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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잘 찍고 싶은 인물사진 - 있는 그대로의 얼굴을 담는, 카메라 레시피
김성연 지음 / 달 / 2014년 4월
평점 :
작년 가을에 가족 여행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제일 뒤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긴 머리 소녀는 내 조카다.
조카는 휴대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여행 중에 조카가 사진을 찍는 것은 처음 보았다.
조카가 찍는 건 하늘일까? 갈대? 길? 바람? ..
구름일지도 모르지만 어쩐지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나도 그랬다.
예사롭지 않은 풍경에 나도 폰카를 들고 수십 번 셔터를 눌렀..아니 터치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풍경은 마음에서 지워졌다.
시간이 지나도,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해지는 것은 조카의 뒷모습이다.
계절이 다시 오면 풍경도 돌아오겠지.
그러나 조카의 뒷모습은?
머릿결은?
손가락은?
눈매는?
볼은?
입꼬리는?
만날 때마다 훌쩍 훌쩍 커가는 조카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아아아 하루 하루가 참 소중하구나.
허투루 살면 안되겠구나.'
사진은 순간을 잡아내는 작업이라고 한다. 단순히 초점을 잘 잡고 셔터스피드가 빨라야 한다는 소리가 아니다. 어떤 순간이 나에게 의미 있고 긴 시간인지를 잡아내면 그것은 분명 밀도 높은 사진이 된다. 가끔씩 사진을 찍다보면 뷰파인더 안으로 확 빨려들어갈 것처럼 집중이 될 때가 있다. 모델의 동작 하나하나가 섬세하게 보이고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느낌.
나는 분명 하루보다 긴 일 분을 지나고 있었던 것이다. 『아주 잘 찍고 싶은 인물 사진』(367쪽)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아주 잘 찍고 싶은 인물사진』.. 내 마음도 그랬다.
인물 사진,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사진’을 아주 잘 찍고 싶다.
풍경 사진은 아무리 잘 찍어봐야 사진으로 보면 실망한다.
아무리 큰 모니터로 본들 1:1 스케일로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말이다.
인물 사진은 그렇지 않다.
한 컷 사진으로 ‘고정된’ 사람들을 들여다보면서 흐믓한 기분이 들 때가 얼마나 많은지!
요즘은 사진 찍을 일도 별로 없는데다가 어쩌다 찍을 때도, ‘스냅 사진은 기동력이 생명! 기동력 하면 또 폰카를 따를 자가 없고 말이쥐이~’ 이러면서 폰카로 대충 찍고 만다. (지난 1년동안 사진을 한 장이라도 인화한 적 있느냔 말이다. ㅡㅡ;)
폰카만 쓰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이 책엔 ‘그냥 찍으면 되는’ 폰카를 위한 문장은 하나도 없다.(혹시 한 두 문장 쯤은 해당이 될지도..??ㅎㅎ) 그러니까, 설령 인물사진을 아주 잘 찍고 싶은 경우라 해도 순수한 카메라(비싸든 싸든, 크든 작든 그건 문제가 아니지만, 만일 조리개값이나 셔터스피드, ISO 값을 조절할 수 있는 카메라가 아닌 완전 자동 카메라라면 그건 아예 해당사항 없음이라는 거~~)가 없다면 소용없다. 터치 스크린 말고 진짜 리얼 카메라 셔터 한 번 눌러보지 않으면서 백날 이론 공부만 하면 뭘 하겠노. 공부 한 글자 안했더라도 일단 사진 백 장 찍어보는 게 낫겄지. 이론 알고 찍는 거야 말할 것도 읎고~!!!
『아주 잘 찍고 싶은 인물사진』을 찬찬히 읽었다. 이미 아는 내용도 많았지만 그렇다고 어디 하나 지루한 대목은 없다. 설명이 쉬운데다 곁들인 사진들이 설명과 잘 부합되는 것을 보면서 흐믓한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아 이제 나는 인물사진을 아주 잘 찍을 일만 남았는데 말이지, 어떤 인물이 아주 잘 찍고 싶어지려는지, 다음 주 휴가가 자못 기다려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