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성문 국제조약인 카데시 조약 점토판 가로 13.8센티미터, 세로 17.6센티미터 정도의 작은 점토판에 새겨진 내용은 고대의 양대 슈퍼 파워 히타이트와 이집트 문명국임을 보여준다. 이 조약에 담긴 공존과상생이라는 인류사적 의미가 알려지면서 확대된 점토판 사본은 유엔 본부 건물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이집트 땅의 대왕람세스와 히타이트 영토의 대왕하투실리 사이의 영원한 평화와 우정을 위하여 조약을 맺는다. 두 나라는 평화가 맺어준 형제이며 이러한 관계는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전쟁 중 도망간 병사는 본국으로 송환한다. 그러나 엄벌을 받지는 않을 것이며, 눈물을 흘릴 일도 없을 것이며, 그 앙갚음으로 달아난 병사의 아내와 아이들을 벌하는 일도없을 것이다……….. - P19
언뜻 보면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작은 유물이지만 점토판에 새겨진 조약은 기원전에도 문명국다운 갈등 해결 방식이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조약은 전쟁 재발방지를 위한 조치, 전쟁 포로 보상 문제, 송환된 포로와 그 가족들에 대한 인도적 배려, 제삼국의 침략을 받았을 때의공동 방어 등을 명시하고 있다. 오늘날의 법을 기준으로 보아도 세련되고 정교한 합의를 담고 있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건 포로로 잡혔다가 송환된 자국 병사와 그 가족들이 처벌받거나 불이익을 당하지 않게 한다는규정이다. 전쟁 포로를 처형하고 생환되어도 변절자로 낙인찍거나 적과내통했다는 이유로 처벌받는 것이 예사인 전후 처리 과정에서 인도적 배려를 명문화했다는 것은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 P21
통해 두 문명이 총체적으로 접촉하면서 영향을 주고받았을 뿐이다. 인간 중심의 그리스 신관과 사실적인 그리스 조각 양식이 기존의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오리엔트 문화의 표현 방식을 흔들어놓았다는 말이 더적절할 것이다. 특히 신의 형상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전통이 없던 불교 문화권 사람들로서는 사람의 몸을 근육 하나 체모 하나까지 세밀하게 표현하는 그리스 미술을 접하고서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스의 미술을 받아들인 것도 종교 활동의 효율성 차원에서였다. 그 과정에서 동양의 영성적 삶에 서양의 기술이 결부되면서 새로운 미술 양식이창조되었다. 부처가 한쪽 어깨에만 걸치는 그리스식 옷을 입은 서양인의 모습을 갖게 된 것이다. 교과서에서 말하듯 그리스 문화가 오리엔트에 일방적으로 전파되었다기보다는 예술과 미술 양식의 차원에서 필요에 따라 선택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 P30
저주 문구를 신의 이름으로 새겨두었다. "무덤을 도굴하는 자에게 신은 고통스러운 죽음, 가족을 잃는 슬픔, 질병과 사고, 고아가 되는 불운을 내린다." 석관의 저주 양식은 프리기아에서 출발해 아나톨리아 전역에 널리퍼졌다. 저주를 표현하는 아나톨리아 일대의 장식 예술은 또 다른 조각장르라 일컬어질 만큼 보편화되었고, 훗날 3세기 로마의 장례문화에도영향을 끼쳤다. 저주 문화는 일반 대중 사이에서도 유행하면서 기독교도와 유대인의 석관 장식과 묘지석 문화로까지 이어졌다. - P35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 있는 신들의 조각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는 왜 그리스 유물이 이렇게 많을까? 이는 우리가 그리스 사람이라고 알고 있는 이들이 지금의 터키 땅에서 태어났고 활동했기 때문이다. 《오디세이아>를 쓴 호메로스,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 철학자 탈레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가 태어났고, 아리스토텔레스가 공부를 했던 철학의 본고장 밀레투스, 트로이 유물이 발굴된 곳도 모두 터키 땅이다. - P37
1만 명 이상의 인력이 동원 유스티니아누스의 꿈은 6년 만에 대성당을 완공하며 이루어졌다. 드디어 537년 12월 27일에 거행된 헌당식에서 유스티니아누스는 "솔로몬이여, 내가 그대를 이겼노라!"라며 감격을 토로했다고 전해진다. - P50
2층 중앙 홀 벽면 기둥 위쪽 알라, 무함마드, 아부 바크르, 오마르, 오스만, 알리 등 초대 칼리프들과 알리의두 아들인 하산, 후세인의 이름이 아랍어 동판에 새겨져 있다. 수니파의 핵심 제국인 오스만 왕조의 모스크에 시아파 후계자의 이름이 모두 보인다. 이슬람 두 종파가 함께했다는 증거이기에 더욱 의미 있다. - P55
본당 천장의 성모마리아와 예수 916년 동안은 교회였고 481 년 동안은 모스크였던 성 소피아를 박물관으로선포한 1935년부터 성화들도 복원되었다. 이슬람의 종교적 징표들 사이로 찬연히 얼굴을 드러낸 금빛 예수와성모마리아를 보면서 종교란 과연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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