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I 미술관에 다녀왔다. 


종각역 조계사 근처에 있다. 경기침체, 공급망재편, 미중관세전쟁 등으로 인해 많은 갤러리들이 위기에 있다. 페레스, SH서울 등 해외화랑도 한국에서 철수하고 있을 정도다. 한국인들은 지금 고가의 미술품을 살 여력이 없다. 한국인들의 자산은 대부분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부동산에 묶여있기 때문에 시세가 올라가도 당장 내 가처분소득이 올라가는게 아니다. 내 근로소득은 보통 레버리지를 제공한 은행에 이자를 내는데 사용하고 훗날 아파트를 처분했을 때 목돈이 생기는 것이다. 당장 쓸만한 돈이 없다. 폭발하는 인구를 바탕으로 한 제조업과 유통업 기반의 경제성장기처럼 사람들의 호주머니에 돈이 들어오고 빈번하게 출납하면서 경제의 활력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당장 치킨값 3만원, 라면 2천원도 너무 올랐다고 생각하는 상황이다.


한편 탄탄한 기업이 후원하는 문화재단과 갤러리는 경제침체의 타격을 적게 받으면서 순항하고 있다.


홍대 CR컬렉티브, 코리아나화장품의 코리아나씨, 고무회사의 부산 고은사진미술관, 천안향토 기업 아라리오, 금호 등등 여럿 있다. 아모레나 삼성리움 같은 대기업까지 언급하지 않아도 준수한 중견기업이 후원하는 갤러리는 판매해야 소득이 들어오는 화랑보다는 경제위기에 강하다. 아마 세금 감면혜택 같은 구조적 유인으로 인해 만든 미술관일 수도 있으나, 그 혜택은 시민이 보고 있다. 스노우 폭스 김승호 회장의 저서 돈의 속성에서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돈이 한꺼번에 왕창 들어오는 돈보다 힘이 세다고 했다. 워렌 버핏도 바로 그런 매달 미국 전역에서 들어오는 보험금으로 주식을 꾸준히 구매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물로 그 정기적인 돈의 최강자는 세금이고, 국공립미술관 박물관의 파워는 바로 세금에서 생긴다.


판매수익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그런 국공립과 기업후원 갤러리들은 특히 경제침체 때 좋은 젊은 작가를 발굴하는 전시를 연다. 그래서 이런 갤러리는 갈 때마다 기대가 된다. 동양화학의 OCI도 대표적이다.


지난 OCI 영크리에이티브 김호수, 이피리도 특이하고 좋았다. 두 명의 전시가 끝나고 어제 경제엽과 이주영으로 교체되었다. 이주영의 설치미술, 퍼포먼스, 그리고 목탄활용 회화와 언어에 대한 화두도 좋았지만 2층의 경제엽이 조금 더 눈길이 간다.

회화의 핵심은 선이다. 선이 삐뚤빼뚤하여 바르지 않다면 기초 드로잉을 다시 시작해야한다. 선이 좋아야 선명한 윤곽을 그릴 수 있고 오브제를 단단히 쌓을 수 있다. 선이 기초이자 핵심이자 전부다. 그런데 경제엽의 그림은 선이 바르지 않다. 허나 그 바르지 않은 선들이 그리는 풍경의 내용과 일치한다. 바르지 않은 형식과 바르지 않은 내용이 형식과 내용의 일치를 보인다


지금까지 푸드코드를 그린 그림이 있었던가? 술집에서 오바이트하는 대형작품을 본 적이 있던가? 환풍기 밑에서 고기 굽는 테이블은? 비스듬하니 기울어져 기능이 정지된 것인지 알 수 없는 서빙로봇은? 아침녘 지방 기사식당의 증기 가득한 아침시간은? 혹은 새벽녘 식용유와 야채 등 배달해주는 물품트럭을 버즈아이뷰로 포착한 화면은? 땅거미 질 무렵 적막한 브레이크타임이 끝나가는 거대중식당의 창호문양으로 그림자 비친 풍경과, 손님 없는 프랜차이즈 식당의 환한 고요함은?


아이러니하게도 일렁이는 듯한 화면에 밀려난 서발턴의 삶, 주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에 정확하고 적합한 선이다. 바르지 않지만 자연스러운, 일렁이고 부유하고 떠도는 선. 모두의 롤모델로서 정밀한 완성도를 추구하는 세련깔끔한 선의 인위성과 허위성보다는 할머니, 가든, 손질, 불맛, 짬, 열기 등의 낱말에서 느껴지는 어떤 지글지글거리는 일상의 한 풍경. 목가적이고 판타지화된 시골농촌과 투쟁하는 노동쟁의의 리얼리즘 어느 사이에 너무 그로테스크하지도 너무 환하지도 너무 서글프지도 너무 없지도 않은 그냥 소외된 자들의 일부를 담아냈다. 바르지 않은 선으로 바르지 않은 자들이 그냥 살기 위해 먹고 사는 어느 풍경을 그렸다. 묘하게 친근하고 묘하게 석연치않으며 묘하게 익숙하고 묘하게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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