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철의 연금술사> 저자 아라카와 히로무의 홋카이도 농고 시절에 기반한 <은수저>는 문학으로 치면 자전적 소설에 속한다. 회고록 자서전 오토픽션 서간문학을 포함하는 삶-쓰기형식으로서 자서전적 문학의 한 갈래다.
1권 8화에는 룸메이트 니시카와(16세)가 거대한 트랙터를 자유자재로 몬다. 4화에서 4-5월 연휴 때 집에 가서 농사 도운다고 했던 친구다. 밭만 56헥타르라고 푸념하는데 주인공이 감이 안온다고하자 마도로스 한 척만큼이라고 한다. 56만제곱미터의 사유지 안에서는 면허가 필요 없어 어릴 때부터 트랙터를 몰며 자랐기에 자기가 다루는 기계에 해박하다
이것이 블루칼라에 먼저 온 노동 혁신의 일면이며
이제 화이트칼라에 다가오는 하급 지적노동을 자동화할 인공지능의 면모다
송길영의 경량문명에서 말한 것처럼 다중 AI 에이전트를 다루는 중견 변호사는 더이상 어쏘를 뽑지 않을 것이다.
농업은 워낙 일손이 부족했고 생물의 성장속도에 대응하느라, 노동자는 언어에 서툴러 그들의 이야기가 전해지지 못했다.
대개 몸을 쓰는 자들은 말이 많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주기 때문. 기계를 작동할 때 메뉴얼을 일일이 읽기보다 현장에서 선임을 보고 배운다. 수영도 강습 선생과 함께 실습면서 체득한다. 자전거 구기종목 악기 등등 모든 몸을 쓰는 일은 몸짓 하나하나를 언어로 익히기보다 눈과 감각으로 익힌다. 그리고 일과가 끝나면 피로에 지쳐서 잔다. 글로 남길 시간도 여유고 없다. 내일은 내일의 업무가 있다. 생물은 쉴 새 없을 정도로 돌봐줘야한다.
따라서 노동을 가볍게 해주고 일의 단계를 대폭 축약해 준 기계의 성과와 그 의미가 블루칼라로부터 화이트칼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이제 피라미드 짓던 시절 장정 50명의 힘을 내는 트랙터를 어린아이가 사용해 한 마을이 투입되었을 규모의 밭을 혼자서 갈듯 지식정보를 다루는 이도 이렇게 될 것이다.
더이상 데이터크리닝 해 줄 저임금 대학원생, 박봉의 경리직, 하청넘기던 광고대행사를 쓰지 않고 혼자서 다 해낼 것이다. 혹은 그런 자만 살아남을 것이다. 다들 그렇게 하므로 하지 못하면 무능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퇴계 이황은 이기이원론을 궁구하는 동시에 온갖 자잘한 사무행정을 진행했다. 과거 조선양반은 오늘날 중소기업사장 같아 아랫사람을 부려서 일을 시켜야했다. 장 담그고 제때 꼴 베고 종이와 먹을 수급하는 모든 일을 지시해야했다. 이런 인력경영이 점차 수월해지다가 (반)자동화된다.
그리하여 그동안 직장에 가짜노동이 얼마나 많았는지 업무가 얼마나 개판이고 중복진행되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가짜노동이란 실질적인 가치나 성과를 창출하지 못하는 의미 없는 헛짓거리다. 허례허식, 시간낭비, 겉보기에만 바쁜 척하는 서커스다. 실무자의 마음과 시간을 갉아먹는 무의미한 공회전이다. 불필요한 서류작업, 결정사항 없는 회의 의무 참석, 요식행위, 고과평가, 관료주의 전시행정 같은 생산성이나 성과와는 무관한 활동이 사라지기 시작할 것이다.
좋은 기계가 나오면 도입해서 쓰면 그만이듯 비슷하게 에이아이도 도입해서 쓰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