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엠 러브 - I am lov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고혹적이라고밖엔 말할 수 없는 가족 사진이 시선을 잡아 끈다. 그들은 바로 밀라노의 상류층 재벌가 레키 가문으로, 영화는 눈이 소담스럽게 내리는 한 겨울의 밀라노 정경을 비춰주면서 시작한다. 소복 소복 내리는 눈을 감상할 여유도 없이 레키가의 며느리인 엠마는 시아버지의 생일 파티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자 드디어 파티는 시작된다. 최근 병이 든 것을 알게 된 시아버지는 생일 축사로 근엄하게 " 나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 외친다. 의당 그가 내뱉을 만한 말이라고 생각했는지 파티 참석자들은 감격에 겨운 모습으로 박수를 친다. 생일 선물로 손녀에게 사진을 선물받은 시아버지는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림이니 그림을 그리라고 말한다. 행여 딸이 상처 받을까 염려가 된 엠마는 딸에게 멋진 사진이라고 연신 칭찬을 해준다. 하지만 그런 엠마의 마음이 딸에게 전달이 되었을지는 미지수, 죽지 않을 거라 선언한 시아버지는 그래도 켕기는 구석이 있었는지 이젠 자신의 후계자를 지명할 때가 왔다고 말하고, 남편 탄크레디와 아들 에도와도르가 지명한다. 안도하고 축하하는 분위기속에 파티는 하기애하게 이어지지만, 일찍 지쳐버린 엠마는 자신의 방으로 숨어 버린다. 이어 장면이 바뀐 여름, 시아버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러게 죽음과는 함부로 맞서는게 아니라고 하질 않는가.
 

러시아에서 이탈리아 재벌 가문으로 시집 온, 모든 여자들이 꿈꾸는 백마탄 왕자를 만난, 한마디로 땡 잡은 여자 엠마. 그녀의 삶은 완벽 그 자체로 보여진다. 남편에게 흠없이 외조하는 아내로, 세 아이를 잘 키워낸 엄마로, 시부모에게 인정받는 며느리이자 집안 살림을 완벽하게 조율하는 살림꾼으로써 말이다. 하지만 그런 외면을 유지하게 위해 그녀가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쏟는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결혼을 한 뒤로 한번도 고향에 가본적이 없다고 말하는 그녀는 그후로 이탈리아인이 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 노력이 어찌나 철저했던지 가족의 구심점이 된 그녀는 자연스럽기 그지없다. 아무도 그녀의 표정속에서 긴장감을 읽어내지 못하는 가운데, 우연히 발견한 딸의 메모는 그녀를 흔들어 놓는다. " 이 가족중에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건 에두와르도, 오빠뿐이야." 라고 말하는 딸은 자신이 레즈비언이라고 밝힌다. 딸의 고뇌를 짐작하면서도 서운한 마음을 감출 길 없는 엠마는 밀라노 시내를 하염없이 걸어다닌다. 
 

아들 에두와르도는 친구인 요리사 안토니오와 함께 레스토랑을 열 계획을 세운다. 친구의 요리를 극찬하면서 엄마에게 소개하는 에두와도르, 엠마는 그의 요리 열정에 잠시 시선을 빼앗긴다. 그가 목요일에 쉰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엠마는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갖게 된다. 예기치 않게도 둘의 만남은 겉잡을 수 없는 열정으로 발전하게 된다. 안토니오의 좁고 더러우며 초라하기 짝이 없는 방을 싫은 기색 없이 따라들어가는 엠마는 오랜만에 그녀 자신을 찾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이탈리아 인이 되기위한 노력이 자신에겐 너무 버거웠다는, 결코 남들에게 털어놓지 못했던 비밀을 안토니오에게 말하면서 자유를 느끼는 엠마... 머리를 자르고, 허름한 옷을 입고, 산을 올라 가는 등 평소 자신과 전혀 다른 모습에도 이질감 보다는 해방감과 행복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그녀는 자신이 사랑에 빠졌음을 알게 된다. 한편 남편은 자신이 물려받은 기업을 다국적 기업에 팔기로 결정하고, 이는 에도의 반발을 사게 된다. 비지니스를 위한 만찬 파티에서 요리를 담당하게 된 안토니오는 엠마에게서 배운 러시아식 생선 스프를 변형한 메뉴를 내놓는다. 이를 본 에도는 그간 의심해 왔던 것을 확신하면서 화를 내는데... 과연 엠마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참 리뷰를 길게 쓰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은, 이라고 한탄할만큼 줄거리가 없는 영화다. 간단하게 말하면--그리고 냉소적으로--한 부잣집 마나님의 불륜 이야기니 말이다. 대사도 별로 없고, 드라마틱한 전개도 별로 없는 탓에 어떻게 포인트를 잡아서 설명해야 좋을지 난감했다. 물론 이탈리아 장인의 한땀 한땀 자신감이 배여있던 화면들이었으니, 프레임 하나 하나 뜯어서 설명하려고 하면 못할 것도 없겠지만서도, 굳이 그렇게 해서 읽는 사람들을 질리게 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내가 싫어하는 불륜이란 소재에 , 별다르게 이야기할 줄거리도 없는 영화를 이렇게 장황하게 언급하는 이유는?

 

생각해 볼만한 진실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한 정신과 의사가 이렇게 말한걸 들은 기억이 난다. 불륜에 관한한 자신은 무어라 한마디로 말할 수 없다고 말이다. 한마디로 불륜을 저지른 당사자가 가해자라는 인식은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라는 것이다. 부부 사이의 문제는 당사자만이 아는 것이기에 다른 사람들이 뭐라 왈가불가 할 것이라 못 된단다. 특히 불륜에 관한 한...그렇다고 불륜이 잘하는 짓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고 단지 이 영화를 보면서 엠마의 불륜을 막장 불륜이라고 폄하할 수는 없었다. 불륜을 저지르면서도 너무도 당당한 엠마가, 그리고 불륜을 추궁하는 아들에게, 나를 믿어달라고 내 설명을 들으면 너도 이해할거야, 라고 말하는 그녀가 정말 이해가 됐기 때문이다. 그래, 에도라면 그녀를 이해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을지도 모르지만, 에도 같이 이해심 많은 착한 청년이라면 충분히 엄마를 이해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다만, 그럴 만한 시간이 없었던 것일뿐...

 

그렇다면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재벌가 귀족 마나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나는 이것을 "당신은 누구십니까?" 의 문제로 보았다. 러시아의 키티쉬는 이탈리아에서 엠마가 되었다. 애벌레에서 나비가 되는 것만큼이나 과격한 변신이다. 엠마는 그 대단한 레키 가문에 맞추기 위해 어찌나 노력을 했던지 이젠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한 개인으로써의 눈물겨운 노력은 하지만 단지 가문안의 일원으로써 조용히 있을때나 빛을 발한다. 숨소리 내지 않고 며느리로써, 아내로써, 엄마로써 그들이 바라는 상에 걸맞는 여인으로 서있을때나 말이다. 자신의 정체성과 주변 사람들이 기대하는 이미지 사이에서의 갈등은 엠마에게 피곤을 불러온다. 그녀는 딸의 메모에 적힌 "아무도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지 않는다." 는 말과 안토니오의 등장으로 흔들리게 된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맞춘 나를 만들어 가는 것이 결국 나를 행복하게 하지는 못한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던 엠마는 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리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인정해주는 사람을 향해 달려 간다. 과연 그녀의 결정을 잘못했다고 우리는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난 못한다고 본다.

 

내 생각엔 이렇다. 타인의 기대에 맞춰 5년 정도는 살 수 있다고... 하지만 10년을 넘어서서 그렇게 살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행복해질 순 없다. 왜냐면 자신이라는 것은 인생에서 결코 버려서는 안되는 최후이자 최선의 것이니 말이다. 자신을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데, 자신을 뺀 인생을 어떻게 유지해 나갈 수 있겠는가. 하여 엠마의 불륜은 내겐 불륜이라기 보다는 반란같아 보였다. 자신을 찾아가기 위한...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장면에서 남편이 한 말은 의미심장하다. " 넌 이제 존재하지 않아" 라는 선언 말이다. 절대 죽지 않겠다고 선언하던 시아버지에 못지 않는 거만한 말 아닌가. 어떻게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아마도 그것이 엠마의 가족내에서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아닐까까 싶었다. 그런 점이 엠마를 불행하게 했고 말이다. 이런 상황일진대, 과연 누가 감히 엠마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오히려 자신을 찾아가려는, 그리고 자신에게 솔직한 엠마가 대단해 보였다. 모든 것을 버리고서라도 사랑을 찾으려 하는 그녀의 심정이 비겁해 보이지 않았고 말이다. 하니, 사랑을 하는 사람들을 주의할 일이다. 과연 당신은 상대의 무엇을 보고 있는가라는 것을. 상대를 나에게 맞추려는 시도는 언제나 실패한다. 나를 상대에게 맞추려는 시도 역시 마찬가지일테고 말이다. 결국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고 받아줄 수 있는 관계가 가장 건강한 관계의 시작이 아닐까 한다. 평생 이어져야 하는 기본일 터이고...

 

추신 1-- 참 ,예술이란...이렇게 인생을 깔끔하게 이해하게 만드는 창이 되기도 한다. 아들 친구와의 불륜이라는 막장이라 할만한 소재를 가지고도, 이렇게 훌륭한 영화를 만들어 내다니, 놀랐다. 연기자들의 연기도 좋고, 배경도 눈이 시릴 정도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이야기 전개 흐름이 탁월하게 자연스럽다는 것이었다. 전혀 설득하거나 설명하는 논조가 아닌데도, 그냥 왜 엠마가 그렇게 행동하게 됐는지, 보고 있으면 이해가 됐다. 참 대단한 설득력 아닌가. 어떻게 그걸 그렇게 쉽게 해내는지 보는 내내 감탄하면서 봤다.

 

추신 2--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마지막에 엠마가 집으로 들어오는 표정을 보더니 냉큼 달려가 가방을 싸주던 가정부 이다의 모습이었다. 가방을 열심히 싸주다 엠마와 포옹을 하는 장면은 어찌나 짠하던지...  이다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엠마가 얼마나 힘들게 재벌가 사모님 노릇을 하고 있었는가 하는걸 말이다. 여자들의 진한 연대가 느껴지던 포옹,  난 그래서 여자들이 좋다.

 

추신 3--아이들 동요에 "당신은 누구십니까?" 라는 노래가 있다. 기억나실지 모르겠는데, 그 노래의 끝은 형용사로 끝맺게 되어 있다. 명사가 아니라... 그렇다. " 당신은 누구입니까?"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대답할 형용사가 하나 정도는 있으신지, 한번 되짚어 볼 일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이조부 2011-02-16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재미 있다가 난리던데 보셨네요 ㅎㅎㅎ

글에 덧붙이는글 원투뜨리가 흥미롭네요

영화를 꼭 봐야겠다고 결심하게 됫어요 ㅋㅋ

이네사 2011-02-20 18:52   좋아요 0 | URL
그래요? 재밌게 보셨음 좋겠네요. 뭐, 재미는 아니라도 워낙 잘 만든 영화라서, 보시면 후회하시진 않을 거여요. 이렇게 잘 만들기도 쉽지는 않거든요. 취향을 떠나서 말이죠.
 
고백 - Confessions
영화
평점 :
현재상영


 

 

 

중학교 종업식 날, 1학년 담임인 유코는 제멋대로인 아이들 사이를 누비면서 차분하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자신이 미혼모가 될 수밖엔 없었던 사정과 딸의 아버지가 에이즈 환자라는 것, 그리고 애지중지 키운 딸이 얼마전 사고사로 죽었다는 것을... 어른이 들어도 감당하기 힘든 이야기지임에도, 별 관심이 없는 아이들은 흘려 듣는다. 산만한 아이들을 상대로 지극히 담담하게 이야기해 나가던 유코는 " 내 딸을 죽인 사람은 우리 반에 있습니다. 이제 난 너희들의 선생님이 아니니 복수를 하려고요"라고 선언한다. 그제서야 엄청난 이야기라며 조용해진 아이들 앞에서 유코는 왜 자신이 스스로 복수를 하러 나서게 되었는지 설명해준다. 그녀의 딸을 풀장에 빠뜨려 죽게 만든 두 명은 13살 형사 미성년이기 때문에, 혐의가 입증된다고 해도 반성문 한 장으로 끝이 날 뿐이라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그녀를 분노하게 하는 것은 선선히 살인을 했다고 자백하면서도, 전혀 뉘우침이 없는 둘의 태도였다. "정 억울하면 경찰에 고발하던가"그것이 범죄를 주도한 슈야의 말이었고, 종범에 불과했지만 결과적으로 유코의 딸을 죽게 만든 장본인인 나오키의 엄마는 자신의 아들이 불쌍하다고 되뇌일 뿐이었다. " 생각 끝에 경찰에 맡기기 보단 내가 나서기로 했어요. " 라면서 유코는 조금전에 둘이 마신 우유에 에이즈에 감염된 피를 넣었노라고 말한다. 곧 반은 아비규환이 되어버리고...

 

봄 방학을 보낸 아이들은 새 담임과 함께 2학년을 시작한다. 하지만 중학생 다운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는 듯한 외면과는 달리 유코의 반은 안에서 곪고 있다. 자신이 에이즈에 걸린 줄 알고 광기에 휩싸인 나오키는 학교에 나오질 않고, 아무일도 없다는 듯 꼬박꼬발 출석하는 슈야를 아이들은 이지메한다. (처벌을) 또래에게 더 맡기는 것이 나았구나 싶게 그들은 잔혹하기만 하다. 영문을 모르는 순진한 새 담임은 전직 담임인 유코의 조언에 따라 아이들을 지도해 나간다. 그것이 유코의 계획중 일부라는 것은 알지 못한 채...어떻게 해서든 아들을 지키려 했던 나오키의 엄마는 아들의 광기가 도를 넘어서자 어쩔 줄을 몰라한다. 이지메를 당하던 슈야는 자신이 에이즈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실망한다. 보란듯이 에이즈에 걸려 엄마 아빠를 놀라게 할 생각이었는데 말이다. 그는 아무도 생명이 귀중하다고 자신에게 가르쳐 준 사람이 없었다는 말로 고백을 시작한다. 자신을 임신한 뒤 야망을 접어야 했던 엄마가 자신을 학대했었다는 것과 그럼에도 자신을 버린 엄마를 여전히 그리워 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외로웠다. 살의를 가지고 사람을 죽여대는 괴물이었지만, 내면은 아직도 엄마의 관심이 필요한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엄마의 관심을 받고 싶은 슈야는 이번에는 대량 학살을 하기로 마음 먹는데...

 

영화를 보는데 내내 마음이 착잡했다. 유코에게 딸은 모든 것이었다. 타인의 손가락질을 감내하면서까지 낳은 딸이니 말이다. 그녀가 바란 것은 그 딸과의 작은 행복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작은 소망과 행복을 아이들이 빼앗아가 버렸다. 그들은 살인이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르는 듯 보인다. 잘못했다고 미안해 하기는 커녕 장난이었다고 실실 거리니 말이다. 그래서 네가 어쩔건대? 라는 슈아의 눈빛에는 내가 그녀라도 돌았을 것이다. 한 사람에게 전부인 것을 빼앗으면 안 된다는 것을 그들은 모른다. 더군다나 그것이 생명인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지 않는가. 그녀의 분노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아이들의 고백을 들으니, 참 딱한건 그들도 마찬가지다. 어린 사이코 패스처럼 보이는 슈아는 실은 어린 시절 엄마의 학대가 낳은 괴물이다. 사랑이 필요한 나이에 그는 학대를 당하고 버림을 받았다. 그가 유코 선생의 상처입은 마음에 전혀 공감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걸 가르쳐 줘야할 따스한 엄마가 없었으니 말이다. 얼핏 보기엔 슈야의 행동이 지극히 철면피 같아 보이겠지만서도, 어린 시절 공감을 배우지 못하면 평생 그걸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도무지 그 살인의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 것일까?

 

14살 이하의 아동들은 살인을 저질러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 왜냐고? 아직 그들에게 판단능력이 어른만큼 완전하지 못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규정에 대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듯하다. 어리다고 봐 줘봤자, 도무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지 못하는 녀석들에게 죄값을 치르지 않게 하는건 옳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을 봐 준다고 무슨 소득이 있냐고 사람들은 말한다. 결국 싹수가 노란 놈은 커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 말에 일리가 있다는 점은 나도 인정한다. 하지만 과연 그 아이들을 괴물로 만든 것은 누구였을까? 그들을 키운 어른들이 아닐까. 아이들을 탓하기 전에 우린 아이들을 잘 키우고 있는가 배우고 반성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얼마전 tv에서 평범해 보이는 가정을 보여준 적이 있다. 그집 엄마가 어린 아들을 마치 인형인양 이리저리 흔들면서 패는걸 보고 나는 경악하고 말았다. 가정내 폭력은 일상적이고, 지속적이며, 그리고 은밀하게 자행된다는 점에서 끔찍하다. 가장 안전해야 할 가정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곪아 터지는지는 그 누가 알겠는가. 그 폭력을 멈추게 하지 못하는 한 , 나는 14살 이하 아동 처벌 금지법에 찬성표를 던질 수밖엔 없다. 아동 복지법이 우선인 것이다. 먼저 아이들을 제대로 대접한 후에, 그들의 죄를 물어도 우린 늦지 않을 거라 본다.

 

일본 사회의 병든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냉소적이고 섬뜩한 시선 역시 불편하긴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진짜 요즘 아이들은 저래? 갸우뚱했다. 우리 아이들이 요즘 저렇단 말이지. 과연 그럴까.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정말 큰일 일 것 같은데 말이다. 물론 잘 만든 영화긴 하다.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잘 풀어내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주연 배우의 연기도 좋고, 아이들의 연기를 뭐,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비록 그런 섬뜩한 연기를 잘 해내는걸 칭찬해줘야 할지 난감한 기분이었지만서도. 바라건데, 제발 저런것만은 우리나라가 일본을 따라가지 않았으면 한다. 오랜만에 보게 된 중학교 교실의 모습이 어찌나 심난하던지, 과연 우리의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도 되는 것일까 걱정이 되더라. 그리고 어른으로써, 난 잘하고 있나 어깨가 무거웠다. 마지막 결말을 보면서 통쾌하긴 했지만서도, 정의가 실현된 듯한 원초적인 감정을 느끼긴 했지만서도, 그럼에도 뭔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나로 모르겠다. 어쩌면 지금의 나로써는 풀어내기 힘든 문제가 아닐까 한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얄리얄리 2011-01-27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나토 가나에의 책을 이렇게 영화로 만들었군요.
말씀하신대로 참 어려운 것 같네요. 이제 알 건 다 아는 중학생들이니 그들의 범죄를 무조건 '철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리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해도 그런 모습의 이면에는 어른들과 사회의 책임이 무겁게 자리하고 있으니 말이에요.

저는 마지막 장면(책과 동일한 결말이라면)에서 통쾌함보다 '또 안타까운 인간사가 반복되겠구나'하는 생각을 했어요. 여러가지 일들로 키워온 마음 속의 괴물이 더 크게 자라는 또다른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요..

이네사 2011-01-27 16:28   좋아요 0 | URL
예, 미나토 가나에의 책이랍니다.

말씀하신대로 도돌이표가 될 뿐이죠. 근원적인 해결책은 아니니 말입니다.
일단 유코의 딸이 죽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회복될길 없는 상처가 시작된 것이지만서도 말여요.
통쾌하다고 햇던건, 대부분 이런 경우 냉가슴 속앓이만 하다 끝이 나잖아요. 그것과는 달리 행동에 나섰다는 자체가 대단하다고 여겨졌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런다고 해도, 뭐가 달라지겟나 싶긴 햇어요.
슈야가 과연 자신의 고통을 통해 유코의 고통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될까요?
전 회의적이라고 봤거든요. 거기서 좀 작가와는 차이가 나지요.
아마 그 녀석은 결코 유코의 아픔을 알지 못할 거다. 그게 아마 더 마음을 복잡하게 만든 이유였을 거여요.

다이조부 2011-02-13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말이 궁금한데 알 수 있을까요?


이네사 2011-02-15 01:13   좋아요 0 | URL
선생님인 유코가 딸을 죽인 범인들을 궁지로 몰아서 복수를 하죠.특히나 마지막 슈야는 친구들을 죽이려고 강단에 폭탄을 설치하는데 ,그걸 슈야의 친 엄마에게 가져다 줘서 가족을 잃는 고통을 맛보게 한다는 설정이여요. 솔직히 가장 욕을 얻어 먹어야 할 사람은 슈야의 엄마였기에--아들을 잘못 키웠으니까--시원한 복수라는 생각도 들지만서도, 슈야가 그것에 고통을 입을 거라는 작가의 생각엔 갸우뚱했어요.
과연 학대를 받고 자란 아이가 자신을 버린 엄마를 그리워 할까요?
그 엄마가 죽었다고 눈물이나 흘릴까요? 그게 의문이었죠. 정 궁금하시면 책을 보심도 좋을 듯...
책과는 어떻게 다를지 저도 모르거든요.^^

다이조부 2011-02-16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 저는 책 보다 영화의 결말이 궁금했어요 ^^


영화를 보다가 끝까지 못 봤거든요. 기분이 우울해져서요. 근데 이 영화가 원작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검색해
봤는데 무척 인기가 좋군요

아무튼 친절한 설명 고마워요 ㅎㅎㅎㅎ

이네사 2011-02-20 18:51   좋아요 0 | URL
아, 그 심정 이해합니다. 저도 나가고 싶었거든요. 영화관에서 본게 아니라 집에서 봤다면 끝까지 봤을까 의문이여요. 아마 저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원작은 인기가 좋지만 솔직히 영화를 보고서도 원작을 읽고픈 생각은 들지 않더군요. 원래 이쪽은 별로인가봐요.^^
 
오션스 - Oceans
영화
평점 :
개봉예정



                                    
 
포스팅을 하려 사진을 검색하다 식겁하고 말았다. 영화속 사진보다 진지희( 하이킥에서 빵꾸똥꾸라고 외치던 아이)와 정보석의 사진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걸 주객이 전도되었다고 하는 거겠지. 주인공은 뒷전인채 별 상관도 없는 것들이 앞에 나서서 설치는 것 말이다. 그것도 주인공들을 제대로 살렸으면 몰라, 제대로 망쳐 놓은 사람들이 나와서 웃고 있는데, 눈살이 저절로 찌프려진다. 내 이 세월을 살면서 별거 별거 다 본 사람이지만, 나레이터들이 영화를 말아먹는 모습은 처음 봤으니, 아연하다 못해 질겁했다. 도무지 어쩌다가 이런 실수를 총제적으로 남발하게 된 것인지, 이 모든 프로젝트를 실행하면서 아무도 태클을 거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 왜 아무도 말리지 않았을까? 영화에 관계한 사람들이 한 두 사람이 아니었을텐데, 이거 좀 이상하지 않나요? 영화를 살리기 보다는 망치는 듯한 분위기인데요? 라고 물어보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던 것인지 머리가 갸웃거려진다. 에궁...도무지 이걸 어떻게 아이들하고 보라고 만든 것인지 불쾌했다. 참나, 아이들 비위 맞추는게 뭐 그리 어렵다고 이렇게 엉망으로 망쳐 놓는지, 아이들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쓴 나레이션이 분명해 보이는 멘트들을 떨쳐 버리기 위해 머리를 두어번 흔들어 줄 수밖엔 없었다. 
  

                      
 
영화 제목이나 올린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영화의 주인공은 바다와 그 속에 사는 생물들이다. 지구의 70%를 차지한다는 바다, 그 속에서 살고 있는 다양한 생물체에 대해 한번 알아보자는 취지에서 만든 이 영화는 커다란 화면을 통해 바다 생물들을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에 보기전부터 무척 설렜다. 8천만 달러 제작비니, 4년간 공들여 만든 것이라는 홍보 역시 무언가 내가 보지 못한 것들을 보여 주겠지 라는 기대를 하게 했다. 그렇게 긴 세월동안 그만한 돈을 쳐들였으면 무언가 대단한 것이 나와야 하는건 당연한거 아니겠는가. 더군다나 주인공이 바다 아닌가? 그 수많은 생물들이 사는데, 과연 소개할 생물들이나 들려줄만한 이야기가 없다면 오히려 이상한 걸거라 생각했다. 그냥 아무데나 카메라만 들이대도, 무언가 재밌고 흥미진진한 것들이 나올거라고 난 단순하게 짐작해 버렸다. 알고보니 그런 기대는  환상에 불과했다. 아님 오해였거나... 그들이 들려주는 바다속 이야기는 내가 상상했던 것만큼 대단하지도, 놀랍지도, 흥미진진하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인간만한 크기의 해파리, 바다의 배트맨이라고 불린다는 담요 문어, 코끼리 코를 가진 퉁소 상어, 60킬로 그램이나 되는 아기를 애지중지하는 혹등고래, 물개를 잡아먹는 백상아리와 범고래, 기괴하기 이를데 없는 괴물 혹돔, 뒤뚱뒤뚱 펭귄과 날렵한 스핀 돌고래...아, 이 지구는 얼마나 환상적인가? 탄성이 절로 나오게 한다. 영화는 그렇게 그들의 멋진 모습들을 환상적인 영상을 통해 차례로 보여주고 있었다. 다만 문제라면 그 생물들이 이미 내가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들의 모습이 여전히 내 호기심을 자극하기는 했으나, 내셔널 지오그래픽과 동물의 세계 다큐 열혈 팬인 나에겐 그다지 새로운 것도, 그렇다고 깊이 있는 정보도 없었던 것이다.  확실히 이 영화는 어른들을 겨냥한 영화는 못 된다. 나레이터를 굳이 아역 스타인 진지희를 쓴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이 영화는 그녀 또래 아이들을 위한 영화다. 수족관이나 해양 도감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 아이들을 위한 영화 말이다. 그들이 아니라면 1시간 반이나 되는 시간동안 이미 익히 알고 있는 생물체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앉아 있을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딱히 새로운 이야기가 첨부된 것도 아니고, 단순 나열에 불과한 동물 다큐, 아마도 감독의 고민은 이걸 어떻게 아이들에게 맛깔나게 보여 주어야 할지가 되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잘 된 것 같지는 않다.  때론 생각이 너무 많은 것도 문제가 되는데, 바로 이 감독이 그에 해당하는 경우가 아닐까 싶었다. 
  

                  
 
그러니까, 감독 생각엔--시네마 천국에서 어른이 된 토토로 나오신 분이다.--바다의 다양한 생물들과 그들의 위기에 대해 제대로 알려 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생물의 멸종과 환경 문제에 대해 말이다. 물론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반발하게 되는건 경이 그 모양 그 꼴이 된 것이 아이들 탓이냐는 것이다. 쓰레기로 뒤덥힌 바다와 삭스핀이 되기 위해 꼬리만 잘린채 바다에 버려지는 상어를 보여주면서 나레이터인 진지희가 난리를 피워 대는데 기분이 확 상해 버렸다. 태어나 평생 삭스핀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아이들에게 죽어가는 상어를 보여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 상황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일을 한 적도 없고, 더군다나 상황을 바꿔 놓을 만한 힘도 없는 어린 아이들에게 현실을 보여준다는 것이 영 개운치 않았다. 아이들에게 그걸 보여준다고 삭스핀을 먹는 사람들의 수요가 줄어들리도 없는데 말이다. TV프로그램 한쪽에서는 삭스핀을 쩝쩝대며 먹는 어른들을 대단한 것인양 보여주는 이 마당에, 아이들에겐 그 요리의 재료인 상어가 죽는 장면을 보여 주는게 과연 옳은 것인지, 더 나아가 그게 효율적인 해법인지 의문이 들었다. 아이들이 미리 현실을 알면 커서 도움이 될 거라고? 웃기고 있네. 나는 뭐 그런 이야기를 어렸을 적부터 안 들은줄 아나? 우리가 과연 몰라서 이 지구를 이 모양 이 꼴로 만들고 있느냔 말이다. 왜 별로 한 것도 없는 아이들에게 죄책감과 위기 의식을 심어 주는지 불쾌했다. 결국 사태를 바꿔 놓는 사람들은 칼자루를 쥔 어른들이라는걸, 특히 힘을 가진 사람들의 몫이라는걸 아직도 모를리는 없을텐데 말이다. 
  


                 
 
죄없는 아이들에게 책임전가하는 것도 썩 내키지 않았지만, 약육강식의 동물세계를 피해자와 가해자의 논리로 보는 시선도 감독의 자질을 의심스럽게 했다. 동정심이 많다는 것 물론 인간으로썬 좋은 자질일지 모르나, 현실을 곡해하는건, 내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건 시야가 좁다는 뜻일 뿐이다. 적어도 동물학자들이라면 그런 시선에서는 자유롭지 않았을까 싶어, 해양학자들이 이 영화를 편집했더라면 좀 더 나은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 어떻게 풀만 뜯어먹고 이렇게 크게 자란다는지 신기하기만 한 듀공>
 
그런 감독의 자질문제보다 더 큰 문제는 나레이션이었다. 아마도 나레이션을 작성한 작가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아이들이니 그에 수준을 맞춰야 겠다고 생각한 듯 했다. 문제는 그들의 수준을 딱 하이킥에 나오는 진지희에게 맞춰 버린 것이다. 대충 짐작하시겠지만, 어찌나 저질에 짜증이 나던지, 정보석과 진지희의 멘트가 시작되려 할때마다 귀를 확 틀어 막고 싶었다. 푸른 바다의 신비로운 영상을 보면서 말소리 때문에 짜증을 내야 한다는게 너무 비참했다. 작가는 왜, 관객들의 수준이 딱 진지희 정도일거라 생각한 것일지 안스러웠다. 해양 생물들을 보겠다는 호기심을 가진 정도의 아이들이라면 적어도 진지하게 영화를 볼거라는게 그렇게 짐작이 안 되는 사안일까? 갈비타령에 질질 짜질 않나, 쓸데 없는 말로 감상을 해치질 않나, 공해 수준에 가까운 멘트들에 상처 받고, 식겁하고, 앞으로 어떤 멘트들로 이 영상에 먹칠을 하려는지 내내 불안한 심정으로 봐야만 했다. 그렇다보니 나오는데 좀 분한 심정이 들더라. 아니, 왜 왜 왜, 굳이 대중스타의 인기에 영합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일지. 그냥 차분한 바다의 영상을 보여줬더라면 감동을 받았을텐데 말이다. 나레이션이 필요하다고 느꼈다면 묵직하고 신뢰감 넘치는 배한성님의 목소리로도 충분했을텐데, 아쉽기만 했다. 과연 정보석과 진지희의 나레이션을 들으면서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재밌는건 고사하고, 짜증만 났으니 말이다. 
  




                      
 
결론적으로...
1. 이야기가 있는 재밌는 생물 다큐를 원하신다면 TV에서 보여주는 다큐를 보시길. 다양한 시선의 자잘한 이야기가 있는건 오히려 그런 다큐들이니 말이다.
2. 개략적인 바다 생물들에 대한 영상을 원하신다면 이 영화가 유용할 것이다. 다만 깊이 있는 정보를 기대하시진 마시길. 1시간 반 밖엔 안되는 시간안에 깊이 있는 정보까지 보여주려는건 아무래도 무리다.
3. 물론 커다란 화면으로 보는 바다 생물들을 환상적이었다. 하지만...실제로 보는 듯한 영상미를 기대하신다면 성에 안 차실 듯.  화면 크기가 크건 작건 간에 여전히 생물들에 대한 더 알고 싶은 욕구는 여전히 남는다.
4. 멘트들에 상처 받지 않으시려면...귀를 막고 영화를 볼 수는 없으니 그저 마음 단단히 먹고 보시라는 말밖엔 드릴게 없겠다. 집에서 본다면 소리를 제거하면 되겠지만 영화관에서 내 맘대로 소리를 소거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5. 부디 부탁건데...진지희가 이 나라의 아이들의 표본이고 기준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주셨음 좋겠다. 또 그래서도 안 되고. 우리 아이들은 그보단 훨씬 더 진지하고 착하다. 아이들을 괴물로 만들고는 박수를 치면서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난다. 아이들을 바보로 만드는게 그렇게 좋아? 그래서 우리의 미래가 어디 좋아지겠어? 한숨이 나온다. 제발 부탁이니 아이들을 무시하지 말아줬음 한다. 그들도 어른들과 똑같은 인간이니 말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10-08-03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희라는 아이의 목소리와 말의 내용, 말뽄새 그런 것 때문에 제대로 상처받았어요.ㅎㅎ
딸아이 하는 말이, 그냥 자막처리하고 아무 소리 없었더라면 좋았을 건데..그러대요.
그놈의 빵꾸똥꾸 때문에 허거덩~~ 아빠한테 하는 말버릇하며, 상어지느러미 잘릴 땐 왠 난데없는 오버까지..
고된 촬영끝에 만든 다큐라는데 완전 망쳤다싶더군요.
전, 북극의 눈물이 자꾸 생각났어요. 그 영화가 훨씬 좋았지요.^^

이네사 2010-08-04 22:40   좋아요 0 | URL
아,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마도 나레이션이 영화를 이렇게 말아먹는건 처음 보는 것 같아요.
실제로 이렇게 망쳐 놓기란 힘들잖아요. 대개는 실제보다 더 낫게 보이는데 정상인데 말이죠.
전 하이킥을 잘 안 봐서, 진지희가 그렇게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인줄 영화 보면서 알았답니다.
정말로 밉상이던데요. 그걸 잘 한다면서 웃는 어른들이 이해가 안 가더군요.
제가 보기엔 정신과 상담을 받아도 될만한 정신세계던데...

프레이야님의 따님 말처럼, 오히려 자막처리 했다면 훨씬 더 나았을 거여요.
전 다섯살짜리 조카랑 올케랑 봤는데, 조카가 자꾸 신경이 쓰이더군요.
게 나이 정도만 되도, 그냥 정보만 읽어 줘도 무리 없이 받아 들이는데 말여요.
에궁...하여간 수준을 못 맞춰도 그렇게 못 맞출 수는 없던 것 같아요.
그게 그렇게 어려운가...그냥 정보만 나열해도 상관없었을텐데...쩝;;;;;;
 
토이스토리 3 - Toy Story 3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한때 앤디와 함께 상상력의 나래를 펼치며 신나게 살았던 우디 일행은 훌쩍 커버린 앤디가 자신들과 놀아주지 않자 서운해 한다. 과거 행복했던 순간을 회상하면서 오늘도 내일도 앤디가 혹 자신들과 놀아주진 않을까 하는 기대로 살고 있던 우디 일행에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전해진다. 바로 앤디가 대학에 가게 됐다는 것, 방을 비우고 가야 하는 앤디는 우디 일행들을 처리하라는 엄마의 상화에 고민에 빠진다. 다락에 올려 놓을 생각으로 앤디가 장난감을 쓰레기 봉지에 담자 장난감들은 앤디가 자신들을 버렸다면서 난리가 난다. 우여곡절끝에 " 써니 사이드" 라는 놀이방에 가게 된 우디 일행들은 그곳이 장난감에겐 천국과 같은 곳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장난감을 원하는 아이들이 매년 새로 들어오는 곳이니 말이다. 앤디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버즈 일행들은 자신들은 거기에 남겠다고 선언을 한다. 우디는 그건 오해라면서 앤디는 우릴 버릴 생각이 아니었다고 말해보지만 이미 한껏 삐진 버즈 일행들의 마음은 돌아서지 않는데....
 

        

                 <써이 사이드 놀이방에 오게 된 우디와 버즈 일행들의 모습>
 


                                                 


                                                       <불안해 하는 버즈 일행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딸기향의 베어 곰와 장난감 친구들>
 


<써이 사이드를 소개하기 위해 친히 내려온 미스터 켄, 그의 등장으로 바비와의 로맨스 전선에 불꽃이 튄다.>
 

                                                        
 
   <랏소 베어의 지휘하에 써니 사이드를 둘러 보는 우디 일행들의 모습, 그들은 이곳은 천국이라면서 감탄을 금치 못한다. 현실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완벽한 환경에 다들 정신을 차리지 못하지만, 충직한 우디만은 그래도 앤디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버즈등을 설득하는데 실패한 우디는  버니라는 여자아이의 집에 가게 된다. 그곳에서 버니의 장난감을 만난 우디는 딸기곰 랏소의 정체와 써니 사이드의 실체를 듣게 된다. 랏소의 독재체제속에 장난감들이 박해를 받고 있으며, 탈출한 장난감마저 전무하다는 소리를 듣게 된 우디는 친구들을 구하러 가기로 마음 먹는다.
 

               
 우디가 랏소의 정체를 밝히고 있을 무렵, 써니 사이드의 현실을 알게 된 버즈 일행들은 도망치기로 마음 먹는다. 하지만 도망은 커녕 버즈만 포로로 잡혀 쇄뇌 당하고 만다. 초기 설정모드화 당하는 바람에 과거 친구들을 깡그리 잊어 버린 버즈는 랏소의 감시견 역활을 충실하게 해내는데...
                                                   
   
써이 사이드에 침입한 우디는 어떻게 친구를 빼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그를 지켜보던 장난감 전화는 그에게 난공불락의 써니 사이드 경비 체계에 대해 알려 준다. 그의 조언을 받은 우디는 계획을 짜기 시작하고, 그날 밤 장난감 대 탈주가 시작된다. 과연 우디 일행들은 감옥같은 써니 사이드에게 탈출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기억을 잃어버린 버즈를 되돌릴 방법은 ? 랏소를 피해 달아나던 우즈 일행들은 하필이면 그와 함께 쓰레기 하치장으로 향하게 되는데.... 우즈와 그 일당들의 모험은 과연 어떻게 끝이 날 것인가? 궁금하신 분은 영화를 보시길....
 

 
  < 컴퓨터로 지도를 써니 사이드로 가는 길을 검색 중인 우디, 그를 도와주고 있는 녀석들이 바로 버니의 장난감들이다. >
 
다양한 캐릭터의 향연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영화였다. 우직한 우디, 가공할 힘을 지니긴 했지만 어딘지 단순 무식해 보이는 버즈, 용감한 제시, 가공할 공룡 렉터의 모습을 하고는 있지만 알고보면 소심하고 순진한 렉스, 엉뚱하고 기발한 미스터& 미세스 포테터 헤드, 그들의 입양아로 중요한 때에 한 건 해 주시는 초록 외계인 삼총사, 버림받은 기억때문에 무시무시한 독재자로 변신하게 된 딸기향 베어 랏소, 그리고 왜 자신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주지 않느냐고 항변하는 패셔니스타 켄과 그의 천생연분 바비까지...장난감들이 종횡무진 차례로 등장하자 그들을 보느라 좀처럼 지루하기 어려웠었다. 특히 겉 멋 들어 느끼하기 그지 없는 켄에게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된 것이나, 머리가 비어 보인다는 편견에도 똑소리나게 현실에 대처하는 모습이 대견하던 바비와 켄과의 로맨스, 그리고 스페인어가 그렇게도 섹시한 언어인지 새삼 깨닫게 해준 버즈 스페인 버전엔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다만, 아쉬움이라면 초반 대학에 가야 하는 앤디를 설명하는데 지나치고 많은 시간을 허비한 점이었다. 앤디를 비롯한 인간들의 모습이 살짝 어색해서 그 시간이 더 길게 느껴졌는가는 모르겠지만, 앤디와의 추억을 회상하는 씬까지 좀 지루했다. 게다가 마지막 장면은 어떻게 보면 감동적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감동을 강요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별로였다. 아마도 내게 어릴적 장난감에 대한 추억이나 집착이 없어서 더 그런게 아닐까 싶지만서도. 어쨌거나, 픽사에서 장난감들의 결말을 제대로 지어주긴 했다는 인상이다. 결국, 장난감이란 아이들과 함께 놀때가 행복한 것 아니겠는가.
 
만화 영화가 아이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토이 스토리는 아이 영화라기 보다는 아이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어른들을 위한 영화가 아닐까 싶었다. 아이들이 보기엔 다소 버거운 장면들이 종종 등장하니 말이다.--이때 아이란 초등학교 입학 전을 말함.--영화를 보면서 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올해 <드래곤 길들이기>를 보지 않았다면 이 영화에 더 점수를 주지 않았을까 하고. 둘이 경쟁사의 만화 영화들이다 보니 아무래도 비교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솔직히 그런 비교를 위해 보러 간 것도 있었고 말이다. 결론만 말하자면 <토이 스토리>가 <드래곤 길들이기>에 비해 전반적으로 참신성이 부족하단 인상이다. 설득조라는 것도, 종종 회상 장면이 지루하게 늘어지는 것도 별로인데다, 처음 나오는 애니메이션인 <밤과 낮>도 그다지 재밌지 못했다. 다행히도 초반을 넘어가면서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이 종횡무진 활약하며 영화를 살리고 있었지만, 그들마저 없었다면 앙꼬 빠진 단팥빵처럼 밋밋하기 그지 없었을 것이다. 3D로 만들었다고 하나 굳이 입체로 만들 필요가 없어 보이던 내용도 그렇다. 이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는데, 정말로 3D는 날라다니는 장면 외엔 쓸모가 없는게 아닌지 싶다. 한마디로 <드래곤 길들이기>는 영화 전체를 다시 보고 싶은 만화였다면, <토이 스토리>는 몇몇 장면만 되풀이 해서 보고 싶은 영화였다고나 할까. 앞으로 픽사의 분발을 기대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드래곤 길들이기 - How to Train Your Dragon
영화
평점 :
현재상영





 
요기 위에 어리버리해 보이는 녀석이 바이킹 족장(스토이크)의 아들인 히컵(딸국질)이다. 그가 사는 바이킹 마을은 척박한 환경만으론 살기 심심하지 않겠냐는 듯 각종 드래곤이 날아와 설쳐대는 곳이다. 드래곤의 노략으로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해  바이킹들이  전쟁에 돌입한 지도 수 대 째, 오늘도 내일도 바이킹들은 드래곤과의 사투에 온 몸을 던진다. 그런 바이킹들을 이끌고 가는 족장 스토이크는 십대시절 머리로 바위를 쪼갰다는 전력을 가진 늠름한 전사다. 용맹스런 아버지와 달리 가냘른 팔다리에 사고형인 히컵을 바이킹족 사람들은 적잖이 성가셔한다. 드래곤이 마을을 습격할때마다 사람들은 그에게 제발 얌전히 숨어 있으라고 애원을 하지만, 비록 그가 허약하다한들 그래도 족장의 아들이 아닌가. 언젠가는 무훈을 세울 꿈에 부풀어 있는 그를 막기란 불가능하다. 어느때처럼 드래곤이 마을을 습격하던 날 밤, 혼란스런 틈을 타 히컵은 자신이 개발한 무기를 미스테리한 드래곤인 "나잇 퓨리어스"에게 발사 한다. 드래곤이 떨어지는 것을 본 그는 명중이 되었다고 좋아하나, 사람들이 그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
 

 

아무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자 실망한 히컵은 드래곤을 찾아 숲 속으로 들어간다. 마침내 드래곤의 흔적을 발견한 그는 드디어 드래곤을 죽일 기회가 자신에게 왔다면서 흥분한다. 하지만 흥분도 잠시, 칼을 쥐고 드래곤에게 다가간 그는 자신이 드래곤을 죽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충격을 받는다. 드래곤에게 투스리스라고 이름 붙인 히컵은 칼을 버린 채 그에게 다가선다. 경계를 하던 투스리스도 점차 그에게 마음을 열면서 둘만의 우정이 시작된다. 드래곤과 바이킹족간의 대대로 이어온 적의가 깨져 버린 것이다.  

한편 심약한 아들에게 실망한 히컵의 아버지는 드래곤 원정에 떠나기 전 아들을 드래곤 사관 학교에 집어 넣는다. 또래들과 함께 드래곤 처치하기 훈련에 돌입한 히컵은 당연히 왕따 신세다. 훈련 교관인 대장간 아저씨로부터 드래곤은 날지 못하면 죽은 목숨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 히컵은 왜 그토록이나 재빠른 나이트 퓨리어스(=투스리스)가 섬을 벗어나지 못했는지 알게 된다. 추락하면서 투스리스의 한쪽 꼬리가 망가진 것이었다. 평소 만들기를 좋아하던 그는 투스리스의 잘라진 꼬리에 대응한 장치를 만들기 시작한다. 투스리스의 등에 올라타 이것 저것 다양한 시도를 해보던 히컵은 마침내 투스리스에게 완벽한 비행을 할 수 있는 꼬리를 만들어 준다.

 


 
 
친구과 사귀다 보면 얻는 것도 있는 법, 투스리스와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히컵은 드래곤의 습성에 대해 알아가게 된다. " 우리가 그들을 전혀 잘못 알고 있었어!" 그는 소리친다. 투스리스를 통해 그간 편견과 공포로 인해 닫혀 있던 그의 눈이 떠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깨달음은 곧장 드래곤 물리치기(?)에 응용 된다. 사납기만 하던 드래곤이 그 앞에 서면 순한 애완견처럼 변하는것을 보게 된 바이킹들은 히컵을 영웅으로 우러러본다. 별 소득없이 원정에서 돌아온 히컵의 아버지는 아들이 그간 왕따에서 영웅이 되었다는 소식에 뛸듯이 기뻐한다. 드래곤에게 쫓기지만 않아도 좋겠을 아들이 바이킹 최고의 전사가 되었다니 안 그렇겠는가. 아버지의 기대를 업고 최고의 전사가 되기 위한 마지막 관문에 나선 히컵은 드래곤을 죽이지 못하는 자신을 잘 알기에 괴롭기만 하다.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느냐, 아니면 진실을 밝히느냐의 기로에 선 그는 모두에게 드래곤의 실체를 알려 주기로 마음 먹는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오히려 그를 도와주려 달려온 친구 투스리스를 곤경에 처하게 만든다. 투스리스를 앞세워 드래곤의 본거지로 쳐들어가는 아버지를 무기력하게 바라보던 히컵에게 여자친구 아스트리드가 다가 오는데...
 






 
 


 
아, 아쉽다. 멋진 투스리스, 다시 말해 나잇 푸리어스의 사진을 올려 보려 했는데, 마땅한걸 찾지 못했다. 이런 사진으로 보는 투스리스는 오해하기 딱 알맞는데 말이지. 사진으로만 보면 징그러울 뿐이니, 실제로 영화속에서 보면 귀엽고 깜찍하며 성깔있는데다 뚜렷한 개성의 영혼이 있는 캐릭터라는 것이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마땅히 설득할 길이 없으니 답답할 뿐이다. 하지만 믿어달라. 진짜로 투스리스는 사랑스럽다. 아무리 비호감으로 영화관에 들어간 사람이라도 일단 영화를 보게 되면 그에게 호감을 갖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만화영화의 진화는 어디까지일까? 라는 물음에 한계는 없나보다,라는 대답을 하게 했던 작품이다. 대충 그렇고 그런 만화영화일테지 하고 봤는데, 한시간 반 동안 숨 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몰입해서 봤다. 때로는 웃고, 때로는 심각하게 바라보고, 때로는 주인공들의 고공 비행에 아찔해 하고 또 때로는 안타까워 하면서... 역시나 3D의 위력은 대단했다. 스토리가 워낙 탄탄하기 때문에 평면으로 봤다해도 재밌긴 했었겠지만 입체적으로 보니 확실히 몰입지수가 올라간다. 마치 눈 앞에서 잡힐 것 같은 입체감의 바이킹족들, 만져질 듯 둔탁한 느낌이 나던 바이킹들의 머릿결, 공간에서 움직이는 듯한 주인공들의 움직임에다  마치 내가 날고 있는 듯 느껴지던 고공비행의 아찔함까지...히컵이 드래곤에게 손을 내밀때는 내가 그 손을 잡아도 될 것 같이 가깝게 느껴졌다. 3D의 매력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하지만 단지 3D라는 이유만으로 이 영화가 재밌었던 것은 아니었다.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너무 뚜렷한 나머지 마치 살아있는 사람들인 듯 생생했던 것이나 구성의 완벽함, 딱 제자리에 들어간 듯했던 재치 있는 유머에 지루할 틈을 없이 자유 자재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능수능란함등이 이야기 자체를 흥미진진하게 만들고 있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캐릭터의 성공이 이 영화를 빛나게 해주고 있었다. 한없이 사랑하나 기대치에 미치는 못하는 아들이 고민인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려 노력하는 아들의 갈등은 어쩜 진부한 것 일 수도 있다.하지만 좋은 스토리 텔러가 그렇듯,  작가는 닳고 닳은 소재를 가지고도 새롭고 신선하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고 있었다. 처음 보는 갈등인 듯, 처음 보는 부자간의 사랑이자, 오해이자 ,화해인듯 말이다. 거기에 인간과 말 못하는 투스리스 사이의 아름다운 우정이나 아들을 못미더워 하는 족장을 다독이는 대장간 아저씨의 우직함, 탁월한 비행실력으로 미스테리로 분류되었다는 나잇 푸리어스의 실체, 소심한 히컵에 어울리는 여걸 전사 아스트리드, 히컵의 다양한 10대 친구들까지...적어도 심심할까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는 영화였다. 만화 영화를 좋아하는 조카를 위해 미리 본 영화인데--쉽게 말해 난 검열 위원!--예상밖으로 그만 내가 먼저 홀딱 반해 버렸다. 나중에 조카에게 보여주면 어떤 반응을 보일려는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녀석, 보나마나 좋아서 소리를 질러 대겠지? 아이들에게 뭘 보여줄까 고민이신 부모님들에게 희소식일 듯. 물론 어른들에게도 괜찮은 오락 거리가 될 터이고 말이다. 비오는 날 추척추척 비를 맞아가면서 가서 본 영화였는데, 너무 재밌게 봐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만 하루 동안만이라도 기분이 좋고 싶으신 분들에게 강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