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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입은 영혼의 편지 - 아우슈비츠에서 희생된 유대인 여의사 릴리가 남긴 삶의 기록
마르틴 되리 지음, 조경수 옮김 / 북스코프(아카넷)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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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의 일기>가 오랫동안 사랑받으며 "명작"의 반열에 오른 이유는, 그 이야기가 허구가 아닌 가장 참혹한 시대를 살았던 가장 순수한 소녀의 "진실"을 담은 일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도저히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환경에서 그들만의 생활을 만끽하고 재미를 찾아내었던 소녀의 진실한 내면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비록 그 소녀는 살아남지 못했지만 어쩌면 그렇기에 더욱 그 애절함이 짙게 느껴지는가 보다.

<안네의 일기>를 제외하고는 <쉰들러 리스트>를 비롯한 많은 영화나 소설 속의 제 2차 세계 대전 이야기는 대부분 "살아남은 자"의 이야기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므로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볼 때... <<상처 입은 영혼의 편지>>는 무척이나 귀중한 역사적 자료로 보인다. 어느 날 갑자기 게슈타포에게 잡혀가 브라이테나우 수용소로 끌려가버린 어머니와 뒤에 남은 다섯 자녀들. 이들은 "가족"으로 남기 위해 500통이 넘는 서신 교환을 했고 그 편지들이 어머니와 자식들을 깊게 이어주고 있다. 

책은 릴리의 탄생에서부터 그녀가 처음 사랑에 빠지고 열렬하면서도 전적인, 그녀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남자 친구 에른스트와의 관계와 결혼에 이르는 과정이 앞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녀는 비유대인이면서 순수 독일 혈통인 에른스트와 결혼함으로서 나치스의 쓰레기 소거 작전에 휘말리지 않을 확률이 높았음에도 죽음을 면치 못했다. 이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선 에른스트의 성향과 릴리와의 관계를 설명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릴리는 엄마 같은 여자친구였고, 에른스트는 가엾은 불운아처럼 굴었던 것이다."...41p
"아마데, 사랑하는 착한 아마데, 나를 이대로 놔두면 안 돼? 나는 나를 바꿀 수 없고 당신도 나를 바꾸지 못해. 당신은 나를 이를테면 한나처럼 단순하고 소박한 사람으로 만들 수 없어. 나 자신은 침착함과 명료함을 추구하고 그것을 얻고자 하고, 내 안의 여성스럽고 모성적인 부분을 전부 존중하고 나의 가장 멋지고 좋은 점으로 가꾸고 있어."...57p

많은 교육을 받고 의사 면허 시험에까지 합격한 박사학위 의사로서, 또 그렇게 되기까지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은 여성으로서 릴리는 무척이나 명랑하고 진취적인 삶을 지향한 것으로 보인다. 에른스트의 계속된 불만이나 고집에도 불구하고 나치스 정당의 횡포가 본격화되고 마을에서 이들 부부가 고립되기 전까지는 확실히 멋진 여성으로서의 릴리를 상상할 수 있다. 

릴리의 편지는 남자 친구 에른스트에게 그리고 결혼 후에는 만하임의 친구들이나 조카이면서 절친했던 로테에게, 수용소로 잡혀간 후에는 자신의 다섯 아이들에게 보냈던 것들이다. 똑똑하고 책과 음악, 연극 등을 사랑하는 이 진취적인 여성이 어떤 식으로, 어떤 사건들로 조금씩 움츠러들고 겁에 질리고 상처받아가는지를 .... 너무나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자신의 잘못도 아닌, 그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마을에서 사회적 보이콧을 당하고, 아이들도 학교에서 쫓겨날까...남편의 사회적 지휘가 낮아질까 노심초사하는 릴리의 마음이 아주 잘 이해된다. 이 모든 것들은 릴리의 편지를 통해서 알 수 있고 그렇기에 모든 것은 진실이며 역사적 사실이 될 수 있다. 그 당시 독일인들의 심리를 아주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어머니한테 하는 짧은 질문과 소식 전달에만 국한되었던 편지들이 곧 점점 일기문의 특성을 띠게 되었고, 릴리는 편지들을 읽고 아이들의 일상과 걱정거리, 작은 기쁨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다. "...199p

어머니로서 하루아침에 아이들을 버려둔 꼴이 된 릴리는, 수용소에서 아이들의 편지를 위로 삼아 하루하루를 견뎌낸다. 아이들은 어머니와의 유대감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이틀에 한 번씩 편지를 보낸다. 어머니에게 자신들이 겪은 모든 일을 편지에 담음으로서 이 편지들 또한 생생한 증언이 되고 있다. 영화나 상상으로만 겪은 전쟁의 참상이 아닌, 아이들이 직접 보고 듣고 겪은 모든 것들이 담겨있다.

책은, 릴리가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옮겨가며 아이들에게 보낸 편지를 끝으로 맺고 그 이후의 상황을 간략히 소개하고 있다. 이것은 릴리의 생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남겨진 아이들의 분투기이기도 하다. "편지"라는 매개체로 이어진 이들 가족의 생생한 역사이다. 그리고 전쟁이 남긴 참혹한 진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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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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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가족"이란 무엇일까. 때로는 남보다도 못하고 (남에게 잘 못하는 비수 꽂는 말들도 가족에게는 가능하다.) 때로는 이 세상 천지에 혼자라는 외로움에 치를 떨 때 그래도 그 순간 생각나는 사람들. 어쨌거나 저쨌거나 오갈 데 없는 나를 받아주고 마지막까지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사람들도 가족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절대적인 믿음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막 대하기도 하고 더 미워지기도 하며 더 극한 틈이 생기기도 한다. 바로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가족"이기 때문이다. 

<<고령화 가족>>은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도대체 이 가족이 가족이기나 한 걸까...싶을 정도로 혈연의 시작부터 각자의 이해 관계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평범하지 않은 가족이다. 가족의 끈 같은 것은 전혀 없을 것 같은, 스무 살이 넘자 각자 뿔뿔이 흩어져 자신들만의 삶을 이어오던 이 가족이, 결국 각자의 손에 남은 것 하나 없이 하나 둘 엄마의 집으로 모여든다. 평균 나이 사십 구세. 자식들은 각자의 삶에 성공하여 가식적으로라도 부모님께 효도하고 번듯한 생활을 해야 할 그 나이. 이 가족은 그 나이가 되어서야 다시 엄마 밑으로 모여들며 지난 날 그들이 풀지 못했던, 혈연과 이해 관계의 끈을 조금씩 잡아당겨 본다. 

"일찍이 꿈을 안고 떠났지만 그 꿈은 혹독한 세상살이에 견디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이혼과 파산, 전과와 무능의 불명예만을 안고 돌아온 우리 삼남매를 엄마는 아무런 조건 없이 순순히 받아주었다. 그리고 그 옛날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 다시 끼니를 챙겨주기 시작했다."...39p

"밥 챙겨 먹었니?" "끼니 거르지 말고 잘 챙겨 먹어라.".... 하루에 한 끼쯤 굶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자식들에 비해 우리 어머니들은 유독 "밥"에 강한 집착을 보이신다.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자식이 자라 그의 자식을 보면, 또 밥 타령이다. 우리에게 밥은 "애정"이며 관계를 이어주는 "끈"이다. '나'의 엄마는 다 큰 자식들이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했어도 좌절의 시기에, 다시 자신의 보호 아래로 들어온 것이 마냥 기쁘다. 그리고 다시 재충전하여 밖으로 나갈 힘을 주기 위해 "밥"을 챙겨주는 것이다. 

주인공 '나'가 밝혔듯이 삼류 막장드라마의 끝까지도 갈 수 있을 것 같은 이 소설은, 하지만 사실 중심이 그 삼류의 내용에 있는 것이 아닌, 이들의 심리와 이들간의 관계와 어머니 밑에서 다시 사회로 내디딜 수 있었던 "가족"에 있기 때문에 훌륭하다. 서먹하고 연대감이 없던 이 막장 가족은 좁은 공간에서 살을 맞대고, 함께 식사를 하며 어려운 경험을 함께 쌓았기 때문에 진짜 "가족"이 되었다. 가족이란 단지 혈연에 갇혀 있지만은 않다는 것. 그보다는 함께 생활하고 함께 이해하고 함께 경험하는 데서 온다는 것.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고 진심으로 응원하게 되는 것. 그것이 가족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가족은 혼란스럽고 위태로웠던 과거와 화해하고 비로소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었다. 또한 아무것도 바뀐 것은 없었지만 패티김의 노래가 울려퍼지던 그날 아침만큼은 우리 집도 평화로운 가정이었다."...244p

무겁지만 무겁지 않은, 재미있지만 가벼지만은 않은... 좋은 작품을 읽었다. 한국 소설에서 이렇게 중심이 잘 잡힌 작품을 접할 때면 정말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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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풍선이 남작 뮌히하우젠
고트프리드 뷔르거 지음, 염정용 옮김 / 인디북(인디아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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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읽었던 <허풍선이 남작> 이야기가 더이상의 삭제나 미화되지 않은 채로 "완역"되어 출간되었다. (완역을 무지하게 사랑하는 나. ^^) 그래서인지 동화책으로만 접했던 그 이야기와 엄청, 무지, 진짜 다르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흘러간 세월만큼이나 달라졌기 때문일 수도 있으나 원작 그대로는 동화책으로 만들 수 없었을 내용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그런데 왜! 우리는 동화책으로 이 책을 제일 먼저 접했을까. 그 답은 "허풍선이 남작 뮌히하우젠"의 도를 넘는, 진짜 말도 안되는... 어른이라면 누구나 절대로 믿지 않을 만한 이야기가 가득하기 때문이리라. 

눈에서 불이 번쩍 나는 것을 이용하여 총 점화관에 불을 붙이고(이건 언어유희가 아닌가!ㅋ) 수렁 속에 갇힌 자기자신을 자신의 팔로 들어올려 구하는가 하면, 자신이 던진 도끼를 가져오기 위해 콩나무를 심고 달까지 다녀왔다는... 그저 헛웃음이 나올법한 이야기의 연속이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자신만은 진실만을 말하고 있다고 그 당위성까지 설명하는 뮌히하우젠 남작의 이야기를 듣고있자면 과연 이 남자는 말재주가 뛰어난 사람일까, 사기꾼일까...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그저 우습게만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뮌히하우젠 남작)의 말도 안되는 여행 이야기 속에 그당시(1700년대)의 풍습이나 문화 사건 등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면 동물 학대와 환경 오염이라고 불릴 만한 만행도 서슴지 않아 그당시 생활이 어땠는지를 잘 알 수 있고 그가 직접 참여했다는 러시아-터키 전쟁이나 스웨덴 전쟁, 독일 헤센-카셀 지방의 어떤 관리에 대한 암시, 열기구 이야기 등을 통해 당시의 이슈화된 사건들을 풍자함으로서 이 책이 얼마나 인기가 많았을지 상상이 되고도 남는다. 

하지만 사실 이 작품은 독일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이야기에 자신의 사냥 실력을 자랑하기 좋아했다는 뮌히하우젠 남작의 이야기를 접목시킨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더욱 놀랍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전래동화인 <줄줄이 꿴 호랑이>(꼬챙이에 꿴 메추라기나 베이컨 한 조각으로 연결된 오리 이야기)나 <재주 많은 네 친구>(뮌히하우젠 남작의 다섯 부하들) 이야기와 무척이나 비슷하다. 

그의 마지막 마무리 이야기는 그야말로 대미를 장식한다. 그는 신들을 만나고 지구를 통과해 반대편 장소에 닿는가 하면, 성경에 나오는 우유와 꿀이 흐르는 장소에도 머물렀다니 그야말로 허풍의 극치를 달린다. 그러고도 자신의 말은 진실일 뿐이며 거짓을 말하는 것은 죄를 받아 마땅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가 진실이니 거짓이니 하는 것을 가리는 것은 옳지 않다. 나 자신도 너무나 재미있었던 여행이나 추억은 스스로도 미화시키고, 다른 사람에게 전할 때에도 조금씩 부풀려지니 말이다.^^

최초의 판타지라 할 수 있을까. 사뭇 듣기에 "말도 안돼!" 싶긴 해도,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잠시라도 힘든 현실을 잊을 수 있고 기쁨을 느끼며 행복해지는 것이 아닐까. <<허풍선이 남작 뮌히하우젠>>은 그당시 사람들에게 그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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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마 죽지마 사랑할거야>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울지 마, 죽지 마, 사랑할 거야 - 지상에서 보낸 딸과의 마지막 시간
김효선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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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월 중순... 바람이 많이 불고, 눈도 많이 내려 몹시 춥던 날. 남편이 급체한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극심한 통증에 결국 남편은 혼자서 응급실로 향했고 금방 처방받고 올 것이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밤 11시쯤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급성심근경색이란다. 응급 수술에 들어갔으니 어서 빨리 병원으로 오라는 전화. 그 때... 병원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내가 했던 생각은, '아... 내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 

너무나 큰 좌절이나 나쁜 일들에 우리는 면역되어 있지 않다. 그런 일들은 모두 우리를 비켜갈 거라고, 언제나 그런 일들은 다른 사람들의 일이며 내게는 그저 견뎌낼 수 있을 만큼의 좌절이나 힘든 일이 있을 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한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더욱 더 조심하지 않고, 매 순간을 기뻐하거나 행복해하지 않고 그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일 혹은 훗날 찾아올 행복을 기다리는 어리석음 대신 '지금 여기' '이 순간'의 행복을 미리 알아차렸더라면, 평온한 일상이야말로 가장 놀라운 기적이란 사실을 좀 더 일찍 알아 차렸더라면....... 그러나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너무 늦어 있었다. "...16p

<<울지 마, 죽지 마, 사랑할 거야>> 는 남편은 교수에 두 딸은 예쁘고 공부 잘 하며 진취적인 삶을 찾아가고 있고 자신 또한 드라마 작가로서 최선을 다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던, 그야말로 누가 봐도 행복할 것 같은 김효선 작가의 좌절과 그 과정을 담은 책이다. 어느 날 그녀의 큰 딸(18세)이 이상 증세를 보였다. 그저 피곤해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던 아이의 병명은 급성 백혈병. 이후 그녀는 모든 그녀의 일을 놓고 딸 옆에서 간병하며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드라마 작가로서 평소 자신이(혹은 시청자들이) 생각했던 백혈병의 이미지와 막상 현실에서 부닺혀야 하는 딸의 병이 괴리가 너무 커서 자신의 직업에 의구심이 들고 한없이 죄책감을 느낀다. 돈이 없어 치료를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도 지켜보게 되고 같은 골수를 겨우 찾아 이식을 기다리다가도 기증을 번복하는 바람에 그 기회조차 잃게 되는 어이없는 상황에 희망은 자꾸만 무너진다. 그런 와중에도 이들은 함께 하지 못했던 과거를 묻고 이 소중한 시간을 감사하고, 몇 번의 좌절 속에 조그만 희망의 빛을 찾아 행복해한다.

"하지만 기억해라. 부모와 자식이 서로 다른 영혼이라 해도, 설사 내게서 잠시 머물다 가는 존재라 해도, 너는 나의 분신이야. 나의 전부이자 나의 가장 위대한 파트너야. 그러니 제발 이겨내 줘. 이 엄마를 위해서라도."...148p

어떤 슬픔이 가장 크냐고... 묻는다면 대답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엄마"이기 때문에 자식을 먼저 보내야 하는 슬픔은.... 어떻게 말로 표현하지 못할 것이다. 아이 앞에서 그 아이의 죽음에 대해 말해야 하고, 더이상 함께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그 슬픔을... 어찌해야 할까. 울었다.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 또한 엄마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기에. 남편의 급작스런 병에는 나름 의연하게 대처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너무 놀라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 다신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지만 만약 그 경우가 아이였다면.....  생각하기도 싫다. 

"사랑하는 딸을 살아생전엔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란 사실을 떠올리면 지금도 뼛속까지 슬프다. 때때로 가녀린 몸에 맞지 않게 푸하하 호탕한 소리로 웃어젖히며, 포기해야 할 것은 과감히 포기할 줄 알았던 그리고 안 되는 것은 절대로 욕심내지 않던 그 강직한 포부가 너무도 그립다. "...299p

작가는... 이 글을 통해 슬픔을 치유했을까. 그 가족은 이제 슬픔을 딛고 다시 평온한 일상을 소중하게, 행복하게 보내고 있을까. 사람은 망각의 동물인지.... 시간이 지나면 또 주의하던 것에 소홀해지고 무감각해지는 것 같다. 남편과 퇴원하며 앞으로는 채식만 할 거라는 다짐은 이틀만에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매일 밥상을 차릴 때마다 "가족의 건강"이 우선이라고 내게 되새긴다. 또 행복한 미래를 위해 행복한 하루, 바로 오늘을 사랑하기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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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큐에게 물어라
야마모토 겐이치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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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면.... 3평 정도 되는 크기의 방에, 두 면을 통유리로 세워 한 면으로는 드넓은  풀과 꽃들의 향연이 그지없이 펼쳐지고, 한 면으로는 끝도 없이 드러나는 바다가 보이는 곳에 앉아 아주아주 달콤한 간식과 그 달콤함을 중화시켜줄 씁쓸한 차를 마시고 싶다. 그렇게 앉아있으면 시간이 가는줄도, 그 곳이 현실에 존재하는 곳인지도 분간하지 못할 것 같다. 그저 행복하다고... 이런 순간을 위해 삶은 살만한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미소지을 것 같다. 그 순간을 벗어나면 다시 힘들고 고민되는 모든 것들이 덮쳐오더라도 또다시 찾아올 그런 순간을 위해 힘내서 열심히 살아질 것 같다. 

"다도"라는 것을 배워보지도, 잘 알지도 못하는 나이지만 매일같이 커피를 마시고 차 한 잔을 곁들여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남편과 마주앉아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즐거움을 아는 나도... 어쩌면 그동안 "나만의 다도"라는 것을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이 책은. 그리고 그 단 한 순간을 위해 노력하고 주의를 기울이는만큼 그 이상의, 더욱 행복하고 충만한 시간이 될 것이라고 가르쳐 주는 듯하다. 

<<리큐에게 물어라>>는 일본 다도의 명인 센 리큐의 삶을 그리고 있다. 그 누구보다 독창적이고 절대 미(美)를 추구했던 리큐가 그 신과 같은 경지에까지 오르게 된 사연과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으로 자결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이다. 하지만 독특하게도 이야기는 뒤에서 앞으로 흐른다. 때문에 리큐가 어째서 히데요시의 심기를 거스렸는지와 히데요시가 그토록 탐냈다는 리큐의 조선 다완에 얽힌 이야기가 마치 미스테리처럼 얽히고 설킨다. 

"왜 그 사내는 그리도 아니꼬운 눈을 하는가.
왜 그 사내는 그렇게까지 자신의 심미안에 절대적인 자신을 갖는가."...32p

히데요시는 리큐의 심미안이 최고의 경지에 올라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의 욕망과 다른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볼 줄 아는 능력을 잘 이용하면 자신에게 얼마나 큰 득이 될지도 잘 알고 있다. 또한 실제로 히데요시는 천하를 통일하는 데 리큐의 도움을 많이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히데요시가 리큐를 용서할 수 없는 이유. 그것은 비슷한 사람들끼리의, 혹은 자신보다 잘난 사람에 대한 시샘과 질투에서 비롯된 것일까. 

"똑똑한 사내는 좋게 평가받지만 지나치게 똑똑한 사내는 기피된다. 조금쯤은 빈틈을 보여야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법이다."...118p

리큐가 그 누구보다 뛰어나지만 여러 사람들에게 배척당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천재적인 심미안이 있고 그것에 대한 자신감이 있지만 자신의 뜻을 결코 꺽지 않는 그 곧음으로 인해 리큐는 사형당한다. 하지만 그 곧음은 또 어디서 나왔을까. 리큐만이 간직한, 그의 "진정한 사랑"과 "가질 수 없는 아름다움"이 답이 될 것이다. 

"네 차는 관능적이고, 화려하고, 뭐랄까...... 그래, 미칠 듯한 사랑이라도 감추고 있는 것 같거든. 어떠냐. 내 눈은 못 속인다. 너는 그 나이가 되어서도 왠 계집에 대한 사랑 때문에 미쳐 죽을 것처럼 애태우고 있지? 그렇지 않으면 이리도 수명이 줄어들 정도의 다도는 하지 못할 것이야."...292p

"눈물과 오열과 공포와 노여움과 한심함과 증오와 절망이 한데 뒤섞여"(...471p) 탄생한 그의 다도는 정진을 거듭할수록 "소박한 초암 속의 화사함"과 "싸늘한 눈 속에 움튼 봄 새싹"을 테마로 하며 "생명"이 주제가 되었다. 그렇기에 극한의 아름다움이 탄생할 수 있었으리라. 

<<리큐에게 물어라>> 전체를 통해 가장 진하게 다가오는 것은, "다도" 자체였다. 하나의 물건, 장식이나 꽃, 족자나 단지와 밥, 국, 반찬 그리고 곁들여지는 열매 하나까지도 주인이 손님에게 전하려는 뜻이 있다. 이 많은 의미들을 어떻게 제시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건지 그저 신세계로만 보인다. 무엇보다 리큐의 다도는 리큐에게 접대받는 손님 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고 있는 내게도 전해져서 나 또한 한숨이 놓이고 편안해지며 함께 접대를 받는 듯하다. 그만큼 작가의 묘사가 뛰어나다는 얘기다. 팩션이기에 이 내용이 모두 진실이라고 믿지는 않지만 "리큐"라는 사람의 진실함과 열정은 충분히 전해진다.

차가 마시고 싶어졌다. 아름다운 풍광과 적요한 분위기에서...  꼭 리큐같은 사람이 주인인, 그분이 끓여주는 차를 마셔보고 싶어졌다.
그럼.. 왠지 지금까지와는 다른, 씁쓸함이 아닌 인생의 맛을 느끼게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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