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큐에게 물어라
야마모토 겐이치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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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면.... 3평 정도 되는 크기의 방에, 두 면을 통유리로 세워 한 면으로는 드넓은  풀과 꽃들의 향연이 그지없이 펼쳐지고, 한 면으로는 끝도 없이 드러나는 바다가 보이는 곳에 앉아 아주아주 달콤한 간식과 그 달콤함을 중화시켜줄 씁쓸한 차를 마시고 싶다. 그렇게 앉아있으면 시간이 가는줄도, 그 곳이 현실에 존재하는 곳인지도 분간하지 못할 것 같다. 그저 행복하다고... 이런 순간을 위해 삶은 살만한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미소지을 것 같다. 그 순간을 벗어나면 다시 힘들고 고민되는 모든 것들이 덮쳐오더라도 또다시 찾아올 그런 순간을 위해 힘내서 열심히 살아질 것 같다. 

"다도"라는 것을 배워보지도, 잘 알지도 못하는 나이지만 매일같이 커피를 마시고 차 한 잔을 곁들여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남편과 마주앉아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즐거움을 아는 나도... 어쩌면 그동안 "나만의 다도"라는 것을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이 책은. 그리고 그 단 한 순간을 위해 노력하고 주의를 기울이는만큼 그 이상의, 더욱 행복하고 충만한 시간이 될 것이라고 가르쳐 주는 듯하다. 

<<리큐에게 물어라>>는 일본 다도의 명인 센 리큐의 삶을 그리고 있다. 그 누구보다 독창적이고 절대 미(美)를 추구했던 리큐가 그 신과 같은 경지에까지 오르게 된 사연과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으로 자결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이다. 하지만 독특하게도 이야기는 뒤에서 앞으로 흐른다. 때문에 리큐가 어째서 히데요시의 심기를 거스렸는지와 히데요시가 그토록 탐냈다는 리큐의 조선 다완에 얽힌 이야기가 마치 미스테리처럼 얽히고 설킨다. 

"왜 그 사내는 그리도 아니꼬운 눈을 하는가.
왜 그 사내는 그렇게까지 자신의 심미안에 절대적인 자신을 갖는가."...32p

히데요시는 리큐의 심미안이 최고의 경지에 올라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의 욕망과 다른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볼 줄 아는 능력을 잘 이용하면 자신에게 얼마나 큰 득이 될지도 잘 알고 있다. 또한 실제로 히데요시는 천하를 통일하는 데 리큐의 도움을 많이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히데요시가 리큐를 용서할 수 없는 이유. 그것은 비슷한 사람들끼리의, 혹은 자신보다 잘난 사람에 대한 시샘과 질투에서 비롯된 것일까. 

"똑똑한 사내는 좋게 평가받지만 지나치게 똑똑한 사내는 기피된다. 조금쯤은 빈틈을 보여야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법이다."...118p

리큐가 그 누구보다 뛰어나지만 여러 사람들에게 배척당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천재적인 심미안이 있고 그것에 대한 자신감이 있지만 자신의 뜻을 결코 꺽지 않는 그 곧음으로 인해 리큐는 사형당한다. 하지만 그 곧음은 또 어디서 나왔을까. 리큐만이 간직한, 그의 "진정한 사랑"과 "가질 수 없는 아름다움"이 답이 될 것이다. 

"네 차는 관능적이고, 화려하고, 뭐랄까...... 그래, 미칠 듯한 사랑이라도 감추고 있는 것 같거든. 어떠냐. 내 눈은 못 속인다. 너는 그 나이가 되어서도 왠 계집에 대한 사랑 때문에 미쳐 죽을 것처럼 애태우고 있지? 그렇지 않으면 이리도 수명이 줄어들 정도의 다도는 하지 못할 것이야."...292p

"눈물과 오열과 공포와 노여움과 한심함과 증오와 절망이 한데 뒤섞여"(...471p) 탄생한 그의 다도는 정진을 거듭할수록 "소박한 초암 속의 화사함"과 "싸늘한 눈 속에 움튼 봄 새싹"을 테마로 하며 "생명"이 주제가 되었다. 그렇기에 극한의 아름다움이 탄생할 수 있었으리라. 

<<리큐에게 물어라>> 전체를 통해 가장 진하게 다가오는 것은, "다도" 자체였다. 하나의 물건, 장식이나 꽃, 족자나 단지와 밥, 국, 반찬 그리고 곁들여지는 열매 하나까지도 주인이 손님에게 전하려는 뜻이 있다. 이 많은 의미들을 어떻게 제시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건지 그저 신세계로만 보인다. 무엇보다 리큐의 다도는 리큐에게 접대받는 손님 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고 있는 내게도 전해져서 나 또한 한숨이 놓이고 편안해지며 함께 접대를 받는 듯하다. 그만큼 작가의 묘사가 뛰어나다는 얘기다. 팩션이기에 이 내용이 모두 진실이라고 믿지는 않지만 "리큐"라는 사람의 진실함과 열정은 충분히 전해진다.

차가 마시고 싶어졌다. 아름다운 풍광과 적요한 분위기에서...  꼭 리큐같은 사람이 주인인, 그분이 끓여주는 차를 마셔보고 싶어졌다.
그럼.. 왠지 지금까지와는 다른, 씁쓸함이 아닌 인생의 맛을 느끼게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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