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 시민불복종 미래와사람 시카고플랜 시리즈 8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황선영 옮김 / 미래와사람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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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데이비드 소로, 그의 명저 <월든>을 통해 초월주의적이고 자연주의적인 모습에 인상깊은 감정을 느꼈던 시간들이 얼마 지나지 않았던듯 하다.

자연 친화적인 삶을 살며 물질문명 속 인간의 이기적인 마음, 탐욕을 버리고 사회와 정부에 저항하는 생태주의적 사유를 가진 그의 의식을 접하며 오늘 우리 사는 사회의 나, 우리의 심리적 근본과의 차이에 대한 괴리감으로 마음이 뒤숭숭하다.

허나 제목만으로 생각한다면 왜 시민 불복종일까? 결국 저항적 의식을 가진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로 읽히는데 누구에게, 왜, 어떻게를 고민하게 한다.

나, 우리에게 복종을 강요하는 존재는 사회와 국가에 다름이 아니고 보면 결국 나, 우리는 사회와 국가에 불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되는데 이는 국가불경죄 혹은 국가모독죄 등과 같은 불온자로 낙인찍힐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정부와 사회의 의미, 가치를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해야 하는지를 지금까지는 잘 몰랐지만 소로의 시민불복종을 읽으며 그 의미와 가치를 통해 나,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대한 혼동을 바로잡고자 한다.


이 책 "시민불복종" 은 앞서 이야기 한 대로의 정부에 대한 불복종을 의미하며 소로는 '가장 적게 다스리는 정부가 가장 좋은 정부다' 라는 주장으로 시민불복종의 핵심을 꼬집어 주장한다.

흔히 우리는 정부라는 주체에 대해 복종, 또는 순종해야 하는 존재로 인식한다.

그런 정부에 대해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싶다.

소로의 주장대로라면 정부와 사회는 개인의 자유를 억악하고 복종하게 하려는 시스템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개개인의 자유는 정부의 그러한 시스템으로 인해 점점 더 효율성이 강조되는 측면으로 바뀌어 간다고 한다.

정부를 '기껏해야 편리한 수단'일 뿐이라고 이야기 하는 소로는 자신을 무정부주의자나 정부가 당장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가 아니라 정부가 점진적으로 나아지길 바라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억압과 복종을 통해 효율을 시스템화하는 정부가 아니라 존중할 가치가 있는 정부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그 옛날 19세기에 생각하고 실천해 낸 독립적인 존재감을 보여 준 소로의 모습에 현실의 나의 모습이 갖는 괴리감에 적잖은 부끄러움이 일어난다.

가장 마음에 드는 문구 하나가 눈에 보인다. 

"다수가 사실상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정부 말고 양심을 따르는 정부는 있을 수 없는가?" 하는 문장이다.

현대 사회는 효용을 강조하는 편의의 법칙을 강조하는 터에 다수결의 원칙을 통해 의사결정을 하는 방법을 법칙처럼 통용시킨다.

하지만 다수결의 원칙에 따르는 옳고 그름은 그것이 진실을 결정짖는 것과는 하등 상관이 없고 오직 효율과 편의만을 따져 결정하게 되는 시스템화된 악순환의 고리이다.

그러한 편의의 법칙은 나, 우리 모두에게 암묵적 강요와 복종을 강제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소로의 말대로 나, 우리는 편의의 법칙을 따를것이 아니라 양심에 따라 선택과 집중을 하는 사회, 정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로서 우리는 사람이 먼저 되고 국민이 되는 과정을 거쳐야 하며 늘 우리가 생각하는 '함께'의 의미를 다수의 의무가 편의를 따른다면 절대 그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그 과정속에 윤리, 도덕 등은 시스템적 사고의 조연이며 우리는 무도덕, 무윤리적 의식으로 온전히 자기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꾸려 나가야 함을 강조한다.

자기 방식대로의 삶, 인두세를 내지 않아 감옥에 가는 경험을 하고도 소로 그가 주장하는 자기만의 방식, 자기만의 삶을 과연 우리는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결코 그런적은 없는것 같다.


소로는 양심을 벗어난 행위로의 삶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양심은 자신의 자기다움을 외면치 않음으로써 올바른 결정과 삶의 근원을 투영하는 기준으로 작용한다.

정부와 사회를 통해 나, 우리는 편의적 삶의 재물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양심은 그러한 나, 우리에게 삶을 올바르게 살아가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자기 결정의 최적화를 이뤄낸다.

그 결정이 비로소 자기 방어적이고 자기다운 삶의 기준점이 된다면 나, 우리는 이 시점에서 지금까지 나, 우리가 가진 정부와 사회에 대한 관점이나 의식을 다시 점검하거나 생각해 보아야 한다.

시민불복종, 어떻게 생각하면 부정적 시선으로 읽혀질 수도 있는 제목이지만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양심선언과도 같은 의미를 자신의 삶에 적용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것 같다.

사회, 정부 모두가 편의, 효용, 시스템적인 움직임으로 우리를 이끌 때 나, 우리는 '함께'의 의미에 숨겨진 왜곡된 의미에 노예가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부다운 정부, 사회다운 사회는 양심적인 나, 우리가 만들어 나간다고 생각하는 것이 시민불복종의 결론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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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 - 경제학의 아버지, 신화가 된 사상가
니콜라스 필립슨 지음, 배지혜 옮김, 김광수 감수 / 한국경제신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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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로 알고 있는 애덤 스미스, 그의 명저 <국부론>에 대한 완전한 이해도 쉽게 가지질 못했다.

부족한 나의 탓만 하고 있기에는 더더욱 미욱한 인간으로 떨어지는것 같아 관심과 끌림에 이끌려 선택한 애덤 스미스 탄생 300주년 기념 평전을 만나 좀더 그의 세계, 그의 존재에 대한 의미를 더해 본다.

책만을 통해, 그의 국부론에 대한 이해를 하는 일보다 오히려 그, 애덤 스미스에 대한 이해를 갖는 일이 국부론 또는 그의 또다른 <도덕감정론>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평전은 인물의 업적이나 활동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진 전기문. 전기문의 한 종류로, 인물의 업적이나 활동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진 글을 의미한다. 특정한 인물을 형상화하기 위해 글쓴이가 인물과 관련된 자료나 정보를 선정하고 해석하여 이를 평가와 함께 서술하는 글이기에 한 인물의 사상과 삶, 역사에 대한 지식을 섭취할 수 있다.

어쩌면 유명하다는 다양한 법칙이나 이론들을 이해하기에 앞서 그러한 주장이나 원리를 말한 인물의 삶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알 수 있게 된다면 어떤 의미에서, 왜 그러한 주장이나 법칙이 만들어 졌는지를 쉽게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 "애덤 스미스" 는 스코틀랜드 계몽주의를 연구하는 학자 중 최고이며 경제학자의 면모만이 아니라 오히려 역사, 윤리, 철학, 미학에 이르기까지 지적 탐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그런가 하면 자신의 사후 발표 된 연구 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을 염두에 두어 유언 해 두었던 것을 앞당겨 불태운 완벽주의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애덤 스미스의 일생 일대기에 대한 여정을 그려 놓은 책이다.

13장으로 이뤄진 구성을 보면 스코틀랜드 작은 항구 도시인 커콜디에서 태어났고, 중간 계급이지만 야망가인 아버지 애덤 스미스 시니어의 두 번 째 결혼 한 엄마의 아들로 산업혁명 이전의 스코틀랜드 역시 시대적 상황이 변화하는 등의 모습 속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고 글래스고 대학교 교수가 되는데 그 당시 애덤 스미스에게 큰 영향을 미친 이는 허치슨 교수로 세간에 널리 퍼진 푸펜도르프의 군주 및 국가에 복종해야 하는 인간을 넘어 인간 자체를 자연적으로 탐구하는 행위자로 보고 시민사회로 나아가는데 일조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는 전제군주제식 정치로 종교가의 막강한 파워가 사회 곳곳에 미치지 않는곳이 없을 때 였기에 푸펜도르프와 같은 인물이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주장을 펼칠 수도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애덤 스미스에게 철학적 영감의 영향력을 미친 허치슨과 같은 인물들이 인간 자체를 자연적 탐구의 대상으로 신적 종속물에서 탈속해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고자 하는 변혁의 시기였음을 상기해 볼 수 있다.

애덤 스미스의 행보 역시 다양하게 시대의 흐름을 따라 흐르기에 버클루공작의 개인교사가 되거나 유럽여행을 하거나 하는 등 의 과정들이 애덤 스미스의 의식 속에서는 세상을 보다 냉정하게 판단하고 탐구하는 자세를 갖도록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사실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적 핵심으로의 국부론 보다 인간의 사회적 도덕과 감정에 관련된 도덕감정론에 더욱 심혈을 기울인것으로 드러난다.

그런 와중에 자신이 속해 있는 유럽의 현실, 정치체제의 변화 등을 통해 국가의 재정이 어떠해야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과 함의를 자신만의 의식이 아닌 사회속에 존재하는 수 많은 사람들의 정당한 요구임을 깨닫고 이를 해결한 과정에 다름이 아니라는 판단을 하게 된다.

애덤 스미스의 평전을 읽으며 갖게되는 생각은 겸손하며 철두철미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어쩌면 수 많은 학자들의 과정들이 그러하듯 죽음을 맞이할 때는 고스란히 업적으로 남겨둘 법도 한데, 애덤 스미스는 미발표 연구 결과들과 글들을 불태워 버리는 일을 진행한다.

저자 니콜라스 필립슨은 애덤 스미스의 강의를 들은 학생과 그들이 남긴 강의노트, 지인들과 주고 받은 편지 등을 통해 애덤 스미스의 연구와 사상에 접근하고 있어 독자들에게 있어 딱딱하기만 한 국부론과 같은 내용을 읽히기 보다 국부론의 탄생 배경과 애덤 스미스의 삶의 시공간을 의미있게 통찰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있어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보이지 않는 손' 이라는 유명한 말을 경제학과 수업에서 들어 볼 수 있었다.

국부론의 배경적 근원이 무엇이고 어떻게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 집착해 집필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정황들을 살필 수 있는 맥락을 읽을 수 있다.

물론 방대한 주변인물들과 역사적 배경들에 의해 혼란스러움을 느낄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로 인해 좀더 국부론 생성의 실체감을 확인할 수 있음이 두드러 진다고 판단할 수 있다.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의 명저, 국부론이 있기 까지의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애덤 스미스의 진면목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

국부론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면 국부론 생성의 배경과 스토리를 먼저 읽고 이해하는 과정을 거친다면 보다 원활히 국부론을 깊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판단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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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기행 2 - 길 위에서 읽는 삼국지, 개정증보판 삼국지 기행 2
허우범 지음 / 책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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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실삼허?, 이분법적 대립을 대의명분의 순리와 엮어 내 중화인의 우월성을 세계에 지속적으로 세뇌시키는 삼국지연의는 그저 수 많은 인물들의 좌충우돌 영웅의 이야기로로만 읽어서는 안된다.

실질적인 역사책이라 아니라 소설책 이라며? 하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국지가 품고 있는 그 속 내용은 중화사상의 세계 공정화와 맥이 맞닿아 있다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소설은 소설로 읽어야지 왜 역사적 존재로의 가치를 부여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소설도 소설 나름이라 할 수 있다.

소설 역시 그 내용이 품고 있는 가치와 의미가 존재하며 이는 그 소설을 읽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사고, 행동을 바꾸는데 일조한다 생각하면 삼국지가 중화주의를 세계화하는데 전초적 기지 역할을 한다 생각하면 결코 그냥 소설로서만 읽을 수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무려 1800년을 이어 온 작품이지만 단순 소설로만 보아 넘기기에는 무리가 있다할 것이라고 본다.


이 책 "삼국지 기행2' 는 역사서를 소설로 읽기 보다 중화사상이 녹아 있는 중국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으로 읽어야 한다고 여기고 황건군채가 있는 영소산을 시작으로 유비와 손권의 형주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에  이르기 까지의 삼국지 기행 1과는 달리 장하 남쪽에 위치한 업성으로 동서 7리, 남북 5리로 사각형을 이루고 외성에 일곱개의 문 내성에 네 개의 문이 있었다는 삼대(三臺)의 하나 인 동작대에서 시작해 손권의 오나라가 멸망해 간 내용을 끝으로 기행문을 적고 있다.

천하쟁패를 노리던 인물들이라 대범하고 호탕한 줄만 알고 있을 뭇 사람들에게 삼국지의 수 많은 영웅호걸들이 보여주는 면모는 결코 영웅호걸이라 칭송받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방통의 못생긴 얼굴을 탓하거나 술만 마시면 부하들을 때리는 장비나, 툭하면 눈물부터 짜는 유비나 결코 영웅다운 모습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그들도 사람이니 그럴 수 있다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러므로서 그들이 영웅이 아닌 일개 범부에 가까운 존재들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역사의 기록을 승자의 기록이라 치부하는 것도 사실은 그들이 내세우는 백성을 위한 국태민안의 의미는 허울좋은 의미에 가깝다고 본다.

삼국지를 통해 새롭게 부각되는 조조는 지금까지 간웅, 간악한 영웅이라 표현하지만 실질적으로 그와 같은 인물이 오히려 더욱 영웅적인 면모를 갖고 있다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수 많은 영웅호걸?들의 묘역을 향해 삼국지 기행은 이어지고 현실적 이익에 눈이 먼 상황에 훼손된 황후의 묘 등을 보게되는 일이 비단 중국만의 일은 아니라 오늘을 사는 전세계 사람들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칠실삼허, 일곱가지는 진실이고 세가지는 허위라는 뜻이지만 삼국지를 읽으며 느끼는 거은 칠실삼허가 아니라 삼실칠허에도 못미치는 그야말로 과장스런 중화인의 모습을 고스란히 그려내고 있음이 머릿속에 각인되듯 씁쓸함과 함께 남아돈다.

마치 유튜브에 소개되는 중국 무술들이 무참히 격퇴당하고 무너지기 까지 허울좋은 위상만으로 가득한 것이 바로 중화사상의 실체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중국문화가 최고이며 중국을 중심으로 세계가 움직인다는 중국의 민족사상은 한족(漢族)의 자기민족 우월성을 드러내는 사상으로 삼국지의 이면에 깊이 녹아들어 있다.

이는 자국중심의 사상으로 타국, 타민족을 천시하고 말살하려는 관념적 사상이라 삼국지의 수많은 인물들을 영웅호걸로 칭하며 쟁패를 일삼는 모습으로 그려내는 일을 통해 그들의 중화사상을 학습시키려는 교묘한 술수와 다름이 없다.

저자는 말한다. 중국, 중국인을 알되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말이다.

삼국지를 통해 그들의 면모를 십분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는 맥락이 가장 크기에 소설을 소설로만 읽을 수 없는 까닭을 이해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적 가치만을 내세워 소설로서의 의미를 앞세우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그렇게 하라고 말하고 싶다.

삼국지를 좋아하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면모로의 삼국지를 만나게 해준 저자의 오랜 노고에 박수와 함께 심심한 칭찬의 말씀을 드리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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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기행 1 - 길 위에서 읽는 삼국지, 개정증보판 삼국지 기행 1
허우범 지음 / 책문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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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모름지기 반복되는 과정이라고 흔히 말들을 한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그 역사에서 현재와 미래를 새롭게 열어 나갈 수 있는 교훈을 반면교사처럼 배워야 한다고 이야기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의 삶이 이어져 온 역사만이 역사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인간의 의식이 만들고 창조해 낸 대상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삶이자 역사가 이루어 졌다면 그 또한 역사라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인간의 삶에 대한 무수히 많은 기록물들, 고전속의 책들은 오늘을 사는 나, 우리의 삶이 이루어질 수 있는 현실을 밑바침한 역사의 근원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멀리도 아닌 삼국지만 보더라도 그렇다.

삼국지는 실존의 사실이 아니지만 소설을 배경으로 수 많은 인물들과 그 속에 흐르는 인간의 사상에 대해 조율하고 현실의 삶에 적용해 삶의 변화를 이끄어 온 역사적 산물임을 생각하면 삼국지를 가벼이 '소설쯤'으로 치부해서는 될 일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기도 하지만 중화주의 사상에 대한 고착화 등에 대한 이미지는 '눈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왜곡된 시선도 파악할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볼 수 있다.

여하튼 드 넓은 중국 땅을 배경으로 삼국지 기행을 떠나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삼국지 기행1" 은 흔히 만날 수 있는 삼국지, 아니 <삼국지연의> 작품과 관련된 거의 모든 이야기들을 만나 볼 수 있는가 하면 그 작품 속 현장의 지명을 찾아 가며 속속들이 삼국지의 진국을 맛볼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중화주의라는 사상의 과장된 표현은 속칭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뭐라 하듯 정말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삼국지연의 작품 속 중화주의 사상은 촉한정통론으로 전 왕조인 한을 기준으로 정통성을 갖는다는 의미로 한 황실의 후예인 유비가 한을 계승한다는 명분과 그 일을 도모하기 위한 무수히 많은 인물들의 전쟁, 정쟁을 만나볼 수 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여포를 패륜아로 만들고, 한족의 문화와 다른 유목민의 문화를 야만적이라 치부해 죽고 죽이는 살육의 현장을 만들어낸 점을 생각해 보면 역사는 오롯이 이긴자의 몫이자 승자의 역사서라 말 할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역사란 당대의 평가 보다 후대의 평가가 더욱 올바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기에 삼국지가 갖는 한계점이라 볼 수도 있을것 같다.

물론 그러한 역사는 지구상 어느곳에 가더라도 승자의 역사로 기록되고 있음이 보편적 사실이기에 터부시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잘못된 것을 잘못이라 말하지 않음도 잘못이라 생각할 수 있다.


삼국지 기행을 통해 보면 중원은 천하를 뜻하고 중원을 따라 삼국지의 면면은 역사를 만들며 흐른다.

우리는 직접적인 현장 방문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삼국지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터에 가보지는 못해도 이렇게 멋진 기획으로 탄생한 책자를 통해 삼국지 기행을 하는 것도 매우 유익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시대의 변화에 따라 어제의 현장이 사라지거나 하는 변화의 현장이 될 수도 있기에 저자는 그러한 부분을 잘 파악해 독자들의 시의성과 독서의 가독성 향상을 위한 이미지 등을 활용해 삼국지 무대와 영웅들의 발자취를 확인해 볼 수 있게 해 준다.

삼국지를 방안에서, 서점에서 읽을 수도 또는 그 어떠 장소에서 읽을 수도 있지만 이 책과 함께 하는 삼국지 기행을 해 볼 수 있다면 보다 더 현실감 있게 삼국지에 몰입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판단을 해 볼 수 있다.

저자는 융합고고학과 교수로 이미 10 년 전에 <삼국지 기행>을 썼다 한다.

이번 삼국지 기행은 그 증보판으로 앞서 출판한 삼국지 기행의 미진한 부분을 채우고 3년의 과정을 발로 뛰고 채워 초판 이후 8년의 시간을 다듬어 출판된 수고로운 노력의 산물이다.

정치판에서 흔히 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말이다.

삼국지를, 삼국지 기행을 읽으며 중화사상의 근본이 된 촉한정통론을 내세우는 그들의 모습에서 정치판의 그말이 두드러지게 보이는 것은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닐것 같다는 생각을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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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 - 죽을 만큼, 죽일 만큼 서로를 사랑했던 엄마와 딸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진환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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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여성에 있어 모성을 종종 이야기 한다.

그 모성은 자식을 향한 본능적 성질로서 여성이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며 여자에서 어머니로의 자질과 경험적 상태를 이야기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임신과 출산을 하지 않으면 모성은 없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모성은 본능이라 했다. 그렇다면 임신을 하든 하지 않든 내재된 능력으로의 실체라는 말과 다름이 없고 보면 어떻게 판단하고 또 어떤 위치에서 느낄 수 있는가에 따라 모성에 대한 이미지도 많이 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모성이 태초부터 존재해 왔겠지만 현대 사회에 있어 여성을 옭아매는 억압성을 띠고 있거나 창조자로의 모성에 대한 이율배반이나 남성 지배사회의 탈환적 시선을 가진채 패미니즘적 사유로 치부되는 일도 심심치 않게 있을 법도 하다.

모성에 대한 사상적 사유를 따지기 보다 진한 모성애를 바탕으로 한 편의 소설을 통해 먹먹한 울림을 받을 수 있는 이야기도 나름대로 매력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먹먹함이 담겨 있는, 차마 전하지 못할 진한 모성의 이야기를 담아 독자들에게 전하는 책을 만나 읽어본다.


이 책 "모성" 은 모든걸 바쳐 애지중지 키운 딸이 4층의 자택에서 추락해 사고와 자살의 염두를 두고 조사하는 중의 관련 어머니 히토미와 타도코로와의 만남부터 시작해 대를 이어 내려가는 삶과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모성의 존재감을 인과적으로 표현해 내고 있어 절절한 모성의 느낌을 기대 했다면 조금은 실망했을 수도 있을, 하지만 이럴수도 있구나 하는 느낌으로의 모성애에 대한 느낌을 새롭게 구축할 수 있었던 책이다.

종종 우리는 부모 또는 그 이상의 가족들로 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곤한다.

'너 닮은 애 낳아서 키워봐라' 라는 말, 처음엔 이 말이 무슨말 일까 생각 조차도 못했지만 막상 연인을 만나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나와 똑 같이 닮은 구석이 있는 모습을 실체감 있게 경험해 볼 때 아! 그말이 이런 뜻이구나 하는 가슴에 확 와 닿는 느낌을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른채로 살아간다.

내가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느끼는 감정과 나와 자식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혹은 전해지는 감정의 곡선은 같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르다고, 엄청난 차이를 느낀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런 관심과 감정과 애착과 사랑의 차이를 어머니에게 느끼는 나와 나에게 느끼는 딸로서의 모성은 과연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이며 서로간에 해소할 수 있을까?

살아 있어 대화하거나 풀어낼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소설처럼 불행이 덮쳐 내가 바라마지 않던 어머니가 자진해 가며내 딸아이를 살리는 입장이라면 과연 나는 딸아이를 모성애적 대상자로 생각하고 대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생긴다.

삶을 대하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삶이 무엇이고 나, 우리는 왜 자식을 낳고 기르며 애정을 쏟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의 일부를 세상에 남아 있게 하는 가족의 형성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근원이자 지속가능한 삶의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저자는 그런 나, 우리의 가족사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울게도 웃게도 만들며 안타까운 어머니로의 모성을 드러내지만 아쉽게도 가 닿지 못하는 모성은 끝내 딸 아이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세상 어느 부모가 너를 낳고 행복이 시작되었다고 하지 않고 내 불행이 시작되었다고 말을 할까?

이미 그러한 기미는 사랑만 받고 자라 온 나, 우리의 내면에 뿌리 깊게 자라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 우리라고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리란 법은 없기에 소설속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나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이성을 흐리게 해 바보를 만들게도 한다.

결과적으로 딸아이를 죽게 한 엄마인 나는 모성이 없는 것일까? 

따스한 손 하나로도 그리움을 느끼고 애정을 쏟고 싶었던 나와 그리고 엄마에 대한 향수는 딸 아이 역시 내가 엄마에게 느꼈던 모성의 전철을 고스란히 밟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단지 표현하는 방식과 대응법이 달랐을 뿐 여전히 우리 내면에는 자식에 대한 모성의 DNA 가 존재함을 강하게 느껴본다.



**출판사 리드리드의 지원으로 

               개인적 의견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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