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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비비언 고닉 지음, 서제인 옮김 / 바다출판사 / 2022년 8월
평점 :
에세이스트, 저널리스트, 비평가 비비언 고닉이 쓴 에세이 7개
원서 『Approaching Eye Level』1996 by Vivian Gornick
1.
표제작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새로운 관점의 힘을 느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가벼운 마음으로 새해를 시작할 수 있어서 좋았다.
2.
열 한 쪽, 분량으로 볼 때 제일 짧은 〈힘겨운 진실을 꾸준히 바라볼 때 나는 조금 더 나 자신에 가까워진다〉: 분량은 작지만 비비언 고닉이 왜 글을 쓰는지, 쓸 수 밖에 없었는지, 글쓰기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바로 와닿았다. 글쓰기는 집짓기와 똑닮았다. 요즘은 '글짓기'라는 말을 잘 안 쓰지만, 집을 짓는다, 밥을 짓는다 할 때 쓰는 그 '짓다'를 붙인, 글짓기를 많이 하는 2023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매일 밥을 짓지는 않지만 매일 밥을 먹고, 매일 집을 짓지는 않지만 매일 집에 들어가고, 매일 글을 짓지는 않겠지만 매일 글을 읽으면서 살겠지.
3.
열 다섯 쪽, 두 번째로 짧은 〈혼자 사는 일에 대하여〉: 적나라한 문장을 만났다. 「(66p.)30년간 길 위에서 이어진 정치는 하나의 문을 열어젖혔고, 그 문은 수문水門이 되었으며, 우리는 역사상 가장 교양 있는 불만을 지닌 채 기념비적인 숫자를 이루며 그 문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이 어떻게 여기에 이르게 되었는지 당혹스러워하며, 혼란에 빠져 이 상태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 마지막 순간에 형 집행이 유예되기를 바라는 적나라한 기대를 품고 우리는 북적거리는 거리를 배회한다. 우리에게는 조밀한 인구가 꼭 필요하다. 인구가 조밀한 것만으로도 인간관계를 끊임없이 재편성하는 데 필요한 재료는 마련되는 셈이니까.」단 몇 줄 글로 표현해낸 시대상에 감탄이 나온다.
4.
30여 년 전 추억 소환 〈똑바로 앞을 보고, 입을 다물고, 온전하게 균형을 잡는 것〉: 대학생 시절에 식당 종업원으로 일했던 호텔에서 있었던 일들을 통해 '고립'에 대해 이야기한다.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시절의 한 장면이 놀랍도록 생생하게 되살아나 괴로웠다. 건너뛸까? 하는 사이 이야기가 끝나버려 약올랐던 글.
5.
가장 몰입했던 〈나는 경험이 너무도 부족한 수영 선수였다〉: 가장 몰입했고, 몰입한 만큼 불쾌했고, 불쾌한 만큼 안심이 되었던, 이상한 경험.
6.
정신 번쩍 났던 〈영혼을 죽이는 사소한 일들〉: 「(216p.) 결혼은 친밀감을 약속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으면 유대감은 부서져 내린다. 공동체는 우정을 약속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으면 참여는 끝이 난다. 지적인 삶은 대화를 약속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으면 그 삶의 신봉자들은 괴상해진다.」
부서져내리고, 더 이상 참여하지 않고, 괴상해진 내 모습을 본다.
"(216p.)사실은 정말로 혼자 있는 게 더 쉽다. 욕망을 불러일으키면서 그것을 해결해주려 하지 않는 존재와 함꼐 있는 것보다는. 그럴 때 우리는 결핍과 함께하게 되는데, 그건 어째선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그 결핍은 가장 나쁜 방식으로 우리가 정말로 혼자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그렇다. 그건 어째선지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참고 참고 또 참았지만 결국은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216p.)다시 말해 우리의 상상을 억누르고, 희망을 질식시킨다. 우리가 처음에 갖고 있던 활기를 억누른다. 사기가 꺾이고 무기력해진다. 무기력은 일종의 침묵이다. 침묵은 공허함이 된다. 사람은 공허함과 함꼐 살아갈 수 없다. 그 압박감은 끔찍하고, 사실 참기 힘들며, 견뎌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 압박감을 견디다 보면 사람은 폭발하거나 무뎌지고 만다. 무뎌진다는 것은 슬픔 속으로 떨어지는 것과 같다."
정신차리자. 견뎌서는 안 되는 것을 견디라고 밀어붙이지 말자. 침묵하지 말자.
7.
그리고 마침내 〈자신을 온전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남아 있는 것이야말로 고귀한 일이다〉: 밥을 지어서 밥을 먹든지, 집을 지어서 들어가든지, 글을 지어서 읽든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