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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다산 1~2 세트 - 전2권 ㅣ 조선 천재 3부작 3
한승원 지음 / 열림원 / 2024년 11월
평점 :
**네이버 카페 책을좋아하는사람의 지원으로
개인적 의견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사도세자의 죽음에 얽힌 이야기는 무수히 재 창조되고 있는 역사의 미스터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도세자가 보인 정신적 이상으로 인한 이야기나 상인들에게 돈을 빌리고 체납하거나 살인을 저지르는 등의 기행을 했다고 불분명하게 전해지는것 보다 차라리 작가의 상상력으로 나마 국가의 미래 청사진을 제시하고 그것이 시대상황에 맞지 않아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판단해 보는것이 월등히 유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물론 소설이라는 문학에서의 부침이라 할 수 있겠지만 명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는 터라면 그렇게 라도 자위하는것이 우리 역사를 위한 품격을 높이는 일이라 생각하고 싶어진다.
그런가 하면 당쟁으로 인해 허송세월 한 400년간의 시간은 제대로 변화하고 혁신을 했다면 아마도 지금의 중국을 속국으로 두고 있을지도 모를 국가를 만들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데 역시 역사에서의 만약은 통하지 않느다.
그러한 바램만이 소설적 상상으로 만나보는것이 허망한 역사를 되 짚어보는 것과 다를바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왜?라는 물음으로 자꾸만 되짚어 보게 되기에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자국의 안위를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 쉽게 "Yes" 라 답할 수 없음에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음을 깨닫게 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하듯이 과거의 조상들이 올바른 정치, 국가 운영을 했다면 지금의 현실과는 다른 모습으로의 국가가 탄생했을것이라 판단해 보며 논쟁과 헛된 것을 버리고 실사구시의 현실직시를 꿰뚫어 본 다산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낸 작가의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다산 1"은 정조시대의 다산의 삶에 대해, 그 시대의 주류인 주자학과 천주학, 천주교의 전파에 대한 국가의 탄압에 허위에 가득한 주자학을 버리고 실리적인 눈을 뜬 정약용의 삶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마주할 수 있는 책이다.
주요 사극들을 보면 흔하게 들어보는 '사문난적'이라는 용어가 불편하게 다가선다.
이는 유학을 뜻하는 사문(斯文)은 주자의 주자학 즉 유학을 뜻한다.
그것은 조선의 근간을 유지하는 성리학으로 변모하고 사문을 반역하는 모든것을 역적 취급하는 그야말로 행위적 분서갱유라 할만한 일이다.
그러한 사문난적에 표적이 된 천주학, 천주교리의 미래는 험난한 고행의 길을 예고하고 그에 얽힌 이들의 심리적 변화를 파악해 볼 수 있는바, 기득권 세력의 주자학에 기대어 천주교리의 이념은 그야말로 천지에 부모도 모르는 잡놈 취급을 하는 몰지각한 존재로 폄하되기 일수임을 보여준다.
다산 역시 학문을 중시하는 인물이기에 천주교리에 대한 눈을 먼저 갖기 보다 천주학(學)으로의 눈 뜸이 먼저여지만 선, 후의 문제를 따질 수 있는 계제가 아님을 기득권 세력의 공격에 무너질 수 밖에 없는 실정을 보여준다.
아무리 학문으로의 천주교에 대한 이해를 구했다 한들 유교적 관념에서 보는 천주교는 배척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정약용 형제, 허목, 윤휴, 윤증 등 다양한 인물들이 천주교와 얽혀 죽임을 당하거나 귀양을 가게 된다.
천주학을 손님마마의 종두법처럼 생각했던 다산의 의식과는 다르게 서민들이 천주학을 대할 수 없는 이유는 감염되면 무조건 죽이는 참상이 두려운 것이기에 더욱 참상이 어려웠음을 알게 한다.
정조의 정약용에 대한 두터운 신임은 노론의 남인 척결에 따른 공세 속에서도 보호적인 상태가 되어 정조의 뜻을 한없는 사랑으로 여긴 정약용의 마음을 더욱 충심으로 가득하게 한다.
노론의 거두 심환지와의 다툼, 왕과 신하의 길들이기 논쟁에서 심환지의 논리는 재상이 있음으로 해서 왕이 만들어지거나 양생된다 주장하는 터라면 그야말로 왕권을 넘어서는 절대권력으로 치부할 수도 있는 논리 볼 수 있으며 이는 왕 역시 신하들의 하수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약용 형제들 가운데 셋째 형 정약종은 어릴 때 부터 약전과 약용에 비해 어머니로 부터 차별적인 대우를 받았고 성인이 되고 나서도 약전과 약용이 가는 길과는 다른 길을 가고자 해 도학에 빠져들었고 사돈 이벽과의 논쟁에서 천주학의 실체를 강귄하는 사돈과 약전의 권유에 의해 신실한 천주인으로의 삶을 받아들인다.
정약용과 주변 인물들이 천주교를 학문적 대상으로 삼았던 것과는 달리 정약종은 신실한 천주교 신도가 됨으로써 정씨 형제와 가문과의 연을 끊고자 했다.
정조 사후 순조를 대리청정하는 정순대비는 천주교를 극렬히 반대하는 주자학 집단의 노론계가 득세해 조선 팔도의 천주교자들을 색출해 도륙을 내고 있는 실정으로 흐르며 이승휴와 정약용 역시 잡혀 고문을 받고 천주교를 배교했음을 설명해 목숨을 부지하지만 정약종은 하느님의 품으로 가는 길을 두려워 하지 않고 형장에서 효수 당하고 정약용 가문은 폐족의 사단을 맞이하고 유배를 떠나게 되고, 다시금 서울로 압송되는 경우를 맞는데, 조카사위 황사영의 문제라는것을 알게되며 1권을 마무리 하게 된다.
다산 정약용은 조선 정조때의 인물로 우리에게는 실사구시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그런 그의 삶에 드리운 주자학과 천주학의 대립적 상황을 그의 형제들과 가솔들이 가담, 겪으며 맞는 그의 심리에 대한 관점은 어떤 관점과 방향으로 보느냐에 따라 매우 극명하게 달라질 개연성이 크다 말 할 수 있다.
인간은 삶과 죽음의 문제에 있어 결코 죽음에 편을 들 수 없는 존재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신실한 종교관을 가진 이들이라면 삶과 죽음에 대한 애착이나 사유가 남다르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해 볼 수 있겠다.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삶에 대한 애착으로 귀향을 가게된 다산의 그 이후의 삶의 이야기들이 펼쳐질 2권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