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가(하)고 싶은 손미나의 여행기들

따라하고 싶은 일 = 손미나처럼 과감히 사표던지는 일

요즘 미친 인간 개 상 똘아이 하나때매
때려치고 싶은 생각이 하루에도 열두번

페루 가는 일
남미 가는 일
스페인 가는 일

사표는 자유? 용기? 굶주림.

흐흐 사표? 밥벌이의 지겨움(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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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8-04 11:03   좋아요 4 | URL
밥벌이의 지겨움 동의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너 퇴직하면 뭐할거니??? 아니 퇴직까지ㅜ했는데 왜 또 일을 해야해요? 난 무조건 놀거야요.
퇴직하고 남미 가려면 무조건 체력을 길러야 하는데 말이죠. ㅎㅎ

대장정 2022-08-04 20:58   좋아요 2 | URL
ㅎㅎ 저도 퇴직하면 무조건 놀겁니다. 생명이 있는 것은 왜 먹어야 살 수 있는지. 먹지 않고 살수 있다면 일 안해도 될텐대요
 

해발 475미터, 맑은 하늘 아래 적갈색 지붕을 인 중세 목조 건물들이 다정하게 어울려 있는 곳. 400년의 삶과 예술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듬은 사프란볼루다. 가을에 터키를 여행한다면 꼭 찾아야 할 이곳은 한 가족처럼 수백 년을 함께 살아왔기 때문인지 사는 사람들의 표정이 서로 닮아있다. 그 선한 모습에 여행자의 마음도 덩달아 훈훈해진다. 터키에 올 때마다 발길이 어김없이 사프란볼루로 향했던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 P170

이 작은 도시는 중세 동서양의 실크로드가 지나가는 주요한 길목이기도 했다. 우리나라 경주에서 출발해 지금의 중국 시안과 중앙아시아를 거치는 실크로드 1번 고속도로는 이란의 카스피 해 남부를 지나 흑해로 접어든다. 흑해에서 다시 내륙 이스탄불로 향하던 대상들을 맞아주던 곳이 사프란볼루다. - P170

터키의 중심부 아나톨리아 반도는 인류 문명의 본향과도 같은 고장이다. 인류 최초의 계획도시 차탈휘육, 가장 오래된 문명 발생지 수메르,
철기와 전차를 처음 사용한 히타이트, ‘황금 손‘으로 유명한 미다스왕의프리기아, 노아의 방주가 걸렸던 아라라트산, 아브라함이 활동하고 성모마리아가 숨을 거둔 땅, 알렉산드로스의 원정로, 셀주크튀르크와 오스만제국의 산실.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이 발원하면서 생겨난고대 문명과 유적이 80만제곱킬로미터의 반도에 빼곡히 들어차 있다. - P182

아나톨리아 문명 박물관에서 히타이트제국의 경이로운 유물들을 보고있노라면 박물관을 벗어나 현장으로 가보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기원전 1650~1200년에 번성한 히타이트제국은 최초로 철기를 썼다는정도로만 알려져 있지만, 실은 오리엔트 고대 역사에서 아시리아와 함께 가장 중요한 문명 국가였다.
히타이트제국의 수도였던 하투사스 유적지는 앙카라에서 동쪽으로 150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아직 본격적인 관광지로 개발되지 않았고, 내륙 자체가 1,000미터가 넘는 고원 지대여서 높은 곳은 4~5월까지도 눈이 남아 있어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차로 세 시간 정도 달려가다보면 험준한 계곡과 산을 등지고 펼쳐진 넓은 평원에 히타이트인들의 지혜가 어린 하투사스, 지금의 보아즈칼레가 드디어 한눈에 들어온다. - P194

이즈미르에서 남쪽으로 60킬로미터 떨어진 에페스에는, 그리스 문화의영성과 철학적 바탕, 로마 문화의 화려함이 한데 모여 있다. 고대 그리스아테네가 식민지로 삼은 이오니아의 중심지였으며, 훗날 사도 요한과마리아가 정착했고 사도바울이 두 번이나 머무르며 기독교를 전파한 땅이기도 하다. 또한 로마가 아시아 지역의 수도로 삼을 만큼 부가 집중되었다.
에페스로 가기 위해선 보통 이즈미르를 경유하는데, 이스탄불에서이즈미르까지 자동차로 해안도로를 달리는 방법이 있다. 이스탄불에서출발하면 열 시간 넘게 걸리지만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멋진 풍광이 펼쳐지는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를 즐길 수 있다. 터키 바다는 이즈미르 앞바다를 경계로 서쪽에게 해와 남쪽 지중해로 나뉜다.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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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이슬람 예술 박물관 전경  군사력과 정치체제만으로 대제국을 이룰 수 없다. 중앙아시아 유목 민족은 비잔틴제국과 페르시아 문화를 포용하고 실크로드를 따라 중앙아시아와 투르크계 문화, 중국과 인도 문화까지 받아들였다. 다른 문화를 전폭적으로 받아들이는 열린 정책이야말로 이슬람 문화의 발전과 성장을 가져다준 바탕이 되었다. - P115

오묘한 신의 섭리를 표현한 예술, 아라베스크
꽃, 덩굴, 나무와 같은 자연물 형상에 기하학적인 아랍어 글꼴의 장식성을 더해 완성한 장식 문양을아라베스크라고 한다. 아라베스크가 가장 잘 표현된 것은 타일과 카펫이다 - P119

코란의 모든 구절의 첫 문장은 "비스밀라히르라흐마니라힘 (자비롭고 자애로우신 알라의 이름으로)"으로 시작된다. 동물을도축할 때도 "비스밀라 (알라의 이름으로)"를 세 번 암송함으로써 그 생명체의 희생을 기린다. 음식을 먹을 때도, 계단을 오를 때도, 힘든 일이 있을 때도 "비스밀라"를 입에 달고 살아간다. 실체와 허구, 성과 속, 허용과 금기, 안심과 불안의 간극을 느낄 때 탄성처럼 뱉는다. - P124

돌마바흐체 궁전 안의 모든 시계는 9시 5분에 멈춰 있다. 600년 역사의오스만 대제국을 멸망시키고 터키공화국을 세운 터키 건국의 아버지,
케말 아타튀르크가 1938년 이 궁전에서 숨을 거둔 시각이다. 그의 사망을 애도하고 기억하기 위해 맞춰놓은 일종의 추모 의식이다. - P130

돌마바흐체 궁전 내부
 채워진 정원‘이란 의미의 돌마바흐체에는 방 285개 홀 43개, 화병 280개, 시계 156개,
크리스털 촛대 58개, 영국제 크리스털 샹들리에 36개를 갖췄고, 내부 장식에 금 14톤과 은 40톤을 썼다. - P136

블루 모스크 실내 중앙 돔 꼭대기  
둥그렇게 뻥 뚫려 있어 모든 먼지가 위로 올라가 이곳에 쌓인다. 돔 구멍을막고 있는 새까만 먼지는 1년에 한두 번씩 털어내어 잉크나 먹의 재료로 쓴다고 한다. 쓰이는 곳이 있는 먼지라니, 신기하고 새롭다.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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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re must we go. . .
we who wander this wasteland
in search of our better selves?
The First History man

희망없는 시대를 떠돌고 있는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하여 가야할 곳은 어디인가?
최초의 인류

작금의 현실에 이보다 더 맞는 말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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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성문 국제조약인 카데시 조약 점토판  
가로 13.8센티미터, 세로 17.6센티미터 정도의 작은 점토판에 새겨진 내용은 고대의 양대 슈퍼 파워 히타이트와 이집트 문명국임을 보여준다. 이 조약에 담긴 공존과상생이라는 인류사적 의미가 알려지면서 확대된 점토판 사본은 유엔 본부 건물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이집트 땅의 대왕람세스와 히타이트 영토의 대왕하투실리 사이의 영원한 평화와 우정을 위하여 조약을 맺는다.
두 나라는 평화가 맺어준 형제이며 이러한 관계는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전쟁 중 도망간 병사는 본국으로 송환한다.
그러나 엄벌을 받지는 않을 것이며, 눈물을 흘릴 일도 없을 것이며, 그 앙갚음으로 달아난 병사의 아내와 아이들을 벌하는 일도없을 것이다……….. - P19

언뜻 보면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작은 유물이지만 점토판에 새겨진 조약은 기원전에도 문명국다운 갈등 해결 방식이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조약은 전쟁 재발방지를 위한 조치, 전쟁 포로 보상 문제, 송환된 포로와 그 가족들에 대한 인도적 배려, 제삼국의 침략을 받았을 때의공동 방어 등을 명시하고 있다. 오늘날의 법을 기준으로 보아도 세련되고 정교한 합의를 담고 있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건 포로로 잡혔다가 송환된 자국 병사와 그 가족들이 처벌받거나 불이익을 당하지 않게 한다는규정이다. 전쟁 포로를 처형하고 생환되어도 변절자로 낙인찍거나 적과내통했다는 이유로 처벌받는 것이 예사인 전후 처리 과정에서 인도적 배려를 명문화했다는 것은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 P21

통해 두 문명이 총체적으로 접촉하면서 영향을 주고받았을 뿐이다. 인간 중심의 그리스 신관과 사실적인 그리스 조각 양식이 기존의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오리엔트 문화의 표현 방식을 흔들어놓았다는 말이 더적절할 것이다. 특히 신의 형상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전통이 없던 불교 문화권 사람들로서는 사람의 몸을 근육 하나 체모 하나까지 세밀하게 표현하는 그리스 미술을 접하고서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스의 미술을 받아들인 것도 종교 활동의 효율성 차원에서였다. 그 과정에서 동양의 영성적 삶에 서양의 기술이 결부되면서 새로운 미술 양식이창조되었다. 부처가 한쪽 어깨에만 걸치는 그리스식 옷을 입은 서양인의 모습을 갖게 된 것이다. 교과서에서 말하듯 그리스 문화가 오리엔트에 일방적으로 전파되었다기보다는 예술과 미술 양식의 차원에서 필요에 따라 선택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 P30

저주 문구를 신의 이름으로 새겨두었다. "무덤을 도굴하는 자에게 신은 고통스러운 죽음, 가족을 잃는 슬픔, 질병과 사고, 고아가 되는 불운을 내린다."
석관의 저주 양식은 프리기아에서 출발해 아나톨리아 전역에 널리퍼졌다. 저주를 표현하는 아나톨리아 일대의 장식 예술은 또 다른 조각장르라 일컬어질 만큼 보편화되었고, 훗날 3세기 로마의 장례문화에도영향을 끼쳤다. 저주 문화는 일반 대중 사이에서도 유행하면서 기독교도와 유대인의 석관 장식과 묘지석 문화로까지 이어졌다. - P35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 있는 신들의 조각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는 왜 그리스 유물이 이렇게 많을까?
이는 우리가 그리스 사람이라고 알고 있는 이들이 지금의 터키 땅에서 태어났고 활동했기 때문이다. 《오디세이아>를 쓴 호메로스,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 철학자 탈레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가 태어났고, 아리스토텔레스가 공부를 했던 철학의 본고장 밀레투스, 트로이 유물이 발굴된 곳도 모두 터키 땅이다. - P37

1만 명 이상의 인력이 동원 유스티니아누스의 꿈은 6년 만에 대성당을 완공하며 이루어졌다.
드디어 537년 12월 27일에 거행된 헌당식에서 유스티니아누스는 "솔로몬이여, 내가 그대를 이겼노라!"라며 감격을 토로했다고 전해진다. - P50

2층 중앙 홀 벽면 기둥 위쪽  
알라, 무함마드, 아부 바크르, 오마르, 오스만, 알리 등 초대 칼리프들과 알리의두 아들인 하산, 후세인의 이름이 아랍어 동판에 새겨져 있다. 수니파의 핵심 제국인 오스만 왕조의 모스크에 시아파 후계자의 이름이 모두 보인다. 이슬람 두 종파가 함께했다는 증거이기에 더욱 의미 있다. - P55

본당 천장의 성모마리아와 예수  
916년 동안은 교회였고 481 년 동안은 모스크였던 성 소피아를 박물관으로선포한 1935년부터 성화들도 복원되었다. 이슬람의 종교적 징표들 사이로 찬연히 얼굴을 드러낸 금빛 예수와성모마리아를 보면서 종교란 과연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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