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아 아르떼의 설명이다.

문장이 다른 글 같지 않게 너무 복잡하다. 떼어 분석해보자


Dora Maar. 도라 마르

Si este nombre no te suena 이 이름이 낯설다면

 es que 그것은 곧

 tienes / ante ti / una prueba irrefutable de

 반박할 수 없는 증거가 당신 앞에 있는 것이죠

 cómo (<la historia del arte> y <quienes la han escrito y divulgado>

 han dejado en el olvido a 

 <미술사>와 <그 역사를 기록하고 전파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잊었는지에 대한 증거를요

  una de las fotógrafas más importantes de los años 30

  y (de las vanguardias francesas del siglo XX

 1930년대와 20세기 프랑스 아방가르드 운동의

 가장 중요한 사진작가 중 한 명을 어떻게 잊었는지


Si este nombre si te suena te pregunto:

만약 이 이름이 낯설다면 저는 이렇게 묻겠어요


¿la conoces por su importante obra fotográfica o por ser la pareja de Pablo Picasso?

당신은 그녀를 중요한 사진 작품으로 알고 있습니까

아니면 파블로 피카소의 파트너로 알고 있습니까?


https://historia-arte.com/artistas/dora-maar


이 글의 접근방식에서 배울 점은 미시적인 개인을 비판해 소모적인 논쟁을 하기보다 거시적인 미술사의 서술법을 비판하여 새로운 이해를 도모하는데 있다.


나아가 <피카소의 연인이었던 그녀ㄷㄷ> <충격적인 피카소의 실체> 같이 어그로를 끌기 위한 자극적인 SNS 기사 제목 스타일로 여성 예술가를 주목하는 듯하면서 결국 그녀들을 작품이 아니라 누군가와의 사회적 관계로 전락시키는 방법을 쓰지 않았다는 점이 좋다. 마지막 질문은 부드러운 제안이다.


연인이었던 것은 맞으나 작가는 작품으로 이해하자는 넛지다.


최근 부각되는 나머지 반쪽의 역사, 미술사, 즉 잊혀진 여성들을 조명하는 접근방식이다. 최근 한국에서 출판된 책 그들도 있었다도 있고, 그이전에는 린다 노클린의 왜 위대한 여성화가는 없었는가가 효시였다. 














도라 마르와 피카소의 연인이었던 기간은 9년이고 스스로의 작품활동 기간이 더 길며 모든 예술가는 누가 누구의 연인이었다라기보다 그 자신의 작품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피카소는 아는데 연인이었던 도라 마르는 모른다구요? 라는 서술은 주의를 환기하기에는 좋지만 읽는 독자의 몰이해를 비판하는 방식이다. 미술사가 주목해오지 않았다고 저 멀리 있는 다른 거대한 메타적 대상을 비판하는 한편 자 그럼 우리 그녀를 작가로서 이해해볼까요? 라고 제안한다.


마침 엊그제 가디언지에서도 그녀가 소장하고 있어 80년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피카소의 그림에 대한 기사를 내보냈다.


피카소가 연인이었던 도라 마르를 위해 그린 흉상이다.

Bust of a Woman in a Flowery Hat (Dora Maar)


물론 이 작품 외에도 피카소는 도라 마르를 대상으로 그린 그림을 남겼지만 그녀는 자신을 대상으로 그렸다는 모든 작품은 나를 그린 게 아니라 피카소 자신을 그렸다고 말했다. 실제로 피카소 스타일을 실험한 것이지 그녀를 핍진한게 그린 것은 아니다. 사진 작가와 입체파 실험가의 입장이 분기된다.


도라 마르는 97년에 죽었고 소장가는 할아버지로 부터 물려받았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흑백 도록을 통해 이 작품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컬러 원본으로 대중에게 공개된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경매가 크리스토프 루시앙은 여전히 이 작품을 통해 피카소의 사생활을 알 수 있다고 짜치는 발언을 한다. 판매를 위해 어그로를 끌기 위해서인가


https://www.theguardian.com/artanddesign/2025/sep/18/picasso-painting-hidden-for-80-years-auction-paris



사진1 출처 : 가디언

사진2 출처 : 히스토리아 아르떼

사진3 출처 : https://www.abitare.it/en/gallery/events/dora-maar-exhibition-at-the-centre-pompidou-paris-gallery/#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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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상반기에 갔던 서예전시 중 좋았던 곳은 강원도 인제군 여초 김응현 서예관, S2A, 그리고 김가진 전시였다. 김가진 전시는 서초동 예술의전당 서예미술관과 용인 기흥 백남준 아트센터 옆 경기도박물관 두 곳에서 보았다.


동농 김가진(1846~1922)은 조선시대에 태어나 개항기와 개화기를 거쳐 임시정부의 큰 어른으로서 서양 열강 사이에서 근대외교관으로 말년을 보냈다. 한자문화권에서 서양 근대 사회를 약간 맛본 인물로 국한문과 일본어와 중국어와 서양어를 다 경험한 당시로서는 희소한 글로벌하고 초국적 인물이다. 독립문 현판도 그의 글씨다. 그의 서찰 관련 포스팅을 하나 하기 전에 맛보기로 하나 올린다.



사진1은 논어 자로(13)에 나오는 구절인데 몽양 여운형 선생의 글씨다. (하늘색) 향이 세 번 나오는데 뒤의 두 번은 축약해 썼다. (노란색) 미가는 초서라서 훈련되지 않은 눈에는 쉽지 않다. 사진2와 3의 김가진의 未 필적이 두 개를 보면 획순이 짐작된다. 손에 각인된 서체에는


개인의 고유한 인격이 담겼고 지성인들은 모두 서로의 글씨를 분별할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에세이는 개인의 지적 임프린트 같은 것이었는데 어느 순간 GPT가 등장하며 대량생산물이 되었다.


한국이건 유럽이건 미국이건 에세이대회나 대학수업에 페이퍼를 제출할 때 그 작성물은 제출자 고유의 것이라는 어떤 합의가 있었고 베껴내거나 대리로 작성했을 경우 기본적 약속을 깨뜨린 것으로 간주해 제재를 가했는데 이제는 GPT로 인해 글쓴이의 판별이 쉽지 않다.


무엇보다 에세이를 통한 교양인 배양이라는 대학교육의 이념 자체가 도전받게 되었다.


되려 반대로 AI를 뛰어넘어 폭넓은 지식과 자신만의 문체를 가진 이가 독점하게 될 때가 올 것이다. 부동산 시장도 빅테크 기업도 가상화폐도 인터넷 기업도 이 모든 경우에서 돈이 풀리고 정보가 민주화되면 반드시 양극화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적당히 화이트칼라의 하급노동을 자동화하는 에이전트 AI를 뛰어넘어 더 거대하고 양질의 정보를 생산할 수 있는 일부에게 모두의 관심이 쏠릴 것이다. 그러니까 작가가 될 거라면 과거처럼 수십 년 갈고 닦아 일생에 한 번 문집을 출판하거나 일년에 한 번 있는 신춘문예에 출판하는 게 아니라 광범위한 주제로 읽을 만한 글을 끊임없이 생산해야한다는 뜻이다. 이에 더해 전에 없던 깊이 있는 지식을 더 많이 제공해야한다.


옛날에는 마을마다 있던,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같은 적당히 악기를 다루는 음유시인이 모두 사라지고 축음기가 배경음악의 수요를 대체하고 더 실력있는 뮤지션을 위한 무대는 TV가 제공하게 되었다. 그리고 청자가 더이상 자국어로만 음악을 듣지 않게 되어 시장이 글로벌하게 확대된 것이 현재 상황이다. 자국어로 몇 십 몇 백명의 사람들을 위해 노래하던 동네 음악가에서 수 억명의 글로벌 팬덤을 가진 초대형 뮤지션까지의 여정은 신문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중앙정부나 국제정세의 뉴스를 지역주민에게 적당히 전해주는 동네신문은 모두 폐간되고 전국규모의 일간지로 통폐합되며 지역신문은 지부로 바뀌었다가 인터넷으로 전세계 신문을 섭취할 수 있게 되고AP같이 신문사를 위한 신문사도 생기는데 구글 번역기와 GPT의 발달로 인해서 다른 국가 신문마저 읽을 수 있게 된 세상까지 왔다. 


한국어는 한반도 독자만 가정하지만, 예컨대 스페인어를 쓰는 복수의 국가가 있는 남미의 경우나 뉴질랜드 영어화자가 영국이나 미국 신문을 읽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무슨 말인지 이해할 것이다. 기사를 읽는 문자 소비자는 지역신문의 그저그저런 기사를 읽지 않고 소수의 우량 신문사의 신문을 읽을 것이라는 말이다. 경제나 국제정세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기사를 원하는 한국인 일부도 한국신문에 국한되지 않고, 또한 번역에이전트에 기대지 않고 GPT를 통해 바로 NYT나 가디언이나 르몽드디플로마티크를 읽고 코스모폴리탄이 될 것이다. 


그 징조는 최준영이나 김지윤이나 타일러나 삼프로티비나 해담경제연구소와 박정호의 유투브에서 감지할 수 있다. 대개 투자자들이 글로벌 뉴스에 민감하고, 이들을 위해 한국어로 생산된 자료에는 없는 외국신문의 정보를 자신의 시각으로 재가공해 판매하는 지식의 도매상들이다. 


돌아와서, 김가진 선생의 글씨는 전체적으로 호방한 기운이 느껴진다. 여기에서도 노란색 하이라이트된 사진1 여운형의 未와 사진2,3의 김가진의 그것이 다르다.


근대 유럽에 라틴어 기반의 편지공화국이 있어 영프독, 스웨덴인 모두 라틴어로 교류하고 과학의 발견과 문학에 대한 생각을 논할 수 있었다면, 한자문화권에는 에도통신사, 북학파의 열하일기에서 보이듯 한문 서예 필담에 기반한 동아시아 문예공화국이 있어 정갈한 차를 마시며 문자의 향기과 선현의 가르침을 논할 수 있었다.


경전의 레퍼런스를 미리 알지 못했다면 사진1의 보라색 2번째 善은 도저히 읽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전공자의 전문성을 존경해야하는 이유다. 한 가지 분야를 계속 하는 사람들의 감식안은 따라잡을 수 없다. 모두에게 주어진 공평한 시간 속에서 한 분야만 파고든 이의 경험적 지식은 훌륭하다. 그런 이들이 가지런히 베푼 설명과 해설, 그리고 새로 발굴하는 자료를 통해 몰랐던 과거의 사실을 더 선명한 해상도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과거인물의 이념이 무엇이고 오늘날 정치적으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가는 큰 관심이 없다. 그 인물이 소중히 생각했던 것, 즉 그의 본질적 생각을 문자로 톺아보는 것이 더 흥미롭다.


이래서 서예전시를 보러가면 모든 해설과 자구를 맞춰보느라 몇 시간이 걸리나 서서 읽는 책과 진배없어 큰 배움이 된다.


다음은 논어 자로 해당 구절 해석


자공문왈 향인개호지 하여

자공이 물었다. 동네사람들이 대부분 그를 좋아한다면 어떻습니까?


자왈 미가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옳지 않다.


향인개오지 하여

동네사람들이 대부분 그를 미워한다면 어떻습니까? 라고 묻자

 - 여기서 惡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이기에 악이 아니라 오로 읽어야한다


자왈 미가야 불여 향인지선자호기 기불선자오지

공자께서 답하시기를 옳지 않다. 동네 사람 중에 선한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고 그중 선하지 않은 사람이 그를 미워하는 것만 못하다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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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H-1비자 이슈로 난리다.


미국을 포함해 해외 취업시장이 막히고 경제가 나빠지자

한국으로 귀국해 일자리를 찾는 흐름은

역사 속에 몇 번 반복된 것 같아서

이 기회에 기억을 더듬고 생각을 다듬어봤다.


개인의 고통은 완전히 공감받지 못하지만

집단의 고통에서는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줍잖은 위로를 하거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사태의 면면을 분석적으로 파악하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조금 더 정교하게 분별해보자면

(1) 해외 상황이 나빠진 경우

(2) 우리 상황이 나빠진 경우

두 가지가 있다.


이 두 상황이 동시 발생할 때도 있었고 둘 중 하나인 경우도 있었다.

경제가 아니라 상황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정책문제에서 기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2010년 중반의 경우 미국내 고용은 회복세였으나 반이민정책의 H-1취업비자 쿼터 축소때문에 귀국했다.


그럼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겠다.


1. 1997년 IMF 외환위기 - (2)

 - (1)은 문제없었음 (특히 미국은 호황)

 - (2) 국내 금융위기 → 환율 폭등, 학비, 생활비 지원 중단, 기업 구조조정

 - 영미+유럽 모두 귀국. 특히 유럽 음악 예술 유학생 귀국. 상대적으로 미국 대학에서 보조금을 많이 받은 미국 석박사는 영향이 덜함.


2. 2001년 닷컴버블 붕괴와 911테러 - (1)+(2)

 - (1) 미국 IT, 벤처 붕괴, 테러 충격으로 외국인 취업환경 악화

 - (2) 국내 벤처 거품 붕괴, 고용시장 경색

 - 이때는 귀국자들 정착 어려워 영어교육으로 많이 빠짐. 양쪽 모두 불안정


3.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 대체적으로 (1) + 부분적으로 (2)

 - (1) 서브프라임모기지(허위부동산매물문제)로 글로벌 금융권 붕괴, 외국인 고용위축

 - (2) 한국도 충격은 받았으나 상대적으로 빠른 회복세

 - 이때 귀국자 일부는 오히려 한국이 낫다고 판단


4. 2017년 트럼프 1차 - (1)

 - (1) H-1B 비자 축소, 유학생 OPT(실습연수) 제한, 반이민 기조강화

 - (2)는 문제 없었음 해외 정책 충격이 주된 요인. 한국은 고용 호황 국면이었음

 - 아이비나와 잘 근무하다가 뺑뺑이 비자 추첨운이 없어서 귀국한 사례


5. 2020년 코로나 팬데믹 - (1)+(2)

 - (1) 팬데믹으로 취업 비자 이동 제한, 취업 제한 고용 불안

 - (2) 팬데믹으로 한국 고용시장도 위축, 대면 서비스 붕괴.

 - 글로벌 공급망 붕괴로 모두 영향 받음. 이중 타격.

 - 국내 대기업에 SKY가 아니라 아이비리그 출신도 지원


6. 2025년 트럼프 2차 - 대체적으로 (1) + 부분적으로 (2)

 - (1) 4와 같음. 반이민정책 재강화, 현재진행중 + 4와 다르게 보호무역 심화까지

 - (2)는 확정적이지 않으나 귀국자 받아줄 여력이 미비. 연준금리와 통화스와핑 문제보다 관세전쟁 충격파


이렇게 정리했을 때


순수 국내요인(2)은 1번 1997 IMF

순수 해외요인(1)은 4번 2017년 트럼프

다.


국내 해외 요인 중 둘 다 문제냐 둘 중 하나만 문제냐

어느 것이 더 강한지는 정량적으로 모르겠다.

귀국파동의 충격파는 이래나저래나 사람에게 전가되는 것 같고

결국 운으로 머물러 있느냐 깡으로 버티느냐 돌아와서 각자도생으로 잡을 다시 찾느냐의 문제는 있는 것 같은데


그저 한국거주민으로 생각해봤을 때 귀국자가 돌아와서 기여할 역할이 글로벌화되는 세계에서 점점 축소된다는 인상이다.


그 요인은 일차적으로 한국과 선진국의 격차가 줄어들어

과거 만큼 선진국에서 한국으로 내려오는 위치에너지 격차로 인한 이득이 줄어들었고

이차적으로 해외에서 얻을 수 있었던 지식정보가 메타, 스마트폰, 플랫폼의 발달로 인해 많이 대중에게 풀렸기 때문이다.


이제는 외국에 나가야만 하는 이유는 국내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영어교육이 아니라 다른 요인에서 찾아야만 한다.


P.S. 

1997년 IMF 외환위기 전후의 사례에 대해서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외국경제상황이 아니라 우리나라 경제상황이 안좋아졌던 것인데

외환위기로 인한 환율폭등, 구조조정 때문에 때문에 

잘 나가던 부모의 직장도 잃고 해외로 송금하는 돈에서 손실도 많아

어학연수생, 학부와 석사유학생 중 상당수가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귀국했었고

주재원도 귀국조치를 당했고 잔류자도 주재비가 대폭 삭감되었다.

특히 음악, 예술계 유학생들이 귀국할 수 밖에 없었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있다


한국경제 1997년 12월 31일 기사 링크

https://www.hankyung.com/article/1997123100561

(미국) "유학생들의 경우 수천명이 이미 학업을 포기하고 "철수"했거나 귀국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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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인스타에 아모레퍼시픽 피드가 내게 떴다. 마크 브래드포드의 편집된 인터뷰 릴스였다.


https://www.instagram.com/reel/DN5EJ5djhpT/


2017년에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 <문라이트>의 주인공이 생각나는 분이었다. gonna be, a spot on 같은 표현에서 현대미국식 영어의 특징이 보이고, own의 낮은모음시작점, 피치변화와 리듬감, abstration의 tion이 거의 -shn으로 느낄 정도로 생략화된 발음을 통해 공식 흑인(아프리카계 미국인)영어의 특징이 읽힌다. 흑인슬랭인 이보닉스는 아니다.


릴스를 본 김에 생각나서 마크 브래드포드 전 감상평을 이어쓴다. 그때 쓰고 싶었던 이 전시의 장점에 대해서다. 전시장에서 많이들 넓은 공간감이나 반짝이고 예쁜 조형사진을 찍느라 바빠 보였으나 사실 주목할만한 부분은 캡션의 한영설명이었다. 전시장의 외형적 아름다움보다 전시기획의 내면적 지향이 작품들을 단단히 떠받치고 있는 개념적 척추였기 때문이다. 설명을 꼼꼼히 읽어보지 않으면 피상적인 소비에 불과한 것인데 반짝이는 예술작품은 다른 전시장에 얼마든지 많다.


대개 대화가 이렇게 흘러갈 것 같다. 아모레 잘 해놨네 역시 대기업이 좋아 돈 벌고 봐야해 중국 화장품 시장 덕분이잖아 와 넓고 예쁘다 얘 여기 지난 번에는 민화했었잖아 그것도 좋았다니까 그럼 우리 밥 먹으러 갈까? 여기 아모레 지하도 뭐 좋은 거 많고 아이파크도 있고 용리단길도 있어.


이렇게 전시경험이 끝나기에는 인종-젠더-경제적 불평등-도시공간적 소외라는 4중의 차별과 가장 소외된 자의 가장 대범한 문제의식과 퀴어의 윤리학이 함의하는 바를 놓치기에 아쉽다. 좀 더 풍부한 경험을 위해서는 작품별로 제공된 캡션을 꼼꼼히 읽어봐야하는 일이다. 원래 전시회에서는 캡션을 자세히 읽어야 좋다. 서서 읽고 보는, 문학-예술-역사-사회과학을 모두 아우르는 고품격 예술 활동의 정수다.


그런데 캡션의 두 언어 설명을 보면 영어에서 한국어로 직역하는게 아니라 한영 모두 정합적으로 짜임새 있게 설명이 다듬어져있었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작품 설명 사진 2개에 주목할 부분을 하이라이트로 표시했다. 한국어에서 영어로 미번역한 부분, 추가한 부분 등이 보인다.



https://www.instagram.com/reel/DNaX9RGNo_O/?utm_source=ig_web_copy_link



인스타 마크 브래드포드 영상 옆에는 큐레이터의 전시 소개 영상도 있었다.


영국의 지식인과 상류층이 쓰는 RP(Received Pronuncation=표준발음)발음이 옅게 묻어난다.


이 큐레이터의 발음은 영국 상류층이 쓰는 BBC 영어 억양과 근접하면서 자연스럽다. t를 정확히, father의 a는 /ɑː/로 길게, 마지막 r은 생략하는(non-rhotic이라고 한다)특징이 있다.


나아가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movement에서 v 앞의 o를 늘리고 e는 거의 들리지 않아 뮤-브ㅁㄴ트처럼 들리고 activities가 미국식 액티비리가 아니라 아-ㄱ티비티로 들린다.


그보다 더 윗 서열의 왕족Posh accent를 굉장히 잘 쓰는 (내가 아는 범위에서) 유일한 한국인은 아리랑TV의 권주현 아나운서인데 한국인 중에는 최고지만 다소 연극적이고 과장된 부분이 있어서 전달이 중요한 TV뉴스의 톤앤매너와는 상충되는 부분이 있다. 말하자면 사극톤으로 뉴스진행을 한다랄까.


https://www.youtube.com/@kwonana


영화 <승부>의 이창호 아역은 목포에서 너무 짙은 전라도 억양을 쓰는데 이는 현지인들이 듣기에는 자연스럽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누구도 시험영어 청취성우가 하듯이 발음하지는 않으니까.


2010년대에 서강대생들이 만든 유학생 교포 활용 영어회화 플랫폼 스터디서치에서도 이런 RP 영국영어를 쓰는 사람이 있었다. 옥스포드에서 정치경제를 공부했다는 John.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isHttpsRedirect=true&blogId=studysearch&logNo=220922241021&categoryNo=22&proxyRefer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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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말에 태풍 19호 너구리가 규슈를 강타해 한반도에 많은 비를 뿌릴지 아니면 도쿄지역으로 올라가질 예측경로가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태풍 너구리의 영문표기가 Neoguri인 것이 눈에 띄였다.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은 자칫하면 신-구리, 새로운-구리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새로운'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접사로서 네오 말이다. <매트릭스>의 주인공 이름이기도 했던. 마지막 단어를 o로 바꾸어야 부드럽게 다른 단어와 연결할 수 있다. 칙칙폭폭 기차 차량을 연결하는 느낌이다. 독일어는 명사나열시 s를 넣는다. neo가 들어가는 단어는 예컨대 neolithic (신-석기, 리토스는 돌)같은게 있다. 이외에 중간에 o가 들어가는 그리스어 접사는 여러 개가 있는데 단어조합시 이런 시스템을 사용하는 건 한국어에서 한자를 쓰는 것과 비슷하다. 서양은 라틴그리스어, 동양은 한자가 있는 것. 뉴런 neuron도 연결어로서는 neuro-라고 바뀌며 이외에도 geo-(땅), hydro-(물), photo-(광), thermo-(열), bio-(생), sino-(중국), politico-(정치의), astro-(우주)가 생각ㅏㄴ다.


한국어를 표기하는 또 다른 방법인 맥퀸-라이샤워 방법을 따르자면 어를 eo가 아니라 ŏ로 쓸 수 있는데 모음 위에 뭐가 자꾸 붙는 방법은 쿼티 자판에서 번거로워서 잘 쓰이지 않는 것 같다. 터키어처럼 i에 점을 빼고 으라고 한다거나, 루마니아어 같이. 심지어 프랑스어도 갓모양 서컴플렉스(싷콩플렉스) 없애지 않았던가! 철자법 개정 덕분에 실업(chômage)가 없어졌다는 풍자 만평도 있었지


맥퀸은 UCLA 부교수(조기사망), 라이샤워는 하버드대 교수로 1936년에 한국어를 영어로 음차하기 위해 개발한 표기 시스템이다. 1591년생 프랑스 선교사 알렉상드르 드 로드가 베트남말 알파벳 표기체제 Quốc Ngữ를 개발한 후 400년간 정립된 것에 비하면 조선은 정말 세계사적 존재감이 없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였다. 

Neoguri 대신 Nŏguri

Seoul 대신 Sŏul


우리 눈에는 익숙하지 않으나 숙달되면 Sŏul T'ŭkpyŏlsi hanok chosa pogosŏ같은 말도 읽을 수 있겠다. 스탠포드에 있는 실제 사료다.


여러 경합과 조정과 우연을 거쳐서 모음 '어'의 영어표기는 eo로 굳어진 것 같다. 여전히 완벽한 시스템은 아니다. 모르는 사람은 누구나 이를 이오나 에오로 읽을 가능성도 있다. 제도와 역사가 정합적인 것 같아도 사실 진화처럼 무목적적 과정의 일부라는 점을 증명한다.


신-구리 아니고, 니오구리, 네오구리 아니고 '너'구리 라면에는 너구리가 들어가지 않는다. 다시마가 들어간다 .일본에서 우동으로 유명한 동네인 사누키 지역의 사누키 우동처럼 다시마를 넣어 국물맛을 낸 라면 레시피다. 이때 제품명에 반일정서상 일본어를 그대로 사용할 수 없어서 사를 타로 바꾸는 언어유희를 거쳐 타누키 라면 즉 너구리 라면으로 제품명을 정한 것이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농심의 아재개그다. 그리고 번식력이 뛰어난 너구리는 사누키 지역은 물론이거니와 일본 전역에 거주한다.



너구리하면 으레 지브리 스튜디오의 타카하타 이사오(高畑 勲) 감독의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1994)>이 떠오른다.


원제는 헤이세이 타누키 캇센 폼포코(平成/狸/合戦/ぽんぽこ)인데, 직역하면 <헤이세이년에 발생한 너구리 전쟁 둥둥>이다. 폼포코는 배 둥등 두드리는 의성어다. 으레 지브리 스튜디오의 간판 감독은 미야자키 하야오로 생각하지만 음지에는 타카하타 이사오도 있었다. 과작(적게 제작)이어서 잘 드러나지 않지만 아주 장기간 동안 제작된 그의 작품은 대부분 대작아니 태작이다.

액자구조와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추억은 방울방울(1994)>, 일반인 성우를 사용해 일쌍다반사를 그린 <이웃집 야마다군(1999)>, 우키요예풍의 일본설화를 바탕으로 한 <가구야공주 이야기(2013)>. 모든 영화의 작화 밀도가 있어서 아직도 선명히 기억나는 장면이 많다. 


오카지마 타에코가 기차에서 내려 다시 농가로 뛰어가는 장면이라든지 타케노코가 붓다와 함께 근두운을 타고 달나라로 간다든지 하는.


<추억은 방울방울>의 작화감독은 콘도 요시후미(近藤喜文)였는데 지브리 정신의 유일한 후계자로 인정받았던 이다. 그런 그가 애석하게도 <귀를 기울이면>만을 남기고 향년 47세에 너무 일찍 세상을 떴다. 지금 다시 보아도 그때 그시절에, 새천년도 전인 1995년에 EDM스러운 음악의 채택은 선구적이면서도 자연스럽다.작화연출로도 달리는 다리와 발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깜짝 놀랄 정도다. 그걸 일일이 그려 프레임상에서 자연스럽게 표현한다는 자체가 일품이다.


그의 사후 적당한 후계자가 없는 스튜디오에서 미야자키 아들 고로가 <게드 전기>를 말아먹었다고 생각한 미야자키 하야오는 어쩔 수 없이 상왕으로서 연장근무를 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게드전기>가 그렇게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는 한심하다고 생각했나보다. 


미야자키 감독의 선배였던 타카하시 이사오가 얼마 전 먼저 세상을 떠나자 그는 추도문에서 빵을 우걱우걱 먹는 파쿠상이라는 별명의 기원을 설명하며 친우를 잃은 슬픔으로 눈물을 흘렸다. 과작이지만 태작인 그의 작품에 아직도 감화를 받은 수많은 애니메이터들이 주술회전, 단다단, 귀칼 등으로 2D 애니업계를 이끌어가고 있다. 너구리를 닮은 그를 기억하며 너구리 태풍이 오기 전에 너구리라면 대신 neo(신)라면이나 먹어야겠다. (읭?) 인디밴드 "오늘 밤엔 너구리"를 들으면서. 가사에 따르면 밤에만 먹지 않으면 되니까


https://www.youtube.com/watch?v=Vdys9Q76B54&list=RDVdys9Q76B54&start_radio=1


오늘의 아무말 대잔치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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