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홀’의 실내장식은 이슬람 문화와 기술을 극단적인 수준으로 구현한 무어 양식이었다. 꾸미는 데 20년이나 걸린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단단한 원목을 물샐 틈 없이 정교하게 짜 맞춘 바닥, 아랍 문자를 활용한 벽장식, 기둥과 벽체의 기하학적 문양, 스테인드글라스의 다양한 색채와 형태, 10킬로그램 넘는 금을 썼다는 기둥과 천장의 장식,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을 이겨 먹으려고 한 게 아닌가 싶었다. 이슬람의 장식 기술을 그렇게 높은 수준으로 구현한 집을 나는 본 적이 없다. 국회에서 일하던 때 UAE의 아부다비부터 오만의 무스카트까지 걸프 국가 다섯 곳의 왕궁 접견실을 보았는데, ‘아랍 룸’ 실내장식의 예술적 수준에 이른 경우는 없었다.

멀리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만으로도 여행은 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뽀르투에서도 사람들이 무얼 어떻게 먹는지 살폈다. 리스본과 비슷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는 않은 듯했다. 제일 두드러진 차이는 정어리였다. 가장 뽀르투다운 관광지인 히베이라 광장의 공기는 정어리 굽는 냄새가 지배했고 강변 노점의 기념품 중에 정어리를 모티브로 쓴 것이 많았다. 리스본에도 정어리는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즐기는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는 기념품으로 정어리를 그려 넣은 접시와 에코백을 샀다. 정어리 요리는 이스탄불 갈라타 광장의 고등어 케밥이 그런 것처럼 생선 비린내를 싫어하면 먹기 어렵다. 나는 등 푸른 생선의 비린내와 맛을 즐기는 사람이라 아무 문제가 없었다.

‘벨 에포크’가 지난 이후 유럽은 미국에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주도권을 넘겨주었고 다시는 되찾지 못했다.
‘벨 에포크’는 끝나버린 전성기에 대한 유럽인의 그리움을 자극하는 말이다.

점심시간이 임박한 히베이라는 관광객 천지였다. 밤 굽는 연기, 음식 냄새, 호객 소리, 연인들, 아이들, 서로 어깨를 기댄 낡은 집들, 그 모두가 다시 오라고 나를 유혹했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왜 뽀르투를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았다. 한국과 정반대여서 그런 것이다. 모든 것이 너무나 빨리 변하는 서울과 달리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도시여서다. 사람은 자신에게 없는 그 무엇을 갈망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한 가지 더, 중세와 근대 역사의 영향도 있었을 수 있다. 정복 전쟁을 일삼았던 포르투갈 왕국은 대항해 시대의 짧은 전성기를 지나 유럽의 변방 국가로 되돌아왔다. 공화주의 혁명을 이룬 뒤에는 살라자르의 장기독재를 겪었다. 그런 역사를 살아온 사람이라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힘을 다해 이웃과 싸우면서 남을 정복했지만, 승리는 오래가지 않았고 남은 것도 없다. 이기는 것보다는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이 좋다. 이웃을 적으로 삼기보다는 서로 기댈 수 있는 친구로 만드는 게 낫지 않겠는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붐비는 거리에서도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는다. 친구나 사업 파트너를 만나면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충분히 들으면서 오래 이야기를 나눈다. 이방인에게도 경계하고 의심하는 표정이 아니라 여유롭게 환대하는 미소를 선사한다. 리스본과 뽀르투 사람들한테서 나는 그런 마음을 느꼈다.

이유가 무엇이든 리스본과 뽀르투는 내가 한국에서 가질 수 없는 것을 주었다. 무엇이든 효율적으로, 신속하게, 성공적으로 해내야 한다는 강박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게 했다.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오기 전까지 걱정과 근심을 잊고 매 순간 내가 머무르는 공간에 집중할 수 있었다. 활주로에서 날아오르는 비행기에서 뽀르투를 향해 약속했다. ‘잘 있어. 또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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