 있는 친구로 만드는 게 낫지 않겠는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붐비는 거리에서도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는다. 친구나 사업 파트너를 만나면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충분히 들으면서 오래 이야기를 나눈다. 이방인에게도 경계하고 의심하는 표정이 아니라 여유롭게 환대하는 미소를 선사한다. 리스본과 뽀르투 사람들한테서 나는 그런 마음을 느꼈다.

이유가 무엇이든 리스본과 뽀르투는 내가 한국에서 가질 수 없는 것을 주었다. 무엇이든 효율적으로, 신속하게, 성공적으로 해내야 한다는 강박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게 했다.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오기 전까지 걱정과 근심을 잊고 매 순간 내가 머무르는 공간에 집중할 수 있었다. 활주로에서 날아오르는 비행기에서 뽀르투를 향해 약속했다. ‘잘 있어. 또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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