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엠 러브 - I am lov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고혹적이라고밖엔 말할 수 없는 가족 사진이 시선을 잡아 끈다. 그들은 바로 밀라노의 상류층 재벌가 레키 가문으로, 영화는 눈이 소담스럽게 내리는 한 겨울의 밀라노 정경을 비춰주면서 시작한다. 소복 소복 내리는 눈을 감상할 여유도 없이 레키가의 며느리인 엠마는 시아버지의 생일 파티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자 드디어 파티는 시작된다. 최근 병이 든 것을 알게 된 시아버지는 생일 축사로 근엄하게 " 나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 외친다. 의당 그가 내뱉을 만한 말이라고 생각했는지 파티 참석자들은 감격에 겨운 모습으로 박수를 친다. 생일 선물로 손녀에게 사진을 선물받은 시아버지는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림이니 그림을 그리라고 말한다. 행여 딸이 상처 받을까 염려가 된 엠마는 딸에게 멋진 사진이라고 연신 칭찬을 해준다. 하지만 그런 엠마의 마음이 딸에게 전달이 되었을지는 미지수, 죽지 않을 거라 선언한 시아버지는 그래도 켕기는 구석이 있었는지 이젠 자신의 후계자를 지명할 때가 왔다고 말하고, 남편 탄크레디와 아들 에도와도르가 지명한다. 안도하고 축하하는 분위기속에 파티는 하기애하게 이어지지만, 일찍 지쳐버린 엠마는 자신의 방으로 숨어 버린다. 이어 장면이 바뀐 여름, 시아버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러게 죽음과는 함부로 맞서는게 아니라고 하질 않는가.
 

러시아에서 이탈리아 재벌 가문으로 시집 온, 모든 여자들이 꿈꾸는 백마탄 왕자를 만난, 한마디로 땡 잡은 여자 엠마. 그녀의 삶은 완벽 그 자체로 보여진다. 남편에게 흠없이 외조하는 아내로, 세 아이를 잘 키워낸 엄마로, 시부모에게 인정받는 며느리이자 집안 살림을 완벽하게 조율하는 살림꾼으로써 말이다. 하지만 그런 외면을 유지하게 위해 그녀가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쏟는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결혼을 한 뒤로 한번도 고향에 가본적이 없다고 말하는 그녀는 그후로 이탈리아인이 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 노력이 어찌나 철저했던지 가족의 구심점이 된 그녀는 자연스럽기 그지없다. 아무도 그녀의 표정속에서 긴장감을 읽어내지 못하는 가운데, 우연히 발견한 딸의 메모는 그녀를 흔들어 놓는다. " 이 가족중에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건 에두와르도, 오빠뿐이야." 라고 말하는 딸은 자신이 레즈비언이라고 밝힌다. 딸의 고뇌를 짐작하면서도 서운한 마음을 감출 길 없는 엠마는 밀라노 시내를 하염없이 걸어다닌다. 
 

아들 에두와르도는 친구인 요리사 안토니오와 함께 레스토랑을 열 계획을 세운다. 친구의 요리를 극찬하면서 엄마에게 소개하는 에두와도르, 엠마는 그의 요리 열정에 잠시 시선을 빼앗긴다. 그가 목요일에 쉰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엠마는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갖게 된다. 예기치 않게도 둘의 만남은 겉잡을 수 없는 열정으로 발전하게 된다. 안토니오의 좁고 더러우며 초라하기 짝이 없는 방을 싫은 기색 없이 따라들어가는 엠마는 오랜만에 그녀 자신을 찾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이탈리아 인이 되기위한 노력이 자신에겐 너무 버거웠다는, 결코 남들에게 털어놓지 못했던 비밀을 안토니오에게 말하면서 자유를 느끼는 엠마... 머리를 자르고, 허름한 옷을 입고, 산을 올라 가는 등 평소 자신과 전혀 다른 모습에도 이질감 보다는 해방감과 행복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그녀는 자신이 사랑에 빠졌음을 알게 된다. 한편 남편은 자신이 물려받은 기업을 다국적 기업에 팔기로 결정하고, 이는 에도의 반발을 사게 된다. 비지니스를 위한 만찬 파티에서 요리를 담당하게 된 안토니오는 엠마에게서 배운 러시아식 생선 스프를 변형한 메뉴를 내놓는다. 이를 본 에도는 그간 의심해 왔던 것을 확신하면서 화를 내는데... 과연 엠마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참 리뷰를 길게 쓰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은, 이라고 한탄할만큼 줄거리가 없는 영화다. 간단하게 말하면--그리고 냉소적으로--한 부잣집 마나님의 불륜 이야기니 말이다. 대사도 별로 없고, 드라마틱한 전개도 별로 없는 탓에 어떻게 포인트를 잡아서 설명해야 좋을지 난감했다. 물론 이탈리아 장인의 한땀 한땀 자신감이 배여있던 화면들이었으니, 프레임 하나 하나 뜯어서 설명하려고 하면 못할 것도 없겠지만서도, 굳이 그렇게 해서 읽는 사람들을 질리게 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내가 싫어하는 불륜이란 소재에 , 별다르게 이야기할 줄거리도 없는 영화를 이렇게 장황하게 언급하는 이유는?

 

생각해 볼만한 진실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한 정신과 의사가 이렇게 말한걸 들은 기억이 난다. 불륜에 관한한 자신은 무어라 한마디로 말할 수 없다고 말이다. 한마디로 불륜을 저지른 당사자가 가해자라는 인식은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라는 것이다. 부부 사이의 문제는 당사자만이 아는 것이기에 다른 사람들이 뭐라 왈가불가 할 것이라 못 된단다. 특히 불륜에 관한 한...그렇다고 불륜이 잘하는 짓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고 단지 이 영화를 보면서 엠마의 불륜을 막장 불륜이라고 폄하할 수는 없었다. 불륜을 저지르면서도 너무도 당당한 엠마가, 그리고 불륜을 추궁하는 아들에게, 나를 믿어달라고 내 설명을 들으면 너도 이해할거야, 라고 말하는 그녀가 정말 이해가 됐기 때문이다. 그래, 에도라면 그녀를 이해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을지도 모르지만, 에도 같이 이해심 많은 착한 청년이라면 충분히 엄마를 이해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다만, 그럴 만한 시간이 없었던 것일뿐...

 

그렇다면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재벌가 귀족 마나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나는 이것을 "당신은 누구십니까?" 의 문제로 보았다. 러시아의 키티쉬는 이탈리아에서 엠마가 되었다. 애벌레에서 나비가 되는 것만큼이나 과격한 변신이다. 엠마는 그 대단한 레키 가문에 맞추기 위해 어찌나 노력을 했던지 이젠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한 개인으로써의 눈물겨운 노력은 하지만 단지 가문안의 일원으로써 조용히 있을때나 빛을 발한다. 숨소리 내지 않고 며느리로써, 아내로써, 엄마로써 그들이 바라는 상에 걸맞는 여인으로 서있을때나 말이다. 자신의 정체성과 주변 사람들이 기대하는 이미지 사이에서의 갈등은 엠마에게 피곤을 불러온다. 그녀는 딸의 메모에 적힌 "아무도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지 않는다." 는 말과 안토니오의 등장으로 흔들리게 된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맞춘 나를 만들어 가는 것이 결국 나를 행복하게 하지는 못한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던 엠마는 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리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인정해주는 사람을 향해 달려 간다. 과연 그녀의 결정을 잘못했다고 우리는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난 못한다고 본다.

 

내 생각엔 이렇다. 타인의 기대에 맞춰 5년 정도는 살 수 있다고... 하지만 10년을 넘어서서 그렇게 살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행복해질 순 없다. 왜냐면 자신이라는 것은 인생에서 결코 버려서는 안되는 최후이자 최선의 것이니 말이다. 자신을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데, 자신을 뺀 인생을 어떻게 유지해 나갈 수 있겠는가. 하여 엠마의 불륜은 내겐 불륜이라기 보다는 반란같아 보였다. 자신을 찾아가기 위한...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장면에서 남편이 한 말은 의미심장하다. " 넌 이제 존재하지 않아" 라는 선언 말이다. 절대 죽지 않겠다고 선언하던 시아버지에 못지 않는 거만한 말 아닌가. 어떻게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아마도 그것이 엠마의 가족내에서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아닐까까 싶었다. 그런 점이 엠마를 불행하게 했고 말이다. 이런 상황일진대, 과연 누가 감히 엠마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오히려 자신을 찾아가려는, 그리고 자신에게 솔직한 엠마가 대단해 보였다. 모든 것을 버리고서라도 사랑을 찾으려 하는 그녀의 심정이 비겁해 보이지 않았고 말이다. 하니, 사랑을 하는 사람들을 주의할 일이다. 과연 당신은 상대의 무엇을 보고 있는가라는 것을. 상대를 나에게 맞추려는 시도는 언제나 실패한다. 나를 상대에게 맞추려는 시도 역시 마찬가지일테고 말이다. 결국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고 받아줄 수 있는 관계가 가장 건강한 관계의 시작이 아닐까 한다. 평생 이어져야 하는 기본일 터이고...

 

추신 1-- 참 ,예술이란...이렇게 인생을 깔끔하게 이해하게 만드는 창이 되기도 한다. 아들 친구와의 불륜이라는 막장이라 할만한 소재를 가지고도, 이렇게 훌륭한 영화를 만들어 내다니, 놀랐다. 연기자들의 연기도 좋고, 배경도 눈이 시릴 정도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이야기 전개 흐름이 탁월하게 자연스럽다는 것이었다. 전혀 설득하거나 설명하는 논조가 아닌데도, 그냥 왜 엠마가 그렇게 행동하게 됐는지, 보고 있으면 이해가 됐다. 참 대단한 설득력 아닌가. 어떻게 그걸 그렇게 쉽게 해내는지 보는 내내 감탄하면서 봤다.

 

추신 2--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마지막에 엠마가 집으로 들어오는 표정을 보더니 냉큼 달려가 가방을 싸주던 가정부 이다의 모습이었다. 가방을 열심히 싸주다 엠마와 포옹을 하는 장면은 어찌나 짠하던지...  이다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엠마가 얼마나 힘들게 재벌가 사모님 노릇을 하고 있었는가 하는걸 말이다. 여자들의 진한 연대가 느껴지던 포옹,  난 그래서 여자들이 좋다.

 

추신 3--아이들 동요에 "당신은 누구십니까?" 라는 노래가 있다. 기억나실지 모르겠는데, 그 노래의 끝은 형용사로 끝맺게 되어 있다. 명사가 아니라... 그렇다. " 당신은 누구입니까?"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대답할 형용사가 하나 정도는 있으신지, 한번 되짚어 볼 일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이조부 2011-02-16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재미 있다가 난리던데 보셨네요 ㅎㅎㅎ

글에 덧붙이는글 원투뜨리가 흥미롭네요

영화를 꼭 봐야겠다고 결심하게 됫어요 ㅋㅋ

이네사 2011-02-20 18:52   좋아요 0 | URL
그래요? 재밌게 보셨음 좋겠네요. 뭐, 재미는 아니라도 워낙 잘 만든 영화라서, 보시면 후회하시진 않을 거여요. 이렇게 잘 만들기도 쉽지는 않거든요. 취향을 떠나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