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에 받은 부고 문자 아홉 개, 그 중 아는 이는 둘, 고인은 대부분 누구누구의 모친, 부친, 장인, 장모다. 나이들어가니 부고를 더 많이 듣는 게 당연하겠지만, 그래도 20일 사이에 아홉 명이나 돌아가셨다니 예사롭지 않다. 코로나 탓이 크겠고, 불볕더위도 한몫 했으리라.
장례식장에서 만난 지인이 ˝죽을까봐 무섭다.˝는 말을 했다. ˝사람이면 안 죽고 베겨?˝하니, ˝죽으면 내가 없어질까봐 무섭다.˝길래, ˝죽었는데 안 없어지는 게 무서운 거 아닌가?˝ 하니, ˝내가 없어진다는 생각을 하면 공포감이 들어.˝라며 진짜로 사색이 되는 걸 보았다.
이 대목에서 ‘코코‘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죽음조차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서, 혼자 끝장내버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니 세상이 달리 보인다. 죽을 때 죽더라도, 없어질 때 없어지더라도, 잊혀질 때 잊혀지더라도, 오늘은 한 번 웃어야겠다 아니 두 번, 세 번, 백 번, 천 번이라도 웃고 즐겁게 살아야지.
나중에 언제 먹겠어. 오늘 먹자!
나중에 언제 보겠냐고. 오늘 만나자고!
이렇게 쓰고 보니 부쩍 어른이 된 것 같다.
이렇게 아이 때 마음으로 유턴하는 건가.
이렇게 돌아가는 것인가.
돌아가는 길이,
아직은 멀었으면.
[다른 사람보다도 나 자신이 언제나 더 비현실적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_마르그리트 뒤라스, 《살림살이》 /《살림비용》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