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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도시 기행 3 -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리스본, 뽀르투 편 ㅣ 유럽 도시 기행 3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26년 7월
평점 :
[독서감상문] 『유럽 도시 기행 3』 포르투갈편
리스본 ― 제국의 영광과 그늘, 그리고 저자와 티격태격하며 걸은 도시
스페인의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를 지나 이제 포르투갈로 넘어간다.
잠깐, 이베리아반도 지도를 펼쳐놓고 보니 재미있는 게 하나 눈에 들어왔다. 이 조그만 포르투갈이 반도 서쪽의 대서양 연안을 길게 붙들고 있는 것이다. 거대한 스페인이 반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도 리스본과 뽀르투를 비롯한 좋은 항구들은 포르투갈 땅이다.
물론 스페인에도 대서양으로 나가는 길은 있었다. 그러나 갈리시아나 남쪽의 항구 몇 곳을 가지고 있는 것과, 리스본과 뽀르투를 포함한 포르투갈의 긴 대서양 연안을 통째로 차지하는 것은 지정학적으로 천지차이다.
지도를 보고 있으니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스페인은 저 땅을 얼마나 먹고 싶었을까.”
그러다가 생각을 좀 더 깊이 해봤다. 애초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서로 경쟁하고 싸우는 두 나라가 아니라 하나의 나라였다면 어땠을까.
당시 두 나라가 차지했던 세계지도를 겹쳐놓으면 상상은 훨씬 커진다. 남아메리카 대부분은 사실상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영역이었고, 스페인은 아메리카에서 태평양과 필리핀으로 뻗어나갔다. 포르투갈은 브라질에서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양과 동남아시아, 마카오까지 이어지는 해상망을 가지고 있었다.
이 두 나라의 힘이 하나로 합쳐진 채 오랫동안 유지되었다면 유럽과 세계의 역사는 상당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대서양, 태평양, 인도양에 걸친 거대한 해양제국이 되었을 것이고, 훗날 영국, 프랑스, 독일과 어깨를 나란히하거나 오히려 앞서가는 강대국으로 남았을 가능성도 상상해볼 수 있다. 영국과 프랑스가 과연 지금과 같은 위치까지 올라설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역사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두 나라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고 때로는 싸웠다. 포르투갈은 거대한 스페인 옆에서 끝내 자기 나라를 지켜냈다.
스페인 입장에서는 참 답답했겠다. 그래도 끝내 못 먹었다. 솔직히 나는 엄청 꼬시다. 피사로를 비롯한 정복자들이 아메리카에서 벌인 일을 생각하면 스페인 제국의 화려한 영광을 마냥 좋게 바라볼 마음도 없다.
그렇게 지도를 한 번 들여다보고 리스본으로 들어갔다.
리스본에서는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도시를 다시 세운 폼발 후작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를 따라가다 보면 포르투갈의 독재와 개발, 사라마구와 페소아의 문학, 벨렝에 남은 제국의 기억, 마누엘 양식의 화려함과 그 뒤에 가려진 노예무역과 침략의 역사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 도시를 읽는 동안 내가 계속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결국 하나였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1. 폼발 후작, 이름부터 알려주면 어디 덧나나
1755년 리스본 대지진 직후 왕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묻자 외무장관은 죽은 사람을 묻고 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어야 한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는 말에 그치지 않고 폐허가 된 리스본을 다시 세웠다. 오늘날 리스본 한복판의 높은 곳에 왕이 아닌 그의 동상이 서 있는 이유다.
그런데 저자는 그의 작위가 리스본과 뽀르투 사이의 지명에서 유래했다고 설명하면서, 본명이 너무 기니 굳이 알 필요가 없다고 한다.
아니,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라면 이름부터 알려주고 무엇을 기억할지는 독자에게 맡겨야 하는 것 아닌가. ‘폼발’은 그의 이름도 아니고 지명에서 따온 작위 아닌가. 그렇게 따지면 나도 이 책의 저자를 ‘경주 출신 작가’라고 부르면 될 일이다.
그래서 저자가 굳이 알려주지 않은 이름을 찾아봤다. 세바스티앙 주제 드 카르발류 이 멜루(Sebastião José de Carvalho e Melo). 적어놓고 보니 짧은 이름은 아니다. 그래도 리스본을 폐허에서 다시 일으킨 사람이라면 이 정도 이름쯤 한 번 알고 지나가도 괜찮지 않을까.
더 재미있는 것은 왕의 이름이다. 저자는 왕의 이름이 꼭 궁금하면 가서 확인해보라고 한다. 이번에도 독자에게 심부름을 시킨다. 그 왕은 주제 1세(José I)였다. 폼발 후작의 이름도, 왕의 이름도 결국 내가 찾아봤다.
2. 폼발을 읽다가 박정희를 떠올리다
폼발 후작은 리스본을 재건한 유능한 행정가였지만, 권력을 집중시키고 반대세력을 가혹하게 탄압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런데 저자는 그에게 상당히 호의적인 평가를 내리고, ‘시대를 앞서간 인문주의자’라는 표현까지 사용한다.
여기서 의문이 생겼다.
리스본을 재건한 공이 크다고 해서 강압적 통치와 탄압이라는 과가 작아지는 것일까. 반대로 독재적 통치를 했다고 해서 리스본을 되살린 그의 업적까지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일까.
그리고 저자는 그의 동상에 인사를 하고, 폼발이 자신에게 “국가의 기능과 리더의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고 한다.
여기서 박정희가 떠올랐다.
두 사람을 같은 인물로 비교할 수는 없다. 시대와 정치체제가 다르다. 그러나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고 반대세력을 억압한 동시에 국가에 커다란 변화를 남겼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역사적 질문을 던진다.
처음에는 의문이 들었다. 폼발의 독재에는 이렇게 후하면서 박정희에게도 같은 잣대를 적용할 수 있을까.
그런데 조금 더 읽자 내가 유시민을 너무 단순하게 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모든 독재는 나쁘다고 전제하면서도 한국의 경험을 ‘성공한 개발독재’라고 명확하게 규정했다. 반대로 살라자르의 포르투갈은 산업발전이 노동조합과 공산주의의 확산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해 경제발전 자체를 억제한 ‘저개발독재’였다고 평가했다.
생각해보니 나는 『나의 한국현대사』를 두 번이나 읽었다. 그런데도 저자가 박정희 시대의 산업화 성과를 인정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책을 두 번 읽었다는 것과 제대로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처음 품었던 이중잣대에 대한 의심은 여기서 조금 거두었다.
그러나 더 어려운 문제가 남았다.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평가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가.
리스본을 재건한 폼발과 사람을 탄압한 폼발은 같은 사람이다. 산업화를 이끈 박정희와 유신독재의 책임자 박정희 역시 같은 사람이다. 공이 있다고 과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며, 과가 있다고 공까지 없었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다.
역사의 법정이 정말 있다면 사람에게 최종점수를 매기는 곳이 아니라 그 한 사람이 지녔던 여러 얼굴을 모두 기록하는 곳이어야 하지 않을까. 공과 과를 함께 본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3. 사라마구를 보며 내가 기억하고 싶은 작가들을 생각하다
리스본에서 만난 또 하나의 흥미로운 장소는 주제 사라마구 기념관이었다. 특히 포르투갈어권의 여러 창작자가 사라마구 작품의 제목을 저마다의 손글씨로 써서 만든 전집 표지가 인상적이었다. 한 작가에 대한 존경을 그런 방식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는 것이 좋았다.
저자는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기억하고 사랑할 만한 작가로 박경리, 최인훈, 박완서, 황석영, 한강을 떠올렸다.
나라면 조금 다르다.
황석영, 박경리, 조정래, 박완서, 이문열, 최인호.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과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삶을 깊이 있게 그렸고, 청춘의 방황과 시대의 분위기에서 역사와 사상, 종교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넓은 작품세계를 보여준 작가들이다. 무엇보다 내가 오랫동안 여러 작품을 직접 읽으며 좋아했던 작가들이다.
누구를 넣고 누구를 뺄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라마구 전집이 보여준 기억의 방식이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를 후대가 어떻게 기억하고 기념할 것인가는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4. 리스본의 인간 챗GPT, 페소아
노벨문학상을 받은 사라마구보다 리스본 거리에서 더 자주 만나는 작가는 페르난두 페소아였다. 저자 자신도 그의 작품을 이해하기 어렵고 좋아하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그런데도 리스본 시민들은 페소아를 각별히 사랑하는 듯했다고 말한다.
그 이유를 조금 더 알아보니 이해할 만했다.
페소아는 단순히 여러 필명을 사용한 작가가 아니었다. 70개가 넘는 이명과 가상인물을 만들고 각각에게 서로 다른 성격, 생애, 사상, 문체를 부여했다. 알베르투 카에이루, 히카르두 헤이스, 알바루 드 캄푸스 같은 인물들은 이름만 바꾼 페소아가 아니라 서로 다른 작가처럼 움직였다.
1914년 3월 어느 날에는 카에이루의 이름으로 하루에 서른 편이 넘는 시를 썼다고 한다.
이쯤 되니 웃음이 났다.
페소아는 20세기 초 리스본의 인간 챗GPT였던 것 아닐까.
한 사람 안에 여러 작가를 만들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다른 페르소나를 불러내 엄청난 양의 글을 쏟아냈으니 지금 기준으로 보면 인간 멀티에이전트에 가깝다.
저자는 페소아의 이명들이 궁금하면 관련 책을 읽어보라고 한다. 폼발과 왕의 이름에 이어 또 독자에게 숙제를 내준다.
이쯤에서 별도 부록을 하나 만들기로 했다.
「억지로 하는 유시민의 심부름 1 ― 페소아의 이명들」
5. 여행에서 부지런함이란 무엇인가
리스본의 유명한 전차는 관광객으로 가득 찼다. 저자는 나중에서야 전차를 여유롭게 즐기려면 아침 일찍이나 밤늦게 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벨렝에서도 서둘렀지만 벨렝 타워, 발견기념탑, 제로니무스 수도원마다 긴 줄을 만났고, 자신들은 ‘부지런한 여행자’에 끼지 못했다고 했다.
여기서는 바르셀로나에서 저자가 말했던 ‘성당 하나 원칙’이 다시 떠올랐다.
나는 여행에서 오히려 반대다. 먼 곳까지 갔다면 새벽 네 시나 다섯 시라도 일어나 사람이 몰리기 전에 한 곳을 여유 있게 보고, 그렇게 확보한 시간으로 다른 곳도 하나라도 더 보는 편이다.
많이 본다고 허겁지겁 다니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여행에서 부지런함은 많이 보기 위해 서두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유 있게 보기 위해 시간을 먼저 확보하는 일이다.
리스본 전차와 벨렝에서 저자가 몸소 얻은 교훈은 내가 여행할 때 늘 사용해온 방법과 다르지 않았다.
6. ‘대항해시대’의 영광은 누구의 영광인가
벨렝에서는 포르투갈의 화려했던 해양제국 시대가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마누엘 1세의 이름을 딴 마누엘 양식은 배, 닻, 밧줄, 조개 같은 바다의 모티브와 기독교 상징, 해외에서 받아들인 여러 장식기법을 건축물에 화려하게 쏟아부었다.
『우스 루지아다스』가 문학으로 제국의 영광을 노래했다면, 마누엘 양식은 그 영광을 돌에 새겨놓은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는 이를 ‘졸부의 교만과 과시욕’이라고까지 평가한다. 해외 팽창으로 얻은 부와 권력을 건축에 과시했다는 지적에는 공감한다. 다만 “누가 보든, 어떻게 보든” 그렇게 보인다고 단정하는 데까지 따라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건축의 아름다움과 그 건축을 만든 시대의 어두운 역사는 함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가 마누엘 1세의 ‘행운’을 곧바로 다른 사람들의 불운과 연결한 것은 인상적이었다. 포르투갈이 인도양과 브라질로 뻗어나가는 동안 원주민들은 땅을 빼앗기고 죽임을 당했으며, 수많은 아프리카인이 노예가 되었다.
엔히끄 왕자 역시 포르투갈에서는 ‘항해왕자’이자 역사적 영웅이지만, 그의 후원 아래 이루어진 아프리카 진출은 초기 대서양 노예무역과 이어졌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대항해시대’라는 말을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에게 그것은 발견과 영광의 시대였지만 다른 지역 사람에게는 침략, 수탈, 노예화가 시작된 시대이기도 했다.
저자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급부상을 ‘개가 두 발로 걷는 기적’이라고 표현한 것은 재미있었다. 당시 유럽의 변방에 가까웠던 두 나라가 갑자기 세계사의 중심으로 올라섰으니 그 뜻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기적은 모두에게 기적이 아니었다.
한쪽의 행운은 다른 쪽의 불운이었고, 한쪽의 기적은 다른 쪽의 재앙이었다.
7. 경주 출신 작가가 시킨 두 번째 심부름
벨렝의 카몽이스 동상을 지나면서 저자는 포르투갈의 국민서사시 『우스 루지아다스』를 소개한다. 바스쿠 다 가마의 인도 항로 개척을 중심으로 포르투갈의 역사와 신화를 엮은 작품이라고 하지만 한국어 번역본이 없어 자세한 내용은 확인하지 못했다고 한다.
또 숙제다.
궁금해서 찾아봤다.
『우스 루지아다스』는 다 가마의 인도항로 개척을 중심으로 포르투갈의 역사와 신화를 결합하고, 포르투갈인의 항해를 고대 영웅서사처럼 그린 국민서사시였다. 포르투갈이 자신들의 해외 진출을 어떻게 기억하고 싶어 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자세한 줄거리는 본문 흐름을 끊으니 부록으로 돌린다.
「억지로 하는 유시민의 심부름 2 ― 『우스 루지아다스』는 도대체 무슨 내용인가」
경주 출신 작가가 리스본에서 독자를 제법 부려먹는다.
8. 바벨탑의 저주와 인공지능 ― 신빨이 떨어지는 시대
리스본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문장 가운데 하나는 인공지능 번역기 이야기였다.
구약성서의 바벨탑 이야기에서 신은 인간의 언어를 서로 다르게 만들어 흩어놓는다. 그러나 저자는 영어도 신통치 않고 포르투갈어도 전혀 몰랐지만 인공지능 번역기 덕분에 별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고 했다.
이 비유에는 나도 공감했다.
수천 년 동안 인간을 갈라놓았던 언어의 장벽을 이제는 휴대전화 하나로 상당 부분 넘을 수 있다. 신화 속에서 인간에게 내려졌던 벌을 인간이 기술로 조금씩 무력화하고 있는 셈이다.
이쯤 되면 바벨탑에서 내려졌다는 벌도 약발이 다해가는 모양이다. 신빨이 떨어지고 있는 셈이다.
종교에 대해 비판적인 나로서는 이런 식의 비유가 꽤 재미있었다.
9. 굴벤키안과 사실 하나 바로잡기
리스본에서는 석유 사업가이자 미술품 수집가인 칼루스트 굴벤키안도 만난다. 아르메니아계 오스만제국인으로 태어나 프랑스와 영국에서 공부하고 여러 나라에서 사업을 벌이며 억만장자가 된 뒤 리스본에 자신의 유산을 남긴 인물이다. 저자는 여러 국가와 문화를 오가면서도 아르메니아 공동체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은 그를 ‘세계시민’이라고 평가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사실관계를 하나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었다.
책에는 굴벤키안이 런던 킹스 칼리지에서 공학박사가 되었다고 적혀 있지만, 확인해보니 그는 킹스 칼리지에서 공부해 Associate of King’s College(AKC) 자격을 얻은 것이지 공학박사 학위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AKC는 박사학위가 아니다.
또 굴벤키안 재단도 그가 생전에 직접 설립한 것이 아니라, 그의 유언에 따라 사후에 설립되었다.
이런 차이가 굴벤키안이라는 인물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를 바꾸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전기적 사실을 다루는 책이라면 바로잡고 넘어가는 것이 맞다.
감상문은 저자가 써놓은 말을 그대로 받아 적는 글이 아니다. 공감할 것은 공감하고, 단정적인 주장에는 의문을 제기하며, 사실과 다른 부분은 확인해 바로잡는 것 역시 제대로 책을 읽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10. 결국 리스본에 푹 빠진 저자
리스본을 떠나면서 저자는 언젠가 오래 살아보고 싶다고 한다. 자연이 아름답고 도시가 정겹고,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으며 음식과 음악이 훌륭했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도 파두의 멜로디와 해물밥 냄새가 떠오른다며 기회가 생기면 다시 가고 싶다고 한다.
고 며칠 머물렀다고 이렇게까지 좋은가 싶어 조금 웃음이 났다.
거의 사랑에 빠진 사람의 고백 같다.
그래도 여행에는 며칠만 머물러도 유난히 마음에 들어오는 도시가 있는 법이다. 폼발 후작을 두고 역사와 리더십을 생각하고, 사라마구와 페소아를 만나 문학을 이야기하고, 벨렝에서는 제국의 영광과 그 뒤의 침략과 노예무역을 돌아보고, 전차에서는 여행의 부지런함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 도시.
리스본은 저자에게 그런 도시였던 모양이다.
그리고 책을 따라 리스본을 걸은 나에게도, 아직 가보지 않은 도시 하나에 제법 많은 이야기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