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 The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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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타임지 선정 2011년 최고의 영화라고 하길래 보게 된 영화다. 보고 나니, 화면이 고혹적이라는건 알겠는데, 왜 이 영화가 1위에 선정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작년에 나온 영화들 중에서 괜찮은게 그렇게 없던가? 좋다는 영화를 다 본 것이 아니라서 주저스럽긴 하지만, 적어도 내용이나 감동이라는 면에선 이보다 괜찮은 영화가 있을성 싶은데 말이다.  뭐, 전문가들의 눈이 틀릴리는 없으니, 분명 그들에겐 내게 안 보이는 것들이 보였던 모양이지... 어쨌거나, 영화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시간을 체크하고 싶은 충동이 들길래, 살짝 실망스러운 기분이 드는걸 숨길 수가 없었다. 이런 행동은 내가 영화가 재미없을때 나오는 "무의식적인" 제스처로, 기대가 컸던 만큼 그럴리 없다고 부인하고 싶어졌다. 아냐, 분명 재밌을 거야, 내가 지금 하는 행동은 그저 시간이 궁금해서 그런 것일 뿐이야...라고 애써 내 행동의 의미를 깎아내렸지만, 왜 전반적인 분위기라는 것이 있지 않는가. 초반에 적어도 이 영화가 어떤 방향으로 갈지 대충 맛 뵈기로 짐작이 되는 것, 하여 3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흑백 화면을 한 10분 정도 보고 나니 곤혹스런 기분이 들었다. 엄청난 반전이 있지 않고서는 대단한 내용을 이야기할만한 영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 취향의 영화가 아니라는 건 이미 분명해 보였고, 갇혀 있지 않았다면, 다시 말해 영화관에 앉아서 이렇게 보고 있지 않았다면 끝까지 보지도 못했을 영화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벌써 자리를 박차고 나갔거나 채널이 돌아갔을테니 말이다. 영화관에서 보기를 잘했네. 안 그랬다면 어떤 영화일까 언제까지나 궁금해했을 테니 말이야....라고 애써 나를 위로했지만, 별로 기분이 나아지진 않았다. 그나마 기분이 더 나빠지지 않았다는 것이 최후까지 남은 위안이었다. 언제고 더 싫어할만한 요소가 튀어나오는건 아닐까 싶어 조마조마했으니 말이다. 이를테면 한없이 유치해서 웃음 조차도 나오지 않는다던가 하는 것들...

 

2. 내용은 간단하다. 한때 잘 나가던 무성영화 배우가 유성 영화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좌절을 겪는다. 자신을 엔터테이너가 아니라 아티스트라고 생각한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트릭이 아닌 다른 트릭으로 춤 출 줄 몰랐던 것이다. 큰 맘 먹고 찍은 영화는 쪽박이 났지, 타이밍 맞춰 찾아온 대공황은 하루아침에 그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버린다. 결혼생활을 불행해하던 아내마저 그를 떠나자,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언제나 그의 곁을 지키는 강아지뿐...모든 것을 포기하려는 그에게 신인 배우시절 그를 짝사랑하던 여배우가 찾아온다. 그가 끊임없이 추락하던 그 시절에 그녀는 반대로 화려하게 비상했다. 만드는 작품마다 히트가 나서 국민 모두가 사랑하는 배우가 된 그녀는 자살하려다 상처를 입은 그를 데려다 간호를 한다. 그녀의 진심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초라하게 영락한 자신이 비참하기만 한 무성배우, 과연 둘의 사랑은 어떻게 끝나게 될 것인가? 남은 것이라고는 드높은 자존심뿐인 그가 과연 여자의 순정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3. 화면은 그야말로 흠 하나없이 완벽했다. Impeccable는 형용사가 마치 이 영화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화면속 배우들은 30년대의 고풍스런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연기하고 있었고, 소품들은 하나하나가 어쩜 그리도 반짝반짝 빛이 나던지, 만약 그것들이 그렇게 빛 나지 않았다면 30년대 만들어진 영화라고 해도 믿었을 것이다. 흑백의 화면에 무성과 자막, 그리고 30년대를 고증하는 의상들과 고풍스런 분위기의 배우들이 모두 그때를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었다. 단지 지나간 시절을 재현했다고 하기엔 너무도 우아하고 아름다워서 차라리 새로운 버전의 30년대를--2011년도에 상상해본 1930년대라고나 할까.-- 만들어 냈다는 것이 어쩜 더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공들여 만든 티가 확연한 배경에 섬세한 화면들, 미장센에 있어서만큼은 눈이 호사하는 기분이 드는건 어쩔 수 없었다. 정말 화면 하나에 엄청 신경을 썼겠구나 싶은 그런 장면들이었고, "아티스트" 라는 영화의 제목이 왜 붙여졌는지 이해가 가게 만드는 화면들이었다. 장면 장면마다 예술작품같았으니 말이다. 그렇게 흠 하나없다고 외치고 싶은 화면에도 내가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내용이 별게 없었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30년대에나 먹힐 듯한 내용이라니... 해도 너무했다. 70년이나 지나지 않았는가.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공통분모인, 영원한 사랑을 주제로 하긴 했지만서도, 아무리 뜯어 봐도 식상한 줄거리는 어디 못 간다. 아무리 포장을 멋들어지게 했다 해도 말이다. 작년 우리나라에도 복고풍이 불더니만, 미국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과거가 그리웠었나보다. 30년대, 삶은 단순하고, 사람들은 마냥 순진하고 충직하며, 불륜은 품격있는 신사가 할 일이 아니라고 단정하는데다, 자극적인 섹스가 아니라도 이야기를 끌어나갈 수 있었던 그 시대의 사랑이야기가 말이다. 그래, 가끔은 그시대가 그립기도 하다. 그 시대에 만들어진 영화나 음악이 지금보다 유치하다거나 이야기가 빈약하다고 생각되지도 않고. 품격이나 재능, 즉 예술적인 감각면에서는 분명 우리가 따라가지 못하는 면들이 있다는 점도 부인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부러운 과거를 재현만 하지 말고, 지금의 시각에서 새롭게 해석을 했더라면 오히려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었다. 물론 그랬더라면 이 영화가 가진 순진하고 낭만적이며 낙관적인 분위기는 나오지 못했겠지만서도. 적어도 너무 순진해서 뻔하단 느낌은 들지 않지 않았을까 싶다. 하여간 눈요기만으로 만족하시는 분들에겐 괜찮은 영화가 되겠지만, 줄거리를 중시하시는 분들에겐 다소 맥 빠지는 영화가 아닐까 싶었다. 당신의 취향이 어떤 것인지 파악해서 보시면 후회가 없지 않을까 한다. 

<네영카 시사회 초대를 통해 본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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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온 킹 3D - The Lion King 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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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온 킹이  3D로 재상영이 된다는 말에 곧바로 조카가 떠올랐어요. 녀석이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영화이다보니, 영화관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거든요. 더군다나 3D로 만들었다는 소식에 저마저도 마음이 설랬어요. 예전에 봤던 기억에 의하면 재밌는데다 감동적이기까지한 영화였는데, 거기에 새로운 신기술을 접목해서 보여준다니 어떤 효과가 나올런지 기대가 됐거든요. 하여 낮의 유치원 생활(?)로 다소 지친 조카를 데리고 지난 수요일 시사회 장을 찾아 갔답니다. 네, 맞아요. 꼬맹이를 끌고 온게 저여요. 연신 "언제 시작해?" 를 묻던 꼬마가 바로 제 조카랍니다. 시작하기 전부터 지루하다고, 왜 안 시작하냐고, 이것저것 불평불만을 털어놓던 그 건방진 꼬마 말여요. 영화가 시작되서도 그렇게 계속 중얼대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시사회가 열리는 영화관에서는 객석마다 헤드폰을 설치해 주셨더군요. 옆 사람이 무엇을 하건 상관없이 감상을 하라고 말이죠.  저에게는 구세주나 다름없는 장치였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고는 싶지 않았으니 말여요. 실제로 헤드폰을 착용해 보니 생각보다 위력이 괜찮더군요. 옆 사람이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거든요. 핸드폰 소리에 잡담에 먹는 소리에 보통 영화를 보다 보면 옆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감상이 달라지기도 하는데, 앞으론 그럴 일이 없겠다 싶었어요. 다만 불륨을 줄일 수 있는 장치가 있었음 했어요. 소리가 너무 컸거든요. 아마도 깜깜해서 제가 못 찾은 것인지도 모르지만서도요.

 

하여간 시작 전부터 느낌이 좀 안 좋더라구요.  왠지 조카가 계속 불평을 해댈 것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요. 갑자기 자신감이 확 사라지면서, 불안해졌어요. 해서 예전에 영화를 보면서 감동을 받았던 장면들을 떠올려 봤지요. 분명히 먹힐 거야. 산전수전 다 겪은 내가 울먹이면서 본 영환데, 아무것도 모르는 천둥벌개인 녀석에겐 분명 새로운 감동이지 않겠어? 뭐, 폭풍까지는 아니래도 조금이라도 감동은 먹을 거야...라면서 애써 불안한 마음을 달랬어요. 그런데도 이상하게 불안이 가라앉질 않더라구요. 영화가 끝나고 나면 왜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나 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 제가 보이는 것 같았어요. 결론은? 제 짐작이 맞았다는 거여요. 영화가 끝나고 나니, 조카가 저를 향해 딱 이 표정으로 바라봤거든요. " 아니, 고작 이걸 보게 하려고 피곤한 나를 끌고온 거여요? 이렇게 추운 날에? 진심이셔요?" 참으로 할 말이 없게 만드는 표정이었어요. 그런데 딱히 부인할 수가 없었어요. 제가 보기에도 별로였거든요. 한땐 그래도 대단한 영화였는데, 벌써 먹히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 놀랍더군요. 전 당연히 여전히 유효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그게 오산이더라구요.

 

짐작하셨을지 모르겠는데, 영화와 상관없는 잡소리를 이렇게 장황하게 하는 이유도 딱히 영화에 대해 할 말이 없어서여요. 내용이야 익히 다 아실 터이고, 재개봉의 이유이기도 했던 3D의 위력은 그야말로 미미했어요. 3D라는 의미가 별로 없더군요. 거기다 더 큰 문제는 화질이 그렇게 좋아보이질 않았다는 거였어요. 영화를 보면서 그간 만화영화를 만드는 기술이 얼마나 발전했는가 새삼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는데요, 예전에 봤을때 그렇게도 멋지게만 보이던 영상들이이 이젠 식상하고 어색하고 선명하지 않고 부자연스러워 보이더라구요. 세월이 그렇게 흘렀던가? 얼마나 오래전 영환데? 라고 헤아려 보니, 17년전 영화라네요. 명작은 영원할 줄 알았는데, 세월을 거스를 수 없는 것이 인간만은 아닌가봐요. 오래된 티가 팍팍 났거든요. 색상이 흐릿하다는 점이 특히나 그걸 강조해주고 있었죠. 3D로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이라면 선명한 색상으로 보정 정도는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거랑은 다른 문제인가봐요. 선명함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요즘 나오는 만화영화들은 다른건 몰라도 화질만큼은 뚜렷하거든요. 어린이용 TV 만화라도 말이죠. 동작도 빠르고, 유머도 크고 화려해요. 아가들이 본다해도 이해하고 웃을 수 있을 정도로요. 그것들과 비교해 보니, 후진 티가 났어요. 유머조차도 말이죠.

 

다만 그래도 여전히 유효했던 것은 영화 전편에 흐르는 감성이었어요. 자신을 구하려다 죽은 아버지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애를 쓰는 심바를 보면서 여전히 마음이 울컥했고, <Remember!>라는 제임스 얼 존스의 목소리를 심바만이 아니라 제 영혼까지 흔들어 놓은 기분이었거든요. 그 외엔 스토리 자체도 다소 어색하고 전개도 급작스럽단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이 영화를 지금 만든다면 아마 각색을 달리 해야 할 거여요. 시대가 달라졌다는 소리겠죠. 한때는 무리없이 받아들여졌던 것이,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게 재밌네요. 그게 아마도 유행이라는 거겠죠. 하여간 과거의 향수를 기대하고 가신다면 만족하시겠지만, 새로운 감동을 기대하고 가신다면...글쎄요. 그건 충족시키기 어렵지 않을까 하네요. 물론 그건 조카와 저의 의견이지만서도 말여요.

 

<네영카 시사회 초대로 본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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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 I W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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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6학년인 코이치에겐 이해가 안 되는게 너무나 많다. ( 활화산이라) 화산재가 눈처럼 소복히 쌓이는 산 아래 도시를 이루고 사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 가고, 산 등성이에 학교를 만들어 아침마다 헥헥대게 만드는 것도 이해가 안 가며, 무엇보다 형제를 갈라 놓으면서까지 별거를 선택한 엄마 아빠가 이해 되질 않는다. 날마다 쌈박질을 할때 알아보긴 했지만, 그래도 진짜로 갈라설 줄은 몰랐다. 엄마는 코이치를 데리고 외가댁인 남쪽으로, 아빠는 동생 류와 함게 북쪽으로, 졸지에 이산가족이 되어 버린 그들. 처음엔 그러다 말겠지 했던 코이치는 6개월이란 시간이 흘러가자 점점 불안해진다. 엄마는 직장을 알아 본다고 하지, 외할아버지 역시 은퇴한 일을 다시 해보려고 궁리중이다. 아빠는 별거의 원인이었던 밴드 생활에 빠진 듯한 눈치고, 무엇보다 동생 류! 어떻게 하면 다시 가족들을 모여 살게 만들까 고개를 늘어뜨리고 고민중인 자신과 달리 동생은 매일 매일 신이 난 눈치다. 텃밭에 야채를 심었다고 자랑하는 동생의 목소리에선 도무지 떨어져 산다는 것에 대한 아픔이 느껴지질 않는다. 이러다가 결국 우린 이렇게 헤어져 지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다시 함께 뭉쳐 살게 되는 날이 오지 않게 되면 어쩌지? 그는 홀로 전전긍긍한다.

 

그렇게 오매불망 가족들이 함께 살게 될 날이 오게되길 고대하던 코이치에게 솔깃한 소식이 전해진다. 신칸센 상하행선 열차가 교차해서 지날갈 때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루어 진다는 것이었다. 심각하게 정보를 분석한 코이치는 자신만큼이나 간절한 소원이 있는 친구 두 명과 함께 소원빌기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자신만 전전긍긍하는 것에 불만이던 코이치는 동생 류의 동참을 권유한다. 중간 지점에서 동생을 만난 코이치는 그가 여자 친구 세명을 주렁주렁 달고 온 것에 기분이 상한다. 낯선 마을에 떨어진 일곱 명의 아이들, 과연 그들의 소원 빌기 프로젝트는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일행에서 떨어진 한 명이 순경과 마주치는 돌발상황이 발생하면서 그들의 여행은 막다른 골목에 처한 듯 보이는데...

<기적을 위해 모인 일곱명의 아이들, 간절한 소원 하나씩을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한 그들은 과연 기적을 일으킬 수 있을까?>

 

< 틀에 박히지 않은 삶을 원하는 아이같은 아빠와 그런 아빠를 아내보다 알뜰하게 건사하며 마냥 행복한  둘째 류>


 

<" 아니, 내 가족을 생각하는 사람은 나뿐인거야? 이해가 안 돼! " 생각도 걱정도 많은 천상 장남 코이치. 그는 생각없는 듯 살고 있는 동생을 닥달해 어떻게 하면 함께 살 수 있을지를 궁리한다. 그렇다. 그의 삶은 벌써부터 고단하기 짝이 없다. >

 

누군가에게 간절하게 일어나길 바라는 기적이 있다. 여기까지는 좋다. 실제로 일어나건 안 일어나건 기적을 믿는다고 별로 해될건 없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 기적이란게 허무맹랑하게도 "화산폭발"이라는 것이다. 평소에도 분진을 마구 내뿜으면서 조만간 폭발해 주련다라는 분위기를 팍팍 풍기고는 있지만, 그래도 현재까진 성가신 분진이 전부였는데 말이다. 그걸  화끈하게 꽝~! 하니 폭발하게 해달라고 한 소년이 빌고 있다. 그렇게 되면 흩어진 가족이 함께 모여살 수 있게 될거라 믿어서다. 시간이 지나가면 재결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그 시간동안 떨어져 사는 생활에 적응이 되버리고 말았다. 그런 상황이 소년은 이해가 되질 않고, 불안하다. 자나깨나 가족만 생각하는 그를 보고 " 너도 이제 다른 것을 생각해 봐, 음악이나 세계 같은 것을..."라는 아빠의 말에 발끈하는 소년을 보면 아빠보다 어른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알고 보면 그는 딱 그 나이만큼 어린아이다. 하여 기적을 이루기 위해 직접 길로 나선 쾨이치와 일행들, 과연 맹랑하기 짝이 없는 그들의 소원은 이뤄질 수 있을까. 그 여정속에서 그들이 배운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일본 영화답게,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이야기 전개가 인상적인 영화였다. 부조리한 일상, 이해가 되질 않는 어른들의 세계, 마음에 들지 않는 현실등을 기적을 통해서라도 바꾸어 보려 여행을 나선 일곱명의 아이들이 그 여정을 통해 어떻게 성장해 나가는지 보여주고 있었는데, 두말할 필요없는 수작이다. 우선, 아이들이 가진 단순하고 순수한 시각으로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나, 과장 없이도 웃음을 이끌어 내던 유머감각, 흐름을 끊지 않고 무리없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 대단했다. 거기에 잠시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은 채 꾸준히 유지되던 긴장감과, 다음 장면을 궁금하게 만드는 구성,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내용 전개등은 감독이 단 한 장면도 고민없이 영화를 찍지 않았다는 걸 느끼게 해줬다. 매너리즘이나 유치함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런 것에 빠진다는 것이 얼마나 쉬운 유혹인가를 생각해 보면 감독의 내공이 대단하지 싶다. 감독의 힘을 느끼게 해주는 연출력이었다. 특히 매사에 "이해가 안 돼~~"를 달고 살던 코이치가 결국 이해가 되지 않은 현실을 이해하게 되는 심리 변화가 압권이었는데, 그런 그의 마음을 극적으로 보여주던 소원을 비는 장면에선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아~~~ 아무리 되바라진 듯 허세를 부려도 그들은 얼마나 아이들이던지...여행동안 꽁꽁 숨겨 놓은 그들의 속마음을 드러내는 순간, 아마도 관객들 모두 그들의 소원이 이뤄 지기를 함께 기원하지 않았을까 싶다. 

 

거기에 반가운 얼굴들이 대거 출연하고 있다는 점도 맘에 들었는데, 어떤 배우보다 츄리닝 입은 선생님 역이 어울리는 아베 히로시나 철없는 아빠 역을 멋지게 해내던 오다기리 조는 등장만으로도 마음이 설레었다. 멋쟁이 외할머니와 이해심 많은 외할아버지, 현실에 좌절하면서도 아이들에 대한 사랑만은 변함없던 엄마, 아이들이 반하는 것도 무리가 아닌 미모의 사서 선생님등, 나오는 등장인물들 모두 미운 사람이 없다는 점도 좋았지만 , 무엇보다 이 영화에 공을 찾자면, 영화에 현실감을 팍팍 불러 넣어주던 형제 아역 배우들에게 돌려야 하지 않을까 한다. 좋은 영화는 많지만,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영화는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특별했다고 말하고 싶다.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이 있었으니 말이다.

 

                                                              <네영카 시사회 초대를 통해 본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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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볼 - Money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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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태어난 스포츠 선수였던 빌리 빈은 프로 야구계로 진출하면서 생에 처음 실패를 맞보게 된다.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업고 , 명문 대학마저 포기하고 간 프로야구였지만 생각과 다르게 시나리오는 풀려 갔다. 그가 실패한 가장 큰 요인을 꼽으라면, 그간 승승장구만 하느라 실패를 경험해 본 적이 없었던 그가 초반 초라한 성적에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방방 뛰었다는 것,  결국 마이너리그 벤치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하게 된 그는 초라하게도 스카웃터의 길로 나서게 된다. 촉망받은 드래프트 1위 선수로써의 자존심을 송두리째 집어던진, 몰락의 끝처럼 보이던 그의 전직은 하지만, 오히려 그에게 야구 선수시절 부재했던 열정을 되찾아 준다. 종내 단장 자리까지 오르게 된 그가 이제 원하는 것은 오직 승리뿐...하지만 선수단  연봉 "최하위" 에 빛나는 가장 가난한 구단  미 '오클랜드 애스렉틱스'를 가지고 그가 할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이 있겠는가. (좋은 선수를 데려오기 위해) 돈을 더 달라는 그의 말에 이게 우리의 현실이니 여기에 맞춰서 살아가라는 구단주와 기껏 키워 놨더니 돈에 팔려 가는 스타급 선수들, 구태의연한 말만 되풀이 하는 스탭진들에 둘러 쌓인 그에겐 절망만 싸여 간다. 과연 그가 승리의 반지를 꿰찬다는 꿈은 가당치도 않은 것일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 그렇다! " 가 정답일 것이다. 빌리 빈, 아무리 그가 날고 뛴다고 해도 이제 한계에 봉착했다. 가난한 구단이라는 것엔 이미 익숙해 졌다고 하자. 그런데 올핸 그나마 쓸만한 선수들마저 다 다른 구단에 팔려 버렸다는 것이지. 메뚜기도 한 철이라고, 높은 연봉에 다른 구단에 팔려가는 그들을 뭐라 할 수 없는 일. 없는 것을 한탄하기 보단 있는 것을 가지고 어떻게 뭔가를 해봐야 하지 않을까 궁리하던 그 앞에 예일대 경제학 출신의 "피터" 가 나타난다. 그는 돈이 없다 해도 발상의 전환만으로 우승이 가능하다고 빌리를 설득한다. 이제껏 해왔던 것으로는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걸 잘 알고 있던 빌리 빈, 어차피 더 이상 잃은 것도 없다고 판단한 그는 피터의 아이디어를 사기로 한다. 그를 부구단장으로 영입한 빌리는 선수 스카웃부터 새로운 프레임 하에 다시 짜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부터 거센 반발에 부딪히게 된다. 우선 그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이해시키는 것부터가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돈이 없다고? 야구를 뭐 돈으로 하나? 야구는 그저 이기면 그만인 게임이다. 1점차라도 말이다. 야구의 전당에 오를만한 대단한 선수들을 가지고 큰 점수차로 뻥뻥 이겨준다면야 물론 바랄게 없겠지만서도, 그들은 그런 선수들을 데려올 수가 없다는게 문제 아니겠는가. 여기에 피터와 빌리는 야구 관계자들이 간과하는 출루율을 자랑스럽게 설명한다. 쪼잔하게 보인다고 해도 무조건 출루를 하는게 이기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포볼을 골라서 가건, 데드볼로 맞아서 가건, 상관이 없다. 이런 발상의 전환을 가지고 그들은 다양한 데이타를 통해 선수들을 영입하기 시작한다. 출중하고 천부적인 재능? 그런거 필요없다. 한물 갔다고 평가 되는 선수들,  뚱뚱하다고, 굼뜨다고, 나이가 들어 한물 갔다고, 장애가 있다고  더 이상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는 무명의 선수들을 그는 데려온다. 그리고 그만의 외인구단을 만든다. 그의 색다른 시도에 모두들 그가 미친게 틀림없다고, 아니면 실패를 자초할만한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거라고 뒷담화를 해댄다. 그런 와중에서도 빌리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가 흔들리지 않은 이유는...

 

그는 본인의 실패를 통해 보여지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좋은 선수란 멋진 외모에 장타력과 강속구등의 재능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만약 그런 천부적인 재능이 모든 것을 보장한다면 그가 왜 그렇게 참담한 실패의 주인공이 되었겠는가. 야구는 팀 플레이이고, 게임이라는 속성을 이해한 그는 겉 포장지보단 내용에 충실한 스카웃을 한다. 하드웨어 보단 소프트 웨어에 충실하기로 결정이 과연 어떤 결과를 낼지는 지켜봐야 아는 것이지만, 일단 시도부터 엄청한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 평생 처음 들어보는 페러다임에 당황하는 다른 스카웃터들, ' 여긴 내 영역이야' 를 외치면서 빌리 빈의 요구를 무시하는 감독, 선수들마저 그의 생각을 오해하는 가운데 시즌 초반 연패를 이어가게 된다. 모두들 그의 시도를 비웃는 가운데,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자신의 생각이 옳았다는 신념 하나뿐, 과연 그의 시도가 옳았다는 것이 증명될 것인가? 

 

자본주의의 돈으로 굴러가는 야구계의 풍토에 맞서 잔머리와 열정과 기발한 타이밍으로 자신의 구단을 미 플레이 오프 시리즈에 네 번이나 올린 미 오클랜드 어스렌틱스 단장 빌리 빈의 이야기를 영화화 한 것이다. 원작이 같은 제목인 < 머니 볼>인데, 선수단 연봉 최하위의 가장 가난한 구단이 가장 효율적으로 팀을 운영하게 된 비결은 무엇인지, 빌리 빈의 성공 비결을 캐내고 있던 책으로 영화 못지 않게 수작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실은 다양한 관점과 이야기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선 책이 더 낫다. 이해를 빠르게 한다는 점에선 영화가 더 나아 보이지만서도. 빌리 빈이라는 사람이 워낙 보통 사람들과 다른 드라마틱한 점이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책도 그렇고 영화도 둘 다 꽤나 재밌고 흥미진진했다. 상식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승리를 일궈내는 영웅들의 이야기가 그렇듯 통쾌하고 짜릿했다는 점이나, 야구를 모르는 사람,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재밌게 볼 수 있다는 점이 장점, 빌리 빈을 연기하는 브래드 피트의 매력은 덤이다. 아,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하던데, 정말 졸리는 복도 많지 싶다. 저렇게 멋진 남자랑 사니 말이다. 하여간 돈에 관한한 한없이 불공정한 게임을 치르면서도 당당하게 맞서는 빌리 빈의 모습에 환호를 하게 될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외 빌리 빈의 가족사와 다른 인간적인 모습도 보여준다는 점도 괜찮았다.  모든 일에 당당한 듯 보이면서도 실은 자기 구단이 경기를 하면 중계방송도 제대로 보지도 못한다는 빌리 빈, 혹 지고 있는 날이면  방안에서 기물 부시면서 난리를 치고 있다는 빌리 빈, 그가 딸이 불러주는 노래에 감동하는 모습을 보라. 그가 표상하고 있는 바는, 우리가 어른이 된다고 해도 실패에 대한 두려움엔 면역이 되지 않는다는 것, 그 두려움에 맞서는 것이 쉽지 많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럼에도 실패할때마다 다시 도전하는 그대가 아름답다고. 당신이 이미 루저이니, 두려워 말고 앞으로 나가라는 딸의  노랫말에 미소를 짓는 빌리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 장면의 딸이 불러주는 노래 가사에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모든 것이 담겨져 있다고 어떤 영화 평론가가 지적하던데, 맞는 말이지 싶다. 겉으론 냉정하고 무자비해 보이지만 실은 상처 잘 받는 연약한 내면을 지닌 소년일 뿐인 한 사내의 멋진 성공담, 그가 자신이 가진 모든 약점들을 이겨내고 일궈낸 전설들에 박수를 보낸다.

           <네영카 시사회 초대를 통해 본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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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프 - The Hel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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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졸업후 고향인 미시시피 잭슨으로 돌아온 스키터는 친구들이 다 결혼을 해서 유부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혼보다는 일을 하고 싶었던 그녀는 작가가 되기 위해 경력부터 쌓기로 한다. 다행히 지역 신문사에 살림정보 칼럼을 맡게 되지만 결혼도 하지 않은 그녀가 살림에 대해 뭘 알겠는가, 생각끝에 그녀는 친구의 흑인 가정부인 에블린의 도움을 받기로 한다. 자신 역시 흑인 가정부 콘스탄틴에 의해 길러졌던 스키터는 친구의 아이를 정성들여 키우는 에블린을 보면서 남다른 감회에 젖는다. 동시에 자신의 아이 대신 남의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어떤 심정일까 궁금해진다. 더군다나 그렇게 공들여 키운 아이들이 자라서 엄마 못지 않은 상전이 되는 남부의 시스템에서 말이다. 마침 흑인 가정부들과 한 화장실을 쓸 수 없다는 이유로 갖가지 소동이 벌어지자, 그것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스키터는 가정부들의 애환을 들어보기로 한다.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 그들의 속내를 들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의 제안에 펄쩍 뛰는 에블린, 과연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결국 입을 연 자신들만 상처를 입을 거라고 화를 내던 에블린은 결국 스키터의 열정에 지고 만다. 조심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주던 에블린은 더 많은 가정부의 증언이 필요하다는 말에 친구들을 구워 삶아 보지만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에블린의 절친으로 누구보다 그녀의 그런 행동을 못마땅해 하던 미니는 스키터를 만난 뒤 날밤을 새가면서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 과연 그들의 화끈하고 비밀스런 반란은 성공할 것인가? 책이 출판될 거라는 말에 자신들의 정체가 탄로날까 공포에 떨던 미니는 스키터에게 모종의 보험을 제안하는데... 

 

원작을 읽었기에 볼까 말까 망서리다 보게 됐는데, 원작보다 훨씬 좋았다. 일단은 원작의 감상적이고 가식적인 부분을 과감히 잘라내서 흔적조차 보이지 않게 한 것이 주효했다. 원작을 보면서 미심쩍은 마음에 고개를 갸웅뚱하게 만들던 장면들이 이 영화속에선 말끔하게 제거 되었으니 말이다. 한 장면 정도는 눈살을 찌프리게 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원작보다 더 설득력이 있던데, 그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흥미진진하게 영화를 보게된다는 점에서는 나쁠 건 없지 싶다. 아마 영화를 먼저 보고 반해서 원작을 읽으신 분들은 살짝 사기를 당한 기분이 드실지도... 분위기나, 주인공들의 매력이란 점에서도 차이가 많이 날테니 말이다. 매력에 대해 이야기 했으니 배우들 이야기를 안 할 수 없겠다. 우선 주인공 스키터 역의 엠마 톰슨은 올해의 발견이라고 할 정도로 신선하고 귀여웠다. 미래가 기대되는 배우라고 하던데, 보니 이해가 되더라. 예쁜 것은 둘째치고라도, 아직은 세상사에 서툰 사회 신입생의 모습을 어찌나 똑소리나게 연기하던지. 원작의 주인공이 그녀의 절반만큼이라도 매력이 있었다면 책에 훨씬 더 호감이 갔겠지 싶었다. 원작의 주인공은 다소 유우부단하게 세상에 끌려 가는 듯한 모습이라, 그녀의 반란이 다소 설득력이 부족했다면--도무지 그녀가 왜? 라는 의문이 내내 가시질 않았었다.아마도 당시의 시대상에 비추면 원작의 그녀가 더 현실적이긴 했을 것이다.-- 영화속 스키터는 당차고 대찬 모습에 단호하기까지 해서 그녀의 행동에 의문을 품을 수 없었다. 아마도 그것이 이 영화를 무리없이 끌어가는데 중요한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 거기에 오랜만에 보는 씨씨 스페이식이나 가정부를 처음 고용한다고 환호성을 지르던 남부의 마를린 몬로, 그리고 흑인 가정부로 나오는 두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다. 각본의 영리함과 배우들의 감칠맛 나는 연기로 두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끌고 가더라는 점에서 영화는 일단 성공했지 싶다. 자칫 잘못하면 교훈만 남발하는 지루하고 지겨운 영화가 될 가능성이 많았는데, 용케 그걸 피해간 느낌이다. 인종 차별이나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걸 웅변조나 설득이 아니라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서 이야기 한다는 점도 좋았고. 나름 장점이 많은 영화긴 하지만 그럼에도 남성분들에게 어필하긴 부족하지 않을까 한다. 여자들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고, 그녀들만의 성장이 있는 영화라 그렇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남자들이 인종차별을 하면 폭력이나 살해로 치닫지만, 여자들은 무시와 격리를 시킨다는걸 깨달았다. 아마도 그것이 우리들의 두려움 표현 방식인 듯... 



저번에 책을 보면서도 느낀 것인데, 이 영화를 보면서 더 선명하게 깨달은 것이 있다. 과연 낳은 사람과 기른 사람중 누구를 엄마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여기 등장하는 남부 여인네들은 아무도 아이를 키우지 않는다. 가정부에게 맡기곤 그만이지. 그들은 아이를 낳기만 할 뿐, 아이를 재우는 것도, 기저귀를 가는 것도, 말을 가르치고, 자장가를 불러주며, 자긍심을 심어주고, 아이가 낙담할때 위로를 해주는 것등 귀찮고 더럽고 힘든 일은 다 가정부가 한다. 생모가 하는 일이라곤 아이가 죽지 않았는지 가끔 체크하는 것일 뿐이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과연 누구를 진짜 엄마라고 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 질문에 정답은 아이들이 가장 잘 알고 있겠지만서도, 과연 호모사피엔스라 불리는 인간의 아이를 감히 속일 수 있다고 우린 착각하고 있던 것은 아닐런지...왜냐고? 내가 바로 그런 아이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가정부의 손에 큰 아이,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긴 했지만, 커보니 그게 그렇더라. 엄마라는 존재는 그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더라. 그러니 엄마 노릇이 힘들다고 불평하시는 분들은 생각해 볼 일이다. 수고하지 않고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특히나 엄마라는 자리는 거저일 수가 없다는 것을.

 

<추신--네영카 시사회를 통해 본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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