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를 이기는 불편한 심리학
다카시나 다카유키 지음, 신찬 옮김 / 밀리언서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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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너, 우리 더 넓게는 부처, 공자, 예수 등도 모두 같은 인간이자 불확실한 존재로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존재지만 성인으로 추앙받는 그들은 자신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악의 생각들을 표출하기 보다 자기 존재를 돋보이게 하는 명예와 존중의 욕구를 충족시켰기에 오늘 나, 우리의 추앙을 받는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들이라고 화를 내거나, 악한 마음이 없는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 보면 나, 우리와 하등 다를것이 없는 악의 평범성을 갖춘 존재들이지만 그들에게는 보통 사람들에게서 볼 수 없는 악을 꿈꾸지만 멈출 줄 안다는 점에서 나, 우리와는 다른 존재감을 가진다 말할 수 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말한 무의식 속에 내재한 충동, 분노와 공격은 인간의 마음 속에서 쉽게 드러나지 않지만 매우 강력한 힘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고 하겠다.

우리 사회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사이코패스와 같은 반사회적 인격을 가진이들이 일으키는 사회문제들의 면면을 뜯어보면 내재된 화와 분노에 의한 결과로 읽을 수 있다.

사람은 왜 사람을 공격하는가 하는 문제를 통해 나, 우리 자신을 지키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는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화를 이기는 불편한 심리학" 은 선량한 보통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위험인물로 변해 사람을 공격하는 존재가 되는 일은 비단 사이코패스만이 하는 일이라 볼 수 없으며 보통의 인간 누구라도 그러한 경험을 할 수 있음을 깨우쳐 다른 사람으로 부터 내 마음을 보호하고자 하는데 도움을 주는 책이다.

저자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보통의 사람들을 공격하는 사람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나, 우리를 공격하는 이들은 누구이고 그들 모두는 사이코패스인가 하는 궁금증을 가질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 우리를 공격하는 이는 사이코패스일 수도 있지만 그 점유율은 지극히 낮다고 볼 수 있으며 정작 그들 사이코패스 보다는 보통의 일반인들인 나, 우리와 같은 존재들이 보통의 사람들을 공격한다는 믿지 못할 사실을 알려준다.

사실 듣고보면 그렇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특히 학교에서의 아이들 끼리 하는 왕따의 문제, SNS에서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는 디스(Diss), 직장내 괴롭힘에 대한 문제 등도 바로 그러한 공격적인 모습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오늘 나, 우리가 타인의 공격을 받지 않았다고, 나, 우리는 타인을 공격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러한 상황은 언제고 변할 수 있는 가변적인 삶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나는 타인을 공격 안해~! 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공격에 가담하게 되는 일은 분위기 등을 통해 삽시간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된다.



누구도 이러한 느슨한 사이코패스가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사이코패스에 대해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얕고 느슨한 사이코패스와 깊고 느슨한 사이코패스로 나뉘어 지는 분류를 잘 이해하고 무엇이 나, 우리와 같은 느슨한 사이코패스나, 컨트롤이 불가능한 깊고 느슨한 사이코 패스의 분노 스위치를 켜게 되는지 살펴 보는 일도 유익한 일이 될 것이다.

오늘을 사는 나, 우리와 함께 일하며 공존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이러한 성향을 잘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다면 무차별적이거나 악의 평범성에 의한 공격 대상에서 나, 우리를 지켜내는 효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 판단해 본다.

화를 이기는 일은 성인 군자도 하기 힘들다 하지만 화와 분노를 일으키게 하는 근본에 대해 이해하고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면 보다 나은 상호관계의 구축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누구나 될 수 있는 느슨한 사이코패스에서 화를 이기지 못해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게 되는 우를 범하지 않게 화를 다스리는 심리적 무기를 알려주어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의 일독을 권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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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마지막을 생각할 때 삶은 비로소 시작된다
히스이 고타로 지음, 이맑음 옮김 / 책들의정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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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에 대한 물음은 쉽게 답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지만 자기의 삶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자기만이 자신의 삶에 대해 말할 수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삶은 언젠가, 누구에게나 정지해야 하는 순간을 맞게 된다.

그것이 나, 우리에게 다가 올 죽음이기에 많은 사람들은 기분 나쁘다며 죽음에 대한 말조차 꺼내지 못하게 하는 일도 있고보면 씁쓸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러하든 아니든 우리는 모두 생물학적 죽음을 마주하게 된 운명체라 볼 수 있다.

삶에 천착하는 나, 우리지만 삶이 무료하거나 마뜩치 않아 방황하게 될 때, 삶의 대척점에 있는 죽음에 대해 한 번 곰곰히 생각해 본다면 아마도 왠만한 삶에서의 문제들은 날려버릴 수도 있는 홀가분함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당장 내일 죽는다면 오늘의 나, 우리에게 닥친 문제들은 한낫 흘려버릴 수도 있는 기우에 불과할 뿐인 일이라 생각할 수 있을것 같다.

90세 이상의 미국 노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내용의 핵심이 '더 모험을 해 봤으면...' 이라니 어쩌면 미국이나 한국이나 또 다른 나라의 노인들이라 하더라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들의 후회, 삶에서 이루지 못한 후회들은 죽음을 목도했을 때 더욱더 크게 부각된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떠 올려 볼 후회를 생각하기 보다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위해 죽음을 늘 생각하며 삶의 방향성을 탐해 보는 일도 바람직한 일이 될것이다. 그 러한 이유를 담아 독자들에게 전하는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생의 마지막을 생각할 때 삶은 비로소 시작된다" 는 만약이라도 죽음이 나, 우리에게  삶에 후회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과연 나, 우리는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러한 물음에 답하는 것도, 내 삶을 결정하는 것도 오직 나, 우리라는 사실을 부각시키며 지금 살아있는 현실에서의 모든것들이 바로 나, 우리의 선택임을 알려주어 삶에 대해 경각심을 심어주려는 책이다.

삶을 너무 한가롭게 생각하는 사람이나, 또는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 어떤 방식으로의 삶이라 하더라도 분명 그 삶은 나, 우리의 선택에 의한 삶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바닷가 파도가 바위에 부딪혀 하이얀 포말을 일으키고 부서지는 모습은 일견 인간의 삶이 가진 다양한 문제들이 일으키는 걱걱정, 근심, 고통, 염려 등등의 일들이라 치환해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모든 문제들 역시 인과관계에 의해 나, 우리 스스로가 선택한 것임을 생각하면 크게 마음 아파할 필요가 없다고 하겠다. 그러나 인간이 기계처럼 마음이 없는 존재가 아니고 보니 마음이 입는 상처들을 쉬 치료하지 못하고 스트레스를 받아 더욱 큰 문제로의 죽음과 조우하게 되면 비로소 나, 우리는 스스로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지만 때 늦은 후회를 하게 된다.

지금 나, 우리는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있느냐고 저자는 묻는다.

인간인 이상, 그리고 삶에 달관한 철학자나 고매한 종교인이 아닌바에야 자신의 삶에 대해 후회를 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궁금하다.



후회하지 않는 인생은 없다고 생각해도 좋지만  저자는 마음껏 울고 일어서 다시 시작하라고 주문한다.

지난 날의 나, 우리의 모습을 죽음에게 던지고 새로운 나, 우리로 태어나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오늘부터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고, 그 기회를 당신이 잡았다고, 새로운 나로 태어날 수 있는 최고의 날임을 일깨워 주며, 삶에 대해 생각할 때 죽음을 상기하고 죽음을 떠 올릴 때 삶을 향해 질주하는 나, 우리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삶과 죽음은 바람쥐 챗바퀴 굴리듯 순환되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죽음 이후에가 아니라 죽음을 생각하고 삶과 연계해 보면 저자의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에 있어 탁월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나, 우리의 삶도 죽음도 언제 종영이되고 마주하게 될지 모른다. 그러한 것 역시 나, 우리의 선택임이 분명컨데 무얼 망설이고 있나, 새로운 나로 또 새로운 세상을 살아보는 즐거움을 느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보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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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눈이 반했습니다 - 꿰맨 눈과 기울어진 사랑
김하진 지음 / OTD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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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나, 우리가 하는 이야기로 한 눈에 반했다고 하는 말을 쓰곤 하는데 이는 통시적으로 보아 매력적인 것에 빠져 들었다는 표현이라 볼 수 있다.

그러한 일은 나, 우리 역시 흔하게 쓰고 있는 말이자 일상에서 나, 우리가 느끼는 실제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라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한 눈이 반했습니다는 '에'가 아닌 '이'다. 

즉 '에'의 앞 말이 어떤 움직임이나 작용이 미치는 대상의 부사어임을 나타내는 격조사이지만 '이'는 대상의 직접적인 주체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주격 조사로의 '이' 임을 생각하면 나, 우리가 흔하게 알고 있는 '한 눈에 반했습니다' 가 아닌 '한 눈이 반했습니다' 는 같은 의미로 볼 수도 없도 보아서도 안될 까닭을 품고 있다 하겠다.

한 눈에 반한 물건, 사람, 세상 그 무엇이건 우리의 현실속에서 통용되는 진부함의 대상이자 세계관을 격조사 하나를 바꿈으로서 전혀 새로운 세계관으로 만들어 낸, 전복과 파격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한 눈이 반했습니다" 는 나, 우리의 감정 조차 진부함에서 벗어날 줄 모르는 세상을 살아가는 나, 우리에게 격조사 하나를 바꿈으로써 새로운 관점의 세상, 또는 파격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껄끄러움과 같은 생경함을 느껴볼 수 있는 작품으로 독자의 시선을 거머쥐고 있는 책이다.

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오랜 옛것들을 지켜내고자 하는 집착에 더해진 진부함의 모습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어쩌면 하나의 트랜드가 될 수도 있고 그도 아니면 잠시 잠깐의 변혁일 수도 있지만 다양한 현실을 뛰어 넘고자 하는 의미로 읽어낼 수 있는 시선들은 진부함과 고착화된 의식을 저으기 군불을 때 달궈 놓듯이 설설 끓게 만드는 효과를 갖게 된다.

한 눈이 반한 사람, 세상은 어떤 세상이 될까?

현실의 나, 우리는 두 눈, 두 귀, 두 콧구멍으로 이뤄진 모습으로 살고 있지만 그러함이 마치 유행의 트랜드 변화처럼 인간의 육체적 모습을 바꿀 수 있는 시대가 된다면 과연 나, 우리는 위험 부담을 느끼면서도 타자들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할까 하는 궁금증이 섞인 질문을 던저 볼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의 자연스런 특징적인 부분들을 왜곡하는 불편을 감내하며 사는 삶은 과연 유행이나 멋에 취해 나, 우리가 할 수 있는 행태일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인간이 두 눈을, 두 귀를 갖고 있음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으리라 판단한다.

물론 인간만이 그러하다 말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저자의 주장처럼 한 눈이 보는 세상은 대상과의 단절에 더욱 밀집도를 높인다.

그러한 과정으로의 나, 우리의 삶은 한 떄 유행이나 트랜드로 읽혀질 수 있을지언정 결코 해서는 안될 일이며 그러한 변화를 행여라도 하게 된다면 철저히 나, 우리는 그러한 일을 한 것을 후회할 것이라 판단하게 된다.

저자의 다른 작품들에 대한 탐독도 필요하리라 본다.

저자는 책표제와 같은 제목과 함께 5편의 단편 소설을 더해 새로움으로 가득한 이야기 세상을 전해주고 있어 새로운 세상을 목도하고자 하는 바램을 갖게 된다.

한 쪽 눈만 자길 사랑한 것이 아닌 두 눈으로 진정성 있게 나, 우리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이 책의 일독을 권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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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의 꿈
정담아 지음 / OTD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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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우리가 알고 있는 인어는 바닷속 용왕의 딸로 공주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인어를 말하면서 그러한 식상함은 주는 존재로는 더이상 독자들에게 매력을 어필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랑하는 왕자를 만나기 위해 자기 삶을 송두리째 맡기면서까지 다리를 가지고자 했던 인어이야기는 오늘 새로운 저자의 창작욕을 만나 새로운 인어로의 변모를 보여주고 있다.

물약을 먹지 않고도 다리가 생기지만 유통기한? 이 있다는 그런 독특한 신체적 조건을 가진 인어라니 놀랍기도 하다.

이렇게 기발한 생각이, 라고 생각할만한 스토리가 고전속 인어를 생각했던 이미지를 넉다운 시키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면 살짝 흥미롭고 재미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나, 우리가 사는 지구의 오늘은 바다의 오염으로 인해 인간만이 아닌 인어에게도 심각한 위협이 된다고 볼 수 있다.

가상의 존재일 수도 있지만 오랜 고전속의 인어를 현실로 소환해 기후변화와 바다의 오염으로 말미암아 병들고 있음을 깨우쳐 주며 그들이 삶의 터전을 버리고 땅으로 올라온 인어들의 고군분투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는 책을 읽어본다.



이 책 "인어의 꿈" 은 바닷속 인어가 아닌 육지 위에 존재하는 인어의 모습을 통해 존재로 인해 발생되는 나, 우리 인간 삶의 변화와 함께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라는 그 누구도 어쩔 수 없는 변수를 맞아 생존을 위한 고군분투를 하는 인어들의 이야기를 만나 볼 수 있는 책이다.

가상 세계 속의 인어는 이제 더이상 현실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이 없다.

인간과 다를바 없는 존재감을 갖는 인어 '이나', 은수, 시현 이 겪는 현실의 삶이 그리 녹록할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다리를 만들 수 있는 인어지 인간이 아니고 보면 현실 삶이 어떠한지를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을 확인해 볼 수 있다.

난파된 보물선에서 찾은 백자, 비취옥, 은팔찌, 가락지 등으로 인간에겐 귀중한 물품들임을 깨달은 이나와 소렌은 과연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지...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인간 세계의 모든것들을 배우고 익혀야 하는 인어의 삶이 어쩌면 고스란히 피해자로 부각되는 느낌은 왜일까? 그러함에도 인간이 적응의 동물이기에 인어 역시 적응해야 한다는 의미는 강제적인 압력이라 할 수 있을것 같다.

인간세상에 적응하며 살고자 하는 이나와 인어들의 지속가능한 삶은 과연 가능하고 또 어떻게 이어질까 하는 궁금증을 연이어 갖게 된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듯이 인어 역시 바다를 버리고 인간세상인 육지에서의 삶을 살고자 한다면 철저히 인간 세상의 존재로 살아가야 당연하지만 인간과는 차원이 다른 종인 인어가 과연 인간세상의 인간과 같이 삶의 이야기를 펼쳐나갈 수 있을지는 묘한 관심사가 될 수 있을것 같다.

그렇다고 완전히 육지를 인어들의 세상으로 대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육지를 제2의 추천지로 선정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이나의 손에 달려 있지만 가득이나 좁아터진 육지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 보다는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으로 변한 바다를 되돌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 더욱 유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인간은 인간 자신을 믿지 못하는 존재이거늘 하물며 바닷속 상상의 존재인 인어를 통해 그 믿음을 회귀하고자 하는 일은 그저 장난스런 이야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하게 될 수 있지만 그러해야 한다는 당위성만큼은 인정할 수 있는 인어의 꿈이라 할 수 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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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의 속도
전혜지 지음 / OTD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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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사는 나, 우리의 삶의 속도는 어떠한가?

스스로 그러한 속도에 만족감을 갖는가? 아니면 조금 더 느린 속도로 삶을 바꾸고자 하는 생각을 해 보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나, 우리 모두는 모두 자기만의 속도로 삶을 산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나, 우리의 바램이자 생각일 뿐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에 발빠르게 대처하는 사회인으로의 삶을 살아가는 나, 우리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나, 우리는 지금보다 더 나답고 우리다운 속도로의 삶을 고집할 필요성이 있다 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사는 사회의 현실은 나, 우리의 삶에 대해 시시콜콜 가타부타 해야만 속이 풀리는 참견러로의 모습을 가진 존재들이 너무나 많다.

이른바 자신과 상관 없다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온갖 참여를 행하는 일은 그것이야 말로 무언의 폭력에 다름이 아니라 볼 수 있다.

저자가 표제작으로의 제목을 이렇게 썼을 때는 전체적인 작품의 맥락이 그러함을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며 읽어본다.



이 책 "캐서린의 속도" 는 6편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진 작품집이지만 다분히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공격처럼 여겨지는 참견들이 뒤집어 보면 악의를 숨긴 무언의 폭력과도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비만은 병희다>에서 처럼 타인이 살이찌건 말라 비틀어지건 그것이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하등 불만의 소지가 될 수 없는 일이건만 왜 그들은 당사자에거 살을 빼라 마라 하는지에 대해 곱씹어 볼 일이다.

그러한 상황은 비단 소설 속 이야기만이 아니라 생각할 수 있는것이 우리 사회 전반적인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무언의 폭력과도 같은 일들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절박함을 가진이들에게는 그저 소 귀에 경읽기 식으로 대응해야만 하는 답답한 마음과 서러움이 폭발할 수도 있는 일임을 인식하게 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누누히 말하는 바가 있지 않는가?

인간의 삶은 나, 우리 자신이 만들어 가는 삶이라고, 그런데 그걸 왜 타인이 감놔라 배놔라 하는지,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저 우스개 소리로 하는 말이라도 마음을 다쳐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이 있다면 더이상은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한 일들, 또다른 상황으로 만들어지는 나, 우리의 삶의 이야기들을 마주할 수 있는 저자의 소설속 이야기들은 마치 오늘의 나, 우리의 삶의 속도가 저마다 다르듯 그에 대한 이야기를 꼬집어 내고 일률적인 삶의 모습을 강요하고자 하는 폭력과 억압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온전 한 삶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공감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친구가 아닌 부모라도 나, 우리는 그들의 마음 속 깊은 곳의 감정들을 쉬 알수 없다.

절친 네명이 만든 단톡방에서의 수다, 여지없이 수다 속에서 드러나는, 혹은 나, 우리 자신도 간과했을 서로에 대한 자랑과 비교들, 누군가는 상처받고 누군가는 아파했을 시간이었을 수도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친하다는 명분하에 거리낌 없이 행했을 서로 다름에 대한 몰이해의 감정은 춘삼월 얼음이 녹아 살얼음이 된 강위를 걷는듯 존중하되 반겨마지 않을 수 없는 속내를 털어놓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나 역시 나와 같은 동년배의 친구들보다 12년이나 늦게 아이를 낳았다. 그러함 역시 나만의 속도인 삶인 것이라 판단하면 그러함에 상처받을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생각해 보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같은 곳을 보고 달리고 있다지만 그 속은 실제 알수가 없다.

각자의 삶에 대해 말하지도 않지만 참견 또한 하지 않으려는 요즘 사람들의 트랜드를 생각하면 각자의 삶의 속도를 부정하는 일 자체가 바보같은 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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