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썼어 너도 써 봐
장용 지음 / 마음시회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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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히 개그맨으로 알고 있는 장용, 그런 그가 감수성 높은 시(詩)를 쓰는 시인이 되었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시인이라는 업에 자긍심을 느끼는 장용의 새로운 면모에 슬그머니 웃음기가 묻어난다.

내가 하는데, 너도 할 수 있다는 식의 용기를 건네주는 말이라 시를 어렵게 생각하는 나, 우리에겐 새롭게 시에 대한 인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럴까 저럴까 하는 고민을 하지 말고 한 번 들이대보라는 개그적 발상으로 용기를 불어 넣어주는 그의 시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한다.

본래 많은 사람들이 시를 좋아하면서도 어려워 하는 일은 쉽게 이해하기 힘들뿐만 아니라 쓰기도 어렵다는데 있다.

그러한 문제를 시인 장용은 '한 번 들이대 보라'는 말로 간단히 제압해 버리고 힘주어 나, 우리도 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그 문제작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나도 썼어 너도 써봐"는 수준에 대해 깊이 고민할 필요 없이 느낌 그대로를 직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는 생활시들이 빼곡히 자리하고 있는 느낌이라 혹자는 B급 시라고 불평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러한 시를 쓰는 일도 우리에겐 쉽지 않은 사실임을 느낀다면 적어도 시인 장용의 용기를 더해주는 시들에 대한 감상은 제대로 해야할 듯한 책이다.

시인 장용은 무척이나 자존감이 드높은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인의 말, 프롤로그로 이해할 수 있는 지면에서 '시면 어떻고 시가 아니면 어때, 난 시시하지 않아'라는 말로 자신의 진지함을 토로 하고 있기에 무엇보다 일상을 대하는 나, 우리의 자세에 대한 반성과 함께 주체적 존재로의 자신감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을 해 보게 된다.

시를 쓰는 시인이 시시하지 않은 자신이라 말하는데, 더구나 나도, 우리도 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 그런 용기어린 덕담을 듣고도 무언가를 주체적으로 할 수 없다면 아마도 자신감이 결여되 있거나 일상에 대한 불안과 고통에 넉다운 된 나, 우리를 의심하게 된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치유와 회복의 기운을 얻을 수 있다.



3년 5개월 가량의 시간동안 한 줄시를 페이스북에 올리며 자신의 팬과 독자들의 응원을 받은 그의 시들이기에 어렵고 난해한 시를 생각했을 수 많은 사람들에게 먼저 장용 시인의 시시하지 않은 B급 시를 읽어보길 권해본다.

어찌보면 말장난 같은 뉘앙스를 느낄 수도 있지만 싯귀를 읽고 나면 느껴지는 여운은 아련하게 감성적으로 느껴진다.

질문이라는 시(詩)를 보면 

'혹시,

행복이라고 아시나요? 

글쎄요,

저도 초행길리라서'


우리 삶의 궁극적 목적에 담겨 있는 행복에 대한 사유를 단정하기 보다 도달해야 하지만 그 누구도 처음이라는, 그래서 그 행복은 다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는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더불어 팬과 독자들의 반응을 지면의 한 부분에 실어 또다른 웃음거리를 만들어 주고 있어 지금까지 어떤 시도, 시집도 이러한 구성이나 편집을 본적이 없어 매력적인 시집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시인 장용이 했듯이 나, 우리도 할 수 있는 시쓰기라니, 두려움 없이 써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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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다산 1~2 세트 - 전2권 조선 천재 3부작 3
한승원 지음 / 열림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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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학, 천주교와 얽힌 인연으로 정약용을 감싸 안았던 정조는 대신들의 상소와 논쟁으로 다산을 강진으로, 정약전은 흑산도로 귀양을 보내게 된다.

호시탐탐 기득권 노론 세력은 다산을 죽여야만 하는 지상과제를 안은것 처럼 다산의 일거수 일투를 감시하는 상황을 만들어 가는데 예의치 않게 조카 사위 황사영이 그들의 그물망에 걸려들게 되어 또 한번의 난관을 맞게 된다.

하지만 정약용 스스로 정조에게 쓴 편지에서 학문으로의 대상이었지 믿음의 대상으로의 천주교가 아니었음을 명시하고 이후 다시는 천주교에 대한 가담이나 탐구를 하지 않겠다는 맹서를 함으로써 목숨은 연명할 수 있게 된다.

평상시 다산의 인품을 백성들은 익히 잘 알고 있었지만 워낙 죄인에 대한 감시와 처벌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노론의 영향에 따라 강진으로 간 다산은 하인과 함께 우여곡절 끝에 주막집 여식을 만나 주막에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이 시기의 다산은 폐족에 대한 염려로 아들들과의 연락을 자주 하였고 그들에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 상세히 알려주는 부정(父情)을 보여준다.

한 번이 힘들지 두번은 덜 힘든다는 말이 있듯이 이미 우리의 의식에 각인된 그 무엇은 그것의 사실 여부를 떠나 보다 쉽게 인식하게 될 수 있음을 생각해 보면 다산의 마음에 자리한 천주교리에 대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더구나 불가에 선승으로 알려진 혜장과의 대화에서 다산의 학식과 지혜에 무너진 혜장은 나날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파계적 행위로 일관하게 되는 모습은 우리 역시 나, 우리 자신의 관념이나 의식을 무너트리는 정신적 충격에 휩싸이게 되면 그러한 모습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르키면 달을 보아야지 손가락을 보는 이들이 존재함을 비꼬듯이 다산과 혜장의 논쟁에서 다산은 원효의 '화쟁'을 통해 달을 보아야 함을, 부처님께로 가는 길이냐 아니냐를 두고 싸우기 보다 부처님이 말한 진실인지 아닌지를 논쟁해야 함을 말하며 진리에 다다르는 주문을 요구하고 있다.

원효도, 다산도 어쩌면 껍데기로의 진리가 아닌 참된 진리에 대한 논쟁으로 시대를 바꿔놓고 싶어 한 인물들이 아니었을까, 그러한 이들을 자신들의 기득권에 위배되는 인물이라 참수하거나 귀향보내는 일이 판을 치는 세상이라 더더욱 혼탁함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일이 마치 조선의 백성들이 겪는 힘겨운 삶의 모습과 닮아 있다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아들 학연이 내민 편지에는 그간의 행위를 인정하고 잘못을 빌어 원대 복귀를 함이 어떠하겠냐는 의미를 담고 있었는데 정약용은 같은 방식의 편지로 답하며 천하의 기준으로 그 일을 하는것이 진리이냐 아니냐 하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익이 되느냐 해가 되느냐의 기준을 말하며 네가지 등급 중 마지막의 진리 아닌것을 추종하며 해를 입는것에 대한 우려를 말헤 주고 있어 오늘을 사는 나, 우리의 일상적 삶에 있어서의 좌표로 삼을 수도 있는 근거를 얻을 수도 있다.

다산의 저서 목민심서는 그러한 배경하에서 목민관들이 백성을 위해 진실한 마음으로 대해야 하는 정치적 행위에 대해 서술한 책으로 이해될 수 있다.


다산의 인간에 대한 이해 역시 매우 직설적이라 생각할 수 있다.

인간은 무언가를 가두어 두고자 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는 존재라 들에 사는 동물을 가두어 가축을 만들고 외간 여자를 가두어 아내라는 노예를 만들고 적으로 부터 보호한다는 명분하에 백성을 성에 가두고 적당으로 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파당을 만들고 그 파당 속에 자신을 가두고 주자학과 같은 사상에 자신을 가두며 산다고 했으며 자신 역시 자신을 다산 초당에 가두고 살았음을 명시한다.

저자 한승원은 다산의 도학적 사유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고 자신 역시 그러한 삶으로의 지향을 바람직하게 판단하는 바 다산 정약용의 삶과 그의 행보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하는 일이 그에게는 구도의 길과 같음을 여실히 말해주고 있어 다산이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더욱 깊이 있게 오늘의 우리 삶에 비춰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는 작품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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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다산 1~2 세트 - 전2권 조선 천재 3부작 3
한승원 지음 / 열림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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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의 죽음에 얽힌 이야기는 무수히 재 창조되고 있는 역사의 미스터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도세자가 보인 정신적 이상으로 인한 이야기나 상인들에게 돈을 빌리고 체납하거나 살인을 저지르는 등의 기행을 했다고 불분명하게 전해지는것 보다 차라리 작가의 상상력으로 나마 국가의 미래 청사진을 제시하고 그것이 시대상황에 맞지 않아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판단해 보는것이 월등히 유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물론 소설이라는 문학에서의 부침이라 할 수 있겠지만 명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는 터라면 그렇게 라도 자위하는것이 우리 역사를 위한 품격을 높이는 일이라 생각하고 싶어진다.

그런가 하면 당쟁으로 인해 허송세월 한 400년간의 시간은 제대로 변화하고 혁신을 했다면 아마도 지금의 중국을 속국으로 두고 있을지도 모를 국가를 만들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데 역시 역사에서의 만약은 통하지 않느다.

그러한 바램만이 소설적 상상으로 만나보는것이 허망한 역사를 되 짚어보는 것과 다를바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왜?라는 물음으로 자꾸만 되짚어 보게 되기에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자국의 안위를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 쉽게 "Yes" 라 답할 수 없음에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음을 깨닫게 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하듯이 과거의 조상들이 올바른 정치, 국가 운영을 했다면 지금의 현실과는 다른 모습으로의 국가가 탄생했을것이라 판단해 보며 논쟁과 헛된 것을 버리고 실사구시의 현실직시를 꿰뚫어 본 다산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낸 작가의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다산 1"은 정조시대의 다산의 삶에 대해, 그 시대의 주류인 주자학과 천주학, 천주교의 전파에 대한 국가의 탄압에 허위에 가득한 주자학을 버리고 실리적인 눈을 뜬 정약용의 삶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마주할 수 있는 책이다.

주요 사극들을 보면 흔하게 들어보는 '사문난적'이라는 용어가 불편하게 다가선다.

이는 유학을 뜻하는 사문(斯文)은 주자의 주자학 즉 유학을 뜻한다.

그것은 조선의 근간을 유지하는 성리학으로 변모하고 사문을 반역하는 모든것을 역적 취급하는 그야말로 행위적 분서갱유라 할만한 일이다.

그러한 사문난적에 표적이 된 천주학, 천주교리의 미래는 험난한 고행의 길을 예고하고 그에 얽힌 이들의 심리적 변화를 파악해 볼 수 있는바, 기득권 세력의 주자학에 기대어 천주교리의 이념은 그야말로 천지에 부모도 모르는 잡놈 취급을 하는 몰지각한 존재로 폄하되기 일수임을 보여준다.

다산 역시 학문을 중시하는 인물이기에 천주교리에 대한 눈을 먼저 갖기 보다 천주학(學)으로의 눈 뜸이 먼저여지만 선, 후의 문제를 따질 수 있는 계제가 아님을 기득권 세력의 공격에 무너질 수 밖에 없는 실정을 보여준다.

아무리 학문으로의 천주교에 대한 이해를 구했다 한들 유교적 관념에서 보는 천주교는 배척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정약용 형제, 허목, 윤휴, 윤증 등 다양한 인물들이 천주교와 얽혀 죽임을 당하거나 귀양을 가게 된다.

천주학을 손님마마의 종두법처럼 생각했던 다산의 의식과는 다르게 서민들이 천주학을 대할 수 없는 이유는 감염되면 무조건 죽이는 참상이 두려운 것이기에 더욱 참상이 어려웠음을 알게 한다.

정조의 정약용에 대한 두터운 신임은 노론의 남인 척결에 따른 공세 속에서도 보호적인 상태가 되어 정조의 뜻을 한없는 사랑으로 여긴 정약용의 마음을 더욱 충심으로 가득하게 한다.

노론의 거두 심환지와의 다툼, 왕과 신하의 길들이기 논쟁에서 심환지의 논리는 재상이 있음으로 해서 왕이 만들어지거나 양생된다 주장하는 터라면 그야말로 왕권을 넘어서는 절대권력으로 치부할 수도 있는 논리 볼 수 있으며 이는 왕 역시 신하들의 하수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약용 형제들 가운데 셋째 형 정약종은 어릴 때 부터 약전과 약용에 비해 어머니로 부터 차별적인 대우를 받았고 성인이 되고 나서도 약전과 약용이 가는 길과는 다른 길을 가고자 해 도학에 빠져들었고 사돈 이벽과의 논쟁에서 천주학의 실체를 강귄하는 사돈과 약전의 권유에 의해 신실한 천주인으로의 삶을 받아들인다.

정약용과 주변 인물들이 천주교를 학문적 대상으로 삼았던 것과는 달리 정약종은 신실한 천주교 신도가 됨으로써 정씨 형제와 가문과의 연을 끊고자 했다.

정조 사후 순조를 대리청정하는 정순대비는 천주교를 극렬히 반대하는 주자학 집단의 노론계가 득세해 조선 팔도의 천주교자들을 색출해 도륙을 내고 있는 실정으로 흐르며 이승휴와 정약용 역시 잡혀 고문을 받고 천주교를 배교했음을 설명해 목숨을 부지하지만 정약종은 하느님의 품으로 가는 길을 두려워 하지 않고 형장에서 효수 당하고 정약용 가문은 폐족의 사단을 맞이하고 유배를 떠나게 되고, 다시금 서울로 압송되는 경우를 맞는데, 조카사위 황사영의 문제라는것을 알게되며 1권을 마무리 하게 된다.


다산 정약용은 조선 정조때의 인물로 우리에게는 실사구시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그런 그의 삶에 드리운 주자학과 천주학의 대립적 상황을 그의 형제들과 가솔들이 가담, 겪으며 맞는 그의 심리에 대한 관점은 어떤 관점과 방향으로 보느냐에 따라 매우 극명하게 달라질 개연성이 크다 말 할 수 있다.

인간은 삶과 죽음의 문제에 있어 결코 죽음에 편을 들 수 없는 존재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신실한 종교관을 가진 이들이라면 삶과 죽음에 대한 애착이나 사유가 남다르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해 볼 수 있겠다.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삶에 대한 애착으로 귀향을 가게된 다산의 그 이후의 삶의 이야기들이 펼쳐질 2권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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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국가 카자흐스탄 - 디지털 노마드 시대, 선두주자의 꿈을 향해
손치근.조은정 지음 / 글로벌콘텐츠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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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다인종 국가로 이야기 하지만 여기 140여 인종이 한 국가를 이루고 있는 나라가 있다.

우리와는 친연성이 있는 국가라 우리를 형제국가로 지칭하는 카자흐스탄이란 나라다.

카자흐스탄은 제정러시아 시대를 지나 1860년대 조선에서 러시아 제국으로 이주한 한인으로 부터 유래했다는 고려인들이 살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런 연유에서 친연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고 보면 이해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친연성은 친척으로 맺어진 인연과 같은 성향으로 검색되고 있어 대한민국과 카자흐스탄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단적으로 파악할 수도 있는 느낌을 전해준다.

인구 2천 만명 수준에 70%가 카지흐종족이며 고려인은 기타 종족으로 4.5%에 속하고 있지만 러시아 제국 당시 독립한 독립국가의 하나인 카자흐스탄의 정치, 경제, 문화, 역사, 예술, 사회 등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형제국가 카자흐스탄" 은 과거의 실크로드를 떠올리기 보다 신(新)실크로드의 요충지로의 카자흐스탄과 대한민국의 미래상을 위해 양국 국민들이 더 깊은 이해를 구축해야 하는 당위성을 따라 서로에게 주목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듯이 우리로서는 고려인이라는 친연성을 갖고있는 형제국가로의 카자흐스탄에 대한 새로운 관계설정이 필요한 시점을 이야기하며 카자흐스탄의 다양한 변모를 살펴 볼 수 있는 책이다.

이렇게 한 나라의 사정을 깊이있게 살뜰히 만나볼 수 있는 기회는 외교관 또는 현지에 체류, 삶을 사는 이들이 아니고는 집필할 수 없는 조건이라 하겠다.

역시 예상대로 대한민국 외교관의 신분으로 카자흐스탄에서 직접 발로 뛰어 현장성을 높인 경험과 소중한 정보들이 빼곡히 실려있어 무척이나 상세히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준다.

이러한 발로 뛴 경험담이 녹아든 내용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카자흐스탄의 모습만이 아닌 그들의 삶이 어우러지고 네트워킹이 이루어지는 사회속에서의 진실한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게 해 준다.

더불어 한국과 카자흐스탄과의 국제관계와 무역에 있어서의 미래 비젼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고 판단해 볼 수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여행지로서의 카차흐스탄이 아닌 한 국가의 총체적인 면모를 거시적, 미시적 관점의 주제들로 소개하고 있어 나, 우리가 원하는 다양한 주제로의 카자흐스탄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친연성을 따지는 관계가 되려면 한민족의 피를 이어가는 고려인들에 대한 껴안음이 우선시 되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머물게 되고 대한민국의 국격이 높아진 만큼 한민족에 대한 지원과 보살핌이 우선시 되어야 하나 지금까지의 대한민국은 그러한 보살핌이나 신경씀이 없는 나몰라라 혹은 각자도생의 요구만 했음을 부인할 수 없었기에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부끄럽고 미안한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일개 국민이 느끼는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이럴진데 나라를 대표하는 외교관의 입지는 어떠할까 싶은 생각을 해 보면 난감할 듯 싶은 생각도 든다.

7장으로 구성된 목차의 대분의 내용들을 통해 카자흐스탄의 어제, 오늘, 내일에 대한 이야기를 마주할 수 있었지만 마지막 7장에 수록된 까레이스키 고려인의 여정으로의 미래에 대해서도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저자들의 바램처럼 한국과 카자흐스탄의 동반성장이 이뤄질 수 있으면 좋겠다.

고려인들의 고집스런 한국어 고수와 전통의 지킴을 외면하게 되어서는 안된다.

세계는 하나로 뭉쳐져야 한다지만 오히려  각자도생의 면모를 더욱 강조하는 시대로 가고 있느지도 모른다.

언제까지나 고려인, 코리아인으로 남고 싶은 그들에게 따듯한 손길을 내밀기가 그리 어려운 것일까? 오래전 고국을 그리워하다 눈물로 삶을 마감했을 고려인들의 한을 풀어내는 관계, 보듬고 안으로 맞아들여 따듯함을 느낄 수밌는 동포애를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

말이나 표면적인 형제가 아니라 피를 나눈 형제와 같은 느낌과 관계 형성을 이어 나가는 대한민국과 카자흐스탄이 되어야 한다.

다양한 세계의 자국 동포들에 대한 포용정책을 눈여겨 보아야 할 필요성도 있고 배워야 할 부분도 많다.

그러한 기회를 갖는데 있어 더 깊이 있는 카자흐스탄 형제국가를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리라 판다해 보며 일독을 귄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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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소사회 대한민국 - 사회교사의 눈으로 본 인구 소멸과 우리의 미래
정선렬.엄혜용 지음 / 행북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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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인구구조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지금 우리나라의 인구구조의 변화는 '세계 최고'를 지향하는 대한민국 답게 2023년 합계 출산율 0.69명으로 세계 최고의 저출산 국가가 되었다.

인구구조의 변화는 불균형으로 치닫고 있으며 초고령화, 초저출산이라는 양극화된 실태를 두 눈 뜨고 보고 있는 지금 작금의 현실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심히 걱정스러움이 앞선다.

이러한 인구 구조의 변화는 생산가능인구의 변화를 야기하며 결국 국가 존폐의 여부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두 명의 현직 사회교사가 현실 사회가 내포하고 있는  다양한 키워드 중 교육, 세대, 사회구조라는 키워드를 통해 현실과 미래에 대한 통찰이 담긴 축소사회, 축소국가에 대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어 나만 잘 살자고 생각하기에 앞서 모두에게 닥친 공통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 꺼리를 함께 톺아 보는 책을 읽어본다.



이 책 "축소사회 대한민국" 은 서울, 경기 수도권과 지방의 극심한 격차들이 횡행하는 현실을 종종 뉴스를 통해 보지만 저자들의 이번 연도 신입생이 9명으로, 인가된 20명의 절반도 안되는 현실, 그마저도 1명은 외국인, 2명은 다문화가정, 내국인은 6명으로 소멸의 과정을 걷고 있는 현실을 직접 목도하고 왜 이러한 축소사회 대한민국이 되어 가는지에 대한 나름의 분석을 내어 놓고 있는 책이다.

그렇다고 저자들이 해결책을 독자들에게 제시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을 하고자 함인지를 우리는 저자들의 글을 읽고 깨닫고 변화에 동참해야 하는 동기부여로의 기회 또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한다.

수도권과 지방 소도시의 격차는 이미 따를 수 없을 정도로 변화해 이젠 노인들만 남은 도시이자 조금더 있으면 노인 조차도 없는 유령도시가 될 수도 있는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의 지금까지의 교육은 여전히 사농공상의 차별화를 힘주고 있으며 그러한 가치가 사회 전반을 휘감고 있어 더이상의 교육에 희망이 없음을 느끼게 한다.

수 많은 고학력자들의 백수화는 개인의 탓을 하기 보다 정부의 교육정책의 실패에 기인하고 있음을 뼈져리게 느껴야만 한다.

그런가 하면 사회의 중추라 할 수 있는 40~50대의 현실은 부모의 부양, 자녀의 양육, 자신의 노후라는 그 어느것도 명쾌하지 못한 세대가 되었고, 60대 이후의 고령자들은 현재까지의 삶의 기반을 다져오느라 그들 자신의 노후도 책임지지 못하는 실정이 되고 있다.

10~30대 역시 무엇 하나 좋아할 수 없는 마뜩찮은 사회에서 오롯이 자신을 지키고 성장시켜 나가기도 바쁜 와중이라 결혼은 언감생심 꿈도, 희망도 포기한 세대가 되어가고 있다.

모두가 힘겨운 지금의 삶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에겐 우리 자신의 삶을 지속가능하게 할 수 있는, 해야하는 능력과 책임이 있다.

미래의 우리 삶의 모습이 지금  이대로 지속 된다면 대한민국은 성장이 아니라 축소와 공멸이라는 성적표를 받아들게 될 수도 있다.

누구도 나, 우리의 삶과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오롯이 나, 우리 자신만이 그 삶과 인생에 대해 책임지고 반성하며 변화를 꾀할 수 있는 일이지만 모두가 함께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지금의 우리 발목을 잡고 있는 문제들을 끊어내야만 한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변화를 대하는 사람들의 인식부터가 문제 가 될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는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배려하며 새로운 제도를 통해 모두가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으로의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

AI 시대의 우리는 직업의 다양성, 전문성 등을 모두 놓친 세대가 될 가능성도 있다. 과연 우리는 미래를 위해 어떤 자세를,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해야 한다.

더불어 정부에서 시도하고자 하는 4대 연금개혁 역시 그러한 선상에서 사고하고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교육, 세대, 사회구조적 문제들에 대해 사회 교사들이 제시하는 문제를 개인적 차원이 아닌 공동체적 차원의 문제로 거듭 격상시켜 생각해 볼 일이다.

그러한 의미를 읽어낼 수 있다면 바람직한 개혁의 과정에 동참하고자 하는 나, 우리의 모습을 목도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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