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그레이버의 유작 해적 계몽주의가 한글로 번역되었다. 


작년 부산 비엔날레(어둠에서 보기)의 유럽인 큐레이터 베라 메이와 필립 피로트가 영감을 받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물론 초기의 의도가 잘 구현되었는지는 관객으로서 의문이다. 한국의 행정과 규제를 겪고 나면 다 다운그레이드가 되는 것인지. 건축물 조감도처럼.


역자는 고병권 선생. 12만원짜리 1280쪽짜리 희대의 대작 자본 강의를 쓴 저자다. 책에 하이라이트 잘 안 치는 내게는 굉장히 드물게도 한 페이지에 한 번 꼴로 줄을 그으며 읽었다. 그리고 그 잘 읽히는 대작을 쓰기까지 12권짜리 북클럽 자본 전질을 쓴 경험이 있어야했다. 단 한 권을 쓰기 위해 습작(이라고 하기에는 퀄리티가 높은) 12권을 쓰며 자신 안에 내공을 찬찬히 축적해야했던 것. 물론 그 책을 쓰기 위해 지난 10년간의 궁리가 있었겠다. 오랜 생각의 실타래가 꾸준한 습작을 거쳐 다듬어진 후에야 정련된 결과물 한 권이 나오는 것이다.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팬데믹 초반에 necrotic pancreatitis, 그러니까 괴사성 췌장염으로 환갑 전에 명을 달리했다. 예일대를 거쳐 런던정경대에서 교수를 역임한 인류학자인데 탄탄한 이론과 활동가로서 현장성을 겸비한 보기 드문 지성인이었다. 그의 글은 특별하다. 내용적으로도 형식적으로도 데이비드 그레이버만 쓸 수 있는 글이다. 구체적으로 어떠하냐?


일단 명료함과 깊이를 동시에 지녔고, 급진적 이론(아나키즘)을 인류학적 증거로 뒷받침해 실제 경험적 사례에서 대안을 제시하며, 상아탑의 엘리트주의를 거부하면서도 이론적 정밀함을 유지한다. 나아가 피카소급으로 기존 역사적 구조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데 능하며 아나키즘을 사상으로서뿐 아니라 지적 형식이자 대안적 삶의 방식으로 재구성한다. 


그레이버의 저서는 빌브라이슨이나 신형철처럼 어느정도 교양이 있는 사람들이 읽었을 때 그 안의 유머와 해학과 풍자적 요소를 제대로 발견하고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난이도가 있지만 팬이 되면 그만큼 또 재밌는 책이 없다. 그가 요리조리 구사하는 재치있는 반어법이라든지 일상에서 발견해낸 철학적 직관 같은 부분은 예를 들어 <헛소리 직업(쓸모없는 일자리)>의 이런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다.


"Normally, when you challenge the conventional wisdom—that the current economic and political system is the only possible one—the first reaction you are likely to get is a demand for a detailed architectural blueprint... Historically, this is ridiculous."– Bullshit Jobs: A Theory


그레이버는 이 인용문이 언급된 책에서 관료주의 서류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시시한 일을 하는 일터에서 사람들이 어떤 가짜 노동을 하며 살아가는지를 꼬집는데 마치 SNS에 올리는 냉소 섞인 농담같다. 그런 농담섞인 말과 학술언어 사이의 오솔길을 더듬어가던 어느 순간 독자는 깨닫는다. 우스운 일상이 사실은 우리가 속한 체제의 본질이라는 것을. 그레이버는 노동이라는 개념을 직접적으로 공격하지 않는다. 다만 왜 쓸모 없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하느냐고 물으며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해보게끔 한다.


"지옥이란 자신이 잘하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집합이다" 

"Hell is a collection of individuals who are spending the bulk of their time working on a task they don’t like and are not especially good at."– Bullshit Jobs: A Theory


또 다른 재밌는 예시는 규칙의 유토피아에서 찾을 수 있다. 


"The ultimate, hidden truth of the world is that it is something that we make, and could just as easily make differently."– The Utopia of Rules

"세상의 궁극적인 진실은 이것이다. 우리는 이 세계를 만들었고, 원한다면 다르게 만들 수도 있다"


자본주의, 국가시스템 등의 기존 질서가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선택의 결과물이라는 주장은 유발 하라리 등 사회 구성주의적 입장을 취하는 대부분의 지성인이 공유하는 논점이지만, 그레이버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위 인용문에서처럼 얼마든지 사회를 다르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하며 관찰적 비판자의 입장에 머무르지 않고 구체적이 대안을 꿈꾸는 사상가라는 점을 보여준다.


그레이버는 사회변화를 말하면서 무의미한 청사진과 보여주기식 매뉴얼을 내놓는 식의 정치적 상상력에 회의적이다. "사회 변화가 언제 누군가의 청사진에 따라 일어난 적이 있었던가? 르네상스 시대의 피렌체에서 몇몇 선지자들이 ‘자본주의’라는 개념을 구상하고, 언젠가 주식 거래소와 공장이 어떻게 작동할지를 설계한 뒤, 그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실행에 옮겼다는 식의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사실 이런 생각 자체가 너무 터무니없어서, 애초에 우리가 어떻게 그런 식으로 변화가 일어난다고 상상하게 되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When has social change ever happened according to someone’s blueprint? It’s not as if a small circle of visionaries in Renaissance Florence conceived of something they called “capitalism,” figured out the details of how the stock exchange and factories would someday work, and then put in place a program to bring their visions into reality. In fact, the idea is so absurd we might well ask ourselves how it ever occurred to us to imagine this is how change happens to begin."


그레이버는 혁명을 일상의 행위로 본다. 약자의 무기나 조미아, 지배받지 않는 사람들을 쓴 제임스 스콧과 비슷한 입장이다. 학내정치로 인해 2005년에 테뉴어에 임용되지 않았을 때 같은 예일대에 몸담고 있던 제임스 스콧은 그레이버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는데 이는 우연의 일이 아니다. 둘의 학문적 방향성은 비슷했고 상호 존중하는 사이였다. 그 둘의 입장의 고갱이는 곧, 거대한 서사 대신 함께 규칙을 만들고 다시 검토하고 또 다시 바꾸는 작은 실천들이야말로 진짜 정치적 상상력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그레이버는 사유하는 시인라고 할 수도 있겠다. 논리와 이성을 가능성과 이상으로 버무리고, 제도와 함께 관계를 접목시키고, 전환과 동시에 실천에 주목했던 시인. 임마뉴얼 월레스틴이나 칼 폴라니, 니클라스 루만이 메타적으로 거대관계에만 다루어 뜬구름 잡는 듯한 느낌이 든다면, 그레이버는 현장에 뛰어들어 생생한 현장감을 통해 구조적 분석과 미시적 예시가 돋보이는 정치한 글을 빚어냈다. 


그레이버 사후의 독서는 어떠해야하는가? 그레이버를 읽는다는 것 좌파적 상상력을 익히는 것이라기 보다는 세상을 향한 어떤 우회적인 신뢰를 되찾는 일에 가깝다고 본다. 인간이 아직 계산하지 않.을. 줄 안다는 것 그리고 아직 인간이 불교의 무주상보시와 모스의 증여론을 실행할 수 있다는 사실이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 그레이버는 우리에게 그 믿음을 증명해 보였다.


다르게 살 수 있다는 믿음은 다르게 상상하는 능력에서 비롯된다. 그레이버는 새로운 상상력을 증언하는 글쓰기를 새로운 언어를 통해 증거했다. 그래서 많은 카우치 인류학자들과는 달리 탁상공론이 아니라 가능성 그 자체였고 그의 책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레이버의 레거시를 좇는 이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활동하고 생각하고 글쓰면서 다른 세계를 도모하며 살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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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드라 2025-06-16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좋은 글, 감사하게 읽었습니다. 인용문 중에서 ˝사회 변화가 언제 ~~ 묻지 않을 수 없다˝라는 구절은 어떤 책에서 인용한 것인지요?

글을매일씁니다 2025-06-17 18:01   좋아요 0 | URL
그것은 책이 아니고 칼럼기사입니다.
https://bogost.com/writing/blog/well_whats_your_solution_then/
https://afflictor.com/2013/04/08/when-has-social-change-ever-happened-according-to-someones-blueprint-2/
 

OCI 미술관에 다녀왔다. 


종각역 조계사 근처에 있다. 경기침체, 공급망재편, 미중관세전쟁 등으로 인해 많은 갤러리들이 위기에 있다. 페레스, SH서울 등 해외화랑도 한국에서 철수하고 있을 정도다. 한국인들은 지금 고가의 미술품을 살 여력이 없다. 한국인들의 자산은 대부분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부동산에 묶여있기 때문에 시세가 올라가도 당장 내 가처분소득이 올라가는게 아니다. 내 근로소득은 보통 레버리지를 제공한 은행에 이자를 내는데 사용하고 훗날 아파트를 처분했을 때 목돈이 생기는 것이다. 당장 쓸만한 돈이 없다. 폭발하는 인구를 바탕으로 한 제조업과 유통업 기반의 경제성장기처럼 사람들의 호주머니에 돈이 들어오고 빈번하게 출납하면서 경제의 활력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당장 치킨값 3만원, 라면 2천원도 너무 올랐다고 생각하는 상황이다.


한편 탄탄한 기업이 후원하는 문화재단과 갤러리는 경제침체의 타격을 적게 받으면서 순항하고 있다.


홍대 CR컬렉티브, 코리아나화장품의 코리아나씨, 고무회사의 부산 고은사진미술관, 천안향토 기업 아라리오, 금호 등등 여럿 있다. 아모레나 삼성리움 같은 대기업까지 언급하지 않아도 준수한 중견기업이 후원하는 갤러리는 판매해야 소득이 들어오는 화랑보다는 경제위기에 강하다. 아마 세금 감면혜택 같은 구조적 유인으로 인해 만든 미술관일 수도 있으나, 그 혜택은 시민이 보고 있다. 스노우 폭스 김승호 회장의 저서 돈의 속성에서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돈이 한꺼번에 왕창 들어오는 돈보다 힘이 세다고 했다. 워렌 버핏도 바로 그런 매달 미국 전역에서 들어오는 보험금으로 주식을 꾸준히 구매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물로 그 정기적인 돈의 최강자는 세금이고, 국공립미술관 박물관의 파워는 바로 세금에서 생긴다.


판매수익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그런 국공립과 기업후원 갤러리들은 특히 경제침체 때 좋은 젊은 작가를 발굴하는 전시를 연다. 그래서 이런 갤러리는 갈 때마다 기대가 된다. 동양화학의 OCI도 대표적이다.


지난 OCI 영크리에이티브 김호수, 이피리도 특이하고 좋았다. 두 명의 전시가 끝나고 어제 경제엽과 이주영으로 교체되었다. 이주영의 설치미술, 퍼포먼스, 그리고 목탄활용 회화와 언어에 대한 화두도 좋았지만 2층의 경제엽이 조금 더 눈길이 간다.

회화의 핵심은 선이다. 선이 삐뚤빼뚤하여 바르지 않다면 기초 드로잉을 다시 시작해야한다. 선이 좋아야 선명한 윤곽을 그릴 수 있고 오브제를 단단히 쌓을 수 있다. 선이 기초이자 핵심이자 전부다. 그런데 경제엽의 그림은 선이 바르지 않다. 허나 그 바르지 않은 선들이 그리는 풍경의 내용과 일치한다. 바르지 않은 형식과 바르지 않은 내용이 형식과 내용의 일치를 보인다


지금까지 푸드코드를 그린 그림이 있었던가? 술집에서 오바이트하는 대형작품을 본 적이 있던가? 환풍기 밑에서 고기 굽는 테이블은? 비스듬하니 기울어져 기능이 정지된 것인지 알 수 없는 서빙로봇은? 아침녘 지방 기사식당의 증기 가득한 아침시간은? 혹은 새벽녘 식용유와 야채 등 배달해주는 물품트럭을 버즈아이뷰로 포착한 화면은? 땅거미 질 무렵 적막한 브레이크타임이 끝나가는 거대중식당의 창호문양으로 그림자 비친 풍경과, 손님 없는 프랜차이즈 식당의 환한 고요함은?


아이러니하게도 일렁이는 듯한 화면에 밀려난 서발턴의 삶, 주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에 정확하고 적합한 선이다. 바르지 않지만 자연스러운, 일렁이고 부유하고 떠도는 선. 모두의 롤모델로서 정밀한 완성도를 추구하는 세련깔끔한 선의 인위성과 허위성보다는 할머니, 가든, 손질, 불맛, 짬, 열기 등의 낱말에서 느껴지는 어떤 지글지글거리는 일상의 한 풍경. 목가적이고 판타지화된 시골농촌과 투쟁하는 노동쟁의의 리얼리즘 어느 사이에 너무 그로테스크하지도 너무 환하지도 너무 서글프지도 너무 없지도 않은 그냥 소외된 자들의 일부를 담아냈다. 바르지 않은 선으로 바르지 않은 자들이 그냥 살기 위해 먹고 사는 어느 풍경을 그렸다. 묘하게 친근하고 묘하게 석연치않으며 묘하게 익숙하고 묘하게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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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경영위기지만 한창 때 홈플러스는 폼이 좋았다.

회장이 쓴 자기계발서가 데굴데굴 굴러다니길래 이놈 하고 용케 잡아서 한 번 읽어봤었는데 전략인즉 모든 유통업체가 서울에 먼저 자리를 잡고 지방으로 진출하는데, 자기는 지방에서 시작해 서울로 진격하는 전략을 취한다는 것. 더 넓은 지역에서 유통망을 완성하고 인구가 더 큰 파이를 먹겠다는 것.


만약 팀홀튼도 지방에서 저가로 시작해서 진격했으면 나앗을려나

현지에서는 싼맛으로 먹는 커피를 너무 고가로 파니 사람들이 잘 안가게 된다

스벅도 흔들리는 마당에.


홈플러스와 비슷한 전략을 취하는 좋은 베이글집이 있다

타타스 베이글

천안에 본점이 있고 진주 김해 여수 지방 온갖 곳에 지점이 있는데

서울은 천호점이 고작이다

신뢰하는 소믈리에가 나쁘지 않다고(그것은 유럽식으로 좋다는 칭찬의 말이다)하여

런베뮤나 코끼리베이글과 비슷한지

지방 미술관에 갈 때 방문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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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화이트스톤에 다녀왔다. 


그래피티와 같은 스트리트 컬쳐에 판화적 배경과 20세기 초 디즈니 캐릭터를 닮은 팝아트적 캐릭터인데 선이 묘하게 일본 만화가 생각난다. 에반게리온 같은 메카닉 계열 만화에서 볼 법한 철판이 보인다. 특이하다. 일본 작가 중 가장 국제적이다. 일본화된 세계화가 아니라 일본과 글로벌 사이에 있는 교차성과 혼종성이 보인다.


청담 화이트큐브와 파주 화이트블럭과 이름이 비슷해 늘 헷갈린다. 역시 백의민족, 한국인의 백색사랑은 세계 누구도 어깨를 견줄 수 없다. 아 도시 전체를 하얀색으로 뒤덮었다는 카자흐스탄빼고. 그정도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한국에 있었다면, 다른 나라에서는 그림 속의 떡에 불과한 탄핵을 여러 번 현실화시킨 똑똑하고 독립적인 한국인들에 의해 철퇴를 후려맞고 아야하고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질테다.


하여튼 갤러리명에 화이트가 너무 많아서 이름이 혼동된다. 시옷으로 시작하는 서울역의 스톤은 같은 시옷 초성을 공유하고 청담은 담 받침에 네모형태의 미음ㅁ이 있어서 큐브, 파주는 헤이리단지가 블럭형태 마을인 것에 착안해서 외웠다. 선생님 이거 중간고사에 나오나요? 아니 그냥 공부해두면 살아가면서 다 도움되는거야. 엄마가 시험에 나오는 것만 공부하랬는데요. 그래 그럼 너 때문에 시험에 낼게. 야 미친 아아아아아! 자자자 서울역 스톤 청담 ㅁ미음밭침 큐브 파주 단지는 블럭이야. 대신 기출문제를 바로 줄게 어때? 오오오오 샘짱. 다음 중 화이트가 들어가지 않는 갤러리를 고르시오


1) 화이트블럭

2) 화이트큐브

3) 화이트스톤

4) 사루만

5) 백의민족


우여곡절을 거쳐 모두 화이트스톤이 어디있는지 이해했고(굳이?) 17세 때 런던거주경험이 있는 아루타 수프 작가가 일본 신주쿠의 밤거리 네온과 풍경에 영감을 받아 그린 당대팝아트풍의 그림이 걸려있다. 으레 컨템포러리 팝아트가 그러하듯 알터이고 즉 제2의또다른자아, 그러니까 분신이나 아바타에 해당하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여기서는 공허(보이드)에서 만들어냈다는 앨리스의 토끼를 닮은 제로. 캐릭터가 브랜딩화되면 각종 굿즈 등에 사용하기도 좋고 IP화하기도 좋아 이런 작품은 전통 회화라기보다 상업판매를 목적으로 한 퍼스널브랜딩 네러티브다. 이야 말로 무라카미 타카시가 예술기업론에서 일갈한 바가 아닌가. 팔리는 예술을 위한 팁.



일본 작가 중에서는 글로벌적으로 활약할 수 있는 사람이 적다고 생각했다. 워낙 전통의 중력이 강하고 관습의 인력이 강한 문화라서 모든 게 일본화, 내수화되지 않으면 안되는 듯하다. 쿠사마 야요이나 이런저런 해외에서 유명세가 있는 일본작가들을 보면 다소 오래 전에 네이밍을 획득했는데 그것도 일본의 정신문화나 망가, 오타쿠컬쳐같은 일본 내부의 요소를 초국적으로 (즉 해외 서양인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보여주었기 때문인 것 같다. 정말 해외에서 해외공기외 호흡하며 글로벌하게 활동하는 교포작가가 있을까? 한국과 비교하면 딱히 눈에 띄지 않는 느낌이다. 일본예술가는 모두 전통예술하러 갔거나 삼삼오오 작업실에 모여 만화를 그리고 있다고 느껴진다. 아루타 수프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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