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춤 - The King Is Danc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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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프랑스, 이태리 출신의 무명 음악가였던 륄리는 자신이 출세하려면 왕에게 기대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14살때 왕위에 오른 변덕스럽고 까탈스런 왕 루이 14세, 그는 통치자라기보단 예술가가 되고 싶어했고, 그런 그의 마음을 잘 읽어낸 륄리는 곧 왕의 총혜를 받게 된다. 단지 공연을 감상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연기에까지 직접 나서는 왕을 위해 륄리는 음악과 의상, 연출등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한다. 입안의 혀 같이 구는 륄리를 위해 왕은 그의 치부를 눈 감아주고, 왕의 총혜를 놓치기 싫은 륄리는 점점 충성의 도를 넘어선다. 하지만 변치않을 것 같던 왕의 사랑도 시간이 가면 식을 거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 왕의 관심이 멀어지자 륄리는 삶의 의미를 상실하는데...

 

왕의 춤이라는 제목에 맞게 루이 14세가 온통 황금색으로 치장을 하고 춤을 추는 장면이 압권이던 영화다. 인격장애자가 분명한 왕에게 변치않는 사랑을 기대한 릴리, 그가 냉정하게 왕에게 외면당하는 전개 과정이 흥미진진했다. 왕을 자신의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 륄리는 얼마나 어리석은지... 왕의 입장에서보면 그는 그저 쓰다 버린 휴지나 매한가진데 말이다. 그와 동등하다 생각하고 맞먹으려 대들던 륄리를 향해 주제를 알라고 일침을 가하는 왕의 눈빛이 서늘했다. 아, 오늘날에 신분제가 없다는건 얼마나 다행인가 싶은 장면이었다. 폐병장이로 나오는 몰리에르의 모습도 책을 통해 많이 들었던 터라 흥미있게 지켜봤고, 시대를 고증하는 화려한 의상, 섬세하게 연출된 춤, 영상보다 더 인상적던 배경 음악등으로 볼거리가 많았지만 이야기 구조가 다소 빈약하게 느껴지는 것이 단점이다. 음악과 미쟝센에 치중하느라 아마도 줄거리엔 그다지 신경쓰지 못한 모양이다. 이야기가 더 완벽하게 짜여졌더라면 좋았을거란 아쉬움이 남는다. 그나저나 재능이 없음에도 불멸의 예술가가 되고 싶어한 왕과 권세를 잡기 위해 그를 이용하는 천부적인 예술가의 대비라니...모든 것을 다 갖고 있지만 정작 재능은 없는 왕과 재능은 있지만 예술보단 권력을 갖고 싶어한 천박한 예술가 모두 불쌍해 보였다. 아마도 인생의 아이러니가 바로 그런것이겠지.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갈망하는 것 말이다. 그 당시엔 예술가가 권력에 절절매야만 하는 구조였기에 가능한 이야기나, 만약 두 사람이 현대에 산다면 그 둘의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다. 그때완 다르게 전개되려는지, 아니면 현대에도 예술가는 여전히 부자들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야 하니 사정은 마찬가지일지...후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든다. 예술가도 살아가려면 현실과 타협 해야 하니 말이다. 비록 륄리처럼 자존심마저 버리고 완전히 자신을 바치진 않는다 해도... 특이한 눈요기를 원하시는 분은 봐도 좋을 듯...혹 내용이 성에 안 찬다면  배경 음악 듣는 것만으로도 만회가 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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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의 마지막 로맨스 - Last Chance Harv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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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런던에 온 하비 샤인은 (더스틴 호프만 분) 냉랭한 전처의 반응에 심사가 불편하다. 한때 잘 나가던 광고 음악 쟁이였으나 이젠 디지털의 공세에 떠밀려 퇴출 일보직전인 그는 런던에 와서도 상사에게 전화를 걸며 자리 보전에 혈안이다. 이혼 후 서먹해진 딸, 그럼에도 결혼이란 중차대한 예식에 앞두고 있기에 민망함을 감추고 있던 그는 계부가 식장에서 자신을 인도할거란 딸의 말에 마음이 상하고 만다. 식장에만 겨우 참석하고 뉴욕으로 떠나려던 그는 비행기를 놓치고 설상가상으로 해고 통지까지 받자 좌절한다.

 

한편 히드로 공항에 근무하는 케이트는 엄마에게서 끊임없이 걸려오는 전화를 받느라 연애도 제대로 못 해본 노처녀다. 노처녀다운 무채색의 날들을 보내고 있던 그녀는 공항 식당에서 우연히 하비를 만난다. 자신이 얼마나 끔찍한 하루를 보냈는지 털어놓을 상대가 필요했던 하비는 까탈스럽게 받아치는 케이트 덕분에 속이 좀 풀린다. 하루를 더 런던에서 체류해야 했던 하비는 케이트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고, 그런 그가 싫지 않던 케이트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하비가 딸때문에 맘이 상해 있다는걸 눈치 챈 케이트는 하비를 부추켜 딸의 피로연에 참석시킨다. 신부 아버지의 축사가 있겠다는 사회자의 말에 계부가 일어서자, 늘 뒤로 물러서있던 하비는 자신이 아버지라면서 일어난다. 감동적인 축사를 하고나서 마음이 풀어진 하비는 케이트에게 감사를 하면서 내일 만나자는 약속을 한다. 약속 시간에 나간 케이트는 하비가 오지않자 실망을 하는데...

 

삶이 전반적으로 잘 풀리지 않은채 훌쩍 중년이 되어버린 두 남녀가 서로를 위로하다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줄거리다. 어울리지 않는 배경의 두 사람이 만나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들을 잔잔하게 풀어나가고 있었는데, 딸의 결혼을 바라보는 이혼한 아버지의 복잡한 심리가 더스틴 호프만의 열연에 힙입어 쉽게 공감이 가는게 볼만하다. 20대 청춘의 로맨스처럼 낯뜨겁거나 뻔뻔하지 않은 것이 좋았고, 어쩜 인생에 마지막일지 모르는 기회를 잡으려 용기를 내는 두 중년의 사랑도  감동적. 단지 살짝 현실성 없어보인다는 점이나, 낯선 이방인들이여야 하는 두 남녀 주인공들이 한 20년은 족히 함께 산 부부같이 느껴진다는 점이 아쉬웠다. 엠마 톰슨과 더스틴 호프만, 키 차이만 빼곤 너무 잘 어울린다. 어쩜 영화속에서 자주봐서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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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혼돈 - Quiet Cha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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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췌한 모습의 남자가 벤치에 앉아있다. 실은 그는 딸의 학교 앞 벤치에서 진을 치고 있는 중이다. 다소 흐트러진 차림이지만 얼마전까지만해도 넥타이에 명품 양복에 완벽한 출근 복장으로 저 자리에 앉아 있었다.  도대체 그는 어떤 이유로 학교 앞 벤치를 지키게 된 것일까?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기로 하자.

 

별장으로 휴가를 간 피에트로 팔라리니( 난니 모레티 역)는 해변에서 동생과 공놀이를 하다 물에 빠져 살려달라는 여인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위험하다는 주위의 만류에도 물에 뛰어든 그 둘은 다행히 여인들을 구하지만, 아무도 그들에게 감사의 인사조차 하지 않자 괜한 일을 했다며 불평한다. 구해준 여인들의 미모가 어땠느니 저땠느니 하며 별장으로 돌아온 형제는 그 사이 피에트로의 아내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걸 알게 된다. 아빠를 발견하고 뛰쳐 나온 딸은 도대체 아빠는 어디에 있었냐고, 내가 그렇게 불러댔는데 라며 절규한다. 믿기 힘든 현실이 갑자기 자신의 앞에 뚝 떨어진 피에트로는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한채 멍한 표정을 짓고 만다.
 

아내의 장례식이 끝나고 난 뒤 딸의 첫 등교일... 딸이 한없이 안스럽기만 피에트로는 딸에게 학교 밖에서 지키고 있을테니 걱정말라고 말한다. 그리곤 그 말 그대로 하루종일 학교 앞에서 죽치고 앉아 딸을 기다리기 시작한다. 단 하루로 끝이 날 줄 알았던 그의 학교 지킴은 그 이후로도 쭉 이어져서 점차 그는 학교앞 생활에 익숙해지게 된다. 비서를 통해 회사 일을 하고, 친구들도 벤치로 그를 찾아오며, 학교 창문을 통해 딸과 손 인사를 하고, 주변 까페에서 식사를 해결할 곳도 마련한다. 매일 학교 앞을 어슬렁대면서 주위를 살피던 그는 늘 같은 시간에 지나치는 낯선 사람들에게마저 익숙해진다. 차의 삑삑대는 경적 소리를 좋아하는 다운증후군 아이를 위해 매번 신호를 보내주고, 개를 산책시키는 미모의 여성에게 반하기까지 하는 그. 괜찮다는 말에도 그의 말에도 불구하고 지인들은 그가 아내와의 사별로 정신이 완전히 나간 모양이라며 걱정하기 시작한다. 

그 중 한 인물이 바로 처제 마르타다. 언니의 죽음으로 형부 못지 않게 맛이 간 그녀, 아니 그보다 더 화끈하게 맛인 간 그녀는 형부를 만나러 온 학교 앞에서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옷을 벗을 만치 열정적인 여자다. 유부남의 아이를 가졌다고 고백하는 그녀는 너무도 냉정하게 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형부를 비난한다. 사랑하지 않았으니 언니의 죽음을 그렇게 침착하게 받아들이는게 아니냐고 다그치는 처제에게 피에트로는 발컥 성을 낸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피에트로의 동생도 그를 찾아 학교로 온다. 넋을 잃은거냐, 비탄에 잠긴거냐, 상심해서 이러는거냐는 동생의 질문에 피에트로는 다 아니라고 대답한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자신은 상관하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한편 저녁식사 모임에 나갔던 동생 카를로스는 할 말이 궁해지자 해변에서 여인들을 구해준 이야기를 모험담처럼 들려준다. 그의 말을 유심히 듣고 있던 엘레노라라는 여인이 통곡을 하고, 동생은 그때 해변에서 구해준 여인중 하나가 그녀임을 알게 된다. 감사 인사를 하겠다면 역시 학교 앞으로 피에트로를 찾아온 엘레노라는 자신을 구해주러 갈때 만류했던 인물이 누군지 혹 알겠느냐며 사진을 건넨다. 구조를 만류했던 남자가 사진속의 인물이며 그가 알레노라의 남편임을 알게 된 둘은 조용히 충격에 휩싸인다. 피에트로가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있던 그 순간에 한 남편은 아내가 죽기를 바랬으며,  또 그런 그녀를 자신이 구했다는 아이러니가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마도 이런걸 두고 운명의 비틀림이라고 하는 것이겠지. 후에 엘레노라가  대기업 회장의 정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불행한 부부의 숨겨진 뒷 모습을 보게 된 것 같아 찝찝해 한다. 친구인 장 끌로드의 험난한 결혼 생활마저 피에트로를 심난하게 하는 가운데, 그는 엘레노라의 매력에 잠시 빠져든다. 

딸에게 책을 읽어주는 피에트로, 눈이 오던 날 기뻐 날뛰는 딸을 보고 흐믓해진 피에트로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뭘 받고 싶냐고 묻는다. 큰 선물을 하고 싶다면서... 엄마의 죽음을 조용히 당차게 이겨내고 있던 딸은 아무리 좋은 일도 두번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면서, 이젠 자신을 그만 지켜도 되니 아빠의 회사로 돌아가라고 주문한다. 영리한 딸의 말에 말문이 막혀 버린 피에트로, 그 누구의 말에도 귀 기울이지 않던 그는 그렇게 딸의 한마디에 고집을 꺾게 된다. 그가 딸의 학교를 등지고 회사로 차를 몰고 가는 장면으로 피날레를 장식하던 영화였다.
 
사랑하는 배우자나 형제등을 잃은 사람에게 세상은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생판 다르게 느껴지는 세상에 허둥대며 적응해나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무엇보다 상실감은 소화해 내기 쉽지 않은 감정이다. 그럴때 평소때라면 전혀 하지 않을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 어쩜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슬픔은 당신만의 것이라고 믿는 우리네 세상에선 소리높여 우는 것마저 여의치 않다. 죽은 이를 묻는 절차를 밟고 나면 남겨진 이들이 곧바로 정상적인 일상으로 되돌아 올 거라 믿지만 ,그들은 알까? 그때가 바로 남겨진 자들에게 고통과 홀로 대면해야 하는 시간의 시작임을 말이다. 그렇게 남겨진 자들은 자신들의 일상을 어떻게 살아나갈까? 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영화는 상실의 충격에서 절절매는 한 남자를 등장시켜 죽음에 대해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비록 겉으로는 조용하고 침착해 보이지만 속은 죄책감과 고통과 불안이란 감정의 회오리 속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이 연약하기 그지없는 남자를 통해서 말이다.
 
그 남자는 학교 앞 공원 벤치에서 하교하는 딸을 기다리며 하루종일 진을 치고 산다. 그건 아무리 너그럽게 봐준다해도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이다. 비록 그것이 엄마를 잃은 딸을 위한 배려 같아 보이지만,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않다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 아내를 잃었다. 달랑 세명뿐인 가족이었지만, 자신의 가장 소중한 울타리에 구멍이 뚫려 버렸다. 주인공은 나머지마저 잃게 되는 것은 아닐까 불안에 떨게 된다. 그런 이유로 그는 딸의 학교 앞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적어도 지키고 있으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다른건 몰라도 사별의 고통만큼은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주인공은 그리하여 오늘도 내일도 학교 앞을 지킨다. 그런 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지인들은 그를 보면서 혀를 찬다. 아내를 잃더니 완전히 맛인 간 모양이라면서...물론 그는 그들의 반응에 상관하지 않는다. 타인의 생각에 응대할 정도로 감정의 여유가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묘미는 학교 앞에서 진을 치고 있던 그가 점차 주변의 상황을 의식하게 되면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있었다. 그를 중심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상대하던 그는 자신의 상황을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된다. 바람 핀 아내가 죽기를 바랐던 남편과 아무리 바람이 났다지만 그래도 아낸데 살릴 생각을 안 한 남편에게 충격을 먹은 아내, 건 입을 주체 못하는 아내에게 열 받은 남편과 그런 남편을 정신병자 취급하는 아내등 타인의 비참한 결혼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는 자신의 결혼을 되돌아본다. 그리곤 비록 생각지도 않게 아내를 잃어야 했지만 아내를 사랑함에는 모자람이 없었다는 생각에 위안을 얻는다. 아내가 없는 삶에 새로운 일상이 되어준 사람들에게 다정한 시선을 보내던 그는 점차 아내가 없다해도 삶이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깨달음을 얻게 한데 다른 누구도 아닌 딸의 도움이 컸다는 것은 의미심장했다. 사별의 고통을 함께 겪은 딸만이 그를 통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일도 두번은 안 일어난대, 그러니 나쁜 일이야말로 두번 일어날리 없지 않겠어? 아빠, 내 걱정말로 이젠 세상을 향해 나가...라며 아빠의 등을 떠미는 딸, 참 흐믓한 장면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이탈리아 영화로, 그들의 세상을 바라보는 다정하고 인간적인 시선이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감독이 슬픔을 극복하는 시간을 지극히 천천히 흘려 보낸다는 점이었다. 사람들에게 슬픔이란 정면을 마주하기 힘든 감정이다. 고통에 처한 사람들에게 "빨리빨리" 회복될 것을 주문하는 것은 그만큼 그것이 불편하단 증거일 것이다. 내 마음 편하려고 네 감정을 추스리라 다그치는 우리 사회에선 "아직도? 여전히?" 고통속에서 허우적대는 사람들이 감정적인 사치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될른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별의 고통은 정말로 시간을 필요로 하는 감정적 에너지다. 격하게 울지 않는다고 해도 그 속이 어떨지 짐작할 수 없는 것이며, 고통때문에 맛이 살짝 가도 괜찮다고 할만큼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놀란 것은 아내를 잃은 그에게 사람들이 시간을 준다는 것이었다. 비록 완벽한 이해를 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에게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모두 공감하고 있단 뜻이다. 솔직히 그런 여유가 보는 내내 참 부러웠다. 감정을 겪어내고 이겨내는 것은 지극히 사적인 경험이며 자신이 아니면 극복해낼 수없는 것이니 말이다. 도움을 줄 수는 없지만 기다려 줄 수는 있다는 그들의 태도는 우리가 배워야 하는게 아닐까 싶었다. <아들의 방>을 감독한 난니 모레티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한번 봐도 좋을만한 영화로, 어찌된게 그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멋있어지지 싶다. 그를 좋아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인생의 불공평함을 목청 높여 주장하고 싶어졌을지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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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의 연인이었던 아내와의 사별 후, 살던 집에서 쫓겨나 요양원에 들어가게 된 칼 프레드릭슨은 생활을 꾸려 가느라 미처 떠나지 못한 남미로의 모험을 해보기로 결심한다. 풍선장수였던 그는 자신의 장기를 살려 거대한 풍선을 매달아 통채로 집을 하늘로 날려버린다. 이제서야 자신의 뜻대로 일이 펼쳐나가는 것에 저의기 만족한 칼, 커튼을 돛대 삼아  바람을 가르며 평화로이 하늘을 날던 그는 밖에서 "똑똑똑" 하는 소리가 들리자 자신의 귀를 의심한다. 

  속는 셈치고 대문에 나섰던 칼은 불청객 하나가 무임승차했음을 알게 된다. 그는 바로 며칠전 칼의 집에 나타나 "노인 공경 뱃지"를 타야 한다면서 도와줄 일이 없냐고 묻던 8살짜리 소년 러셀이었다. 자칭 황야의 탐험가로 수많은 체험 뱃지를 탔지만 실은 야외에 한번도 나가본 적이 없고, 텐트를 쳐 본 적도 없으며, 밴드를 어떻게 붙여야 하는지도 모르는, 한마디로 아는 것은 많지만 경험은 전무한 이 소년 훼방꾼은 칼의 요청대로 '도요새'를 쫓아 다니다 본의 아니게 칼의 모험에 끼여들게 된 것이었다. 당황한 칼은 어떻게 해서든 러셀을 떨궈 놓으려 하나, 곧이어 나타난 거대한 적난운에 휘말려 그만 러셀을 돌려보낼 시기를 놓치고 만다. 

 

폭풍에 휘말렸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칼은 안개가 걷히고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놀라고 만다. 그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그 남미의 폭포가 건너편에 있는게 보였기 때문이다. 폭포 위에 집을 짓고 싶어하던 아내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칼은 죽는 한이 있어도 집을 끌고 폭포앞으로 가기로 결심한다. 마치 전생에 엄청난 잘못이나 저지른 듯, 풍선이 매달린 집을 끌고 한발 한발 폭포쪽으로 걸어가는 칼과 러셀, 만약 그들에게 더 이상의 불청객이 없었다면 칼의 소원은 보다 일찍 이뤄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엄청나게 먼 남미에서도 그들을 반기는 일단의 무리가 있었으니....
 

초코렛을 매개로 친구된 새 케빈러셀은 곧 환상의 짝을 이룬다. 칼은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는 생전 처음 보는 새 케빈을 돌려 보내기 위해 애를 쓰나 오히려 케빈은 그를 놀리려는 듯 열심히 쫓아다닌다. 케빈을 떨쳐내려 애를 쓰고 있는 사이 말하는 개 더그가 나타나 일행의 진로는 한층 더 정신사나워진다. 목에 찬 개 통역기를 통해 인간의 언어를 사용할 줄 아는 더그는 실은 개 무리에서 멍청이로 통하는 왕따 신세, 더그는 새를 잡아가면 주인에게 칭찬을 받는다면서 케빈에게 "포로"가 되달라고 애처롭게 애걸한다. 둘이 다 싫다면서 따라오지 말 것은 주문하는 칼, 하지만 그가 어디로 가든 어디에 있든 그 둘이 한발 앞서 기다리고 있자 칼은 절망에 빠진다.  과연 칼은 이 구박을 받아도 꿋꿋한 낙천주의자들이자, 가는 곳마다 사고다발인 러셀 일행을 따돌리고 집을 폭포에 갖다 놓을 수 있을 것인가? 

 과거 전설적인 탐험가였던 찰스 먼츠는 자신이 남미에서 가져온 새 화석이 가짜라는 추문으로 사회에서 매장된다. 기필코 그 새를 찾아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려 한 그는 일단의 개 무리와 함께 남미 동굴에서 칩거하고 있었다. 개 무리에 쫓겨 절체절명의 상황에 빠진 칼 일행은 다행히 먼츠를 만나 구조된다. 개 주인이 어릴 적 자신의 영웅 먼츠라는 걸 알아본 칼은 매우 기뻐하나, 그가 찾고 있는 새가 케빈이라는 사실을 눈치채고는 잽싸게 도망간다. 새를 잡겠다는 먼츠의 의지는 이제 거의 강박 수준, 그가 찾는 새가 러셀의 애완새라는걸  알게 된 먼츠는 칼 일행의 뒤를 쫓는다.  칼과 러셀케빈더그의 도움으로 간신히 먼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만 그  도중 케빈은 다리를 다치고만다.  새를 잡겠다는 먼츠의 집념이 도를 더해가는 가운데, 러셀은 다리를 다친 케빈케빈의 아가들에게 데려다 주자고 주장한다.  마지못해 따라 나선 칼, 과연 칼 일행은 무사히 케빈을 집에 돌려 보낼 수 있을 것인가? 폭포 옆에 집을 짓고 싶다는 칼의 꿈은그렇게  점점 멀어져만 가는데...
 
이 영화를 두 마디로 정의하자면 "허를 찌르는 유머와  참신함"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군더더기 없는 전개에 재치있고 맛깔난 대사들, 아귀 딱딱 들어맞는 구성과 주인공들의 개성 넘치는 행동 하나하나에 곁들여진 유머, 일관성있고 설득력있는 주인공들의 성격때문에 만화 영화임에도 그다지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만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끌어나갔다는 의미다. 칼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아름다운 부부애, 칼이 풍선 집을 만들게 된 사연과 러셀의 등장, 그리고 본격적으로 시작된 탐험등 어찌나 정신 사납게 관객들을 끌고 다니던지... 웃고 ,감동하고, 공감하고 다시 웃어대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올해 본 영화 중 가장 재밌고 기억에 남는 영화였는데, 누가봐도 귀엽고 깜직한 주인공을 내세운게 아니라 공감이 가는 등장인물들을 내세운 것이 무엇보다 맘에 든다. 사랑하는 아내와 사별한 뒤 더 이상 잃은 것이 없다는 심정으로 모험이 나선 괴팍한 칼 할아버지, 그 팍팍한 인상 뒤에 그리도 찐한 정이 남아 있을 줄 누가 알았으리요. 러셀 일행 덕분에 팔자에도 없는 할아버지 인디애나 존스가 되어버린 그를 보면서 힘이 솟는 듯했다. 귀여운 구석이라곤 찾을래야 찾기 힘들지만 알고보면 선하고 딱한 사정을 가진 러셀은 또 어떤가? 영화가 끝날 즈음엔 그가 그 어떤 만화속 주인공보다 귀엽게 느껴졌다. 그외  천방지축이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도통  말이 안 통하는 괴짜 새 케빈, 여차하면 망신용 때깔을 쓰고 벌을 받는 왕따 개지만 충성심만은 누구 못지 않는 개 더그등 네 명의 주인공들이 벌이는 하모니가 뛰어났다.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도 진실로 사랑스런 면이 있다는 점을 설득력있게 표현하고 있었던 점이나,  생각지도 못한 세대를 뛰어 넘는 가슴 벅찬 우정, 무엇보다 그들이 자신의 희망과 꿈을 찾아가는 모습은 감동적이었으니, 비록 보는 내내 한없이 정신 사납긴 했지만, 마음 따스해지는 장면들로 끝을 맺던 영화이자,  놀랍도록 선명한 그림에 힘입어 프레임 하나하나가 입이 딱 벌어지도록 아름답던 영화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단 아주 어린 아가들이 보기엔 좀 무서운 장면들이있다는 점을 알려 드리고 싶다. 하늘로 나는 장면이라든지, 폭풍에 집이 휩쓸려 간다는지, 절벽 앞에 서 있는 장면이나, 케빈을 구조하기 위해 하늘에서 벌이는 소동들은 어른인 내가 보기에도 아찔했으니 말이다. 객석에서 간간히 "아빠, 무서워...."를 외치는 아가들의 소리가 들려 오던데, 비록 내 관객들과 함께 웃긴 했지만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도무지 이걸 3D로 보면 기분이 어떨까? 혹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멀미를 하는건 아닐까? 조만간 확인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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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케인 - Citizen K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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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한 재벌의 죽음을 알리면서 시작한다. 찰스 케인, 엄청난 부를 바탕으로 한 시대를 풍미하며 남들이 누려보지 못한 삶을 살았던 그가 노환으로 사망한 것이다. 부고 기사를 쓰기 위해 모인 기자들은 남다른 삶을 살았던 그에게 흥미를 느끼고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삶을 조명해 보기로 한다. 기이한 인물이었던 만큼 그에 걸맞는 특별한 기사를 쓰고 싶은 담당 기자는 그가 마지막으로 내뱉었다는 <로즈버드>란 말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건 아닐까 추측하게 된다. 과거에 케인과 연분이 있었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 말의 의미를 캐던 기자는 그 뜻을 아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저으기 실망한다. 케인의 전처와 매니저, 친구,그리고 정적을 차례로 만나보면서 재벌에 얽힌 흥미진진한 일화를 기대했던 기자는 오히려 외롭게 죽어갈 수 밖엔 없었던 재벌의 사연만이 드러나자 한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 마음이 짠해지는데...

 
만약 당신의 배우자가 비열하고, 자기 밖엔 모르는데다, 냄새 나고, 추잡하며, 착하거나 선량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해보자.그런 사람을 견뎌내고 결혼 생활을 지속해 나가려면 상대에게 얼마만큼의 돈이 있어야 할까? 대략 50억이 마지노선이라고 한다. 다르게 말해보면 인간의 품성값이 50억은 된다는 뜻이다.

여기 이 영화의 주인공 케인은 그보다 더 돈이 많은 사람이다. 그야말로 전 세계에서도 손꼽힐만한 재벌이다. 그런데도 그의 주변엔 사람이 남아 나질 않는다. 덕분에 그는 하인을 부르면 메아리가 울려오는 넓고 넓은 저택에서 홀로 쓸쓸히 외롭게 죽어간다. 그의 친구도, 전처도, 매니저도, 그의 일생을 추적하던 기자도 그런 그가 한없이 안스럽지만, 그렇다고 그의 인생을 바꿔 놓을 수는 없었다. 

돈잔치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 호화롭기 그지없는 성을 지어 살고 있는 케인, 화려한 외양과는 달리 거대한 무덤이 되버린 저택에서의 그의 삶은 가히 충격적으로 비춰졌다. 돈만 있으면 행복이건 우정이건 사랑이건 다 살 수 있을거란 단순한 믿음이 환상에 불과하다는걸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상은 그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오히려 돈이 인간성을, 성품을  보충해주진 못한다는걸 설득력있게 증명하고 있었다. 돈이 아무리 많으면 뭐하나. 외로워 소리를 질러도 응대해 줄 사람 하나 없이 적막하기만 한데... 그런 삶을 그 누가 행복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케인은 현대와 같은 금전 만능주의 세태에서도 돈으로 사지 못하는 것이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전세계에서 수집해 온 온갖 유물과 보물로 자신의 저택을 채워 놓았지만 정작 인간의 온기는 채울 수 없었으니 말이다. 인간적인 유대가 박탈된 삶이 얼마나 비참하고 고통스러운가를 보여주고 있었던 찰스 케인, 혹시 이 세상에 돈으로 사지 못하는건 아무것도 없다고 믿는 사람이 있으시다면 한번 이 영화를 보시길 권한다. 너무도 쉽게 생각이 바뀌실 테니 말이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만한 걸작이라는 명성이 헛된지 않던 영화였다.정녕 이런걸 두고 시대를  앞서가는 작품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너무 현실적이고 사실적이라 지금 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으니 말이다.오히려 지금의 영화들은 이 영화에 비하면 퇴보했다고 보여질 정도였다. 보기 전엔 67년전에 찍은 고전이라 다소 촌스럽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필요없는 기우였다. 오히려 현재 영화를 찍어 내는 날고 긴다는 감독들중 이런 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 의문이었다. 실은 이런 영화가 만들어 졌다는 사실조차 믿겨지지 않는다. 한마디로 탁월했다.영리한 대본에,완벽한 연기,군더더기 없는 카메라 워크, 설득력있는 심리묘사, 등장인물들의 뚜렷한 개성,상황을 드라마틱하게 강조하던 인상적인 조명 처리,이야기를 풀어가는 짜임새 있는 구조, 유치하지 않는 현실성있는 줄거리,모순 없는 인간에 대한 통찰력, 재치 있는 대사등, 한 천재의 번득이는 창의력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극치를 보는 듯했다. 시민 케인에 대한 찬사는 결코 호들갑이 아니었으니,탁월한 Masterpiece라는 평에 조금의 이의도 제기할 수 없었다.특히 오손 웰스의 천재성이라니...너무 잘 만들어서 저주 받았다는 말이 그저 영화광들의 호들갑인줄 생각했는데, 세상에, 정말 그렇더라.도무지 어떤 인간이길래 저런 영화를 25살에 찍어낼 수 있었던 것일지, 오손 웰스에 대한 궁금증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뭐, 장점들만 떠든다 해도 일박 이일도 모자라지 않을까 싶으니,다른 건 제쳐 두고 내가 이 영화에서 인상적으로 본 주인공의 심리를 분석해보기로 하겠다. 이 영화속의 주인공의 심리에 대해 생각나는데로 적어 보자면...

 1.우울증에 대해--주인공 케인은 무엇이건 사들여 집안을 꽉꽉 채운다.그리고 하나도 버리지 않는다.돈이 많으니 사고 싶은걸 사는게 뭐 어떻냐고 생각하실지 모르겠는데, 실은 그렇지 않다. 필요없는 물건을 과도하게 사들이는 것은 우울증의 전형적인 증세이며 물건을 버리진 않는건 심리적 불안감을 나타내는 것이다. 여자와는 달리 남자들의 우울증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중에서 비교적 뚜렷하게 드러나는 증상이라 한다면 아무 생각없이 무조건 사들이고 보는 것이다.그러니 만약 배우자가 정신없이 사들이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면 돈을 낭비한다고 바가지를 긁기 전에 우울증에 걸린게 아닌가 의심을 해보는 것이 좋다.엄청난 갑부들이 갑자기 자살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그들은 모두 죽기 전에 한동안 엄청나게 사들이는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사람들은 그들이 돈 자랑이나 투자를 한다고 생각했지만 진실은 그와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알고보면 도와 달라는 비명 소리였다는 것을 그 누가 그걸 짐작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인간의 심리라는 것은 그렇게 겉보기와는 다를때가 많다.

 

2.경계성 인격 장애에 대해--자칭 "보통 사람 ,시민 케인" 이라고 자신을 홍보하고 다녔던 그, 하지만 재밌게도 보통 사람일뿐이라는 그의 주변엔 인간이 남아나질 않는다. 그를 겪어 보지 않는 사람은 그게 선뜻 이해되지 않을지 모르겠는데, 친구들이건 애인이건 아내이건간에 그 넘쳐나는 돈에도 불구하고 상처를 입고 도망가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 <경계성 인격 장애>의 전형으로 보여지던 케인, 전형적인 증상을 보자면 자신만을 사랑하는 성향에 사람들이 늘 자신을 버리고 떠난다고 불평한다는 것이다.남을 사랑하는 능력이 아예 없다고 보면 되는 사람들로, 그 남이란 리스트에는  배우자,친구,심지어는 자식까지 포함되니 참,기막힐 노릇이 아닐까 한다. 심리학계에선 자라는 동안의 어떤 트라우마나 유전이 성격에 영향을 미친게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는데, 이 영화속 주인공의 경우는 어린 시절 엄마와 일찍 헤어져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야 했던 것이 주요한 이유가 아닐까 싶었다.--그가 죽어가면서 외친 <로즈버드>의 의미는 이와 일맥상통한다.그가 유일하게 행복했던 시절의 기억이니까.-- 

안타까운 것은 현재까진 이런 사람들을 고칠 약이 없다는 점이다. 왜냐면 그건 성격으로 형성된 것이지 정신병이 아니기 때문이다.그렇다고 안 됐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건 그들의 파괴력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서 하는 소리다.영화속에서  케인의 두번째 처인 수지가 자살을 시도 하고, 불평을 해대다, 결국 살기 위해 떠나는 장면을 주의 깊게 보시기 바란다.이는 경계성 인격 장애자와 사는 사람들이 겪게 되는 전형적인 전개 과정이니 말이다.그러니 당신의 딸이나 아들이 배우자감을 데리고 왔다면 다른건 차지하고서라도 혹 그들이 경계성 인격 장애가 아닌가 정도는 살펴 보시는게 좋을 것이다.최소한  자녀가 자살하는 모습만은 보고 싶지 않으실테니...

좋은 영화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생각들과 풍부한 영감을 주고, 색다른 시선으로 사물을 보게 하며, 진실을 볼 수 있는 눈을 튀우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영화는 두말할 것도 없이 좋은 영화 ,수작인 영화였다. 영화사에 길이 빛날 <시민 케인> ,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한번은 꼭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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