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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 Confessions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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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종업식 날, 1학년 담임인 유코는 제멋대로인 아이들 사이를 누비면서 차분하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자신이 미혼모가 될 수밖엔 없었던 사정과 딸의 아버지가 에이즈 환자라는 것, 그리고 애지중지 키운 딸이 얼마전 사고사로 죽었다는 것을... 어른이 들어도 감당하기 힘든 이야기지임에도, 별 관심이 없는 아이들은 흘려 듣는다. 산만한 아이들을 상대로 지극히 담담하게 이야기해 나가던 유코는 " 내 딸을 죽인 사람은 우리 반에 있습니다. 이제 난 너희들의 선생님이 아니니 복수를 하려고요"라고 선언한다. 그제서야 엄청난 이야기라며 조용해진 아이들 앞에서 유코는 왜 자신이 스스로 복수를 하러 나서게 되었는지 설명해준다. 그녀의 딸을 풀장에 빠뜨려 죽게 만든 두 명은 13살 형사 미성년이기 때문에, 혐의가 입증된다고 해도 반성문 한 장으로 끝이 날 뿐이라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그녀를 분노하게 하는 것은 선선히 살인을 했다고 자백하면서도, 전혀 뉘우침이 없는 둘의 태도였다. "정 억울하면 경찰에 고발하던가"그것이 범죄를 주도한 슈야의 말이었고, 종범에 불과했지만 결과적으로 유코의 딸을 죽게 만든 장본인인 나오키의 엄마는 자신의 아들이 불쌍하다고 되뇌일 뿐이었다. " 생각 끝에 경찰에 맡기기 보단 내가 나서기로 했어요. " 라면서 유코는 조금전에 둘이 마신 우유에 에이즈에 감염된 피를 넣었노라고 말한다. 곧 반은 아비규환이 되어버리고...
봄 방학을 보낸 아이들은 새 담임과 함께 2학년을 시작한다. 하지만 중학생 다운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는 듯한 외면과는 달리 유코의 반은 안에서 곪고 있다. 자신이 에이즈에 걸린 줄 알고 광기에 휩싸인 나오키는 학교에 나오질 않고, 아무일도 없다는 듯 꼬박꼬발 출석하는 슈야를 아이들은 이지메한다. (처벌을) 또래에게 더 맡기는 것이 나았구나 싶게 그들은 잔혹하기만 하다. 영문을 모르는 순진한 새 담임은 전직 담임인 유코의 조언에 따라 아이들을 지도해 나간다. 그것이 유코의 계획중 일부라는 것은 알지 못한 채...어떻게 해서든 아들을 지키려 했던 나오키의 엄마는 아들의 광기가 도를 넘어서자 어쩔 줄을 몰라한다. 이지메를 당하던 슈야는 자신이 에이즈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실망한다. 보란듯이 에이즈에 걸려 엄마 아빠를 놀라게 할 생각이었는데 말이다. 그는 아무도 생명이 귀중하다고 자신에게 가르쳐 준 사람이 없었다는 말로 고백을 시작한다. 자신을 임신한 뒤 야망을 접어야 했던 엄마가 자신을 학대했었다는 것과 그럼에도 자신을 버린 엄마를 여전히 그리워 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외로웠다. 살의를 가지고 사람을 죽여대는 괴물이었지만, 내면은 아직도 엄마의 관심이 필요한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엄마의 관심을 받고 싶은 슈야는 이번에는 대량 학살을 하기로 마음 먹는데...
영화를 보는데 내내 마음이 착잡했다. 유코에게 딸은 모든 것이었다. 타인의 손가락질을 감내하면서까지 낳은 딸이니 말이다. 그녀가 바란 것은 그 딸과의 작은 행복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작은 소망과 행복을 아이들이 빼앗아가 버렸다. 그들은 살인이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르는 듯 보인다. 잘못했다고 미안해 하기는 커녕 장난이었다고 실실 거리니 말이다. 그래서 네가 어쩔건대? 라는 슈아의 눈빛에는 내가 그녀라도 돌았을 것이다. 한 사람에게 전부인 것을 빼앗으면 안 된다는 것을 그들은 모른다. 더군다나 그것이 생명인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지 않는가. 그녀의 분노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아이들의 고백을 들으니, 참 딱한건 그들도 마찬가지다. 어린 사이코 패스처럼 보이는 슈아는 실은 어린 시절 엄마의 학대가 낳은 괴물이다. 사랑이 필요한 나이에 그는 학대를 당하고 버림을 받았다. 그가 유코 선생의 상처입은 마음에 전혀 공감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걸 가르쳐 줘야할 따스한 엄마가 없었으니 말이다. 얼핏 보기엔 슈야의 행동이 지극히 철면피 같아 보이겠지만서도, 어린 시절 공감을 배우지 못하면 평생 그걸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도무지 그 살인의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 것일까?
14살 이하의 아동들은 살인을 저질러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 왜냐고? 아직 그들에게 판단능력이 어른만큼 완전하지 못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규정에 대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듯하다. 어리다고 봐 줘봤자, 도무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지 못하는 녀석들에게 죄값을 치르지 않게 하는건 옳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을 봐 준다고 무슨 소득이 있냐고 사람들은 말한다. 결국 싹수가 노란 놈은 커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 말에 일리가 있다는 점은 나도 인정한다. 하지만 과연 그 아이들을 괴물로 만든 것은 누구였을까? 그들을 키운 어른들이 아닐까. 아이들을 탓하기 전에 우린 아이들을 잘 키우고 있는가 배우고 반성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얼마전 tv에서 평범해 보이는 가정을 보여준 적이 있다. 그집 엄마가 어린 아들을 마치 인형인양 이리저리 흔들면서 패는걸 보고 나는 경악하고 말았다. 가정내 폭력은 일상적이고, 지속적이며, 그리고 은밀하게 자행된다는 점에서 끔찍하다. 가장 안전해야 할 가정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곪아 터지는지는 그 누가 알겠는가. 그 폭력을 멈추게 하지 못하는 한 , 나는 14살 이하 아동 처벌 금지법에 찬성표를 던질 수밖엔 없다. 아동 복지법이 우선인 것이다. 먼저 아이들을 제대로 대접한 후에, 그들의 죄를 물어도 우린 늦지 않을 거라 본다.
일본 사회의 병든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냉소적이고 섬뜩한 시선 역시 불편하긴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진짜 요즘 아이들은 저래? 갸우뚱했다. 우리 아이들이 요즘 저렇단 말이지. 과연 그럴까.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정말 큰일 일 것 같은데 말이다. 물론 잘 만든 영화긴 하다.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잘 풀어내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주연 배우의 연기도 좋고, 아이들의 연기를 뭐,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비록 그런 섬뜩한 연기를 잘 해내는걸 칭찬해줘야 할지 난감한 기분이었지만서도. 바라건데, 제발 저런것만은 우리나라가 일본을 따라가지 않았으면 한다. 오랜만에 보게 된 중학교 교실의 모습이 어찌나 심난하던지, 과연 우리의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도 되는 것일까 걱정이 되더라. 그리고 어른으로써, 난 잘하고 있나 어깨가 무거웠다. 마지막 결말을 보면서 통쾌하긴 했지만서도, 정의가 실현된 듯한 원초적인 감정을 느끼긴 했지만서도, 그럼에도 뭔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나로 모르겠다. 어쩌면 지금의 나로써는 풀어내기 힘든 문제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