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 말에 태풍 19호 너구리가 규슈를 강타해 한반도에 많은 비를 뿌릴지 아니면 도쿄지역으로 올라가질 예측경로가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태풍 너구리의 영문표기가 Neoguri인 것이 눈에 띄였다.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은 자칫하면 신-구리, 새로운-구리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새로운'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접사로서 네오 말이다. <매트릭스>의 주인공 이름이기도 했던. 마지막 단어를 o로 바꾸어야 부드럽게 다른 단어와 연결할 수 있다. 칙칙폭폭 기차 차량을 연결하는 느낌이다. 독일어는 명사나열시 s를 넣는다. neo가 들어가는 단어는 예컨대 neolithic (신-석기, 리토스는 돌)같은게 있다. 이외에 중간에 o가 들어가는 그리스어 접사는 여러 개가 있는데 단어조합시 이런 시스템을 사용하는 건 한국어에서 한자를 쓰는 것과 비슷하다. 서양은 라틴그리스어, 동양은 한자가 있는 것. 뉴런 neuron도 연결어로서는 neuro-라고 바뀌며 이외에도 geo-(땅), hydro-(물), photo-(광), thermo-(열), bio-(생), sino-(중국), politico-(정치의), astro-(우주)가 생각ㅏㄴ다.
한국어를 표기하는 또 다른 방법인 맥퀸-라이샤워 방법을 따르자면 어를 eo가 아니라 ŏ로 쓸 수 있는데 모음 위에 뭐가 자꾸 붙는 방법은 쿼티 자판에서 번거로워서 잘 쓰이지 않는 것 같다. 터키어처럼 i에 점을 빼고 으라고 한다거나, 루마니아어 같이. 심지어 프랑스어도 갓모양 서컴플렉스(싷콩플렉스) 없애지 않았던가! 철자법 개정 덕분에 실업(chômage)가 없어졌다는 풍자 만평도 있었지
맥퀸은 UCLA 부교수(조기사망), 라이샤워는 하버드대 교수로 1936년에 한국어를 영어로 음차하기 위해 개발한 표기 시스템이다. 1591년생 프랑스 선교사 알렉상드르 드 로드가 베트남말 알파벳 표기체제 Quốc Ngữ를 개발한 후 400년간 정립된 것에 비하면 조선은 정말 세계사적 존재감이 없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였다.

Neoguri 대신 Nŏguri
Seoul 대신 Sŏul
우리 눈에는 익숙하지 않으나 숙달되면 Sŏul T'ŭkpyŏlsi hanok chosa pogosŏ같은 말도 읽을 수 있겠다. 스탠포드에 있는 실제 사료다.
여러 경합과 조정과 우연을 거쳐서 모음 '어'의 영어표기는 eo로 굳어진 것 같다. 여전히 완벽한 시스템은 아니다. 모르는 사람은 누구나 이를 이오나 에오로 읽을 가능성도 있다. 제도와 역사가 정합적인 것 같아도 사실 진화처럼 무목적적 과정의 일부라는 점을 증명한다.
신-구리 아니고, 니오구리, 네오구리 아니고 '너'구리 라면에는 너구리가 들어가지 않는다. 다시마가 들어간다 .일본에서 우동으로 유명한 동네인 사누키 지역의 사누키 우동처럼 다시마를 넣어 국물맛을 낸 라면 레시피다. 이때 제품명에 반일정서상 일본어를 그대로 사용할 수 없어서 사를 타로 바꾸는 언어유희를 거쳐 타누키 라면 즉 너구리 라면으로 제품명을 정한 것이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농심의 아재개그다. 그리고 번식력이 뛰어난 너구리는 사누키 지역은 물론이거니와 일본 전역에 거주한다.
너구리하면 으레 지브리 스튜디오의 타카하타 이사오(高畑 勲) 감독의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1994)>이 떠오른다.

원제는 헤이세이 타누키 캇센 폼포코(平成/狸/合戦/ぽんぽこ)인데, 직역하면 <헤이세이년에 발생한 너구리 전쟁 둥둥>이다. 폼포코는 배 둥등 두드리는 의성어다. 으레 지브리 스튜디오의 간판 감독은 미야자키 하야오로 생각하지만 음지에는 타카하타 이사오도 있었다. 과작(적게 제작)이어서 잘 드러나지 않지만 아주 장기간 동안 제작된 그의 작품은 대부분 대작아니 태작이다.
액자구조와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추억은 방울방울(1994)>, 일반인 성우를 사용해 일쌍다반사를 그린 <이웃집 야마다군(1999)>, 우키요예풍의 일본설화를 바탕으로 한 <가구야공주 이야기(2013)>. 모든 영화의 작화 밀도가 있어서 아직도 선명히 기억나는 장면이 많다.
오카지마 타에코가 기차에서 내려 다시 농가로 뛰어가는 장면이라든지 타케노코가 붓다와 함께 근두운을 타고 달나라로 간다든지 하는.
<추억은 방울방울>의 작화감독은 콘도 요시후미(近藤喜文)였는데 지브리 정신의 유일한 후계자로 인정받았던 이다. 그런 그가 애석하게도 <귀를 기울이면>만을 남기고 향년 47세에 너무 일찍 세상을 떴다. 지금 다시 보아도 그때 그시절에, 새천년도 전인 1995년에 EDM스러운 음악의 채택은 선구적이면서도 자연스럽다.작화연출로도 달리는 다리와 발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깜짝 놀랄 정도다. 그걸 일일이 그려 프레임상에서 자연스럽게 표현한다는 자체가 일품이다.
그의 사후 적당한 후계자가 없는 스튜디오에서 미야자키 아들 고로가 <게드 전기>를 말아먹었다고 생각한 미야자키 하야오는 어쩔 수 없이 상왕으로서 연장근무를 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게드전기>가 그렇게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는 한심하다고 생각했나보다.
미야자키 감독의 선배였던 타카하시 이사오가 얼마 전 먼저 세상을 떠나자 그는 추도문에서 빵을 우걱우걱 먹는 파쿠상이라는 별명의 기원을 설명하며 친우를 잃은 슬픔으로 눈물을 흘렸다. 과작이지만 태작인 그의 작품에 아직도 감화를 받은 수많은 애니메이터들이 주술회전, 단다단, 귀칼 등으로 2D 애니업계를 이끌어가고 있다. 너구리를 닮은 그를 기억하며 너구리 태풍이 오기 전에 너구리라면 대신 neo(신)라면이나 먹어야겠다. (읭?) 인디밴드 "오늘 밤엔 너구리"를 들으면서. 가사에 따르면 밤에만 먹지 않으면 되니까
https://www.youtube.com/watch?v=Vdys9Q76B54&list=RDVdys9Q76B54&start_radio=1
오늘의 아무말 대잔치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