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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 13세기에서 21세기까지 그림을 통해 읽는 독서의 역사, 개정판
슈테판 볼만 지음, 조이한.김정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1월
품절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를 두 번 읽는다.
그림(또는 사진)만 감상하며 한 번,
그림(또는 사진)에 곁들인 글을 읽으며 한 번.
마치 그림(또는 사진) 전시회장에 들어온 기분이다.
작품과 멀찍이 거리를 두고 전시회장을 한 바퀴 돈다.
분위기 파악 또는 적응을 위해.
관심을 끄는 작품 앞으로 다가서서 본다.
제목 또는 작가이름을 보기 위해.
작품을 감상한다. 굳이 요청하지는 않았지만 안내원이 다가와 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책에서 그림 또는 사진에 대해 써놓은 글이 딱 그만큼, 미술전시장의 안내원 설명 수준이다.
본문에는 그림 53장, 사진 4장이 나오고 각각 안내글이 붙는다. 본문 앞에 30쪽 이상 되는 길다면 긴 '저자의 말'이 나오는데 본문에 없는 그림 7장과 사진 1장이 곁들여진다. 본문 뒤에는 엘케 하이덴라이히라는 사람이 쓴 '추천의 말'이 18쪽 분량으로 이어진다. 여기도 본문에 없는 그림 한 장이 나온다.
정리하면『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에서 우리는 그림 61장과 사진 5장을 통해 70명 이상의 책 읽는 여자를 만날 수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책을 읽거나 책을 들고 있는 여자'라고 해야겠지만..
줄거리는 없다. 주제는 '책 읽는 여자'. '위험하다'까지는 안붙여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책을 다 읽어봐도 위험하다는 의미가 모호해서 그렇다. 책 읽는 여자가 위험하다는데 책 읽는 여자 입장에서 위험하다는 건지, 책 읽는 여자 주변 사람 입장에서 위험하다는 건지, 책 읽는 여자가 속한 가정, 사회, 시대가 위험하다는 건지 모르겠다. 상관없다. 내 관심은 책 읽는 여자가 위험하냐 마냐가 아니라 그냥 '책 읽는 여자' 자체에 있으니까.
『침대와 책』으로 유명한 라디오PD 정혜윤은 추천사에「책은 기본적으로 전복적인 세계를 보여준다. 책에선 술타의 생애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술탄의 사랑을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여인의 사람도 그만큼 혹은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할 수 있다. 빅토리아 여왕만 중요한 게 아니라 빅토리아 여왕의 마부가 더 중요할 수 있다.(10p.)」고 썼다.
덧붙이자면 책에선 주인공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책을 읽는 내가 더 중요하고, 결말만 궁금한 것이 아니라 책을 읽고 난 나의 시작, 무엇을 어떻게 새로 시작할 것인가에 더 관심이 많다. 나에게 책은 빛이고 물이다. 햇빛과 물만으로 씨앗은 싹이 트고 자라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를 읽는 나를 상상해본다.(누가 있다면 사진이라도 찍어달라고 했을텐데..) 그림처럼 책에서 빛이 나온다. 그 빛을 쬐며 고개를 내민다. 손을 뻗는다. 나는 오늘도 이만큼 자란 것이다. 어떤 책을 읽는 순간 내 허리춤 어디깨에서 또는 어깨나 목덜미, 팔꿈치 어디깨에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힐지, 아니 거꾸로, 꽃이 피고 열매 맺는 그 순간 나는 어떤 책을 읽고 있을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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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서재이웃 I님의 선물이다.
꽃 피고 열매 맺는 계절에 내가 어떤 책을 읽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책 읽는 여자' 70여 명을 선물해준 I님을 잊지는 못할 것이다.
결코.
독서하는 처녀 1850년. 프란츠 아이블Franz Eybl(1806-1880)
벨베데레 박물관의 오스트리아 회랑, 오스트리아 빈
(120p.)
아름다운 책을 읽는 것은,
책이 말을 걸어오고 우리의 영혼이
그것에 대답하는 끊임없는 대화다.
앙드레 모로아
책 읽는 여자 1880/90년경. 장 자크 에네르Jean Jacpues Henner(1829-1905)
오르세 미술관, 프랑스 파리
(145p.)
가끔씩 나에게 의미가 있는 대목,
어쩌면 한 구절만이라도 우연히 발견하면
책은 나의 일부가 된다.
서머셋 모옴
편지 1720년. 장 라우Jean Raoux(1677-1734)
루브르 박물관, 프랑스 파리
독서하는 처녀 1888년. 로비스 코린트Lovis Corith(1858-1925)
개인 소장
책과 나 사이에
당신이 들어올 자리는 없다
(183p.)20세기에 들어와 책은 이제 대량 생산품이 되었다. 이처럼 많은 책이 이렇게 싸게 제공된 적은 결코 없었다. 이런 조건이라면 지금이야말로 독서의 황금기가 되어야만 할 것이다. 책이 신문이나 영화, 라디오, 텔레비전 그리고 컴퓨터나 인터넷과 비교해서 점점 더 의미를 잃어간다는 냉정한 결론은 결과적으로 남자에게는 들어맞는 말이다. 하지만 여자는 책을 더 많이 읽을 뿐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읽기도 한다. 여자는 책에서 삶의 중요한 질문에 답을 찾는다. 커다란 열정에서 짧은 도피가 만들어졌다.
커다란 열정에서 짧은 도피가 만들어졌다?
뭔 소린지..
(238p.)
때때로 독서는 생각하지 않기 위한 기발한 수단이다.
아서 헬프스
(208p.)
독서란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타인의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다.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1905년경. 하인리히 포겔러Heinrich Vogeler(1872-?)
오르세 미술관, 프랑스 파리
(186p.)
사람은 죽어도 책은 결코 죽지 않는다.
벤자민 프랭클린
독서하는 카린 1904년. 카를 라르손Carl Larsson(1853-1919)
소른삼린가르나(소른 컬렉션)
(188p.)
어떤 책은 그 맛을 음미하며,
어떤 책은 그대로 삼키고,
그리고 몇몇은 잘 씹어서 소화해야 한다.
프랜시스 베이컨
책 읽는 여자들 1909년. 로베르트 브라이어Robert Breyer(1866-1941)
롤프 다이레 수집품, 슈투트가르트
(202p.)
사귀는 친구만큼 읽는 책에도 주의하라.
습관과 성격은 전자만큼이나 후자에게서도
영향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팩스튼 후드
책 읽는 여인 1668/70년. 피터 얀센스 엘링가Pieter Janssens Elinga(1626-1682)
알테 피나코테크, 독일 뮌헨
책을 읽고 있는 노파 1631년. 렘브란트 반 라인Rembrandt van Rijn(1606-1669)
레이크스뮈세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앙드레 케르테츠 사진집《독서에 관하여》수록
본 지방의 병원, 1929년
(44p.)「케르테츠의 사진에서는 책을 읽는 것은 실존의 몸짓이고, 곧 닥칠 죽음을 앞에 두고도 여전히 지속되는 행위로 보인다. 이는 곧 단순한 자극이나 시간 보내기가 아니라, 자체 내에 진리를 담고 있는 행위인 것이다.」
아키텐 출신의 엘레오노르의 묘비 1204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