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득이 - Pu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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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회장을 빠져 나오면서 '도대체 누가 이 영화를 싫어할 수 있을까? 그럴만큼 성격 나쁜 사람이 있을까? ' 했는데, 역시나, 까페에 올라오는 회원 리뷰 100% 가 추천이란다.( 우리 까페에선 추천해요, 별로에요, 괜찮아요. 등으로 등급을 매긴다. ) 그럼 그렇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뭐, 별로 놀랍지도 않군, 이라면서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지만 마음속  깊숙이 뿌듯해 지는건 어쩔 수 없었다. 맞다. 오랜만에 응원해 주고 싶은 영화를 만났다. 이유는 일단, 누가 봐도 사랑스런 영화다. 주연도, 조연도, 그리고 풀어가는 이야기 자체도...(영화와) 아무 관련도 없는 내가 막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정도로. 거기다 보고 나면 기분까지 좋아진다. 아무리 우울한 기분으로 영화관에 들어갔다 해도, 나오면서까지 울상이긴 힘들 것이다.  "완벽하게 불쌍한 놈"인 완득이가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 우울함을 떠올릴 시간이 없을테니 말이다. 그게 아니라도 많이 웃다보면 기분 좋아지는건 당연한 거 아니겠는가. 어쨌든지 놀랐다. 우리나라도 성장 영화를 이렇게 감동적으로 찍을 수 있다는 것에.  내심 기대를 하긴 했지만 이 정도로 잘 찍을 줄은 몰랐다. 완벽했다. 우리나라 영화의 고질이라 여겨지는 감정 과잉 없이, 부지런히 해야 할 말만 하고 있었는데도, 그 자체로 웃기고 감동적이고 공감가고 그랬다. 그냥 객석에 앉아서는, 웃다, 폭소하다, 짠해지다, 정신없이 웃다, 정신 놓고 웃다를 반복하다 왔는데, 어찌나 롤러코스터 같던지 앞의 감정을 추스릴 새도 없었다. 인상 쓰고 집중해서 볼 필요가 전혀 없는, 이렇게 친절하고 사랑스런 영화를 보고나서 어긋장을 놓기란 아무래도 힘들지 않겠는가? 아무리 내가 꼬이고 꼬인 상태라도 해도 말이다. 하여간 칭찬할 거리가 너무 많아서 비판할 것이 있다고 해도 쓸 공간이 없을 듯한 영화, 완득이의 해부에 들어가 보기로 하자.

  



            

 

 

 

 

 

<기도중인 완득이, 똥주를 죽여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하게 부탁하고 있는 중...>

 

< 완벽하게 불쌍한 놈, 완득이> 꼽추인 아버지에 지능이 낮은 삼촌과 함께 옥탑 방에 살고 있는 완득이, 주관적으로 보건 객관적으로보건 빈틈없이 불우한 환경인 그에게 걱정 거리가 하나 더 생겼다. 바로 옆 집 옥탑 방에 담임 선생인 똥주가 이사를 온 것! 하늘 아래 가장 가까운 이웃이 바로 나의 담임이라니, 그것도 오지랖 넓기론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똥주라니... 완득이가 서글픈 목소리로 불평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하여 똥주의 하해와 같은 관심(?)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고픈  완득이는 교회에서 열심히 기도를 한다. 제발 똥주를 죽여 달라고. 내 소원 들어주심 똥주보다 헌금 만원 더 내겠다고. 딱히 하나님을 믿는건 아니지만, 어쩌겠는가? 그나마 기댈만한 구석이 하나님밖엔 없는데...하지만 그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실 생각이 없어 보이는 하나님때문에 오늘도 내일도 완득이의 기도는 계속되고, 결국 완득이의 엄마를 찾았다는 똥주의 말에 그는 발끈하고 만다. '도대체 나도 본 적이 없는 내 엄마를 당신이 어떻게 안다는 거야? 그리고 내가 언제 엄마가 필요하대? 이제와서? ' 반발을 해보지만 요지부동인 똥주는 엄마를 한번 만나 보라고 한다. 분기탱천한 완득이는 하나님을 찾아가 협박을 한다. 이번에 기도 안 들어 주심 다음엔 절로 가겠다고. 과연 그의 당돌한 마지노선 협박이 이젠 먹힐 것인가? 이 정도면 하나님도 조금은 쫄것 같긴 한데 말이다.

 



                    

 

 

 

 

 

 

                      완득이의 기도 대상인 그 똥주선생  되시겠다.

<쌔꺄는 기본이고 막말이 표준어인 완득이의 담임 이동주>는 이름도 정의로운 사회 선생님이다. 거친 입과 거침 없는 행동으로 우리 학생들에게 현실을 적나라하게 까발려 주시는 그, 덕분에 아이들은 최소한 환상에 절지 않은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지만, 그걸 알 정도로 시야가 넓지 않은 학생들에게 똥주란 괴짜 선생님일 뿐이다. 걸은 입 못지 않은 드넓은 오지랖으로 본인의 개성을 더하고 있는 똥주 선생은 혹시나 상상력이 부족한 완득이가 고민할까 저어되어, 손수 "얌마"라는 호를 선사한다. 이렇게 호까지 지어준 "얌먀 도완득" 이를 그가 어떻게 가만히 두고 보겠는가? 호시탐탐 완득이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받아온 햇반을 나눠(?) 먹고, 완득이가 알고 싶지도 않다는 엄마를 찾아준다. 어디 그뿐인가? 만나고 싶지 않다는 완득이 몰래 완득이 엄마에게 자신의 집을 알려 준다. 완득이가 자신의 집 앞에 산다는 말과 함께...그렇게 완득이가 질색하는 일만 줄기차게 해주고 있는 똥주 선생, 자신이 죽을 짓만 골라 하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한 채 모든 일을 소신있게 밀어 붙이는 그. 과연 그의 진심은 통할 것인가? 도를 넘어 보이는 그의 행동뒤에 숨겨진 따스한 정에 삐딱한 완득이마저 마음의 문을 열고 마는데...

 

원작도 영리함을 따지자면 만만찮았는데, 영화는 그 영리함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 시킨 느낌이다. 원작의 기발함과 휴머니즘을 영화만의 상상력까지 더해서 자유자재로 보여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내용을 다 알고 보는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으니, 말 다했다. 그만큼 볼 거리가 많았는 뜻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좋은 점들이 너무 많아서 일일히 기억해 내기도 버겁다. 선뜻 떠오르는 몇가지만 일단 꼽아보자면 첫째, 배우들의 연기가 좋았다. 주연이건 조연이건 간에 연기가 이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없다. 소설 속 완득이보다 더 완득이 같던 유 아인이나, 똥주 선생의 완벽한 복사판처럼 보였던 김윤식님, 영화가 시작되자 마자 나를 웃겼던 앞 집 아저씨 김상호님, 외국인 엄마의 그늘진 현실을 실감나게 연기하시던 완득이 엄마, 보통은 멍때리고 있지만 춤이 시작되면 지골로가 되는 삼촌과 이 세상 누구보다 완득이를 자랑스러워 하는 꼽추 아버지, 그리고 꼬박꼬박 완득이를 자매님이라고 부르는 핫산과 완득이를 만득이라고 부르는 관장님까지...그들이 티격태격하면서 만들어 가는 이야기엔 정이 있었다. 그건 아마도 보신 분만이 이해하실 듯...

 

둘째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균형잡힌 시선이었다. 장애인 아빠과 정신 지체 삼촌, 가난, 가난한 나라에서 시집온 외국인 엄마, 시장통에서 장사를 하는 장돌뱅이등...완득이에게 줄줄이 붙어있는 연관어다. 이렇게 완벽하게 불쌍하기도 힘들거라고 말하는 완득이의 자조는 틀리지 않다. 부끄러운가? 당연히 부끄럽다. 메뉴라곤 라면이 전부인 혼자 챙겨 먹는 저녁이, 홀로 잠이 들어야 하는 밤이, 구호품인 햇반을 챙겨가라는 담임의 성화가, 무엇보다 남들과 다르다는 현실이 뼈아프게 부끄럽다. 아무리 내가 부끄럽지 않다고 주문을 걸어봤자, 소용이 없다. 사회가 착한 나를 다시 나쁜 맘 먹게 해주는건 시간문제다. 이 영화의 장점은 그런 완득이의 현실을 아름답다고 포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지 이해해 달라고 말한다. 그들도 단지 인간이라는 것을.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는, 먹고 살기 위해 노력하는, 가족이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 이해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사람이 있다면 똥주 선생님이다. 그는 말한다. 가난한게 부끄러운게 아니라 굶어 죽는게 부끄러운 거라고. 살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라고 말하는 똥주 선생. 그는 동정이 아니라 이해를 통해 완득이를 설득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것만으로도 아마 완득이는 충분히 설득당했을 것이다. 알고보면 현실에서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니 말이다. 최소한의 현실을 바라보게 하는 것,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납득한다. 그것이 동화속에 나오는 아름다운 성이 아니라도 말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여기에 모인 사람들이 다 사랑스럽게 보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마음속으로 응원하게 되리니...

세째는 모르던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이 좋았다. 완득이와 똥주와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소리에 민감한  앞 집 아저씨와의 에피소드는 영화가 진행되어 감에 따라 그 감칠 맛을 더했다. 결국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한가지 잣대로만 사람들을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했다. 무엇보다 인간은 부딪쳐 보지 않으면 실체를 알기 어렵다는 것도...  하여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쩜 그를 알아간다는 것과 동의어일지도 모른다. 그외 완득이와 그의 매니저 애인, 그 둘을 벤치마케팅하던 천하의 똥주 선생, 완득이에겐 호랑이지만 완득이 애인에겐 다소곳한 고양이인 관장 선생님, 처음 보는 엄마에게 라면을 권하는 완득이와, 자기 가족에 대한 기억만은 잊지 않고 있던 완득이 엄마의 처연함등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그렇게 소소한 것이라는 사실은 놀랍지 않은가. 우리는 과연 언제부터 타인에 대한 관심을 놓고 살게 되는 것일지 반성이 됐다. 아니, 반성이라기 보단 자괴감이란게 더 정확한 것이겠지만서도.

 

네째는 이름을 불러 주는 것에 대한 중요성이다. 그가 내 이름을 불러 주었을때 내 인생을 꼬이기 (?) 시작했다고...완득이는 너스레를 떨지만서도, 이 영화만큼 이름의 중요성이 부각된 영화도 없지 싶다. 똥주는 줄기차게 "얌마 도완득!"을 불러 제킨다. 늘 그늘진 한켠 구석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살고 있던 완득이는 똥주의 호령에 누군가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청소년기엔 그렇다.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빗나가지 않는다. 누군가 자신을 봐준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이유가 되니 말이다. 하여 똥주의 완득이 타령이 실은 "관심" 의 표현이며, 비뚤어지고 싶은 마음 한가득인 완득이를 달래주는 명약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게 어떻게 비춰지건 간에, 진심은 통하게 마련인거 아니겠는가. 거기에 오랜만에 나타나 엄마 노릇을 하려니, 자격지심에 손발이 오그라드는 완득이 엄마의 입을 떨어지게 하는 것도 완득이의 한마디다. "제 어머니여요" 라는... 그 말은 곧 완득이 엄마의 한마디로 이어진다. " 제 남편이여요." 서로가 서로의 자리를 인정해주는 단어, 이름...아마도 잃어버리기전에는 그 중요성을 알기 힘들겠지. 그렇게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찾아가려는 노력과 불러 주려는 용기, 그리고 뒤늦게 나마 이름값을 하려 애쓰는 어른들의 후회가 있던 영화, 감동적이었다. 하여간 이런 영화를 보면서 미소를 짓지 않기란 어려울 것이다. 다들 엄마 미소를 지으면서 나왔다고 하던데, 빈말이 아니다. 정말로 흐믓해지니 말이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잘 만들어진 달동네 환타지라고 하던데, 굳이 그렇게 보자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이런 달동네 환타지가 있기라도 했던가 묻고 싶다. 잘 만들어졌건 아니건 간에 말이다. 한껏 비아냥 거리면 말해보면 어른들을 위한 동화가 맞긴 하지만서도,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지 싶다. 완득이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는 것, 똥주 선생님에겐 감사 인사를 올리고 싶다는 것과 그 이웃들과 만난다면 눈인사 정도는 하고 싶다는 것, 그리고 영화를 보기 전보다는 보고 난 후, 훨씬 더 마음이 푸근해 졌다는 것 말이다. 영화 한 편을 보면서 도대체 이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더 이상을 바란다면 그건 지나친 욕심이 아닐런지... 하여간 이런 저런 말 필요없이 한번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일단 웃긴다. 행복해진다. 보고 나서도 다시 한번 보고 싶어진다. 다만, 약간의 휴우증을 예상하셔야 할지도... 이 영화를 보고 났더니만, 다른 영화가 당최 땡기질 않는다. 아무래도 올해는 이 영화를 끝으로 마감해야 할 듯 싶다.

 

<추신--네영카 시사회를 통해 본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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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좋다 2011-11-13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앞 자동차 극장에서 이상하게 기울어진 제일 앞에서 앞유리에 얼굴을 붙이고 와이프는 반대로 누워야 보이는데 불편한 자리였는데도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뭐라 표현하지 못하는 감동을 너무 잘 써주셨습니다. 짝짝짝

이네사 2011-11-15 07:21   좋아요 0 | URL
에휴, 칭찬 감사드립니다. 저도 맨 앞 오른쪽 구석자리 배치 받고는 투덜투덜 댔었는데, <밥이 좋다>님도 만만찮으셨네요. 자리에 대한 불평이 생각나지 않을만큼 재밌는 영화였죠? 책을 인상적으로 봐서, 잘못 찍었으면 어쩌나 내심 걱정했는데, 너무 잘 찍어줘서 고맙더라구요.
덕분에, 완득이나 똥주샘같은 분들에 대한 인식이 좀 달라 졌음 싶네요.
전 개인적으로, 학교 다닐때 딱 똥주 같은 샘이 있었거든요. "요즘 그런 선생이 어딨나..."라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서 참 나는 복이 많은 아이였구나 합니다. "있는데..." 라고 말 할 수 있으니 말여요.^^
그나저나 영화가 잘 되서 다행이여요. 제가 밀면 흥행이 잘 안 되길래, 설마 이것도 했거든요.
다행히 모든 분들이 좋아해주시니, 저도 왠지 으쓱으쓱 하네요.
아~~~ 오핸 마시길...전 이 영화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답니다. ㅋㅋㅋ
 
북촌방향 - The Day He Arr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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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조금은 촌스럽게 들리는 < 북촌방향> 이다. 영어 제목을 어떻게 했으려나 했더니 " The Day He Arrives" 란다. 나름 의미심장하게 잘 지은 것 같다. 그가 도착한 그 날을 기점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영화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서울 북촌에 그가 도착한 그 시간부터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도록 하자.

 

대구에서 교수를 하고 있는 유감독(유준상 분)은 오랜만에 나들이겸 서울에 온다. 딱 선배인 형만 (김상중 분)만나고 가겠다고, 그냥 조용히 며칠 처박혀 있다 갈거라고 중얼대는 그, 애써 다짐을 하는걸 보니 예전엔 그가 그렇지 않았으며 이번에도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단 짐작을 하게 한다. 아니다 다를까, 그의 결심은 애초부터 일찌감치 틀어져 버린다. 만나려던 형은 핸드폰을 꺼놔 연락이 되질 않고, 별로 반갑지 않은 후배는 길거리에서 알아 보고 반가워 한다. 시간을 때우려 주점에서 낮술을 하고 있던 그는 영화과 학생들을 동석을 하게 된다. 자신의 영화와 거취에 대한 이런 저런 어색한 대화가 오간 뒤 거나하게 취한 그는 옛 애인(김 보경 분)을 찾아간다. 2년만에 찾아온 그를 냉대하던 그녀는 그와 잠자리를 하고 난 뒤 다시 잘 될 거라는 희망에 부푼다. 물론 그건 그녀의 동상이몽이기에 그는 애매한 말만 남긴 채 --행복해야 해~~~! --눈썹 휘날리게 도망친다. 만에 하나 그녀가 정신을 차려 진실을 캐물을 시, 빠져나갈 말을 생각해 내야 하는 상황이 귀찮기 때문이다. 

드디어 형을 만난 그는 형이 자주 만난다는 보람씨(송선미 역) 와 함께 "소설" 이라는 술집으로 향한다. 미모의 여교수인 보람씨는 유감독에게 호감을 표하면서 이것저것 물어댄다. 유감독과의 관계에서 새로울게 하나도 없는 형은 그녀의 호기심이 마뜩잖다. 일상이 되버리면 주저앉아 버릴 흥분이니 말이다. 하지만 감독을 할 정도면 남들과 다른 무언가 있을 거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는 보람씨는 그가 그저 신기할 뿐이다. 언제나 당신을 주시하겠다는 보람씨의 주사에 유감독은 고맙다고 해야 하는건지 기분이 나쁘다고 해야 하는건지 난감하다. 한편 "소설 " 술집 주인을 본 유감독은 깜짝 놀란다. 그녀가 오늘 아침 헤어진 옛 애인과 닮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하지라고 고민하던 그는 점차 그녀에게 끌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렇게 조용하게 지내다 가겠다는 그의 서울 나들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소란스러워 진다. 반갑지 않은 후배와는 할 말도 떨어졌는데 자꾸 부딪히고, 함께 영화를 찍었던 선배에게선 이기적이라는 말을 듣고 만다. 이지적으로 보이던 보람씨가 집 나간 개때문에 펑펑 우는 가운데, 그런 보람씨를 달래는 형을 보면서 실소하던 그는 "소설 " 술집 주인에게 남자 친구가 여럿이며, 술집 안에 방이 있다는 말에 귀가 번쩍하고 트이는데...

 


유감독의 서울 3박 4일 나들이를 그린 것으로, 거시적으로건 미시적으로건 줄곧 " 반복되어지는 "일상이 인상적인 영화였다.  영화를 보는데, 언뜻 <Groundhog Day: 사랑의 블랙홀>이 연상되었다. 전혀 다른 뉘앙스를 담고 있긴 하지만 반복되는 삶을 사는 주인공을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말이다. 다만 사랑의 블랙홀은 마법에 의해 매일이 반복된다는 설정이라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아무런 마법 없이도 반복되어진다는게  다르다면 다르려나? 오히려 그래서 더 현실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소름이 끼치도록 말이다.

 

그렇다. 유감독, 그는 이번엔 좀 다른 뭔가가 있으려나 기대를 안고 서울로 올라왔다. 하지만, 그들과의 만남은 언제나처럼 뻔하다. 형과의 만남은 오래된 사이니 그렇다고 해도, 새로운 인연마저도 설렘을 지나치기도 전에 식상함과 지루함으로 끝나 버리는건 너무했다. 조심스럽게 건네지는 어색한 대화들 속에서 당신은 누구인가요?를 고민하기 보단 "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보이나요?"를 외치는 관계이다 보니 하루를 보내건 이틀을 보내건 그들과의 관계에서 진전이 없긴 마찬가지다. 일상의 고착화가 전부고, 어느새 내려야 할 종점이다. 그렇다보니 서울에서의 사흘동안 유감독 주위를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스치고 다니지만 다들 피상적이다. 그 어떤 것도 그의 일상이나 영혼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어쩌면 그에겐 그만의 아우라가 있어서 다른 관계를 맺는 것을 방해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타인의 의지마저 바꾸는 아우라의 힘을 그러게 얕잡아 보면 안 된다니까. 그 덕분에 그에게 달려 드는 여자들과의 관계 역시 한결같이 똑같이 끝난다.  2년전에 만난 여자건 어제 만난 여자건 다를게 하나도 없다. 그녀들이 그에게 가지는 환상이나, 그가 그녀들에게 날리는 마지막 이별의 멘트마저도. 거시적으로 되돌이표 인생을 살 수 밖에 없는 힘이 이런 것이로구나, 교본을 보는 듯 했다. 참 나... 고작 " 행복해야 해..." 라는 말로 관계를 정리할 수도 있다는걸 이 영화를 보면서 알게 됐는데, 다른건 몰라도 그점에서만은 이 남자의 독창성을 알아줘야 하지 싶다.

 

그렇게 존재의 진지한 소통이나 깊은 공감이 전무하다 보니, 무수히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절간에 사는 스님보다 고립되어 보이던 사람이 주인공인 유감독이었다.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지긴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보여지지 않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여기서 재밌는 사실은 그것이 바로 우리네 일상의 숨겨진 모습이라는 것이다. 다른 것을 꿈꾸지만 언제나 제자리인, 그날이 그날인 삶, 타인들 속에서 오히려 희미해져가는 것이 바로 우리네 모습이니 말이다. 여기서 드는 의문은 이것이다. 과연 그의, 아니면 우리들의 일상의 저주를 풀 마법의 주문은 존재하지 않은 것일까? 우리는 영원히 그 일상의 저주속에 살아야 하는 존재인 것일까? <사랑의 블랙혹>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마법을 풀 열쇠를 찾아낸다. 당연하다. 그 영환 보는 모두가 행복하라고 만든 로맨틱 코미디니 말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런 배려는 바라지 않는 것이 좋다. 현실을 배반하고 싶지 않은 성향이 뚜렷해 보이는 감독은 자신이 찾지 못한 마법을 우리에게 하사할 생각이 없어 보이니 말이다. 뭐, 행복하지 않으면 또 어떻겠는가? 적어도 사기가 아니라는 것에 안도하는 것도 나쁘진 않지 싶다. 그 열쇠를 찾는 것이 너도 나도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위안이 될지도 모르고 말이다.

 

추신1- 아무리 봐도 주인공 유감독은 홍 상수 감독 자신을 투영해 만든 캐릭터가 아닐까 싶던데, 그래서인지 주인공에 본인이 직접 출연을 했다면 더 설득력 있지 않을까 싶었다. 다음엔 연기자로 출연해 보심도...

 

추신2--타인들의 대화를 엿듣는 생경함? 이랄까 가소로움을 이 영화를 보면서 느꼈는데, 그게 의도적인 건지 아니면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인지는 모르겠다. 영화가 삶보다 더 고상해서도 예뻐서도 미화되서도 안 된다는게 감독의 생각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렇게 직설적인 대화를 엿듣게 하는게 이 감독만의 스타일인 것 같긴 하다. 하여간 드디어 나도 봤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네영카 초대로 본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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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크라운 - Larry Crow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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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보나, 옆으로 보나, 뒷태를 보나, 걷는 걸음걸이만 봐도 " 성실함 " 그 자체라는 포스를 팍팍 풍겨 주시는 래리 크라운은 대학 졸업장이 없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해고된다. 전처에게 이혼 위자료를 주느라 빚을 지고 있던 래리에게 백수란 곧 집마저 잃을 위기에 처했다는 뜻이다. 당장 돈이 필요한 그는 크라운에 E가 붙는다고 설명하면서 이력서를 여기저기 돌려 대지만, 새 직장을 구하는 것이 이 불경기에 쉬울리 없다. 여지껏 사회생활 잘 해왔구만, 이 모든 것이 그 놈의 대학 졸업장 때문이란 말인가? 낙담한 그에게 이웃은 대학 강좌를 들어볼 것은 권한다. 이에 솔깃해진 그는 난생처음 대학에 발을 들여놓고, 그 특유의 성실함으로 학창생활을 시작한다.

 



 

전문대학 수강신청서를 이웃에게서 받아들기 전까지 대학이란  래리에게 그완 상관없는 미지의 영역이였다.



                                    

 인생을 바꿀만한 강좌라는 학장의 조언에 스피치 강의에 등록한 래리, 진짜 그의 인생은 변화될 수 있는 것일까?

 

자신이 가르치는 것이 학생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겠는지 모르겠다면서 교육에 별 열정이 없는 머시 테이노 교수(줄리아 로버츠 분)는 이번 학기 수강생이 겨우 10명밖엔 되지 않자 기분이 상한다. 더군다나 그 수강생들이라는게 산만하기 이를데 없는 일단의 오합지졸 무리들, 그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길에 한심함이 묻어난다.  학기 첫 날부터 기운 빠지는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간 그녀는 포르노 삼매경에 빠져 있는 남편과 말다툼을 벌인다. 어디서고 웃을 일이 없는 고단한 일상, 그녀는 칵테일 한 잔으로 불행을 이겨보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암담한 현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한편 테이노 교수의 스피치 수업과 경제학을 수강하게 된 래리는 신이 난다. 돈 먹는 하마인 승용차 대신 스쿠터를 몰기로 한 래리는 탈리아라는 여학생을 알게 된다. 스쿠터를 몬다는 이유로 래리를 같은 무리에 넣어준 틸리아는 점차 그를 변화시켜 나간다. 틸리아 덕분에 갑갑한 자신의 일상을 조금씩 변화시켜 가던 래리는 남편과 싸운 뒤 버스 정류장에 떨어져 있는 테이노 교수를 보게 된다. 까칠하게 래리를 밀어내던 테이노는 하는 수 없이 래리의 스쿠터 뒤에 타게 된다. 과연 둘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아~~~~ 아이 엄마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멋진 몸매의 그녀, 너무 완벽해서 어쩐지 현실감 없어주신 줄리아 로버츠 되시겠다.

 

아, 톰 행크스가 그새 많이 늙으셨구나 싶어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 없었다. 그럼에도 전직 포레스트 검프 답게 온 몸으로 성실함과 신사다움을 구현해 주시는 톰, 한물 갔다고 하기엔 아직은 이르다. 물론 앞으로 이런 로맨틱 코미디 물에 주연을 할 수 있을까는 의문이지만서도, 그럼에도 그만의 포스가 어디 가겠는가? 쉽게 간과해버릴 수 있는 개성은 아니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가 마냥 좋다는 뜻은 아니었다. 배우의 매력만으로는 메울 수 없는 것들이 분명 존재하니 말이다.

 

우선, 이 영화는 미스 캐스팅이 아닐까 싶었다. 주연 배우가 줄리아가 아니라면, 은행 직원이 톰 행크스의 실제 아내가 아니라면, 톰의 이웃이 세드릭 더 엔터테이너가 아니라면, 한층 더 재밌는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싶었던 것이다. 줄리아는 불행한 알콜중독 여교수를 하기엔 너무 완벽해 보인다. 도무지 저런 여자가 어떻게 저렇게 한심한 작자와 결혼 생활을 하는지도 이해가 안 가고, 부부라는 둘이 나누는 대화도 어색했다. 진짜 부부가 아니라 연기하는 가공의 부부라는 티가 팍팍 나더라. 그것도 아주 열심히 연기를 하는 티가. 애처로울 정도로 말이다. 게다가 아직까진 줄리아 로버츠의 미소가 매력적이라고는 하나, 이 역에는 어딘지 맞지 않아 보였다. 줄리아가 연기하는 교수가 그녀처럼 완벽한 몸매의 쭉쭉 빵빵이 아니라, 현실감이 느껴지는 친근한 배우를 썼더라면 더 그럴 듯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둘의 로맨스가 가공이 아니라 진짜처럼 느껴졌을 거다. 악착같이 서로를 원하는 진정성이 이보단 잘 느껴졌을테니까. 톰과 줄리아는 너무 잘 아는 사람들끼리 영화를 찍어서 그런가, 긴장감도 없는게, 그저 하던대로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촬영에 임한 것은 아닐까 싶다. 적어도 배역에 대해 고민할 필요는 없었을테니 말이다. 갑작스럽게 사랑이 샘솟았다고 주장하는 두 사람은 아무리 봐도 연인보단 친구 같았기에 , 중년의 로맨스라고는 하지만 짜릿한 맛이 없었다. 그렇다고 코미디에 치중한 영화도 아니니,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영화가 되버린게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아무리 감독이 톰 행크스라지만, 그의 아내가 반드시 출연했어야 했나? 치장에 돈이 꽤 들었을듯한 완벽한 매무새로 리타 윌슨이 나와 은행 직원을 연기하는데, 민망했다. 차라리 진짜 은행 직원처럼 조금은 흐트러진 모습으로 나왔더라면 훨씬 더 현실감 있어 보였을텐데... 아마도 남편이 하는 일이니 도움이 되고자 했던 모양인데, 그게 그렇게 도움이 된 것 같진 않다. 그러게 어떤 때는 모른척 하는게 최선일때도 있다니까. 줄거리는 초반엔 한없이 답답하던데, 중반을 넘어가면서는 그래도 그럭저럭 볼 만했다. 간간히 웃음이 터지기도 했지만서도, 절대 폭소 수준은 아니고. 어찌된게 줄리아가 강의하는 교실이 주가 되어야 하는데, 그보단 경제학 강의실이 더 편하게 느껴졌다. 별 기대를 하지 않고 봐서인가는 모르겠지만서도... 줄리아와 학생들 간에 갑작스럽게 화학 반응이 생긴다는 것 역시 조금 난데없긴 했지만,그럼에도 기말고사때 톰이 하는 스피치는 감동적이었다. 톰 행크스만이 할 수 있는 연설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부족한 것은? 처절한 현실감이 아니었을까? 요즘은 드라마 조차도 이렇게 느슨하게 찍지는 않는데 말이다. 시대 착오라고나 할까. 톰 행크스가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연기를 하고 익숙한 이야기를 감독한 듯 한데, 어딘지 과거의 냄새가 난다. 한물 간 트릭을 보는 듯 했다고나 할까. 착한 영화라고 해서 마냥 좋은건 아니니 말이다. 그럼에도, 톰 행크스를 오랫만에 맘껏 볼 수 있어 기분 좋았던 영화였다. 아마도 그를 이렇게 맘껏 볼 수 있는 영화는 이젠 더 이상 나오기 힘들지 않을까 한다. 한 시대를 풍미한 톰 행크스라는 배우의 시대가 이렇게 가고 있다. 뭐, 그다지 나쁘진 않은 것 같다. 아마 그건 그도 마찬가지 아닐런지...

 

   http://cafe.naver.com/movie02  < 네영카 이벤트 시사회를 통해 본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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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왕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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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상영



마포와 서대문 경찰서는 관할권 다툼에 실적 전쟁까지 불붙어 신경전이 대단하다. 언제나 아웅다웅인 두 경찰서 간의 싸움은 일단 마포의 승리. 그곳엔 황구렁이라고 불리는 천재 모사꾼 황재성( 박중훈 역)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지략 때문에 다 잡은 범인을 눈앞에서 놓쳐대던 서대문 경찰서에 신입 팀장 정의찬(이선균 역)이 들어온다. 나름 경찰 대학 출신이라고는 하나, 어리버리 덜 떨어진 티가 보는 즉시 줄줄 흐르는 그에게 동료들은 그다지 기대를 걸지 않는다. 원래 나쁜 예감은 왠만하면 틀리지 않는 법! 정의찬은 그들의 예상대로 우연히 잡은 날치기 범을 고스란히 마포 경찰서에 강탈당해줌으로써, 자신이 허당 종결자임을 만방에 증명한다. 

 

억울해하며 펄펄 뛰던 그는 그 사건때문에 3천만원이 날라갔다는 서장의 한마디에 눈이 뒤집힌다. 올해의 체포왕이 되면 포상금을 준다는데, 그 상금 액수가 3천이라는 것이다. 마침 속도위반으로 결혼을 해야하는 처지라 꼭 그 3천이 꼭 필요했던 그는 귀가 번쩍 트인다. 분노에 복수심에 절박함까지, 체포왕이 되어야만 하는 3삼자를 골고루 갖춘 정의찬은 이제 본격적으로 체포 전쟁에 나서리라 선언한다. 그리고 자신이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 거라는 것을 보여주는 의미에서 연쇄 살인범(?) 고 박사를 마포에 건네준다.

 

최근 실종된 여인들의 이력을 줄줄이 외면서 다 내가 죽였다고 선언하는 고박사, 누가 봐도 상태가 정상인지 의심해봐야 하는 상황임에도 실적에 눈이 먼 마포 사람들은 횡재했다고 쾌재를 부른다. 시체를 묻었다던 뒷산을 파헤치다 고 박사의 실체를 알게 된 마포서 형사들은 뜻밖에 자살한 시신을 발견하게 되면서 일은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 된다. 자살한 여인이 최근 "마포 발바리"에게 성폭행을 당했으며, 그 사건 이후 몹시 괴로워하다 자살에 이르게 되었다는 사실이 알려 지면서 전국은 왜 그런 놈을 잡지 않냐고 원성이 자자하게 된다. 경찰 총장으로부터 마포 발바리를 잡으면 실적 점수를 왕창 준다는 말에 솔깃해진 두 경찰서는 내 꺼야를 외치다 결국 합동으로 사건을 해결하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단 문제는 2주안에 해결하라는 것,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고, 한 사건을 두고 아웅다웅 하던 두 서 사람을이 한 곳에 모였으니 이 아니 소란스럽겠는가? 조화롭게 사건을 해결하라는 총장의 다짐은 애초에 물건너 간듯 보이는데...

 

살림을 차리면 뭐하나? 중립 지역에 합동 수사 본부를 차린 두 팀은 사진도 따로 찍을 정도로 여전히 앙숙이다. 합동이란 단어의 뜻에 걸맞게도 (?) 자신들이 알게 된 새로운 정보를 상대방에게 최대 기밀로 보안을 유지하던 두 팀은 여기 저기 주변을 파헤지면서도 딱히 잡히는게 없어 난감해 한다. PC방에 발라리가 떴다는 제보에 눈썹 휘날리게 날아간 그들은 험난한 추격적 끝에 범인을 놓치고 만다. 실적을 만회할 최대의 기회를 아쉽게 날려버린 것이다. 네 탓이야,를 외치면서 치고 받고 싸우던 동안 예정되었던 2주가 지나가고, 결국 합동반은 해체되고 만다. 게다가 문책성 인사로 황구렁이와 정 의찬마저 지구대 발령을 받게 되자 발라리를 잡는다는 계획은 흐지부지 되고 만다. 하지만 두 사람, 황 구렁이와 정의찬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사건에 매달리는데... 과연 발바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체포왕이 되고 싶어하는 정의찬의 소원은 이뤄질 수 있을 것인가?

 

우선 영역 다툼을 벌이는 두 경찰서를 배경으로 했다는 점에서 점수를 높이 주고 싶다. 그 두 팀의 절박한 실랑이가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과 개연성을 던져 주던데, 익히 듣지 못한 발상라 그런지 신선했다. 도입부만으로 결말이 짐작되는 식상한 형사물과 다르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거기에 심각할만하면 터져주는 자잘자잘한 유머는 또 어떤가? 일품이었다. 적절한 타이밍에 재치있게 한방씩  잽잽 날려주는 웃음이 관객들을 넘어가게 했으니 말이다. 안정빵이라고 해야 하나? 감독이 박중훈이나 이선균이라는 배우만으로 안 먹힐시에 대비해서 연기력 있는 조연들의 맛깔 난 대사를 준비한 듯 했는데, 적중했지 싶다. 두 주연 배우들만의 원맨쇼로 꾸려 갔다면 필시 2시간이라는 상영 시간이 지루해졌을텐데도, 지루하지 않게 본 것을 보면 말이다. 특히나 고박사로 나와주시는 임원희, 대단했다. 예전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영화 상영 10여분만에 하비에르 바르뎀의 모습만으로도 벌벌 떨었는데, 이 영화에선 그의 얼굴이 실루엣으로 비추기만 해도 웃음이 실실 나오더라. 처음 본 배우인데도 말이다. 아마도 원래 코미디 연기에 일가견이 있는 배우이신 듯... 다른 배우들의 타이밍 빵빵 터지는 유머도 흠잡을 데 없었지만, 특히 고박사의 경우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 하다.

 

결론적으로, 신선한 발상, 자잘자잘 쉴새없이 터져대는 유머, 정말 몸 사리지 않고 열심히 찍었구나 싶게 만드는 추격씬들에, 성실한 중훈씨와--이때의 성실은 연기를 뜻함--떠오르는 다크 호스 이선균님의 밀리지 않는 연기, 그리고 마치 주연인양 연기하던 조연들의 향연까지...골고루 들어있는 선물상자를 풀어본 듯 기분이 흐믓한 영화였다. 물론 발바리를 잡아가는 과정들을 그렇게도 힘을 줘서 찍었어야 했는가 의문이 득긴 했지만서도, 액션을 표방하는 형사물을 찍는데 그 정도의 과잉은 어쩔 수 없었을 것 같기도 하다. 영역싸움이라는 신선한 배경 설정에 탁월한 유머 감각을 감안하면 그런 액션씬 없이 경찰서내에서 벌어지는 소동들만을 그렸더라도 좋았지 않았나 싶었지만서도...우리나라 사람들은 원래 잔잔한거 안 좋아한다. 빵빵 터져주는 액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니 뭐, 어쩌겠는가? 좋아하는 장르에 맞춰 찍는 것도 나쁘진 않다.

 

그나저나 <투 캅스>에서 원리 원칙 고수, 뻣뻣한 신참 형사를 연기하던 박중훈님이 이제 느물대는 베테랑 형사를 연기하는걸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세월이 흔적을 남기지 않은 채 지나가진 않는구나 싶었고, 느물대는 능청 연기가 몸에 딱 붙는걸 보니 연륜이 느껴져서 말이다. 중년엔 그렇게 어느정도 세상살이에 적당히 맞장구 쳐주는게 어울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이 영화, 시간과 돈이 아깝지는 않을 것이다. 대박을 점쳐도 좋지 않을까 싶지만서도, 뭐, 내 감이 맞은 적이 별로 없는 지라 희망사항으로 적어 본다. 대박 나시길...그리고 박중훈 아저씨~~~영화 맘에 들면 마구마구 떠들어 달라고 했죠? 이만하면 됐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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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카피하다 - Certified Copy
영화
평점 :
상영종료


< 기막힌 복제품 : 원본은 잊고 질좋은 짝퉁을 사라>의 저자인 제임스 밀러의 강연회에 범상치 않은 모자가 등장한다. 열심히 제임스의 말을 경청하던 엄마는(줄리엣 비노쉬 역) 배가 고프다는 아들 성화에 밀려 강연 도중 밖으로 나오고 만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 제임스를 가게에 초대한 줄리엣은 진짜로 그가 나타나자 기뻐한다. 줄리엣은 골동품 가게를 운영하는 싱글 마더로 특별히 복제품 애호가는 아니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제임스는 복사품도 진품 못지 않게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는 자신의 책에 열광하는 줄리엣이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기분 전환을 하고 싶다는 제임스의 말에 줄리엣은 차 키를 들고 나온다. 그렇게 해서 지적이고 핸섬한 작가와 그의 열성팬 줄리엣은 예정에 없던 드라이브를 하게 된다.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된 둘은 서서히 상대방에 대해 알아간다. 제임스는 자신의 의견이라고는 없어 보이던 그녀가 실은 깐깐하다는 것을 알고는 흥미와 동시에 피로를 느낀다. 


 시골 박물관에 도착한 그녀는 그에게 이탈리아의 모나리자라고 불리는 그림을 소개한다. 그 그림은 18세기에 그려진 복제품임에도 최근까지 르네상스 시대 그림인줄 알려져 있었다. 복제품도 원본만큼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는 당신의 논리에 적합한 그림이 아니냐는 줄리엣의 말에 제임스는 시큰둥해 한다. 그런 예를 워낙 널려 있어 새로울게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살짝 삐진 줄리엣은 제임스가 전화로 아들과 실랑이를 하는 그녀를 예민하다고 충고까지 하자 얼굴이 굳어진다. 분위기를 바꿔 보려 까페에 들어간 둘은 책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제임스는 비로서 왜 그녀가 자신의 책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 알게 된다. 둘이 대화하는걸 지켜본 까페 주인은 그녀에게 남편을 잘 골랐다면서 칭찬 한다. 이에 기분이 좋아진 그녀는 한술 더 떠 제임스가 그다지 좋은 남편이 아니라고 일러 바친다. 이에 나쁜 남편이라도 없는 것보단 낫다고 단언하는 까페 주인, 그녀는 공감의 표시로 고개를 끄떡인다. 까페 주인장의 오해를 바로잡을 생각을 하지 않던 줄리엣은 제임스를 진짜 남편처럼 대한다. 갑작스럽게 급진전된 역활 놀이에 어리둥절해 하던 제임스는 곧 사태를 깨닫고는 그녀의 행동에 맞장구를 치게 된다. 장난으로 시작된 둘의 역활 놀이는 점점 점입가경으로 엉뚱해져 가더니, 줄리엣은 만나는 사람들에게 오늘이 둘의 결혼 기념일이며 15년 산 행복한 커플이라고 말하기에 이른다. 줄리엣의 오지랖에 한층 피곤해진 제임스는 태클을 걸게 되고, 결과는 둘이 진짜 부부처럼 다투게 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신이 난 줄리엣의 신경을 거스르지도 않으면서 사태를 바로 잡으려 애쓰던 제임스는 어느덧 자신이 아내의 바가지에 골머리를 앓는 중년 남편처럼 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간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며 살아왔던 제임스에게 아직도 자신을 사랑하냐고 투정을 부리는 줄리엣, 제임스는 오랜 시간을 함께 한 부부가 그런 것처럼 삐진 아내의 마음을 돌린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데... 

 

 

장난처럼 시작된 역활 놀이가 결국 진짜로 이들이 부부인가 헷갈릴 정도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던 영화였다. 멋진 두 배우의 앙상블만으로 100여분을 지루하지 않게 끌어간 내공이 돋보이던데, 단지 두 배우의 대화 만으로 이야기를 끌어 가는데도 집중력 흐트러짐 없이 몰두해서 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잘 된 책과 마찬가지로, 잘된 영화는 그 자체로 보게 만드는 힘이 있음을 알게 해준 영화가 되겠다.  

다음 장면을 궁금하게 만드는 시나리오에, 서 있는 그 자체로 화보인 중후한 매력의 배우들, 연기란 생각이 들지 않던 자연스럽고 매끄러운 연기가 관점 포인트다. 게다가 분명히 하루만에 찍은 영화가 아닐텐데데, 이음새가 보이지 않던 매끄러운 연결은 진짜 하루동안 둘을 쫓아다니면서 즉흥적으로 찍은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연출도 없이 배우들의 임기응변만으로 말이다. 가짜를 진짜처럼 보이게 한다는 점에서 감독의 설득력이 대단하지 싶다. 얄미울 만큼 깔끔한 연출이나 로맨스 소설을 보는 듯 깜직한 대본, 그리고 제 몸에 맞는 배역을 맡은 듯 쉽게 연기하는 배우들의 힘이 영화를 한층 더 빛내고 있지 않았나 싶다.

그렇다면 감독이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원본과 복사품을 어떻게 구분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아니었을까? 우린 진품을 중요시하고 복사품을 천시하지만, 과연 이 둘의 차이를 명확하게 구별해낼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싶다. 과연 원본이란 증명이 있으면 그것이 가치 있는 것이 되고, 부부라는 증명서가 있어야 실체 있는 관계가 되는 것일까? 삶이 그렇게 간단하다면야 편하긴 하겠지만서도, 진실이나 실체란 그렇게 손에 확 잡히는 것은 아니질 않는가.

이 영화속에서도 제임스와 그녀는 원본이 아니다. 쉽게 말해 진짜 부부가 아니다. 그러나 까페 주인장의 오해로 촉발된 둘 사이는 순식간에 진짜 15년을 산 부부처럼 발전하고 만다. 투닥투닥 다투고, 서운해 하고, 이해시키려 애를 쓰고, 과거의 좋았던 시절을 회상하고, 토라지고, 다가가고....그런 둘을 보면서 주변 사람들은 그들을 진짜 부부처럼 대하게 된다. 신혼 부부는 경외의 눈초리로 그들을 바라보고, 지나가던 한 남편은 제임스에게 말보다 애정어린 행동을 보여줄 것을 조언한다. 둘의 치고 받음이 어찌나 리얼한지 모든 과정을 쭉 지켜 보고 있던 관객들조차 헷갈릴 정도다. 이것 봐라? 둘이 원래 부부였던가? 아니었던가? 그런 물음 뒤엔 어쩜 그런 것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게 했다. 원본이 아니면 어떻겠는가. 지금 그들의 대화 속에선 자신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며, 무리한 곤조도 부리고, 상대의 사랑을 확인해 보면서, 일상에서 사랑을 지켜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보자면 결국 중요한 것은 관계 내에서의 실체가 아닐까 한다. 원본이라는 증명서 한 장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사회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아내는 내용이란 뜻이다. 비유를 해보면, 현재 이지아와 서태지의 결혼이 논란 거리인데, 과연 둘이 결혼했다는 증명서 한 장으로 둘의 관계를 정의내릴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어느 순간 둘의 관계가 빈 강정이 되어 부부의 실체라고 할만한 것들이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고 했을 시, 과연 둘의 관계를 원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건 당사자만이 알 수 있고 판정 내릴 수 있는 성격의 문제일 것이다. 하여간 중요한 것은, 부부라는 겉모양새가 아니라, 그 안에 채워 넣어야 할 실체라는 것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친구라면 친구답게, 아내라면 아내답게, 남편이라면 남편 답게, 부모라면 부모 답게... 그 역활에 충실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복제품보다 못한 원본 신세가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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