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도시 기행 3 -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리스본, 뽀르투 편 유럽 도시 기행 3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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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감상문] 『유럽 도시 기행 3』 포르투갈편

뽀르투 ― 나라 이름의 뿌리에서 책과 지식, 음식과 여행의 속도까지

11. 나라 이름의 뿌리가 된 아담한 항구도시

리스본을 떠나 뽀르투로 올라왔다. 뽀르투는 도루강 하류의 북쪽 비탈과 언덕에 들어선 도시로, 포르투갈에서 리스본 다음으로 큰 도시라고 하지만 상주인구는 약 25만 명에 불과하다. 주변 도시와 도루강 남쪽의 가이아까지 묶은 광역권이 약 150만 명이라니, 도시 자체는 생각보다 훨씬 아담하다.

그런데 도시의 크기와 달리 이름이 지닌 무게는 상당하다. ‘뽀르투(Porto)’는 항구를 뜻하고, 포르투갈이라는 국호 역시 라틴어 지명 ‘포르투스 칼레(Portus Cale)’에서 유래했다. 말하자면 나라 이름의 뿌리가 된 도시인 셈이다.

여기서 잠깐 엉뚱한 궁금증이 생겼다. 항구라면 적의 침입을 막는 요새나 포대가 따라붙었을 것 같은데, 영어의 fort나 fortress와 혹시 어원이 연결되는 것은 아닐까.

찾아보니 아니었다. Porto의 뿌리는 라틴어 portus, 즉 ‘항구’이고, fort와 fortress는 ‘강하다’는 뜻의 fortis에서 나왔다. 말의 뿌리는 전혀 달랐지만 내 연상이 완전히 엉뚱했던 것은 아니었다. 역사에서 중요한 항구와 요새는 늘 가까운 사이였고, 뽀르투 역시 도루강 하구를 방어하는 요새를 두고 있었다.

책 한 문장에서 시작한 궁금증이 항구와 요새의 역사까지 데려갔다.

12. 하루면 걸어볼 수 있는 도시, 그래서 더 마음에 든다

저자가 제시한 뽀르투 하루 여행코스를 보니 도시의 크기가 더 실감났다. 아침에 시청사를 출발해 서점과 기차역, 성당을 보면서 걸어서 도루강의 히베이라까지 내려간다. 점심을 먹고 유람선을 탄 다음 강 건너 가이아까지 둘러본다. 이틀이 있다면 같은 길을 더 여유 있게 걸으면 된다고 한다.

이 정도라면 내 여행 방식과도 잘 맞는다.

리스본에서도 생각했지만 여행에서 부지런함은 많이 보기 위해 서두르는 것이 아니라 여유 있게 보기 위해 시간을 먼저 확보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행지에서 새벽 네 시나 다섯 시에 일어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남들이 나오기 전에 먼저 움직이면 한 곳을 한적하게 찬찬히 볼 수 있고, 그렇게 확보한 시간으로 다른 곳도 하나 더 볼 수 있다.

뽀르투처럼 작고 주요 명소가 걸어서 이어지는 도시라면 하루도 꽤 길게 쓸 수 있을 것 같다.

13. 리스본의 작가들, 뽀르투의 가헤뜨

리스본에서 사라마구와 페소아를 만났다면 뽀르투에서는 알메이다 가헤뜨를 만난다. 시청사에 그의 흉상이 서 있다.

가헤뜨는 단순한 낭만파 시인이 아니었다. 무신론자임을 숨기지 않았고, 1820년 뽀르투 자유주의 혁명에 참여했으며 혁명이 실패하자 영국과 프랑스에서 망명생활을 했다. 귀국한 뒤에는 시와 희곡뿐 아니라 민담을 모으고 역사소설을 썼으며 왕립극장 건립에도 관여했다.

리스본 사람들이 사라마구와 페소아를 기억한다면 뽀르투 사람들은 자기 도시에서 태어난 가헤뜨를 기억하고 있었다.

리스본과 뽀르투는 서로 다른 작가를 내세우고 있었지만 자기 도시의 작가를 기억하고 사랑하는 방식은 닮아 있었다.

사라마구 기념관에서 보았던 특별한 전집과 페소아가 도시 곳곳에 남아 있던 풍경이 여기서 다시 이어졌다.

14. 렐루서점과 룰루레몬, 그리고 책에 대한 뜻밖의 논쟁

가헤뜨의 흉상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그 유명한 렐루서점(Livraria Lello)이 있다.

그런데 나는 ‘렐루’라는 이름을 보는 순간 엉뚱하게도 룰루레몬이 떠올랐다.

책으로 가득한 백 년 넘은 서점을 보면서 운동복 브랜드부터 생각했으니 나도 참 별수 없다. 물론 둘 사이에는 아무 관계도 없다. 그래도 렐루, 룰루레몬. 한번 연결되고 나니 머릿속에서 잘 떨어지지 않는다.

웃음은 웃음이고, 저자는 렐루서점에 대해서는 꽤 냉정하다. 『해리 포터』의 마법학교 구상에 영향을 주었다는 이야기가 퍼진 뒤 관광객이 몰려 이제는 책방이라기보다 관광명소가 되었고, 긴 줄을 서서 들어갈 필요까지는 없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나도 이해한다. 여행에서 어디를 볼 것인지는 각자의 취향이고, 유명하다는 이유만으로 반드시 줄을 서야 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이야기가 갑자기 다른 데로 간다. 저자는 책은 더 이상 지성의 상징이 아니며 숭배할 대상도 아니고, 인터넷, 검색엔진, 인공지능 시대에 종이책은 전성기가 지난 전통 미디어라고 말한다.

평생 책을 써서 세상과 관계를 맺어왔고 지금도 책을 써서 먹고사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니 뜻밖이다. 냉정한 자기평가라기보다 자기부정에 가깝게 느껴졌다. 자기가 평생 몸담아온 책이라는 매체의 의미를 스스로 너무 쉽게 깎아내리는 것 아닌가 싶었다.

더구나 책을 왜 종이책으로만 보아야 하는지도 이해하기 어렵다. 전자책도 책이고, 그 안에 담긴 지식과 사상은 종이냐 화면이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생각했다. 그 소설에서 책은 단순한 종이뭉치가 아니다. 수도원의 미궁 같은 장서관에 지식이 모여 있고, 누가 어떤 책을 읽을 수 있는지를 통제하는 것이 곧 권력이다. 책은 지식의 저장소이면서 지식과 권위의 상징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런 권위를 좋아하거나 신봉한다는 뜻은 아니다. 책이 지식과 권위의 상징이었다는 사실과 그 권위를 숭배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인터넷과 인공지능으로 지식을 얻는 통로가 다양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유명 서점에 긴 줄을 설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에서 책이 더 이상 지성의 상징이 아니라는 이야기로 발전하는지 잘 모르겠다.

15. 상벤투역, 벽에 펼쳐놓은 포르투갈 역사책

상벤투역의 대합실은 수많은 아줄레주(Azulejo)로 포르투갈의 역사를 펼쳐놓은 공간이다.

아줄레주는 여러 장의 타일을 이어 역사, 종교, 생활풍경 등을 그림처럼 표현한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장식예술이다. 상벤투역에는 포르투갈 건국과 관련된 발데베즈 전투, 주앙 1세 부부의 뽀르투 입성, 엔히끄 왕자의 세우타 정복 같은 장면들이 벽에 이어진다.

기차역 대합실이면서 거대한 역사책인 셈이다.

이런 곳이라면 나도 그냥 지나치지는 못할 것 같다. 기차를 타러 들어갔다가 벽에 그려진 전투와 역사인물 하나하나 들여다보느라 자칫 기차를 놓칠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유럽을 여행하면서 이곳만큼 한국인을 많이 본 적이 없었다며 뽀르투가 한국 젊은이들에게 ‘힙한 여행지’가 된 것 같다고 했다. 한국 사람이 그렇게 많다는 이야기는 의외였지만, 상벤투역 사진을 보면 왜 사람들이 이곳에서 카메라를 들 수밖에 없는지는 알 것 같다.

16.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는 공감하지만

뽀르투 국립미술관에서 저자는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떠올린다. 마드리드의 유명 미술관에서 거장의 대작을 보는 것만 의미 있는 일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지방 작가의 작품을 만나는 것도 충분히 아름다운 경험이라는 것이다.

“중심과 변방이 저마다 아름다울 수 있다.”

이 말에는 공감한다.

이름난 거장의 작품만이 예술이고 대도시의 유명 미술관만 좋은 미술관일 수는 없다. 작은 도시의 작은 미술관에서 처음 만난 작품이 더 깊은 인상을 줄 수도 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앞으로의 여행에서도 나는 그렇게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여행지에 가면 역사유적과 자연경관을 먼저 찾는다. 시간은 한정돼 있고 보고 싶은 것은 많다. 작은 미술관의 가치를 몰라서가 아니라 내 여행에서 무엇을 먼저 볼 것인가의 문제다.

저자는 여행에서 통념보다 자신의 마음을 따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나도 내 마음을 따르겠다.

17. 아랍 홀에서 다시 만난 이슬람 건축의 아름다움

뽀르투의 ‘아랍 홀’ 사진은 보자마자 내가 좋아하는 이슬람 건축을 떠올리게 했다.

이스파한과 사마르칸트, 그리고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이다.

단단한 원목을 정교하게 맞춘 바닥, 아랍문자를 이용한 벽장식, 기하학적 문양, 스테인드글라스, 금빛으로 가득한 천장과 기둥. 서로 다른 지역과 시대의 건축인데도 기하학과 반복문양, 문자와 색채를 이용해 공간 전체를 장식하는 방식에는 통하는 것이 있다.

나는 이런 이슬람 건축을 좋아한다.

구조물을 만들고 장식을 덧붙인다는 느낌보다 공간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무늬와 빛으로 만들어버리는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알함브라 궁전을 ‘이겨 먹으려고’ 만든 것 아닌가 싶다고 했는데, 사진을 보니 왜 그런 표현을 했는지 알 만했다.

18. 정어리보다 김치찌개가 좋다

저자는 뽀르투에 와서도 음식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히베이라 광장에는 정어리 굽는 냄새가 가득했고, 자신은 등 푸른 생선의 비린내와 맛을 좋아해서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나는 정반대다.

비린 생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뽀르투까지 갔다고 해서 굳이 정어리를 먹어야 한다는 생각도 없다.

여기서 저자와 나의 여행음식 철학을 한 번 맞붙여보면 이렇다.

“멀리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만으로도 여행은 가치가 있다.” — 유시민군

“그 맛있는 걸 찾는 게 문제랑께. 잘못 걸리믄 한입 먹고 쓰레기통 가는 겨.” — 나

우리 유시민군은 좋은 데서만 먹는가 보다.

나는 그렇지 않았다.

10여 년 전 밴쿠버에서는 아내가 인터넷을 열심히 뒤져 찾아간 치폴레에서 음식을 받아 한입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보낸 적이 있다. 내 여행 역사에서 손꼽히는 최악의 음식이었다.

그런데 같은 캐나다의 밴프에서는 정반대였다. 별다른 검색없이 들어간 메이플리프라는 식당에서 스테이크와 랍스터를 먹었는데 한 끼에 15만 원쯤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워매, 이건 그냥 살살 녹는겨.”

맛은 훌륭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중국여행에서는 음식 때문에 더 고생한다. 아내는 거의 먹지 못할 때도 있어서 김과 고추장을 챙겨간다. 그래도 밥이 있으니 그것으로 한 끼를 넘길 수 있다. 일본 음식은 대체로 입맛에 잘 맞는다. 역시 문제는 가격이다. 미국과 캐나다의 중저가 음식은 입맛에 잘 맞지 않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면 돈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내게 음식은 여행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일 수는 있어도 여행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아니다.

나는 토종 시골 촌놈이다. 정어리구이보다 김치찌개가 좋다.

19. 벨 에포크, 유럽인들에게는 얼마나 그리운 시대일까

저자는 ‘벨 에포크’가 끝난 뒤 유럽이 정치, 경제, 군사적 주도권을 미국에 넘겨주었으며, 다시는 되찾지 못했다고 썼다. 벨 에포크는 끝난 전성기에 대한 유럽인의 그리움을 자극하는 말이라고 한다.

읽으면서 속으로 한마디 했다.

써글넘들, 얼마나 그리울까나.

유럽에게는 과학, 경제, 도시문화와 예술이 번성했던 ‘아름다운 시대’였을 것이다. 그러나 유럽의 번영 뒤에서 식민지배와 수탈을 겪었던 사람들에게까지 아름다운 시대였던 것은 아니다.

역사를 길게 놓고 보면 세계의 중심이 언제나 한곳에 머물렀던 것도 아니다.

중국과 인도 문명이 번성하던 시대가 있었고, 이슬람 세계가 학문과 상업의 중심이었던 시대가 있었으며, 근대 이후에는 유럽이 세계를 지배했다. 20세기에는 주도권이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넘어갔다. 앞으로 한국, 일본,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가 세계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할지는 더 두고 봐야겠지만, 적어도 한 문명이 영원히 패권을 독점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역사가 보여준다.

패권은 돌고 돈다. 유럽의 벨 에포크도 긴 문명사의 한때였을 뿐이다. 다시 유럽 차례가 오려면 한 2천 년은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20. 하이고, 유시민군. 너무 낭만적인 것 아닌가

히베이라에 도착한 저자는 뽀르투에 완전히 빠져버린다.

군밤 굽는 연기, 음식 냄새, 호객 소리, 연인과 아이들, 서로 어깨를 기댄 오래된 집들. 모든 것이 너무 빨리 변하는 서울과 달리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 같은 도시라 한국의 젊은 여행자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다.

여기까지는 이해한다.

그런데 다음 이야기는 너무 멀리 간 것 같다.

포르투갈이 정복전쟁과 대항해시대의 영광, 제국의 몰락과 살라자르 독재를 겪었기 때문에 국민들이 이제는 ‘이기기보다 오래 지속되는 삶, 이웃을 적보다 친구로 만드는 삶, 속도보다 방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하이고, 유시민군. 저 사람들이 정말 그렇게까지 생각할까.

한 나라가 제국의 흥망과 독재를 경험했다고 해서 국민 모두가 같은 역사적 교훈을 얻는 것은 아니다. 역사에는 과거의 잘못을 잊고 비슷한 일을 반복한 경우도 수도 없이 많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저자가 리스본과 뽀르투에서 느낀 친절과 여유까지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것은 여행하면서 실제로 받은 인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눈앞에서 만난 사람들의 친절한 모습을 포르투갈의 제국 흥망사와 연결해 국민 전체의 삶의 태도로 설명하는 것은 너무 낭만적인 해석으로 보인다.

21. 우리 유시민군, 드디어 빠이빠이 한다

뽀르투를 떠나면서 저자는 비행기 안에서 도시를 향해 약속한다.

“잘 있어. 또 올게!”

리스본에서도 오래 살아보고 싶다고 했으니 이번 포르투갈 여행에서 두 도시에 단단히 빠져버린 모양이다.

우리 유시민군, 드디어 빠이빠이 한다.

저자는 리스본과 뽀르투에서 한국에서는 가질 수 없는 것을 얻었다고 했다. 무엇이든 효율적으로, 신속하게, 성공적으로 해내야 한다는 강박에서 잠시 벗어나 현재 머물고 있는 공간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마음에는 공감한다.

다만 나의 여행 방식은 조금 다르다.

나는 여행지에서도 일찍 일어나고 부지런히 움직인다. 하지만 빨리빨리 보기 위해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남들보다 일찍 움직이면 사람이 붐비기 전에 한 곳을 여유 있게 볼 수 있고, 그렇게 확보한 시간으로 다른 곳도 하나 더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느리게 움직이는 것만이 여유로운 여행은 아니다.

내게 여행의 여유는 부지런히 움직이면서도 찬찬히 보는 것이다.

리스본에서 전차와 벨렝의 긴 줄을 보며 했던 생각이 뽀르투에서 다시 돌아왔다.

저자의 여행방식을 그대로 따라 할 필요도 없고, 저자가 좋았던 것을 내가 똑같이 좋아할 필요도 없다. 작은 미술관이 좋다는 말에는 공감하지만 나는 여전히 역사유적과 자연경관을 먼저 찾아갈 것이다. 뽀르투 사람들이 즐기는 정어리보다 김치찌개가 더 좋고, 유명한 렐루서점보다 상벤투역의 역사화 앞에서 더 오래 서 있을지도 모른다.

여행에서는 결국 자신의 마음을 따르면 된다.

그 말만큼은 이번에는 유시민군과 의견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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